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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전처 결혼식 깽판기: Chapter 11 - Chapter 20

30 Chapters

제11화

“아이고...”천무진의 시선에 최해숙이 이마를 짚고 앓는 소리를 냈다.“하마터면 불에 타 죽을 뻔했어. 네 할아버지가 나한테 손을 흔드는 것까지 본 거 있지?”말문이 막혀버린 강소안은 너무나 민망하고 난처했다. 천무진이 그녀를 탐색하는 듯한 눈빛으로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최해숙에게 시선을 돌리는 걸 똑똑히 봤기 때문이었다.강소안이 입을 꾹 다물고 얌전히 앉아 최해숙의 연기를 지켜보았다. 천무진의 눈빛이 무슨 뜻인지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다.“할머니.”천무진이 빳빳하고 구김 없는 정장 차림으로 걸어 들어왔다.훤칠한 키의 그가 눈부신 조명 아래 서서 강소안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빛을 가렸다.강소안이 저도 모르게 천무진을 올려다보았다. 역광 탓에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지만 시선을 뗄 수 없는 지독한 매력이 풍겨 나와 자꾸만 눈길이 갔다.“우리 강아지, 네 할아버지가 손짓하면서 나한테 뭐라고 했는지 알아?”최해숙이 이마를 짚은 손가락 틈새로 눈을 번뜩이며 천무진을 쳐다보았다.천무진이 귀티가 흐르는 데다가 이목구비마저 조각처럼 수려해 한눈에 보아도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그녀는 예전에 잘난 손자와 어울리는 짝이 세상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강소안을 본 순간부터 이 둘이야말로 천생연분이라고 굳게 믿게 되었다.강소안이 단아하고 차분했으며 이목구비가 정교하게 빚은 인형처럼 아름다웠다. 미모와 분위기 모두 천무진과 찰떡궁합이었다.최해숙은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가 얼마나 예쁠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아직 증손주도 못 봤으니 할아버지 볼 생각은 하지도 말라셨겠죠.”천무진이 입술을 달싹였다가 강소안에게 시선을 돌렸다.강소안의 풍성한 긴 머리칼이 어깨 위로 흩어져 있었고 붉은 입술과 새하얀 치아가 돋보였다.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 상체를 숙인 탓에 옷깃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그 틈으로 하얀 가슴골이 천무진의 시야에 들어왔다. 순간 긴장해진 천무진이 침을 꿀꺽 삼켰다.최해숙이 손가락을 튕기며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맞아. 영감이 딱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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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누가 기회 따위 바란대?”강소안이 샤워 타월을 주워 몸을 가렸다. 얼굴이 수치심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물기를 머금은 맑은 눈동자에 분노가 서려 있었고 원수를 보듯 천무진을 매섭게 쏘아보았다.‘바로 어젯밤에 회사 휴게실에서 임효정이랑 자고선 어떻게 이렇게 당당하게 나랑 자려고 할 수 있어? 무슨 생각인지 도통 알 수가 없네. 임효정이 그렇게 좋으면 나랑 이혼하고 임효정이랑 결혼하면 되잖아. 설마 밖에서 몰래 바람을 피우며 양다리를 걸치는 스릴을 즐겨서 이러나?’머릿속에 수만 가지 가정이 피어올랐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천무진이 강소안의 몸을 건드리는 것만큼은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천무진의 목과 어깨 위로 핏줄이 튀어 올랐다. 거친 야성미와 섹시함이 공존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양손으로 강소안의 뒤편 벽을 짚었다.그 모습이 흡사 폭발 직전의 사자 같아서 강소안이 한 번만 더 그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당장이라도 집어삼킬 기세였다.“천무진, 나랑 자겠다는 건 혹시 이혼하기 싫다는 뜻이야?”