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 나간 뒤에도, 차시헌의 굳게 찌푸린 눈썹은 풀릴 줄을 몰랐다.얼마 지나지 않아 대표이사실 문이 다시 두드려졌다. 들어온 사람은 우연이 아니라, 어릴 적부터 함께 자라 온 친구 진원호였다.그는 문턱을 넘기도 전에 이미 불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우리 집 영감탱이는 도대체 무슨 바람이 든 건지, 나보고 꼭 선 자리 나가래! 시헌아, 너 한번 생각해 봐라. 다들 미친 거 아니야? 맨날 나만 보면 애 낳으래, 대를 잇으래! 우리 아버지가 힘이 없지, 내가 힘이 없냐고? 나 아직 젊어! 더 놀아야 한다고! 왜 꼭 한 그루의 삐딱한 나무에 묶여서 죽어야 하냐, 어?”그는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길게 찢어진 눈매에는 ‘강제 결혼’에 대한 진한 불만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차시헌이 한마디도 받지 않자, 진원호는 바로 토라졌다. 그는 툭 뱉듯 말하며 다가왔다.“야, 그래도 너는 좋겠다. 차씨 가문에서 대를 잇는다고 등짝 맞는 건 네 조카밖에 없으니까. 넌 아무도 뭐라 안 하잖아.”“왜 왔어?”차시헌의 말투는 늘 그렇듯 차가웠고 얼굴에 표정도 없었다.“야, 너 진짜 평생 일만 하다가 끝낼 거냐?”진원호는 혀를 찼다.“몇 년을 봐도 네 옆에는 여자 그림자 하나 없고. 솔직히 말해 봐라, 안 답답하냐? 아니면... 그냥 혼자서 잘 해결하는 타입이냐? 연애 쪽으로 고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해. 형아가 다 알려 줄게.”차시헌이 다시 서류를 집어 드는 걸 보자, 진원호는 스스로 재미없어진 듯 손을 휘저었다.“노잼 새끼. 난 간다.”문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바로 그때...차시헌이 입을 열었다.“친구가 하나 있는데, 물어볼 게 있다고 하더라.”“오?”시작부터 이런 멘트가 나오다니 진원호의 눈이 번뜩였다.그는 냉큼 돌아와 가까이 다가섰다.“좋지, 얘기해 봐.”차시헌은 잠시 말을 고르듯 마른침을 삼켰다.“그 친구가... 어떤 여자랑, 예상 밖의 상황에서 같이 잤어. 자기 전에는 여자가 엄청 적극적이었는데, 자고 나니까 남자가 ‘책임지겠다’고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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