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죽음의 끝자락에서 깨달은 것: Chapter 11 - Chapter 20

100 Chapters

제11화

주예린이 고개를 돌리자 의기양양한 주시후의 얼굴이 보였다.“내가 먼저 봤어.” 주예린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돌려줘!”주시후가 얼굴을 짓궂게 찡그리며 말했다.“먼저 잡은 사람 거지!”주예린도 그 음료수를 마시고 싶었고 분명 그녀가 먼저 눈여겨봤다.예전 같았으면 조용히 오빠한테 양보했을 텐데 최근 엄마가 누구든 괴롭히면 반격해도 된다고 했다.다만 아이가 손을 대기도 전에 누군가 주예린과 주시후 둘 사이에 나타났다.박하린이 주예린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뭘 뺏는 거야?”딱히 감정이 담긴 말투는 아니었지만 아이에겐 엄청난 위압감을 느끼게 했다.주예린은 미간을 찌푸리며 작은 손으로 주먹을 쥔 채 입을 열기도 전에 눈에 눈물이 고였다.극도로 서러움을 느낀 어린 소녀는 제자리에 잔뜩 굳어진 채 고립되어 버림받은 아이처럼 보였다.“울보야, 또 울려고 해? 하지만 네가 울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주시후는 조롱하며 음료수를 열었다.“이건 애초에 네가 마실 게 아니었어.”그는 주예린이 보는 앞에서 음료를 마시려고 했지만 병을 들어서 입을 대기도 전에 손이 텅 비어 버렸다.누군가 음료수를 뺏어간 것이다.불만스럽게 고개를 돌리는 순간 최수빈과 시선이 마주치자 아이는 살짝 멈칫했다.엄마가 그를 이렇게 보는 건 처음이었다. 차갑고 낯선 눈빛이었다.최수빈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차가운 얼굴로 음료를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쾅!소리에 주시후는 놀라서 심장이 흠칫 떨렸다.곧이어 그녀는 고개를 숙여 딸의 작은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말했다.“더러운 건 쓰레기통에 버려야지. 우린 필요 없어.”엄마가 나타나자 의지하고 기댈 곳이 생긴 주예린은 용기가 생겨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고작 음료 한 병 갖고 그렇게까지 해야 해?”멀지 않은 곳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리더니 주민혁이 걸어오며 차가운 눈빛으로 최수빈을 노려보았다.최수빈은 피식 웃음이 났다. 그는 이제 남들 다 보는 앞에서 대놓고 박하린과 주시후를 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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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최수빈은 순간 숨이 턱 막히며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녀는 즉시 일어나 한재준에게 깊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해요. 이번에는 절대 실망시키지 않을게요.”한재준은 전용차를 타고 연구원으로 돌아갔다.육민성은 차로 최수빈을 데려다주었다. 최수빈이 한재준과 대화하는 동안 그는 주예린에게 맛있는 간식과 문구류, 장난감을 두 손 가득 사주었다.실컷 즐겁게 논 주예린은 웃느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뭘 이렇게 많이 사줬어요?”육민성은 최수빈을 바라보며 눈썹을 치켜올렸다. “애한테 사준 건데 그것도 돈을 주려는 건 아니지? 돈 말고 나중에 열심히 일이나 해.”최수빈이 웃었다.“선배는 계획이 다 있었네요.”육민성이 물었다. “딸 데리고 호텔에 머물 생각이야?”“집 찾고 있어요.”그녀는 어린이집 근처의 집을 찾고 있었다.“원하는 조건 있으면 나한테 보내. 나도 더 찾아볼게.”최수빈도 마다하지 않았다.“고마워요, 선배. 집값은 너무 비싸지 않으면 좋겠어요.”아직 수입이 없기에 너무 비싼 집에 세 들어 살 수가 없었다.주예린과 함께 내내 호텔에 머무는 것도 불편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집으로 돌아온 후 최수빈은 컴퓨터를 켜고 국제 우주 정착 설계 대회 준비를 시작했다.현재 과학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데다 그녀는 이미 수년간 이러한 기술을 조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 철저히 준비해야 했다.컴퓨터를 켜자마자 오른쪽 하단에 이메일 알림이 떴다.클릭해 보니 국제 우주 정착 설계 대회 참가 초대장이었다.이렇게 빨리 올 줄 몰랐던 최수빈은 살짝 당황하며 화면 속 초대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이 순간 그녀는 처음으로 국제 우주 정착 설계 대회에 참가했을 때로 돌아간 듯 기억 속 모든 장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아마도 하늘이 정말로 그녀를 불쌍히 여겨 다시 한번 기회를 준 것일지도 몰랐다.이번에는 반드시 기회를 잡을 거다.그녀는 복귀를 다짐하며 다시 한번 프로젝트 준비에 집중했다.한편 항공 전시회를 보고 난 주시후는 비록 기쁘긴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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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주시후는 살짝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모든 걸 알아차린 듯한 얼굴을 했다.