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los capítulos de 상태창이 수술실에 들어가지 말란다: Capítulo 1 - Capítulo 10

10 Capítulos

제1화

내가 응급의학과 의사로 일한 지 벌써 10년.나는 언제나 내 목숨보다 환자의 생명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살아왔다.그래서 연락받았을 때도 망설임 없이 곧장 발길을 돌려 병원으로 향했다.응급실 입구에 거의 다다랐을 때였다.갑자기 내 눈앞에 상태창이 떠올랐다.나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고개를 세차게 흔들고 눈까지 비벼 봤다.야간 당직을 서느라 너무 피곤해서 헛것이라도 보는 건가 싶어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하지만 상태창에는 여전히 쉴 새 없이 새로운 문구가 떠오르고 있었다.[큰일 났어! 네가 수술실에 들어가자마자 환자에게 사망 판정이 내려질 거야.][저 사람들은 네가 들어오기만 기다리고 있어. 널 희생양으로 삼으려고!][수술실 의료진이 전부 병원장 딸 강영서를 감싸려고, 네가 처치를 잘못해서 환자가 죽었다고 몰아갈 거야.][진짜 조심해야 해!]나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강영서는 대학 시절 내내 함께 지낸 룸메이트이자 내 절친이었다.‘그런데 왜 하필 나한테 모든 책임을 뒤집어씌운다는 거지?’온갖 의문이 머릿속에서 뒤엉켰다.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그때 옆을 지나던 사람들이 근처 교차로에서 난 사고에 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아까 한 마이바흐가 강으로 돌진한 거 봤어요?”“차주는 벌써 응급실로 실려 갔다던데. 보통 사람은 아닌가 봐요.”바로 그때 핸드폰이 연달아 울렸다.강영서에게 온 메시지였다.[정희야, 지금 어디야? 빨리 와!][수술 준비는 다 끝났어. 이제 너만 들어오면 돼!][빨리 좀 와. 나 수술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강영서가 보낸 재촉하는 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세상에 이런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하필이면 집안이 보통이 아닌 환자였고, 하필이면 강영서가 나더러 빨리 수술에 들어오라고 재촉하고 있었다.나는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고 상황을 차근차근 되짚어 봤다.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응급 상황이었다.응급의학과에는 지금도 근무 중인 의사들이 여럿 있었다.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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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내가 수술실에 나타나지만 않으면 나한테 누명을 씌울 수 없겠지.나는 재빨리 주변을 훑었다.그리고 곧 응급실 건물 앞 도로에 뚜껑이 없는 깊은 맨홀 하나를 발견했다.나는 급히 응급실로 향하는 척하며 그쪽으로 걸어갔다.맨홀 바로 앞까지 다다른 순간, 이를 악물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그리고 그대로 맨홀 속으로 몸을 던졌다.순간 몸이 허공으로 떨어지는 아찔한 감각이 덮쳐 왔다.나는 본능적으로 온몸에 힘을 줬다.다음 순간, 몸이 콘크리트 바닥에 세차게 부딪혔다.쿵!둔탁한 충격과 함께 온몸에 통증이 퍼졌다.다행히 맨홀 바닥은 말라 있어 고여 있는 물은 없었다.하지만 맨바닥이라 충격을 흡수해 주는 것도 없었다.머리와 종아리를 찌르는 듯한 통증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번졌다.온몸이 저절로 떨렸고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흘렀다.아무래도 다리가 골절된 것 같았다.병원 외곽의 이 낡은 배수 맨홀은 이미 오래전에 폐쇄된 곳이었다.며칠 전 누군가 맨홀 뚜껑을 훔쳐 가는 바람에 아직 새 덮개도 설치하지 못한 상태였다.주변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 안전 펜스만 둘러져 있었다.응급 호출을 받고 병원으로 급히 돌아가던 내가 미처 앞을 보지 못하고 맨홀에 빠졌다.누가 봐도 사고로밖에 보이지 않을 상황이었다.옆에 떨어진 핸드폰은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어둡고 적막한 맨홀 안에서 벨 소리가 유난히 날카롭게 울려 퍼졌다.하지만 나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전화가 끊겼다가 다시 울리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그대로였다.나는 두 눈을 굳게 감고 있었다.의식을 잃었는데 전화받을 수는 없으니까.이제 누군가가 나를 발견해 주기만 기다리면 됐다.가능하면 조금 늦게 발견될수록 좋았다.15분 후.맨홀 덮개를 설치하러 온 작업자들이 현장에 도착했다.그중 한 명이 맨홀 옆에 떨어져 있는 내 가방을 발견했다.불길한 예감이 든 작업자는 곧바로 몸을 숙여 안쪽을 들여다봤다.손전등 불빛이 맨홀 아래를 비추자, 바닥에 꼼짝도 하지 않고 쓰러져 있는 내 모습이 그대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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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내 상처를 처치해 준 사람은 같은 응급의학과 의사 장구영이었다.