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처 결혼식 깽판기

전처 결혼식 깽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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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 않을 때 그는 그녀를 곁에 두고 온갖 고통을 견디게 했다. 사랑에 빠진 후 그가 선택한 건 결국 그녀를 놓아주는 것. ... 천무진을 위해 꿈까지 접고 가정주부가 된 강소안. 결혼 생활 2년 동안 천무진이 아무리 무시해도 강소안은 애달픈 외사랑을 바쳤다. 그러다가 어느 날 천무진의 외도 영상을 보게 되는데... 영상 속 그가 다른 여자를 바라보는 눈빛에 강소안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애틋함이 서려 있었다. 결국 참다못한 강소안이 이혼을 통보했다. 하지만 그녀가 쏟아낸 절규가 천무진의 눈에는 그저 철없는 투정이나 억지에 불과했다. 천무진은 강소안이 얼마 못 가 제 발로 기어들어 와 다시 매달릴 것이라고 자만했다. 강소안이 마침내 환하게 웃었다. ‘바람난 남자 따위 필요 없어. 이제 뒤돌아보지 않고 온전히 나만의 아름다운 삶을 살 거야.’ 차갑게 이혼 서류를 내던진 뒤 천무진의 경멸을 비웃듯 커리어를 쌓아가면서 보란 듯이 가치를 증명해 보였다. 드디어 유명 디자이너가 된 강소안. 억만장자가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프러포즈했다. 강소안의 재혼이 코앞으로 다가와서야 천무진이 무너져 내렸다. 미친 사람처럼 식장으로 쳐들어가 깽판을 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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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 1

제1화

“한 달에 잠자리 값으로 1억씩이나 받아 가면서 대체 뭐가 불만인 건데?”

적막이 내려앉은 밤, 남자가 나른한 자세로 소파에 기대앉은 채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그의 무심한 태도에 소파 옆에 서 있는 여자에 대한 경멸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순간 강소안은 머리가 윙 했고 가슴 속 깊이 억눌러왔던 서러움이 단숨에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1억? 잠자리 값?”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강소안이 남자의 차가운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

“천무진, 난 당신한테 시집을 온 거지, 몸을 판 게 아니야...”

‘돈 좀 쥐여주고 밤마다 잠자리 시중이나 드는 게 결혼이야? 이게 몸을 파는 거랑 뭐가 달라? 단지 합법적인 혼인신고서가 있다는 차이일 뿐이지. 당신이 생각하는 결혼이 고작 이런 거였어? 아니다. 당신 눈에 난 그저 이런 대접이나 받을 자격밖에 없는 여자였구나.’

세 시간 전, 강소안이 CCTV 영상 하나를 받았다.

깊은 밤, 섹시한 옷차림의 한 여자가 천무진이 묵고 있는 호텔 스위트룸의 문을 두드렸다.

문이 열리고 천무진이 그 여자를 룸으로 들인 뒤 무려 세 시간이 지나서야 여자가 밖으로 나왔다.

평소 천무진의 잠자리 시간과 엇비슷한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출장 중에 욕구를 풀 도구가 필요했겠거니 생각했다.

2년의 결혼 생활 동안 생리 기간을 제외하고 밤마다 그녀를 품을 정도로 성욕이 강한 남자였으니까.

강소안은 수만 가지 이유를 찾아 스스로를 다독였다. 분명 무슨 사정이 있을 거라고.

오늘은 천무진의 생일이었다. 그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내일 다시 물어보기로 했다.

그녀는 쇼콜라 케이크를 직접 만들었고 늘 그랬듯 생일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다.

지난 2년 동안 생일과 결혼기념일에 항상 강소안이 혼자 설레는 마음으로 이벤트를 준비했다.

원래는 천무진이 낭만과 거리가 먼 사람인 줄 알았다. 은강시에서 가장 큰 호텔을 빌려 회사 부대표인 임효정의 생일을 챙겨준 기사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는 단지 임효정의 웃음을 사려고 전 직원 수십만 명에게 보너스를 줬다. 그리고 수많은 기자 앞에서 임효정에게 수억 원에 달하는 보석을 생일 선물로 주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천무진의 목에 걸린 블랙 한정판 넥타이는 한 시간 전 임효정이 직접 매준 것이었다.

