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백수에서 개미들의 신이 되다: Chapter 31 - Chapter 40

100 Chapters

제31화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소현성은 오늘도 늘 그랬듯 사무실에서 쉴 새 없이 뛰어다니며 잡일을 처리하리라 생각했다.하지만 순식간에 상황은 달라졌다.지금 그는 ‘선임 트레이더’의 상징과도 같은 고가의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그 사실만으로도 그의 신분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현성 씨.”이혜림이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자신과 그를 동시에 다독였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알아채기 힘든 미세한 떨림이 섞여 있었다.“우린 할 수 있을 거예요. 전처럼 모의투자 할 때처럼만 하면 돼요. 똑같이 집중하고, 똑같이 매매하면 됩니다.”소현성은 그녀를 바라보다가 슬쩍 말했다.“혜림 누나... 다리가 지금 좀 떨고 계신 것 같아요.”“네? 저도 사실...”이혜림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내려다봤다.정말로 두 다리가 제멋대로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서둘러 두 다리를 꽉 모으며 억눌렀다. 그리고 얼굴은 금세 붉게 달아올랐다.소현성의 마음도 편치 않았다.‘게임을 통해 알게 된 길드장... 아니, 형님은 혹시 내가 선임 트레이더로 승격된 걸 아셨을까? 아셨다면 깜짝 놀라시겠지?’하지만 지금 분위기로는 회장이 알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이렇게 큰 회사를 운영하시는 분이니, 고작 트레이드본부 소속팀 내에서의 인사조치까지 신경 쓰시진 않겠지?’“이혜림 씨, 소현성 씨...”갑자기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리잔 위를 손톱으로 긁은 듯 거슬리는 울림이었다.언제 다가왔는지, 양건우가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곁에 서 있었다.그의 눈빛에는 노골적인 비웃음과 적의가 서려 있었다.“아니, 두 분, 지금 회사가 어떤 상황인지 알고 계십니까? 그런데 이렇게 웃을 여유가 있으시다니.”그의 시선은 두 사람을 훑으며 불신과 멸시로 가득 차 있었다.“생각이라는 게 있으셔야죠. 팀장님이 승격 얘기를 꺼내셨으면 능력이 부족하다, 책임질 수 없다며 사양했어야 합니다. 어떻게 뻔뻔하게 그 제안을 순순히 받아들이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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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소현성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알 수 없는 화가 울컥하고 치밀어 올랐다.“양건우 씨, 그만 좀 하시죠?”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처음으로 마음의 소리를 입 밖으로 꺼냈다.“옆에서 듣자 하니 너무 지나치신 것 같습니다.”“뭐라고요?”양건우가 눈을 가늘게 뜨며 되받았다. 채용 연계형 인턴 따위가 감히 맞서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눈치였다.“팀장님께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소현성은 언성을 높이지 않았지만 말투가 평소보다 공격적으로 변했다.“여긴 결국 성과로 우위를 가린다고 말이죠. 그러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랑 이혜림 선임 트레이더도 반드시 실적으로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저희가 팀에 짐이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허... 실력은 없으면서 자존심만 세운다 이거죠? 큰소리부터 치는 건가요?”양건우가 코웃음을 터뜨리며 소현성을 위아래로 훑었다. 그 눈빛은 노골적인 비웃음과 멸시로 번뜩거렸다.“좋습니다. 어디 한번 보죠. 