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길에 오른 너와 나

서로 다른 길에 오른 너와 나

By:  꽃길마다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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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승준은 첫사랑과 결혼하기로 했다. 7년을 함께한 여자, 강시아는 눈물 한 방울, 원망 한 마디 없이 승준을 축복했고, 그의 결혼식을 직접 준비해주기까지 했다. 그리고 승준의 결혼식 날, 시아 역시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웨딩카 두 대가 거리를 스쳐 지나가고, 서로 다른 부케가 하늘을 가르던 순간, 시아의 입에서 마지막 인사가 흘러나왔다. “행복하길 바랍니다.” 그제야 승준은 깨달았다. 시아를 향해 달려가 여자의 손을 붙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시아야, 넌 내 사람이야.” 그 순간, 시아의 웨딩카에서 내린 한 남자가 그녀를 품에 안으며 차분히 물었다. “이 여자가 당신의 사람이라면... 저는 누구의 사람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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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7년을 기다렸어

강시아는 사직서를 다 작성하고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

대형 전광판에서는 구승준과 진은채의 결혼 소식이 벌써 일주일째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말했다. 승준은 은채를 미친 듯 사랑한다고.

하지만 아무도 모른다.

시아가 승준의 곁을 지켜온 시간이 무려 7년이라는 사실을.

열여덟 살부터 스물다섯 살까지.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시간을 시아는 모두 승준에게 바쳤다.

하지만 그 남자는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 하고, 이제 시아도 떠나려 한다.

결혼식을 올리는 날, 승준의 세상엔 시아라는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시아는 시선을 거두고, 사직서를 접어 하얀 봉투에 넣었다.

그 순간,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승준이 들어왔다.

검은 셔츠에 검은색 바지. 길게 뻗은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습에 강한 아우라가 느껴졌다.

차가운 고급스러움이 그의 몸에 배어 있었다.

시아는 아직도 승준을 처음 만난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

역시 검은 셔츠 차림으로 바 한구석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마치 모든 걸 잃은 듯 낙담한 눈빛이었다.

그때 승준의 집안은 파산 상태였고, 밀린 술값은 손목시계를 맡겨서 해결하던 때였다.

시아는 대신 나서서 그 시계를 찾아주면서, 승준을 자신의 인생에 끌어들였다.

그러나 진흙 속에 묻힌 용은 결국 하늘로 솟는 법. 승준은 다시 일어섰고, 지금의 구영시 재벌가의 자리에까지 올라왔다.

“내가 문자 보냈는데 왜 답이 없어?”

승준의 날카로운 시선이 시아 손에 든 봉투에 꽂혔다.

시아는 봉투를 쥔 채 창밖을 가리켰다.

“대표님과 은채 씨의 결혼 홍보 영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승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 홍보 영상, 네가 직접 기획한 거잖아. 뭘 더 볼 게 있다고.”

그렇다. 그 영상은 시아가 직접 기획한 것이었다.

영상 속 승준과 은채의 모든 사진, 모든 달콤한 순간, 모든 사랑의 문구 하나하나까지 시아가 직접 구상하고 정리해 넣었다.

그때 승준은 시아에게 말했다.

“이건 네가 직접 해. 다른 사람이 하면 은채가 안심이 안 된대.”

승준과 은채의 관계는 고작 3개월 전에 시작된 것이지만 두 사람의 감정은 학창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7년 전, 은채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나고 구씨 가문이 파산하면서 둘은 헤어지게 되었다.

3개월 전, 은채가 가족과 함께 귀국하자 승준은 은채와 다시 인연을 이어갔고, 화려하게 프러포즈까지 했다.

시아가 승준의 곁을 지킨지도 벌써 7년이었다.

주변 사람들 모두 승준이 시아와 결혼할 거라 생각했고, 심지어 시아 스스로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3개월 전, 승준이 시아에게 좋아하는 반지 디자인을 고르라고 했을 때, 시아는 자기 손가락 사이즈로 반지를 골랐다.

하지만 그날 밤, 불꽃놀이가 터지던 순간 승준이 말했다.

