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서로 다른 길에 오른 너와 나: Chapter 201 - Chapter 210

290 Chapters

제201화 소식 없어요?

시아는 이제 승준에 대해 완전히 남처럼 여겼다. 그래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마치 벙어리처럼 입을 닫고 있었다.“공교롭게도 오늘은 특별한 날이거든요. 우리 둘만 보내고 싶어서요.”은채가 교만하면서도 수줍은 듯한 표정을 지었고, 거기엔 은근한 과시까지 묻어 있었다.그 말에 은산이 곧장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했다.“그래요? 결혼기념일이에요?”그 말이 끝나자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아니죠, 결혼한 지 백일도 안 됐잖아요. 그럼 은채 씨 생일이거나 구 대표님 생일인가요?”은산은 시아의 다리를 슬쩍 건드렸다. 참으로 은산은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은근히 꼬드기는 데 능했다.“혹시 구 대표님 생일인가요?”정말 기름을 붓지 않고는 못 배기는 여자였다.시아는 곱게 흘겨보더니 담담하게 네 글자를 내뱉었다.“아니에요.”그 네 글자가 은채의 얼굴을 순간 굳게 만들었다. 자기 남편 생일을 다른 여자의 입에서 확인해야 한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비꼬는 꼴이었다.“시아 씨, 우리 같은 날 결혼했잖아요. 맞죠?”은채가 의미 없는 질문을 던지자 시아는 무심하게 바라봤다.“예약이라도 할 거예요? 나중에 같이 기념하려고요?”“누가 시아 씨랑 같이하겠다고 그래요? 그래도 우리 부부 결혼기념일은 아마 아기 돌잔치랑 같이 하게 될 것 같아서요.”은채가 말하면서 손을 아랫배에 올렸다.‘아, 그렇구나. 임신한 거였네.’은채의 얼굴에는 행복에 젖은 임산부의 기운이 돌았다.“시아 씨는요? 소식 없어요?”결국 자기를 자극하려는 거였다.시아는 그럴 리가 없었고 전날 밤에 겨우 지호와 첫날밤을 치렀기에, 배에 애가 있을 수는 없었다.시아가 뭐라 답해야 할지 망설이는 사이 은산이 먼저 끼어들었다.“그럼 축하드려요. 결혼하자마자 임신이라니, 정말 임신 체질이시네요.”나쁘지 않은 말도 은산의 입을 거치면 묘하게 달라졌다.은채도 그 속뜻을 알아챘지만 감히 은산에게는 대들지 못했다. 부잣집 딸이니 괜히 건드렸다간 손해였기에 대신 자극해야 할 상대는 시아였다.“은산 씨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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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2화 다 사실이야?

“구승준, 아프게 하지 마.”은채는 거칠게 끌려가 식당 한쪽 구석에 내몰렸고, 승준의 얼굴에는 억눌린 분노와 날 선 긴장이 서려 있었다.다음 순간, 은채의 몸은 차갑디 찬 벽으로 세게 밀쳐졌다. 등 뒤가 부서질 듯 부딪혔고 승준은 일부러 그랬다. 은채가 아프다고 외칠수록 남자는 더 아프게 했다.“나 배 속에 아이 있어.”은채는 고통에 눈가가 젖어 들었다.이는 육체의 통증만이 아니었고, 아이를 품었는데도 승준에게 전혀 소중히 여겨지지 않는 현실이 은채를 더 아프게 했다.“그 애가 누구 자식인지는 아직 알 수 없잖아.”방금 은산이 한 말을 승준은 정확히 들었다.이내 은채의 눈이 크게 뜨였고 곧장 손을 들어 승준의 뺨을 후려치려 했다.“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그러나 손목은 허공에서 움켜잡혔다.“한 번에 가졌다고? 넌 내가 무슨 명사수라고 생각해?”방금 자신이 시아를 자극하던 말이 이제는 칼날이 되어 자기 가슴을 찔렀다. 이윽고 은채는 씁쓸하게 웃었다.“그 말은 네가 스스로 무능하다는 걸 인정하는 거야?”남자에게 가장 치욕스러운 능력을 건드렸는데도, 승준의 반응은 차갑게 담담했다.“이 아이가 정말 흠 없는 아이라면 그걸로 다행인 줄 얼아. 만약 꼬리가 잡히면 네가 뿌린 대로 거두게 될 거야.”“그럼 승준아 너도 잘 들어. 다시는 내게 손대지 마. 내가 아이를 잘 낳아야 진실이 드러날 테니까.”은채도 한 치 물러서지 않았다.“그리고 네 어머니, 이미 손주가 생겼다고 알고 무척 기뻐하셔. 어머니가 좋아하면 나도 좋은 거지.”이는 분명한 결정타였다.이내 승준의 눈빛이 한층 차갑게 어두워졌다.“네가 무슨 낯으로 우리 어머니를 입에 올려?”은채는 비웃듯 미소 지었다.“어머니가 오래도록 건강하셔야 나와 같이 있을 수 있잖아.”말이 끝나자 손목이 부러질 듯 고통이 몰려왔으나 은채는 개의치 않았다. 고통은 늘 은채의 그림자였으니까.“넌 나를 벗어날 수 없어. 차라리 우리 협력하자. 예를 들어, 진씨 가문을 같이 무너뜨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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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3화 이혼 절차부터 밟자