내 얼굴을 확인한 순간, 그의 손이 그대로 멈췄다.장구영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소 선생님? 아니, 왜 여기 계세요? 지금 중증 외상 환자 처치 중이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장구영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옆에 있던 경찰이 먼저 설명했다.“환자가 이 병원 의사분이세요? 이분이 실수로 맨홀에 빠지셔서 방금 구조됐습니다.”장구영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몇 번이나 입을 열려다 말았다.아무래도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았다.하지만 경찰들이 옆에 있는 탓인지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장구영은 묵묵히 처치 도구를 챙겨 조심스럽게 내 상처를 치료하기 시작했다.상처를 소독하고 봉합하는 내내 나는 정신이 또렷해서 더욱 고통스러웠다.이마의 상처는 세 바늘이나 꿰맸고, 골절된 오른쪽 다리에는 깁스를 했다.이어서 검사실로 옮겨져 머리 CT까지 찍었다.다행히 검사 결과는 경미한 뇌진탕 정도였고, 그 외에는 큰 이상이 없었다.내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경찰 두 명이 응급실 관찰실로 들어왔다.사고 경위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소 선생님, 맨홀에 빠지게 된 경위를 처음부터 말씀해 주시겠어요?”나는 침대 등받이에 기대앉아 애써 기억을 더듬는 척했다.“야간 당직을 마치고 병원 정문을 막 나갔을 때 응급의학과 동료한테 연락이 왔어요. 중증 외상 환자가 들어왔으니 당장 돌아와서 처치에 합류해 달라고요. 마음이 급해서 정신없이 돌아오다가 열려 있는 맨홀을 미처 못 봤어요. 그대로 빠졌고요.”경찰들은 내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잠시 뒤, 병원 CCTV 관리실 직원이 급히 찾아왔다.직원은 병원 앞 도로를 비추는 CCTV 영상을 경찰들에게 건넸다.영상에는 내가 전화를 확인한 뒤 서둘러 병원 쪽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다만 맨홀 바로 앞은 가로수와 시설물에 가려져 있어 내가 실제로 떨어지는 순간까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경찰들은 영상을 몇 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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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수술실 앞에는 수술복 차림의 강영서가 보호자들과 마주 서 있었다.강영서는 눈을 내리깔고 짐짓 침통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죄송합니다. 저희가 최선을 다했지만... 끝내 살리지 못했습니다.”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보호자들이 무너져 내렸다.복도에 처절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하지만 강영서는 곧 말을 이었다.은근히 누군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말투였다.“처음에는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상태였어요. 그런데 집도의였던 소정희 선생님이 수술 중 몇 차례 실수를 해서...”강영서는 일부러 말끝을 흐렸다.하지만 누구를 겨냥한 말인지는 뻔했다.그 한마디에 보호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소정희 선생은 어디 있어요? 왜 안 나와요!”“사람을 죽여 놓고 숨어 있으면 끝이에요? 당장 나오라고 해요!”“이대로는 절대 못 넘어가요!”순식간에 욕설과 고함이 복도를 뒤덮었다.나는 휠체어에 앉은 채 태연하게 사실을 왜곡하는 강영서를 말없이 바라봤다.그때 보호자 중 한 명이 내 가슴에 달린 명찰을 발견했다.남자의 시선이 명찰에 꽂혔다.“응급의학과... 소정희?”순간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바닥에 주저앉아 오열하던 환자의 아내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나를 확인한 순간, 그녀는 그대로 이성을 잃었다.“너였어?”벌떡 일어난 그녀가 눈이 벌게진 채 내게 달려들었다.“네가 내 남편 수술한 의사지? 네가 실수해서 죽은 거잖아!”그녀가 거칠게 내 옷깃을 움켜쥐었다.손톱이 살을 깊숙이 파고들었다.몸이 세게 흔들릴 때마다 골절된 오른쪽 다리에서 지독한 통증이 치밀어 올랐다.주변에 있던 다른 보호자들까지 한꺼번에 몰려들었다.누군가는 나를 밀쳤고, 누군가는 내 면전에서 욕을 퍼부었다.“저런 사람이 무슨 의사야?!”“사람을 죽여 놓고도 뻔뻔하게 앉아 있네!”“절대 그냥 넘어가면 안 돼!”“죗값 치르게 해야지!”오른쪽 다리가 골절된 상태라 제대로 저항할 수도 없었다.나는 휠체어를 붙잡고 버티며 이를 악물고 통증을 참았다.“죄송하지만 환자 처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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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경찰이 제시한 핸드폰 화면에는 병원 정문 앞 도로를 촬영한 CCTV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영상은 중간에 끊긴 부분도 없었고, 촬영 시각도 선명하게 표시돼 있었다.거기에 작업자들의 신고 기록과 구조 기록까지 시간대별로 정리돼 있었다.오전 9시.나는 정시에 퇴근을 마치고 병원 정문을 나섰다.