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나는 어릴 때부터 병약했다. 의원은 내가 열여섯을 넘기기가 어려울 거라고 했다. 아버지께서는 그런 나를 위해 법사를 모셔왔고, 시체를 함부로 묻는 곳에 버려진 고아를 데려와 줬다. 그 고아는 흉한 팔자로 부모님을 잃었다. 내 열여섯 생일에 그 고아와 내 팔자를 바꾸기만 하면 나는 무사히 여생을 보낼 수 있었다. 아버지는 고아를 집에 들이고 친자식으로 여기면서 키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오라버니와 약혼자는 그 고아만 아끼면서 심지어 나보다 그 고아를 더 우선시했다. “설아야, 우리는 네가 건강하게 장수하게 하려고 청아한테 잘해주는 것이다.” “청아는 네 생명의 은인인데 양보 좀 해주는 게 뭐 대수라고.” 하지만 팔자를 바꾸는 그날이 왔을 때, 두 사람은 임청아를 데리고 사라졌다. 나는 피를 토했고 백 년된 산삼을 먹고 잠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나는 무릎까지 꿇으면서 그들에게 임청아를 내놓으라고 애원했지만 그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열여섯 생일이 지났는데 너는 멀쩡하지 않느냐.” “팔자를 바꿨다가 청아가 너처럼 병약해지면 어떡하라는 거냐?” “내가 보기엔 네가 일부러 아픈 척하면서 청아를 해치려는 걸로 보이구나.”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게 있었다. 산삼으로는 내 생명을 사흘밖에 유지할 수 없었다.
View More“박정호 명의라니?"“그 의원님이 산속으로 들어가서 은거 생활을 하는 줄은 알았는데 이 근처 산에서 살고 있었다니. 게다가 설아 네가 그 의원을 찾아가게 되고 그 의원이 널 살려주기까지 했다니.”“역시 실력이 대단한 명의구나. 정말 죽어가는 사람도 이렇게 살렸으니.”부모님께서 감격해하고 있던 그때, 임혁진과 김유준이 갑자기 나타났다.그리고 나를 본 순간, 두 사람은 얼어버리고 말았다.다음 순간, 두 사람은 양쪽에서 내 손을 하나씩 잡았다.“설아야! 드디어 돌아왔구나!”“설아야, 네가 살아있을 줄 알았다!”“전에 화가 나서 나한테 벌을 주고 있었던 거지?”“전에는 우리가 잘못했다. 우리가 널 믿어줬어야 했는데. 우리 때문에 고생 많았다.”하지만 나는 차갑게 임혁진과 김유준의 손을 뿌리쳤다.“고생은 무슨, 다 지나간 일인데. 지금 힘들게 돌아왔으니 어머니랑 아버지 옆에 있고 싶어. 두 사람과는 상관없어.”“설아야, 내 말을 들어보거라. 전에 일은 다 오해였다. 우리는 일부러 널 해치려던 거 아니었다.”“그때 청아랑 팔자를 바꾸지 않으면 네가 죽는다는 걸 알았다면 절대 그리하지 않았을 것이다.”나는 냉랭하게 눈앞의 두 사람을 보며 참 위선적이고 역겨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정말 몰랐다고? 나를 믿어주기 싫었던 건 아니고? 내가 몇 번이고 말하지 않았나? 어머니랑 아버지께서도 몇 번이나 말을 했는데 단 한 번이라도 믿은 적 없잖아!”내 말을 들은 두 사람은 말 한마디 하지 못했다.“일이 이리 돼서 두 사람은 보호하고 싶은 이를 보호했으니 자꾸 위선적으로 굴지 마. 내가 지금 살아있는 건 다른 이가 날 구해줬기 때문이지, 두 사람과는 아무 연관이 없으니까. 다시는 두 사람을 보고 싶지 않으니 얼른 꺼져. 다시는 내 앞에 나타나지 말고.”임혁진과 김유준은 내 말을 듣고도 떠나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께서 나서서 두 사람을 쫓아냈다.다 함께 모여서 밥을 먹던 자리에서 나와 박정호의 얘기를 들은 어머니는 단번에 내가 박정호를 마음에 품
이튿날, 내가 비몽사몽으로 눈을 떴을 때, 해는 이미 중천에 떠 있었다.나는 뒤늦게 아침 일찍 마당 청소를 끝내라던 박정호의 말이 생각났다.허둥지둥 몸을 일으킨 나는 박정호에게 잔소리를 들을 생각을 하며 문을 열었지만 마당은 이미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다.그 모습을 본 나는 속으로 한시름 놓았다. 그리고 박정호가 나름 성격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어제 내가 술을 많이 마시고 오늘 마당 청소를 하지 않았는데도 박정호는 화를 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때, 주방에서 맛있는 냄새가 났다. 그 냄새를 따라 주방으로 가보니 박정호가 전을 부치고 있었다.“왜 갑자기 전 부칠 생각을 하신 겁니까?”그 전은 주방에 며칠을 둬도 상하지 않을 정도로 딱딱했기에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길에서 먹으려고 그러지.”박정호가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전을 뒤집으며 대답했다.“길에서 먹는다고요? 어디 먼 길이라도 떠나려는 겁니까?”나는 알 수 없는 실망감을 느끼며 물었다.이 자그마한 별채에서 박정호와 오랫동안 있다 보니 나는 그가 떠나기를 바라지 않았다. 나 혼자 남겨지는 게 싫었기 때문이다.“내가 어딜 가려는 게 아니라 네가 집으로 가려는 것이다.”박정호가 뜨거운 전을 꺼내며 담담하게 말했다.“어제 네가 술에 취해서 집에 가고 싶다고 울지 않았느냐. 지금 몸도 점점 좋아지고 있고. 아직 약한 몸이지만 내가 처방한 탕약을 계속. 먹으면 만수무강하지는 못해도 이, 삼십 년 더 사는 건 문제없을 거다. 나도 널 오랫동안 거둬주지 않았느냐. 네가 여기 더 있다간 내 살림이 거덜 날 판이다.”박정호가 점점 살이 붙는 내 얼굴을 꼬집으며 웃었다.나도 내 얼굴을 만져봤다. 이 별채로 온 뒤로 나는 몸도 점점 좋아졌고 식사량도 늘었다. 덕분에 살도 붙고 안색도 좋아져서 전처럼 병약해 보이지 않았다.이 모든 건 박정호 덕분이었다.“그, 그럼 돌아간 뒤에 다시 의원님을 찾아와도 되는 겁니까?”“이 깊은 산속까지 왜 날 찾아오겠다는 거냐?”내 말을 들은 박정호가 나를 보
