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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Penulis: 명가율
우연은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상황이 어떤지 이미 감이 왔다.

“삼촌? 저... 저랑 우 비서는...”

우연은 차현율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차시헌은 미간을 찌푸린 채 통증 때문에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우연을 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오직 차현율의 손에 들린 약에 꽂혀 있었다.

그 약을, 차시헌은 알아봤다. 바로 방금 1분 전에 자기 비서가 안 가져왔다고 말한 그 약이었다.

시간이 갑자기 얼어붙은 듯 정지했다.

몇 초 후, 차시헌은 곧바로 돌아서 걸어가 버렸다. 위가 찢어질 듯 아파도 그의 걸음은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상황을 눈치챈 차현율이 뒤에서 연달아 외쳤다.

“삼촌! 삼촌, 잠깐만요!”

우연도 자신이 큰일을 저질렀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차씨 가문과의 계약이 떠올랐고, 병원 침대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동생이 떠올랐다. 그러니 지금은 목표가 먼저였다.

“차 팀장님, 약 먼저 드세요! 제가 차 대표님을 보고 올게요.”

“네, 얼른 가요! 우리 삼촌 위장병이 저보다 훨씬 심해요. 꼭 병원 가시라고 말씀드려야 해요!”

우연은 고개를 끄덕이고 차시헌이 떠난 방향으로 달려갔다.

사실 그의 위장병이 어느 정도인지, 우연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아니었으면... 이렇게 늘 그의 위장약을 챙겨 다니고 있을 리가 없었다.

...

“차 대표님! 대표님, 잠깐만요!”

차시헌의 다리는 너무 길었다.

통증 때문에 거의 버티지 못하는 상황인데도, 우연은 뛰다시피 해야 겨우 따라잡을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저택이 충분히 크고 길도 충분히 길다는 점이었다. 아니었으면 이미 그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대표님, 제가 구급차 부를게요! 얼굴이 너무 창백하세요!”

우연은 몇 마디를 연달아 외쳤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하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우연은 몇 걸음 더 뛰어 그의 앞을 막아섰다. 두 손을 확 뻗어서 말이다.

“비켜.”

차시헌의 목소리는 차가웠고, 눈빛에는 온기가 하나도 없었다.

“지금 아프시잖아요! 이렇게 버틴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에요, 빨리 병원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손목이 갑자기 꽉 잡혔다.

다음 순간, 그녀는 긴 회랑의 나무 기둥에 그대로 밀렸다.

그는 몸을 기울여 바짝 다가왔다. 그의 거칠고 불규칙한 숨이 느껴졌다. 화가 점점 커져가는 것도 느껴졌다.

“차, 차 대표님...”

“현율이 좋아해?”

짧은 한마디가 심장을 그대로 꿰뚫었다.

우연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럼 왜 그놈이 나보다 더 중요해?”

우연은 약을 안 가져왔다고 거짓말까지 하면서 차현율에게 약을 줬다. 지난 반년 동안 우연이 들고 다니는 모든 약은 전부 그의 것이었는데 말이다.

이번에는 정말 크게 화가 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조금이라도 대답을 잘못하면 내일 바로 그룹에서 짐 싸게 생겼다.

머리가 복잡하게 뒤엉키던 순간 다행히 문득 성지원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어떤 남자든 여자가 자기에게 의지하고 약해 보이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약해질수록 그들은 화를 덜 내고 오히려 여자의 실수를 합리화해 주려고 한다.

그 순간, 우연은 해답을 찾았다.

그녀는 먼저 고개를 숙여 감정을 다듬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눈가에는 이미 살짝 젖은 빛이 깃들어 있었다.

“대표님, 저는 반년 동안이나 계속 대표님 뒤만 쫓아다녔어요. 그런데도 단 한 번도 저한테 반응을 안 주셨죠. 저도 알아요. 제가 감히 바라면 안 되는 거라는 거. 저랑 대표님 사이에는 차이가 너무 크니까요.”

