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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화 : 인연의 시작 (2)

Autor: 김보근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06-22 23:49:41

실비아는 손에 든 주황색 열매, '곶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멸망한 하이 엘프 부족의 마지막 생존자로서 그녀가 지금까지 마주해 온 이세계의 마물들은 하나같이 잔혹하고 탐욕스러웠다. 마왕군의 군화에 짓밟히며 배운 세상은 오직 약육강식뿐이었다.

하지만 방금 전, 트롤의 영혼을 찢어 발기며 마왕 이상의 공포를 보여준 사내는 달랐다.

바스락.

실비아는 조심스럽게 곶감을 입에 넣었다. 찐득하고 달콤한 과즙이 혀끝을 감싸는 순간,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열매를 타고 온몸으로 퍼지는 기운은, 마왕군의 더러운 흑마법이나 이세계의 탁한 마력과는 궤를 달리하는…… 기묘할 정도로 맑고 순수한 ‘영기(靈氣)’였다.

대자연의 정령들과 소통하는 하이 엘프의 영혼이 본능적으로 외치고 있었다.

‘이분은…… 마물이 아니야. 숲을 수호하는 위대한 신령(神靈)이시다.’

실비아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마왕군에게 부족이 몰살당할 때, 그 어떤 정령도, 성국의 신도 그녀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낯선 동양의 신령은 자신을 해치려 했던 무례를 관대하게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었다.

"기, 기다려 주십시오!"

실비아는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났다. 그리고 멀어져 가는 섀도우 라이거와 그 위의 사내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 *

터벅, 터벅.

산군은 섀도우 라이거의 등 위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새로 얻은 '마력'의 기운을 몸 구석구석으로 순환시키는 중이었다.

생전의 백두산 시절에는 그저 야성과 완력으로 사냥했지만, 이 세계의 마력은 몸을 한층 더 가볍고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묘한 구석이 있었다.

"크르릉……."

그때, 섀도우 라이거가 고개를 돌리며 나직하게 울었다.

산군이 슬그머니 눈을 뜨자, 저편에서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는 금발의 엘프 소녀가 보였다. 가녀린 몸으로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 채 사내의 앞길을 다시 가로막아 선 것이다.

"또 너로구나. 내 경고를 잊었느냐?"

산군의 백청색 눈동자가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아무리 가련한 처지라 한들, 범의 앞길을 두 번이나 가로막는 것은 목숨을 내놓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사내의 전신에서 아지랑이 같은 호기(虎氣)가 다시금 서서히 흘러나왔다.

쿵!

하지만 실비아는 도망치는 대신, 산군의 발밑에 거침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흙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간절하게 외쳤다.

"위대한 대수림의 주인이시여! 미천한 엘프의 생존자가 감히 청하옵니다!"

"……?"

"부족을 잃고 갈 곳 없는 저를 당신의 부하로 거두어 주십시오! 당신의 영토를 지키는 화살이 되겠습니다!"

산군의 미간이 잘게 좁혀졌다.

조선 땅에서도 범을 산신으로 모시며 제물을 바치던 인간들은 많았다. 하지만 이토록 눈을 번뜩이며 스스로 노예가 되겠다고 찾아온 이방인은 처음이었다.

게다가 사내가 다스리던 백두산은 이미 사라졌고, 이곳은 낯선 이세계였다.

"나는 마왕이라 불리는 자들과 다를 바 없다.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네 영혼을 찢어 저 트롤처럼 부릴지도 모르는데, 두렵지 않으냐?"

산군의 협박에 실비아는 고개를 들어 사내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녀의 푸른 눈에는 공포를 넘어선 지독한 집착과 광기가 서려 있었다.

"위선적인 신들의 방관 속에서 죽는 것보다, 위대하신 당신의 발밑에서 창귀가 되는 것이 제겐 더한 구원입니다."

[위잉—]

[알림: 하이 엘프 '실비아'가 주군에게 영혼의 종속을 갈구합니다.]

[주의: 대상은 마수가 아닌 ‘지성체’입니다. 육체를 유지한 채 전속 가신 계약이 진행됩니다.]

[계약을 수락하시겠습니까? (Y/N)]

산군은 시야에 떠오른 푸른 글자를 보며 헛웃음을 삼켰다.

그저 조용히 쉬고 싶었을 뿐인데, 세계의 법칙과 이방인 여자가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하지만 멸망한 부족의 원한을 품고 눈을 빛내는 이 가녀린 화살수가 꽤나 쓸모 있어 보이기도 했다.

산군이 섀도우 라이거에서 내려와 실비아의 앞에 섰다.

"좋다. 네 맹세가 거짓이 아님을 증명해 보아라."

사내가 손을 뻗어 실비아의 이마에 손가락을 대자, 푸른 도깨비불 같은 낙인이 그녀의 영혼에 선명하게 새겨졌다.

[알림: 첫 번째 가신(家臣), 하이 엘프 '실비아(Lv.25)'가 영지에 귀속되었습니다!]

[주군의 영지 '산신당'의 기반이 마련됩니다.]

조선의 범이 이세계에서 거두게 될 첫 번째 '인간형 부하'이자, 그의 하렘을 피로 물들일 집착 히로인의 눈을 뜨게 만든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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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이이잉—!실비아가 당긴 시위 끝에서 푸른 마력이 폭발적인 굉음을 토해냈다. 온돌 결계의 영기를 흡수한 그녀의 화살은 단순한 궁술의 영역을 아늑히 초월해 있었다.쉬이익— 쾅!빛의 줄기처럼 날아간 화살이 진격하던 오크 전사들의 한복판에 내리꽂히며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정순한 영기에 직격당한 오크 대여섯 마리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크윽?! 이 무슨 위력의 저격이냐!"선두에 서 있던 토벌대장 바르카스가 검은 마기를 둘러 폭풍의 여파를 막아내며 이를 갈았다. 단 한 발의 화살로 선발대의 진형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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