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열여섯에 바뀐 운명: Bab 1 - Bab 10

10 Bab

제1화

“설아야, 이 오라버니가 무정한 게 아니라, 너랑 어머니, 아버지가 너무한 거다. 청아는 그때 겨우 젖먹이였는데 어찌 그런 아이한테 팔자를 바꾸자는 말을 하는 게야?”오라버니가 나와 부모님을 가리키며 욕했다.그의 눈에는 임청아를 향한 가여움과 나를 향한 증오밖에 없었다.창백한 얼굴을 한 나는 하녀의 부축을 받아 겨우 서 있었다. 늘 나를 아껴주던 오라버니의 지금 모습을 보니 무척 낯설었다.“이놈아! 설아는 네 동생이다! 어제 설아 열여섯 살 생일에 하마터면 피를 토하고 죽을 뻔했다는 건 알고 있느냐?”아버지는 불같이 화를 내며 탁자를 내려쳤다.“임청아를 데려온 건 설아를 살리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임청아를 데려오지 않았다면 임청아는 진작에 죽었을 것이다. 어찌 이런 호화로운 생활을 누리면서 살았겠느냐?!”오라버니 옆에 있던 김유준은 아버지의 말을 듣더니 얼른 나를 부축하며 관심을 보였다.“설아야, 안색이 좋지 않구나. 어제는 우리가 널 생각 못 하고 너무 충동했다. 그래도 무사해서 다행이야. 너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나도 널 따라 죽을 것이다.”김유준이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그의 눈빛은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늘 나를 보호해 주던 오라버니의 눈빛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김유준은 나와 혼인을 약속한 사내였다. 평생을 나와 함께 할 이였기에 나에게 모든 마음을 쏟아붓는 건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하지만 이어진 김유준의 말은 나를 죽이기에 충분했다.“헌데 어제 청아가 울었다. 내가 여인이 우는 꼴을 못 본다는 걸 너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어제 청아가 우는 모습을 보니 내 심장도 아팠다.”그 말을 들은 나는 잠시 멈칫하다 손을 빼냈다. 더불어 눈물이 앞을 가렸다.“설아야, 백 년된 산삼으로 목숨을 부지했는데 어찌 청아를 죽이려고 드는 게야? 정말 청아에게 투기를 느껴서 청아를 죽이려고 하는 게냐?”김유준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실망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헌데…”나는 산삼을 먹어도 사흘 밖에 못 산다고 말하고 싶었다. 임청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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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오라버니는 힘껏 나를 밀어냈고 나는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너 같은 이가 내 동생이라는 게 너무 역겹구나! 어찌 그리 악독하단 말이냐? 네 목숨만 목숨이고 청아 목숨은 목숨도 아니라는 게야? 나한테는 청아 목숨이 네 목숨보다 몇백 배는 소중하다.”어머니는 바닥으로 넘어진 나를 부축하며 애지중지하게 품에 안고 눈물을 흘렸다.“임혁진! 설아는 네 동생이다! 지금 한낱 바깥사람을 위해서 네 동생을 죽이겠다는 게냐?”어머니의 말을 들은 오라버니가 나를 쏘아보더니 콧방귀를 뀌었다.“정말 방법이 없었다면 설아는 어제 생일 때 죽었을 겁니다. 연명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는데 어찌 청아를 희생시키려는 겁니까? 그러고도 사람이 맞습니까?”어수선한 사이, 갑자기 누군가 나타났다.“저를 위해서 싸우지 마십시오.”임청아가 들어오더니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아버지, 저는 상관없습니다. 제 목숨을 설아 언니에게 바치겠습니다. 저는 죽어도 상관없습니다. 두 오라버니가 저를 위해서 가까운 이들과 멀어지는 모습을 보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임청아가 그렇게 말하며 처량하게 오라버니와 김유준을 바라봤다.“오라버니, 제가 죽은 뒤에 잊지 자주 찾아주세요. 저를 너무 빨리 잊지 말아주십시오.”