“반지 이리 줘.”

시아가 온 마음을 다해 고른 반지를 건네자 승준은 그대로 돌아서서 무릎을 꿇고 은채의 손가락에 끼웠다.

찬란한 불꽃이 하늘을 수놓는 그 순간, 시아는 남자가 은채에게 하는 말을 들었다.

“7년을 기다렸어. 그 오랜 시간 동안... 단 하루도 너 없이 산 적 없어.”

그 순간, 시아의 마음은 그 불꽃처럼 산산이 부서졌다.

다시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승준의 말에 따르면 그 모든 날들 속에서 남자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던 것은 은채였다.

‘그럼 그 이천오백 일 동안 너의 곁에서 일하고, 술에 취한 너를 챙기고, 너의 품에 안겨 잠든 난 뭐지?’

하지만 시아는 그 질문을 입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왜냐면 승준과 은채의 결혼 자체가 그 질문의 답이었으니까.

승준을 7년이나 지켜온 것은 아무 의미도 없었다.

둘이 학창 시절 나눴던 짧은 첫사랑보다도 못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 7년 동안 승준은 여자에게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다.

언제나 여자 혼자만의 기대였고, 그 기대가 무너졌다고 해서 승준을 탓할 수도 없었다.

시아는 흐트러졌던 감정을 정리하고, 담담한 표정으로 자신이 7년 동안 짝사랑했던 남자를 바라봤다.

“대표님, 무슨 지시사항 있으신가요?”

“오늘 밤 나랑 진씨 가문에 같이 가. 선물은 네가 알아서 준비하고.”

승준은 형식적인 말투로 지시했다.

“네.”

시아는 승준의 비서였다. 어떤 요구든 언제나 응하는 위치.

승준은 시아의 얼굴을 훑어보다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시아, 너...”

세 글자까지만 말하고 멈췄다.

승준도 그 느낌이 무엇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통 잘 웃질 않네.”

결국 승준은 그렇게 말했다.

온통 은채에게만 관심을 쏟아온 승준은 시아가 웃지 않는다는 걸 이제야 알아챘다.

시아는 즉시 입꼬리를 올려 정식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앞으론 좀 더 신경 쓰겠습니다. 대표님.”

“시아야.”

승준이 낮은 소리로 시아의 이름을 불렀다.

“네가 지금 맡고 있는 이 비서 자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바뀌지 않아. 내년에는 부대표로 승진도 시킬 생각이야.”

작은 비서에서 시작해 대표의 비서실장, 곧 부대표 자리까지.

그건 지난 7년 동안 승준이 시아에게 준 보상의 결과였다.

하지만 승준은 몰랐다. 시아가 진짜로 원했던 건 그런 직위가 아니었다는 걸.

여자가 바랐던 건 단 하나. ‘구승준의 와이프’라는 자리였다.

그러나 그건 시아 혼자만의 착각이자 환상일 뿐이었다.

“알겠습니다.”

시아는 미소 띤 얼굴로 승준의 말을 받아들였다.

7년 동안, 승준이 주는 것에 시아는 뭐든 받아들였고, 주지 않는 것에 한 번도 목맨 적 없었다.

승준은 설명할 수 없는 불쾌함을 느꼈고, 시아를 바라보는 눈빛이 점점 차가워졌다.

“전제 조건, 어떤 실수도 없어야 한다는 거야. 특히 결혼식에서.”

“걱정 마세요. 대표님과 은채 씨의 결혼식, 제가 완벽하게 준비해 드리죠.”

시아가 약속했다.

승준은 시아를 몇 초간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그때, 시아 손에 들린 흰 봉투가 승준의 눈에 들어오고, 남자는 발걸음을 멈췄다.

