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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남자의 틈에서
두 남자의 틈에서
Penulis: 명가율

제1화

Penulis: 명가율
반년 동안 잠복하던 우연이 드디어 해냈다.

직속 상사와 밤새도록 비비고 뒤엉킨 뒤, 그녀는 알몸으로 호텔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있었다.

온몸 뼈를 다 분해해서 다시 맞춰 놓은 것처럼 쏟아지는 통증에 얼굴이 절로 찌푸려질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의사가 하라는 대로 이를 악물고 삼십 분 동안 꿈쩍도 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다.

단지 임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말이다.

욕구를 채운 남자는 깊이 잠들어 있었다.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숨결에는 옅은 술 냄새가 섞여 있었고, 길고 마디가 도드라진 큰 손과 긴 팔은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거칠게 끌어안고 있었다. 그녀가 조금만 움직이면 바로 눈을 뜰 것 같은 자세였다.

하지만 우연은 알고 있었다. 그가 지금 깨어날 리 없다는 것을.

오늘 밤 원래 그가 마실 술은 청주였다.

그런데 그 청주는 이미 그녀가 독한 술로 슬쩍 바꿔 두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씨 훔치기’ 계획을 어떻게 실행했겠는가.

핸드폰을 집어 든 우연은 오늘이 배란일이 맞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 뒤에야 그의 품에서 몸을 빼냈다.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를 주워 들고는 허겁지겁 방에서 빠져나왔다.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뒤, 그녀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번호 한 줄을 눌러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부끄러움 따위는 신경 쓸 겨를도 없어서 우연의 목소리는 다급하기만 했다.

“우리 관계 가졌어요. 계약금 먼저 제 통장으로 보내 줄 수 있어요?”

남동생 수술에는 당장 큰돈이 필요했다.

정말 더는 갈 데가 없어진 우연은 결국 차씨 가문의 독신주의 외동아들에게서 아이를 하나 남겨 주겠다고 스스로 나섰고, 그 대가로 20억을 받기로 했다.

“당연하지! 다만 계약서에 나온 대로, 네가 밴 아이가 내 아들 피가 맞는지는 꼭 확인해야 해. 나는 DNA 검사를 할 거니까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마. 안 그러면... 위약금 액수 너도 알고 있지?”

우연의 대답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네, 저는 확신해요.”

성은 차 씨.

직업은 하얀 그룹의 대표였다.

젊은 데다가... 체력까지 놀라웠다.

무엇보다도 경안시 차씨 가문은 이번 세대에 이르러 외동아들이 딱 한 명뿐이었다.

그녀가 잔 남자가 그가 아니라면, 설마 그의 아버지였겠는가.

아버지와 아들 정도는 바보가 아니고서야 헷갈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됐어.”

통화가 끊기고 나서 차씨 가문 역시 아주 시원스럽게 움직였다. 돈은 바로 계좌로 들어왔다.

우연은 이제야 한숨 돌리려던 찰나, 갑자기 몸에 걸친 원피스가 스르르 흘러내리면서 가느다란 어깨끈이 그대로 탁 끊어져 버렸다.

생각할 것도 없었다.

분명 어젯밤, 남자가 옷을 벗길 때 힘을 너무 세게 줘서 거의 다 뜯겨 나가고 겨우 조금만 이어져 있던 모양이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것은, 그녀가 번개처럼 반응해서 두 손으로 앞가슴 쪽 천을 꽉 움켜쥐었다는 것이다. 불행한 점은 등 뒤의 교차 끈까지 따라 풀려 버렸다는 것이다.

맨살이 그대로 드러나 버려 우연의 도드라진 날개뼈가 한눈에 들어오게 되었다.

지금 상황에 설상가상이라는 말이 딱이었다.

원래 1층까지 내려가야 했던 엘리베이터가 5층에서 갑자기 멈춰 버렸다. 양쪽 문이 열리고 남자의 실루엣이 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그녀 머릿속에 하나의 생각이 번개처럼 튀어 올랐다. 나쁜 짓을 하면 정말 벌을 받게 되어 있다고 말이다.

