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귀의 왕: 이세계로 전이한 조선의 산군

창귀의 왕: 이세계로 전이한 조선의 산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6-24
By:  김보근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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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산군, 이세계의 지배자가 되다** 일제강점기 착호갑사에게 사냥당한 조선의 마지막 산군. 신들의 안타까움 속에 이세계에서 눈을 뜬다. 만랩 스펙에 더해진 스킬 흡수와 진화 능력, 그리고 죽인 자를 부하로 부리는 ‘창귀’의 권능까지! “이 땅에서는, 다시는 억압받지 않으리라.” 전설적인 범의 몸과 영물다운 인간의 외형을 넘나들며 압도적인 무력으로 이세계를 집어삼킨다. 조선 산군의 거침없는 군림기가 지금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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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화 : 범 내려온다 (1)
​창귀의 왕 : 이세계로 전이한 조선의 산군​제 1 화 : 범 내려온다 (1)​스산한 칼바람이 백두자락의 늙은 참나무 가지를 거세게 후려쳤다.핏빛으로 물든 설산(雪山).조선의 마지막 산군(山君)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대지 위에 버티고 섰다.​"크으으으……."​범의 목구멍에서 흘러나오는 나직한 울음소리에 대기가 파르르 떨렸다.황금빛 줄무늬가 새겨진 거대한 몸에는 수십 발의 은빛 탄환이 박혀 있었다. 상처마다 붉은 선혈이 울컥거리며 쏟아져 내려 흰 눈을 붉게 적셨다.​착호갑사도, 조선의 그 어떤 명포수도 감히 범접하지 못했던 산의 신령.하지만 대륙의 정기를 끊겠다며 밀고 들어온 이방인들, '왜놈'들의 화력은 잔인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탕! 탕! 타앙—!​멀리서 기괴한 철제 소총을 든 시커먼 군복의 무리가 조여왔다.그들의 눈에는 영물에 대한 경외심 따윈 없었다. 오직 탐욕스러운 정복욕과 박제용 가죽을 탐하는 추악한 열망만이 가득했다.​'하찮은 인간 놈들이…….'​산군은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수백 년간 이 땅의 인간들을 수호하고 산의 균형을 지켜왔건만, 돌아온 것은 잔혹한 사냥뿐이었다.지독한 허무함과 끓어오르는 분노가 전신을 지배했다.​철컥.다시금 사냥꾼들의 총구가 일제히 산군을 향했다.조선의 마지막 왕이 눈을 감는 순간이었다.​그때, 허공에서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하고 슬픈 목소리들이 내려앉았다.​[이 땅의 국운이 다해 너를 지켜주지 못했구나.][조선의 마지막 영물이여. 슬퍼하지 말라.][부디 저편의 세계에서는 그 누구에게도 구속당하지 말고…….][너의 기상대로, 온전한 너의 의지대로 군림하거라.]​그것은 한반도의 가라앉는 영맥 속에서 울려 퍼진 신들의 마지막 축복이었다.쿠우우웅—!순간, 눈이 멀 것 같은 백색의 빛이 산군의 거대한 신체를 집어삼켰다.​​[위잉—][인과율을 벗어난 초월적 영혼, '백두산군(白頭山君)'의 전이를 확인했습니다.][조선 신계(神界)의 마지막 가호가 체현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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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화 : 범 내려온다
**제 2 화 : 범 내려온다 (2)**"끼이이이익—!"단 한 번의 포효였다.하지만 그 반경 수 킬로미터 내에 존재하던 모든 생명체는 얼어붙었다.대수림의 최상위 포식자 중 하나였던 섀도우 라이거는 단단한 앞발을 바들바들 떨며 흙바닥에 대가리를 박았다.복종.마수가 본능적으로 선택한 생존의 방법이었다."흥, 영리한 놈이군."인간의 형상을 한 산군이 낮게 소리 내어 웃었다.말소리와 함께 흘러나온 숨결에는 여전히 서슬 퍼런 '범의 기운(虎氣)'이 묻어 있었다. 사내는 자신의 거친 손을 내려다보았다.날카로운 발톱 대신 투박한 손가락.사냥꾼들의 총탄에 찢겼던 가슴에는 붉고 웅장한 흉터들만이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신들의 은혜로 얻은 인간의 몸이었으나, 전신을 관통하는 파괴적인 힘은 생전의 백두산 대호 시절을 아늑히 초월해 있었다.