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결혼 6년 동안 아내와 엄마의 역할을 묵묵히 해온 소예지. 나중에서야 남편 고이한이 해외에서 첫사랑을 만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무리 차가운 심장이라도 정성을 다하면 언젠가는 따뜻하게 녹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고이한의 첫사랑이 국제적인 대상을 수상하고 축하파티를 열던 날, 소예지는 딸이 차가운 수술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정신을 차렸다. 더 이상 의미 없는 사랑에 매달리지 않기로 한 소예지는 이혼 합의서를 건네고 딸과 함께 미련 없이 돌아선다. ... 과거의 전공을 되살린 후 한때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소예지는 의학계가 탐내는 인재로 거듭난다. 그녀의 논문은 세계적인 권위의 학술지에 실렸고 연구 성과는 의학계의 각종 대상을 휩쓴다. 모두의 앞에서 눈부시게 빛나며 새로운 행복을 찾으려던 그때 줄곧 고고하고 오만하던 남자는 마침내 무너져 내린다. 미친 듯이 절규하며 소예지에게 무릎을 꿇은 고이한. “예지야, 제발 날 버리지 마...”
view more그 시절의 고이한은 마치 자석 같았고 열여덟 살의 심유빈을 단단히 끌어당겼다. 지금 스물여덟이 된 그녀가 열아홉의 고이한을 다시 바라봐도 그때의 강렬한 두근거림이 그대로 느껴졌다.휴대폰 안에는 몰래 찍은 고이한의 사진이 가득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한 장 한 장이 모두 자신의 비루한 사랑을 기록한 것들이었다.젊은 날 너무 눈부신 사람을 만나는 건 복이 아니었다. 피할 수 없는 재앙이었다.이 10년 동안 심유빈은 고이한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악착같이 올라왔다. 피아노를 배우고 상류 사회에 발을 들이고 온갖 수단을 써서 그의 생활 반경 안에 끼어들었다. 그 뒤에 감춰진 고단함은 자신만이 알았다.하지만 그 모든 것이 그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았다. 고이한은 마음이 없는 사람 같았다. 심유빈이 그의 세계에서 혼신을 다해 연기해도 그는 언제나 냉담한 관객으로만 남아 있었다.그때 유미나의 문자가 왔다.[피아노 대회 공연 초청이 들어왔어. 국내에서 얼굴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야.][빨리 보내 봐.]심유빈이 바로 답장을 보냈다.유미나가 보낸 것은 경주의 방송국 공연 초청이었다. 심유빈의 눈빛이 살아났다. 감정에서 졌으면 사업에서 되찾으면 됐다.한편 소예지는 실험실을 나와 스미스 박사의 사무실로 향했다.“박사님, 저 약물 개발을 시작하기로 했어요. 심유빈이 정기적으로 와서 헌혈해서 최신 줄기세포를 채취해 비축해 둬야 할 것 같아요.”스미스 박사도 소예지의 생각에 동의했다.“현명한 결정이에요. 단일 공여자에 의존하는 것보다 약물을 비축해 두는 게 훨씬 안정적이죠. 다만 심유빈 씨 쪽은...”“고 대표가 먼저 얘기하게 해요.”소예지가 말했다.“알겠어요. 심유빈 씨와 고 대표님을 불러서 함께 얘기할게요.”소예지가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이유가 있었다. 비행기 기류를 만났던 경험에 이번 정성훈 출소로 인한 위협 가능성까지 겹치면서 미리 약물을 비축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만에 하나 사고가 생기더라도 약물이 준비되어 있으면 딸을 지킬 수 있
안채린은 도저히 일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조퇴를 신청하고 핸드백을 들어 실험실을 빠져나와 곧장 집으로 향했다.가는 내내 분노가 가라앉지 않았고 심유빈이 이렇게 쉽게 아버지 회사 지분 13퍼센트를 챙겨갔다는 생각에 속이 뒤집혔다. 고씨 집안에 시집을 못 가더라도 그 주식 하나면 평생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었다.그런데 자신에게는 아버지가 단 1퍼센트도 나눠주지 않았다. 이 엄청난 차이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었다. 어머니와 머리를 맞대고 방법을 찾아야 했다.심유빈의 빌라에는 의사와 간호사가 막 다녀간 참이었다. 심유빈은 소파에 드러누워 주사 맞은 자리를 감싸 쥔 채 눈을 감고 있었다. 이번 주 내내 거의 몸을 추스르는 데만 시간을 보냈다.아까 안채린의 전화에 마음이 흔들렸다. 