저녁 무렵, 시아는 은산과 함께 하씨 저택으로 돌아왔다.문을 열자마자 풍기는 따뜻한 음식 냄새가 시아의 마음을 포근히 감쌌다. 노하숙의 사랑을 늘 받았지만 부모 없는 빈자리는 언제나 있었고, 그 결핍이 이 집에서는 채워지고 있었다.가끔은 하늘이 누구에게나 공평한 선물을 주는 것 같았다. 빼앗아 간 게 있으면, 다른 곳에서 채워주는 법이었다.“여보, 돌아왔어?”시아의 잠시 멍해있던 시선이 은산의 활기찬 목소리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고개를 들자, 은산은 이미 자유를 향해 달려가 있었다. 자유가 돌아온 걸 반기는 그 열정적인 모습은 오래 떨어져 지낸 부부 같았다.시아는 그 자리에 선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형님은 정말 별종 중의 별종이네.’자유는 은산에게 와락 끌려 안겼으나 눈빛에는 당혹스러움이 비쳤다. 주변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고, 안영은 오히려 시아를 흘겨보며 말했다.“뭐 하러 멍하니 서 있어? 너도 네 형님처럼 남편한테 좀 다정하게 굴어.”시아는 핀잔 아닌 핀잔에 할 말을 잃었고, 소파에 느긋하게 앉아 있던 지호는 덩달아 장난스럽게 손을 내밀었다.“여보, 나도 안아줘.”그 광경에 시아는 말문이 더 막혔다.자유는 지호만큼 뻔뻔하지 않았기에 난처하게 은산을 떼어내더니, 은근히 여자가 만졌던 자리까지 정리하듯 손끝으로 털어냈다.아주 미묘한 동작이었지만 시아는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시아는 확실히 알았다. 자유는 은산에게 단 털끝만큼의 감정도 없다는 것을.그러나 은산은 전혀 굴하지 않았다. 본래 은산은 스스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만큼, 오히려 다른 사람을 더 난처하게 만드는 데 능했다.“여보, 당신이 안 돌아오면 내가 직접 찾아갈 뻔했어요. 여기서 이렇게 오래 기다리니까 너무 지루했잖아요.”자유는 가볍게 헛기침했다.“여기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까 그만 연기해.”“후후.” 은산이 웃었다.“할아버지, 할머니, 아버님, 어머니. 저희가 이렇게 달콤하게 지내는 거 보니 보기 좋지 않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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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4화 설마 겁난 거야?