“엄마, 하린 이모 질투하지 마요. 사실 엄마도 하린 이모랑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어요. 우리 다 하린 이모랑 사이좋은데 엄마만 나쁘잖아요. 그럼 엄마한테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 봐야죠.”최수빈은 알아서 무시하며 주시후를 차갑게 쳐다보았다.“같은 말 두세번 하기 싫어. 내려.”주시후는 최수빈을 바라보며 잠시 침묵하다가 곧 가벼운 웃음을 터뜨리며 곧장 차에서 뛰어내렸다.“엄마, 날 이렇게 대한 걸 후회하지 마요. 앞으로 엄마 차 타라고 해도 절대 안 타요!”최수빈은 주시후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주예린을 안아서 차에 태운 뒤 운전석으로 돌아가 이내 차에 시동을 걸었다.주예린은 백미러를 통해 주시후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엄마, 정말 오빠를 버려요?”“엄마한텐 너 하나밖에 없어.”아직 어린 주예린은 최수빈의 말 속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그저 마음속으로 이번에는 엄마가 정말로 주시후 때문에 화가 났다고 생각했다....최수빈은 호텔로 돌아간 후 계속해서 대회 준비를 이어갔다.이 대회는 그녀에게 매우 중요한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이었다.똑똑한 주예린은 어린이집에서 숙제를 내주어도 그녀가 도와줄 필요가 없었다.놀라울 정도로 기억력이 좋은 아이는 뭐든 설령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한번 보면 다 기억했다.그래서 주예린은 늘 그녀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주시후는 매번 신경을 쓰며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숙제를 도와줘야 했고 편식하는 아이 때문에 새로운 음식도 많이 배워야 했다.그런데 5년간 퍼부은 진심의 대가가 고작 이런 것이라니.갑자기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최수빈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자 송미연이 그녀의 품에 뛰어들었다.“자기, 보고 싶었어!”최수빈은 웃으며 그녀를 밀어냈다. “여긴 어떻게 왔어?”“주민혁과 이혼한다길래 축하하러 왔지.”송미연은 문 앞에 놓인 술 상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 밤 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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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현장 백스테이지 대기실에 육민성과 송미연이 차례로 도착했다.송미연은 들어오자마자 얼굴에 경멸 섞인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방금 밖에서 또 그 망할 녀석들을 만났어. 왜 저것들은 어디에나 있는 거지? 듣기론 박하린도 대회에 참가한대. 미친 것 아니야? 거만한 태도가 얼마나 눈에 거슬리던지.”최수빈은 미소를 지었다.“왜 그렇게 화를 내?”“고작 남자한테 빌붙어 출세해 놓고 거들먹거리는 게 보기 싫어서 그러지. 511 연구원에 들어갈 자격도 없어서 네 남편이 인맥 동원해서 낙하산으로 들어갔잖아.”송미연은 화가 나서 콧김마저 씩씩거렸다.“주민혁이 너랑 결혼한 지 몇 년이나 됐는데도 너한테 해준 게 뭐야? 박하린한테는 그렇게 퍼부으면서.”최수빈은 입술을 달싹였다.결혼한 지 6년 동안 주민혁은 매년 주시후를 데리고 해외로 가서 박하린을 만났다.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리 멀리 있어도 만나러 가지만 눈앞에 있는 사람은 아무리 열정적으로 굴어도 그의 차가움을 이길 수는 없었다.6년 동안 그녀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딸과 자신의 생명만 헛되이 바쳤다.최수빈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방에 있으니 답답함이 밀려왔다. 가슴에 무언가가 빼곡히 들어찬 것처럼 숨을 쉴 수 없었다.그녀는 혼자서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 경기장의 뒤 정원으로 걸어갔다.봄이 다녀간 정원에는 매화가 심어져 은은한 향기를 풍기고 있었다.꽃은 풍성하게 피어났고 아리따운 자태를 자랑했다.그녀는 가까이 가서 자세히 보려고 걸음을 옮기다가 모퉁이에서 뚝 멈춰 섰다.나무 아래에서 주민혁과 박하린의 매우 다정한 모습이 보였다. 박하린이 남자의 목을 감싼 채 마치 키스를 하는 듯했다.최수빈의 심장이 철렁하며 깊게 숨을 들이쉬고는 뒤돌아 가려고 했다.“언니?” 박하린이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왜 여기 있어요?”그녀의 얼굴에는 미소가 번졌지만 주민혁의 표정은 차가웠다.좋은 일을 방해받은 듯한 불쾌한 표정이었다.최수빈은 입술을 비틀며 말했다. “내가 방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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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남자의 표정은 담담했고 아무런 변화도 없었으며 그녀의 감정과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과거 그녀가 주말마다 그에게 아이와 함께 소풍을 가거나 놀이공원에 가자고 했지만 그는 항상 시간이 없다고 했다.