성양 그룹 모녀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사이가 틀어질 거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이미 손에 쥔 지분을 뱉어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을 보는 순간 표정이 굳으며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런데 2분도 채 안 돼 문자가 들어왔다.[딸, 엄마 카드에 2억 좀 보내줘. 급해.]심유빈은 문자를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옆으로 내던졌다. 어릴 때 어머니의 도박 버릇을 막지 못한 것이 후회됐다. 이제는 하루가 멀다고 돈을 요구했고 오고 가는 연락의 시작과 끝이 언제나 돈이었다.그때 심유빈의 옆에 올려둔 광고 계약서 몇 장이 눈에 들어왔다. 집어 들고 훑어보다가 전화를 걸었다.“피아노 광고 그거 받을게. 가서 협의해 봐.”“알겠어. 유빈아, 그리고 다른 광고 건들도 좀 봐줘. 더 이상 고르고 자를 형편이 아니잖아.”이번에 받기로 한 것은 국산 피아노 브랜드였다. 예전의 심유빈이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작은 브랜드였다. 그래도 피아니스트라는 자신의 이미지에는 어울렸다.“일단 이것만.”심유빈의 눈빛에 짜증이 스쳤다.휴대폰을 들어 영상을 훑다가 한 언론사의 속보 하나가 눈에 걸렸다.[최근 하경 부동산 상속자가 한빛 그룹 영애와 다정하게 데이트하는 모습이 포
“심유빈, 수작 부리지 마. 어떻게 그 주식을 가져갔는지 말해봐.”안채린은 이성을 잃을 만큼 화가 났다. 평소의 예의는 온데간데없었다. 재산을 빼앗겼다는 원망만이 가득했다.전화 너머 심유빈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알고 싶으면 말해줄게. 고 대표가 나한테 준 선물이야. 아버지도 동의하셨고.”안채린의 눈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커졌다.“뭐라고?”“받아들이기 힘든 거 알아. 근데 이건 고 대표가 나한테 준 보상이야.”심유빈이 말을 이었다.“그리고 헤어지면서 받은 거야.”안채린의 머릿속이 또 한 번 쿵 울렸다.‘심유빈과 고이한이 헤어졌다고? 그러니까 아까 고이한이 그토록 냉담하게 굴었던 거였구나.’결국 심유빈은 그를 붙잡지 못한 것이었다. 다만 성양 그룹 지분 13퍼센트를 위자료로 챙겨갔으니 자신의 이익이 통째로 날아간 셈이었기에 분하지 않을 수 없었다.“염치도 없어. 고 대표랑 헤어지면서 왜 우리 성양 그룹 주식을 위자료로 챙겨가? 그게 말이 돼?”“말이 되냐고?”전화 너머 심유빈은 더 이상 꾸미지 않았다.“내 덕분에 성양 그룹이 상장할 수 있었잖아. 넌 아버지 회사를 위해 뭘 한 적 있어?”“너...”안채린은 분노로 말문이 막혔다.심유빈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고이한이 나서지 않았다면 성양 그룹은 여전히 이류 회사에 머물렀을 것이었다. 이 한 해 동안 시가총액이 급등한 것도 고이한의 인맥 덕분이었다.“채린아, 네 마음이 안 좋은 거 알아. 근데 이미 된 일이야. 받아들이는 게 나아.”말을 마치고 심유빈이 전화를 끊었다.안채린은 끊긴 화면을 바라보며 탁자를 짚었다. 온몸이 분노로 떨렸다. 심유빈이 고이한을 통해 성양 그룹 가산을 미리 빼돌릴 줄은 상상도 못 했다.‘그것도 무려 13%의 지분을...’‘그런데 아까 고이한과 헤어졌다는 말, 사실일까 거짓일까.’제발 사실 이길 바랐다. 나중에 정말로 고씨 집안에 시집이라도 오면 탐욕스럽게 성양 그룹 전체를 삼키려 하지 않을까 싶었다.안채린은 어머니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회의가 시작되자 안채린은 맨 뒷자리에 앉아 상석의 고이한을 몰래 눈으로 좇았다. 보고에 집중하는 그의 표정은 안채린에게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저런 재계의 엘리트가 대체 어떻게 소예지를 눈여겨봤던 걸까. 대학교 1학년의 소예지는 학문적으로 아무런 성과도 없었고 심지어 사랑에 눈이 멀어 자퇴까지 했는데.’회의 도중 강준석의 발표가 돋보였다. 고이한이 몇 번씩 감탄하는 기색을 내비치자 안채린은 강준석을 바라보며 속이 쓰렸다. 강준석 곁에서 2년 반이 흘렀는데도 아직 그의 관심 한 조각 얻지 못했다.회의가 끝난 후 안채린은 일부러 복도 모퉁이에서 기다렸다. 고이한이 자신을 발견하고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길 바랐지만 고이한은 주현우와 함께 지나치면서 이쪽에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걸음도 단 1초도 멈추지 않았다.