저녁 식사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지호는 시아의 숨겨진 마음을 놓치지 않았다.“당신 기분 안 좋아?”“아니에요. 그냥 생각 좀 했을 뿐이에요.”시아는 창밖의 어둠을 바라보았지만, 귀에는 정은산과 하자유가 주고받는 대화가 스쳤다.이에 지호가 시아의 손을 잡았다.“말해줄 수 있어?”“아주버님이 이혼하려고 해요.”시아는 아까 들었던 말을 꺼냈다.“당연하지. 언젠가는 그렇게 될 일이었으니까.”지호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그런데 형님은 그 사람이랑 주고받던 트위타 상대를 보고 싶대요.”시아가 말하자 지호는 피식 웃었다.이에 시아는 이내 지호의 손바닥에서 손을 뺐다.“뭐가 그렇게 웃겨요?”“설마 겁난 거야?”지호가 장난스레 되물었다.“아니요. 그냥 불붙은 걸 가려봐야 소용없으니 차라리 드러내는 게 낫다고 생각했을 뿐이에요.”시아는 낮에 은산에게 ‘혹시 아주버님을 좋아하냐?’고 물었을 때 이미 마음속으로 털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가리든 안 가리든, 그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가?”지호는 다시 시아의 손을 끌어당겼다.“내가 전에 한 말, 잊은 거야?”‘전에 했던 말...’“스스로 불편하게 만들지 마.”지호의 목소리가 가까이 스쳤다.그 말을 들으니 시아는 금세 떠올렸고 지호는 말을 덧붙였다.“이건 당신 잘못이 아니야. 그건 형 스스로 자기 함정에 빠진 거고, 형수는 그냥 그런 형을 괴롭히고 싶은 거지.”“형님은 아주버님을 좋아해요.”시아가 말하며 잠시 멈췄다.“그거 모르는 건 아니죠?”“당신이 확인했어?”지호가 반문했다. 지호가 어릴 적부터 같이 자란 사이인데, 모를 리 없었다.‘모두 알고 있었는데, 정작 아주버님만 모르고 있는 걸까?’“아니요. 자기 마지막 자존심만 붙들고 있더라고요.”시아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혹시 자책하고 있는 건 아니지?”지호가 느닷없이 묻자 시아는 그 말의 뜻을 알아챘다.“만약에 내가 없었더라면, 아주버님이 형님한테 다른 마음을 가졌을까요?”“아니.”지호는 단호했다.“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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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5화 괜찮은 생각이네

차는 보르주 클럽 앞에 멈춰 서자 시아는 잠시 놀랐다. 아까 지호의 기세라면 곧장 집으로 데려가서 그럴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남자에게는 쉽게 건드리면 안 되는 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마약이고 또 하나는 성관계였다. 한 번 빠지면 스스로도 통제하기 어려워지니까.지호는 시아의 손을 잡고 여유롭게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문을 열자마자 좌우에서 문지기처럼 서 있던 두 남자가 고개를 숙였다.“어서 오세요, 하 대표님.”순간적인 동작에 시아는 깜짝 놀랐고, 지호는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뭐 하는 짓이죠? 우리 아내 놀라면 당신들이 책임질 수 있나요?”“죄송해요, 사모님.”두 사람은 황급히 시아에게 사과했다.남자들은 지난번에도 하지호를 초대했던 소씨와 오씨 집안의 자제들이었다. 진오 말로는 이 둘이 하루가 멀다 하고 여기까지 찾아와 지호를 귀찮게 한다고 했다.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 나온 것도, 둘이 한 번만 만나주면 내일부터는 안 오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내가 그렇게 보고 싶었어?”지호는 시아를 옆에 앉히며 가볍게 물었다. 예전처럼 몸을 비스듬히 기대 앉았지만 이제는 아내를 곁에 두고서였다.그러나 시아는 언제나처럼 바른 자세로 앉았다. 이런 자리는 익숙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슬그머니 핑계를 대며 옆자리로 옮겨 앉고는 휴대폰을 꺼내 메일함을 확인했다.그때 눈에 들어온 건 미확인 메일 한 통이었다.퇴직 이후 거의 조용하던 메일함에 낯선 계정에서 온 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열어보니 단 한 줄밖에 없었다.[그만둬! 그렇지 않으면 네 남편과 하씨 가문 모두 무덤에 함께 들어가게 될 거야.]뻔히 드러나는 협박은 대담하고 노골적이었다.시아의 머릿속에 최근 다친 사람들과 죽을 뻔했던 순간들이 스치자 마음이 괜히 불안해졌다.멀리서 지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낮고 담백했지만 묘하게 힘이 있는게 마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난 듯한 웃음이었다.시아는 무심코 고개를 들어 지호를 바라봤다. 지호는 소파에 몸을 파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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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6화 무슨 짓이죠?