자기 주제도 모른 채 날뛰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이번 인사 결정은 두 분한테 독이 될 겁니다.”마지막 말을 내뱉은 양건우는 싸늘하게 코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돌려 자리로 향했다. 두 사람 앞에 남은 건 노골적인 적의를 드러낸 그의 뒷모습뿐이었다“현성 씨... 굳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이혜림이 걱정스레 중얼거렸다.“죄송해요, 혜림 누나. 저도 모르게 욱해서...”소현성이 미간을 문지르며 난감한 기색을 보였다.“계속 누나만 몰아세우는 게 눈에 거슬려서요.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괜찮아요.”이혜림은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직장생활이란 게... 이런 거죠.”그러다 금세 표정이 무너지더니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근데... 큰일이에요. 아까 현성 씨가 성과로 보여주겠다고 했잖아요. 만약 제가 망치면 어떡하죠? 정말 제가 다 망쳐 버리면...”소현성은 오히려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전 믿습니다. 혜림 누나도, 저 자신도요.”그는 모의투자 때를 떠올리며 눈빛을 굳혔다.“그때도 해냈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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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심지어 현질에 돈을 아무리 쏟아부었던 게임에서도 계정에 2억 원이라는 숫자가 찍힌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참, 방금... 혜림 누나가 말했지? 트레이더의 최소 운용 자금이 2억 원이라고?’그런데 이제 막 선임으로 올라온 신입에게 첫날부터 2억 원이나 되는 실전 자금을 맡길 줄은 몰랐다.‘이 회사... 제정신 맞아?’...“아... 열 받아 죽겠네.”탕비실 한쪽.양건우가 종이컵을 탁자 위에 내리꽂았다. 그러자 정수기에서 따라온 물이 몇 방울 튀어 올랐다.그는 정수기에서 받은 얼음물을 연거푸 들이켜며 가슴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불길을 억눌러 보려 했다.‘팀장님은 도대체 무슨 생각이신 거지? 고작 신입 두 명, 그것도 이혜림 같은 답답한 애를 바로 정규직으로? 만약 그들이 투자 말아먹고 팀 성과까지 깎아내린다면 그 손해는 누가 책임질 건데? 개인 성과급도 문제지만 팀 성과급은 액수가 훨씬 크잖아. 그 두 폐물 때문에 연말 보너스까지 줄어든다면….’양건우의 표정이 일그러졌다.‘그렇게 되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분노는 곧바로 다른 데로 옮겨붙었다.‘그리고 소현성, 그 자식. 고작 채용 연계형 인턴 주제에, 입사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감히 나 같은 고참한테 대들어? 진짜 위아래도 모르고 눈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을뿐더러, 교양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놈이네?’“어이, 양건우 씨.”비꼬는 듯한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오늘따라 화가 잔뜩 나신 것 같은데요?”“농담할 기분 아니거든요? 가던 길 가시죠?”양건우가 날카롭게 쏘아붙였다.“어머? 왜 저한테까지 화를 내세요. 그렇게까지 까칠할 건 없잖아요.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요... 양건우 씨는 아직 모르셨나 보네요?”옆 팀 트레이더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뭘요? 빙빙 돌리지 말고 하고 싶은 말 빨리하세요.”양건우가 눈살을 찌푸렸다.그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살피더니, 다가와 낮게 속삭였다.“1팀 인턴으로 들어온 소현성 씨 말인데요... 들리는 얘기로는 회장님 쪽 친인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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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거래 시스템에서 ‘띵’ 하는 알림음이 울리며 증시 개장을 알렸다.