나는 차가운 눈으로 불쌍한 척 연기하는 임청아를 바라봤다.임청아는 서럽게도 울었다. 나와 팔자를 바꾸고 나면 무조건 죽을 것처럼.아버지와 어머니도 놀라서 임청아를 바라봤다.친딸로 여기고 키워왔던 임청아가 이렇게 이기적이고 악독한 사람인 줄 몰랐다는 듯이.오라버니와 김유준은 그런 임청아를 보자마자 얼른 그녀에게 다가가 부축했다.“청아야, 네가 고생이 많다.”오라버니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더니 목에 비수를 가져다 댔다.“아버지, 청아 목숨을 설아에게 바칠 거면 제 목숨부터 가져가시지요. 청아가 죽으면 저도 죽을 겁니다! 임설아가 두 사람의 목숨을 등에 업고 오래오래 살아가게 하시지요.”오라버니는 독이 서린 원망을 늘어놨다.나는 그 말을 들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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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저놈들을 막아라!”아버지는 내가 피를 토하는 모습을 보곤 얼른 다가와서 부축했다.그리고 다시 살기 가득한 눈으로 오라버니와 김유준을 쏘아봤다. “충용후부(忠勇侯府)를 무엇이라 생각한 게냐?! 여기는 네 멋대로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다.”김유준과 임청아 앞에 병사들이 막아섰다. 그들은 오랜 시간 동안 아버지와 전장을 누비던 병사들이었다.“임청아는 내가 시체를 함부로 묻는 곳에서 데려와 양딸로 들인 아이다. 그리고 내 딸과 팔자를 바꾸고 싶지 않으면 진작 말을 했어야지. 왜 하필 내 딸이 열여섯이 되는 날, 도망을 친단 말이냐? 임청아야말로 내 딸을 죽이기로 마음을 먹은 거다. 이건 충용후부의 일이니 바깥사람이 낄 자격은 없다. 내 오늘 무슨 일이 있어도 임청아와 내 딸의 팔자를 바꿀 것이다.”아버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병사들이 임청아를 잡았다.임청아는 놀라서 창백해진 얼굴로 도움을 청하듯 김유준과 임혁진을 바라봤다.임청아는 그저 착한 척, 너그러운 척하고 싶었을 뿐인데 이 꼴이 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아버지!”임혁진은 다급하게 아버지를 막아서며 구걸했다.“청아도 아버지의 여식이 아닙니까? 헌데 어찌 청아를 죽이려는 겁니까?”“팔자를 바꾼다고 꼭 죽는다는 법은 없다.”아버지가 차갑게 임혁진을 보며 말했다.“법사가 임청아는 팔자가 세서 가족들을 잡아먹을 거라고 했다. 설아와 임청아가 팔자를 바꾸면 설아의 팔자가 임청아 팔자를 눌러서 두 사람에게 모두 좋다고 했다. 네 아비를 다른 이의 목숨을 아무렇게나 취하는 악인이라고 생각한 게냐?”“저는…”아버지의 말을 들은 임혁진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망설이던 임혁진은 임청아의 눈물과 단호한 눈빛을 마주했다.“혁진 오라버니, 그만하십시오. 제 팔자가 이런 건가 봅니다. 제가 죽으면 산과 물이 보이는 곳에 묻어주십시오.”“데려가거라.”아버지는 임청아의 말을 듣기 싫다는 듯 병사에게 명했다.“대감, 부디 청아를 불쌍히 여겨주시옵소서!”김유준은 더 설득해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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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놀라서 고개를 돌려보니 임혁진이 비수를 든 채 천천히 나에게 다가오고 있었다.그는 이미 내가 알고 있던 오라버니가 아니었다.“무엇을 하려는 겁니까?!”하녀가 소리치며 달려들자 임혁진이 하녀를 걷어찼다.그리고 내 옷깃을 잡더니 비수를 내 목에 가져다 댔다.날카로운 칼끝이 내 피부를 가르자 빨간 피가 뿜어져 나왔고 내 안색은 창백해졌다.“따라 나오거라.”임혁진은 난폭하게 나를 끌고 마당으로 나왔다. 김유준도 법사와 아버지를 제압하고 있었다.“이놈아! 설아한테서 손 떼거라!”아버지는 소리쳤고 어머니는 깜짝 놀랐다.“혁진아, 정신 차리거라! 설아는 네 동생이다! 너와 함께 자란 동생이란 말이다!”“청아도 제 동생입니다. 청아가 이렇게 죽게 내버려둘 수 없습니다.”나는 임혁진에게 꽉 붙잡힌 채 힘없이 휘둘렸다.나는 그의 힘을 이길 수가 없었다.“청아를 놓아주십시오. 아니면 제가 설아한테 무슨 짓을 할지 저도 모르겠습니다. 어차피 설아는 죽을 목숨이 아닙니까. 산삼이 없었다면 설아는 생일 그날에 죽었을 팔자입니다.”