시아는 놀라움에 눈을 크게 뜨고 위를 올려다보자, 십여 대의 대형 시멘트 믹서 트럭이 차 옆을 스쳐 지나갔다.거대한 덩치가 검은 파도처럼 몰려왔다. 단 한 대만 옆으로 기울어도 그들이 탄 차는 순식간에 철판으로 눌려 찌그러지고 사람의 오장육부가 찢어질 터였다.“무슨 짓이죠?”지호는 시아를 단단히 끌어안으며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로 운전기사를 질책했다.차가 크게 흔들렸지만 곧 안정되었다.그러나 가득 겁을 먹은 운전기사의 목소리는 떨렸다.“저 차량들이 갑자기 몰려와 도로를 막았습니다. 죄송합니다. 하 대표님.”지호는 굳은 눈빛으로 차창 밖을 바라봤다. 시아가 예전에 교통사고를 당한 걸 떠올리자 더욱 매섭게 나왔다.“기사님이 예측하지 못한 건가요? 아니면...”이때 시아가 지호의 팔을 잡으며 가로막았다.“괜찮아요. 무사하면 된 거예요.”이건 운전기사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시아는 이미 짐작했다. 조금 전 받은 그 협박 메일의 경고가, 이제 행동으로 옮겨진 것이었다.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집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지호의 휴대폰이 울렸고 발신자는 고성민이었다.[하 대표님, 파마산 땅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뇌물과 불법 창고를 운영했다는 고발이 들어와 정식 수사로 넘어가게 됐습니다.]지호의 고운 얼굴 위로 차가운 기운이 드리워졌다.“뇌물 같은 건 없었잖아. 그건 고 비서가 제일 잘 알 텐데?”전화 너머 성민은 잠시 침묵하다가 낮게 말했다.[그게 핵심이 아닙니다.]더 말하지 않아도 알았다. 파마산은 겉보기일 뿐 진짜 겨냥한 건 하씨 가문이었다.지호는 전화를 끊고 돌아서자 시아의 맑고 분명한 눈빛과 마주쳤다.“그 사람이죠?”이 시점에서 더는 모른 척할 수 없었다.지호의 눈매가 부드럽게 휘어졌으나 그 안의 서늘함은 감춰지지 않았다.“이건 벼랑 끝에 몰린 짐승이 발악하는 거야. 아주 다급하니 이런 천박한 수를 쓰는 거지.”“하지만...”시아가 말을 잇기도 전에 지호는 고개를 숙여 여자의 입술을 막았다.“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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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7화 이건 천수의 작품이에요

“그 사람한테서 아직도 소식 없니?”시아가 노하숙과 함께 햇볕을 쬐고 있을 때 외할머니가 물었다.“없어요.”시아는 노하숙 곁에 기대며 대답했다.“어차피 우리 급한 일도 아니잖아요.”입으로는 그렇게 말했지만 가슴은 달랐다. 노하숙이 묻는 순간 괜히 불안해졌다.“그래, 안 급하지. 20년 넘게 기다린 건데.”노하숙의 다정한 위로가 오히려 시아의 가슴을 시리게 했다. 이에 시아는 더 세게 노하숙에게 몸을 붙였다.“근데 하나는 급해. 네가 네 남편이랑 결혼한 지 벌써 두 달이 넘었는데, 아무 소식이 없구나.”노하숙이 느닷없이 아이 이야기를 꺼냈다.시아는 쓴웃음을 지으며 일부러 수줍은 듯 노하숙 팔에 얼굴을 비볐다.“외할머니...”“어머, 이제 와서 부끄럽니? 네가 어릴 때는 맨날 아이 낳고 싶다고 했던 애라서 그러니.”노하숙이 재밌다는 듯 놀렸다.“외할머니...”시아는 애교 섞인 목소리로 몸을 비비자 노하숙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난 그저 네가 가장 가까운 사람을 곁에 두는 걸 보고 싶을 뿐이야. 남편도 좋고, 지호도 좋은 사람이지만 결국 피가 이어진 자식이 가장 가깝지.”시아는 노하숙의 쓸쓸했던 지난 세월을 떠올리며 그녀의 팔을 꼭 끌어안았다.“외할머니는 제 피붙이예요. 가장 소중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에요.”“그래도 내가 네 곁에 오래 있긴 힘들 거야. 요즘은 자꾸 졸려서 잠만 오는데, 이러다 그냥 깨어나지 못할까 봐 두려워.”순간 시아의 코끝이 시큰해졌다.“외할머니, 그 말 하지 마세요. 만약 영영 잠드신다면 전 평생 외할머니랑 말 안 할 거예요.”노하숙은 손녀의 울먹임을 알아차리고 서둘러 달랬다.“알았어. 안 잘게. 눈도 안 감는 괴물 할머니가 될게.”시아는 노하숙이 이런 말을 하는 건 이미 스스로 몸 상태를 알고 있다는 뜻임을 알았다. 그래서 간병인에게 물어보니 토혈 횟수와 양이 늘었다는 것이었다.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알기에 시아는 단 한 순간도 노하숙의 곁을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노하숙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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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8화 큰 골칫거리가 될 거예요