대놓고 주시후를 데리고 해외로 가는 것 외에 이틀밖에 안 되는 주말에도 해외로 가서 박하린과 둘만의 시간을 보냈다.최수빈의 눈빛에 점차 조롱이 번졌다.알면 알수록 자신의 6년간의 진심이 죽을 쒀서 개를 주는 것만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최수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두 사람 행복하길 바랄게요.”주민혁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는 있어?”그녀가 시선을 돌려 그와 마주했다.남자는 서늘함이 적나라하게 담긴 눈동자로 한 글자 한 글자 분명하게 말했다.“하린이는 내연녀가 아니야.”최수빈은 기가 막혔다.“그래요? 그럼 빨리...”‘이혼합의서에 사인해.’“최수빈!”송미연이 나타나 그녀의 말을 끊었다.“한참 찾았잖아.”그녀는 앞으로 다가와 박하린과 주민혁을 보고는 조롱하듯 차갑게 말했다.“쓰레기 연놈이랑 무슨 얘기를 해. 가자.”박하린이 멈칫했다.“민혁 오빠, 언니가 우리를 오해한 것 같아. 난 귀국하고 아무것도 안 했는데 언니는 왜 나를 저렇게 싫어하는 거야? 앞으로 우리 거리를 두는 게 좋겠어. 괜히 행복한 결혼생활 망치고 싶지 않아. 하하하하.”“됐어.”주민혁은 최수빈의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안 그래.”...송미연은 가는 동안 내내 욕을 하며 화를 냈고 최수빈은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이혼할 사이인데 그냥 내버려둬.”대기실로 돌아온 후 육민성은 최수빈에게 이성적으로 분석해 주었다.“박하린은 경쟁자로서도 잘 연구해 봐야 할 인물이야. 그냥 겉만 번지르르한 게 아니라 그래도 해외 유학파야. 하지만 일부 작품과 능력을 봤을 땐 전혀 네 상대가 되지 못해. 지금 그 여자 수준은 네 스무살 때보다도 못해.”송미연은 그 말을 듣고 눈썹을 치켜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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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박하린의 마음속에서 서서히 위기감이 솟아올랐다.그녀가 알기로 노던아이는 아직 졸업하지 않은 학생으로 이루어진 팀이라 전혀 신경 쓰지 않았는데 대체 어디서 이런 대단한 전문가가 나타났을까.“긴장돼?” 주민혁이 박하린을 슬쩍 쳐다보자 박하린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그럴 리가. 이런 대회에서 긴장할 사람은 내 상대지.”노던아이 팀에 전문가급 인물이 있다고 해도 결국은 미성숙한 팀일 뿐이다.이 생각을 하자 박하린의 마음도 조금은 진정되었다.24시간 극한 대회는 휴식 시간이 있지만 누구도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 모두 교대하며 잠깐씩 눈을 붙였다.경기가 끝났을 때 최수빈은 안도하며 한숨을 내쉬고는 의자에 기대어 미간을 문지르며 지친 모습을 보였다.심사위원단은 항공우주 분야의 각 부서 전문가로 구성되어 있으며 점수제로 평가된다.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현장 분위기엔 긴장감이 흘렀다.대회 순위를 발표하는 사람이 무대에 올라 리스트를 손에 들고 장황한 설명을 마친 후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발표합니다. ISSDS 지역 대회 우승팀은 노던아이!”무대 아래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오고 박하린은 사색이 되었다.‘어떻게 된 거지?’이어 무대 위 진행자가 발표를 이어갔다.“팀 내 최우수 멤버는 소피아!”“소피아?”무대 아래에서 소란이 일었다.“어쩐지 조금 전 답변할 때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창의성과 전문 기술이 이곳 경기에 참여할 수준이 아니야. 국가 연구원에서...”“전에 이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어? 이미 연구 기관에 들어간 줄 알았는데 다시 나타났네?”과거 항공우주 업계에서 천재 소녀로 유명했던 그녀가 갑자기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지자 많은 이들은 그녀의 재능이 바닥을 드러내 자진해서 은퇴했거나 대단한 조직에 들어가 이름을 숨긴 채 활동한다고 생각했다.주민혁은 그런 말을 들으면서도 시종일관 아무런 표정 변화가 없었다.진승우는 박하린을 걱정했다.“이번에 하린 씨가 막강한 상대를 만난 것 같은데.”그는 주민혁의 차분한 표정을 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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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박하린의 팀은 2위이며 1위와의 격차가 상당했다.그녀의 개인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 밀리고 있으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반드시 모든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해 다음 경기에서는 그녀의 자리를 되찾을 것이다!...