강소안이 가슴이 조여드는 통증을 느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사실 그녀도 무슨 생각으로 이 질문을 건넸는지 알지 못했다. 천무진의 비아냥을 유도해 이 상황을 모면하려 했지만 저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서 실낱같은 기대가 피어올랐다.천무진이 이혼하기 싫다고 인정해 주기를, 그저 순간의 실수였고 앞으로 임효정과의 관계를 깨끗이 정리하여 평생 강소안과 함께하겠다고 말해주기를 바란 걸지도 모른다.“이혼하는 것과 너랑 자는 게 무슨 상관이지?”천무진의 손등 위로 핏줄이 튀어 올랐고 손가락도 새하얘졌다.강소안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상관있어.”그의 눈동자에 담겼던 욕정이 서서히 걷히기 시작했다.“허튼소리 좀 그만해. 적당히 하라고, 강소안.”2년 동안 강소안이 이런 잔꾀를 부리는 걸 천무진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오늘이 처음이었고 그 수법이 지극히 졸렬했다.속셈이라곤 없었던 여자가 밀당의 수위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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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그러니까 난 그저 천무진이 안방을 채우기 위해 데려온 장식품이자 천씨 가문 어른들의 눈을 가리기 위한 가림막에 불과했다는 말이야?’천무진의 외도 사실보다 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강소안의 안색이 창백해졌고 눈시울이 붉어진 채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고작 며칠 사이에 강소안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렸다.그저 성격이 조금 무뚝뚝할 뿐 그녀에게 정은 있을 거라 믿었던 남편이 알고 보니 그녀를 사랑하지도 않았고 심지어 불륜까지 저지르고 있었다.게다가 다른 목적이 있어서 결혼했다는 진실까지 마주하게 되었다.이혼하겠다는 결심이 더욱더 단단해진 한편 가슴 깊은 곳에서 억울함이 치밀어 올랐다.한참이 지나서야 평정심을 되찾았다.“어떤 집안에서 태어날지는 내가 선택할 수 없었지만 결혼만큼은 내가 선택할 권리가 있어. 사랑이 없는 결혼 따위 난 싫어.”그동안 천무진이 피임을 요구했던 것도 결국 강소안과 아이를 가질 생각이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나중에 때가 되면 강소안을 내치고 임효정과 결혼할 심산이었을 것이다.그때가 되면 강소안은 나이만 먹고 청춘을 통째로 날린 채 지금보다 훨씬 더 처참하고 가련한 처지가 될 게 틀림없었다.만약 소윤지의 말대로 천무진이 평생 임효정을 내연녀로 두고 천무진의 아내 자리를 건드리지 않는다고 해도 강소안은 이 결혼을 지속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천씨 가문의 며느리로 살아가려면 언젠가는 천무진의 아이를 낳아야 했다. 천무진 역시 이 사실만큼은 바꿀 수 없을 것이다.강소안은 아이가 그녀처럼 사랑 없는 집안에서 자라는 걸 원치 않았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무시하고 하찮게 생각하는 모습을 아이에게 보여주며 키울 수는 없었다.“그래. 두 사람이 바람피운 증거를 잡으려면...”소윤지가 밤새 구상해둔 계획을 말하려던 그때 강소안이 말을 가로챘다.“윤지야. 나 간통 현장을 덮치고 싶은 생각은 없어. 그저 이혼만 하고 싶어.”이미 실패한 관계에서 가장 미련한 짓이 진흙탕 싸움을 하며 얽히고설키는 것이었다. 현장을 덮쳐서 잡아내는 건 불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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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천무진이 회사의 부대표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게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닌데 임효정이 멍청하게 아무에게나 꼬투리를 잡힐 리가 없지 않은가?강소안이 머리가 지끈거려 미간을 문질렀다.이토록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을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머릿속이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잠시 생각하다가 낯선 번호를 차단 목록에 넣었다. 