그 소리는 마치 돌멩이가 깊은 연못에 떨어져 파문을 일으키듯, 숫자와 불안이 뒤엉킨 트레이딩본부 사무실에 보이지 않는 긴장을 퍼뜨렸다.주희재의 눈앞에 번쩍이는 모니터 월에는 수많은 차트와 데이터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그곳이야말로 본디 그의 전장, 오늘의 전략을 펼쳐야 할 무대였다.하지만 시선은 이상하게도 자꾸만 다른 쪽으로 끌려갔다.조용히 고개를 돌린 주희재의 눈길이 닿은 곳, 그곳에는 소현성이 있었다.여유롭다 못해 빈둥대는 모습으로 앉아 있는 마음속을 스치자 묘한 호기심과 경계가 동시에 얽혀 들어왔다.주희재는 아예 자신의 책상 각도까지 조정해 두었다. 언제든 그를 곁눈질할 수 있도록.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개장 이후로 한참이 지나도록 소현성은 거의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저 녀석, 언제까지 그냥 화면만 멍하니 보고 있을 작정이지?’주희재의 미간이 서서히 좁혀졌다. 그리고 의심은 덩굴처럼 번져 갔다.‘도대체 저 소현성이라는 낙하산... 무슨 비밀을 숨기고 있는 거지? 어떻게 모의투자에서 그 말도 안 되는 수익률을 뽑아냈을까? 더 중요한 건… 그게 비밀이 진짜 시장에서도 통할까? 진짜 돈이 걸린 실전에서, 시장의 무자비한 세례를 버텨낼 수 있을까?’그는 눈을 떼지 못했다.주희재의 시선은 레이저처럼 소현성의 옆모습을 꿰뚫듯 겨눴다.하지만 시간은 무심히 흘러갔다. 그리고 소현성은 여전히 미동조차 없었다.차갑게 얼어붙은 조각상처럼, 주변의 긴박하고 시끄러운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으로 그는 그저 묵묵히 화면 앞에 앉아 있었다....같은 시각, 소현성의 속은 그야말로 곪아가고 있었다.‘아니, 이게 도대체 뭐야...’모의투자 때는 한 대뿐이던 모니터가 어느새 여섯 대로 불어나 있었다.여섯 개 화면 가득 숫자들이 빽빽하게 흘러가고 빨강, 파랑 곡선들이 살아 있는 듯 꿈틀거리며 얽히고설켰다.데이터의 파도가 한꺼번에 몰려와 눈앞에서 춤추는 것 같았다. 모의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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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휴... 말도 마요. 저 진짜 어떡하면 좋을까요...”이혜림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목소리에는 힘이 빠져 있었고 마치 바람 빠진 공처럼 깊은 좌절감이 배어 있었다.“오늘 오전에만... 벌써 마이너스 2%를 찍었어요. 그 바람에 리스크관리본부에서 바로 강제로 거래 정지 먹었죠.”“정말요?”소현성이 멍하니 듣고 있다가 눈을 크게 떴다.“고작 2% 손실인데... 바로 정지라고요?”겉으로 듣기에는 그렇게까지 큰 숫자가 아닌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맞아요. 하지만 우리 회사 기준에서 2%는 꽤 큰 숫자예요.”이혜림은 쓴웃음을 흘리며 스스로를 비난했다.“리스크관리본부, 그 독수리 눈깔들이 트레이더본부의 계좌 전부를 실시간으로 들여다보고 있잖아요. 저희 같은 신입이나 경력이 짧은 트레이더들은 2% 손실만 나도 바로 레드카드예요. 거래 권한 정지당하기 일쑤죠. 베테랑급으로 올라가야 조금 여유가 생겨서 5% 정도까지 봐준다고 하더라고요.”그녀는 말을 멈추더니 마치 오래전부터 가슴 깊숙이 새겨 두었던 신념을 다시 떠올리는 듯했다.“업계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 원칙 하나 알려드릴까요? 돈을 잃지 않는 게 곧 장기적으로 불어나는 비결이다. 우리 회사에서도 이건 철칙이에요. 회의 때마다 하면 주 팀장님이 몇 번이고 강조하시잖아요.”거짓은 아니었다.주희재 팀장은 회의 때마다 ‘리스크 관리’라는 단어를 한 자 한 자 쪼개 씹듯, 반복해서 강조하곤 했다.왜냐하면 이곳에서 그들의 손끝 움직임에 따라 변화하는 건 회사의 자금이기 때문이었다.업계 사람이 아니라면 우스꽝스럽게 들릴 수도 있었다.‘단타 치는 애들이 무슨 리스크 관리를 한다고...’하지만 사내 규정은 명확했다. 아무리 공격적인 단기 트레이딩이라도 정해진 위험 한도 안에서만 움직여야 했다.그건 족쇄를 찬 채 추는 춤과도 같았다. 단 한 발만 삐끗해도 ‘리스크관리본부’라는 보이지 않는 감시자가 무자비한 철퇴를 내리쳤다.