백스테이지.“꺄아악!” 송미연은 흥분해서 방방 뛰며 최수빈을 안았다.“대단해!”최수빈은 처음부터 긴장하며 미션을 통과하지 못할까 걱정했다.사실 자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몰랐던 그녀는 결과가 좋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상을 받으려면 무대에 올라야 하는데 최수빈은 아직 모습을 드러내고 싶지 않아 다른 팀원에게 대신 올라가 상을 받을 것을 부탁했다.“왜 네가 가지 않고? 곧 이혼할 전남편이 볼까 봐 겁나? 그러면 더더욱 네가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줘야지!”최수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섣불리 나서면 화만 불러와. 넌 그 사람이 어떤 수작을 부릴지 몰라. 만약 지금 내가 모습을 드러내면 그 사람은 사사건건 나를 저격할 거야. 아직 이혼하기 전인에 불필요한 문제는 만들고 싶지 않아. 난 다음 경기 제대로 준비해야 해. 그 사람과 엮이고 싶지 않아.”현재 그녀는 이제 막 데뷔한 신예로 경험과 실력을 쌓는 것이 중요할 뿐 두각을 나타낼 때가 아니었다.이 경기는 그녀의 미래 직업과 직결된다.또한 자신과 딸의 미래 생활 수준과 사회적 지위에도 영향을 미친다.딸을 위해서 힘을 내야 했고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계속 나아가야 했다.육민성은 고개를 끄덕였다.“이해해.”송미연이 제안했다. “이미 이렇게 좋은 성적을 거두었으니 제대로 축하해야지.”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누군가 대기실 문을 두드렸고 주최 측 관계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소피아 씨가 누구죠? 대표님이 찾으세요.”송미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어느 대표님이요?”냄새를 맡고 스카우트하러 온 것이었다.“플라잉 테크 대표님이요.”최수빈은 순간 놀랐다.플라잉 테크 대표는 정계 집안 출신으로 30대 초반에 이미 업계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심지어 업계 내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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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경기장 근처의 클럽, 최수빈이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주민혁은 룸을 예약해 두었고 최수빈이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거기에 있었다.올블랙으로 맞춰 입은 남자가 시선을 내린 채 덤덤하게 차를 마시고 있었다.뜨거운 물의 수증기가 피어오르며 방 전체에 차의 은은한 향기가 퍼졌다.최수빈도 이 향기를 제법 좋아했다.주민혁은 차를 더 선호했고 커피는 밤을 새워 일해야 할 때만 마셨다.최수빈이 들어오자 그가 말했다.“앉아.”“할 말이 뭔데요?” 최수빈은 앉으며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녀는 주민혁이 이혼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문자를 보냈다고 생각하며 이곳으로 왔다.남자는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의 시선이 이상하면서도 복잡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는 차 한 잔을 따라 최수빈 앞에 놓으며 말했다. “오늘 왜 경기장에 왔어?”“당신과 상관없잖아요.”최수빈의 차가운 태도에도 남자는 화를 내지 않았다.“예린이랑 어디서 지내?”최수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하고 싶은 말이 뭔데요?”그는 정교한 벨벳 상자를 꺼내 테이블 위에 놓고 최수빈 쪽으로 내밀었다.최수빈은 마음속으로 순간 멈칫했다. 오늘은 그녀와 주민혁의 결혼기념일이었다.마음속 깊이 새겨둔 날이라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기억이 났다.과거엔 해마다 이날을 무척이나 기대했었다.하지만 항상 그녀가 주민혁에게 전화를 걸어야만 그가 기념일임을 기억했다.지난 생에서 이때쯤 그녀는 한 상 가득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고 직접 케이크도 만들었다.그는 돌아오겠다고 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밤새도록 집에서 기다려도 그를 만나지 못했다.그때 주민혁은 바쁘다고 했는데 지금 보니 박하린과 함께 경기에 참여하느라 바빴던 것 같다.최수빈이 시선을 내린 채 물었다.“무슨 뜻이에요?”‘결혼기념일 선물인가?’“열어봐.”그녀는 깊은 한숨을 쉬며 대체 무슨 속셈인가 싶어 작은 상자를 들고 열었다.그녀가 생일 파티에서 버린 그 반지였다.늘 약지에 끼던 결혼반지라 손가락엔 지금까지도 희미한 자국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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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주민혁은 전화를 받은 후 즉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주민혁 씨.” 최수빈이 그를 불러세웠다.