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2***민서는 택시에서 내려 커다란 대문 앞에 섰다. 등 뒤에서 택시가 떠나는 소리가 들렸다. 당장이라도 돌아서서 그 택시를 멈춰 세우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 내가 잘 하고 있는 것일까? 확신이 들지 않았다. 공연히 벌집을 들쑤시는 꼴이 되지 않을까하는 불안한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그녀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할 수 있다, 한민서. 내가 해야 해.”스스로를 다독인 그녀가 손을 내밀어 초인종을 눌렀다. 아무 응답이 없어 한 번 더 눌렀다.-누구세요?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목을 가다듬고 인터폰에 얼굴을 좀 더 가까이 가져갔다.“김근태 씨 댁인가요?”-그런데 누구세요?“김근태 씨에 대해 할 얘기가 있어서 왔는데요.”인터폰 너머에서 잠시 부산한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여사님, 얼른 문 열어줘요. 우리 근태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요?-하지만 사모님.-근태 소식 안다잖아요!전자음이 들리며 대문이 열렸다.-어서 들어와요.“감사합니다.”민서는 들어가 대문을 닫았다. 그리고 그 안에 넓은 정원을 잠시 둘러보았다. 한숨이 나올 정도로 잘 관리되고 있는 예쁜 정원이었다. 근태가 부자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부자동네로 유명한 곳에 이 정도 규모의 저택에서 살 정도라는 건 몰랐었다. 주눅이 들면서 다시 후회라는 감정이 솔솔 피어올라왔다.저 멀리서 현관문이 열리고 중년 여자가 그녀를 마중 나왔다. 효숙이었다. 그녀는 아직도 정원의 반도 가로지르지 못한 민서를 보고 안달을 냈다. 기다리지 못하고 민서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점점 가까워지는 민서의 얼굴을 확인하고서는 표정이 굳어졌다. 젊은 여자애 얼굴이 얼룩덜룩 엉망이었다. 그녀의 아들이 무슨 일로 유치장에 수감되었었는지 너무도 잘 아는 효숙이었기에 민서가 누구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근태의 행방을 알 수도 있는 사람이 찾아왔다는 반가움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리고, 불편함과 껄끄러움이 생겨났다. 그녀의 걸음이 멈췄다.민서는 효숙을 향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最後更新: 2026-07-28
Chapter: 61그는 먼저 근태가 행방불명이라는 소식부터 전했다. 성진이 근태에게 무슨 짓을 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모두 생략했다. 폭행사건의 피해자인 민서에게 성진의 폭력적인 면을 알려주고 싶지 않았다. 아직도 상처가 다 낫지 않은 그녀였다. 공연히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근식은 그저 근태를 찾는 그의 모친이 경찰에 실종신고를 했고, 민서와 경찰조사를 받을 때 함께 있었던 성진이 의심스럽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잡혔다고만 했다. 곽 경사를 향한 점잖은 욕설이 다소 섞인 설명이었다.민서는 동그란 눈을 깜빡였다. 구속이라니. 그토록 구속되기를 바라마지 않던 근태는 한 번도 구속된 적이 없었는데, 성진이 구속되었다고 하니, 편파적인 공권력에 화가 났다. 그리고 죄책감을 느꼈다. 자신이 아니었다면 성진에게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었다.“그…… 김근태는 괜찮은 걸까요?”의외의 질문에 근식이 미간에 힘을 주었다. 형님이 경찰에 잡혀갔는데 김근태를 걱정하는 건가? 그 개차반 씨발놈을? 하지만 이어지는 민서의 중얼거림에 그의 표정이 편안해졌다.“안 괜찮았으면 좋겠네요. 죽어버린 거였으면 좋겠어. 성진 씨가 감옥에 있는데…… 그 개새끼가 편안하게 있는 건 말이 안 돼.”