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여산맥 전투에서 윤구주는 백만이 넘는 설국 정예 병사들을 도륙했고 그 결과 흑여산맥은 설국 병사들의 시체로 산을 이루고 피로 강을 이루었다.그 전투로 설국은 국력이 오십 년이나 후퇴하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그런데 지금, 설국인들이 흑여산맥을 지키는 장군들과 내통했다는 말을 들은 윤구주는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다.“내통한 자들의 이름을 모두 대라!”윤구주가 차갑게 명령했다.파마는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이름들을 말했다.“기병 교위 원호산, 진부대장 진추해, 좌익국방장군 강문정!”...설국 제사장이 흑여산맥 장수 일여덟 명의 이름을 대자 윤구주는 그 이름들을 모두 기억했다.설국과 내통하는 장수들의 이름을 기억한 뒤 윤구주는 다시 차갑게 물었다.“현재 흑여산맥을 지키는 설국 장수는 누구냐?”“세... 세나스 장군입니다...”파마가 사실대로 답했다.“세나스라... 한쪽 눈이 없는 그 영감탱이 말이냐?”윤구주가 차갑게 웃으며 묻자 파마는 경악하며 되물었다.“대체 누구십니까? 어찌 세나스 장군을 아시는 것이옵니까?”“내 발밑에 꿇어앉았던 놈을 내가 어찌 모르겠느냐?”윤구주는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뭐? 말도 안 돼!”파마 제사장은 순간 소리를 질렀다.그는 눈을 부릅뜨고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설국에서 군신이라 불리는 세나스 장군이 그의 발아래 꿇어앉았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설국, 네놈들은 죽음을 자초하고 있구나! 과거 금전에서 너희 설국 미물들과 황실 전원을 없애버리지 않은 게 내 잘못이었다! 지금 너희들이 감히 화진의 무학 정수를 훔쳐 전쟁을 도모하다니, 좋다! 네놈들이 전쟁을 원한다면, 윤구주 내가 다시 한번 설국을 피로 물들여 주겠다!”윤구주의 입에서 서릿발 같은 말이 쏟아져 나왔다.설국 제사장은 윤구주가 '금전'을 언급하는 순간, 머릿속이 멍해졌다.설국의 금전은 화진의 황성과 같은 곳으로 설국의 수도이자 국왕이 거주하는 곳이었다.그런데 윤구주는 과거 설국 금전에 나타나 왕족들을 거
윤구주를 알아본 설국 제사장은 공포에 떨었다.“내가 누구인지 알았으니 너도 이제 죽어야 할 것이다.”윤구주는 손을 가볍게 휘둘렀다. 천지의 기운에 짓눌린 파마 제사장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윤구주의 손바닥에 맞아 핏덩이로 변했다.설국 제사장을 죽인 윤구주는 차가운 눈빛으로 국경을 향해 바라보았다. “설국, 네놈들이 자멸을 재촉하는구나!”화진의 진국지왕으로 윤구주는 백성들을 수호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다.그런데 미천한 설국이 감히 화진의 무학 정수를 훔쳐 병사들을 훈련시키다니! 화진의 호국 군신으로서 윤구주가 어찌 이를 용납할 수 있겠는가?“6년이다! 설국이 스스로 멸망을 택했으니 내 다시 한번 그들을 도륙할 것이다!”윤구주는 살기등등하게 말하고 설국으로 가려고 했다.그는 현재 화진의 수도를 걱정하지 않았다.마씨 가문을 쓸어버렸으니 제자백가가 아무리 불만이 있을지라도 감히 그와 대적할 자는 없을 것이다.더욱이 공수이와 그의 형제들이 수도를 지키고 있으니 걱정할 것이 없었다.지금 그가 해야 할 일은 흑여산맥을 거쳐 설국으로 향하는 것이었다.집안일은 뒤로 미룰 수 있으나 나랏일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었다.하물며 화진의 인왕으로서 나라를 지키는 것은 그의 책무였다.다만 설국에 가려면 반드시 흑여산맥을 지나야 했다.방금 윤구주는 파마에게서 현재 흑여산맥을 지키는 자가 설국의 세나스 장군이라고 들었다.한쪽 눈이 없는 그 노장은 설국에서 군신으로 불리는 자였으나 육 년 전 윤구주에게 패배한 적이 있었다.“세나스? 흥! 먼저 그놈부터 죽이고 설국을 쓸어버릴 것이다!”윤구주는 차갑게 말하며 흑여산맥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다만 흑여산맥으로 가기 전, 그는 수도에 있는 형제들에게 연락해야 했다.윤구주는 전자 기기를 휴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기에 도시로 가서 전화를 빌려야 했다.그는 요성 쪽을 바라본 후, 순식간에 몸을 날려 요성으로 향했다....요성.조금 전에 있었던 지진 여파에도 불구하고 요성은 빠르게 원래의 활기와 번화함
