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는 못마땅하다는 듯 주민혁을 흘겨보았다.“예린이가 널 부르는 거 안 들리니?”“들었습니다.”그는 짧게 대답했다.“제가 먼저 모셔다드리겠습니다.”“수빈아, 내일 다시 오마.”“괜찮아요, 할머니. 예린이는 크게 다친 게 아니에요. 괜히 힘들게 움직이지 마세요.”최수빈이 정중히 말했지만 할머니는 그런 그녀의 태도에 더욱 마음이 짠해졌다.늘 상황을 헤아리고 다투지도 않는 성격, 그렇기에 더더욱 걱정스러웠다.혹시 이 아이가 속으로만 삼키고 있진 않은지, 혼자 상처받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됐다.할머니는 직접 운전기사를 불러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어차피 주민혁은 아직 부상 중이라 완전히 회복되지도 못한 상태였다.떠나기 전, 그녀는 다시 한번 손자를 노려보았다.“네 아내 좀 아끼고 살펴라. 너희 둘, 대체 무슨 일이야?”“별일 없습니다. 저희 잘 지내고 있습니다.”주민혁은 변함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아무 일 없다면 다행이고.”할머니는 의심을 감추지 못한 채 중얼거렸다.“이제 수빈이가 나한테 예린이를 맡기진 않겠지. 넌 대체 어떻게 아이를 본 거냐.”“예린이는 증손녀니까 뵙고 싶으실 때 언제든 보실 수 있습니다.”한숨을 내쉬던 할머니는 결국 차에 올라 떠났다.최수빈은 주민혁이 언제 병원을 나갔는지도 알지 못했다.그는 어디를 가든 언제나 그녀에게 일절 알리지 않았다.더구나 이제 곧 이혼을 앞둔 상황에서 그런 걸 알려줄 이유는 더더욱 없을 터였다.딸이 다쳤음에도 무심한 주민혁의 태도에 최수빈은 한없이 씁쓸해졌다.그러나 이번만큼은 박하린에게 고마워해야 할지도 몰랐다.그녀가 아니었다면 이혼은 여전히 먼일로만 남아 있었을 테니.이제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고 중요한 건, 곧 자유로워진다는 사실이었다.주말 아침.주민혁은 법무 부서에서 온 전화를 받았다.“주 대표님, 개인 명의의 상소 서류가 있습니다. 회사 건은 아니고요.”“언제 접수된 겁니까?”“보름 전입니다. 업무량 때문에 순서대로 처리하다 보니 이제야 확인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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