걱정하지 말라고, 그 개새끼는 우리 형님이 아주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여 없앴다고 말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거렸다.“근식 씨. 제가…… 뭘 해야 할까요?”“네?”“제가 어떻게 해야 성진 씨를 도울 수 있을까요?”민서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워 근식은 웃었다.“기다려 주시면 됩니다. 면회도 몇 번 가 주시면 좋고요.”“그런 거 말고요.”“실력 좋은 변호사님이 형님 사건 맡아주실 겁니다. 그 개새끼가 재판 받는 게 무서워 도망간 걸 가지고 그 개좆만도 못한 경찰 새끼가 건수 잡았다 싶어 엮은 겁니다. 증거도 없으니 곧 풀려나실 거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형수님.”“하지만…… 처음이라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근식은 웃었다.“변호사님한테 얘기 해 놓겠습니다. 변호사 접견은 수시로 가
最後更新: 2026-07-23
Chapter: 60***“야, 한영호.”성진과 통화를 마친 근식이 심각한 표정으로 영호를 불렀다. 소파에 드러누워 핸드폰 게임을 하고 있던 용호가 고개만 돌려 근식을 쳐다보았다.“왜?”“형님이 김현식 국장이랑 통화할 때 누구 전화로 했냐?”“내꺼.”“강원도 갈 때 네 차도 끌고 갔었나?”“형님 차에 얹혀 가느라 안 가져갔었지.”막힘없는 용호의 대답에 근식은 잠시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머릿속이 정리가 된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형님 구속되셨다. 압수수색 나온다고 하니까 너는 당분간 시온으로 출퇴근하는 걸로 하자. 핸드폰은 바꿔야 할 것 같다. 압수 목록에 네 이름이 있을 것 같진 않은데, 일이 어떻게 풀릴지 모르는 거니까. 너는 그 날 형님이랑 애들 데리고 밤낚시 간 거다.”심드렁한 표정으로 누워있던 용호가 근식의 말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씨발 것들. 핸드폰 바꾼 지 얼마 안됐는데.”“증거 될만한 건 없지?”“우리 물고기님들께서 부지런히 그 새끼 뜯어먹어주셨다면 없지. 그 새끼 달아오던 때도 흔적 안 남기려고 별 지랄을 다 떨었는데 증거가 있겠냐?”주섬주섬 소지품을 챙긴 용호가 사무실 출입문을 열다 말고 근식을 돌아보았다. 그는 빨리 안 가고 뭐하냐는 표정으로 눈을 부라리는 근식을 향해 손가락 키스를 날렸다.“고생해, 자기.”“씨발 새끼가, 저 병 또 도졌네.”질색하는 근식을 향해 신나게 웃어준 용호가 갔다. 근식이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몸서리를 쳤다. 가장 큰 건더기를 처리했으니 잔잔바리들을 처리할 차례였다. 그는 강릉까지 근태를 실어간 동생들을 불러 잡도리했다. 그들은 성진이 근태를 어떻게 처리했는지 직접 눈으로 지켜봤던지라 기강이 바짝 서 있는 상태였다. CCTV를 잘 피한 건 물론이고 서울을 벗어나는 과정도 여러 단계를 거쳐 조심해 꼬리가 잡힐 일이 없다고 장담했다. 혹시라도 흔적이 남아 걸리게 되더라도 조직에 피해가 가는 일이 없게 하겠다고 입을 모았다.근식은 다 같이 술이나 한 잔씩 하라며 지갑에서 오만원권 너댓 장을 꺼
最後更新: 2026-07-18
Chapter: 59현식이 문을 열고 들어가자 효숙이 마중을 나왔다. 며칠 동안 시커멓게 죽은 낯빛으로 사람이 들어오건 말건 신경도 쓰지 않던 사람이 이렇게 태도가 바뀐 것이었다. 역시 그 깡패새끼의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는 가방을 받아드는 효숙을 노려보았다.“왜요.”가방을 받아주었음에도 꼼짝 않고 서 있는 남편을 향해 효숙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경찰 쪽에 힘을 써 줄 사람이 남편 밖에 없었기에 그의 비위를 맞춰주러 나온 마중이었다. 절대로 남편을 향한 원망이 누그러진 게 아니었기에 목소리가 곱게 나오지 않았다.“당신, 경찰서에 갔었어?”“어떻게 알았어요?”“경찰서에…….”현식은 치밀어오르는 화를 꾹 누르느라 잠깐 말을 멈췄다.“근태 실종 신고 했어?”“네. 했어요. 그걸 어떻게 알았냐고요.”“도대체 누구 허락을 받고? 