“그거,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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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7년을 기다렸어
강시아는 사직서를 다 작성하고 고개를 들어 창밖을 바라봤다.대형 전광판에서는 구승준과 진은채의 결혼 소식이 벌써 일주일째 반복 재생되고 있었다.주위 사람들은 모두 말했다. 승준은 은채를 미친 듯 사랑한다고.하지만 아무도 모른다.시아가 승준의 곁을 지켜온 시간이 무려 7년이라는 사실을.열여덟 살부터 스물다섯 살까지.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시간을 시아는 모두 승준에게 바쳤다.하지만 그 남자는 다른 여자와 결혼하려 하고, 이제 시아도 떠나려 한다.결혼식을 올리는 날, 승준의 세상엔 시아라는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시아는 시선을 거두고, 사직서를 접어 하얀 봉투에 넣었다.그 순간,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승준이 들어왔다.검은 셔츠에 검은색 바지. 길게 뻗은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습에 강한 아우라가 느껴졌다.차가운 고급스러움이 그의 몸에 배어 있었다.시아는 아직도 승준을 처음 만난 그날을 기억하고 있다.역시 검은 셔츠 차림으로 바 한구석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마치 모든 걸 잃은 듯 낙담한 눈빛이었다. 그때 승준의 집안은 파산 상태였고, 밀린 술값은 손목시계를 맡겨서 해결하던 때였다.시아는 대신 나서서 그 시계를 찾아주면서, 승준을 자신의 인생에 끌어들였다.그러나 진흙 속에 묻힌 용은 결국 하늘로 솟는 법. 승준은 다시 일어섰고, 지금의 구영시 재벌가의 자리에까지 올라왔다.“내가 문자 보냈는데 왜 답이 없어?”승준의 날카로운 시선이 시아 손에 든 봉투에 꽂혔다.시아는 봉투를 쥔 채 창밖을 가리켰다.“대표님과 은채 씨의 결혼 홍보 영상을 보고 있었습니다.”승준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그 홍보 영상, 네가 직접 기획한 거잖아. 뭘 더 볼 게 있다고.”그렇다. 그 영상은 시아가 직접 기획한 것이었다.영상 속 승준과 은채의 모든 사진, 모든 달콤한 순간, 모든 사랑의 문구 하나하나까지 시아가 직접 구상하고 정리해 넣었다.그때 승준은 시아에게 말했다.“이건 네가 직접 해. 다른 사람이 하면 은채가 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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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고수였다
“사직서예요.”시아는 숨김없이 말했다.승준은 예전부터 말해왔었다. 거짓말을 제일 싫어한다고. 아무리 선의라도 용납 못 한다고.승준의 얼굴에 드리운 먹구름이 더 짙어졌다.“앞으로 누가 사직서를 내든 인사팀에 바로 넘겨. 네가 나설 일 아냐. 시간 남아도는 거면 가서 외할머니나 챙겨드려.”쾅!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시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서서히 사라졌다.“이건 내 사직서야.”————저녁 6시.시아는 승준과 함께 진씨 가문 저택에 도착했다.차가 막 멈추자마자, 은채가 하얀 강아지를 안고 달려 나왔다.은채는 승준을 향해 환하게 웃으며 수줍은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여자 품에 있는 강아지는 승준을 향해 연신 짖어댔다.“도니, 그러지 마. 아빠잖아.”은채의 그 한마디에 시아의 입꼬리가 살짝 떨렸고, 곁눈질로 승준을 힐끔 바라봤다.승준은 평소 강아지나 고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털 알레르기가 있었기 때문이다.그런데도 승준은 손을 내밀어 강아지 머리를 툭툭 두드렸다.“도니라고? 다음에 또 나한테 짖으면, 너희 엄마한테 너 입양 보내라고 할 거야.”시아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강아지 머리를 툭툭 두드리는 승준의 손을 바라보며 가슴 깊은 곳에 시큼한 감정이 번졌다.