개코라고 불린 불량배는 입에 담뱃대를 물고 목에는 금 도금된 굵은 구리 목걸이를 걸치고 있었다.그도 이홍연을 보자 눈빛이 반짝였다.“대박, 진짜 끝내주네! 홍이 노래방의 마돈나보다 백 배는 더 예쁘잖아!”“그러니까 말이야!”“봐봐, 저 여자 완전 연예인 아니냐? 아니, 연예인보다 더 예쁜 것 같은데?”“맞아 맞아!”“야, 이 바보들아, 뭐 해! 빨리 가서 꼬셔 봐! 오늘 밤 우리 셋 뜨겁게 놀 수 있을지도 몰라!”세 명의 불량배는 음흉하게 웃으며 이홍연에게 다가갔다.거리 모퉁이 음식점.이홍연은 자리에 앉자마자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을 주문하려 했다.바로 그때, 세 명의 음흉한 그림자가 그녀 앞에 나타났다.“안녕, 예쁜 아가씨! 혹시 이름이...?”이홍연은 고개를 들어 그들을 쳐다보았다. 불량스럽게 옷을 걸친 세 명의 불량배들이었다.황성에서 자라며 사회의 밑바닥과 교류할 일이 거의 없었던 이홍연이었지만 그들의 차림새를 한 번 스윽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상황을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그녀는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단호히 말했다.“여기서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이홍연의 냉정한 반응에 불량배들은 물러나기는커녕 오히려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아가씨, 성격도 끝내주네!”“배낭을 들고 있는 거 보니 우리 요성에는 처음이지?”목에 굵은 금목걸이를 두른 개코가 음흉하게 웃으며 그녀의 가방을 힐끔거렸다.“니들이랑 무슨 상관인데?”이홍연이 차갑게 받아쳤다.그러나 개코는 여전히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아가씨, 우리 요성에는 볼 것도 많고 재밌는 곳도 많은데 우리가 안내해줄까? 요성을 제대로 경험하게 해줄게.”옆에 있던 두 불량배도 거들며 말했다.“맞아!”“다시 한번 말하지만 썩 꺼져! 안 그럼 가만 안 둬!”이홍연이 싸늘하게 말했다.“오호? 설마 우리를 때리려고? 하하!”개코가 비웃으며 웃음을 터뜨리던 바로 그 순간, 짝하는 소리와 함께 손바닥이 그의 얼굴에 꽂혔다!운이 나쁘게도 개코는 이홍연의 싸대기에 순간 몇 개의 앞니
두 불량배가 나가떨어지는 것을 본 이홍연은 차갑게 웃으며 개코를 바라보았다.“너도 더 맞고 싶냐?”개코는 이홍연이 싸움을 잘하는 걸 보고 겁먹었다.그는 서둘러 음식점 밖으로 뛰쳐나가 이홍연을 가리키며 소리쳤다.“너 이년, 어디 두고 보자!”말을 마친 그는 부하들을 데리고 황급히 도망쳤다.불량배들이 사라지자 이홍연은 다시 음식을 주문하기 시작했다.그때, 음식점 주인아주머니가 주방에서 나와 이홍연에게 말했다.“아가씨, 어서 이곳을 떠나세요.”이홍연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왜요?”“저 불량배는 요성에서 유명한 깡패예요. 게다가 패거리도 많으니 분명히 다른 놈들을 데리고 올 거예요!”주인아줌마가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이홍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염려해 주셔서 고마워요. 근데 걱정 마세요. 저런 쓰레기들은 아무것도 아니니까.”화진 황실의 육 공주인 이홍연이 깡패들한테 겁먹을 리가 없었다. 그런 모습을 다른 이들이 본다면 웃음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홍연의 태도를 본 주인아주머니는 더 이상 만류하지 않고 말했다.“그래요, 알겠어요. 어쨌든 말할 건 다 했으니 알아서 하세요.”말을 마친 주인아주머니는 다시 주방으로 가서 하던 일을 이어갔고 이홍연은 식사를 계속했다.십여 분쯤 지났을까.멀리서부터 갑자기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그 소리는 개조된 대형 배기량 오토바이에서 나는 굉음이었고 소리가 가까워지면서 마침내 스무 대가 넘는 오토바이가 식당 앞까지 도착했다.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은 각자 손에 강철 파이프, 쇠사슬, 야구 방망이를 들고 있었다.“백호 형! 그년 지금 저기 식당에 있어요!”선두의 개조된 오토바이에서 방금 얻어맞은 개코가 대머리 놈한테 말했다.백호라고 불리는 사내는 우람한 체격에 얼굴에는 흉터가 가득했다.요성에서 백호의 악명을 모르는 자는 없었다.그는 무예에 능통했고 한때 남쪽에서 한 가닥 했다는 놈이었다.지금 요성의 유흥가 절반은 모두 백호가 봐주고 있었다.“못난 놈! 계집 하나도 제대로 처
