두 남자의 틈에서

두 남자의 틈에서

By:  명가율In-update ngayon lang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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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은 자신을 팔았다. 20억에 팔아서 경안시 차씨 가문의 독신주의 외동아들에게 접근했다. 차씨 가문의 핏줄을 이어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의 비서 노릇을 반년 가까이하고 나서야 우연은 차가운 워커홀릭이 취한 틈을 타서 목표를 달성했다. 그러나 밤새 힘을 뺀 결과 다른 사람과 잤다는 것을 발견하고 말았다. 눈앞의 사람은 차씨 가문의 외동아들 차현율이 아닌 그의 삼촌 차시헌이었다. ... 우연의 앞에 놓인 길은 두 갈래밖에 없었다. 계약대로 차씨 가문에 천문학적인 위약금을 지불하던가, 아니면... 차시헌이 지켜보는 가운데 차현율을 꼬시던가. ... 어느 날 결국 참지 못한 남자가 그녀를 억지로 벽으로 몰아세우면서 말했다. “차 대표님, 일단 제 말부터 들어주세요. 저 진짜 돈이 궁해서 두 번째 길을 선택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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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banata 1

제1화

반년 동안 잠복하던 우연이 드디어 해냈다.

직속 상사와 밤새도록 비비고 뒤엉킨 뒤, 그녀는 알몸으로 호텔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

온몸 뼈를 다 분해해서 다시 맞춰 놓은 것처럼 쏟아지는 통증에 얼굴이 절로 찌푸려질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의사가 하라는 대로 이를 악물고 삼십 분 동안 꿈쩍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단지 임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말이다.

욕구를 채운 남자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숨결에는 옅은 술 냄새가 섞여 있었고, 길고 마디가 도드라진 큰 손과 긴 팔은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거칠게 끌어안고 있었다. 그녀가 조금만 움직이면 바로 눈을 뜰 것 같은 자세였다.

하지만 우연은 알고 있었다. 그가 지금 깨어날 리 없다는 것을.

오늘 밤 원래 그가 마실 술은 청주였다.

그런데 그 청주는 이미 그녀가 독한 술로 슬쩍 바꿔 두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씨 훔치기’ 계획을 어떻게 실행했겠는가.

핸드폰을 집어 든 우연은 오늘이 배란일이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 뒤에야 그의 품에서 몸을 빼냈다.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를 주워 들고는 허겁지겁 방에서 빠져나왔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뒤, 그녀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번호 한 줄을 눌러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부끄러움 따위는 신경 쓸 겨를도 없어서 우연의 목소리는 다급하기만 했다.

“우리 관계 가졌어요. 계약금 먼저 제 통장으로 보내 줄 수 있어요?”

남동생 수술에는 당장 큰돈이 필요했다.

정말 더는 갈 데가 없어진 우연은 결국 차씨 가문의 독신주의 외동아들에게서 아이를 하나 남겨 주겠다고 스스로 나섰고, 그 대가로 20억을 받기로 했다.

“당연하지! 다만 계약서에 나온 대로, 네가 밴 아이가 내 아들 피가 맞는지는 꼭 확인해야 해. 나는 DNA 검사를 할 거니까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 안 그러면... 위약금 액수 너도 알고 있지?”

우연의 대답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네, 저는 확신해요.”

성은 차 씨.

직업은 하얀 그룹의 대표였다.

젊은 데다가... 체력까지 놀라웠다.

무엇보다도 경안시 차씨 가문은 이번 세대에 이르러 외동아들이 딱 한 명뿐이었다.

그녀가 잔 남자가 그가 아니라면, 설마 그의 아버지였겠는가.

아버지와 아들 정도는 바보가 아니고서야 헷갈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됐어.”

통화가 끊기고 나서 차씨 가문 역시 아주 시원스럽게 움직였다. 돈은 바로 계좌로 들어왔다.

우연은 이제야 한숨 돌리려던 찰나, 갑자기 몸에 걸친 원피스가 스르르 흘러내리면서 가느다란 어깨끈이 그대로 탁 끊어져 버렸다.

생각할 것도 없었다.