단순히 한 번의 생일 파티와 CCTV 영상만으로는 아무것도 설명할 수 없지만 그 모든 중심에 같은 사람이 있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강소안은 한눈에 알아봤다. 생일 파티에서 꽃처럼 웃으며 천무진과 깊은 눈빛을 주고받던 임효정이 바로 그의 방으로 들어간 여자라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

‘이 모든 게 다 오해일 수도 있잖아.’

강소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진 씨, 출장 때마다 같이 다니는 회사 부대표가 여자라는 걸 왜 한 번도 말 안 했어?”

“회사 일이야. 네가 굳이 알 필요 없는 일이고.”

천무진이 차갑게 대답했다.

강소안이 손수 끓인 해장국을 먹으면서 그녀의 휴대폰에 뜬 임효정의 생일 파티 기사를 보고도 변명 한마디 하지 않았다.

그녀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용기를 냈다.

“여자 부하 직원 생일을 챙겨주는 것도 업무 중 하나야?”

천무진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동자로 강소안을 쳐다봤다.

밤하늘처럼 깊은 그의 눈동자에 비친 그녀의 모습이 지나치게 작고 초라해 보였다. 그가 뿜어내는 불쾌한 기운이 그녀를 집어삼키는 듯했다.

“내 일에 간섭하지 마. 가서 짐 챙겨. 나 출장 가야 하니까.”

천무진의 태도가 무척이나 강압적이었다. 오늘 밤 다른 여자를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게 한 기사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은 건 물론이고 강소안이 더 캐묻지 못하도록 했다.

강소안이 결국 참았던 화를 터뜨렸다.

“우린 부부야. 내가 왜 간섭하면 안 돼? 당신이 그 여자한테 선물한 수억 원짜리 보석, 우리 부부 공동 재산이야. 그 여자한테 쓴 돈을 따져 물을 권리가 있다고.”

“고작 수억 원 쓴 걸 가지고 너한테 일일이 보고해야 해? 너의 친정에서 나한테 수백억을 가져갈 땐 왜 이렇게 따지지 않았어?”

천무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골격이 뚜렷한 얼굴에 서늘한 냉기가 감돌았다.

비록 비밀리에 올린 결혼이었지만 결혼 후 강씨 가문이 천무진에게서 많은 돈을 가져갔다는 걸 강소안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거랑 다르지. 우린 부부야. 그 여자가 나랑 비교가 돼?”

“비교가 안 되는 건 너야.”

천무진의 눈빛에 담긴 경멸이 가시 돋친 칼날이 되어 강소안의 심장을 가차 없이 찔렀다가 다시 뽑히는 듯했다.

“부대표가 올린 실적에 비하면 수억 원은 푼돈이야. 그런데 네가 비교가 된다고 생각해?”

강소안의 심장이 피투성이가 되어 너덜거렸다.

이토록 얼음장처럼 차가운 천무진의 눈빛을 지금까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침대 위에서 강소안을 품고 달콤한 사랑을 속삭이던 남자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렇게 좋으면 그냥 그 여자랑 결혼할 것이지, 왜 나랑 결혼했어?”

강소안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목소리도 살짝 떨렸다.

“날 좋아해서 나랑 결혼한 거 아니었어?”

눈물로 시야가 뿌옇게 흐려진 탓에 천무진의 얼굴도 흐릿해졌다.

길고 깊은 갈색 눈, 오뚝한 콧날, 얇은 입술을 지녔고 넓은 어깨와 좁은 허리를 감싼 블랙 고급 맞춤 슈트를 입고 있었는데 범접할 수 없는 고귀함을 내뿜었다.

결혼 2년 동안 매일 보면서도 볼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외모, 능력, 집안 뭐 하나 빠지는 게 없는 남자였다. 강소안은 그에게서 그 어떤 단점도 찾아내지 못했다.