임혁진의 말을 들은 나는 놀라서 그를 바라봤다. 나를 가장 아껴줬었던 오라버니였는데. 그 생각을 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고 목소리가 떨려왔다.“오라버니, 임청아를 위해서 저를 죽이겠다는 겁니까?”그 말을 들은 오라버니의 눈빛이 잠깐 흔들렸다. 그러다가 미간을 찌푸렸다.“설아야, 너도 언젠가는 내 마음을 알게 될 거다. 오라버니는 네가 사람을 죽이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청아는 아무 잘못도 없지 않느냐. 헌데 왜 청아를 놓아주지 않는 게야? 청아를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주고 내 너에게 사과하러 오마. 그때 다 보상해 주마. 돌아와서 네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거라면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구해주마.”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절망했다.“헌데 오라버니, 임청아와 제 팔자를 바꾸지 않으면 저는 죽을 겁니다. 오라버니가 돌아와도 저와 만날 수 없습니다.”“아직도 거짓부렁을 말하는 게냐?”임혁진이 그렇게 말하며 내 목에 가져다 댔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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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두 사람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임혁진은 들고 있던 사탕을 놓치고 말았다.김유준은 혼서를 꽉 잡고 있었다.곧이어 두 사람은 미친 사람처럼 영당 안으로 쳐들어갔다.“설아야!!”“설아야!!”두 사람은 겁먹은 얼굴로 영당 중간에 있던 관 옆으로 다가가 떨리는 손으로 만져보려고 했다.마치 내가 죽은 사실을 못 믿겠다는 듯이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관 뚜껑을 열었다.그리고 텅 빈 관 안에 옷 몇 벌만 있는 것을 확인하곤 저도 모르게 한시름 놓았다.“이놈들이! 무슨 낯짝으로 돌아올 생각을 해?!”영당 밖에 서서 임혁진과 김유준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눈에 원망이 가득했다.“너희들이 내 딸을 죽였어! 당장 꺼져라!”그 말을 들은 임혁진은 얼른 부모님에게 다가갔다.“아버지, 지금 일부러 저희에게 보여주려고 이러는 거죠? 저희 후회하게 하려고. 방금 저랑 유준이가 관을 열어봤습니다. 안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설아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제가 설아가 제일 좋아하는 사탕을 사 왔습니다. 전에 이 사탕 하나면 설아를 달랠 수 있었습니다.”임혁진이 사탕을 든 채 기대를 담아 부모님을 바라봤다.김유준도 혼서를 들고 앞으로 나섰다.“어머님, 아버님, 전에는 저희가 설아를 속상하게 했습니다. 제 여생으로 설아에게 보상해 주겠습니다. 설아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제가 혼서를 들고 왔습니다. 설아랑 혼인하러 왔습니다!”아버지는 원망 가득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봤고 어머니는 속상함에 말을 잇지 못했다.그 모습을 본 두 사람은 다시 긴장했다.거대한 공포가 두 사람의 마음속에서 퍼졌다.“아버지, 무슨 말이라도 해보십시오!”하지만 아버지는 임혁진에게 눈길도 주기 싫었다.“어머니, 설아는 도대체 어디 있는 겁니까?”임혁진은 다시 어머니를 잡고 물었다.“너희가 임청아를 데리고 떠난 지 사흘 만에 설아는 죽었다. 나랑 네 아버지가 속상해할까 봐 혼자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사람을 찾아서 며칠이나 찾아봤지만 시신을 찾지 못해서 이 의관총을 세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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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아버지는 화가 났지만 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해봤자 이미 늦었다.