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Chapter 91 - Chapter 100

100 Chapters

제91화

지금 이 기묘하게 고요한 사무실 안에서 트레이딩본부 7팀의 모든 시선은 한 방향으로 쏠려 있었다.겉으로는 각자 모니터에 집중하는 척, 혹은 옆자리와 낮은 목소리로 담소를 나누는 척하고 있었지만 그들의 관심 한 조각은 어김없이 새로 부임한 팀장, 소현성에게로 몰려 있었다.‘그럴 만도 하지.’소현성은 속으로 담담히 중얼거렸다.불과 이틀 전, 그는 독단적이라 불러도 좋은 결정을 내렸다.갓 출범한 7팀이 운용할 수 있는 자금, 무려 100억 원 전부를 국내 증시의 공매도 포지션에 쏟아부은 것이었다.주가지수에서 관련 종목들에 이르기까지 죄다 공매도였다.그러나 회사의 다른 트레이딩본부 팀들은 달랐다. 하나같이 매수 포지션으로 시장의 광란을 만끽하고 있었다.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계좌의 숫자가 눈부시게 불어나 마치 금덩이 위에 걸터앉아 흥청망청 잔치를 벌이는 듯한 형국이었다.하지만 유독 7팀만은 달랐다. 모니터 화면마다 파란색 손실 수치가 연신 깜박이며 경고음을 울려댔다.그리고 시장을 거스른 대가가 매 순간 계좌에 선명하게 드러났다.물론 누구도 겉으로 불평을 내비치진 않았다. 팀원들은 모두 담담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었다.어떤 이는 차분히, 또 어떤 이는 참담한 기분을 애써 눌러 담은 채 그저 팀장의 결정을 기다렸다.하지만 지금, 팀장의 자리에 앉아 있는 소현성은 예전과는 달리 그들의 속내를 훨씬 더 선명히 읽어낼 수 있었다.겉으로는 공손히 따르는 듯했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감출 수 없는 감정이 숨어 있었다.흔들림과 의문, 그리고 어쩌면 두려움까지 뒤섞인 눈빛으로 끊임없이 같은 질문을 되뇌고 있었다.‘팀장님... 지금이라도 손절하고 저 끝없이 치솟는 상승 열차에 올라타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기회가 남아 있지 않을까요?’소현성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결정을 내리기 직전의 순간을 떠올렸다.그때의 감각은 너무도 선명하고 강렬했다.전신을 전류처럼 꿰뚫고 지나가던 충격이 차가운 이성을 한순간에 무너뜨렸고 수많은 반대 의견에 맞서게끔 용기를
Read more

제92화

‘젠장... 만약 시장이 곧장 무너지는 게 아니라 반년, 아니, 그 이상을 더 버틴다면? 그땐 어떻게 하지?’부정적이고 불확실한 상상들이 파도처럼 몰려왔다.‘혹여 시장이 끝내 꺾이지 않고 더 질기게 버틴다면 내가 내린 모든 결단이 무모한 도박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닐까.’그 순간마다 억눌러 왔던 불안과 의심이 한꺼번에 고개를 치켜들며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이것이야말로 그에게 주어진 기묘한 ‘능력’의 가장 치명적인 결함이었다.겉으로는 신비롭고 압도적인 무기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상은 언제든 그를 집어삼킬 수 있는 양날의 검 같았다.모든 판단은 결국 수치화도, 검증도, 누구에게 설명도 불가능한 오직 그만의 ‘촉’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그 불확실한 직감에 팀원들의 삶과 거대한 운용 자금, 그리고 그의 미래도 걸려있는데 말이다.‘차라리 게임에서처럼 모니터에 ‘상태창’이라도 떠 준다면... 아니면 시스템 메시지가 튀어나온다든지. 하다못해 초능력자처럼 미래의 한 장면을 엿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지만 그런 것은 어디까지나 환상일 뿐이었다.현실 속의 그가 의지할 수 있는 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롭고 들쑥날쑥한 직감 하나뿐이었다.거대한 압박과 이어지는 손실 앞에서, 잡음 같은 의심과 공포가 통제할 수 없이 머릿속에 뿌리를 내렸다.‘혹시... 내가 정말 잘못 본 건가? 지금이라도 전부 손절하고 빠져나가야 하나? 아직은 돌이킬 수 있잖아...’그 달콤한 유혹이 마음을 파고들려는 순간,소현성의 눈빛이 매섭게 가라앉았다.그러나 곧바로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마음속에서 기어오르던 동요를 거칠게 짓눌러 버렸다.“아니야. 절대 그럴 리 없어.”그는 스스로에게 단호히 속삭였다. 마치 귓가에서 집요하게 속삭이는 악마의 목소리를 몰아내듯, 척추를 곧게 펴고 자세를 다시 바로잡았다.갑작스럽게 팀장 자리에 올랐고 운용 자금은 단숨에 수십 배로 불어났다. 그 무게는 산처럼 어깨를 짓눌렀고 어느새 마음 깊숙이 스며들어 걱정을 키웠다.‘그러나 잊어서는
Read more