처음 천무진을 만났을 때 어린 시절 정혼자라는 사실을 알고 첫눈에 반했었다.

천무진이 그녀를 좋아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2년 전, 강씨 가문이 투자 실패로 가세가 급격히 기울자 아버지는 강소안을 돈 많은 늙은이에게 팔아넘기려 했다. 그때 천무진이 나타나 결혼을 이행하겠다고 나섰고 덕분에 강소안은 천씨 가문 안주인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땐 천무진이 그녀를 좋아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었다.

그 여자는 천무진과 나란히 서서 비즈니스 세계를 누볐고 강소안 같은 가정주부가 범접할 수 없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엘리트였다.

사실 강소안도 결혼 전에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앞날이 창창하던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다.

천무진을 위해 기꺼이 꿈을 포기했고 비밀결혼에 동의하여 남편만을 바라보는 아내로 살기로 했던 것이었다.

강소안을 좋아해서 결혼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천무진이 실소를 터뜨리더니 남은 술을 단숨에 들이켜고 위층으로 향했다.

“날 조금도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쯤에서 끝내자. 이혼해, 우리.”

강소안이 눈을 질끈 감고 내뱉었다.

사랑 없는 결혼은 그녀가 원하던 게 아니었다. 천무진이 원래 차가운 사람이라면 참을 수 있지만 그녀에게만 차가운 건 참을 수 없었다.

강소안의 울부짖음이 천무진의 눈엔 그저 억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한 달에 잠자리 값으로 1억 원이나 받으니 그것으로 만족하며 살라고 했다.

그의 눈에 부부란 없었다. 오직 거래만 있을 뿐.

심지어 잠자리 값이라는 말이 얼마나 심한 말인지조차 인지하지 못한 듯 당당하게 강소안을 나무랐다.

“내 말이 틀렸어? 나랑 이혼하면 다시 강씨 가문 큰딸로 돌아가서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강소안, 순진한 생각 좀 버리고 눈치 챙겨.”

“나 사지가 멀쩡해. 강씨 가문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잘 살 수 있어.”