백호는 이홍연을 보자마자 그녀의 미모에 매료되었다.그는 히죽거리며 이홍연에게 다가가 말했다.“아가씨, 내 형제를 때렸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야?”“사실이면 어쩔 건데?”이홍연이 곧바로 대답했다.그녀의 대답을 들은 백호가 말했다.“아가씨의 화끈한 성격, 마음에 드는데! 다만 내 구역에서 내 형제를 아무 이유 없이 패면 안 되지.”백호는 말하며 이홍연의 맞은편에 앉았다.이홍연은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뭘 어쩌자는 거야?”“헤헤! 걱정하지 마, 난 말이 통하는 사람이야! 나랑 밥 한 끼 먹고 술 한잔하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줄게. 아가씨, 어때?”백호가 말했다.그러나 백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홍연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네놈 같은 쓰레기가 감히 나와 식사를 하자고?”모욕을 당한 백호는 순간 분노했다. “아가씨, 좋게 말할 때 들어! 이 오빠를 화나게 하면 오늘 무사하지 못할 거야!”이홍연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럼 내가 너희 같은 쓰레기들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도록 하지!”그녀의 말에 요성의 일인자 백호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건방진 계집! 맞고 싶어 환장했구나! 내 부하들이 좀 심하게 나와도 울지마라! 얘들아, 저 계집을 쳐라!”백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앞에 있던 쇠파이프 든 똘마니 세 명이 이홍연에게 달려들었다.손에 든 쇠파이프가 이홍연을 향해 무섭게 내리쳐졌다.황실의 육공주인 이홍연은 당연히 이런 불량배들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의 모습이 순간 번쩍이더니 퍽퍽퍽 하는 소리가 연이어 터져 나왔다.그리고 방금 달려들었던 불량배 세 명은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세 명의 불량배를 날려 버린 이홍연을 보고 백호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졌다.“오? 제법 실력이 있군! 하지만 어쩌나. 운 나쁘게도 나를 만나서. 다들, 같이 덤벼! 오늘, 이 건방진 계집애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켜 줘야겠어!”백호의 명령과 함께 쇠파이프, 쇠사슬, 야구 방망이를 든 스무 명 넘는 깡패들이 이홍연
진역 결계가 나타나 불량배 무리를 단숨에 덮어버리는 순간 식당 안에는 절세의 한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바로 윤구주였다!갑작스럽게 나타난 윤구주를 바라보며 육공주 이홍연은 그대로 순식간에 얼어붙고 말았다.그녀는 아름다운 눈을 크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외쳤다.“바보야?? 네가 여기에 웬일이야?” 윤구주는 미소를 지으며 매혹적인 이홍연을 한 번 바라보고는 말했다.“네 기운이 느껴져서 한번 와봤지.”그 말을 들은 이홍연은 기쁨에 차서 말했다.“바보야! 빨리 이 쓰레기들 혼쭐내 줘! 감히 본 공주를 괴롭히다니? 당장 죗값을 치르게 해야 해!”이홍연은 결계에 갇혀 꼼짝 못 하는 불량배들을 향해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윤구주는 간단히 한마디만 했다.“좋아!” 