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CS 그룹은 명절에 조상들의 묘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 것을 집안에서 가장 큰 행사로 생각했다. 최근 한국의 많은 가족들은 더 이상 명절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하지만, LCS 그룹은 가족들이 모두 모여 성대한 의식을 치르는 것을 중시했다. 왜냐하면 은 회장의 경우, 그들의 3~4대 선조들이 한 묘지에 묻혀 있으며 그들의 정체성이 계속해서 후손들에게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LCS 그룹과 같이 상류층 사회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강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족 모임을 굉장히 중시했다. 특히 돈과 권력 외에도 출신과 재산을 중시하는 상류층 사회의 분위기는 LCS 그룹이 먼저 시작한 문화라고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고구려 시대 때부터 무관 집안으로 대모달이라는 최고 관직을 휘어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후의 집안이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한 시기에는 총 31명의 인물이 관직에 오른 경우도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특히 특별 시험인 별시가 열리는 빈도가 문과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외적의 침입 등 급히 무사를 뽑아야 하는 경우가 잦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임진왜란 이후에는 식년무과가 치러질 때 적게는 수십 명에서 수 천명 까지 뽑히는 경우도 있었다..! 숙종 대에는 한 해에 18,000여 명의 합격자를 선발하기도 했는데, 늘 경쟁은 치열했다. 평가 과목은 보시(땅에서 활 쏘기), 기사(말 타며 활 쏘기), 기 창(말 타며 창 쓰기) 등이 있었다. LCS 그룹의 조상들은 아무리 치열하더라도 각자의 능력을 뽐내며 궁술, 기마술 등에서 각자의 능력을 뽐내며 자리를 굳건하게 지켰다.
결국 LCS 그룹의 가족들과 그들의 집안이 수백 년 동안 계속 존재할 수 있었고, 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조상들의 재능 때문이었으며, 잦은 전쟁을 거치고 긴 식민지 시기와 혼돈의 시대가 왔음에도 LCS 그룹은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능력을 마음껏 펼쳐왔다..! 게다가 그들의 핏줄은 전 세계로 뻗어 나갔고, 후손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