예전에 시아도 고양이를 키운 적이 있었다.그것도 철장 안에서 조심스럽게.하지만 승준은 알레르기를 이유로 그 고양이를 보내라고 했었다.그런 남자가, 지금은 은채의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말을 건다.‘좋아하는 사람 앞에선 알레르기도 사라지는 법이구나.’“승준아, 아빠 엄마 안에서 기다리고 계셔.”무용을 전공한 여자답게 은채는 몸매는 가늘고 유연했으며, 말투며 시선 하나하나에 부드러움이 묻어 있었다.사르르 녹아드는 그런 여자...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여자인 시아조차 은채를 봐도 한 번 더 돌아보게 되는 외모였다.두 사람은 다정하게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갔다.뒤따르는 시아는 운전기사와 함께 크고 작은 선물 꾸러미를 들고 뒤를 따랐다.오늘 이 자리는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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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누가 우리 끝났다고 했어?
“대표님, 병원에 가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시아는 단호하게 말하며 승준의 손을 뿌리쳤다.처음이었다. 시아가 승준에게 ‘안 된다’고 말한 건.승준의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이 더 깊어졌다.그리고 말없이 시아의 손목을 잡고는 억지로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문을 발로 차며 닫는 소리에 현관이 쿵 울렸다.“지금 너 삐친 거 내가 모를 줄 알아?”승준의 눈빛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알고 있었구나.’알고 있으면서 승준은 여전히 지켜만 보고 있었다.심장 밑바닥부터 올라온 시큰한 감정이 콧끝까지 밀려 올랐다.“넌 나랑 7년 동안 한 침대에서 잤어. 이제 와서 말도 없이 날 버린다고? 내가 억울해할 자격도 없어?”승준은 은채와 함께하기로 마음먹기 전 시아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설령 그저 연인이었다 해도 이제 필요 없어졌다면 한마디는 해야 했다하지만 승준은 그러지 않았다.마치 시아가 그냥 회사의 일개 비서일 뿐인 것처럼 시아 눈앞에서 다른 여자와 공개적으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누가 우리 끝났다고 했어?”승준은 견디기 힘든 듯 셔츠의 단추를 세게 당겼다.딸각딸각 떨어지는 단추 소리와 함께 셔츠가 활짝 열리며 붉은 두드러기로 뒤덮인 가슴이 드러났다.시아는 몇 번 승준의 알레르기를 본 적이 있었기에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운 상태인지 알 수 있었다.이제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자신에게 말하면서도 결국 참지 못하고 연고를 챙겨왔다.시아의 손과 약이 승준의 뜨거운 손에 닿는 순간 승준은 시아의 손을 단단히 붙잡았다.“나는 단 한 번도 널 버리겠다고 말한 적 없어. 너도 그랬잖아. 날 떠나지 않겠다고. 그 약속, 잊으면 안 돼.”승준이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니. 시아는 승준이 이미 잊은 줄 알았다.예전에 승준을 집에 데려온 후, 시아는 남자의 얼굴에 반해버렸고, 작은 고시원 방에서 둘은 함께 밥을 먹고 자고, 사랑을 나눴다.그러던 어느 날, 돈이 완전히 떨어졌다.승준은 인형탈 아르바이트를 하러 나갔다.무더운 여름, 두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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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못 지킬 약속은 왜 했어?