“...”

“그래서... 지금은 애써 제 감정을 누르고 있어요. 자꾸 대표님 주변에만 붙어 있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들도 만나 보려고 해요. 그렇게 하면 제가 덜 아플 것 같고, 대표님이 저를 더 싫어하게 되는 일도 줄어들 것 같아서요.”

“...”

“예전에는 제가 좀 어리석었어요. 어떻게 감히 대표님이랑...”

말을 이어가다가 그녀의 눈에서 진짜로 눈물이 두 방울 떨어졌다.

“걱정하지 마세요. 이제는 절대 그런 마음 안 가질게요. 앞으로는 제 감정도 내려놓고, 그냥 비서로서의 일만 제대로 할게요. 읍...”

말이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우연의 입술이 뜨겁게 덮혔다.

차시헌이 그대로 키스해 버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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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남자의 틈에서   제30화

    “차, 차 대표님...?”“자리 옮기고 싶어?”그 순간 우연의 머릿속은 태엽 끊어진 시계처럼 완전히 멈춰 버렸다.목구멍이 꽉 막힌 것처럼 조여 와서 고개를 끄덕여야 할지 저어야 할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차시헌의 검은 눈동자는 깊은 구렁텅이 같았다. 우연만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지만 단 한 마디도 더하지 않았다.거의 1분쯤, 숨 막히는 침묵이 흘렀다.그리고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나가.”...그날 이후, 우연과 차시헌은 냉전 상태에 돌입했다.정확히 말하면 그가 일방적으로 차갑게 선을 긋고, 그녀는 그 이유를 전혀 모르는 채 멍해 있는 상태였다.오후에 자리 얘기가 나온 뒤로, 차시헌은 단 한 번도 우연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심지어 주주 회의 때도 필요한 자료를 가져오라고 부를 때 평소처럼 대표 비서를 찾지 않고, 프로젝트 보조를 따로 불러 보냈다.겨우겨우 퇴근 시간이 되었을 때쯤, 우연은 ‘집에 가면 눈치라도 살짝 한번 봐야겠다’고 생각했다.그런데 회사를 나와 지하철을 타고 저택에 도착해 문을 열자마자, 이미 식탁 위에는 저녁상이 차려져 있었다.그가 먹고 난 건지, 자기 몫까지 남겨 둔 건지, 그런 건 알 수 없었다. 당사자는 이미 서재로 들어가 버린 뒤였다.무엇보다 우연은 오늘 하루 양심에 걸리는 일을 한 상태라 마음이 완전히 편치 않았다.심장이 괜히 덜컥거려서 발소리까지 죽여 가며 서재 문 앞에 가 귀를 대 보았다.‘...음.’지금은 화상 회의 중인 것 같았다.해외랑 국내는 시차가 있으니, 밤에야 맞춰서 이야기할 수 있는 일들이 분명 있었다.우연은 한숨을 쉬고 다시 식탁으로 돌아갔다.“여자 마음은 알기 어렵다더니, 남자 마음이 훨씬 더 모르겠네 진짜...”그녀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의자를 빼고 앉았다. 막 젓가락을 들려는 순간, 휴대폰에서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카톡 알림이었다.[우 비서님, 이거 비서님 머리핀 맞죠?]그 아래에는 사진이 하나, 보낸 사람은 차현율이었다.우연은 사진을 보자마자 허겁지겁 답장을 쳤다.