두 번 다시 이런 사진이나 영상을 받고 싶지 않았다. 기분을 망칠뿐더러 간신히 다잡은 마음을 또다시 무너뜨리고 비참하게 만들 테니까.아무 말 없이 본가를 나온 바람에 최해숙이 단단히 화가 나 있었다. 따져 묻는 전화에 연신 죄송하다며 진땀을 뺀 후에야 간신히 이 상황을 넘겼다.그 후 이틀 동안 강소안은 월요일에 있을 면접 준비에만 매달렸다. 그러다 보니 우울한 감정도 점차 옅어졌다.월요일 오전 10시, 강소안이 뮤즈 웍스에 도착했다. 데스크 직원에게 방문 목적을 밝히자 직원이 명단을 확인했다.“성함이 어떻게 되시죠?”“강소안입니다.”이력서를 뒤적이던 직원이 멈칫하더니 이내 고개를 들고 말했다.“강소안 씨, 죄송하지만 디자이너 어시스턴트 자리는 이미 채용이 마감되었습니다.”강소안의 시선이 데스크 위에 놓인 이력서 무더기를 훑고 지나갔다.그때 뒤에서 앳된 얼굴의 20대 초반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안녕하세요. 디자이너 어시스턴트 면접 보러 왔습니다.”데스크 직원이 난처한 눈빛으로 강소안을 몇 초간 쳐다봤다가 남자의 이름을 확인하고는 출입증을 건넸다.“이유를 알고 싶네요.”강소안이 비교적 차분한 눈빛으로 직원을 응시했다.지난주 금요일에 연달아 떨어졌을 때부터 이미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있었다.직원이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강소안 씨, 절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 윗선에서 내려온 지시라서요. 이력서를 보니까 일반 졸업생들보다 훨씬 뛰어나시던데 솔직히 회사 입장에서는 안 뽑을 이유가 없거든요. 혹시 누구한테 단단히 미운털이 박힌 일은 없으세요?”강소안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직원에게 인사한 뒤 뮤즈 웍스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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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첫 번째는 레스토랑에서였다. 천무진은 결혼한 지 2년이나 된 아내가 피아노를 칠 줄 안다는 사실조차 몰랐고 강소안을 걸고 실없는 내기를 했다가 졌다.두 번째는 천씨 가문 본가에서였다. 천무진이 강소안과 잠자리를 가지려 했는데 단지 그것뿐이었다.그녀의 결혼 생활을 파탄 낸 장본인인 임효정과는 여태껏 제대로 맞붙어본 적조차 없었다.처음에는 강소안이 보는 앞에서 사람들이 임효정을 사모님이라 불렀다. 두 번째는 강소안이 보는 앞에서 임효정이 천무진의 속옷을 정리했고 그의 침대 위에서 검은색 스타킹과 레이스 브래지어를 꺼내 들었다.이런 일들에 비하면 면접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신 일 따위는 거론할 가치도 없었다.이혼이 심장을 후벼 파도 결국은 이 길을 선택해야만 했다.2년이란 시간 동안 켜켜이 쌓인 감정을 하루아침에 잘라낼 순 없겠지만 길게 고통받느니 짧게 아프고 끝내는 편이 나았다.머리로는 그 모든 이치를 다 알면서도 도무지 미련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소윤지의 말처럼 공들여 화장하고 예쁜 자태로 이혼 도장을 찍으러 갈 자신이 없었다.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강소안은 이른 아침 옅은 화장으로 푸석한 얼굴을 대충 가린 뒤 준비물을 챙겨 집을 나섰다.약속 시간보다 두 시간이나 일찍 가정법원에 도착한 바람에 아직 문도 열지 않았다. 그때 잔뜩 멋을 낸 연인 한 쌍이 스쳐 지나갔다. 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까르르 웃는 두 사람의 얼굴에 행복이 가득했다.그에 반해 강소안의 안색은 잿빛이었고 혼이 빠져나간 사람 같았다.늦가을의 이른 아침 공기가 제법 쌀쌀했다. 가정법원 입구에 우뚝 선 가지가 무성한 두 그루의 나무에서 누렇게 물든 낙엽이 쓸쓸히 흩날렸다.낙엽 한 잎이 강소안의 어깨에 내려앉았고 또 다른 하나가 그녀가 신은 하얀 단화 옆에 툭 떨어졌다.강소안이 초점 없는 눈으로 멀어지는 연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천무진과 혼인신고 하러 가던 날 강소안도 저들처럼 한껏 단장을 했었다. 밝은색 롱 원피스를 입고 까만 긴 머리는 동그랗게 틀어 올려 묶었다.