“아가, 이건 외할머니가 네 결혼식 하라고 모아둔 돈이란다. 너랑 승준이가 이제 결혼하게 될 거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이걸로 준비해라.”외할머니는 시아의 손을 꼭 붙잡고, 그 손을 승준의 손 위에 겹쳐 올리고, 두 사람이 맞잡은 손에 카드를 쥐여주었다.시아의 얼굴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외할머니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자신이 없었다.승준의 결혼 소식은 이미 온 세상에 퍼졌고, 외할머니 역시 분명 봤을 것이다.하지만 기억이 흐려진 외할머니는 신부가 당연히 시아라고 믿고 있었다.“승준아, 외할머니랑 약속해. 시아한테 잘해주겠다고.”외할머니는 승준의 손을 붙잡고 간절히 당부했다.“걱정 마세요, 외할머니. 시아한테 평생 잘할 거예요. 우린 생사고락을 함께하기로 약속도 했거든요. 이생이 다할 때까지 절대 손 놓지 않을 거라고.”승준의 말에 시아의 심장이 다시 한번 쿡 찔렸다.4년 전, 출장 중에 승준은 시아를 데리고 만불산에 간 적이 있었다.그곳 삼생석 앞에서 두 사람은 세 번 절을 올리며 맹세했다.이번 생뿐만 아니라 다음 생까지도 함께하겠다고.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고.하지만 두 사람은 이번 생조차 지켜내지 못할 것이다.맹세는 결국 깨지기 위해 존재했고, 약속은 배신을 위한 도입부일 뿐이었다.“시아야, 승준아, 결혼식 날 꼭 나 데리러 와야 해. 외할머니가 너희 둘 결혼식을 보고 싶어.”외할머니는 다정히 당부했다.“외할머니, 꼭 올게요. 저희가 절도 올려야 하잖아요.”승준은 외할머니 앞에서만큼은 회사 대표도, 냉정한 남자도 아닌 그저 시아의 연인이었다.요양원을 나선 후 시아는 가슴 깊숙한 곳까지 무언가로 꽉 막힌 듯 답답했고, 눈가엔 금세 눈물이 맺혔다.“못 지킬 약속은 왜 약속했어?”‘나와 결혼할 생각도 없으면서 왜 결혼하겠다고 말한 거야?’‘외할머니 데리러 갈 일도 없으면서 왜 그렇게 말했어?’승준은 고개를 숙인 채 휴대폰을 확인했다.은채가 보낸 메시지를 읽으며 손가락으로 답장을 보내고 있었다.그러고는 무심히 입을 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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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어떻게 날 이렇게 모욕해?
“하지호 있잖아, 우리 구영시 재벌가 도련님, 곧 결혼한대!”“맞아, 한밤중에 갑자기 결혼 발표 나서 나 완전 한숨도 못 잤어. 도대체 누구랑 결혼하는지 너무 궁금해.”...시아는 티타임에 탕비실에서 몇 동료들이 들떠서 떠드는 소리를 들었다.그녀도 하지호를 알고 있었고, 몇 번 마주친 적도 있었다.그때마다 지호는 시아를 도왔다.한 번은 시아가 운전 중에 타이어가 펑크 나서 어쩔 줄 몰라 할 때 마침 그 옆을 지나가던 지호가 와서 타이어를 교체해 주었다.또 한 번은 고객과 식사하는 자리에서 상대가 술에 취해 시아한테 손을 대려고 하자 지호가 재빨리 취객을 끌어내서 거래도 지키고 시아의 체면도 지켜주었다.그 밖에도 여러 차례 있었는데, 시아도 다 기억하지 못했다.‘이 정도면 나는 하지호한테 은혜 많이 입었네.’‘결혼하면 축하 선물을 보내야지. 날 기억할지 모르겠지만...’“언제 결혼해?”커피 타러 가면서 시아가 물었다.“다음 주. 대표님이랑 같은 날에 결혼한대!”커피잔을 들던 시아의 손이 덜컥 떨려서 뜨거운 커피가 손에 튀었다.“얘기 나누고 있어.”시아는 그대로 자리를 떠났다.뒤에서 말들이 들려왔다.“하하, 대표님 결혼하는 얘기를 왜 해. 강 비서님 마음 아프겠다.”“강 비서도 참 불쌍해. 대표님 곁에 몇 년이나 있었는데, 결국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결혼식에 가서 축복해주는 처지가 됐으니.”“휴, 남자 마음이란 게 그렇지 뭐. 근데 하 대표님은 다르대. 자기 결혼 상대가 10년간 짝사랑한 여자라고 하더라고...”오후 승준에게서 전화가 왔다.“잠깐 나랑 같이 나가자.”“네!”시아는 어디 가는지도 묻지 않았다.묻는다고 달라질 게 없다는 걸 알고 있었고, 지금은 승준과는 말 한마디도 더 하고 싶지 않았다.시아는 하던 업무 인수인계 리스트를 저장하고 닫은 후 짐을 챙겨 승준을 따라나섰다.차는 진씨 가문 저택 앞에 멈췄다.은채가 공주처럼 발랄하게 달려와 승준 품에 안겨 승준 볼에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승준은 자연스럽게 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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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신랑도 같이 붙여줘야죠