  • 두 남자의 틈에서   제29화

    “그럼 그 비서가 동의만 하면 나를 네 비서로 써 주겠다는 거네?”임나정은 슬쩍 말을 바꾸며 스스로에게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 보려고 했다.차시헌을 공략하는 일이 쉽지 않은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여비서를 설득하는 일이라면 그렇게까지 어려운 싸움은 아닐지도 모른다. 결국 돈을 좀 더 쓰는 문제일 뿐이니까.그녀는 이미 상상까지 해 봤다. 차시헌의 곁에 있는 여자라면, 누구든 그에게 마음이 안 갈 수가 없을 것이다.하지만 곧 깨닫게 될 것이다. 차시헌은 일 말고는 그 누구에게도 다른 감정을 나눠 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그렇다면 지금처럼 자기 손으로 건네는 돈까지 챙기고 물러날 수 있다면? 그 정도면 충분히 설득 가능하다고 생각했다.차시헌이 막 입을 열려고 한 순간, 사무실 바깥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 저예요.”소리만 들어도 누군지 알 수 있었다. 잠깐 쉰 뒤 차시헌에게 서류를 가져온 우연이었다.“들어와.”대표의 목소리가 들리자, 우연은 문을 열고 들어가며 언제나처럼 먼저 보고했다.“대표님, 요청하신 실사 자료 전부 다... 찾았습니다.”말이 중간에 끊긴 건, 대표실 안에 다른 사람이 있는 걸 봤기 때문이다.여자였다.우연이 이 상황에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애초에 차시헌 주변에는 여자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임나정 역시 우연을 곧바로 눈여겨봤다. 차시헌이 입을 떼기도 전에 그녀가 먼저 말을 건넸다.“그쪽이 시헌이 비서죠?”‘대표님을 뭐라고 부른 거지? 시헌이?’호칭이 꽤 가깝게 들렸다.우연은 머릿속으로 순식간에 온갖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 느낌을 받았지만, 겉으로는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저는 차 대표님 비서예요. 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임나정은 우연에게로 몇 걸음 다가왔다.목소리는 부드럽고 당당했고, 한눈에 봐도 차시헌과 비슷한 세계에 사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풍겼다. 상류층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배어 있었다.“저는 대표님과 같은 학교를 나왔어요. 곧 하얀 그룹에서 일하게 될 텐데,

  • 두 남자의 틈에서   제28화

    “핑계야! 이건 무조건 핑계지!”진원호는 답답하다는 듯 이를 꽉 물었다.“시헌아, 나정이 좀 더 잘 봐. 내가 장담하는데, 세상에 나정이보다 예쁜 여자애 또 찾기 힘들걸? 진짜 안 만날 거야?”차시헌은 말이 안 나왔다. 그리고 몇 걸음 뒤로 물러나 거리를 두더니 담담하게 말했다.“너 한가하게 아무나 엮고 다니는 거 보니까, 아저씨한테 전화라도 해야겠다.”그 말을 듣자마자 진원호는 급히 고개를 저었다.“야야야, 그러지 마! 나 그냥 장난친 거잖아. 넌 맨날 너무 진지해서 문제라니까.”이 이상 뭐라 했다가는 진짜로 전화할 것 같았다.그는 더 떠들 용기가 없어 황급히 차시헌을 다시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임나정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두 사람 일 얘기도 해야 할 거 아니야. 난 먼저 간다? 저쪽에서 친구들이 술 한잔하자고 불러.”임나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응, 알겠어. 술 마시면 운전은 하지 말고.”“걱정하지 마. 나 교통법규 제일 잘 지키는 사람이야!”그녀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흘리다가, 이내 시선을 참지 못하고 다시 차시헌 쪽으로 돌렸다.역시 몇 년이 지나도 잊을 수 없었던 그 사람이었다. 그가 눈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심장 박동이 자기 마음대로가 되지 않았다.차시헌은 대표실 문을 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들어와.”임나정은 그 뒤를 따라 들어갔다. 그러면서도 일부러 그의 책상 위를 한 번 더 훑어보았다. 깔끔하고 정돈된 책상. 그 위에는 여자 사진도, 누군가와 함께 찍은 사진도 한 장 없었다.그래서 어젯밤에 차시헌이 보낸 그 문자도, 진원호 말처럼 사실은 이성 상대와 어울리는 게 서툴러서 얼버무리려고 한 거짓말이었을 거라고 임나정은 생각했다.하지만 괜찮았다.임나정은 애초에 차시헌을 좋아하는 일이 쉬운 길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쉽게 마음을 내주는 타입이 아니었다.오히려 쉽사리 공략되는 남자는 그녀의 취향이 아니었다. 자기와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은 차시헌 뿐이라고 믿고 있었다.“이 일은 아직 인사팀에