스스스스—.[알림: 마수 '섀도우 라이거'가 영혼의 종속을 맹세했습니다.][고유 특성 '창귀의 왕'의 효과로 인해 대상은 주군에게 절대 복종합니다.][종속된 부하의 권능 일부를 흡수합니다.][스킬 '어둠 은신(C)'을 획득했습니다.]"뇌리에 꽂히는 이 기괴한 목소리는 무엇이더냐."산군이 미간을 찌푸렸다.조선 땅의 신들이 내린 가호인지, 혹은 이 낯선 세계 자체의 법칙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자신의 발밑에 엎드린 이 검은 괴수가 이제 온전히 제 소유가 되었다는 사실이다.사내는 엎드린 마수의 등덜미를 툭툭 쳤다."일어나거라, 똥개야. 이곳이 어떤 천지인지 안내나 해 보거라.""구우우……."섀도우 라이거는 방금 전의 흉포함은 어디로 갔는지, 덩치 큰 사냥개처럼 꼬리를 바짝 내린 채 산군의 곁으로 다가왔다.산군은 녀석의 널찍한 등 위에 자연스럽게 올라탔다.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조선의 산에서나, 이 기이한 이세계에서나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사냥당해 비참하게 눈을 감았던 조선의 마지막 왕은, 이제 새로운 천지를 눈아래 두기 위해 천천히 발을 내딛기 시작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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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 화 : 레벨업 시스템
**제 3 화 : 레벨업 시스템 (1)**"끄악!"선두에 섰던 기사, 한스가 비명과 함께 땅바닥에 처박혔다.그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눈앞에 선, 검은 두루마기를 걸친 동양의 사내가 뿜어내는 기세만으로 몸의 마력이 모조리 굳어버린 탓이었다."이, 이게 무슨……!"자작 영지의 제일검이라 자부하던 레온 부르크마저 자신의 검자루를 잡은 손을 바들바들 떨었다.그의 평생, 이런 종류의 공포는 처음이었다. 용(Dragon)조차 이 정도로 압도적인 기상(氣相)을 단숨에 체현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마력이 아닌, 영혼의 규격 자체가 다른 존재가 뿜어내는 군림의 살기였다.터벅, 터벅.산군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은빛 갑옷을 입고 바들바들 떠는 이방인들을, 그는 마치 하찮은 토끼를 내려다보는 범의 눈빛으로 응시했다."왜놈들은 아닌 것 같다만."산군의 입에서 묵직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이 땅의 이방인들은 모두 총과 불놀이를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 너희는 꽤나 원시적인 철붙이를 들고 있구나.""……!"레온은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그는 이 제국의 언어가 아닌, 고대의 영언(靈言)과도 같은 기이한 억양의 말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 뜻은 본능적으로 뇌리에 꽂혔다.'우리에게…… 하찮은 무기를 들고 있다고 조롱하는 것인가?'레온은 치욕감을 느꼈지만, 몸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산군은 엎드려 바들바들 떠는 기사들 사이를 무심히 지나쳐, 레온의 눈앞에서 멈춰 섰다.그리고 그의 등 뒤에 새겨진 웅장한 총상 흉터가 기사들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위잉—][알림: 고유 특성 '산신의 권능'이 대상들의 경계심과 공포에 반응합니다.][스킬 '호효(C)'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Lv.2)][알림: '세계의 목소리'가 주군의 상태를 확인합니다.]"……?"산군의 뇌리에 다시 그 기괴한 목소리가 꽂혔다.'세계의 목소리'.그는 이 낯선 세상에 전이되는 순간부터 자신을 따라다니는 이 목소리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사내는 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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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 화 : 레벨업 시스템 (2)
**제 4 화 : 레벨업 시스템 (2)**"허억, 헉……!"