나는 호부의 유일한 적녀였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모든 이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자랐다.어릴 때 나는 아버지의 목에 올라타 꽃을 따러 가자고 조르기 좋아했다.오라버니는 나를 제일 예뻐해 주던 이였다. 늘 몸이 약했던 나를 오라버니는 유난히 아꼈다.임청아는 어릴 때부터 호부에 있었다.어머니께서는 임청아는 아버지께서 내 곁을 지키라고 특별히 데려온 동생이라고 했다.임청아는 태생이 팔자가 세서 태어나자마자 부모님이 죽는 바람에 가족들이 주인 없는 무덤에 그녀를 던져뒀다고 했다.그리고 이런 팔자를 가진 임청아가 있어야 병약한 내 팔자를 눌러줄 수 있다고도 말했다. 내 열여섯 생일에 법사가 우리 두 사람의 팔자를 바꾸는 의식만 치르면 나도 무사하게 살아가고 임청아의 사나운 팔자도 없어질 거라고 했다.어릴 때의 나는 어머니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임청아가 날 살려줄 고마운 사람이라는 건 알았다.조금 커서 글을 배울 때도 자그마한 은혜도 무조건 갚아야 한다고 배웠다.그래서 그때부터 나는 늘 묵묵히 참으면서 임청아가 내 머리 위로 기어오르게 하고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뺏어가게 했다.결국 내 오라버니와 약혼자까지 모두 임청아의 편을 들게 됐다.오라버니와 김유준은 늘 나에게 임청아는 앞으로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니 지금 내가 임청아에게 양보해야 한다고 말했다.나도 그렇게 믿으면서 처음에는 먹고 입는 것부터 시작해서 나중에는 비녀와 장신구까지, 임청아가 가지고 싶은 건 내가 얼마나 좋아하든 전부 양보해야 했다.나도 그것이 불만이었지만 오라버니와 김유준은 임청아가 내 생명의 은인이라고 말했다.임청아가 나를 살려줬으니 내가 이런 것들을 임청아에게 보답해야 한다고 했다.그렇게 나는 점차 그들의 말을 믿기 시작했고 그들의 행동이 맞다고 생각했다.내 열여섯 생일이던 그날, 두 사람이 임청아를 숨기면서 사람들 앞에서 피를 토하는 나를 보고도 구해주지 않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내 약혼자와 오라버니는 내 목숨을 내어줘서라도 임청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나는 천천히 눈을 떴지만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눈앞에는 고풍스러운 가구와 함께 켜져 있는 향이 보였다.나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두 손을 바라봤다. 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설마 여기가 저승인가? 나는 이미 죽은 건가?’전에 서책에서 저승의 광경에 대해 본 적은 있었다. 저승은 어둡고 귀신들이 들끓는다고 했다.하지만 지금 이곳은 운치가 넘쳤다. 저승의 처량함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나는 문을 열고 천천히 방에서 나왔다.이곳은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작은 별채였다.정원을 가득 메운 배나무를 바람이 스쳐 지나가자 배꽃이 떨어졌다.옆에 해당화도 있었지만 활짝 피진 않았다.별채는 무척 깨끗했다. 나는 별채의 주인이 분명 아름다운 여인일 거라고 생각했다.그리고 그때, 가야금 소리가 들려왔다.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멀지 않은 곳에 있던 정자에 흰옷을 입은 사내 하나가 앉아 있었다.나는 참지 못하고 그 사내에게 다가갔다.그러자 가야금 소리가 뚝 멈췄다.“깨어났네요.”사내의 말을 들은 나는 눈을 깜빡였다. 지금 여기가 저승인지, 인간 세상인지 알 수 없었다.“저를 살려주신 겁니까? 아니면 저는 이미 죽어서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저승입니까?”내 말을 들은 사내는 콧방귀를 뀌더니 조금 거만하게 대꾸했다.“아직 내 앞에서 죽은 이는 없습니다. 내가 안 살리겠다고 하면 몰라. 다 죽어가는 사람이 산 중턱까지 올라올 힘이 있다니. 그것도 마침 내 별채 앞에 쓰러진 걸 보니 하늘이 낭자를 살렸나 봅니다.”사내의 말을 들은 나는 기억을 돌이켜봤다. 눈을 감기 전, 하얗게 빛나는 길이 보였었다.나는 그저 멀리, 조금 더 멀리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그래야 내가 죽은 뒤, 부모님께서 나를 찾지 못해 조금 덜 슬플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뜻하지 않게 명의의 별채에 발을 들일 줄이야.“의원님, 저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하지만 내 말을 들은 사내는 웃음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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