  • 두 남자의 틈에서   제27화

    우연은 몸을 돌려 직접 의자를 하나 끌어와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차현율과 마주 보며 손을 한 번 살짝 흔들었다.“사람마다 자기 삶의 방식이 있는 거죠. 결혼 안 해도 아무 문제 없어요.”“그럼 비서님은요?”차현율이 자연스럽게 젓가락을 그녀 쪽으로 내밀었다.우연은 그것을 받아 들고 웃었다.“웃기게 들릴 수도 있는데, 저는 지금은 일만 하고 싶어요. 다른 건 아직 생각해 본 적도 없고요. 그래도 굳이 지금 상황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자면, 저도 아마 결혼은 안 할 것 같아요.”이 말은 그를 맞춰 주려고 하는 빈말이 아니었다.어차피 남동생이 골수 이식을 받는다고 해도, 의사들은 언제든 재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미리 말했다.보수적으로 치료를 이어 가든, 계속 골수 기증자를 찾든, 둘 다 만만치 않은 비용이 드는 일이었다.솔직히 말해서,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여자친구의 남동생까지 같이 책임지고 떠안아 줄 남자가 얼마나 될까?나중에는 분명히 자기 그녀가 동생만 퍼붓는 여자라는 말이나 들을 것이다.우연은 누군가를 그런 수렁으로 끌어들이고 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남동생을 포기할 수도 없었다.그러니 사랑이니, 결혼이니 하는 것들은 지금의 그녀에게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이야기일 뿐이었다.사는 것 자체가 너무 벅차서 그런 걸 꿈꿀 여유가 없었다.“비서님은... 혹시 개인적으로 무슨 사정이 있어요? 말해도 돼요. 제가 도울 수 있는 거라면 기꺼이 도와드리고 싶어요.”차현율의 말은 꽤 진심이 느껴졌다.그렇다고 해서 우연이 대뜸 입을 열어 ‘저 도와서 임신하게 해 주세요’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그랬다가는 아마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열어 주며 나가라고 할 것이다.우연은 고개를 숙이고 반찬을 집으면서 겉으로만 웃는 표정을 지었다.“아니에요, 저 혼자 해결할 수 있어요. 팀장님이 도와주신 것만 해도 이미 충분해요.”“비서님은 내가 돌아와서 처음 사귄 친구거든요.”“그럼 영광이네요!”그 말에 차현율도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젓가락을 들어 함께