제93화

“제기랄... 이 빌어먹을 담배... 진짜 끊는 건 글렀나 보네.”양건우가 담배를 피우는 횟수는 최근 들어 눈에 띄게 늘었다.회사 건물 아래 야외 흡연구역.양건우는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를 담배에 불을 붙이고 깊게 한 모금 들이켰다.매캐하고 톡 쏘는 담배 연기가 폐 속을 깊게까지 파고들며 잠깐이나마 조여왔던 정신을 마비시켜 해방감을 줬다.예전 같으면 증시 개장을 알리는 시스템 알림음이 울리기만 하면 초까지 맞춰 세팅된 기계처럼 곧장 몰입했다.목마른 것도 잊을 만큼 긴장한 채, 담배 한 개비 피울 여유조차 없었다.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그에게는 시간이 남아돌았다.“어? 오늘따라 왜 사람이 많지...”양건우는 의아한 눈길로 흡연구역 쪽을 바라봤다. 이 시간대라면 한산해야 할 흡연구역이 뜻밖에도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그리고 더욱 거슬린 건 단순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였다.모두 다 그와 마찬가지로 장 시작과 동시에 최전선에서 분초를 다투며 싸우고 있어야 할 트레이더들이었기 때문이었다.그리고 무엇보다 눈에 거슬린 건, 왁자지껄 떠들고 있는 그 분위기였다.평소라면 이 좁은 공간은 언제나 매캐한 담배 연기와 팽팽한 긴장감으로 가득했다.거래가 꼬였을 때 새어 나오던 씁쓸한 욕설, 주저앉으며 터져 나오던 한숨, 그리고 말보다 무거운 침묵만 뒤섞여 있었던 이곳의 분위기가 오늘은 색달랐다.담배 연기 자욱한 공간이 이상하리만치 들뜬 분위기가 감돌았다.억누르지 못한 웃음소리, 잇따른 농담과 짓궂은 장난, 심지어는 몇몇은 대놓고 호탕하게 웃어대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마치 이미 어마어마한 실적을 올리고 축배 자리에 모인 듯했다.“어? 이게 누구십니까, 양 수석 아니세요? 오늘은 담배 태우러 나오셨네요? 표정 보니까 장 분위기가 꽤 괜찮으셨던 모양인데요?”어디선가 들려온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자, 예전에 같은 부서에서 함께 일했던 몇몇 동료들이 환하게 상기된 얼굴로 모여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그럼 그렇죠. 요즘 같은 장
Read more