분명 어젯밤, 남자가 옷을 벗길 때 힘을 너무 세게 줘서 거의 다 뜯겨 나가고 겨우 조금만 이어져 있던 모양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그녀가 번개처럼 반응해서 두 손으로 앞가슴 쪽 천을 꽉 움켜쥐었다는 것이다. 불행한 점은 등 뒤의 교차 끈까지 따라 풀려 버렸다는 것이다.

맨살이 그대로 드러나 버려 우연의 도드라진 날개뼈가 한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지금 상황에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딱이었다.

원래 1층까지 내려가야 했던 엘리베이터가 5층에서 갑자기 멈춰 버렸다. 양쪽 문이 열리고 남자의 실루엣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그녀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번개처럼 튀어 올랐다. 나쁜 짓을 하면 정말 벌을 받게 되어 있다고 말이다.

“도와드릴까요?”

머리 위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우연의 난처한 상황을 눈치챘는지, 더 앞으로 다가오지도 않고 엘리베이터 입구 쪽에 가만히 서 있었다.

“저...”

“이거, 잠깐 빌려드릴게요.”

그의 목소리는 아주 맑고 또렷했다. 장난기나 가벼운 농담 같은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 순간 넉넉한 검은색 수트가 그녀의 어깨 위로 툭 하고 내려앉았다.

우연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말했다.

“고마워요.”

“제 개인 휴게실이 5층에 있어요. 옷 정리하실 거면 잠깐 쓰셔도 돼요.”

지금 그녀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을 리 없었다.

우연은 감사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원피스를 다시 여미고 단추까지 제대로 채운 뒤, 우연은 문밖으로 나왔다. 그제야 아까 자신을 도와준 ‘은인’을 처음으로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의 상반신에는 하얀 셔츠 한 벌만 남아 있었고, 소매는 가볍게 걷혀 있어 차갑고 하얀 가느다란 손목이 드러나 있었다.

눈매는 깊고 정교했고, 입가에 스친 미소는 따뜻해서, 품위 있는 집안의 고운 청년 같으면서도 놀랍게도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모순된 느낌이 있었다.

“아까 보니까 엘리베이터가 19층에서 내려오더라고요. 거기 우리 삼촌 개인 구역이에요. 혹시... 삼촌 비서분이신가요?”

질문을 들은 우연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차 대표님 비서예요.”

“우리 삼촌 비서 하는 거 쉽지 않을 텐데요. 성격이 워낙 차갑잖아요.”

“맞아요! 대표님은 정말...”

‘잠깐. 삼, 삼촌?’

우연은 갑자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며 눈동자가 순식간에 커졌다.

“잠깐만요! 대표님이 차씨 가문의 외동아들 아니에요? 어떻게 조카가 있어요?!”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비서님 말한 그 외동아들은 저를 말하는 것 같네요. 제 이름은 차현율이에요. 비서님 대표는 저보다 세 살 많은 삼촌 차시헌이죠.”

“...”

우연은 호텔을 어떻게 빠져나왔는지조차 몰랐다.

그때 귀 옆에서 휴대폰 벨이 울렸다. 절친 성지원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야, 드디어 성공했네! 뭐 도와줄 거 있어?”

“있어.”

“뭔데?”

“나... 사후 피임약 하나만 사 줘.”

현실은 우연에게 숨 돌릴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성지원과의 전화를 끊자마자, 남동생 주치의에게서 급히 연락이 왔다.

“우혁 씨의 이식 수술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보수적 치료는 이제 효과가 없어요. 골수 기증자는 도대체 동의한 겁니까, 아닌 겁니까?”

“동의했어요! 제가 금방 다시 연락할게요!”

사실 단순한 이식 수술이었다면 우연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내던질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골수 적합 검사 결과 그녀와 남동생은 맞지 않았고, 하필이면 외삼촌 아들이 남동생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외숙모는 처음에는 당연하다는 듯 거절했다. 그러다가도 너무 매정해 보이기는 싫었는지 선을 확 넘는 금액을 내걸었다.

무려 16억.

아들이 골수 기증을 하면 분명히 몸에 영향이 갈 테니, 그 돈은 ‘보상’이라는 이유였다. 앞으로 아들이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도록 해 줘야 한다는 식이었다.

우연이 2억도 못 마련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외숙모는 계좌에 10억이 찍힌 순간 그대로 얼어붙었다.

