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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los capítulos de 나만의 ‘미래’를 향해: Capítulo 1 - Capítulo 9

9 Capítulos

제1화

승무원이 카트를 끌고 다가올 때쯤에야 강지후는 불현듯 나를 떠올렸다.그는 수박 주스 한 병을 골라 다정하게 뚜껑까지 따고는 한여생 앞에 놓아주었다.정작 나한테는 생수 한 병을 건넸다.“미래야, 너 뭐 마시고 싶은지 몰라서 그냥 물로 샀어.”한여생이 수박 주스를 즐겨 마신다는 건 기억하면서, 정작 여자친구인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몰랐다.코끝이 핑 돌며 서러움이 밀려왔다.기대 이상의 성적을 확인하고 잠시 차올랐던 기쁨도 순식간에 사라졌다.나는 생수를 건네받는 대신 승무원을 불러 직접 수박 주스 한 병을 결제했다.생수병을 든 강지후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얼굴에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졸업 여행 가자고 떼쓴 건 너잖아. 진짜 이해가 안 가네. 왜 내내 굳은 얼굴로 인상만 쓰고 있는지.”3년 전, 강지후는 나한테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자며 청해도 졸업 여행을 약속으로 내걸었다.지난 3년 동안 둘이서 바다를 보고 스쿠터를 타며 일출을 감상하는 풍경을 꿈꿔왔건만, 이제 와서 내가 억지로 떼를 써서 온 여행이 되어버렸다.심지어 출발 직전에서야 한여생도 데려간다는 사실을 알았다.바다에 도착한 첫날, 강지후는 내가 직접 만든 여행 일정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이때 한여생이 다가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가야 할 곳이 너무 많다... 나 오늘 신발도 불편한데.”그러자 강지후는 원래 계획했던 모든 일정을 취소했다.내가 며칠 밤을 새우며 정성껏 준비한 일정표를 휴지통에 무심하게 던져버렸다.“미래야, 놀러 왔으면 좀 즐겨. 굳이 계획대로 안 움직여도 되잖아.”그러고 나서 우리는 청해도의 유명한 포토 스팟으로 향했다.한여생이 얼굴을 붉히며 내게 물었다.“솔아, 나 지후랑 같이 사진 찍어도 돼? 혼자서는 포즈 잡기도 어색하고 너무 뻘쭘하네.”하지만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강지후는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억지로 쥐여주었다.“미래야, 난 대충 찍어도 되니까 여생이만 예쁘게 나오게 해줘.”나는 조소를 흘렸다. 이제는 거절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바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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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KTX 역에서 나서자, 강지후는 한여생의 캐리어를 끌며 앞장섰다.나는 그 뒤를 조용히 따라갔다.출구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앞에는 이미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차례가 되어 막 발을 내딛는 순간, 정원 초과를 알리는 경고음이 요란하게 울렸다.한여생은 아직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했다.그 순간, 강지후는 내 캐리어를 밖으로 슬그머니 밀어내더니 한여생의 팔을 잡고 끌어당겼다.“미래야, 네 캐리어가 커서 자리를 너무 많이 차지하네. 다음 거 타고 올래? 우리는 출구에서 기다릴게.”따져 물을 새도 없이 엘리베이터 문이 닫혀버렸다.밖에 홀로 남겨진 내 옆으로 KTX 한 대가 빠르게 지나갔다.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고, 그 서늘함은 뼛속까지 스며들었다.겨우 출구로 걸어 나왔을 때는 두 사람의 모습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원래 마중 나오기로 약속했던 부모님 역시 흔적조차 없었다.여름 날씨는 야속하리만큼 변덕스러웠다.툭, 툭 떨어지던 빗방울은 어느새 거센 장대비가 되어 쏟아졌다.우산이 없던 나는 부랴부랴 처마 밑으로 몸을 피한 뒤 부모님께 전화를 걸었다.30분 동안 통화를 시도한 끝에야 마침내 연결되었다.“솔아, 너 차 안 탔냐? 어이쿠, 아빠가 정신이 없어서 네가 이미 차에 탄 줄 알았지 뭐니.”엄마는 핀잔을 늘어놓으며 휴대폰을 빼앗아 갔다.“이게 네 아빠가 칠칠치 못한 탓이야. 아무튼 우리 집에 거의 다 도착했으니까 너는 혼자 택시 타고 와.”