그 시스템은 정밀했고 잔혹할 만큼 냉정했다.“하...”이혜림은 또다시 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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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현성 씨, 정말 대단한 거 아니에요? 한 수 배웁니다, 진짜로!”이혜림의 두 눈이 반짝였다. 놀람과 감탄, 그리고 묘한 경외심이 얼굴에 번져 나왔다.“역시... 현성 씨는 진짜 고수였군요.”“네?”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에 소현성이 완전히 얼이 빠졌다.‘아니, 이게 무슨 상황이지?’“현성 씨, 분명 오늘 장이 대세 하락장이라는 걸 미리 간파하신 거죠?”이혜림은 마치 모든 게 퍼즐처럼 맞아떨어졌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존경 어린 눈빛을 보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결론을 내렸다.“선배들한테 그런 얘기 들은 적 있어요. 이런 장에서는 진짜 고수일수록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고요. ‘현금도 포지션이다’, ‘가만히 있으면 반은 간다’, 잃지 않는 게 곧 버는 거라고요.”“...”소현성은 입술만 달싹이다 말았다. 상황이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이게 이렇게 넘어간다고? 대체 어떻게 수습이 된 거지...’그렇다고 마냥 멍하니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문제는 늘 의지하던 ‘촉’이 전혀 찾아오지 않는다는 거였다. 마치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흔적조차 사라진 듯, 감감무소식이었다.그 능력을 얻은 뒤 처음 겪는 일이었다.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불안이 꿈틀거렸고 혹시 어디선가 치명적인 단서를 놓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스멀스멀 고개를 들었다.강한 불안이 덮쳐왔고 떨쳐내려고 해도 마음은 따라주지 않았다.“직감 같은 건 물론 중요하죠.”이혜림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무언가를 떠올린 듯 제안했다.“그래도 확신이 안 설 때는 데일리 시장 브리핑에서 배포된 리서치 리포트를 다시 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리서치 리포트요?”소현성이 되물었다.“네. 제가 전에도 말했잖아요. 주식 시장에서는 ‘핫한 테마’를 잡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요. 지금 시장 주도권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섹터가 뜨고 있는지 그걸 확실히 알아야 해요. 그걸 정리해 주는 게 바로 우리 회사 리서치본부예요. 말 그대로 업계에서도 손꼽히는 엘리트들이 모여 매일 새로 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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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모닝 리포트에 담긴 정보는 군더더기 없었지만 차가운 현실은 가슴을 꽉 조여왔다.‘주희재 팀장님이 회의에서 뭐라고 했더라... 이런 장세에서는 억지로 추세를 거스르는 포지션을 잡기보다는 차라리 하락 흐름을 활용해 공매도로 수익을 노리는 게 낫다고 했었지...’소현성은 데일리 시장 브리핑 도중 흘려들었던 몇 가지 키워드를 가까스로 떠올렸다.‘그런데... 공매도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지?’개념조차 제대로 모르던 터였다. 이혜림의 설명을 떠올렸다.공매도를 집행할 때는 리스크 관리를 위해 대응 종목을 매수해 헤지하고 동시에 전체 포트폴리오의 분산 비율과 종목 구성을 조율해야 했다.‘그런 건... 지금 내 지식으로는 감당이 안 되잖아. 리스크 관리, 공매도, 헤지...’온통 알 수 없는 업계 용어뿐이었다. 소현성에게 주식시장은 아직 교과서 몇 장 들춰본 정도였고 그걸 실제 매매에 써먹는 건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웠다.‘더 이상 모의투자가 아니야. 