“너, 너 이 돈... 혹시 불법으로 번 거 아니지?”

“그건 신경 쓰지 마세요. 어쨌든 그쪽으로 피해 갈 일은 없을 거예요. 빨리 사촌오빠 병원에 보내서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기증 전 준비부터 하게 해 주세요. 남은 6억은 수술 끝나고 바로 드릴게요.”

잠시 망설이던 외숙모가 입을 열었다.

“좋아. 하지만 미리 말해 둘게. 이 돈 받은 이상, 우리 아들이 골수는 줄 거고...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겨도 나는 절대 이 돈 돌려달라는 소리는 안 듣고 싶어.”

“네.”

통화가 끊겼다.

우연은 길게 내려앉은 속눈썹을 떨며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차씨 가문과 맺은 계약서를 다시 확인하고, 이미 바닥나 버린 통장 잔액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녀의 앞에 놓인 길은 단 두 개뿐이었다.

하나는 천문학적인 위약금을 물어내는 것.

돈이 없다면 차씨 가문은 그녀를 사기 혐의로 고소할 것이고, 그녀는 감옥에 가게 된다. 그러면 중병을 앓는 남동생은 병원에 홀로 버려질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차씨 가문과의 약속을 계속 지키는 것.

다만 목표를 바꿔 차현율의 ‘씨’를 훔치는 쪽으로.

‘그것도 차시헌의 눈앞에서.’

그래도 다행인 것은 차시헌은 원래도 차갑고 무심하다는 점이었다.

반년 동안 붙어 일하면서 우연이 별의별 방법을 다 써 봤지만, 그는 언제나 절제된 태도를 유지하며 단 한 번도 선을 넘지 않았다.

만약 지금처럼 시간이 급박하지 않았다면, 우연이 벼랑 끝에 몰려 무리하게 들이받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차시헌은 그녀에게 어떤 감정도 없었다.

그래서...

차시헌도 아마, 자신에게 걸었던 그 수작을 조카에게 한 번 더 쓴다 해도 별로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

우연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차시헌은 눈을 떴다.

숙취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니,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난장판에 가까운 어질러진 방뿐이었다.

그러자 머릿속의 흐릿한 기억 조각이 하나씩 맞춰지기 시작했다. 눈가를 붉힌 여자가 손바닥으로 그의 가슴을 밀어내며 애원하던 그 떨림을...

“저 진짜 더는 안 돼요...”

허리를 단단히 감아 붙잡으며 그를 놓아주지 않던 목소리도 있다.

“가지 마요, 나는 당신이 필요해요!”

생각하면 할수록 차시헌의 단정한 얼굴은 점점 더 굳어 갔다. 마지막에는 먹물을 들이부은 것처럼 새까맣게 변했다.

그는 손을 뻗어 잠옷을 집어 들고 어깨에 걸쳤다.

막 침대에서 내려오려는 순간, 새하얀 침대 시트 위에 선명한 붉은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

똑똑.

호텔 방문이 두드려졌다.

차시헌은 시선을 거두고 문 쪽으로 걸어가 방 안의 난장판을 등으로 가렸다.

“삼촌, 이 시간쯤이면 깨셨을 것 같아서요.”

“그래.”

태어날 때부터 공간의 온도를 다르게 만드는 듯한 차가운 기운이었다. 앞에서 환하게 웃는 차현율과는 분위기 차이가 너무도 분명했다.

“무슨 일 있냐?”

“있죠, 그럼요!”

차현율은 이어질 말을 잠시 삼키더니, 눈빛부터 먼저 십 대 소년처럼 수줍게 물들었다.

“이번에 제가 해외에서 돌아온 김에 하얀 그룹에서 정식으로 일하려고요. 그래서... 삼촌한테 부탁드릴 사람이 한 명 있어요.”

차시헌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마른침만 삼켰다.

“누구.”