제94화

시장 분위기는 그야말로 끝이 보이지 않는 돈이 돈을 부르는 거대한 잔치판 같았다.그야말로 바보라도 수익을 낼 수 있는 장세였다.평소라면 손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분주하던 사람들이 바로 트레이더들이었다.화장실에 가는 시간조차 아까워 초 단위로 일정을 쪼개 쓰던 사람들이 오늘은 삼삼오오 모여 담배를 피우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그 모습만으로도 이번 장세가 얼마나 비정상적인 흐름을 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양 수석, 아직 안 올라가십니까?”누군가 먼저 자리를 뜨며 물었다.“아, 네. 먼저 올라가세요. 저는 조금 더 있다가 올라가겠습니다.”양건우는 다소 굳은 표정으로 손을 들어 보였다.“그럼 저는 이만 올라가 보겠습니다.”몇 명이 연달아 발걸음을 옮기자, 곧 흡연실은 다시 조용해졌다.공기 중에는 방금 피워낸 담배 연기만이 천천히 흩어졌다.양건우는 차가운 벤치에 홀로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머리 위로 드리운 하늘은 회색 빛 구름으로 가려져 있었고 그의 마음도 그와 다를 바 없이 답답하고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머리로는 여러 차례 분석해 보아도 결과는 같았다. 주식시장의 이 거친 랠리는 당장 멈출 기미가 없었다.조금 전 흡연실의 분위기만 해도 충분한 근거였다.원래라면 잘못된 매매나 손실에 대한 욕설이 쏟아지는 공간이었으나 오늘은 달랐다.마치 명절이라도 맞은 듯 들뜬 웃음소리와 가벼운 농담이 가득했고 누구나 이번 달 두둑한 성과급을 기대하는 표정들이었다.양건우는 속으로 쓸쓸히 되뇌었다.‘보너스 지급 때가 되면... 우리 7팀만 남들 돈 세는 꼴을 바라보면서 조용히 상처만 핥게 되는 건가.’그 생각은 비수처럼 그의 가슴을 파고들었다.양건우는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그만 생각하자. 괜히 끙끙대봤자 소용없지. 일단은 사무실로 돌아가자고. 어쨌든 일은 해야 하니까.’그렇다고 사무실에 돌아간다고 해서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머릿속에는 ‘그냥 모니터만 멍하니 바라보다가 퇴근하자’ 하는 체념이 맴돌
Read more

제95화

“방금... 방금 전입니다. 몇 분 전쯤이었어요.”이수호는 온몸의 힘을 짜내듯 겨우 말을 이었다. 이미 목소리에는 떨림이 묻어났다.“금융위원회에서 긴급 정책 조정 발표문을 냈습니다. 앞으로 신용거래, 특히 레버리지를 동반한 공매도 거래를 전면 제한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뭐라고요?”양건우는 귓가에 이명이 들렸다. 순간 그의 머릿속이 텅 비듯 새하얘졌고 몸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얼어붙는 듯 뻣뻣해진 감각이 전신에 퍼져 나갔다.이는 단순한 정책 조정이 아니었다.금융당국이 직접 나서 단기 과열을 차단하겠다는 가장 강경하고도 명확한 메시지이었다. 지금까지 증시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밀어 넣던 ‘신용거래 자금’, 일명 빚투의 동맥을 정면으로 끊어 버리겠다는 의미였다.“그러니까... 그래서 다들 이렇게 아우성치는 거군요.”이수호의 얼굴은 거의 오열 직전처럼 일그러졌다.“양 수석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지금 시장에 들어와 있는 자금의 절대다수는 사실상 본인 돈이 아니라, 몇 배에서 많게는 열 배까지 불린 신용거래 자금입니다. 전부 빚이지요. 그런데 그걸 오늘 당장 막아 버리겠다고 하니...”그의 목소리는 끝내 갈라졌다.사무실을 짓누르는 정적은 곧 닥쳐올 시장 붕괴의 서막을 알리는 불길한 침묵 같았다.불과 짧은 시간 안에 주식시장이 폭발적으로 치솟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금융당국이 경기 부양을 목적으로 강력히 밀어붙인 신용거래 제도가 있었다.쉽게 말해 투자자가 자기 계좌에 가진 소액의 자금을 증거금으로 맡기면, 증권사를 통해 그 몇 배, 심지어 열 배 가까운 돈을 추가로 빌려 주식 거래에 나설 수 있었다.예컨대 2천만 원밖에 없더라도 신용거래를 활용하면 최대 2억 원을 굴릴 수 있는 셈이었다.이 제도는 사실상 ‘재테크용 흥분제’였다.순식간에 부를 불릴 수 있다는 환상은 개인 투자자들을 불나방처럼 끌어들였고 시장은 ‘돈이 돈을 부르는’ 불길로 달아올랐다.그러나 바로 오늘, 금융당국이 태도를 돌연 뒤집었다.그동안 무제한으로 열어 두었던 자금의
Read more

