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승준은 첫사랑과 결혼하기로 했다. 7년을 함께한 여자, 강시아는 눈물 한 방울, 원망 한 마디 없이 승준을 축복했고, 그의 결혼식을 직접 준비해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승준의 결혼식 날, 시아 역시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웨딩카 두 대가 거리를 스쳐 지나가고, 서로 다른 부케가 하늘을 가르던 순간, 시아의 입에서 마지막 인사가 흘러나왔다. “행복하길 바랍니다.” 그제야 승준은 깨달았다. 시아를 향해 달려가 여자의 손을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아야, 넌 내 사람이야.” 그 순간, 시아의 웨딩카에서 내린 한 남자가 그녀를 품에 안으며 차분히 물었다. “이 여자가 당신의 사람이라면... 저는 누구의 사람이었을까요?”
View More시아 뒤에는 디저트 테이블이 있었다. 피할 틈도 없었고, 억지로 피했다가 테이블이라도 넘어지면 체면이 깎이는 건 당연했다.은채는 그대로 몸을 기댔고, 입에서 짧은 비명이 흘러나왔다.순간, 주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몰렸다.은채가 힘을 쓰지는 않았지만 적당히 눕히듯 기대면서 마치 무력한 척하고 있었다.“진은채, 너 진짜 가관이다.”“어쩌겠어. 너무 안 맞춰주니까 이렇게라도 해야지.”은채는 비아냥거리는 말투에도 전혀 부끄러운 기색 없이 입꼬리를 올렸다.시아는 은채를 밀어내며 말했다.“진짜 질긴 거머리 같아.”안영이 가장 먼저 다가왔다.“무슨 일이야, 이게?”시아가 대답하려는 순간, 은채가 귀밑머리를 매만지며 먼저 일어섰다.“죄송해요, 갑자기 저혈당이 와서요. 다행히 시아 씨가 저를 붙잡아주셨어요.”은채의 이 한마디에 구경하던 사람들의 기대는 싱겁게 끝났다.다들 ‘밀쳤네’, ‘억울하네’ 같은 자극적인 상황을 기대했던 것이다.“고마워, 시아야.”은채는 곧바로 시아에게 감사를 표했고, 심지어 애칭까지 붙여 부르며둘의 관계가 특별하다는 듯 암시했다.시아는 평생을 살며 이런 뻔뻔한 사람은 처음이었다.“의외네요. 은채 씨가 시아 씨랑 이렇게 친할 줄은 몰랐어요.”주변에서는 알아서 손뼉을 쳐줬고, 은채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모르셨나 보네요. 제가 귀국하고 나서 시아 씨가 참 많이 도와줬어요. 덕분에 힘든 시기 잘 넘겼죠.”시아는 그 말이 너무 역겨워 참을 수 없었다.하지만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안영이 먼저 나섰다.“우리 시아가 얼굴도 곱고 마음도 고운 아이거든요. 어디 어려운 사람 있으면 지나치질 못해요. 이 은혜, 은채 씨도 언젠가 갚을 날이 있을 거예요.”그 말과 동시에 안영은 시아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아가, 이리 와. 저쪽에 좀 가보자.”시아는 고개를 살짝 돌리며 말했다.“아무리 조심해도 이런 사람은 비껴가질 않네요.”“이런 인간은 나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라서 괜찮아. 너무 마음 쓰지 마.”안영은