강소안이 눈물을 삼키며 천무진보다 먼저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러고는 구석에 처박아두었던 흰색 캐리어를 꺼내 옷을 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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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한 달에 잠자리 값으로 1억씩이나 받아 가면서 대체 뭐가 불만인 건데?”적막이 내려앉은 밤, 남자가 나른한 자세로 소파에 기대앉은 채 차분한 말투로 말했다. 그의 무심한 태도에 소파 옆에 서 있는 여자에 대한 경멸이 고스란히 묻어났다.순간 강소안은 머리가 윙 했고 가슴 속 깊이 억눌러왔던 서러움이 단숨에 터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1억? 잠자리 값?”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강소안이 남자의 차가운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했다.“천무진, 난 당신한테 시집을 온 거지, 몸을 판 게 아니야...”‘돈 좀 쥐여주고 밤마다 잠자리 시중이나 드는 게 결혼이야? 이게 몸을 파는 거랑 뭐가 달라? 단지 합법적인 혼인신고서가 있다는 차이일 뿐이지. 당신이 생각하는 결혼이 고작 이런 거였어? 아니다. 당신 눈에 난 그저 이런 대접이나 받을 자격밖에 없는 여자였구나.’세 시간 전, 강소안이 CCTV 영상 하나를 받았다.깊은 밤, 섹시한 옷차림의 한 여자가 천무진이 묵고 있는 호텔 스위트룸의 문을 두드렸다.문이 열리고 천무진이 그 여자를 룸으로 들인 뒤 무려 세 시간이 지나서야 여자가 밖으로 나왔다.평소 천무진의 잠자리 시간과 엇비슷한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그저 출장 중에 욕구를 풀 도구가 필요했겠거니 생각했다.2년의 결혼 생활 동안 생리 기간을 제외하고 밤마다 그녀를 품을 정도로 성욕이 강한 남자였으니까.강소안은 수만 가지 이유를 찾아 스스로를 다독였다. 분명 무슨 사정이 있을 거라고.오늘은 천무진의 생일이었다. 그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아 내일 다시 물어보기로 했다.그녀는 쇼콜라 케이크를 직접 만들었고 늘 그랬듯 생일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다.지난 2년 동안 생일과 결혼기념일에 항상 강소안이 혼자 설레는 마음으로 이벤트를 준비했다.원래는 천무진이 낭만과 거리가 먼 사람인 줄 알았다. 은강시에서 가장 큰 호텔을 빌려 회사 부대표인 임효정의 생일을 챙겨준 기사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그는 단지 임효정의 웃음을 사려고 전 직원 수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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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천무진이 시선을 거두고 무미건조한 말투로 답했다.“모르는 사람입니다.”강소안이 찾아왔다고 해서 체면을 세워줄 천무진이 아니었다. 천무진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차가운 기운이 강소안에게 전해졌다.‘모르는 사람’이라는 대답이 날카로운 칼이 되어 강소안의 심장을 쿡쿡 찔렀다.강소안이 정신을 차리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이미 들어온 이상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 레스토랑에 오는 손님들은 대부분 부유하거나 지위가 높은 이들이었다. 여기서 소란을 피워 다른 손님들의 주목을 받게 되면 레스토랑의 명성에 누를 끼칠 것이 뻔했다.그녀는 손가락이 하얗게 될 정도로 치맛자락을 꽉 움켜쥔 채 숨을 깊게 들이마신 뒤 피아노 앞으로 걸어갔다.그들이 요청한 곡이 유명한 피아노곡인 ‘캐논’이었는데 여자에 대한 남자의 찬사와 사랑을 상징하는 곡이었다.강소안이 악보를 한참 동안 응시한 뒤에야 손을 올렸다. 대체 누가 이 곡을 요청했는지는 알지 못했다.그때 외국인 남성이 계속해서 농담을 던졌다.“임 부대표님 같은 여장부를 곁에 두시다니 정말 보물을 얻으셨어요, 대표님.”“맞는 말씀입니다. 부대표가 참 유능한 사람이에요.”천무진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임효정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자 임효정이 시원시원하게 웃으며 말했다.“제가 처음 업계에 발을 들였을 때만 해도 지금처럼 유능하진 않았어요. 다 대표님이 직접 가르쳐주신 덕분이에요.”곡의 전주가 낮아 그들의 대화 소리가 감미로운 음악 소리를 뚫고 강소안의 귀에 고스란히 꽂혔다.악보를 전부 외운 터라 볼 필요가 없었다. 강소안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식탁에 앉은 그들에게 향했다.천무진이 임효정 쪽으로 몸을 기울여 앉아 있었고 손을 임효정의 의자 등받이에 걸치고 있었다.임효정은 유창한 영어로 외국인 남성과 협력 사업에 관해 논의하다가 가끔 고개를 돌려 천무진과 나지막이 대화를 주고받았다.강소안도 영어를 알아들었으나 업무와 관련된 전문 용어까지는 이해하지 못했다.천무진과 임효정의 호흡이 아주 완벽했다.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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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빌딩이 구름을 찌를 듯이 높아 고개를 끝까지 젖혀도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강소안은 목이 다 꺾일 지경이었다.