“삼촌 비서, 우연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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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병원에서 우혁은 숨이 붙어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위태로운 상태였다.면역 체계 문제로 고열이 좀처럼 내려가지 않았고, 정신이 드는 시간도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누나...”이렇게 힘든 와중에도, 우연의 모습이 보이자 우혁은 억지로라도 웃어 보이려 했다. 누나가 걱정하지 않게 하고 싶어서였다.“조금만 더 버텨. 우리 곧 이식 수술할 수 있어! 혁아, 누나는 네가 할 수 있다고 믿어.”우연은 동생 앞에서만큼은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눈가가 금세 뜨거워지자, 그녀는 고개를 홱 돌려 손등으로 눈가를 훔쳤다.“누나... 나 때문에 외숙모한테 또 부탁하지 마. 16억이라는 조건 자체가 그냥 기증할 마음이 없다는 뜻이야. 제발... 돈 때문에 바보 같은 짓은 하지 마.”외숙모가 처음 조건을 말했을 때, 우혁 몰래 한 것도 아니었다.일부러 병실에서 대놓고 말하며 두 남매가 포기하길 바라는 기색이 역력했다.“그건 누나가 알아서 할게. 혁아, 너는 그냥 기억해. 누나는 이제 너 하나뿐이야. 그러니까 반드시 살아. 알았지?”우연은 더 다독이고 싶었지만, 우혁은 다시 의식을 잃어버렸다.그녀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병원을 나와 초라한 월세방으로 돌아갔다.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하얀 그룹으로 가는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어른으로 산다는 건, 아무리 숨 막힐 만큼 무거운 짐이 어깨에 눌러도 현실에 떠밀려 계속 걸어가야 한다는 뜻이었다.“우 비서님, 이번에 장성 그룹이 투자 쪽으로 들어오는 건이에요. 프로젝트팀에서 모델링 몇 번 돌려 보고 정리한 투자 구조랑 금액 제안서입니다. 대표님께 전달해 주세요. 문제없다 하시면 바로 계약 들어가면 됩니다.”“네.”우연은 서류를 받아 들고, 자기 책상 위에 놓아둔 대표 일정표까지 챙겨 들었다.그리고 대표이사실 문 앞에서 노크했다.“대표님, 저예요.”어젯밤 일을 잊어 보려고, 일부러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출근해 일하자는 마음이었다.안쪽에서 차시헌은 단 한 마디만 내뱉었다.“들어와.”목소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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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우연이 나간 뒤에도, 차시헌의 굳게 찌푸린 눈썹은 풀릴 줄을 몰랐다.얼마 지나지 않아 대표이사실 문이 다시 두드려졌다. 들어온 사람은 우연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온 친구 진원호였다.그는 문턱을 넘기도 전에 이미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우리 집 영감탱이는 도대체 무슨 바람이 든 건지, 나보고 꼭 선 자리 나가래! 시헌아, 너 한번 생각해 봐라. 다들 미친 거 아니야? 맨날 나만 보면 애 낳으래, 대를 잇으래! 우리 아버지가 힘이 없지, 내가 힘이 없냐고? 나 아직 젊어! 더 놀아야 한다고! 왜 꼭 한 그루의 삐딱한 나무에 묶여서 죽어야 하냐, 어?”그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길게 찢어진 눈매에는 ‘강제 결혼’에 대한 진한 불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차시헌이 한마디도 받지 않자, 진원호는 바로 토라졌다. 그는 툭 뱉듯 말하며 다가왔다.“야, 그래도 너는 좋겠다. 차씨 가문에서 대를 잇는다고 등짝 맞는 건 네 조카밖에 없으니까. 넌 아무도 뭐라 안 하잖아.”“왜 왔어?”차시헌의 말투는 늘 그렇듯 차가웠고 얼굴에 표정도 없었다.“야, 너 진짜 평생 일만 하다가 끝낼 거냐?”진원호는 혀를 찼다.“몇 년을 봐도 네 옆에는 여자 그림자 하나 없고. 솔직히 말해 봐라, 안 답답하냐? 아니면... 그냥 혼자서 잘 해결하는 타입이냐? 연애 쪽으로 고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 형아가 다 알려 줄게.”차시헌이 다시 서류를 집어 드는 걸 보자, 진원호는 스스로 재미없어진 듯 손을 휘저었다.“노잼 새끼. 난 간다.”