제96화

“이 썩을 놈들, 개 같은 것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방송이고 신문이고 전부 나서서 당장 주식 사라고 부추겨대더니...”사무실 한쪽 구석에서 누군가 히스테릭하게 고함을 질렀다. 목소리에는 배신감에 짓눌린 분노가 가득 담겨 있었다.“이게 말이 됩니까? 아무런 예고도 없이 이렇게 뒤통수를 칠 수가 있다니! 젠장, 진짜 비열하고 파렴치하잖아요!”“빨리 팔아요! 지금 당장 다 팔아야 합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들고 있는 포지션 전부 박살 납니다! 어서요!”불과 몇십 분 전까지만 해도 흡연구역에서는 호탕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성과급으로 최신형 수입차를 뽑을지, 아니면 휴양지로 떠날지를 두고 떠들던 사람들이었다.그러나 지금, 그들은 모두 가장 원초적인 공포와 절망 속으로 추락하고 있었다.트레이딩본부 사무실은 단숨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사방에서 터져 나오는 절망의 고함, 광기에 가까운 키보드 두드림, 눈앞에서 자산이 산산이 부서져 가는 광경에 억눌린 소리 없는 비명들로 뒤덮었다.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빨리 손실을 끊고 빠져나가길 원했다. 그것만이 이 돌발적인 참사를 피할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시장에는 이미 매도 물량만 산사태처럼 쏟아지고 있었다.셀 수 없이 겹겹이 쌓여 올라가는 매도 호가 속에서 이를 받아낼 매수자는 단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바로 그 시각, 사모펀드는 트레이딩본부 소속팀들을 비롯한 거의 모든 팀은 종말을 맞은 듯한 혼란과 공포에 잠식되고 있었다.오직 7팀만은 폭풍의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이상하게도 한 발 비켜 서 있었다. 마치 거센 강물 건너편에서 불시에 터진 거대한 불꽃놀이를 차갑게 지켜보는 듯했다.물론 그것이 진정한 평온일 리는 없었다.7팀 구성원들 또한 심장이 벌렁거렸고 마찬가지로 거대한 또 다른 충격에 완전히 얼이 빠져 있었다.“정말... 정말 팀장님 예언대로 주식시장이 이렇게 한순간에 무너져 버린 겁니까?”한 선임 트레이더는 눈앞에 펼쳐진 차트를 멍하니 바라보며 중
Read more

제97화

양건우는 숨조차 멎은 듯한 감각에 사로잡혔다.손아귀에 힘주어 움켜쥔 마우스가 바람에 흔들리는 낙엽처럼 덜덜 떨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게 하던 단순한 클릭조차 쉽지 않았다.그 앞에 펼쳐진 광경은 마치 주신의 신이 환생하여 인간 세상에 개입해 만들어낸 기적 같은 대역전이었다.‘아니...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트레이딩본부 신설팀을 맡은 지 겨우 일주일 남짓 된 팀장이, 무슨 근거로 이런 사태를 예측할 수 있었단 말인가? 소현성... 저 사람은 도대체 정체가 뭐지?’양건우는 그 순간 200% 확신했다.광한국의 금융 중심지는 물론, 전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이런 타이밍에 이런 방식으로 시장의 붕괴를 미리 내다볼 수 있는 이는 단 한 명뿐이라는 사실을.그 사람은 바로 트레이딩본부 7팀의 믿기 어려울 만큼 젊은 팀장 소현성이었다.‘설령 세상 어딘가에 또 다른 괴물 같은 천재가 있어 이번 폭락을 예상했다 해도, 과연 누가 우리 팀장님을 흉내 낼 수 있을까? 누가 감히 모든 이가 매수 버튼을 광기에 가까운 열기로 눌러대던 그 순간에 홀로 반대편에 설 수 있었겠는가? 조롱과 의심, 질타와 비웃음을 정면으로 감수하면서 가진 자금을 몽땅 내던져 시장을 거스르는 그런 베팅을 누가 감히 할 수 있었겠는가? 단순한 통찰의 영역이 아니야. 그건 배짱이고 광기이며 동시에... 선택받은 자만이 감히 할 수 있는 도박이야.’그건 절대 대수롭지 않은 소액의 시도가 아니었다. 수십만 원, 수백만 원 단위의 소액 투자 따위와는 차원이 달랐다.무려 100억 원, 중견기업 하나 부도나게 할 수 있는 천문학적인 금액이었다.“...”양건우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시선은 자석에 이끌리듯 얇은 유리 칸막이 너머로 향했다.회사 전체가 종말 같은 혼돈과 공포에 휩싸인 순간에도 소현성은 바른 자세로 흔들림 없이 앉아 있었다. 마치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사람처럼 놀라울 만큼 평온했다.양건우는 단 한 번의 눈 깜박임조차 허락하지 않은 채 숨을 죽이며 소현성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Read more

