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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Author: 희나리K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5-29 01:33:46

뒷문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태하가 은하를 향해 다가왔다. 

“괜찮아? 보건실 데려다 줘?”

목소리엔 왠지 모를 걱정이 담겨 있었고, 눈빛에는 분명한 진심이 서려 있었다. 이현은 그 장면을 바라보면서, 느릿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 뒤에 감춰진 감정은 어디까지가 장난이고, 어디까지가 흥미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아니… 나… 먼저 가봐야겠어. 담임 선생님께 말 좀 전해줘.”

그 말과 함께, 은하는 가방을 들고 자리를 피하려는 듯 행동을 취했다. 하지만 태하는 쉽게 수긍하지 않는 표정이었다.

“은하야. 보건실 들렸다가 가.”

“괜찮아….”

목소리는 단호했다. 더 이상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가방을 들고 그들을 지나쳐 문밖으로 나가버렸고, 순간 교실 안에는 짧은 정적이 흘렀다.

태하와 민희는 은하가 나간 방향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서 있었다. 

반면에 이현은 누구보다 이 상황이 흥미롭다는 듯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은 이내, 창문 너머 천천히 운동장을 가로지르는 은하의 뒷모습을 따라가고 있었다.

순간 은하의 걸음이 비틀거렸다. 잠시 균형을 잃는 듯, 작게 흔들리는 모습이였다. 

“…….”

이현은 장난기 어린 미소도, 가벼운 태도도 없이 그 흔들리는 뒷모습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은하가… 혹시 몸이 안 좋은 걸까?”

창밖을 보던 민희가 걱정스럽게 중얼거렸지만, 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이현을 향해 날이 선 말을 내뱉었다.

 

“백이현. 사람 좀 장난감처럼 여기지 마.”

이현은 아무런 대꾸 없이 창밖으로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그 사이, 참아왔던 증상에 허덕이던 은하는 힙겹게 정문을 향하며 다급히 우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 화면에 뜨는 동생의 이름. 그 즉시 하던 일을 멈추고, 다급히 전화를 받은 우주. 

“은하야, 학교 끝났어?”

“…오…빠.”

“무슨 일이야? 너 어디야.”

“나 또 심장이 두근거려. 귀가… 먹먹해….”

“약은, 약 먹었어?”

“먹었어… 근데도….”

“은하야, 일단 숨부터 깊이 들이마셔. 지금 어디야? 오빠가 갈게.”

우주는 재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이미 가운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고 있었다. 

하지만 은하는, 이미 시야가 흐려지고 있었다. 마치 세상이 기울어지는 것만 같았다. 자신이 서있는 이 곳이 학교 운동장이라는 사실조차 생각나지 않았다.

“오빠, 나…”

결국 핸드폰을 쥔 채 천천히 자리에 주저앉았다. 주변의 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심장은 무섭도록 빠르게 뛰었고, 숨을 쉬어도 공기가 목 끝에서 탁 막혀버리는 느낌이었다.

귀는 계속해서 먹먹했다. 물속에 잠긴듯한 소리와 이명, 그리고 어지러움. 마치 어둡고 드넓은 세상에 혼자 남겨진 자신만 고립된 것 같은 감각이 몰려들었다.

“은하야? 은하야!!”

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은하는 더 이상 오빠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손끝에서 힘이 빠졌다. 떨어지는 핸드폰 화면 속, 여전히 깜빡이는 통화 중 표시와 함께 그대로 운동장 한 가운데에 쓰러져버렸다.

몇몇 학생들이 운동장을 지나가던 중, 그 모습을 목격했다. 다급한 목소리들이 은하를 에워쌌다.

“야, 누구 좀 불러!”

“보건실… 아니, 선생님한테 빨리 가자!”

소란스러운 웅성거림 속에서도, 점점 의식을 잃어갔다. 몸이 무거웠다. 눈꺼풀이 감겼다. 

그리고 그 모습을 이현과 태하, 민희도 지켜보고 있었다. 

“은하야!”

민희가 가장 먼저 나서서 운동장으로 뛰어나갔다. 태하도 뒤따라가며 빠르게 계단을 내려갔다. 그들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움과 걱정이 동시에 스쳐 지나갔다.

이미 운동장 한 가운데에 쓰러져 있는 은하. 그 주위로 몇몇 학생들이 계속해서 웅성거리며 몰려들었다.

이현은 그 정신없는 소란 속에서도 제자리에 굳은 듯 서 있었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려 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머릿속에는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너무 이상했다.

“…뭐야. 도대체?”

짧게 중얼거리며,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천천히 교실 문을 열었다. 

***

운동장에 도착한 민희가 조심스럽게 그녀의 어깨를 흔들었지만, 은하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때, 한 학생이 은하의 핸드폰을 통해 우주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네. 여기 학교에요. 네. 네. 알겠습니다.”

뒤따라온 태하가 은하의 얼굴을 살폈다. 얼굴은 이미 식은땀 범벅이 되어 있었다. 

“왜 이래…? 식은땀이 무슨…”

상황이 심각해보였다. 단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은하를 조심스럽게 안아 들었다. 

학생들은 눈 앞에서 벌어진 상황에 술렁였지만, 태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빠르게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잠깐만.”

한 학생이 다가와 은하의 핸드폰을 민희에게 건넸다.

“얘 오빠가 데리러 온대. 일단 보건실에 있으라고 하셨어.”

“아, 정말? 고마워.”

민희가 안도하며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그 모든 상황을 멀리서 조용히 지켜보단 한 사람. 백이현.

그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태하의 품에 안긴 은하에게서 시선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하아, 진짜 재밌어지네.”

나직이 중얼거리며, 그들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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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제2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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