은채는 그럴 수 없었다. 그럴 용기도 없었다.오늘 이 자리에 왜 왔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아 앞에만 서면 그녀는 자꾸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게 된다.그리고 이성적인 판단이 감정에 밀려버리는 느낌이다.은채는 억지로 심호흡하고, 얼굴에 억지웃음을 띠며 말했다.“무슨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전 그저 사모님과 좀 더 친해지고 싶었을 뿐이에요. 우리 둘이 괜히 싸우는 모습 보여서 다른 사람들이 뒷말이라도 하면 어쩌겠어요.”그 말은 맞았다.이 자리에 있는 사모님들이나 명문가 며느리들은 표정은 예의 바르지만 뒤돌아서면 얼마나 입이 가벼운지 모른다.두 여자가 같은 남자와 엮였다는 사실만으로도 상상 이상으로 자극적인 소문이 퍼질 수 있는 자리다.은채는 스스로 체면을 살리는 말을 했지만 시아는 그 말에 코웃음을 쳤다.“난 누가 내 몸에 손대는 거 제일 싫어하거든요. 되도록 멀리 떨어져 있어요.”오늘의 시아는 유독 날이 서 있었다.은채는 민망하게 손을 거두며 억지로 과일 하나를 집어 먹었지만 시큼한 맛에 얼굴이 찌그러졌다.‘이 여자 진짜 내 천적이야. 마주칠 때마다 일이 안 풀려.’그런데도 자꾸 끌리는 건 아마 시아가 자신이 원하는 걸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은채는 억지로 모든 감정을 눌러 담고 다시 다가갔다.“다시 물을게. 우리가 꼭 친구까진 아니더라도 적은 되지 말자. 어때?”시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왜, 나 없이 못 살겠어? 아주 필사적이네?”은채는 시아의 비아냥을 무시한 채 말했다.“내 처지는 이미 말했잖아. 스스로 구원받고 싶어. 네네 도움이 필요해.”이번 말은 진심이 묻어 있었다.시아는 며칠 전 은채가 보낸 영상을 떠올렸고 무의식중에 은채의 무릎을 힐끗 봤다.그럼에도 단호하게 말했다.“난 도와줄 수 없어.”“아니, 도와줄 수 있어. 넌 지금 하씨 가문의 며느리잖아. 너랑 나 친구가 되면 진씨 가문도 날 다시 봐줄 거야.”은채는 모든 걸 내려놓은 듯 거침없이 속내를 드러냈다. 진심이 사람을
안영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시아는 그 여자를 알아봤다.진은채였다.시아는 안영의 말에 웃음이 났고, 마음이 따뜻해졌다.보통 시어머니들이 며느리 과거에 민감하거나 불쾌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안영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전 남친 와이프를 경계하라며 챙겨주었다.안영이 시아를 살짝 잡아당겼다.“저 여잔 오면 꼭 뭔가 존재감 찾으려고 난리야.”은채에 대한 안영의 반감은 얼굴에 다 드러나 있었다.“알아요. 걱정하지 마세요.”시아는 장난스레 눈을 찡긋했다.“누가 감히 너한테 뭘 하려고 하면 엄마한테 바로 와. 내가 가만 안 둘 거니까.”안영의 따뜻한 말에 시아는 마음 한구석이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평소에 공허하던 자리가 갑자기 꽉 찬 듯했다.“가봐. 오늘 음식 꽤 괜찮더라.”안영은 세상 온갖 고급 음식을 다 먹어봤을 텐데도 그렇게 말하는 건, 오직 시아가 편하게 행동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그 순간 시아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만약 언젠가 지호와 이별하게 된다면 이 시어머니는 정말 아쉬울 것 같다고.시아는 은채가 자신을 본 걸 알았지만 모른 척하고 디저트와 과일을 고르러 식음료 코너로 향했다.그런데 아직 고르기도 전에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하 대표님 부인이 왜 안 오나 했더니 왔네요?”