그는 팔을 한 번 휘둘렀다.쾅!거센 기류가 폭발하더니 스무 명이 넘는 불량배들은 비명을 지를 틈도 없이 윤구주의 한 번 휘둘림에 모두 날아갔다.윤구주가 가볍게 손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불량배들이 모두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본 이홍연은 그제야 안심하고 윤구주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녀는 윤구주를 힘껏 껴안았다.“바보야! 보고 싶었어!”이홍연은 그를 꼭 끌어안고는 눈가가 붉어지며 말했다.윤구주는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그는 이 황실 육공주가 이곳에 나타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조금 전. 그는 마궁 방향에서 오던 길이었고 전화로 서울에 있는 형제들에게 소식을 전하려던 순간 신념술로 이홍연의 기운을 감지했다!그래서 마침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 현재, 황실의 육공주에게 꽉 안겨 있는 상황에 그는 다소 난감해졌다.“홍연아, 너 여긴 어쩐 일이야?”윤구주는 부드럽게 이홍연을 자신에게서 밀어내며 물었다.이홍연은 눈시울이 붉어진 채 말했다.“너 찾으러 온 거지!”“날 찾으러?”윤구주는 잠시 당황했다.“그래! 윤 아저씨께서 네가 기산의 마궁에 있다고 해서 바로 달려왔어!”이홍연은 자신이 황성을 몰래 빠져나온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윤구주에게 모두 털어놓았다.
윤구주는 마가의 지하 창고와 설국 사람들에 대한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윤구주의 말을 들은 이홍연은 그 자리에서 바로 분노를 드러냈다. 그녀는 화진 황실의 육공주로서 적국과 내통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그것은 바로 반역이었다! 원래 이홍연은 마가가 멸문당한 것이 다소 잔인하지 않은지 생각했다.하지만 그들이 설국과 내통했다는 사실을 듣자 그녀의 주먹은 분노로 꽉 쥐어졌다.“이 죽일 놈의 마가가 설국과 내통을 했다고? 십 국 전쟁 때 설국 역시 십 국 중 하나였다는 것을 그들이 모르기라도 했단 말이야?”“게다가 그 설국 놈들은 우리 화진의 무고한 백성들을 학살한 적도 있잖아.”이에 대해 윤구주는 말했다.“바로 그래서 내가 마가를 완전히 없애버린 거야.”“잘했어!”“적국과 내통한 이 반역자들! 만약 아바마마께서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반드시 그들의 구족을 멸하실 거야!”이홍연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대하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국에 대한 개념을 명확히 알고 있을 것이다!하지만 수천 년을 이어온 제자백가가 설국과 내통하다니 이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마가가 적국과 내통한 건 결코 단순한 일이 아니야! 내 추측이 맞다면 설국이 이렇게 대놓고 나오는 것은 단지 나 윤구주가 죽었다고 믿기 때문일 거야!”차가운 말이 윤구주의 입에서 나왔다.이홍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맞는 말이었다.윤구주의 사망 소식은 이미 십 국에 널리 퍼져 있었다!그렇지 않았다면 누가 감히 이 금지된 선을 넘을 수 있었겠는가?누가 화진의 일인 왕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그때 나는 혼자 군을 이끌고 십 국을 물리쳤어!”“십 국이 땅을 내주고 배상금을 물게 하며 국경을 수만 리 후퇴시켰지!”“하지만 지금. 이 나라들은 나 윤구주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감히 첩자를 통해 우리 화진을 다시 침략하려고 해!”“그렇다면 이번에는 십 국을 멸망시킬 거야.” “이로써 야심을 품는 자들에게 알게 해줄 거야. 화진을 얕보는 자는 반드시