실전이라고! 만에 하나 실수라도 해서 회삿돈을 날리면 어쩌지... 아니야, 그럴 바에는 차라리 내가 제일 잘하는 걸 하자.’그가 가진 무기는 오직 하나였다. 지금까지 의지해 온 것은 갑자기 번개처럼 번뜩이며 찾아온 직감, 그 신비로운 시그널뿐이었다.설명할 길은 없었지만 매번 기묘하게 적중해 온 그 촉을 오늘도 믿기로 했다.모닝 리포트를 빠르게 넘겨본 소현성은 창을 닫고 깊게 호흡을 고르며 종목 리스트를 살펴보았다.‘응?’첫 번째 종목 코드 위에 손가락이 닿는 순간 그 시그널이 찾아왔다.미세한 전율이 손끝을 타고 흘렀다. 익숙한 감각, 그것은 곧장 신경을 타고 뇌로 번져갔다. 오랜만에 찾아온 짜릿한 떨림이었다.‘아까까지는 아무 반응도 없었는데... 설마 모닝 리포트를 읽은 뒤라서 그런 건가? 우연치고는 너무 절묘한데...’곰곰이 떠올려보니, 모의투자 때도 늘 비슷한 패턴이었다. 시장 분석 자료나 보고서를 읽은 뒤에야 그 전율이 찾아왔고 그 직감은 늘 수익을 안겨줬다.‘특정 데이터에 노출돼야만 그 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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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아, 오늘 장세 진짜 미쳤네. 완전 개판이었어.”“후... 드디어 장 마감했다. 담배 좀 피우러 가자. 하루 종일 심장 쥐어짜는 줄 알았네.”“캬... 이 빌어먹을 규정 때문에 장중에는 담배 한 대도 못 피우고... 이건 그냥 강제 금연 아니냐고!”“그럴 거면 위층 파생상품 트레이딩팀으로 가시죠. 위층 애들은 하루 종일 담배를 물고 산다던데?”“허, 됐어. 선물, 옵션은 심장 터질 것 같아서 못 해. 차라리 담배를 끊고 말지.”오후 세 시, 마감 알림이 울리자, 하루 종일 쌓여 있던 긴장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트레이딩본부 사무실은 순식간에 욕설과 푸념으로 뒤덮였고 공기 속에는 지독한 피로와 신경질적인 짜증이 섞여 흘렀다.마치 전쟁터에서 타다 남은 듯한 매캐한 포탄 연기가 공기 속에 묻어나는 것 같았다. 불쾌하고 무거운 긴장감이 층 전체를 짓눌렀다.오늘처럼 극단적인 단일 방향의 하락장은 대부분의 트레이더에게 재앙이었다.규정에 따라 풋옵션 매수로 최소한의 헤지를 걸어둔다 해도 이런 급락은 결코 방어할 수 없었다.계좌마다 손절 라인이 줄줄이 터지며 강제 청산이 이어졌고 하루 종일 쌓아 올린 성과가 순식간에 증발했다.더 암담한 건 아직 추세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었다.변동성이 이 정도면 며칠은 더 이런 지옥 같은 장세가 이어질 거라는 게 시장의 중론이었다.그런데 이 아수라장 속에서 단 한 사람, 양건우의 마음은 전혀 다른 곳에 가 있는 이가 있었다.그는 얼굴이 핏기 하나 없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고 눈빛은 허공에 풀려 있었다.‘아아... 내가 미쳤지. 도대체 왜 그랬을까...’후회와 공포가 그의 뇌리를 가득 채웠다.대기업, 특히 사모펀드 운용사처럼 위계가 뚜렷하고 관계망이 복잡한 곳에는 반드시 지켜야 할 불문율이 있었다.‘낙하산을 절대 건드리지 말 것.’“소현성 씨가 회장 조카라는 소문이 돌던데... 아니면 숨겨둔 아들일 수도 있잖아. 이제 어쩌지?”실력이 있든 없든 상관없었다. 마음에 들든 안 들든, 낙하산과 엮이는 순간 게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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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양건우의 목소리에는 노골적인 아부가 묻어 있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차갑게 무시하며 날 선 말을 던지던 태도와는 완전히 달랐다.“정말 죄송합니다. 아시다시피 요즘 장세가 워낙 개판이라 다들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거든요. 저도 순간 실적 압박에 쫓기다 보니... 감정이 좀 격해졌던 것 같습니다.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실 거라 믿습니다.”“아... 네, 이해합니다.”소현성이 잠시 머뭇거리다 어색하게 대답했다.“역시, 제가 믿던 대로네요. 현성 씨라면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실 거라 생각했습니다.”