“강 비서님, 이제 그쪽이 승준이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알겠죠?”드레스를 입어보던 중, 은채는 마침내 천진한 얼굴 뒤에 감춘 진짜 본색을 드러냈다.시아의 마음은 이미 무뎌진 지 오래됐다.“은채 씨야말로, 승준이가 바닥일 때 떠났다가 잘나가게 되니까 돌아왔잖아요. 그럼 은채 씨는 뭐죠?”“그래서 뭐? 그래도 승준이가 사랑하는 건 나야. 밤을 같이 보내고, 인생의 바닥을 함께한 건 너지만, 결국 승준이가 선택한 건 나야.”은채는 자신만만하게 웃음을 보였다.그렇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그러나 시아는 그런 싸움에 끼고 싶지 않았다. 누가 더 능숙하게 남자를 붙잡느냐 따위엔 관심 없었다.“그래서 지금 저한테 이런 말 하는 이유가 뭐예요?”“결혼식 끝나면 다시는 네 얼굴 안 봤으면 좋겠어. 회사든 어디든, 내 앞에 나타나지 마.”은채는 직설적이었다.시아는 환하게 웃었다. 밝고 당당한 웃음이었다. 시아가 먼저 떠나는 것이지 누구에게 쫓겨나는 건 아니었다.시아는 일부러 은채의 요구를 무시하며 도발하듯 말했다.“그런 말은... 구 대표님한테 직접 하라고 하세요.”“아직도 승준이가 널 사랑한다고 착각하는 거야?”은채의 눈에는 분노와 질투가 섞여 있었다.시아는 이미 승준이 자신 손에 끼워준 반지를 빼서 은채 손에 끼워주는 모습을 보고 모든 미련을 끊어냈다.“드레스 정말 잘 어울리네요. 결혼식 날엔 더 예쁘실 거예요.”시아는 그 말을 남기고 피팅룸을 나왔다.승준은 이미 예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짙은 색 턱시도에 무테안경을 쓴 남자의 모습은 처음 만난 그날 그대로였다.그때 시아는 이렇게 잘생긴 남자가 세상에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여전히 멋지고, 여전히 보는 사람을 설레게 하는 얼굴이었다.하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시아는 결코 이 남자에게 다가가지 않았을 것이다.멀리, 아주 멀리 했을 것이다.비록 시간을 되돌릴 수 없지만 시아에게는 미래가 있다.그러니 이제 승준을 자신의 미래에서 지워야 한다.“마음에 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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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한 사람밖에 구할 수 없었어
시아는 운이 좋았다.그렇게 심하게 넘어졌는데도 뇌진탕은 아니었다.하지만 뒤통수에 생긴 커다란 손으로 만져질 정도였다.고개를 숙이고 뒤통수를 만지며 걷던 시아는 길을 제대로 보지 않아 누군가와 정면으로 부딪쳤다.“죄송...”사과를 하려 고개를 든 순간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지호 씨.”하지호는 짙은 회색 실크 셔츠에 맞춤 제작된 슬랙스를 입고 있었고, 어깨에서 허리로 이어지는 실루엣은 단정하고 절제된 고급스러움이 묻어났다.“다쳤어요?”지호는 키가 컸다.시아의 머리가 겨우 남자의 턱 밑에 닿을 정도였다.지호는 시아의 뒤통수에 난 혹을 보고 있었다.“괜찮아요.”시아는 뒷걸음질 치며 지호 손에서 벗어났다.지호는 자연스럽게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그윽한 눈빛으로 시아를 살폈다.“도움이 필요해요?”“아니요, 괜찮아요.”시아는 고개를 저으며 다시 단호하게 말했다.그러고는 뭔가 생각난 듯 말을 이었다.“결혼 축하드려요, 지호 씨.”지호의 시선이 시아의 혹에서 얼굴로 옮겨지더니 그 깊은 눈 속에 잠깐 읽기 어려운 표정이 스쳤다.“시아 씨도요. 축하해요.”‘무슨 축하?’‘사랑한 사람에게 버림받고 7년을 함께한 남자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걸 축하하라고?’하지만 시아도 결혼할 예정이다.같은 날이니 굳이 따지자면 축하 인사를 받을 만했다.시아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돌아섰다.이번에 크게 넘어져 유일하게 덕 본 것은 휴가를 낼 수 있는 핑계가 생긴 것이다.