시아는 시선도 주지 않고 말했다.“제가 안 오는 게 그쪽한테 좋은 거 아니에요? 더 돋보일 거잖아요.”은채는 정곡을 찔린 듯 입술을 질끈 다물었다.시아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모든 시선은 자신에게 쏠려 있었다.오늘만큼은 자신이 가장 돋보인다고 자부했는데 시아가 들어오는 순간 모든 게 변했다.시아는 우아했고 당당했으며, 냉미녀 특유의 거리감으로 인해 사람들의 시선을 완벽히 사로잡았다.은채는 명문가의 며느리가 된 후 예절 교육부터 모델 포즈까지 안 한 게 없었고 누구보다 자신감 있었다.하지만 시아 앞에 서면 그 모든 노력은 허사처럼 느껴졌다.은채는 씁쓸하게 웃었다.“그럼 왜 굳이 오셨어요?”시아는 조각 케이크 하
“고 비서, 요즘 돈 쓸 만해?”다음 날 아침, 성민이 지호를 보자마자 들은 첫마디였다.뜬금없는 질문에 성민은 당황해서 뭐라 대답해야 할지 고민하던 찰나 지호가 이어서 말했다.“이번 달부터 월급 두 배. 연말엔 유급휴가 열흘 추가.”‘뭐라고?’성민은 순간 자기 귀를 의심했다.무슨 큰일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어마어마한 복이 굴러들어 온 건지 알 수가 없었다.“왜, 부족해?”지호의 무심한 한마디에 성민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감사합니다, 대표님.”입으로는 감사 인사를 했지만 여전히 얼떨떨한 기분은 감출 수 없었다.‘뭐지? 내가 뭘 잘했다고?’“나한테 말고, 사모님께 감사해.”지호가 슬쩍 힌트를 던졌지만 성민은 하루 종일 고민해도 이유를 몰랐다.‘사모님께 잘해드린 기억은 딱히 없었는데 대표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으니 감사한 마음은 꼭 기억해 둬야지.’주말.시아는 미아와의 일정을 마친 뒤 연구소를 나서자마자 시어머니 안영의 전화가 걸려 왔다.[새아가, 지금 어디야? 빨리 와서 나 좀 도와줘!]급한 숨소리에 깜짝 놀란 시아는 사정을 묻고자 했다.“어머님, 무슨 일이에요? 천천히 말씀해 주세요.”[일단 내 연락처 추가해. 위치 보낼게. 얼른 와.]안영은 더 이상의 설명도 없이 전화를 끊었다.시아는 서둘러 연락처를 추가했고, 곧 위치와 함께 메시지가 도착했다.[가는 길에 메이크업 좀 해. 드레스는 내가 준비해 뒀어.]시아는 그 메시지를 보고 어리둥절했지만 적어도 긴급한 상황은 아니라는 걸 확인하고 안도했다.무슨 일인진 몰라도 시어머니가 부르면 따라가야 했다.안영이 보낸 위치는 한 프라이빗 클럽이었다.시아가 차를 막 주차하려던 찰나 한 여직원이 다가왔다.“하 대표님 부인이시죠? 안 여사님께서 모셔 오라고 하셨어요.”호텔 유니폼을 입고는 있었지만 시아는 혹시 몰라 전화를 걸었다.“저 도착했어요.”[안내원 못 봤어? 그 사람 따라가서 옷부터 갈아입고, 같이 입장해.]안영의 말에 경계를 풀고 준비된 휴게실에서 옷을 갈아입
‘우리 집?!’문 바로 맞은편에 있는 고급 평형 아파트, 이제는 단독주택까지.‘혹시 집으로 나를 가둬두려는 거야?’“우리 계약은 3개월이었고,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잊은 건 아니지?”시아가 조용히 상기시켰다.지호는 눈을 게슴츠레 뜬 채 나른하게 대답했다.“아직 두 달 하고도 좀 남았어.”날짜를 더 잘 기억하는 쪽은 오히려 지호였다.“그걸 알고 있으면서 이런 건 왜 또 하는데요?”이 집은 마당부터 실내 인테리어까지 하나하나 시아의 취향에 맞춰져 있었다.지호가 시아의 옷 사이즈까지 알고 있는 걸 생각하면 취향을 파악한 게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하지만 시아가 좋아하는 걸 다른 사람이 좋아할 거란 보장은 없다.