양건우는 기다렸다는 듯 입꼬리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처음 뵀을 때부터 느꼈지만, 현성 씨는 성격도 좋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실 것 같더라고요. 이제 같은 팀이 된 이상, 서로 도우면서 잘 지내봅시다. 네?”“네, 감사합니다.”소현성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그나저나...”양건우는 겉으로는 무심한 척, 속내를 감춘 채 지나치게 친근한 목소리를 냈다.“오늘 같은 장세라면 현성 씨도 손실이 꽤 크셨을 텐데요?”하지만 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소현성과 가장 가까운 이혜림이 오늘 강제 청산을 당했다는 사실을.아무리 든든한 뒷배가 있다고 해도 이 정도 폭락장은 피할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다.‘좋아, 지금이 기회야. 위로하는 척 한마디 던져주면 금세 분위기 누그러지겠지.’“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조금 잃어도 괜찮습니다. 앞으로 만회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대신 제가 더 벌어서 메워드리겠습니다.”양건우는 일부러 호탕하게 웃으며 소현성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혹시 거래하다 막히는 데 있으면 언제든 물어보세요. 이래 봬도 제가 이 시장에서 오래 버텨온 시간이 긴 만큼 도움이 될 만한 조언을 해드릴 수 있을 겁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의 시선은 이미 슬쩍 소현성의 모니터로 향했다.오늘 같은 날이라면 당연히 손실 그래프가 화면 가득할 거라 확신하면서 말이다.“응?”그러나 그 순간 양건우의 얼굴이 굳어졌다.화면에는 파란 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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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게다가... 모든 종목이 추락하는 하락세에서 단 세 종목, 그것도 전부 역 상승주를 골라내 풀매수를 때려버리다니... 소현성, 저 자식은 오늘도 내 상식을 부숴버리는군.’그는 또다시 주희재에게 상식의 틀을 완전히 부수는 충격을 안겼다.정상적인 트레이더라면 오늘 같은 장세에서는 현금을 들고 관망하거나, 방어 차원에서 소량의 디펜시브 종목만 매수했을 것이었다.혹은 대세를 거스르지 않고 공매도로 하락장에서 수익을 확보하는 게 교과서적인 선택이었다.그러나 소현성은 달랐다. 시장의 불문율 따위는 무시한 채, 전혀 다른 논리로 움직였다.주희재의 눈에 그 모습은 거의 상식을 거스르는 괴이한 행보처럼 비쳤다.“주 팀장님, 오늘 선방하셨습니까?”잘 다린 정장을 차려입고 금테 안경을 쓴 중년 남자가 성큼 다가왔다. 리스크관리본부 팀장 장준휘였다.입가에는 의례적인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눈빛은 냉정하게 상대를 저울질하고 있었다.“참, 뻔히 알고 있으면서 왜 묻습니까.”주희재는 그를 힐끔 보고 나서 담담하게 응수했다.“리스크관리본부에서야 다 알고 있는 거 아닌가요?”“예민하게 반응하시네요. 뭐 규정상, 인사 차원에서 여쭤본 겁니다.”장준휘가 헛기침으로 어색함을 덮었다.주희재의 시선은 다시 멀리 떨어진 소현성 자리로 향했다.그 시선을 따라가던 장준휘 역시 이내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거래 정지 먹은 사람이 많다고 들었습니다.”주희재가 물었다.“예. 꽤 많았습니다. 심지어 이번에 막 선임 트레이더로 올라온 이혜림 씨도 저희 쪽에서 거래 정지를 걸었습니다.”장준휘는 고개까지 끄덕이며 못내 아쉬운 듯 표정을 지었다.“이혜림 씨... 오늘이 선임 권한으로 첫 실전이었죠? 아마 충격이 클 겁니다. 심리적으로 상처가 남지 않으면 좋겠네요.”“별수 없죠. 시장이라는 게 원래 이렇게 냉혹하니까요. 앞으로 한동안은 이런 장세가 계속될 겁니다.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결국 본인들에게 달린 거고요.”주희재의 목소리는 담담했다.“장 팀장님, 굳이 저희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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