윤구주의 말을 들은 이홍연은 잠시 침묵에 잠겼다. 윤구주가 한 말이 모두 사실이라는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전을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이건 나라와 나라 간의 대전쟁이다! 잠시 생각에 잠기던 이홍연은 갑자기 윤구주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바보야. 내가 너랑 같이 설국을 치러 갈게!” 윤구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어! 내가 말했잖아. 나 혼자면 충분하다고! 게다가 네가 따라오면 너를 신경 쓰느라 오히려 정신이 더 분산될 거야!” 이홍연은 자신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정말로 윤구주를 따라 설국으로 간다면 오히려 그의 발목을 잡게 될 거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홍연은 한숨을 쉬며 물었다. “그럼 설국으로 언제 출발할 건데?” “지금 바로!” 윤구주는 단호하게 답했다. “이렇게 빨리?” 이홍연은 얼굴에 아쉬움이 가득했다. “서두르지 않을 수 없지! 설국 놈들이 우리 화진의 무학을 공공연히 훔쳤다니. 반드시 그 벌레 같은 놈들에게 우리 화진을 건드리면 어떤 대가를 치르게 되는지 보여줘야 해!” 윤구주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이홍연은 그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이렇게 냉혹하게 말하는 것을 들은 이홍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아! 네가 이미 결정했다면 나는 네 결정을 지지할게!” “걱정하지 마. 내가 황성으로 돌아가면 바로 아바마마께 소식을 전할게. 군을 보내 너를 도울 수 있도록 할게!” 윤구주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하찮은 설국 따위에 군을 보낼 필요는 없어!” “홍연아, 황성으로 돌아가면 국주께 이렇게 전해줘. 내가 설국을 멸하러 가는 건 귀신조차도 나를 막을 수 없을 거라고!” 윤구주의 그 압도적인 말에 이홍연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내 형제들에게도 전해줘. 날 걱정할 필요 없다고!” 윤구주는 덧붙였다. 이홍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걱정하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
백호는 아직도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어느덧 이백오십 계단까지 올라왔다. 이 단계부터는 실체화된 술법이 몸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계단 하나를 오를 때마다 바람, 불 번개와 같은 속성의 영기가 점점 강해졌다. 여기서부터는 육신 횡련의 수련자는 강력한 체질로 버티고 술도 재능이 뛰어난 수련자는 천지 영기를 다루는 능력으로 버텨야 했다. 한마디로 각자의 능력에 따라 갈리는 구간이었다. 어느 한 분야라도 특출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백호는 술도에는 재능이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강인한 육체 하나로 견디고 있었다.웅!성수의 피가 진동하며 백호의 몸을 지탱했다. 각종 속성의 영기가 몰아쳤지만 백호는 성수혈의 힘을 빌려 억지로 앞으로 나아갔다.수련자에게 있어서 성수의 혈맥이나 법보 등은 모두 신체 외적인 재능으로 간주하지만 그렇다고 이것들이 꼼수나 편법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천 가지 변화와 만 가지 신통력이 있어도 결국 만법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법기든 혈맥이든 이를 감당하는 것은 결국 본인의 몫이다. 천지 영기를 이용한 술법도 결국은 그 힘을 감당할 수 있어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며 감당하지 못하면 반드시 반작용을 맞게 된다. 따라서 수련의 길에는 애초에 편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성수 혈맥 같은 천지의 보물은 보통 사람이 함부로 다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윤구주의 도움을 받았다 하더라도 결국 이를 감당하는 건 백호 자신이었다. 