자신의 소중한 딸이 열여섯에 자신의 옆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척 아팠다.“아니다. 그럴 리 없어…”임혁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아직 시신을 못 찾았으니 설아가 아직 살아있을지도 모릅니다.”“맞습니다. 설아는 분명 살아있을 겁니다.”김유준도 임혁진과 함께 스스로를 속이려고 했다.“설아가 어릴 때부터 날 얼마나 따랐는데, 설아가 날 떠날 리 없어. 우리가 너무 속상하게 해서 나한테 화가 나서 이러는 걸 거야. 설아야, 지금 우리를 벌하고 있는 게지?”김유준은 내가 죽었다는 사실을 들은 뒤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넋을 놓은 채 횡설수설했다.“우리가 너무 못되게 굴어서 설아가 화가 난 거야. 설아야, 내가 잘못했다. 제발 내 앞에 나타나다오. 용서하지 않아도 좋으니 제발 다시 한번만 만나게 해다오. 어머님, 아버님, 제가 이렇게 빌겠습니다.”김유준은 절망해서 거의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하지만 아무리 빌어봤자 아무 소용없었다. 돌아오는 대답은 똑같았다.어머니는 더 이상 나올 눈물도 없는 것 같았다.몸을 돌린 어머니는 더 이상 두 사람을 보려하지 않았다.“어머니!”임혁진은 고집스럽게 어머니의 손을 잡고 다른 대답을 들으려고 했지만 어머니는 임혁진의 손을 힘껏 뿌리쳤다.“네가 임청아를 선택했으니 앞으로 나는 네 어머니가 아니다. 설아가 죽었으니 더 이상 내 앞에 나타나지도 말거라. 나는 네가 설아랑 함께 죽었다고 생각할 것이다.”등을 돌리는 부모님을 바라보며 임혁진은 눈시울을 붉혔다.영당 안은 정적에 휩싸였다. 바람에 흩날리는 상기가 펄럭이는 소리만 들렸다.임혁진은 커다란 관과 그 앞에 놓여있는 내 위패를 보다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설아야, 오라버니가 잘못했다. 널 살릴 수만 있다면 무엇을 내걸어도 좋다. 그러니 돌아오거라.”김유준은 영당 문 앞에 서서 혼서를 꽉 잡은 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설아야, 내 돌아와서 너와 혼인하겠다고 했는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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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천천히 눈을 떴지만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눈앞에는 고풍스러운 가구와 함께 켜져 있는 향이 보였다.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두 손을 바라봤다.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설마 여기가 저승인가? 나는 이미 죽은 건가?’전에 서책에서 저승의 광경에 대해 본 적은 있었다. 저승은 어둡고 귀신들이 들끓는다고 했다.하지만 지금 이곳은 운치가 넘쳤다. 저승의 처량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나는 문을 열고 천천히 방에서 나왔다.이곳은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작은 별채였다.정원을 가득 메운 배나무를 바람이 스쳐 지나가자 배꽃이 떨어졌다.옆에 해당화도 있었지만 활짝 피진 않았다.별채는 무척 깨끗했다. 나는 별채의 주인이 분명 아름다운 여인일 거라고 생각했다.그리고 그때, 가야금 소리가 들려왔다.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정자에 흰옷을 입은 사내 하나가 앉아 있었다.나는 참지 못하고 그 사내에게 다가갔다.그러자 가야금 소리가 뚝 멈췄다.“깨어났네요.”사내의 말을 들은 나는 눈을 깜빡였다. 지금 여기가 저승인지, 인간 세상인지 알 수 없었다.“저를 살려주신 겁니까? 아니면 저는 이미 죽어서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저승입니까?”내 말을 들은 사내는 콧방귀를 뀌더니 조금 거만하게 대꾸했다.“아직 내 앞에서 죽은 이는 없습니다. 내가 안 살리겠다고 하면 몰라. 다 죽어가는 사람이 산 중턱까지 올라올 힘이 있다니. 그것도 마침 내 별채 앞에 쓰러진 걸 보니 하늘이 낭자를 살렸나 봅니다.”사내의 말을 들은 나는 기억을 돌이켜봤다. 