왜 쓸 데 없는 짓을 해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느냐고!”일을 벌려놓고 당당한 효숙의 태도에 근식은 폭발했다. 손가락질을 하며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다. 효숙이 당황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뒤이어 그녀에게도 분노가 들끓었다.“쓸 데 없는 짓? 쓸 데 없는 지잇? 지금 우리 근태 실종신고 한 게 쓸 데 없는 짓이라고 한 거예요, 당신?”“쓸 데 없는 짓이지, 그럼? 왜 물어보지도 않고 일을 만드냐고!”효숙이 현식의 가방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우리 아들이 사라졌어요! 연락도 안 돼서 불안해하는 나한테 당신, 뭐라 그랬어요? 조용히 반성하면서 공부나 하라고 대전 사찰에 보냈다면서요? 없대요! 대전 그 어느 사찰에도 우리 근태가 없었대요! 그래서 했어요, 실종 신고. 애 아빠라는 사람이 안 찾아주니까 경찰한테 찾아달라고 하려고요!”“내가 보냈댔잖아! 좀 잠잠해지면 어련히 알아서 잘 데리고 올까! 여편네가 겁도 없이 어딜 나서?”“그러게 물어보면 대답을 해주던가! 당신이 먼저 날 불안하게 만들었잖아요! 나라고 뭐, 좋아서 경찰한테까지 찾아간 줄 알아요? 오죽 답답했으면 그랬을까!”잘못을 빌기는커녕 되레 따지기 시작하는 효숙의
最後更新: 2026-07-14
Chapter: 58근식은 아직 성진에게 해야 할 말이 남아 있었다.“형수님. 우리 지영이가 칵테일을 한 번도 못 마셔봐서 그런데요. 예전에 그 커피 맛 나는 칵테일 한 번 만들어주시면 안 되겠습니까?”근식이 던졌고.“어머! 커피 맛 나는 칵테일이요? 그런 게 있어요? 궁금해요, 언니! 아니, 힘드신데 무리하지 마세요.”“아니에요, 지영 씨. 힘들지 않고 어렵지도 않아요. 재료만 있으면…… 여기 주류 코너가 어디 있었던 것 같은데…….”“있어요, 주류 코너! 제가 알아요!”지영이 덥석 물었다. 그녀는 다시 민서의 팔짱을 끼고 조잘조잘 떠들면서 걸어갔다.“제가 또 한 커피 하거든요. 언니도 전에 제 커피 맛있다고 하셨죠? 그게 또 기술이 있어야 하거든요.”멀어지는 지영의 목소리를 배경삼아 근식이 말을 꺼냈다.“신경 쓰이는 점이 있습니다, 형님. 그 여자가 시온에 명함을 들고 찾아왔다고 하더라고요.”“명함? 늬들 명함 함부로 뿌리고 다녀?”“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애초에 가지고 다니는 애들도 없고요. 얍실이 말로는 그 여자가 아들 방에서 찾았다고 했답니다.”“귀찮게 됐네. 실종신고 한 경찰서가 어디래?”“그것까지는 안 물어봤지만, 뻔하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개주둥이 곽 경사가 냄새 맡고 덤벼들지 않겠습니까?”근식의 걱정스러운 목소리에 성진이 피식 웃었다.“건수 잡았다고 신나있겠군.”“직접적인 증거 같은 건 못 찾을 겁니다. 경찰서 앞에서 달아 올 때도 신경 많이 썼고요, 작업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고 했습니다.”“그 새끼가 언제는 증거 가지고 덤비든? 지 꼴리는 대로 잡아들여 족치는 종자인데.”말의 내용과는 다르게 성진은 느긋한 표정이었다.“따로 생각해 두신 게 있습니까? 별로 걱정 안 되시는 거 같은데요.”“글쎄. 힘 써 줄 사람이 있을 듯도 해서.”성진이 말한 사람이 누구일까 생각하는 사이에 주류 코너에 도착해버렸다. 근식은 생각을 멈췄다. 지영이 여러 병의 술을 들고 오는 게 보였기 때문에 머리가 아파졌기 때문이었다.“형수님. 생각해보니까
最後更新: 2026-07-05
Chapter: 57***“언니! 여기 좀 와 봐요!”사람들 속에서 지영이 손을 번쩍 들고 흔들어 민서를 불렀다. 민서가 웃으며 마주 손을 흔들며 그 쪽을 향해 걸어갔다.“이게 맞는 거야?”“맞다고 봅니다, 형님.”태연한 표정의 근식이 카트를 밀면서 민서의 뒤를 따라갔고, 성진은 난감한 표정으로 뒷머리를 긁적였다. 영 어색하고 불편했지만 근식이 맞다고 하니 별 수 없었다.지영이 시식코너에서 만두를 집어 민서의 입에 쏙 넣어주고 맛있지 않냐며 호들갑을 떨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옆으로 다가간 근식이 입을 벌리자 잠시 인상을 쓰긴 했지만 근식의 입에도 만두 반쪽을 넣어주었다. 지영에게 만두를 받아먹을 생각이 없었던 성진은 멀찍이 서 있었다.