산군이 떠난 뒤에도 기사들은 한참 동안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했다.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레온 부르크 자작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검을 칼집에 집어넣었다.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검날이 부딪치며 챙강거리는 소리가 숲속에 처량하게 울렸다."방, 방금 그 자는 대체…….""마수를 부리는 서대륙의 네크로맨서입니까? 아니면 인간의 가죽을 쓴 마왕군 간부입니까?"부하 기사들의 안색은 시체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은 영지 내에서 내로라하는 정예병들이었건만 상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기세만으로 자신들을 완전히 무력화시켰다.레온은 사내가 사라진 수풀의 어둠을 주시했다.기이한 검은 로브, 그리고 잊을 수 없는 등 뒤의 기괴한 상처들."마법사도, 마왕군도 아니다. 그 몸에서 흘러나오던 신성하면서도 흉포한 기운…… 그것은 일국의 수호신들이나 가질 법한 신성(神性)이었다."레온이 침을 삼켰다."지체할 시간이 없다. 영지로 귀환한다! 가주님과 마탑에 당장 이 사실을 보고해야 해. 대수림에……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강림했다!"기사들은 쫓기듯 숲 외곽을 향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 * * 같은 시각, 산군은 섀도우 라이거의 등에 올라탄 채 대수림의 더 깊은 심장부로 향하고 있었다.스스스스—.그의 시야 오른쪽 구석에는 여전히 푸른빛의 상태창이 떠 있었다.생전에는 그저 직감과 야성에 의존해 사냥해 왔던 산군에게, 자신의 상태가 정밀하게 수치화되어 보이는 것은 꽤나 기묘한 경험이었다."레벨 1이라……."산군이 낮게 읊조렸다.상태창에 표시된 그의 마력 수치는 고작 '15'.방금 전 마주쳤던 기사 놈들의 몸에 흐르던 마력보다도 한참 낮은 수치였다. 육체적인 능력치(근력, 민첩, 체력)는 이미 괴물 같았지만, 이세계의 핵심 힘인 '마력'만큼은 텅 비어 있는 상태나 다름없었다.[위잉—][알림: 첫 번째 사냥 퀘스트가 시작됩니다.][목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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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화 : 첫 번째 창귀
**제 5 화 : 첫 번째 창귀 (倀鬼)**[위잉—][알림: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Lv.4 → Lv.5)][알림: 특성 '창귀의 왕'의 권능이 강화됩니다.][보유 가능한 '창귀'의 하한선이 상승합니다. (0/1)]대수림의 짙은 어둠 속, 산군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던 푸른빛의 진화 마력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방금 전까지 거구의 트롤이 자빠져 있던 자리에는, 오직 괴물이 입고 있던 오물투성이 가죽 가리개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먼지와 함께 흩어지고 있었다.산군은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단 한 번의 사냥. 그 결과로 몸 안에 차오른 '마력'은 생전의 범 시절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이세계만의 파괴적인 힘이었다. 수치상으로는 고작 '35'에 불과했지만, 그의 괴물 같은 육체와 결합하자 압도적인 위압감을 뿜어냈다."단지 찢어발기고 먹어치우는 것뿐만 아니라, 그 힘의 정수(精髓)를 온전히 내 것으로 흡수하다니……."산군이 낮게 읊조렸다.그의 입매가 잔혹하게 비틀렸다.조선 땅에서 총탄에 찢겼던 허무한 죽음. 그 비참했던 최후가, 지금의 산군에게는 오히려 이세계의 절대자로 거듭나기 위한 발판처럼 느껴졌다.[알림: '창귀'를 생성할 준비가 완료되었습니다.][사냥한 대상의 정수를 사용하여 주군에게 절대 복종하는 '영혼 부하'를 만드십시오.]"창귀라……."산군의 백청색 눈동자가 순간, 오싹한 도깨비불처럼 푸르게 일렁였다.한국의 설화 속, 호랑이에게 잡아먹혀 억울하게 죽은 귀신. 호랑이의 사냥을 돕고 길을 안내하는 노예 귀신. 그것이 창귀였다.하지만 이세계의 법칙은 그 설화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해석하고 있었다.