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예지는 논문을 한번 훑어보더니 오히려 양정화를 향해 조용히 되물었다.“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만약 이번 조기 졸업에 실패했다면 양정화는 이 논문을 소영욱이 남긴 유작이라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소예지는 모두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성적으로 졸업에 성공했고 이 논문이 그녀 스스로 써낸 결과물이라는 사실 또한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양정화는 눈앞에 선 이 젊고도 당찬 소녀를 바라보다, 문득 오래전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소영욱의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어린 소예지는 늘 아버지를 따라 실험실에 드나들었고 그녀는 몇 번이고 그 아이가 조용히 숙제를 하거나, 한편에서 고단한 듯 잠든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한때, 양정화는 소예지의 새어머니가 될 생각까지 했지만 결국 소영욱에게 단칼에 거절당했다. 그 일로 그녀는 분노했고 한참을 괴로워했다.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양정화는 지난날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연구에 전념하며 조용히 마음을 다잡았다.그리고 지금, 그때의 그 아이가 눈부시도록 성장한 모습으로 다시 그녀 앞에 서 있었다.곧고 당당한 눈빛, 반듯하게 가다듬어진 자태, 넘치는 생기와 더불어 누구도 함부로 넘볼 수 없는 깊은 학문적 내공까지 소유한 소예지는 더 이상 ‘소영욱 교수의 딸’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존중받아야 할 어엿한 어른이었다.“이번 시험 정말 잘했어.”양정화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나랑 이 교수 생각이긴 한데, 널 그냥 대학원 진학으로 바로 연계시키는 게 어떨까 싶더라. 너는 어떻게 생각해?”예상치 못한 제안에 소예지는 잠시 놀란 듯 망설였지만 곧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 교수님. 사실 저도 대학원 진학을 고려하고 있었어요.”“잘됐네. 강준석도 너한테 우리 팀 얘기했지?”“네, 강 선배님께 들었습니다. 저한테 이런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양정화는 안경을 살짝 밀어 올리며 담담하게 말했다.“그건 네가 스스로 쟁취한 거야. 나한테 고마워할 필요는 없어.”잠시 정적이 흐른 뒤,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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