“언니.”지영이 민서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툭 치면서 시식용 이쑤시개 새 것을 쥐어주었다. 영문을 몰라하는 민서에게 눈빛과 얼굴 근육을 최대한으로 이용해 성진을 가리켰다. 그리고 직원이 튀겨내 반으로 잘라놓은 만두와 성진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민서가 쿡쿡 웃으며 이쑤시개로 만두를 콕 찍었다. 그리고 성진을 돌아보았다. 민서가 먹여준다는데 마다할 리 없는 성진이었다. 큰 걸음으로 민서에게 다가가 받아먹었다.“맛있죠? 뭐, 언니가 주는 건데 돌멩이도 맛있다 해야지. 이모, 그거 주세요. 두 개.”“나한테는 안 물어보냐?”“내가 해주는 건데 맛없으면 안 먹으려고?”성진에게 생글생글 웃어보이던 지영은 근식을 향해 눈을 샐쭉하게 떴다.“그럴 리가.”직원이 건네주는 냉동만두 두 봉지를 근식이 밀고 온 카트에 담은 지영은 민서의 팔짱을 끼고 조잘거리며 걷기 시작했다.“보십쇼, 형님. 저 년은 저보다 형님을 더 좋아한다고요. 형님이 귀엽다 어쩐다 말해주면 쪼르르 달려갈 거라니까요.”근식이 투덜댔고 성진은 웃었다.지영이 냉동고에서 또 뭔가를 꺼내드는 것을 본 근식이 그 쪽으로 카트를 밀고 가려는데, 그의 주머니 안에서 핸드폰이 부르르 떨었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발신인을 확인한 근식의 표정이 굳었다. 성진은 근식의 손에서 카트 손잡
最後更新: 2026-07-04
Chapter: 45차시트에 몸을 기대고 차창을 향해 고개를 돌린 성아는 눈을 뜨고 있었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이 복잡하게 얽혀 잠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잠시 서울을 떠나 맑은 공기 속에서 내려놓았던 긴장이 다시 올라온 느낌이랄까. 민영이 제시하고 모두가 받아들인 '대놓고 양다리'는 성아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그녀는 편하지가 않았다. 형민을 만날 때면 용규를 생각해 몸을 사리고, 용규와 있을 때는 형민 때문에 조심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다. 두 사람과의 데이트는 즐거웠지만, 그런 것들이 그녀에게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가 되고 있었다."성아 씨, 이제 그만 일어나요."어깨를 가볍게 흔드는 용규의 손짓에 성아는 눈을 떴다. 어느 새 어둑해진 차창 밖으로 눈에 익은 골목이 보였다. 출발할 때 그녀가 알려 준 그녀의 동네 어귀였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저도 모르게 잠든 모양이었다. 시계를 보니 6시가 지나 있었다. 예상했던 시각을 훨씬 지난 시간이라 성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용규를 돌아보았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듯 웃었다. "잠든 모습이 좀 예뻐야 말이죠. 도대체 뭘 믿고 코 고는 소리까지 예쁜 겁니까, 성아 씨는?"누가 선수 아니랄까봐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멀쩡한 낯빛으로 잘도 뱉어낸다 싶어 성아는 푸스스 웃었다. "어제 오늘 이래저래 고마웠으니까 그런 실없는 소리는 용서해 줄게요. 안녕히 가세요."용규는 팔을 뻗어 발치에 내려놨던 가방을 챙겨드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굿바이 키스는 없어요?""오늘 제 입술이 좀 피곤하다네요. 며칠은 쉬게 해주고 싶어서요."부기도 다 빠졌구만. 아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신 용규가 마지 못해 성아의 손을 놓아주었다. "사진 뽑아서 월요일에 병원으로 갈게요.""네."본인은 아쉬워 죽겠는데, 조금의 미련도 없이 차에서 내려 손을 흔드는 성아의 모습을 보니 약이 올랐다. 차에서 내려 그녀를 잡고 밀어붙여 강제로 키스를 진하게……. 용규는 피식 웃었다. 강제로 뭘 해볼 생각이었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을