그는 생전의 범 시절처럼 그저 배를 채우기 위해 사냥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사냥은, 곧 자신의 '영토'를 넓히고 '부하'를 모으는 군주의 대업이었다.산군은 자신의 앞발 밑에 엎드린 섀도우 라이거를 내려다보았다.녀석은 종속되긴 했지만, 여전히 육체를 가진 '마수'였다. 창귀는 달랐다. 육체가 아닌, 오직 영혼만으로 이루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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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화 : 인연의 시작
[위잉—][알림: 창귀 트롤이 주군의 영지에 귀속되었습니다.][대수림 내 '산군의 영역'이 0.5% 확장됩니다.]"쿠우우……."검은 안개와 푸른 도깨비불을 두른 창귀 트롤이 거구의 몸을 무릎 꿇은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산군은 섀도우 라이거의 등 위에서 만족스러운 눈으로 지형을 둘러보았다. 이 기묘한 세계의 법칙은 사냥을 할 때마다 그에게 눈에 보이는 영토와 힘을 쥐여주고 있었다.조선 땅에서는 인간들의 등쌀에 밀려 숨어 다녀야 했거늘, 이곳은 오직 강함만이 모든 것을 증명하는 그야말로 범을 위한 천지였다.바스락—.그때, 섀도우 라이거가 귀를 쫑긋 세우며 낮은 으르렁거림을 뱉었다. 트롤을 사냥했던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수풀 속이었다."거기 누구냐."산군의 묵직한 음성이 숲의 고요를 깨뜨렸다.동시에 가늘고 날카로운 파공음이 대기를 찢었다.쉬이익—!푸른 마력의 기운이 서린 한 자루의 화살이 산군의 안면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들었다. 트롤조차 반응하지 못할 쾌속의 일격이었다.탁—!하지만 산군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뻗은 두 손가락만으로 날아오던 화살촉을 가볍게 맞잡아 멈춰 세웠다. 손가락 사이에 잡힌 화살이 거친 마력을 이기지 못하고 잘게 바르르 떨렸다."……!"수풀 너머에서 숨이 턱 막히는 나직한 비명이 흘러나왔다.산군이 화살을 바닥에 툭 던지며 그곳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백청색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세로로 찢어지며 숲의 안개를 걷어냈다.그곳에 있던 것은 은빛 갑옷을 입은 인간 기사들이 아니었다.바람에 휘날리는 아름다운 금발, 그리고 인간보다 길고 뾰족한 귀. 찢어진 가죽 옷 사이로 가녀린 몸을 드러낸 채 활을 겨누고 있는 이세계의 종족, '엘프'였다."괴, 괴물…… 트롤을 단숨에 부하로 삼다니. 마왕군의 하수인인가?!"엘프 소녀, 실비아는 활을 든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그녀의 부족은 얼마 전 마왕군의 습격을 받아 멸망했고, 겨우 살아남아 도망치던 중이었다. 썩은 냄새를 풍기던 트롤을 피해 숨어 있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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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화 : 인연의 시작 (2)
실비아는 손에 든 주황색 열매, '곶감'을 멍하니 바라보았다.멸망한 하이 엘프 부족의 마지막 생존자로서 그녀가 지금까지 마주해 온 이세계의 마물들은 하나같이 잔혹하고 탐욕스러웠다. 마왕군의 군화에 짓밟히며 배운 세상은 오직 약육강식뿐이었다.하지만 방금 전, 트롤의 영혼을 찢어 발기며 마왕 이상의 공포를 보여준 사내는 달랐다.바스락.실비아는 조심스럽게 곶감을 입에 넣었다. 찐득하고 달콤한 과즙이 혀끝을 감싸는 순간, 그녀의 푸른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열매를 타고 온몸으로 퍼지는 기운은, 마왕군의 더러운 흑마법이나 이세계의 탁한 마력과는 궤를 달리하는…… 기묘할 정도로 맑고 순수한 ‘영기(靈氣)’였다.대자연의 정령들과 소통하는 하이 엘프의 영혼이 본능적으로 외치고 있었다.‘이분은…… 마물이 아니야. 숲을 수호하는 위대한 신령(神靈)이시다.’실비아는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마왕군에게 부족이 몰살당할 때, 그 어떤 정령도, 성국의 신도 그녀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낯선 동양의 신령은 자신을 해치려 했던 무례를 관대하게 용서하고 자비를 베풀었다."