성수 혈맥의 힘을 온전히 감당하며 백호는 결국 삼백 계단까지 올라섰다.계단의 꼭대기 근처에는 이미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이 여럿 서 있었다. 서요산 검종은 근대에 들어 삼백 계단을 넘는 인재가 드물었다. 최근 백 년 동안 삼백 계단을 넘은 사람이 고작 열 명 남짓이었고 그중 대부분이 삼백여 계단에서 멈췄다. 그런데 지금 백호는 삼백이십 계단까지 올라선 것이다. 이 정도면 서요산 검종 전체가 떠들썩해질 만한 성과였다.이런 제자가 나타난다면 종문 전체가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서요산의 진인들까
“한 사람의 품성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마구잡이로 그렇게 많은 수련자를 키워낸다면 결국 천하의 마인을 직접 만들어 내는 꼴이 아니겠어?”청현이 바로 그 실패한 예다. 서요산 검종 종주가 청현의 천재성을 아까워한 나머지 그의 인성을 무시하고 양성한 끝에 결국 역도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럼 저하 서요산에 입문한 무술 무인들은 평균적으로 몇 계단까지 오르는지 아십니까?” 백호가 호기심에 물었다. 윤구주는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무술 무인의 정확한 데이터는 모르지만 검종 종주와 잡담할 때 들어보니 검종 제자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서 천 년 전만 해도 평균 삼백 계단 정도였는데 요즘엔 백 계단도 못 오른다고 하더구나. 가끔 삼백 계단을 오르는 자라도 나오면 검종 전체가 몇 년은 떠들썩할 정도라고 했어.”“구백구십구 계단까지 있는 시험인데 천 년 전 전성기에도 겨우 삼백 계단이요?” 백호는 입술을 삐죽이며 서요산 검종의 수준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때 한 번 도전해 볼 생각이야?” 윤구주는 흥미롭게 백호를 바라보았다. 백호는 당장이라도 도전하고 싶은 마음에 윤구주의 허락을 구한 뒤 바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한 계단 두 계단... 오십 계단까지는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백호는 오십 계단에 서서 사람들을 향해 서요산 검종이 별것 아니라며 놀려댔다. 하지만 육십 계단쯤 올랐을 때 처음으로 압력을 느꼈다. 마치 몸 위에 작은 차 한 대가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백호에게는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발걸음을 옮겼다. 백 계단에 도달하자 압력이 갑자기 커졌다. 등에 작은 승용차 대신 소형 트럭이 올라탄 듯한 느낌이었지만 아직 백호의 한계에도 가지 못했다.“근래 사람들의 평균이 백 계단도 못 넘는 이유가 이제야 이해가 되네요. 예전의 무인 횡련은 황제도 오를 수 있었지만 요즘 무인 횡련은 죽어라 노력해도 소형 트럭 하나 못 버티는 수준이니 말입니다.”백호는 농담을 던지며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
전에 임정설은 구오 지존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만 나라를 위해 힘쓰며 수모를 견뎌내고 살아남으려 했다.하지만 이제 황제가 된 그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그 탓에 이번 관문 앞에서 그는 망설였다.살아 있는 자만이 통과할 수 있는 관문이었다.죽음을 마음에 품은 자는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관문이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 중 청해만이 그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황제가 되면 곤륜 구역에서 최고 경지에 도달하는 건데. 기뻐해도 모자랄 판에 왜 죽음을 택하려는 거지?’“저하, 국주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듯합니다. 