最後更新: 2026-05-05
Chapter: 44늦은 아침을 먹고 용규는 성아와 함께 콘도 뒤쪽의 산책로를 걸었다. 당장이라도 콧노래를 흥얼거릴 것 같이 신난 표정의 용규와는 달리, 묵묵히 뒤를 따르는 성아의 표정은 뚱했다. 가벼운 걸음으로 앞서가는 용규의 뒤통수를 노려보기도 하고 입술을 삐죽 내밀어 입안으로 구시렁거리기도 하는 모양이 뭔가 불만스러운 게 있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용규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길이 험해 힘들거나 그렇진 않죠?"표정을 정돈하거나 가다듬는 기색 없이 힐끔 쳐다보는 성아 때문에 용규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성아 씨, 힘들어요?""네! 힘들어 죽겠네요!"불퉁스런 그녀의 목소리에 용규가 손을 내밀었다."그럼 얘길 하지 그랬어요. 출발할 때 손 잡자는 거 굳이 뿌리치더니. 좀 쉬었다 갈까요?""아뇨. 지금 힘든 건 다리가 아니라서요."성아의 대답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녀의 몸을 한 차례 훑어본 용규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말 뜻을 이해한 것이다. 화장기 없는 말간 얼굴에 유난히 붉은 색을 띤 입술, 그 입술이 살짝 부어 있었다. 보이지 않는 안쪽에는 그가 이로 물어 생긴 작은 상처도 있을 터였다. 키스 외에 아무 것도 못 하게 한 성아에 대한 심술로 아침부터 키스를 좀, 아니 과하게 했었다. 목덜미 쪽으로 손을 대는 것조차 못하게 하길래 입술을 깨물어 살짝 피맛을 봤더니 그 이후로는 키스도 못 하게 했다. 뭐, 그 이상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욕구불만은 남았지만 키스는 원없이 했다는 생각에 그러자 했다. 깔끔하게 포기하고 물러서는데도 성아는 가볍게 눈을 흘기며 입술을 비죽 내밀었더랬다. 그러고 보면 그녀가 지금 툴툴대는 건 힘들어서라기보다는 아침의 '과한 키스'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는 거였다. 그녀의 행동, 말투 하나하나가 귀여워서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여기서 드러냈다간 또 뭐라 꼬투리를 잡고 투덜댈 것 같아 짐짓 입꼬리에 힘을 주었다. "다리가 아니라면... 그럼 어떻게 해줄까요? 원하는 대로 해 줄게요.""됐네요.
最後更新: 2026-05-05
Chapter: 43한참동안 욕실에서 몸을 식힌 용규는 잠시 부시럭거리더니 어느 새 하나 뿐인 침대에서 고른 숨을 내뱉으며 잠이 들었다.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던 성아는 작게 웃었다. 용규에게 관심 없는 척하려 눈도 돌리지 않고 있었지만 귀를 세워 그의 움직임을 모두 듣고 있던 그녀였다. 그가 잠들었다는 확신이 생기자 마음이 놓이며 저도 모르게 웃고 만 것이었다. 용규에게 말한 대로 성아는 지금 있는 곳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도시의 소음이 사라진 적막함, 방 안에서 새어나오는 스탠드 불빛과 별빛을 제외한다면 완벽하다 할 수 있을 어둠, 나무 냄새가 실린 청량한 바람 끝에 느껴지는 쌀쌀한 기운까지. 지쳐있던 성아의 몸과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느낌을 주었다. 민영의 권유로 시작한 '대놓고 양다리'는 이제 겨우 시작이었다. 용규의 갑작스러운 스케줄 때문에 형민과는 연달아 세 번의 데이트를 했고, 그 세 번의 데이트를 한 번에 만회할 정도의 여행을 오게 된 것까지. 스코어를 매긴다면 1대 1이라 할 수 있었다. 민영은 마음 놓고 즐기라고 했지만, 성아는 이 상황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형민과 데이트를 할 때에는 용규가 신경 쓰였고, 이렇게 용규와 있다 보니 형민이 생각나서 무턱대고 즐길 수가 없었다. "양다리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봐."피식 웃음과 함께 자조 섞인 목소리가 어둠 속에 흩어졌다. 성아는 몸을 일으켰다. 