안채린은 복도에 선 채 입술을 꽉 깨물며 고이한의 곧은 뒷모습이 멀어지는 것을 바라봤다. 머리 위로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았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이한의 눈에 자신은 아무것도 아니었다.고이한이 한 번만 더 바라봐 주길 바라는 마음이 마음속 어딘가에 숨어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어머니였다. 안채린은 사무실로 걸어가며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엄마. 나 지금 일 중인데 무슨 일이에요?”“채린아, 심유빈이 네 아버지 회사 주주가 됐다는 거 알고 있었어?”안채린의 머릿속이 순간 쿵 하고 울렸다. 얼굴빛이 싹 변했다.“네? 그 사람이 어떻게 아버지 회사 주주가 됐어요?”“나도 종현이한테 들었어. 주주 회의 명단에 심유빈 이름이 있더라고. 잘못 본 거 아닌가 싶어서 회사에 다시 알아봤더니 진짜더라. 주식을 얼마나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어.”안채린이 주먹을 꽉 쥐었다.“아빠가 엄마한테 이 얘기 안 했어요?”“요즘 아버지가 왜 그러는지 회사 일을 통 얘기 안 해줘. 채린아,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너 알고 있어?”안채린의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고이한이 아버지 회사 상장을 도운 것은
소예지는 논문을 한번 훑어보더니 오히려 양정화를 향해 조용히 되물었다.“교수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만약 이번 조기 졸업에 실패했다면 양정화는 이 논문을 소영욱이 남긴 유작이라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소예지는 모두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성적으로 졸업에 성공했고 이 논문이 그녀 스스로 써낸 결과물이라는 사실 또한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양정화는 눈앞에 선 이 젊고도 당찬 소녀를 바라보다, 문득 오래전의 기억 속으로 빠져들었다.소영욱의 아내가 병으로 세상을 떠난 후, 어린 소예지는 늘 아버지를 따라 실험실에 드나들었고 그녀
소예지는 이를 악물었고 지금 생각해 보니 자신이 좀 어리석었던 것 같았다.고이한 같은 남자가 굳이 SNS로 몰래 감정 교류를 할 필요가 있을까? 심유빈이 보고 싶다고 전화 한 통만 하면 바로 달려가는 사람이 고이한이었다. 게다가 그동안 해외 출장이랍시고 비행기를 타기 바빴던 것도 다 그녀 때문이었을 것이다.직접 얼굴 보고 무슨 말인들 못 하겠나. 감미로운 말 한마디, 스킨십 하나, 그게 뭐 대단한 비밀이라고 기록으로 남기겠는가.소예지는 모든 노력이 허무하게 느껴졌고 멍하니 창밖의 어둑해진 저녁 하늘을 바라보다가 고이한의 휴대폰
고이한이 샤워를 마치고 욕실에서 나왔다. 부드러운 조명 아래 느슨하게 걸친 목욕가운 사이로 그의 날렵한 쇄골과 탄탄한 가슴 근육이 희미하게 드러났다.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그의 몸에서는 특유의 건강한 생기가 느껴졌다.“가서 씻어.”소예지는 시선조차 들지 않은 채 무심히 대꾸했다.“먼저 자. 난 좀 이따 나갈 거야.”“이 밤에 어딜 간다고?”고이한이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친구네 집.”소예지는 짧게 답했다. 그때 박시온의 메시지가 마침 도착했다. 소예지는 바로 가방을 챙겨 방을 나서서 고씨 가문의 저택을 벗어났다. 서
“고 대표님, 저한테 볼일 있으세요?”강준석이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네, 강 박사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어서요.”고이한이 정중하게 말을 꺼냈고 강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식사도 막 끝난 참이었다.“제 사무실로 가시죠. 거기서 얘기 나누는 게 좋겠네요.”한편 멀지 않은 곳에서 이서연과 안채린도 고이한을 발견했고 이서연은 숨을 들이키며 감탄했다.“와... 네 언니 진짜 복도 많다. 고 대표님은 진짜 인간이 아니야. 저 비율, 얼굴, 분위기까지, 저런 사람은 몇십 년에 한 번 나타날까 말까 하잖아.”하지만 안채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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