모든 게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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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천무진의 신분을 생각하면 사람들 앞에서 강소안과 실랑이를 벌이기보다는 적당히 타협하고 넘어갈 거라는 걸 강소안은 알고 있었다.사업하면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상황을 꿰뚫어 보던 천무진이라 사람을 간파하는 일에 있어서만큼은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하지만 오늘따라 가정법원 일정을 취소할지 말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천무진이 턱을 괴고 깊은 생각에 잠긴 그때 옆에 있던 손정후가 머뭇거리며 입을 열었다.“사실 일정 취소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 강혁 씨가...”쾅.강소안이 문을 벌컥 열고 숨을 헐떡이며 뛰어 들어왔다.“천무진, 할 말이 있어.”“여긴 어떻게 들어왔어?”천무진의 안색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굳어졌지만 잔뜩 찌푸려졌던 미간이 저도 모르게 슬며시 풀렸다.“1층에서 손 비서님 부하를 만났어.”강소안이 그제야 허락도 없이 쳐들어온 게 몹시 무례한 행동이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부탁하러 왔는데 천무진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어찌 도움을 받을 수 있겠는가?시선을 늘어뜨리자 바닥에 떨어진 일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제일 윗줄에 이렇게 쓰여있었다.[오전 9시, 사모님과 이혼 접수 차 가정법원 동행.]또 문득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집을 나섰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강혁을 도와 변호사를 구해줄까?“강소안, 이제 와서 잘못을 빌기엔 너무 늦었다는 생각 안 들어?”천무진이 의자 등받이에 기대앉으며 핏줄이 선명한 손으로 넥타이를 풀어헤쳤다. 입가에 경멸 섞인 미소가 새어 나왔다.“그게 아니라... 혁이한테 일이 생겼어. 혹시 주 변호사님한테 연락 좀 해줄 수 있어?”강소안이 빙빙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혁이가 운전하다가 사람을 쳤는데 사망했대. 오면서 대충 알아보니까 죽은 사람이 고의로 뛰어든 자해 공갈인 것 같아. 이런 사건이 승소 확률이 희박하다던데 주 변호사님이 나서주시면 분명 승산이 있을 거야. 나 좀 도와주면 안 될까?”교통사고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으니 일단 장모연더러 유가족을 다독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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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강소안이 다급함과 수치심, 그리고 분노로 애가 탔다.그녀 앞의 천무진은 태연하기만 했고 치켜 올라간 눈썹 끝에 그의 오만한 태도가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이런 사람을 내가 협박할 수 있을까? 지금 당장은 통할지 몰라도 나중에 돌아올 천무진의 보복을 감당해낼까?’강소안이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깨물었다.“천무진, 부탁...”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가방 안의 휴대폰이 울렸다. 확인해보니 모르는 번호였다. 중요한 순간이라 전화를 받을 겨를이 없어 끊어버리고는 다시 천무진을 보며 말을 이었다.“혁이만 구해준다면 당신이 하라는 대로 다 할게.”“네가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해?”천무진의 표정과 말투에 강소안을 향한 노골적인 경멸이 담겨 있었다.사실 강소안에게 딱히 바라는 게 없었다. 그저 예전처럼 고분고분 순종하기만 하면 되었다.지금의 강소안은 온몸에 가시를 잔뜩 세우고 있었다. 비록 그 가시가 그를 찌를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런 모습이 몹시 거슬렸다.강소안 혼자만 엄청나게 억울한 일을 당했고 천무진이 무슨 몹쓸 짓이라도 한 것처럼 굴었으니 말이다.강소안은 말문이 막혀버렸다.