눈을 감기 전, 하얗게 빛나는 길이 보였었다.나는 그저 멀리, 조금 더 멀리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그래야 내가 죽은 뒤, 부모님께서 나를 찾지 못해 조금 덜 슬플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뜻하지 않게 명의의 별채에 발을 들일 줄이야.“의원님, 저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하지만 내 말을 들은 사내는 웃음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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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나는 호부의 유일한 적녀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모든 이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다.어릴 때 나는 아버지의 목에 올라타 꽃을 따러 가자고 조르기 좋아했다.오라버니는 나를 제일 예뻐해 주던 이였다. 늘 몸이 약했던 나를 오라버니는 유난히 아꼈다.임청아는 어릴 때부터 호부에 있었다.어머니께서는 임청아는 아버지께서 내 곁을 지키라고 특별히 데려온 동생이라고 했다.임청아는 태생이 팔자가 세서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이 죽는 바람에 가족들이 주인 없는 무덤에 그녀를 던져뒀다고 했다.그리고 이런 팔자를 가진 임청아가 있어야 병약한 내 팔자를 눌러줄 수 있다고도 말했다. 내 열여섯 생일에 법사가 우리 두 사람의 팔자를 바꾸는 의식만 치르면 나도 무사하게 살아가고 임청아의 사나운 팔자도 없어질 거라고 했다.어릴 때의 나는 어머니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임청아가 날 살려줄 고마운 사람이라는 건 알았다.조금 커서 글을 배울 때도 자그마한 은혜도 무조건 갚아야 한다고 배웠다.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늘 묵묵히 참으면서 임청아가 내 머리 위로 기어오르게 하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뺏어가게 했다.결국 내 오라버니와 약혼자까지 모두 임청아의 편을 들게 됐다.오라버니와 김유준은 늘 나에게 임청아는 앞으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니 지금 내가 임청아에게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다.나도 그렇게 믿으면서 처음에는 먹고 입는 것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비녀와 장신구까지, 임청아가 가지고 싶은 건 내가 얼마나 좋아하든 전부 양보해야 했다.나도 그것이 불만이었지만 오라버니와 김유준은 임청아가 내 생명의 은인이라고 말했다.임청아가 나를 살려줬으니 내가 이런 것들을 임청아에게 보답해야 한다고 했다.그렇게 나는 점차 그들의 말을 믿기 시작했고 그들의 행동이 맞다고 생각했다.내 열여섯 생일이던 그날, 두 사람이 임청아를 숨기면서 사람들 앞에서 피를 토하는 나를 보고도 구해주지 않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내 약혼자와 오라버니는 내 목숨을 내어줘서라도 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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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이튿날, 내가 비몽사몽으로 눈을 떴을 때,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나는 뒤늦게 아침 일찍 마당 청소를 끝내라던 박정호의 말이 생각났다.허둥지둥 몸을 일으킨 나는 박정호에게 잔소리를 들을 생각을 하며 문을 열었지만 마당은 이미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그 모습을 본 나는 속으로 한시름 놓았다. 그리고 박정호가 나름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어제 내가 술을 많이 마시고 오늘 마당 청소를 하지 않았는데도 박정호는 화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때, 주방에서 맛있는 냄새가 났다. 