시아는 그 틈을 타 자신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은 3개월 전까지만 해도 승준과 함께 살던 곳이었다.하지만 승준과 은채가 다시 만나게 된 뒤 승준은 풍림원으로 옮겼고 여긴 시아 혼자만의 공간이 되었다.그러나 여전히 집 안에는 승준의 흔적이 가득했다.신발장에 있는 구두, 행거에 걸린 셔츠.와인 선반 위에는 승준이 좋아하던 잔과 술병이 있었고 소파 위에는 종종 그가 덮던 담요도 있었다.최근 3개월간 시아는 단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마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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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이곳에 오지 않을 것이니까
승준이 시아에게 쉬라고 했지만 시아는 쉬지 않았다.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아있었다.시아는 회사에 가서 하루 종일 인수인계를 마무리했고, 서명해야 할 서류와 수집해야 할 계약서, 승준의 주요 일정까지 정리해서 분류했다.그날, 시아는 회사 탕비실에서 동료들이 수군거리는 걸 들었다.승준이 결혼식을 위해 구영시 전역의 전자 광고판을 사들여 생중계를 한다는 이야기였다.이틀째 되는 날, 시아는 승준의 집에 남아 있던 자신의 짐을 모두 정리해서 박스에 담았고, 자원봉사자에게 맡겨 필요한 사람에게 기증하도록 했다.그날, 자원봉사자들 사이에서 또 다른 이야기가 들렸다.하지호의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하씨 가문이 구영시 전체에 잔치를 열고, 축의금은 일절 받지 않는다고 했다.사흘째 되는 날, 시아는 만불산으로 향했다.무려 여섯 시간을 들여 삼생석에 새겨진 자신과 승준의 이름을 하나하나 손으로 긁어냈다.이름을 모두 지웠을 무렵, 시아의 손끝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그날, 텔레비전에서는 승준과 은채가 함께한 인터뷰가 방송되었다.승준은 시청자들에게 전에 없던 색다른 결혼식을 선사하겠다고 말했다.나흘째 되는 날, 그러니까 결혼식 바로 전날이었다.시아는 결혼식장이 어떻게 꾸며졌는지 보기 위해 현장을 찾았고, 그곳에서 승준과 은채의 리허설을 목격했다.은채가 반가운 얼굴로 시아를 불렀다.“강 비서님, 무대 위로 올라오세요. 결혼식 당일에 제 뒤에 서 계시면 제가 부케를 던져드릴게요. 그러면 그 복이 전해져서, 곧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실 수 있을 거예요.”시아는 은채의 요청대로 무대 뒤에 섰다.승준이 은채에게 사랑을 맹세하는 걸 봤다.반지를 손에 끼워주고, 은채가 눈을 감고 고개를 들어 남자의 입맞춤을 기다리는 장면도 같이 말이다.하지만, 승준은 끝내 입을 맞추지 않았다.그는 시선을 돌려 시아를 바라보았다.시아는 눈빛이 또렷하고 평온한 표정이었다.그 모습은 마치 전혀 낯선 사람을 보는 것 같았다.시아를 보는 순간, 말할 수 없는 낯섦과 불안함, 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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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마지막 눈물
[내일 결혼식, 정말 할 거야?]깊은 밤, 시아는 문자 한 통을 받았다.시아는 곤히 잠든 외할머니를 바라보며 문자를 보냈다.[주소 보낼 테니까 내일 나랑 외할머니 데리러 와줘. 마음 바뀌면 안 와도 괜찮고.][내일 봐, 나의 신부님!]그 문자를 보는 순간, 시아의 가슴 한편이 뻐근해졌다.‘그래, 나도 신부가 되는 거야.’하지만 시아를 맞아주는 사람은 한 번도 얼굴을 본 적 없는 온라인에 존재하는 상대일 뿐이다.이것이 사랑에 상처받아 미쳐버린 결과는 아니었다.단지 외할머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더 이상 걱정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그 사람과 실제로 얼굴을 맞댄 적은 없지만 온라인에서만 10년을 알고 지낸 사이였다.인생에서 십 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존재가 얼마나 될까.