기, 기다려 주십시오!"실비아는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났다. 그리고 멀어져 가는 섀도우 라이거와 그 위의 사내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 * *터벅, 터벅.산군은 섀도우 라이거의 등 위에서 눈을 감고 있었다. 새로 얻은 '마력'의 기운을 몸 구석구석으로 순환시키는 중이었다. 생전의 백두산 시절에는 그저 야성과 완력으로 사냥했지만, 이 세계의 마력은 몸을 한층 더 가볍고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묘한 구석이 있었다. "크르릉……."그때, 섀도우 라이거가 고개를 돌리며 나직하게 울었다. 산군이 슬그머니 눈을 뜨자, 저편에서 숨을 헐떡이며 달려오는 금발의 엘프 소녀가 보였다. 가녀린 몸으로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른 채 사내의 앞길을 다시 가로막아 선 것이다."또 너로구나. 내 경고를 잊었느냐?"산군의 백청색 눈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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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화 : 산신당(山神堂)
화끈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짚으며, 실비아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그녀의 영혼에 새겨진 푸른 도깨비불 문양은 단순한 낙인이 아니었다.그것은 위대한 신령의 가호이자, 영혼 깊숙한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절대적인 복종의 증거였다. 늘 흐릿하게만 느껴지던 대자연의 정령들이, 지금은 사내의 주변을 호위하듯 미쳐 날뛰는 것이 온몸으로 선명하게 느껴졌다.실비아는 확신했다. 이 사내의 발치에 머무는 것만이, 멸망한 부족의 원한을 갚고 자신이 살아남을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산군은 은은하게 빛나는 실비아의 이마를 무심히 바라보았다."풍기는 기운이 맑아 마음에 드는구나. 내 너를 첫 번째 가신으로 삼았으니, 굶어 죽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위대하신 선왕(仙王)이시여, 이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당신의 화살이 되겠습니다."실비아의 과한 칭송에 산군은 그저 혀를 찼다. 선왕이라니, 조선 땅에서는 그저 영물이나 산신으로 불렸을 뿐인데 이방인 여자의 아첨은 꽤나 거창했다.[위잉—][알림: 가신 '실비아'의 충성도가 맥시멈(Max)에 도달했습니다.][고유 특성 '산신의 권능'이 확장되어, 영지 '산신당(山神堂)'의 첫 번째 영역이 지정됩니다.][영지 효과: 산신당 내부에서는 주군의 마력 회복 속도가 200% 상승하며, 영역 내 모든 창귀의 방어력이 30% 증가합니다.]산군의 시야에 다시금 푸른 글자들이 어지럽게 떠올랐다.글자가 흩어짐과 동시에, 그들이 서 있는 대수림의 중심부를 축으로 삼아 보이지 않는 거대한 장막이 숲을 감싸 안는 느낌이 들었다. 탁하고 기괴했던 이세계의 공기가, 순간적으로 백두산의 깊은 골짜기처럼 맑고 서늘하게 정화되었다."음?"산군이 코를 실룩였다. 낯선 땅에서 느껴지던 이질감이 가시고, 마침내 자신이 다스리던 옛 영토의 온기가 미약하게나마 돌아온 듯했다. 사내는 대지 위에 버티고 서서 나직하게 명령했다."똥개야, 그리고 썩은 고기 놈도 일로 오너라.""구우우…….""크르르르……."산군의 부름에 섀도우 라이거와 푸른 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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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화 : 산신당(山神堂)의 첫 기틀