저하도 사랑하던 이에게 배신당했어도 결국 극복해 나갔잖습니까.”백호도 이해하지 못했다.그는 여전히 국주보다는 왕이 더 낫다고 여겼다.“네가 뭘 안다고 그런 말을 함부로 내뱉느냐.” 윤구주가 단호하게 말했다.백호는 머리를 긁적이며 답했다. 그는 어리숙하고 말솜씨도 없기에 생각나는 대로 말했을 뿐이다.“내가 문아름에게 배신당한 건 억울한 일이지만 나는 그녀에게 잘못한 게 없다. 오히려 그녀가 날 배신한 거다. 하지만 국주는 그 반대였지. 그가 그녀를 저버린 거야. 정이 깊으면 오래가지 못하고 지혜가 지나치면 오히려 상처를 입는다. 이 세상에서 가장 쓰라린 후회는 가진 뒤 잃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생사를 달리하게 되는 것이다.” 윤구주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만약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자신도 제정신이 아닐 거라고 느꼈다.“그럼 복수하면 되지 않나요?” 백호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이때 청해가 눈치를 채고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상대가 너무 강해서 못 이기는 거지. 황제에 오르기 전까진 제대로 맞붙을 힘도 안 돼. 오르고 나서도 이길 수 있을지 장담 못 하고.”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딱 그 말이 맞았다.“그럼 우리가 국주님 대신 복수해 드리면 되잖아요? 국주님은 제 왕이기도 하지만 제 윗사람이기도 하잖아요.”백호가 고개를 갸웃했다.“하하! 만약 세상 사람들이 다 너처럼 솔직하다면 이런
인간이 나쁜 짓을 거듭해 양심을 잃으면 부끄러움도 사라진다.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윤구주를 따라 명예심이 생기면서 죄책감도 느끼게 된 청해에게 이 원한의 전법은 고통스럽기만 했다. 물론 곤륜역 한 신전의 부전주로서 정신이 붕괴할 정도는 아니었다.네 사람은 이 원한의 전법도 가볍게 넘어섰다.이때 전법에 관심을 가졌던 임정설이 무언가를 눈치챘다.“구주야, 서요산의 전법은 우연히 들어온 자를 쫓아내는 동시에 수련자의 의지를 시험하는 것이었어. 서요산은 의지력이 확고한 자들만 끌어들인다는 것을 미리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바로 서요산이 제자를 선발하는 방식인가 보구나.”“그렇습니다. 매년 화진 무도계 사람들이 서요산에 찾아오지만 성공한 자는 극히 드뭅니다. 실패자들 중 십중팔구는 산기슭에서 죽음을 맞이하죠. 어떤 문턱은 넘지 않는 것이 복이 될 때가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약이죠. 현실을 알고도 바꾸지 못하는 것이 가장 괴로운 법이니까요. 이 관문을 넘는다고 해도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면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죽음뿐입니다.”윤구주의 말이 끝나자 세 번째 전법이 나타났다.첫 번째와 두 번째 전법은 이곳에 들어온 이들을 돌려보내려고 만든 것이지만 세 번째 전법은 달랐다. 이 전법은 살기로 가득 찬 죽음의 전법이었다.평범한 사람들은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이곳까지 온 자들도 앞길의 위험을 보고 함부로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눈 앞에 펼쳐진 죽음의 길을 보고도 들어가는 자는 스스로 죽음을 원하는 자라서 그런 자들에게 죽음을 내리는 것은 오히려 덕을 쌓는 일이었다.하지만 무도로 도를 깨우치려는 수련자라면 이 관문을 넘기 위해 반드시 목숨을 걸어야 한다. 버텨내야만 수도의 길에 들 수 있고 실패하면 그 후과를 받아들여야 한다.전법 안은 살기로 가득했다. 생기와 영기가 세상을 이롭게 하지 못할지라도 살기와 죽음의 기운은 목숨을 앗아갈 것이 분명했다.진법 내부에는 수많은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무도계에 이름을 날렸던 강자들의 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