제98화

날카롭고 급박한 시스템 알림음이 순식간에 리스크관리본부 전체를 휘몰아쳤다.리스크관리본부 팀장 장준휘는 등골 끝에서부터 차가운 한기가 솟구쳐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걸 느꼈다.순식간에 등줄기는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들었다.이 바닥에서 굴러온 세월이 몇 년인데, 이런 장면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모니터가 파란색으로 뒤덮였다.그 파란색은 곧 시장 붕괴와 재앙을 의미했다. 번쩍이는 불길한 빛은 그 자체로 종말을 알리는 경고등 같았다.순간, 평소라면 재빨리 돌아가던 그의 머리마저 멈춰 섰다.남은 건 단 하나의 생각뿐이었다.투박하고 무겁고 절망적인 결론이었다.‘씨X... 이제 끝장이다.’불과 몇 분 전만 해도 부서 분위기는 은퇴 후의 오후처럼 한가로웠다.커피잔을 들고 잡담을 나누거나 다과를 곁들여 티타임을 즐기던 모습이었다.시장은 잔잔했고 관리할 만한 리스크도 없었다.그러나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순간 단숨에 하늘이 뒤집혔다.금융위원회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마치 수심 깊은 바다에 폭탄을 던지듯 새로운 규제 정책을 기습 발표한 것이었다.그 소식은 마치 끓어오르는 기름 솥에 한 바가지의 얼음물을 퍼붓는 듯한 충격이었다.시장은 그대로 폭발했다.투매가 미친 듯이 터져 나왔다.제방을 무너뜨리고 쏟아져 내린 홍수처럼, 셀 수 없는 매도 물량이 무자비하게 덮쳐오고 있었다.“본부장님, 어... 어쩌면 좋습니까?”장준휘는 다리에 힘이 풀려 거의 나자빠지듯 반세훈 앞에 달려왔고 목소리는 너무 떨려 말 한마디조차 똑바로 나오지 않았다.그러나 눈앞에 보인 건, 이미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려 정신마저 놓아버린 듯한 반세훈 본부장이었다.그 순간, 장준휘의 심장은 그대로 얼어붙었다.“우리가 뭘 어쩌겠습니까?”반세훈은 입술을 덜덜 떨며 간신히 입을 열었다. 갈라진 목소리 속에는 어떻게 해도 되돌릴 수 없다는 절망이 배어 있었다“우리 리스크관리본부가 지금 할 수 있는 게 뭡니까? 서버실에 뛰어가서 랜선을 뽑아버릴 겁니까? 거래소
Read more