담요를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차가운 산공기에 조금씩 몸이 떨려오는 중이었다. 그녀의 시선이 용규가 잠들어 있는 침대와 의자 사이를 몇 번 오갔다. 잠시의 망설임 후, 그녀는 침대로 가 엉덩이를 걸쳐 앉았다. 스탠드 불빛에 비친 용규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을 뜨고 있으나 감고 있으나 잘생긴 건 여전했다. 한 번 찔러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으나, 잘못해서 그가 깨기라도 하면 큰일이었다. 겨우 달래놨는데 들쑤셔서 덤벼들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 성아는 쿡쿡 웃으며 용규 옆에 누웠다. 두껍지 않은 이불을 통해 느껴지는 사람의 온기에 몸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最後更新: 2026-05-03
Chapter: 42욕실로 들어간 성아가 나오길 기다리다 용규는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화장을 지우고 양치를 마친 성아가 욕실에서 나오다 피식 웃었다. 용규의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이럴 거면서 흑심은 뭐하러 내보였는지. 실랑이할 일은 없겠다 싶어서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하며 성아는 창가로 갔다. 산속이라 그런지 날씨가 제법 찼다. 잠시 밖을 내다보던 그녀는 담요와 의자를 끌어와 창가에 자리 잡았다. 이 곳에서 보는 하늘과 서울에서 보는 하늘, 그게 그거고 거기서 거기일 텐데 어쩌면 이렇게 다를까. 검은 융단같이 부드러운 검은 빛의 밤하늘에 촘촘히 박혀있는 무수히 많은 별들. 가끔 TV에서 그래픽으로 만들어놓은 많은 별들이 나올 때면 코웃음을 쳤더랬다. 아무리 별이 많다 하더라도 눈으로 볼 수 있는 별이 저렇게 많을 리가 있겠냐며, 어설프게 많이 만드느니 적당하게 만드는 게 현실적이라고 비웃었더랬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 보인 밤하늘은 말 그대로 비현실적이었다. 컴퓨터 그래픽으로는 흉내도 못 낼 아름다움이 거기에 있었다. 성아는 그만 매료되어버렸다.어깨에 두른 담요를 가슴 앞에 모아 쥐고 하염없이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성아는 뒤에서 어깨를 안아오는 팔에 깜짝 놀랐다. 잠들어 있던 용규가 언제 일어났는지 뒤에서 그녀를 안고 목덜미 움푹 파인 곳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아, 일어났어요?""깜빡 잠들었네요. 깨우지 그랬어요.""많이 피곤해 보였어요. 가서 더 자요."용규는 어깨를 안은 팔을 풀어내려 하는 성아의 손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팔에 힘을 주어 그녀를 더 꼭 안았다. "성아 씨랑 같이 있는데 잠은 무슨. 다 깼어요."용규는 볼에 닿는 성아의 귓불에 부비적거리며 얼굴을 문질렀다. 보드라운 살결이 주는 감촉이 말할 나위 없이 좋았다. 그에게서 벗어나려 몇 번 버르적거리던 그녀가 가볍게 한숨 쉬는 소리가 들렸다. 포기한 듯 하늘을 다시 올려다보는 게 또 마음에 들어 슬며시 웃음지었다."별이 참 많죠?""그러네요
最後更新: 2026-05-02
Chapter: 41용규의 손이 멈췄다. 이거 잘못 들은 거 아니지? 그는 품에서 성아를 살짝 떼어내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희미하긴 했지만 그녀의 얼굴 위에 보인 것은 웃음이었다."그렇게 예쁜 사진을 찍는 용규씨가 제일 좋아한다는 그 풍경, 보고 싶다고요."용규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성아는 몇 가지 조건을 걸고 난 후에야 강원도행을 받아들였다.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일단 가고 나서 생각하는 거지. 두 사람은 다시 차에 올랐다.부쩍 짧아진 해가 산 너머로 자취를 감춘 후에야 도착한 곳은 강원도의 팬션 단지에서 조금 더 들어가 고즈넉한 산 중턱에 자리잡은 펜션이었다. 어슴프레하게 보이는 정원이 제법 넓었고, 불을 밝힌 건물 두 채는 통나무로 지은 2층집이었다.