결국 이별하게 되면 이 집도 주인이 바뀔 거고 그땐 다시 손대야 하니 귀찮기만 할 것이다.무엇보다 지호의 이런 모습은 시아에게 불안감을 주었다.시아는 이번 잘못된 관계에서 무사히 빠져나오는 방법을 생각 중이었지만, 지호는 오히려 차근차근 그녀를 포위하고 있었다.“그냥 좋아서.”지호식의 고집스러운 답변이었다.지호가 원한다니 시아도 어쩔 수 없다.시아는 고개를 끄덕였고 더 이상 묻지 않았다.사실 이 집은 정말 좋았다.시아가 꿈꿔왔던 집이었다.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다. 언젠가 둘이 각자의 길을 걷게 된다면 이 집만큼은 지호한테 돈을 주고 사고 싶다고.“여보.”시아가 마당 분위기에 빠져 있던 찰나 지호가 조용히 그녀를 불렀다.시아는 고개를 들어 졸음에 젖어 깊은 색을 잃은 남자의 눈을 바라봤다.지호가 입을 열었다.“내가 당신 남편으로 있는 하루하루, 남편으로서 할 일은 제대로 할 거야. 당신도 그랬으면 좋겠어. 적어도 당신이 말한 그 기한 안에는 진심이면 좋겠어.”그 말은 일종의 당부였다. 특히 오늘 주시우 일까지 터졌으니까.시아는 지호의 뜻을 바로 이해했다.“물론, 나도...”시아가 말을 다 마치기 전, 지호가 주먹으로 가슴을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내 뜻은 여기 말이야.”겉으로만 형식적인
“드라이브 좀 시켜줘!”지호는 딱 한 마디로 시아를 요양원 밖으로 끌어냈다.두 사람이 도착한 요양원 입구엔 강국이 한참 감탄했던 그 눈에 확 띄는 럭셔리카가 여전히 거들먹거리며 서 있었다.지호는 시아의 허리를 가볍게 감싸 안으며 차를 한번 보고, 그녀를 한번 보더니 말했다.“이 차가 당신이랑 어울리긴 하는데 뭔가 부족해. 일단 타고 다녀, 다음에 더 좋은 걸로 바꾸자.”‘차... 내 거라고?’시아는 순간 당황했다. 물론 자기 차도 고치면 탈 수 있었기에 새 차가 꼭 필요한 건 아니었다.하지만 지호가 이 정도로 밀어붙이면 굳이 거절해서 입 아플 것도 없었다.어차피 하씨 가문에서 받은 것 중 정말 필요한 것만 남기고 다 돌려줄 생각이었으니 이 한 대쯤은 그냥 넘기기로 했다.마음 한번 비우고 나니 오히려 편했다.시아는 괜히 예의 차리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지호가 예쁘게 빠진 키를 여자의 손바닥에 쥐여줬고, 시아는 키를 눌러 시동을 켰다.이 순간, 묘하게 짜릿했다.세상에 여자는 많지만 눈에 들고 마음마저 건드리는 여자는 드물다.지호의 눈빛은 이전보다 한층 더 깊어졌다.지호도 조수석에 올랐고, 앉자마자 시아는 그대로 엑셀러레이터 밟았다.“여보, 내 허리...”요양원은 외곽에 자리 잡고 있어 도로는 한산했고, 시아는 그 틈을 타 이 고급 차의 성능을 마음껏 즐겼다.가속과 브레이크, 핸들링까지 완벽하게 여자의 손에 익히고 나서야 차를 멈췄고, 옆자리에 머리 헝클어진 지호를 흘끗 바라봤다.“어때?”지호는 머리를 정리하며 중얼거렸다.“당신이 좋으면 됐어.”“그럭저럭이요.”시아는 심드렁하게 말한 뒤 물었다.“어디 가요? 데려다줄게요.”지호는 말없이 차량 화면을 터치했고, 곧 목적지가 설정되며 내비게이션이 작동했다.시아는 다시 운전을 시작했다.평소 같으면 떠들기 바쁠 사람이 오늘따라 조용했다.시아는 차를 돌리며 조수석을 힐끗 봤는데, 지호는 이미 고개를 기대고 깊이 잠들어 있었다.그녀는 내비게이션을 따라 한 고급 주택단지까지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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