천무진 앞에서 과연 그를 기쁘게 할 만한 것이 있긴 할까?지난 2년 동안 침대 위에서 그의 조각 같은 얼굴이 그녀로 인해 잠깐 통제력을 잃었던 것을 제외하고 그녀가 뭘 하든 그가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강소안이 시선을 늘어뜨리고 입을 꾹 다물었다.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눈가에 그림자를 드리웠다.천무진이 책상 모서리에 비스듬히 기댄 채 손을 들어 그녀의 턱을 잡아 올렸다. 물건의 값어치를 매기듯 뽀얗고 매끄러운 강소안의 얼굴을 이리저리 뜯어보았다.“이제 뭘 잘못했는지 알겠어?”꿰뚫어 볼 듯한 천무진의 눈빛에 조롱과 비아냥이 가득했다. 며칠 동안 강소안이 간신히 쌓아 올린 알량한 자존심을 조금씩 가루로 만들어 흔적도 없이 흩날려버릴 기세였다.하지만 이것이 그가 내민 유일한 동아줄이었다. 얌전히 잘못을 빌면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서늘한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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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2년 전 강소안이 천무진과 결혼한 이후 아버지 강성일은 관계를 등에 업고 쏠쏠한 이득을 챙겨왔다.강소안이 사업 판을 전혀 모른다는 것을 핑계 삼아 강성일은 아예 그녀를 건너뛰고 천무진과 직접 연락을 주고받았다.처음에는 천무진도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었지만 강성일의 요구가 점차 도를 넘어서자 손정후에게 일 처리를 떠넘겨버렸다.손정후가 강씨 가문의 일들을 전담하게 된 이후 강씨 가문에 이득이 될 만한 일이라면 알아서 도와주곤 했다.처음에는 철저히 공적인 일에 국한되었지만 점차 사적인 일까지 부탁하기 시작했다. 손정후가 이 문제로 천무진의 의중을 물었을 때 천무진은 그저 알아서 처리하라고 지시했다.해줄 수 있는 건 해주고 무리한 요구는 굳이 들어주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강성일이 손정후에게 전화를 걸어 주 변호사와의 연락을 부탁했을 때 손정후는 평소처럼 바로 해결했던 것이었다.그런데 강소안과 천무진이 지금 이혼 소동을 벌이고 있다는 걸 깜빡하고 말았다.조금 전 두 사람이 날을 세우며 주고받은 대화가 손정후에게 엄청난 두려움을 선사했다.몇 번이나 상황을 바로잡으려 끼어들 타이밍을 엿보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에게 입을 열 기회를 주지 않았다.“휴대폰 이리 내.”천무진이 손정후에게 손을 내밀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강소안이 무의식중에 천무진의 손목을 잡았다.“천무진...”하지만 천무진의 눈빛이 무척이나 단호했다. 강소안이 두 손으로 말려봤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천무진의 명령을 감히 거역할 수 없었던 손정후가 휴대폰 잠금을 풀어 천무진의 손에 쥐여주었다.쾅.바로 그때 누군가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대표님, 부대표님께 큰일이 났어요. 빨리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엄청난 굉음에 화들짝 놀란 강소안이 본능적으로 천무진 쪽으로 몸을 움츠렸다.그런데 천무진이 망설임 없이 강소안을 밀쳐버렸다. 그 바람에 튕겨 나가 골반이 책상 모서리에 부딪히고 말았다.극심한 통증에 강소안이 숨을 깊게 들이쉬었고 이마에 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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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택시를 왜 타. 불편하게.”장모연이 현관에 뒀던 차 키 하나를 꺼내 강소안에게 건넸다.“네가 1초라도 지체하면 혁이가 그만큼 더 고생하니까 얼른 가.”택시를 타고 가는 건 확실히 불편했다. 지금 강혁이 처한 상황이 떠오른 강소안은 아픈 것도 신경 쓸 새가 없이 차 키를 받아 든 채 서둘러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1시간 후 주강 법률 사무소.강소안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법률 사무소 입구에 낯익은 이가 서 있는 걸 봤다.