“도와드릴까요?”

머리 위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우연의 난처한 상황을 눈치챘는지, 더 앞으로 다가오지도 않고 엘리베이터 입구 쪽에 가만히 서 있었다.

“저...”

“이거, 잠깐 빌려드릴게요.”

그의 목소리는 아주 맑고 또렷했다. 장난기나 가벼운 농담 같은 기색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 순간 넉넉한 검은색 수트가 그녀의 어깨 위로 툭 하고 내려앉았다.

우연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고 말했다.

“고마워요.”

“제 개인 휴게실이 5층에 있어요. 옷 정리하실 거면 잠깐 쓰셔도 돼요.”

지금 그녀에게 다른 선택지가 있을 리 없었다.

우연은 감사한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원피스를 다시 여미고 단추까지 제대로 채운 뒤, 우연은 문밖으로 나왔다. 그제야 아까 자신을 도와준 ‘은인’을 처음으로 또렷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그의 상반신에는 하얀 셔츠 한 벌만 남아 있었고, 소매는 가볍게 걷혀 있어 차갑고 하얀 가느다란 손목이 드러나 있었다.

눈매는 깊고 정교했고, 입가에 스친 미소는 따뜻해서, 품위 있는 집안의 고운 청년 같으면서도 놀랍게도 사람을 편하게 만드는 모순된 느낌이 있었다.

“아까 보니까 엘리베이터가 19층에서 내려오더라고요. 거기 우리 삼촌 개인 구역이에요. 혹시... 삼촌 비서분이신가요?”

질문을 들은 우연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 차 대표님 비서예요.”

“우리 삼촌 비서 하는 거 쉽지 않을 텐데요. 성격이 워낙 차갑잖아요.”

“맞아요! 대표님은 정말...”

‘잠깐. 삼, 삼촌?’

우연은 갑자기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며 눈동자가 순식간에 커졌다.

“잠깐만요! 대표님이 차씨 가문의 외동아들 아니에요? 어떻게 조카가 있어요?!”

남자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비서님 말한 그 외동아들은 저를 말하는 것 같네요. 제 이름은 차현율이에요. 비서님 대표는 저보다 세 살 많은 삼촌 차시헌이죠.”

“...”

우연은 호텔을 어떻게 빠져나왔는지조차 몰랐다.

그때 귀 옆에서 휴대폰 벨이 울렸다. 절친 성지원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야, 드디어 성공했네! 뭐 도와줄 거 있어?”

“있어.”

“뭔데?”

“나... 사후 피임약 하나만 사 줘.”

현실은 우연에게 숨 돌릴 여유조차 주지 않았다.

성지원과의 전화를 끊자마자, 남동생 주치의에게서 급히 연락이 왔다.

“우혁 씨의 이식 수술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보수적 치료는 이제 효과가 없어요. 골수 기증자는 도대체 동의한 겁니까, 아닌 겁니까?”

“동의했어요! 제가 금방 다시 연락할게요!”

사실 단순한 이식 수술이었다면 우연이 이렇게까지 자신을 내던질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골수 적합 검사 결과 그녀와 남동생은 맞지 않았고, 하필이면 외삼촌 아들이 남동생과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

외숙모는 처음에는 당연하다는 듯 거절했다. 그러다가도 너무 매정해 보이기는 싫었는지 선을 확 넘는 금액을 내걸었다.

무려 16억.

아들이 골수 기증을 하면 분명히 몸에 영향이 갈 테니, 그 돈은 ‘보상’이라는 이유였다. 앞으로 아들이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사는 데 문제가 없도록 해 줘야 한다는 식이었다.

우연이 2억도 못 마련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던 외숙모는 계좌에 10억이 찍힌 순간 그대로 얼어붙었다.

“너, 너 이 돈... 혹시 불법으로 번 거 아니지?”