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바로 그때...차시헌이 입을 열었다.“친구가 하나 있는데, 물어볼 게 있다고 하더라.”“오?”시작부터 이런 멘트가 나오다니 진원호의 눈이 번뜩였다.그는 냉큼 돌아와 가까이 다가섰다.“좋지, 얘기해 봐.”차시헌은 잠시 말을 고르듯 마른침을 삼켰다.“그 친구가... 어떤 여자랑, 예상 밖의 상황에서 같이 잤어. 자기 전에는 여자가 엄청 적극적이었는데, 자고 나니까 남자가 ‘책임지겠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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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일이 이렇게까지 술술 풀릴 줄은 정말 생각도 못 했다.대표이사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고 나서도, 우연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생각만 계속 맴돌았다.차현율 같은, 그렇게 젠틀하고 다정한 남자가 왜 독신주의일까? 심지어 집안에서까지 혈육을 잇기 위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정도로 태도가 단단하다니 말이다.그녀의 기준으로 보면 돌덩이처럼 차갑고 딱딱한 성격의 차시헌이야말로 그런 쪽에 더 어울린다.우연은 입술을 살짝 내밀고, 다시 고개를 숙여 남은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프로젝트팀에 직접 다녀온 터라 밀린 일이 적지 않았다. 제때 처리하지 못해 진도가 늦어지기라도 하면 차시헌의 기분이 또 나빠질 것이다.그때, 내선 벨이 갑자기 울렸다.“대표이사실로 와.”“네, 대표님!”우연은 마지막 서류를 파일철에 넣고 숨을 고른 뒤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프로젝트 3팀에서 올린 자료, 그 땅의 양도 계약 효력을 확정할 수 없어서 내가 반려했어. 그래서 자금 제공 측에 새 토지 소유권 증명을 서둘러 준비하라고 알렸어.”차시헌의 짙은 눈썹이 살짝 움직이자, 우연은 곧장 새 프로젝트 서류에 계약서가 하나 빠져 있는 이유를 설명했다.반년 동안 그의 곁에 있다 보니 어느 정도는 그의 성향을 알게 되었다.설명을 다 듣고도 차시헌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최선의 반응이다.남은 업무는 별문제 없을 거라고 판단한 우연은 그 자리에서 잠깐 멍하니 서서 다음 계획을 머릿속으로 굴렸다.그때 다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커피.”“아, 네! 지금 타 올게요.”이제 우연은 차시헌의 취향을 거의 달달 외울 지경이었다.예전에는 이것저것 다른 종류의 커피도 마시더니, 요즘에는 우연이 내린 것만 입에 대고 있었다.대표이사실을 나선 우연은 바로 하얀 그룹 안에 있는 바 카운터로 향했다. 이곳은 회사에서 따로 마련해 둔 공간으로 평일 내내 열려 있었다.콜라, 캔 커피, 각종 이온 음료 같은 것들이 무료로 제공된다.청소 직원들까지 와서 마셔도 되었다.우연이 다가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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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병원에서 돌아와 허름한 월세방에 들어온 우연은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뒤 침대에 누웠다. 그러고는 휴대폰을 꺼내 차현율의 카톡 프로필을 열어 봤다.혹시 그에게 취향 저격할 만한 정보가 있을까 싶어서였다.이 점은 차시헌과 꽤 비슷했다. 둘 다 거의 아무것도 올리지 않는 편이었다. 남자들은 원래 여자들처럼 이런 걸 자주 올리지는 않는 건가 싶기도 했다.안에는 연구 프로젝트 링크 몇 개하고, 하얀 그룹 창립 기념일 때 게시물 몇 개뿐이었다.우연은 계속 넘기다가 문득 한 장의 사진에서 손이 멈췄다.배경은 해외의 어느 병원, 내과로 보였고 차현율은 영어로 ‘하룻밤 내내 못 잤다’라고 적어두었다. 위장병이 있는 모양이었다.‘차씨 가문의 위장병, 설마 집안 내력인 건가?’우연은 차시헌의 비서가 된 지 얼마 안 됐을 무렵, 그가 대표이사실에서 위장병을 호되게 앓는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었다. 잘생긴 얼굴이 식은땀으로 흥건해지고 피 한 방울 안 남은 듯 새하얘지는 것이 그야말로 응급 상황이었다.다행히 그녀의 가방에는 늘 성지원의 아버지가 지어준 위장약이 있었고, 당시에는 안 먹기보다 낫다는 심정으로 급히 먹여봤다가 효과가 나타났었다.이후 우연은 차시헌의 건강검진 기록을 참고해 성지원의 아버지에게 따로 부탁해 맞춤 처방을 만들어 받았다. 