억수같이 쏟아지는 장대비를 바라보고 있자니, 눈가에 차오른 눈물 때문에 시야가 흐려졌다.4인용 차에 사람 한 명 빠졌는데도 그 누구 하나 눈치채지 못했다.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이 집에서 투명 인간 존재가 되어버린 게.외곽에 새로 생긴 KTX 역이라 택시 잡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날이 까맣게 어두워지고 나서야, 나는 손님을 막 내려준 택시 한 대를 겨우 잡아탈 수 있었다.온몸이 흠뻑 젖은 나를 보던 기사님이 글로브 박스에서 수건 한 장을 꺼내 건넸다.“학생, 몸 좀 닦아요. 감기 걸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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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다음 날 아침 일찍, 1층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잠에서 깼다.어지럼증에 겨우 몸을 일으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강지후가 번듯하게 차려입은 채 거실에 앉아 있었다.나를 발견한 그가 손을 흔들었다.“미래야, 오늘 졸업식인데 왜 아직도 준비를 안 하고 있어?”고열로 의식이 몽롱했던 탓에 단톡방에 올라온 공지를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다.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한여생이 방에서 걸어 나왔다.그녀의 몸에 걸친 드레스는 내가 6개월 전부터 직접 만드는 법까지 배워가며 손수 제작한 옷이다.새끼 토끼와 작은 여우 자수가 새겨진 디자인, 강지후가 입은 옷과 커플룩이다.고작 옷 두 벌을 완성하기 위해 손가락을 몇 번이나 바늘에 찔려가며 피를 흘렸는지 모른다.한여생은 드레스를 입은 채, 어쩔 줄 몰라 하며 치맛자락을 조심스레 움켜쥐었다.“솔아, 나 이 옷 진짜 마음에 드는데... 이모가 나한테 잘 어울린다고 그냥 입으라고 하셨거든. 혹시라도 기분 나빴다면 지금 바로 벗어서 줄게.”하지만 말과 달리 치맛자락을 움켜쥔 손에 힘이 점점 더 들어갔다.강지후가 허둥지둥 뛰어와 한여생의 앞을 막아섰다.“너한테 예쁜 드레스 많지 않아? 여생은 딱 이거 하나 입고 싶다는데 왜 사람 눈치 보게 만들어!”인기척을 듣고 나온 엄마도 한마디 거들었다.“너는 애가 무슨 매사에 그렇게 치사하게 굴어? 내가 여생이 보고 입으라고 했다. 옷 한 벌 가지고 유난은. 넌 그냥 다른 거 고르면 되지.”울컥하는 마음에 목이 꽉 막혔다.“난 벗어달라고 한 적 없는데요?”하지만 아무도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다.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내려왔을 때, 그들은 또다시 나를 혼자 두고 학교로 떠난 뒤였다.졸업식이 진행하는 대강당.강지후와 한여생이 우수 졸업생 대표로 단상에 올라 선서했다.커플룩을 입고 나란히 선 두 남녀는 유난히 잘 어울렸고, 그야말로 완벽한 한 쌍이다.처음 신어보는 하이힐에 한여생이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 강지후는 곁에서 지극정성으로 그녀를 보살폈다.대표 연설이 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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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졸업식이 끝나고 다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그나마 한여생이 말을 꺼낸 덕분에, 부모님과 강지후는 뒤늦게 나를 떠올렸다.“솔아, 너 왜 또 혼자 딴 데 가 있어.”나는 아무 말 없이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당연한 듯 맨 뒷좌석으로 향했다.그들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각자 자리를 잡고, 대학교와 전공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여생아, 지후랑 같은 대학교 가니까 얼마나 다행이야. 지후가 옆에서 잘 챙겨줄 테니 우리도 마음이 놓이네.”한여생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떤 전공을 선택할지를 두고 부모님의 의견이 갈려 티격태격 다툼까지 벌어졌다.하지만 결국은 한여생이 원하는 대로 결정이 났다.“여생이야 야무지고 자기 주관도 확실하잖아. 솔이처럼 속 썩이는 애도 아니고, 우리가 걱정할 게 뭐 있니.”나는 내내 입을 다물고 있었다.집에 거의 다 왔을 때쯤에야 그들은 맨 뒷좌석에 있는 나를 발견했다.엄마가 물었다.