“그건 신경 쓰지 마세요. 어쨌든 그쪽으로 피해 갈 일은 없을 거예요. 빨리 사촌오빠 병원에 보내서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기증 전 준비부터 하게 해 주세요. 남은 6억은 수술 끝나고 바로 드릴게요.”

잠시 망설이던 외숙모가 입을 열었다.

“좋아. 하지만 미리 말해 둘게. 이 돈 받은 이상, 우리 아들이 골수는 줄 거고... 나중에 무슨 일이 생겨도 나는 절대 이 돈 돌려달라는 소리는 안 듣고 싶어.”

“네.”

통화가 끊겼다.

우연은 길게 내려앉은 속눈썹을 떨며 시선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차씨 가문과 맺은 계약서를 다시 확인하고, 이미 바닥나 버린 통장 잔액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녀의 앞에 놓인 길은 단 두 개뿐이었다.

하나는 천문학적인 위약금을 물어내는 것.

돈이 없다면 차씨 가문은 그녀를 사기 혐의로 고소할 것이고, 그녀는 감옥에 가게 된다. 그러면 중병을 앓는 남동생은 병원에 홀로 버려질 것이다.

또 다른 하나는...

차씨 가문과의 약속을 계속 지키는 것.

다만 목표를 바꿔 차현율의 ‘씨’를 훔치는 쪽으로.

‘그것도 차시헌의 눈앞에서.’

그래도 다행인 것은 차시헌은 원래도 차갑고 무심하다는 점이었다.

반년 동안 붙어 일하면서 우연이 별의별 방법을 다 써 봤지만, 그는 언제나 절제된 태도를 유지하며 단 한 번도 선을 넘지 않았다.

만약 지금처럼 시간이 급박하지 않았다면, 우연이 벼랑 끝에 몰려 무리하게 들이받지 않았다면, 그런 일은 애초에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차시헌은 그녀에게 어떤 감정도 없었다.

그래서...

차시헌도 아마, 자신에게 걸었던 그 수작을 조카에게 한 번 더 쓴다 해도 별로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

우연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차시헌은 눈을 떴다.

숙취 때문에 머리가 지끈거려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눈을 뜨고 주변을 둘러보니, 시야에 들어오는 것은 난장판에 가까운 어질러진 방뿐이었다.

그러자 머릿속의 흐릿한 기억 조각이 하나씩 맞춰지기 시작했다. 눈가를 붉힌 여자가 손바닥으로 그의 가슴을 밀어내며 애원하던 그 떨림을...

“저 진짜 더는 안 돼요...”

허리를 단단히 감아 붙잡으며 그를 놓아주지 않던 목소리도 있다.

“가지 마요, 나는 당신이 필요해요!”

생각하면 할수록 차시헌의 단정한 얼굴은 점점 더 굳어 갔다. 마지막에는 먹물을 들이부은 것처럼 새까맣게 변했다.

그는 손을 뻗어 잠옷을 집어 들고 어깨에 걸쳤다.

막 침대에서 내려오려는 순간, 새하얀 침대 시트 위에 선명한 붉은 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

똑똑.

호텔 방문이 두드려졌다.

차시헌은 시선을 거두고 문 쪽으로 걸어가 방 안의 난장판을 등으로 가렸다.

“삼촌, 이 시간쯤이면 깨셨을 것 같아서요.”

“그래.”

태어날 때부터 공간의 온도를 다르게 만드는 듯한 차가운 기운이었다. 앞에서 환하게 웃는 차현율과는 분위기 차이가 너무도 분명했다.

“무슨 일 있냐?”

“있죠, 그럼요!”

차현율은 이어질 말을 잠시 삼키더니, 눈빛부터 먼저 십 대 소년처럼 수줍게 물들었다.

“이번에 제가 해외에서 돌아온 김에 하얀 그룹에서 정식으로 일하려고요. 그래서... 삼촌한테 부탁드릴 사람이 한 명 있어요.”

차시헌은 아무런 반응도 없이 마른침만 삼켰다.

“누구.”

“삼촌 비서, 우연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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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남자의 틈에서   제3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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