그가 위장이 조금만 불편해해도 바로 한 봉씩 먹이면 금방 나아졌다.더 볼만한 정보는 없어 보였기에 우연은 프로필 창을 닫았다.그러다 나가는 순간 실수로 차현율의 채팅 버튼을 눌러버렸다. 그렇게 실수로 말도 안 되는 글자 하나가 보내졌다.우연은 황급히 취소하려 했지만 이미 상대가 답장을 보냈다.[?]그녀는 마치 남의 개인정보를 몰래 훔쳐보다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정신이 아찔해지며 급하게 변명을 날렸다.[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잘못 눌렀어요.]이번에는 바로 답이 오지 않았다.우연이 회사 일정 정리하려고 백오피스를 열 준비를 하고 있을 때쯤, 그제야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글자가 아니라 5초짜리 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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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우연은 그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야근이라고 불러놓고, 대표의 여자친구 역할을 맡기려는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 했다.차현율이 돌아서려는 걸 본 우연은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급하게 휴대폰을 꺼내 카톡을 보냈다.[저 차시헌 대표님의 여자친구 아니에요!][정말 아니에요!]하지만 그의 휴대폰은 무음 상태였던 듯했다. 알림음도 없었고, 그 역시 보지 않았다.오히려 차시헌은 말만 던지고 우연의 손목을 탁 잡아 다시 차 안으로 끌어당겼다.‘큰일 났다.’이번에는 정말로 심장이 철렁했다.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계약서에 적힌 그 천문학적 위약금이었다.우연은 목소리가 굳어져서 튀어나왔다.“대표님, 이런 일을 시키실 거면 미리 말씀이라도 해주셨어야죠!”비서가 이렇게까지 따지는 건 거의 처음이라, 차시헌의 미간이 크게 찌푸려졌다.“내가 물었지. 야근할 수 있냐고.”“근데 야근 내용이 이런 줄은 몰랐죠! 누가 보면 오해한다고요!”그 말에 그는 오히려 흥미를 보였다.“집안 모임에는 죄다 차씨 가문 식구들뿐이었어. 누가 오해한다는 건데?”“그건 당연히, 차...”우연은 아찔해 급히 입을 다물었다.아슬아슬했다. 차현율의 이름을 거의 부를 뻔했다.그녀는 급히 다른 말로 돌렸다.“차, 차씨 집안의 어른들이요.”“네가 본 사람 중에 나보다 윗사람은 없어.”“...”‘아... 그렇지.’차시헌도 이미 집안 어른 축에 드는 사람이었다.우연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지금은 일단 빨리 이 ‘야근’을 끝내고 차현율에게 오해를 풀어야 했다.그때, 휴대폰이 띠링 하고 울렸다.차현율이 답장을 보낸 것이다.우연이 확인하려고 손가락을 올린 순간, 옆에서 차시헌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꽂혔다.“너는 언제 현율이 연락처를 저장한 거지?”“그, 그냥... 저번에 차 팀장님이 저를 도와주셔서요. 그때...”다행히 그는 그 문제에는 별 반응이 없었다.대신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의 칸막이를 내려버렸다.그리고 조심스럽지만 직설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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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우연은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상황이 어떤지 이미 감이 왔다.“삼촌? 저... 저랑 우 비서는...”우연은 차현율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차시헌은 미간을 찌푸린 채 통증 때문에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그런데 그는 우연을 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차현율의 손에 들린 약에 꽂혀 있었다.그 약을, 차시헌은 알아봤다. 바로 방금 1분 전에 자기 비서가 안 가져왔다고 말한 그 약이었다.시간이 갑자기 얼어붙은 듯 정지했다.몇 초 후, 차시헌은 곧바로 돌아서 걸어가 버렸다. 위가 찢어질 듯 아파도 그의 걸음은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상황을 눈치챈 차현율이 뒤에서 연달아 외쳤다.