“솔아, 너는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니?”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강지후가 먼저 입을 열었다.“이모, 미래 이번에 시험 망쳐서 재수해야 할 것 같아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저랑 여생이가 먼저 경국대 가서 자리 잡아놓을 테니까, 미래는 내년에 저희 찾아오면 돼요.”부모님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한숨을 내쉬었다.“솔아, 너는 진짜 여생이 반이라도 닮아봐라. 속 좀 안 썩이게.”나는 눈을 깜빡였다. 눈물이 휴대폰 위로 툭 떨어졌다.화면에 선명하게 뜬 1등급 점수가 유난히 눈에 거슬렸다.그들은 단 한 번도 내게 성적을 물어본 적이 없었다.그저 강지후의 말 한마디에, 시험을 망쳐 재수할 거라고 섣불리 단정 지었을 뿐이다.나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이 사주셨던 액세서리들을 하나씩 처분하기 시작했다.강지후가 매년 생일과 기념일마다 챙겨준 선물들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거기에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둔 세뱃돈까지 더하니 제법 쏠쏠한 목돈이 만들어졌다.이 정도면 등록금은 물론, 홍문시에 도착해 처음 몇 달간의 생활비로도 충분했다.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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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툭, 휴대폰이 바닥으로 떨어졌다.엄마는 멍하니 제자리에 굳어버렸다.아빠 역시 엄마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이내 휴대폰을 집어 들고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다시 물었다.“선생님, 뭐 착각하신 거 아니에요? 여생이조차 2등급 맞았는데, 미래가 어떻게 그런 점수가 나와요?”담임 선생님은 기가 막혔다.도대체 어떤 부모가 자식에게 이토록 무관심할 수 있는지, 뒤늦게 성적을 안 것도 모자라 기뻐하기는커녕 의심부터 하는 게 당최 이해되지 않았다.“아버님, 제가 몇 번을 확인했어요. 미래 학생 이번에 정말 시험 잘 봤습니다. 틀림없는 1등급이에요.”아빠는 순간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며 의자에 주저앉았다.그때, 단상 위 진행자가 한여생의 부모로서 소감을 발표해 달라며 그들을 불렀다.연회장의 모든 조명이 두 사람의 얼굴로 향했다.그러나 안색은 하나같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모두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억지로 지어 보이는 미소는 어딘가 기괴하고 흉물스럽기까지 했다.축하 행사가 모두 끝나고, 친척들이 한데 모여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이모가 문득 엄마를 바라보며 물었다.“근데 미래는 왜 안 왔어? 원래 이런 시끌벅적한 자리는 제일 먼저 쫓아오는 애잖아.”엄마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고, 아무 말도 꺼내지 못했다.‘맞아, 솔이는 원래 이런 파티나 축제라면 누구보다 먼저 달려들었지.’언제부터였을까. 아이의 말수가 줄어들고, 더 이상 그 무엇도 함께 나누지 않게 된 것이.예전에는 모의고사 성적이 겨우 1점만 올라도 품에 안겨 응석을 부리며 선물을 달라고 떼를 썼는데.하지만 무려 수능에서 엄청난 성적을 거두고도 내색조차 안 했다.엄마는 울컥하는 마음에 목구멍이 꽉 막혔다. 씁쓸함이 물밀듯이 밀려왔다.큰아빠가 다가와 아빠에게 두툼한 봉투를 내밀었다.“우리 미래 줄 용돈이다. 도통 보이질 않으니 너희가 대신 전해 주거라. 그나저나, 미래는 시험 잘 봤대? 왜 축하 파티는 안 열어 준 거냐?”아빠는 봉투를 쥔 채 억지로 입꼬리를 올리며 씁쓸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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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강지후는 숨을 헉 들이켜더니, 다짜고짜 엄마의 휴대폰을 낚아챘다.화면에 떠 있는 점수와 확인 번호를 번갈아 보다가 자기 폰을 꺼내 직접 비교까지 했다.강지후는 엄마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입술만 파르르 떨 뿐, 끝내 아무 말도 내뱉지 못했다.실제로 1등급을 받은 것도, 부모님께 내가 재수할 거라 말한 것도 사실이었으니까.“이모, 그게...”