“어디 가요?”남자의 걸음이 멈칫하며 그녀를 슬쩍 보고는 이렇게 설명했다.“오늘 하린이 생일 파티가 있는데 술에 취하면 알레르기가 생길 수 있어서 데리러 가려고.”‘생일?’최수빈은 또다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지난 생의 이날, 그는 박하린과 함께 경기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의 생일을 축하해주느라 바쁘다고 한 것이었다.최수빈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자리에서 일어났다.“10분만요. 할 말이 있어요.”더 이상 이 상황을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고강도의 경기를 마친 그녀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전업주부가 된 이후 처음으로 고강도 일에 시달린 탓에 몸이 아직 적응하지 못했다.주민혁은 시계를 한 번 보고는 한 마디만 남겼다.“집에서 기다려.”말이 끝나기 바쁘게 그는 걸음을 옮겨 떠났다.남자의 옷자락이 우연히 테이블 위의 반지를 스치며 쨍그랑 소리와 함께 바닥에 툭 떨어졌다.주민혁은 모르는 것 같았다. 어쩌면 알면서도 신경 쓰지 않은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 걸 수도.최수빈은 바닥에 떨어진 반지를 내려다보며 차갑게 웃었다.전에 폭우가 내렸을 때 회사에서 퇴근한 후 택시를 잡지 못해 주민혁에게 데리러 와달라고 말했지만 그는 시간이 없다고 했다.그래서 그날 폭우 속에서 오랫동안 차가운 바람을 맞은 탓에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고열에 시달렸다.그는 집에 돌아와서도 그녀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그녀가 괜찮은지조차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가 데리러 와달라고 할 땐 오지도 않더니 박하린의 전화 한 통에는 모든 걸 뒤로 하고 달려간다.이렇게 차가운 남자를 바보처럼 6년 동안 사랑했다.우습기도 하지.살면서 그의 선택은 언제나 명확했다.이제 그녀도 분명하게 선택할 때였다.최수빈은 싸늘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업소를 나섰다....최수빈은 교외의 별장으로 갔다.대회 기간 그녀는 주예린을 어머니에게 맡겼고 차를 몰고 도착했을 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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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위층에서 내려오는 최수빈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이혜정이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얼굴이 피곤해 보이네. 목욕물 준비해 줄 테니까 좀 쉬어. 내일 아침에 내가 예린이 학교에 데려다줄게.”그녀는 최수빈의 지친 모습을 안타까워했다.어릴 적부터 최수빈은 활기찬 소녀였다. 주씨 가문에서 두 아이를 키우면서도 항상 활력과 기운이 넘쳤는데 너무도 달라진 모습에 뭐라고 말도 할 수 없었다.최수빈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예린이 보려고 서둘러 온 건데 잠들었네요. 저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해요.”“이렇게 늦은 시간에 어디로 가는 거야?” 이혜정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일단은 쉬고 나서 볼일 봐. 몸이 제일 중요해. 아무리 바빠도 쉬어야지.”최수빈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어요,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이혜정은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다.“참, 예린이 모레 학부모 회의가 있다는데 부모가 다 참석해야 한대.”그녀는 최수빈을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민혁이한테 말해. 그래도 딸이잖아. 예린이도 많이 좋아하는 것 같고.”최수빈은 멈칫했다.학부모회의... 주민혁은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고 매번 그녀만 갔다.말해봤자 주민혁이 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기에 굳이 말할 것도 없었다.하지만 아빠가 그리워 잠이 든 채 낮게 중얼거리던 주예린을 떠올리며 그녀는 입술을 깨물었다.“알겠어요.”주민혁은 딸이 아빠라고 부르는 걸 싫어했다.어쩌면 수작을 부려서 태어난 아이라고 생각하며 딸이 태어나길 기대하지 않아서 그런 걸 수도 있었다.그 아이 때문에 두 사람이 엮이고 억울하게 결혼까지 했으니 그토록 자존심 강한 남자라면 아마 평생 마음에 담아둘 것이다.그녀만 멍청하게 시간이 지나면 감정이 생길 거라고 믿었다....최수빈은 별장을 나와 차를 몰고 신혼집으로 갔다. 주민혁이 집에서 기다리라고 했으니 서둘러 이혼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그래야 그녀의 일에 더 집중할 수 있을 테니까.그녀가 신혼집에 도착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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