그 십 년을 자신에게 내어준 사람이 있다면 그만큼 믿을 수 있을 것이다.자정이 막 지난 시각, 승준에게서 전화가 왔다.시아는 외할머니가 깰까 봐 조용히 방을 나가 전화를 받았다.“대표님, 무슨 지시 사항이라도 있으신가요?”그 말투. 요즘 들어 승준이 시아한테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을 것이다.[왜 집에 없어?]오늘따라 승준의 마음은 불안하고 초조했다.결국 핸들을 돌려 시아와 6년 넘게 함께 살아온 집으로 향했다.그런데 침대는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시아의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시아는 승준이 어디에 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다만, 자신의 짐이 사라진 걸 알아챘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외할머니댁에 있습니다.”시아가 솔직하게 말했다.불 꺼진 집 안, 승준은 아직도 불을 켜지 않고 소파에 앉아 있었다.시아를 방해하지 않으려는 배려였지만 지금은 오히려 이 어둠 속에 있는 것이 마음이 더 편했다.시아가 없는 이 집이 무서울 정도 너무 조용하다는 걸 깨달았다.[거긴 왜 간 거야?]그 질문을 듣는 순간, 시아는 확신했다.승준은 아직 여자의 짐이 사라졌다는 걸 모르고 있었다.그 말은 곧 자신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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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웨딩카
어젯밤 별이 아름다웠던 만큼 오늘 아침 햇살은 그보다 더 눈부셨다.시아는 햇살에 눈을 찡그리며 잠에서 깼다.눈을 뜨자마자 햇빛 아래 환히 웃고 있는 외할머니의 얼굴이 가장 먼저 보였다.“아이고, 얘 참 천하태평이네. 오늘 결혼하는 날인데 어쩜 이렇게 잠을 달게 잔다니.”시아는 외할머니의 손바닥에 얼굴을 묻은 채 게으른 목소리로 말했다.“외할머니, 저 아직 졸려요.”“졸리긴 뭐가 졸려! 너 데리러 온 웨딩카 벌써 도착했어!”시아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들었다.외할머니가 가리키는 창밖을 바라보니 요양원 앞엔 검은색 고급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온라인에서만 알고 지내던 그 사람이 진짜 결혼하러 왔다고?’시아는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그 순간, 햇살 속에 서 있는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몸에 꼭 맞는 짙은 색 슈트를 입고 있었고, 맞춤 제작한 커프스 버튼은 햇살을 받아 다이아몬드처럼 빛나고 있었다.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누가 봐도 귀족 그 자체였다.“거기 서서 뭐 해?”외할머니의 말이 끝나자 그 남자가 천천히 돌아섰다.시아의 시선이 그 남자의 얼굴에 닿는 순간 심장이 멎는 기분이었다.“당신인가요?”오전 9시 59분.구영시 중심대로 동서로 뻗은 두 갈래의 넓은 도로 위에 두 행렬의 웨딩카가 마주 달리고 있었다.한쪽은 하씨 가문 하지호의 웨딩카이고, 다른 한쪽은 구씨 가문 구승준의 웨딩카였다.구영시에서 가장 권력 있는 사람과 가장 돈 많은 사람이 같은 날 결혼을 하게 되면서 수많은 언론이 밤잠도 못 자고 중계 포인트를 선점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그만큼 스케일도 어마어마했다.머리도 꼬리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끝없이 이어지는 웨딩카의 행렬. 적어도 100대는 족히 넘어 보였다.차마다 붉은 리본과 장식으로 꾸며졌고, 햇빛마저 붉게 물들일 정도였다.각기 다른 길을 달리던 두 행렬은 중앙대로의 교차 광장에서 맞부딪혔다.이 장면에서 두 신부가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는 의미로 부케를 교환하는 게 오늘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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