아까 급하게 뛰쳐나온 바람에 천무진이 겉옷조차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새하얀 셔츠가 바람에 펄럭였고 두어 번 걷어 올린 소매 아래로 굵은 핏줄이 선명하게 보였다. 묘한 섹시함마저 풍기는 자태였다.그의 옆에 임효정이 안색이 창백한 채로 그의 팔짱을 끼고 서 있었다.두 사람과 마주 서 있는 남자가 바로 주강 법률 사무소의 대표이자 법조계에서 명망이 높은 주태우 변호사였다.천무진과 오랜 친구 사이였지만 이 잘난 친구 때문에 늘 골머리를 앓곤 했다.“무진아, 나 너무 곤란하게 하지 마. 이미 강소안 씨 동생 사건 파악 다 끝냈어.”천무진이 타협의 여지조차 주지 않았다.“파악만 했지, 아직 수임 계약서에 사인 안 했잖아. 효정이 사건 네가 직접 맡아.”그 말에 주태우가 미간을 짚으며 어이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너 같은 놈이랑 친구가 됐는지 원.”“오빠, 변호사님 너무 난처하게 하지 마. 다른 변호사한테 맡겨도 되잖아. 어차피 큰 사건도 아니고 고소가 성립될지도 아직 모르는데.”임효정이 사려 깊은 척하며 간드러지고 가녀린 목소리로 거들었다.“이 녀석이 직접 나서야 승산이 제일 확실하니까 그러지.”천무진이 주태우의 어깨를 툭 쳤다.“수고해줘, 그럼.”무심하게 내뱉은 한마디가 주태우의 마지막 발버둥마저 가볍게 꺾어버렸다. 말을 마친 천무진이 임효정을 부축한 채 떠나려 했다.강소안이 계단 아래에 서서 그들을 지켜봤다. 세 사람의 대화를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똑똑히 들었다. 결국 한발 늦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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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주강 법률 사무소 소속 변호사들이 하나같이 실력이 출중하고 명성이 높았다.비록 천무진이 주태우를 빼앗아가긴 했지만 천무진이라는 뒷배가 없었더라면 강씨 가문의 얄팍한 인맥으로는 다른 유명한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강소안이 항상 끌려다니는 입장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어쩌겠는가? 천무진이 상류층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군림하는 절대 권력자인 것을.천무진은 이제껏 단 한 번도 아랫사람을 함부로 짓밟은 적이 없었고 자선 활동도 꾸준히 해왔다.그런 그가 지금 아내를 벼랑 끝으로 밀어붙인 채 불구덩이 속에서 허덕이는 꼴을 그저 무심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숨통을 완전히 끊어놓지도 않으면서 서서히 피를 말리고 있는 격이었다.주태우가 소개해준 변호사가 바로 주강 법률 사무소의 에이스 변호사 오준섭이었다. 50대 남짓한 나이였다.이미 손에 사건이 있었던 오준섭이 놀란 얼굴로 주태우에게 물었다.“대표님이 직접 맡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저 이미 다른 건을 수임했는데.”“그냥 오 변호사님이 맡아주세요. 전 경험도 부족하고 이번 건이 사회적 주목도도 높으니 오 변호사님이 나서주시는 게 더 나을 것 같아요.”주태우가 그의 수임 계약서를 가져가 훑어보며 말했다.“이 의뢰인께 양해를 구하고 다른 변호사한테 넘기세요. 수임료도 깎아드리겠다고 하고요.”“알겠습니다.”오준섭이 주태우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경험이 부족하다는 건 주태우의 핑계일 뿐이었다. 임효정의 사건을 맡아야 했기에 거절했다는 걸 강소안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녀에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오준섭이 사건의 전말을 꼼꼼히 살피고 강소안이 가져온 차량 블랙박스 영상까지 확인했다.모든 파악을 마치고 나니 두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그가 무거운 숨을 내쉬었다.“강소안 씨, 자해 공갈 사건이 비일비재하지만 승소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제가 변호사 생활만 근 30년인데 그동안 승소한 적이 딱 두 번뿐이었어요.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오준섭이 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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