그 냄새를 따라 주방으로 가보니 박정호가 전을 부치고 있었다.“왜 갑자기 전 부칠 생각을 하신 겁니까?”그 전은 주방에 며칠을 둬도 상하지 않을 정도로 딱딱했기에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길에서 먹으려고 그러지.”박정호가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전을 뒤집으며 대답했다.“길에서 먹는다고요? 어디 먼 길이라도 떠나려는 겁니까?”나는 알 수 없는 실망감을 느끼며 물었다.이 자그마한 별채에서 박정호와 오랫동안 있다 보니 나는 그가 떠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나 혼자 남겨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내가 어딜 가려는 게 아니라 네가 집으로 가려는 것이다.”박정호가 뜨거운 전을 꺼내며 담담하게 말했다.“어제 네가 술에 취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울지 않았느냐. 지금 몸도 점점 좋아지고 있고. 아직 약한 몸이지만 내가 처방한 탕약을 계속. 먹으면 만수무강하지는 못해도 이, 삼십 년 더 사는 건 문제없을 거다. 나도 널 오랫동안 거둬주지 않았느냐. 네가 여기 더 있다간 내 살림이 거덜 날 판이다.”박정호가 점점 살이 붙는 내 얼굴을 꼬집으며 웃었다.나도 내 얼굴을 만져봤다. 이 별채로 온 뒤로 나는 몸도 점점 좋아졌고 식사량도 늘었다. 덕분에 살도 붙고 안색도 좋아져서 전처럼 병약해 보이지 않았다.이 모든 건 박정호 덕분이었다.“그, 그럼 돌아간 뒤에 다시 의원님을 찾아와도 되는 겁니까?”“이 깊은 산속까지 왜 날 찾아오겠다는 거냐?”내 말을 들은 박정호가 나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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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박정호 명의라니?"“그 의원님이 산속으로 들어가서 은거 생활을 하는 줄은 알았는데 이 근처 산에서 살고 있었다니. 게다가 설아 네가 그 의원을 찾아가게 되고 그 의원이 널 살려주기까지 했다니.”“역시 실력이 대단한 명의구나. 정말 죽어가는 사람도 이렇게 살렸으니.”부모님께서 감격해하고 있던 그때, 임혁진과 김유준이 갑자기 나타났다.그리고 나를 본 순간, 두 사람은 얼어버리고 말았다.다음 순간, 두 사람은 양쪽에서 내 손을 하나씩 잡았다.“설아야! 드디어 돌아왔구나!”“설아야, 네가 살아있을 줄 알았다!”“전에 화가 나서 나한테 벌을 주고 있었던 거지?”“전에는 우리가 잘못했다. 우리가 널 믿어줬어야 했는데. 우리 때문에 고생 많았다.”하지만 나는 차갑게 임혁진과 김유준의 손을 뿌리쳤다.“고생은 무슨, 다 지나간 일인데. 지금 힘들게 돌아왔으니 어머니랑 아버지 옆에 있고 싶어. 두 사람과는 상관없어.”“설아야, 내 말을 들어보거라. 전에 일은 다 오해였다. 우리는 일부러 널 해치려던 거 아니었다.”“그때 청아랑 팔자를 바꾸지 않으면 네가 죽는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 그리하지 않았을 것이다.”나는 냉랭하게 눈앞의 두 사람을 보며 참 위선적이고 역겨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정말 몰랐다고? 나를 믿어주기 싫었던 건 아니고? 내가 몇 번이고 말하지 않았나? 어머니랑 아버지께서도 몇 번이나 말을 했는데 단 한 번이라도 믿은 적 없잖아!”내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일이 이리 돼서 두 사람은 보호하고 싶은 이를 보호했으니 자꾸 위선적으로 굴지 마. 내가 지금 살아있는 건 다른 이가 날 구해줬기 때문이지, 두 사람과는 아무 연관이 없으니까. 다시는 두 사람을 보고 싶지 않으니 얼른 꺼져.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고.”임혁진과 김유준은 내 말을 듣고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께서 나서서 두 사람을 쫓아냈다.다 함께 모여서 밥을 먹던 자리에서 나와 박정호의 얘기를 들은 어머니는 단번에 내가 박정호를 마음에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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