“내가 모르는 사람이 어딨다고 생각해요?”은산은 특유의 자신감으로 콧날을 치켜세웠다.“다만 그 사람이 어디 있는지는 내가 좀 알아봐야겠어요. 그 사람 성격이 워낙 괴팍해서 만나고 싶다고 쉽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은산은 목걸이를 내려놓으며 시아에게 물었다.“사진 한 장 찍어도 돼요?”시아가 굳이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그 사람을 찾는 데 도움이 된다면야.’은산은 몇 번 사진을 찍더니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말했다.“됐어요. 소식 있으면 내가 알려줄게요.”“주 대표님 쪽에서도 진전이 있다고 했어요.”시아는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말하자 은산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주 대표가 동서를 돕는다고요? 의외네요. 평소에 쓸데없는 일에 절대 안 끼는 사람이거든요. 역시 동서 매력은 대단한가 봐요.”시아는 문득, 호텔 퇴실날 우연히 들었던 대화가 떠올라 장난스럽게 눈을 빛냈다.“지금 말투가 좀 질투 섞인 것 같아요. 설마 형님이랑 주 대표님 사이에 뭐라도 있는 건 아니죠?”이에 은산은 턱을 들며 코웃음을 쳤다.“그 사람? 난 눈길도 안 줘요.”시아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우리 시어머니 말 좀 빌리자면, 형님은 그냥 단호박 같다니까요.”은산은 피식 웃었다.“그건 원래 지호한테 쓰던 말 아닌가요?”시아는 곧장 눈길을 주었는데 그 눈빛이 심상치 않아 은산이 몸을 틀며 물었다.“뭐죠? 말할 게 있으면 해요.”시아는 며칠 전, 은산과 자유의 이혼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사실을 알려야겠다고 마음먹었고 이제야 때가 온 듯했다.“동서 표정이 왜 그래요? 괜히 내가 긴장되잖아요.”은산은 가볍게 웃었지만, 눈빛에는 장난기만 가득했다.“형님이 보고 싶어 하던 아주버님의 트위타 친구...”시아는 잠시 멈췄다가 담담히 말했다.“그게 바로 나예요.”순간 은산의 얼굴에서 웃음이 굳었다. 그러나 단 몇 초 후, 은산은 다시 활짝 웃었다.“동서가요? 정말요?”시아는 솔직하게 답했다.“그래요. 하지만 단순히 채팅 친구였을 뿐, 직접 만난 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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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9화 당신한테 달렸어