지금까지 운무 그룹에 와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강씨 가문이 천씨 가문에 비할 바가 못 된다는 것쯤은 강소안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막상 거대한 빌딩 앞에 서서 끊임없이 드나드는 수많은 직원을 보고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이건 비할 바가 못 되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비교조차 불가능하다는 것을.지금처럼 몰락한 강씨 가문은 말할 것도 없고 설령 예전의 전성기 시절이라 해도 천씨 가문에 명함조차 내밀지 못했을 것이다.회사에 여직원들이 유독 많았는데 안내 데스크의 직원들도 모두 깔끔한 정장 차림에 정교한 메이크업을 하고 있었다.어쩐지 천무진이 가정주부인 강소안을 무시하더라니, 일하는 환경이 이런데 어찌 무시하지 않겠는가?비록 그녀가 가정주부가 된 게 천무진을 위해서였다고 해도 말이다.강소안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괴감이 밀려와 숨이 턱 막혔다.그녀가 구석진 곳을 찾아 손정후에게 전화를 걸었다.“사모님.”“손 비서님, 저 지금 회사 밑에 왔는데요. 번거로우시겠지만...”강소안은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손정후더러 천무진에게 전해주라고 부탁할 참이었다.하지만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손정후가 그녀의 말을 잘랐다.“제가 지금 회의 중이라서요. 다른 사람을 보낼게요.”“아니 저...”강소안이 뭐라 하려던 그때 전화가 뚝 끊기자 어안이 벙벙해졌다.2분도 채 지나지 않아 손정후의 부하가 내려와 공손한 태도로 그녀를 위층으로 안내했다.“이것 좀 천무진 씨한테 전해주세요.”강소안이 서류와 보온병을 함께 건넸다.“대표님께 전달되는 서류는 저희가 함부로 손댈 권한이 없습니다. 직접 올라가셔서 전해주세요.”부하가 미안한 웃음을 지으며 강소안을 회사 안으로 안내했다. 강소안은 어쩔 수 없이 그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대표실.방금 회의를 마친 천무진이 잔뜩 짜증이 난 얼굴로 미간을 찌푸린 채 마디가 굵은 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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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강소안이 책상 위의 서류를 집어 들어 임효정에게 건네더니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두 장 찍었다.“그럼 이건 부대표님께 맡기겠습니다. 나중에 무슨 문제가 생기더라도 저와는 무관한 일입니다.”온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간 강소안은 임효정과 기 싸움을 벌일 기력이 없었다. 그리고 그럴 자격도 없었다.사랑받는 자는 두려움이 없는 법이다. 하지만 천무진의 눈에 강소안은 그저 하찮고 귀찮은 존재일 뿐이었다.회사 안이 쾌적한 온도를 유지했으나 강소안은 등줄기가 서늘해졌고 심장 한구석에서부터 한기가 걷잡을 수 없이 퍼져 나갔다.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회사 정문을 나섰다. 따스한 햇살이 온몸을 감쌌는데도 지독한 한기는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강소안이 차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거리 한복판에 서서 쓰디쓴 미소를 지었다.어쩌면 그들이 호텔 방을 잡고 밀회를 즐기는 건 어쩌다 한 번일 뿐이고 회사 휴게실에서 몸을 섞는 것이야말로 일상일지도 모른다.천무진이 이미 임효정과 잤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지 않았던가? 설령 그보다 더 확실하고 충격적인 증거를 두 눈으로 목격한다 해도 이렇게 또다시 아파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하지만 지금 느끼는 이 비참함은 요 며칠 천무진이 그녀를 사랑하지 않고 임효정과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곱씹을 때마다 느꼈던 고통보다 훨씬 더 맹렬했고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다.그때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폰 벨 소리가 슬픔의 늪에 빠져 있던 강소안을 현실로 끄집어냈다. 강소안이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강소안, 지금 당장 집으로 와.”아버지 강성일의 목소리에 거역할 수 없는 단호함이 배어 있었다.강소안이 오후에 피아노 연주를 하러 레스토랑에 갈 예정이었고 오늘 토요일이라 면접도 없었다.어차피 할 일이 없어 혼자 있으면 숨 막히는 감정 속에 무의미하게 빠져들기만 할 것이라 흔쾌히 대답했다.“알겠어요.”사실 속으로는 그다지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천무진은 회의를 미루기는커녕 오히려 앞당겨버렸다.