제99화

‘전부 헛소리였지. 이런 눈사태 같은 장세라면 이번 달은 물론, 몇 달은 부서 전체가 고개 푹 숙이고 쪼들려 지낼 게 뻔하다. 다 같이 허리끈 졸라매고 연명하겠구먼...’“잠, 잠깐만! 저건 뭐지?”장준휘는 모든 희망이 끊어진 듯 체념에 잠겨 있을 무렵, 시야 끝에 걸린 모니터가 그의 동공을 단번에 조여왔다.끝없이 무너져 내리던 파란 절망의 바다. 그 지옥 같은 화면 한가운데서, 눈을 찌르는 듯 선명한 빨간색 곡선 한 줄기가 치솟고 있었다.그건 단순한 상승세 신호가 아니었다.마치 화산이 분출하듯, 불길처럼 번져 나가며 모든 한기를 삼켜버릴 듯 타오르는 역전의 불꽃이었다.‘아니... 저건 그냥 빨간색 그래프가 아니다. 저건 희망이다. 거센 역풍을 뚫고 선 자만이 붙잡을 수 있는 승리의 불꽃이야.’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두가 시장이 끝없이 치솟을 거라고 외쳐댔다.“밀어붙여! 몰방이 답이다!”“이참에 바닷가 별장 하나 장만하는 거야!”그러나 그 광기가 사라지자 사람들은 놀란 닭처럼 허겁지겁 소리쳤다.“팔아! 던져! 다 정리해!”그 혼돈 속에서도 단 하나의 팀만은 정반대 길을 걸었다.처음에는 죽으러 가는 미친놈 취급을 받던 그들이 지금은 모든 이가 눈을 감은 자리에서 홀로 눈을 뜬 예언자로 서 있었다.그는 말뿐이 아니라 무려 현금 100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움켜쥔 채, 단호하게 전부 공매도에 쏟아부었다.온 시장이 매수 버튼을 광기에 휩싸여 두드리던 그 순간, 정반대 방향으로 몸을 던진 단 한 사람은 바로 소현성이었다....같은 시각 폭풍의 정중앙, 트레이딩본부 7팀 팀장 집무실.“...”소현성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었다.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비치지 않았다. 기쁨도 분노도 없었다.화면 위의 숫자들은 파도처럼 쏟아져 내렸고 캔들 차트는 절벽에서 추락하듯 곤두박질쳤다.누가 봐도 처참한 금융 재난의 도식이었다.그러나 그의 시선은 고요했다. 마치 모든 것이 이미 예정된 시나리오라도 되는 듯, 마음속은 평
Read more

제100화

트레이딩본부 7팀 직원들의 눈이 하나같이 휘둥그레졌다.숨소리는 가빠졌고 얼굴에는 극도의 충격과 광기가 뒤섞여 있었다.그 표정에는 믿기 힘든 환희와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 못 하는 멍한 기색이 공존했다.눈빛마저 흐릿해져 마치 집단으로 환각제라도 들이킨 듯 반쯤 영혼이 날아가 버린 모습이었다.“티, 팀장님... 도대체...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아신 겁니까?”팀원 한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먼저 물었다.그 시선은 마치 신화 속에서 걸어 나온 예언자를 바라보는 듯 경외로 가득했다.“와... 팀장님, 진짜... 신이십니다. 대박이네요.”다른 팀원은 거의 욕설에 가까운 감탄을 터뜨렸다.그리고 또 다른 팀원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낮게 속삭였다.“설마... 혹시 금융위원회 쪽에... 아는 분이 있으신 겁니까?”소현성은 그 말에 순간 기침이 튀어나올 뻔했다.‘아는 분이 있냐고? 무슨 헛소리야. 나 같은 캥거루족 백수였는데, 무슨 수로 금융위 고위 인사를 알아? 말도 안 되는 소리를...’그는 서둘러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가볍게 기침했다.곧 일부러 의미심장한 듯 고개를 끄덕인 뒤, 손을 천천히 들어 올려 가볍게 흔들었다.그러고는 담담하면서도 여유가 깃든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옛말에 그런 얘기가 있지 않습니까. 개나 소나 다 주식으로 돈 번다고 달려들기 시작하면 그때가 바로 거품이 꺼질 때라는 신호라는 거죠.”사실 그 말은, 예전에 소현성이 투자 서적을 건성으로 넘기다 우연히 보게 된 문구였다.정확한 출처조차 기억나지 않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주식의 신’이라는 아우라를 덧씌우기에 충분했다.논리는 간단했다. 시장이 달아오르다 못해 주식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까지 뛰어드는 수준이 된다면 그것은 이미 비이성적인 광기가 극점에 달했다는 뜻이었다.그리고 그 끝에는 언제나 예외 없이 붕괴가 기다리고 있다는 냉혹한 사실이 숨어 있었다.“그런 말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팀원들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표정에는 여전히 불신과
Read more
PREV
1
...
5678910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