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달라진 공기였다. 맑고 신선할 뿐 아니라 엷게 나무 내음과 풀내음까지 섞여있어 향기롭기까지 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숨을 깊게 들이쉬는 성아를 보며 용규가 웃으며 말을 건네왔다."나쁘지 않죠? 지금은 어두워서 안 보이는데, 저기 뒤쪽에 산책로가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곳이죠. 내일 날 밝으면 같이 가요.""네."이것저것 설명하는 용규를 따라 걸음을 옮기다보니 주인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와 용규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가벼운 욕설이 섞이는 걸 보니 꽤 가까운 사이인 것 같았다. 그는 성아에게도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왔다. "어서 오세요, 제수씨. 강충식입니다. 이 자식 눈이 높은 건 진작 알고 있었지만, 정말 미인이십니다.""아, 안녕하세요, 김성아예요. 제수씨는 아니고요, 여기 굉장히 예쁘네요.""핫핫핫, 제수씨 마음에 드신다니 다행입니다. 언제든 놀러오세요. 제수씨 같은 미인이면 언제나 환영입니다."호탕하게 웃어젖히는 남자가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성아는 잠시 숨을 고르고는 그 손을 마주잡았다. "제수씨 아니라 김성아예요. 예쁘게 봐 주셔서 감사한데 그 호칭은 다음에 받을게요.""다음에? 아, 아직 아닙니까? 너 이 자식 여태 뭐 한 거야?"조금
最後更新: 2026-05-02
Chapter: 40그럼 그렇지. 이까짓 거 필요 없어! 확 쳐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바로 옆에서 흥미진진한 얼굴로 지켜보는 여자가 둘이었다. 속 좁게 구는 모습을 보일 수는 없지 않은가. 대범하게 하하 웃으며 받아들어야 했다. 하지만 고맙다는 소리는 죽어도 하기 싫었다."뭘 이런 걸 다."마지못해 열쇠고리를 받아든 형민을 향해 용규가 씩 웃었다. "뇌물 받으셨으니 청탁도 하나 받으시죠? 10분 일찍 퇴근시켜 주세요."가뜩이나 배알이 꼴린 상황인데 기름을 들이붓는 용규 덕에 형민은 당장 내 병원에서 나가 소리를 지르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다. 전에 영화 볼 때, 성아를 놓쳐선 안 되는 거였다. 그날 게임을 클리어 했다면 이 기분 나쁜 꼴을 보지 않을 수 있었을 터였다. 뿐이겠는가. 저 뺀질뺀질한 얼굴이 패배감에 물드는 통쾌한 모습도 볼 수 있었을 게다. 지나간 일을 후회해서 무엇하겠냐마는, 치솟아 오르는 아쉬움을 달랠 길이 없었다. 형민은 성아를 돌아보았다. 여상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여자 속을 뒤집어 탈탈 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그는 이를 뿌득 갈았다. "김 선생님 업무 마치시면 그리 하시던가요."성아에게 차트 더미를 떠안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괜한 심술이 일어 떠안긴 일거리라 좀 미안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그러지 않았다면 무려 10분이나 일찍 그녀를 보낼 뻔하지 않았는가. "일 많이 남았어요?" 형규가 접수대 위로 몸을 기대며 성아에게 물었으나, 대답은 민영에게서 나왔다."어우, 많이 남긴요. 끝났어요, 끝났어. 마무리는 나 혼자서도 충분하니까 데려가요, 용규씨.""그렇다네요, 의사선생님?"용규의 웃는 얼굴이 너무너무 얄미워 한 대 치고 싶었으나, 형민은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속좁은 짓은 차트더미로도 넘치게 했으니, 이제 대범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주말 잘 보내시고 월요일에 뵈어요.""데이트 잘 해요, 김 선생!""다음에 또 뵙겠습니다.""선물 잘 먹고 잘 쓸게요. 고마워요, 용규씨."즐
最後更新: 2026-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