가만히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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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강소안이 질책 섞인 말투로 말하면서 나무라는 눈빛으로 그녀를 쏘아보는 어머니를 보며 물었다.“그럼 일이 천무진과 관련이 있다면요?”“철없는 소리 좀 하지 마.”장모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훈계하는 말투로 말했다.“엄마가 몇 번이나 말했어. 남자가 밖에서 일하는 게 힘드니 헤아리고 이해해줘야 한다고 했지? 걸핏하면 성질부리고 억지 부리면 안 돼.”지난 2년 동안 천무진이 강소안에게 보인 무관심과 냉대에 대해 강소안도 원망해 본 적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불만을 토로할 때마다 장모연이 늘 이런 말로 입을 막아버렸다.그럼에도 강소안이 2년을 묵묵히 버틸 수 있었던 건 천무진에게 첫눈에 반했던 마음과 갈수록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가는 마음 때문이었다.만약 천무진이 바람을 피우지 않았더라면 강소안도 저도 모르게 장모연의 영향을 받아 장모연처럼 결혼 생활에서 한없이 비굴해지진 않았을까?장모연이 쉰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였지만 관리를 잘해 삼십 대처럼 보였다. 젊어 보이는 데다가 몸매도 좋아서 재벌가 사모님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밖에서의 얘기였다. 집안에서 장모연은 가장 발언권이 없었고 늘 남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처지였다.강소안은 남들 앞에서는 화려하지만 뒤에서는 고개조차 들지 못하는 어머니의 삶이 조금도 부럽지 않았다.“집에 가서 무진이한테 잘못했다고 해. 앞으로 다시는 기분 상하게 만들지 말고.”장모연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딸의 미간에 옅은 슬픔이 서린 것을 보자 답답하고 한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어쨌든 배 아파 낳은 자식이라 장모연도 좋은 말로 타일렀다.“여자는 남자한테 의지해서 살아가야 해. 네가 지금 좋은 거 먹고 좋은 옷 입고 호강하는 게 다 무진이 덕분 아니니...”장모연의 말에 강소안은 천무진의 경멸 어린 눈빛이 떠올랐다.“한 달에 용돈 1억씩 받으면서 매일 하는 일이라곤 화초나 가꾸고 나랑 자는 것뿐인데 이 정도 대우면 충분하지 않아?”그 말을 떠올릴 때면 강소안은 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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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동구의 한 레스토랑.레스토랑 정중앙에 매달린 화려한 조명이 실내를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천무진과 임효정이 사각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있었다. 종업원이 보르도산 레드 와인을 따서 디캔터에 부었다.적갈색 액체가 불빛을 받아 반짝였고 빛줄기 하나가 천무진의 날렵한 얼굴 위로 절묘하게 떨어졌다.각진 얼굴에 여유로운 기색이 묻어났고 가늘게 뜬 천무진의 긴 눈이 멀지 않은 곳에 놓인 피아노를 향해 있었다.“이상하네. 오늘 밤엔 피아노 치는 사람이 왜 없지?”임효정이 머스터드 색상의 원피스 차림에 웨이브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있었다. 딱딱한 정장 차림일 때보다 훨씬 더 가녀리고 여성스러워 보였다.천무진이 눈썹을 살짝 까딱였다.“글쎄.”저곳에 앉아 피아노를 치며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꼴을 평생 곱게만 자라온 강소안이 견뎌낼 리 만무했다. 심지어 강소안이 지금쯤 이미 집으로 돌아갔을지도 모른다고 짐작했다.눈치 빠른 강소안은 천무진의 일을 방해하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 오전에도 그가 바쁜 걸 알고 눈치껏 자리를 비켜준 것이라 생각했다.“제가 요리 하나 특별히 서비스로 드릴게요. 두 분한테 아주 딱 어울리는 요리인 것 같아서요.”소윤지의 당돌하고 거침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소윤지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요리 한 접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면서 임효정을 힐끗거렸다.“잡탕?”임효정이 화들짝 놀랐다.‘레스토랑에 웬 잡탕?’“잡탕도 요리예요.”소윤지가 싱긋 웃으며 시선을 거두었다.“잡것들한테 잘 어울리는 요리.”주변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차갑게 얼어붙었다.소윤지는 스스로 겁이 없다고 자부하는 편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천무진을 건드릴 때마다 등골이 오싹해졌다.그저 강소안을 대신해 나선 것일 뿐 천무진의 기를 확실하게 눌러버릴 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숨 막히는 정적이 흐른 뒤 소윤지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이 턱 막혀 망설임 없이 자리를 떠났다.임효정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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