엄마는 차가운 손짓으로 그의 말을 단칼에 자르고는 미련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엄마는 연속 내게 전화를 걸었다.강지후도 연회장 구석에 쪼그려 앉아 폭풍 문자를 보냈다.하지만 비행기 안에 있던 나는 그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급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내 이름을 목 놓아 불렀지만, 아무리 큰소리로 외쳐도 적막만이 감돌았다.곧이어 아빠도 거실에 들어섰다.부모님의 머릿속에 문득 스친 생각이 있는지, 황급히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내 방은 평소와 다름없었다.다만 휴지통 안에는 인화지와 갈기갈기 찢긴 폴라로이드 사진 조각이 버려져 있었다.엄마는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 조각들을 하나하나 맞춰 나갔다.지금까지 모은 가족사진도, 유치원 때부터 강지후와 함께 찍은 사진들까지 가위질에 갈기갈기 찢겼다.모든 추억과 감정이 마치 산산조각이 난 사진들처럼 모조리 휴지통 속에 처박혀 있었다.아빠가 옷장을 열어보았지만, 내가 보물처럼 아끼던 선물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여권과 주민등록증 역시 찾질 못했다.엄마는 바닥에 주저앉아 아빠를 연신 주먹으로 내리치며 울부짖었다.“다 당신 때문이야! 굳이 여생이를 집으로 데려와서, 내 딸을 잃어버리게 만든 거라고.”그때 열린 방문 너머로 한여생과 강지후가 서 있었다.엄마는 민망한 듯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강지후는 자연스럽게 한여생을 자신의 뒤로 끌어당겼다.“이모, 미래가 어릴 때부터 자기 마음대로 굴었던 거 잊으셨어요? 성적표 숨긴 것도 본인이잖아요. 우리가 모르는 건 당연한데, 왜 저희 탓으로 돌리세요?”“게다가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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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비행기에서 내려 휴대폰을 켜자마자, 마치 해킹이라도 당한 듯 수백 개의 메시지가 쏟아져 나왔다.여러 사람에게서 온 부재중 전화도 가득했다.엄마가 톡으로 남긴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솔아, 너 진짜 왜 이렇게 제멋대로니.][시험 잘 봤으면 말을 했어야지, 우리한테 숨기면 어떡해?][너 대체 어디 간 거야? 언제쯤 되어야 엄마 속을 안 썩일래?]강지후가 보낸 문자도 수두룩했다.[권미래, 너 이번 수능 대박 난 거였어? 잘됐다. 이제 같이 경국대 가면 되겠네.][그만 유난 떨고 얼른 돌아와. 이모 또 걱정하시잖아.][나중에 나랑 학교 가서 수강신청 하자.]나는 미간을 찌푸린 채 메시지들을 전부 확인한 뒤, 망설임 없이 차단하고 삭제해 버렸다.공항 밖으로 나서자, 낯선 바람이 얼굴을 스쳐 지나갔다.새 출발을 향한 용기를 품고, 나는 오롯이 나만의 미래를 향해 걸어 나갈 것이다.내비게이션 앱을 켜고 학교로 가는 길을 검색하던 그때였다.누군가 내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고개를 들자, 지적이고 우아한 기품이 물씬 풍기는 여성이 서 있었다.그녀는 휴대폰 화면과 내 얼굴을 번갈아 대조해 보더니, 이내 손뼉을 치며 반갑게 웃었다.“맞네, 너였구나.”낯선 타지에서 혼자 있던 터라, 나는 바짝 경계했다.“누구세요? 무슨 일이시죠?”이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몇 걸음 물러서며, 캐리어를 끌고 언제든 튀어 나갈 준비했다.그런데 여성은 내 팔을 덥석 잡더니, 어디론가 통화를 하며 도망치지 말라고 소리쳤다.겁이 질린 나는 결국 캐리어마저 내팽개친 채 죽기 살기로 뛰었다.넋이 나간 상태로 휴대폰만 달랑 쥔 채 겨우 홍문대에 도착했다.오는 내내 잃어버린 짐을 새로 마련하려면 돈이 얼마나 들지 머릿속으로 계산했다.모아둔 돈이 조금 있긴 해도 등록금에 생활비만 해도 만만치 않은 지출이었기에, 하루빨리 알바부터 구해야겠다고 다짐했다.어느덧 건물 앞에 다다르자, 신입생들을 맞이하러 나온 교수님이 보였다.길에서 시간을 지체한 탓에 이미 다른 학생들은 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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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손에 들고 있던 상장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나는 연신 뒷걸음질 치다 돌에 걸려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부모님이 뛰어와 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끔찍한 장면들과 거의 잊어가던 기억들이 가슴을 파고들며 다시금 해일처럼 덮쳐왔다.