복이면 받아들이고, 화라면 피할 수 없는 법.시아는 불안해하지 않았고 올 게 결국 오는 것이었다.지호와 하씨 가문의 문제가 터진 건 진오를 통해 알았다. 여러 계열사가 동시에 세무 조사를 받았고, 심지어 지호의 아버지 하정철까지 뇌물 혐의로 고발당했다.그 사람은 정말 말한 대로 움직였다.시아가 내심 죄책감이 없었다면 거짓말일 것이나 이 일은 자신이 막는다고 멈출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또한 지호도 절대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었다.그날 밤, 지호가 진오와 통화하며 말했던 게 떠올랐다. 지호는 이미 미아를 위해 모든 걸 감수하겠다고 했지만 정작 시아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는 듯, 언제나처럼 태연한 얼굴이었다.“외할머니, 저항 좀 하셔야죠. 제 아내를 독차지하면 저는 어떻게 해요?”지호는 태연히 외할머니에게 농담을 걸었다.이에 시아는 지호의 팔을 슬쩍 꼬집으며 눈짓했는데 헛소리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지호는 곧장 노하숙에게 고자질했다.“외할머니, 보세요. 아내가 저 때려요.”완전히 제멋대로인 모습 언제나 사람들 앞에서 보이던 차갑고 고고한 기품은 온데간데없었다.노하숙은 그 모습이 즐거워서인지 더 웃으며 지호를 두둔했다.“시아야, 네 남편 못살게 굴지 말고 좀 잘해 줘.”사위는 장모의 눈에 들어야 한다지만, 외손녀 사위는 그보다 더했다. 노하숙은 지호를 볼수록 마음에 들어 했다.결국 노하숙은 시아를 내쫓듯 지호에게 맡겼다.“데리고 가서 쉬게 해.”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호는 괜히 서운한 얼굴을 했다.“당신 내가 안 찾아오면 평생 나 안 찾을 거였어?”“당신이 바쁜데 방해할까 봐 그랬어요.”시아의 말은 진심이었다.“요즘 회사 일이 많잖아요. 제가 도움도 못 되는데 괜히 짐이 될까 봐요.”지호는 가볍게 웃었다.“오히려 당신이 안 찾아오면 더 집중이 안 돼. 바쁘다가도 생각난다고. 우리 아내가 혹시 딴마음 먹은 건 아닌가 하고.”그 말에 시아는 일부러 시선을 흘리며 대꾸했다.“좋은 생각 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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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0화 그 누구도 알면 안 돼

[하씨 집안의 대표, 철창신세!][하씨 가문, 하룻밤 만에 기세 꺾이다니!]...온갖 기사와 함께 지호가 끌려가는 영상이 전역을 뒤덮었다. 사람들 눈에는 하씨 가문이 큰 난관에 부딪힌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하씨 집안 안에서는 의외로 태연했다.위기를 맞아도 허둥대지 않는 것, 이는 아무나 가질 수 있는 자질이 아니었다. 그만큼 내심 당당했고 심리적 강인함이 있었다. 게다가 곁에 은산이 있었다.“아니, 도련님은 잡혀가도 왜 이렇게 멋있어요?”은산은 엉뚱한 데에만 집중하자 자유가 곧장 여자를 흘겨봤다.“입 다물고 있으면 고맙겠네.”“뭘. 틀린 말도 아닌데.”안영은 늘 며느리 편을 들었고 은산은 곧바로 안영의 곁에 앉으며 말했다.“우리 아빠가 이미 인맥 다 동원했어요. 돈을 쓰든, 사람을 찾든, 절대로 도련님한테 일이 생기게 두지 않겠대요.”많은 이들이 눈치만 보며 발을 뺄 때, 정씨 집안은 정면으로 지지했다. 이는 두 집안의 정이 얼마나 두터운지 보여주는 증거였다.“새아가, 친정아버지께 꼭 감사드린다고 전해라.”하정철이 진심으로 말했다.“아버님, 저희 부모님은 도련님을 자기 친사위처럼 생각하세요.”은산은 말끝에 자유를 흘겨보고는 이어 시아를 향해 눈길을 돌렸다.“동서, 오해하지 마요. 진심이니까요.”시아는 모두가 이렇게 안심하는 태도를 보이자 따라 웃으며 말했다.“만약 정 회장님이 진짜로 사위 삼자고 하면, 난 기꺼이 찬성할 거예요.”이에 안영이 크게 웃었다. “아무리 형님 동서 사이가 좋아도, 이 정도로 양보하는 건 좀 지나치지 않니?”그 말에 자유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겉으로는 가벼운 농담과 웃음이 오갔지만 시아의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지호가 떠나기 전 시아에게 건넨 말이 자꾸만 맴돌았다.“새아가, 오늘은 그냥 집에 있어. 친정 말고 여기에 있어.”가족 모두는 별일 아니라며 담담했지만, 결국 시아를 붙잡아 둔 것이다.그리고 은산도 장단을 맞췄다.“나도 오늘 여기서 잘래요. 어머니, 저만 편애하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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