“삼촌! 삼촌, 잠깐만요!”우연도 자신이 큰일을 저질렀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차씨 가문과의 계약이 떠올랐고, 병원 침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동생이 떠올랐다. 그러니 지금은 목표가 먼저였다.“차 팀장님, 약 먼저 드세요! 제가 차 대표님을 보고 올게요.”“네, 얼른 가요! 우리 삼촌 위장병이 저보다 훨씬 심해요. 꼭 병원 가시라고 말씀드려야 해요!”우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차시헌이 떠난 방향으로 달려갔다.사실 그의 위장병이 어느 정도인지, 우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아니었으면... 이렇게 늘 그의 위장약을 챙겨 다니고 있을 리가 없었다....“차 대표님! 대표님, 잠깐만요!”차시헌의 다리는 너무 길었다.통증 때문에 거의 버티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우연은 뛰다시피 해야 겨우 따라잡을 수 있었다.그나마 다행인 건, 저택이 충분히 크고 길도 충분히 길다는 점이었다. 아니었으면 이미 그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대표님, 제가 구급차 부를게요! 얼굴이 너무 창백하세요!”우연은 몇 마디를 연달아 외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도 없었다.어쩔 수 없이 우연은 몇 걸음 더 뛰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두 손을 확 뻗어서 말이다.“비켜.”차시헌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눈빛에는 온기가 하나도 없었다.“지금 아프시잖아요! 이렇게 버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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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차시헌의 입맞춤은 너무 뜨거웠다. 힘도 거칠어서 입술을 비집고 이 사이로 파고들더니, 벌이라도 내리듯 안쪽을 마구 휩쓸었다.이렇게 입을 맞춘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난번에는 차시헌이 취해서 정신이 없던 때였다.우연은 머릿속이 완전히 멈춰 버린 것 같았고, 온몸이 그대로 굳어 버렸다.‘아니야. 이 전개는 뭔가 잘못됐어.’차시헌이 조금 전의 말을 다 들었으면, 이제 더 이상 자신을 붙잡고 귀찮게 구는 여자가 없다고 안도해야 정상 아닌가?지금까지 그녀가 다가가거나 조심스레 초대하면, 그는 언제나 강하게 선을 그었는데 말이다.이번 키스는 우연의 폐 속 공기를 모조리 쓸어가 버릴 뻔했다.다행히도 차시헌은 위가 너무 아파서, 고개를 옆으로 툭 떨구더니 잘생긴 얼굴을 그대로 그녀의 어깨에 기댔다.“내가 말했지. 책임질 거라고.”명분도 줄 수 있다는 뜻이었다.우연은 바로 고개를 저으며 위축된 목소리로 말했다.“저는 대표님이 그날 밤 일 때문에 저한테 책임지려고 하다가, 본인을 억지로 묶어 두는 건 원하지 않아요! 정말 괜찮아요! 예전에 대표님을 넘보려고 했던 건 제 잘못이고, 제 멍청한 욕심이었어요. 그러니까 굳이 책임지지 않으셔도 돼요!”“닥쳐.”그녀의 쉴 새 없는 말에 통증까지 겹쳐, 차시헌은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병원으로 가자. 지금.”우연은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네!”...“조금만 더 늦게 오셨다면 환자분은 아마 위에 구멍이 났을 거예요!”그 말을 듣자 응급실 밖에 앉아 있던 우연이 급히 물었다.“그럼 지금은요?”“방금 진통제를 맞고 쉬고 있어요. 조금 있다가 VIP 병실로 옮겨서 계속 관찰하면 됩니다.”“아,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우연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정말 큰일 내지 않아서 다행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차현율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우 비서님, 우리 삼촌은 어떠세요?”“차 대표님은 이제 괜찮으세요.”“다행이다!”그도 눈에 띄게 안심한 기색이었다.우연이 서둘러 물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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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하얀 그룹은 병원에 따로 마련해 둔 VIP 병동이 있었다.