“싫어! 다가오지 마!”부모님의 손이 허중에서 멈추었다. 어느덧 눈가에는 물기가 고였다.“솔아...”“왜 그래? 나 엄마야.”눈물이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내렸다.나는 흐느끼며 그동안 부모님들이 외면하고 무시했던 순간들을 하나하나 끄집어냈다.“내 마음속에 엄마 같은 건 진작에 없었어요. 남의 딸 입맛만 챙기는 엄마가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죠? 내 노력은 알아주지도 않고, 매번 한여생과 비교하면서 나만 타박했으면서...”이내 고개를 돌려 조용히 눈물만 흘리고 있는 아빠를 바라보았다.“길거리에 딸을 혼자 남겨두고 잊어버리던 아빠도 필요 없어요. 당신들한테는 이미 한여생이 있잖아요. 대체 왜 어렵게 새로 시작한 내 삶까지 찾아와서 망쳐놓는 건데... 왜!”엄마가 오열하며 다가와 나를 껴안았다.“아니야, 솔아... 그런 게 아니란다. 여생이는 부모를 잃었잖니. 어린 게 벌써 철이 든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서 조금만 더 챙겨주고 싶었던 것뿐이야, 정말로.”말을 마치고는 가방에서 드레스를 꺼내 허둥지둥 내게 건네려 했다.나는 받아드는 대신 그저 서늘한 눈빛으로 한 걸음 물러섰다.“이딴 거 이제 안 필요해요. 한여생 성인식 챙겨준다고 고향 내려가면서 내 성인식은 까맣게 잊었을 때부터, 난 당신들한테 아무 기대조차 없었거든요.”아빠가 다가와 내 팔을 붙잡았다.“솔아, 너 어쩜 이렇게 속이 좁아터졌니? 고작 성인식 날 같이 안 보내줬다고 부모한테 평생 원한이라도 품을 작정이야?”“그동안 돈 들여 공부시켜 놨더니 배운 게 겨우 부모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인간이 되는 거였어?”나는 눈앞의 부모님을 바라보며 온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깊은 무력감이 전신을 옥죄어 와 숨조차 쉴 수 없었다.단순히 성인식을 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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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강의동 입구에 서 있는 강지후의 등은 어딘지 모르게 한층 쓸쓸해 보였다.나를 발견한 그의 눈동자에 생기가 돌며 반짝였다.“미래야! 너 보려고 몇 번이나 찾아왔었는지 몰라. 드디어 만났네.”코맹맹이 목소리엔 억울함이 묻어났다.그가 다가와 손을 잡으려 하자, 나는 냉큼 뒤로 물러섰다.“강지후, 도대체 무슨 추태야? 그 지긋지긋한 연기, 아직도 안 끝났어?”수년 동안 강지후를 짝사랑하면서 단 한 번도 모진 말을 내뱉은 적이 없었다.그는 충격을 받은 듯 제 자리에 얼어붙었다.“미래야,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널 얼마나 그리워했는데. 경국대에서 계속 너만 기다렸어. 대체 왜 홍문대로 가버린 거야?”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수업 시간이 임박해 있었다.더는 그의 변명을 들어줄 인내심이 사라진지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너랑 한여생 꼴 보기가 싫어서. 네 존재 자체가 거슬리거든. 이 정도면 충분한 설명이 됐니?”말을 마치고는 그를 지나쳐 강의동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순간, 강지후가 달려들어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미래야, 제발 이러지 마. 나랑 한여생은 아무 사이도 아니야. 오해하지 말아줘, 부탁이야.”남자의 억센 악력에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나는 큰소리로 비명을 질렀다.금세 수많은 학생이 모여들었다.사람들은 강지후를 떼어놓고는 그를 향해 손가락질해댔다.누군가는 휴대폰을 들어 촬영까지 했다.“지금 성추행하는 거야? 영상 찍어서 인터넷에 확 올려버린다?”“멀쩡하게 생긴 놈이 여자 하나 괴롭히니까 좋냐? 당장 안 꺼져? 꼭 얻어터져야 정신 차릴래?”“방금 경비실에 신고했으니까, 금방 너 잡으러 올 거야.”강지후는 횡설수설하며 카메라를 가리는 동시에 허둥지둥 변명을 늘어놓았다.이내 달려온 경비원들이 그의 양팔을 단번에 제압했다.“아니에요, 진짜 아니라고요! 저 이 사람 남자친구예요. 추행 같은 거 안 했어요! 이렇게 다짜고짜 잡으시면 어떡합니까?”한 여학생이 앞으로 나와 강지후를 가리키며 내게 물었다.“이 남자 말이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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