"끼익! 끼이이익—!"300마리가 넘는 코볼트들이 일제히 비명을 지르며 바위산을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들의 손에는 평소 쓰던 조잡한 돌도끼 대신, 산군의 명령으로 쪼개진 날카로운 화강암 파편들이 들려 있었다. 게으름을 피우는 순간 등 뒤에 서 있는 푸른 안개의 괴물, 창귀 트롤의 뼈 몽둥이가 날아온다는 것을 놈들은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산군은 절벽 끝 바위에 걸터앉아 그 광경을 무심히 내려다보았다."그래, 부지런히 움직여야지. 범의 거처에 온기를 들이는 일인데 낙장이 있어서야 되겠느냐."사내는 품속에서 마지막 남은 곶감 한 조각을 입에 물었다. 달콤하고 쫀득한 맛이 혀끝을 감싸자 지독한 타향살이의 피로가 조금은 가시는 듯했다. 그의 시야 우측 하단에는 여전히 푸른빛의 글자들이 일렁이고 있었다.[위잉—][영지 퀘스트: 온돌(溫突)의 기초 다지기가 진행 중입니다. (42/100)][알림: 가솔들의 노동력으로 인해 건설 효율이 극대화됩니다.]산군은 상태창을 흐릿하게 응시하며 생각에 잠겼다. 생전 백두산의 겨울은 지독하게도 추웠다. 눈밭을 헤치며 사냥을 끝내고 돌아와도, 사냥꾼들의 총구를 피해 깊은 동굴 속에서 얼어붙은 몸을 웅크려야 했던 나날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자신을 위협하는 총소리도, 왜놈들의 비릿한 철 냄새도 없었다. 오직 거대한 힘과 그 힘에 굴복해 알아서 기는 마수들뿐. 산군은 이 낯선 세상에서 처음으로 기묘한 해방감을 느끼고 있었다. "주군."그때, 실비아가 조심스러운 걸음으로 다가와 산군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녀의 푸른 눈동자는 코볼트들이 깔고 있는 돌바닥을 향해 있었다."대지석의 배치가 심상치 않습니다. 영맥의 가장 뜨거운 화류(火流)가 흐르는 지점마다 정확하게 돌을 배치하여 열기를 가두고 계시는군요. 이 결계가 완성되면, 바위산 전체가 그 어떤 상급 마법으로도 뚫을 수 없는 절대적인 신역(神域)이 될 것입니다."산군은 실비아의 진지한 얼굴을 보며 속으로 혀를 찼다. 이방인 여자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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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화 : 착각은 두려움을 낳고
바위산 아래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력의 파동은 꽤나 조직적이었다. 자작 영지의 제일검이라 불리던 레온 부르크가 이끄는 토벌대. 그들은 얼마 전 대수림에서 마주쳤던 동양풍의 괴물, '산군'의 존재를 영지에 보고한 직후 곧바로 추가 병력을 지원받아 돌아온 참이었다.다만, 그들의 목적은 토벌이 아니었다. "모두 무기를 낮추고 천천히 진격하라! 절대로 먼저 자극해서는 안 된다!"레온 부르크는 식은땀을 흘리며 부하들을 단속했다. 그의 은빛 갑옷 안쪽은 이미 긴장감으로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영지의 가주와 마탑의 장로들은 레온의 보고를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기세만으로 기사단을 무력화하고 수인과 마수를 수하로 부리는 존재. 그것은 일국의 멸망을 불러올 수도 있는 고대의 절대자 부류였기 때문이다.그들이 바위산 중턱에 도달했을 때, 토벌대의 눈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저, 저게 대체 뭐지?"부단장이 턱을 덜덜 떨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곳에는 수백 마리의 코볼트 부족과 거구의 창귀 트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며 바위산 정상을 깎고 돌을 배치하고 있었다. 마수들의 세계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종족을 초월한 '강제 노역'의 현장이었다.하지만 기사들을 진짜 공포에 질리게 만든 것은 그 조형물의 형태였다.바위산 영맥의 중심을 따라 정밀하게 짜 맞춰지고 있는 화강암 돌바닥들. 영맥에서 뿜어져 나오는 붉은 마력의 열기가 그 돌바닥 아래로 흡수되며 묘한 궤적을 그리며 순환하고 있었다.산군은 그저 따뜻한 아랫목을 만들려고 구들장을 깔았을 뿐이었지만, 제국의 기사들에게 그것은 완전히 다르게 보였다."영맥의 흐름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어……! 저건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다. 대수림 전체의 마력을 쥐어짜 내어 하나의 거대한 결계를 형성하려는 마법진이야!"레온 부르크가 공포에 질려 외쳤다. "소문이 진짜였군. 마왕군마저 발을 들이지 못하는 대수림의 심장부에 자신만의 절대적인 신역(神域)을 구축하려는 거다. 저 결계가 완성되는 순간, 우리 영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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