심지어 얼마나 대단하냐 하면, 이 층 전체가 차씨 가문 전용이었다. 회진 도는 의사와 간호사 말고는 그 누구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었다.우연 역시 마찬가지였다.안에 있는 차시헌이 깨어나 직접 이름을 불러 들어오라고 지시하기 전까지는 이 층에 발도 못 들였다.“차 대표님.”“응.”차시헌이 드물게 인내심을 보이며 한 글자라도 대답을 해 준 것은 꽤 신기한 일이었다.우연은 병상 곁으로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죄송해요... 대표님, 저를 자르지만 말아 주세요, 네? 앞으로는 가방에 항상 위장약 넣고 다니고, 다시는 이런 일 안 생기게 할게요!”지금 하얀 그룹에서 나가게 되면 차현율을 볼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 더 이상 그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갈 구실도 없어진다는 말이었다.지금 우연은 업무를 핑계 삼아 그와 자꾸 엮이는 수밖에 없었다.차시헌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널 자른다고 했어?”“아니요.”“그럼 쓸데없이 떠들지 마.”“네!”그는 핸드폰을 집어 들고 시간을 한 번 훑어봤다.이미 새벽이었다.차시헌은 팔에 힘을 줘 상반신을 일으켜 세우고 병상에 앉은 채 말했다.“기사한테 말해서 먼저 널 집에 데려다주라고 할게.”“아니에요! 제가 어떻게 대표님을 혼자 병원에 두고 가요. 저는 신경 쓰지 마시고 피곤하시면 쉬세요. 저는 괜찮아요!”어차피 야근 기록도 아직 ‘종료’ 버튼을 안 눌렀다.이 1분 1초가 죄다 돈이었다.차시헌의 검은 눈동자가 슬쩍 그녀를 스쳐 갔다. 그 답이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그래야 예전의 우연 다웠다.“저기 침대 가서 자.”그는 병상 옆에 놓인 보호자 침대를 턱으로 가리켰다.우연은 두 손을 휘저으며 급히 손사래를 쳤다.“아니요, 저는 여기 앉아 있으면 돼요!”혹시라도 자기가 거기 누워 자고 있을 때, 차현율이 삼촌을 보러 왔다가 이 장면을 본다면...그때는 정말, 아무리 설명을 해도 점점 더 수렁으로 빠질 게 뻔했다.“우연.”차시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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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내가... 그 열 번 찍어서 넘어가는 나무였네.”...차는 우연의 원룸이 있는 오래된 아파트 단지 앞에 멈춰 섰다.차시헌은 창문을 내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이런 곳에... 사람이 산다고?’더 이해가 안 되는 건 따로 있었다.비서 월급이 업계 기준으로 낮은 것도 아니고, 우연은 혼자 살았다. 그런데도 평소 명품 가방이니 옷이니 사는 걸 본 적도 없었다.‘그런데 어떻게 이런 낡은 동네에 살고 있는 거지?’경안이 개발되고 나서는 이런 오래된 단지 자체를 구경하기도 힘들었다.“으... 음? 우리 집이네?”우연이 비몽사몽 눈을 비비며 깨어났다.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차 대표님, 저, 저, 저... 저 잠든 거 일부러 기대거나 그러려고 한 거 아니에요!”차시헌이 그녀를 향해 시선을 잠시 던졌다.“내가 기대게 했어.”“...”“내일 하루 쉬어. 그리고 짐 싸서 내 집으로 이사해.”우연은 잠이 덜 깬 줄 알았다. 아니면 지금 꿈을 꾸는 중이거나.“...왜요?”“난 예민해. 앞으로 여기까지 너를 찾아오는 거 싫어.”그리고 그는 카드 한 장을 꺼내 건넸다.“생활용품은 다 새로 사. 비밀번호는 없어.”...“뭐라고?! 차시헌이... 너보고 자기 여자친구 하래?”이 한마디의 충격은 성지원에게는 20억 로또 당첨급 충격이었다.그녀와 달리 우연은 축 처진 표정이었다.“응... 그런 것 같아.”“와, 완전 ‘어느 날 갑자기 재벌 남친이 생겼다’ 아니야? 하얀 그룹 대표랑 연애? 이런 시나리오는 꿈으로도 못 꿔!”우연은 눈을 굴리고 손가락으로 성지원의 이마를 살짝 쳤다.“무슨 소리야. 대표님은 그냥 그날 밤 일 때문에 책임져야 할 것 같으니까 그런 거지. 날 좋아할 리가 있겠어? 너도 알잖아, 그전에는 나를 얼마나 싫어했는지.”“에이, 그게 뭐 어때서? 일단 사귀고, 감정은 천천히 쌓으면 되지!”“그럼 차씨 가문이랑 맺은 계약은?”성지원은 양손을 벌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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