  • 두 남자의 틈에서   제26화

    [차현율:걱정하지 마요. 내가 삼촌한테 말 안 하면 되는 거잖아요.]우연은 이런 ‘뜻밖의 수확’까지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이 상황에서 또 거절하면 하늘이 자기에게 던져 준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꼴이었다.그녀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차현율에게 OK 이모티콘을 보냈다.아침 회의가 끝난 뒤, 차시헌은 몇몇 주주들과 함께 해외 지사 관련 미팅을 하러 나갔다. 우연은 손에 쥔 업무를 얼추 정리하고 나서 성지원에게 전화를 걸었다.“혁이는 어때? 오늘도 다녀왔어?”“걱정하지 마. 네가 평일에 일하는 동안은 매일 갈 거야! 오늘은 담당 주치의 붙잡고 골수 이식 얘기도 따로 물어봤어. 지금까지는 네 외삼촌네 가족도 꽤 협조적인 편이더라.”성지원은 거기서 한마디를 덧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역시 돈을 받으니 태도가 다르더라니까.”우연은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며 웃는 흉내만 냈다. 더는 외삼촌 집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았다.“나는 그냥, 혁이만 나아졌으면 좋겠어.”성지원이 한숨을 내쉬었다.“맞다, 네 일은 좀 진전 있어? 차현율 쪽에서는 기회 좀 잡았어?”40억의 배상금이라 성지원은 친구 대신 손에 땀을 쥐고 있었다.“우리 둘 지금 정도면 그냥 친구? 뭐, 그 정도야. 그리고... 이번 달 배란기는 이미 지났어. 지금 당장 예전 방식 그대로 따라 한다고 해도 소용없어.”“흠, 그럼 차시헌 쪽은?”이 말이 나오자, 우연은 머리가 지끈거렸다.“그 사람 눈앞에서 현율이한테 다가가려고 하니까, 마치 바람피우는 아내가 남편 몰래 애인 만나러 다니는 기분이야. 들킬까 봐 계속 쫄면서.”성지원은 그 말에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야, 근데 진짜 솔직히 말해서 차시헌은 잘생긴 데다가 하얀 그룹 대표야. 지금은 너랑 책임지고 정식으로 만나겠다고까지 하는데, 진짜로 하나도 안 흔들려?”어쨌든 눈앞에 생생한 미남이 있다. 게다가 돈도 많고, 능력까지 있지 않은가.“전혀.”우연의 대답은 단호하면서도 진지했다.“그 사람은 하늘 위 달이고, 나는 땅바닥 진흙이야.

  • 두 남자의 틈에서   제25화

    하룻밤 그렇게 쏟아낸 결과...다음 날 출근한 우연은 마치 사람한테서 기운이 몽땅 빨려 나간 것 같았다.허리는 쑤시고, 다리는 살살 저리고,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반면 아침 회의 자리의 차시헌은, 딱 봐도 충분히 만족하고 푹 쉰 사람 같았다. 말소리까지 평소보다 더 낮고 힘 있게 울렸다.임원들의 업무 보고가 끝날 때쯤, 그는 검은 눈동자를 무심히 돌리다가 우연 쪽을 힐끗 보고는 노트북으로 사내 메신저를 열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차시헌:졸리면 내 휴게실 가서 좀 자.]곧바로 우연의 모니터 화면 구석에 그 알림창이 톡 하고 떠올랐다.우연은 반사적으로 주변부터 한번 훑어봤다. 다행히 아무도 자기 쪽을 보지 않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조심스럽게 창을 열고 답장을 쳤다.[우연:괜찮아요, 대표님. 그러면 안 좋을 것 같아요.]차시헌의 휴게실은 대표실 안쪽에 따로 있는 공간이라, 그가 허락하지 않으면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그렇지만...문제는 차시헌의 눈에 차현율은 핏줄인 조카일 뿐, 남이 아니라는 거였다.혹시라도 자기가 잠깐 눈 좀 붙이고 나오다가, 대표의 개인 휴게실 문을 열고 나오는 그 순간, 마침 바깥에 차현율이 서 있기라도 하면? 그건 진짜 지옥 난이도 참사였다. 뭐라고 둘러댈지 상상도 하기 싫었다.다행히 차시헌도 더 고집을 부리지는 않았고 그냥 그녀의 뜻에 맡겼다.우연은 이제 대화창을 끄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차현율에게서 사내 메시지가 하나 더 날아왔다.[차현율:어제 삼촌이 비서님 부른 거, 일 때문에 부른 거예요? 아니면 개인적인 일이에요?]이건 어떻게든 한 번은 설명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던 터라, 우연도 모른 척 넘기지는 않았다.[우연:일 때문에요. 저보고 야근하라고 하셨어요.][차현율:그럴 줄 알았어요! 어제 삼촌 얼굴 보니까, 비서님이 잘못해서 화가 났거나, 아니면 회사 일에 꽤 큰 문제 생겼거나 둘 중 하나 같았거든요.]그 문자를 보는 순간, 우연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차현율 쪽을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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