오전 9시 10분.병원 앞에서 응급의학과의 연락을 받은 나는 곧바로 발길을 돌려 급히 병원 쪽으로 돌아왔다.오전 9시 18분.나는 CCTV 화면에서 가로수와 시설물 뒤쪽으로 사라졌다.바로 그 너머에 뚜껑이 열린 맨홀이 있었다.오전 9시 33분.맨홀 뚜껑을 설치하러 온 작업자가 주변에 떨어져 있던 내 가방과 핸드폰을 발견한 뒤 구조를 요청했다.이후 소방대원들이 도착해 나를 구조할 때까지 나는 계속 맨홀 안에 갇혀 있었다.경찰이 차가운 눈빛으로 주변을 훑었다.“작업자들의 신고 기록과 구조 과정을 보면, 소정희 선생님은 적어도 오전 9시 18분 이후부터 구조될 때까지 맨홀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혼자 움직일 수 있는 상태도 아니었고요.”그가 한층 단호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오른쪽 다리가 골절된 채 맨홀 안에 있던 사람이 어떻게 동시에 수술실에 들어가 환자 처치에 참여하고, 실수까지 해서 환자를 죽게 했다는 겁니까?”그 한마디에 주변이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조금 전까지 소리치던 보호자들도 서로 얼굴만 바라봤다.분노로 달아올랐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모두가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바로 그때였다.사람들 뒤쪽에서 낮고 위압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경찰관님, 그 자료 하나만으로 소정희 선생님에게 이번 의료사고의 책임이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사람들이 일제히 뒤를 돌아봤다.병원장 강재명이었다.강재명은 침통하고 엄숙한 표정으로 사람들 사이를 걸어 나왔다.병원장 특유의 위압감에 주변의 시선이 순식간에 그에게 쏠렸다.그가 뒤따라온 의료진에게 손짓했다.곧 한 사람이 태블릿과 의무기록 서류를 들고 앞으로 나왔다.강재명이 단호하게 말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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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서명은 반듯했고 필체의 특징까지 똑같았다.나와 몇 년째 함께 일한 응급의학과 동료들조차 하나같이 내 친필 서명이 맞다고 입을 모아 증언했다.그뿐만이 아니었다.당시 수술실에 있던 간호사와 의사들까지 차례로 입을 열었다.“맞습니다. 당시 처치를 주도한 건 소 선생님이었어요.”“저희도 수술실 안에 계속 있었습니다. 직접 봤어요. 소정희 선생님이 맞습니다.”“어떻게 맨홀에 계셨던 건지는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몇 년을 같이 일했는데 저희가 소 선생님을 못 알아볼 리가 없어요.”흠잡을 데 없는 수술실 CCTV 영상.내 것과 똑같은 서명.거기에 여러 의료진의 일치된 증언까지.모든 증거가 한꺼번에 나를 이번 환자 사망의 책임자로 지목하고 있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흔들리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다시 뒤집혔다.잠잠해졌던 보호자들의 분노가 다시 폭발했다.이번에는 전보다 훨씬 거셌다.하지만 나는 주변의 고함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은 채 태블릿 화면 속 여자만 뚫어지게 바라봤다.순간 나조차 헷갈릴 정도였다.너무 닮았다.누가 봐도 나라고 믿을 만큼 똑같았다.그 모습을 본 강재명이 곧바로 내 앞으로 다가왔다.그는 나를 내려다보며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정희야. 네가 평소에 얼마나 성실하게 일했는지는 나도 잘 알아.”잠시 말을 멈춘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그래도 이번 일은 네가 책임져야지. 유가족에게도 제대로 사과드려야 하고.”그의 시선이 차갑게 가라앉았다.“너를 위해서라도 지금은 인정하는 게 나아.”겉으로는 나를 걱정하는 말처럼 들렸다.하지만 그 몇 마디로 나는 순식간에 환자를 죽여 놓고도 끝까지 책임을 피하려는 의사가 되어 버렸다.내가 반박할 틈도 없이 분위기는 완전히 그쪽으로 기울었다.옆에서 계속 분노를 억누르던 환자의 아내가 결국 폭발했다.일그러진 얼굴로 나를 노려보며 소리쳤다.“당신, 우리 집안이 A시에서 어떤 집안인지 알기나 해요?”그녀가 이를 악물었다.“이 일, 절대 그냥 안 넘어가요. 끝까지 책임지게 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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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시끄럽던 복도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움직이던 사람들까지 일제히 멈춰 서서 나를 돌아봤다.사람들 뒤에 서 있던 강영서의 눈에도 처음으로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찔리는 구석이라도 있는 듯 눈빛이 흔들렸다.하지만 강영서는 곧바로 앞으로 나서서 목소리를 높였다.“소정희, 아직도 아니라고 할 거야?”그녀가 나를 몰아붙이듯 말을 이었다.“영상도 있고, 서명도 있고, 널 직접 봤다는 사람도 이렇게 많은데 대체 언제까지 아니라고 우길 건데?”나는 더 이상 말로 맞서지 않았다.곧바로 손을 들어 옷깃을 잡아당겨 목을 드러냈다.목 전체가 사람들 앞에 훤히 드러났다.깨끗한 피부 어디에도 붉은 자국은 없었다.나는 사람들을 똑바로 바라보며 힘주어 말했다.“잘 보세요.”“저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목에 저런 붉은 자국이 있었던 적이 없어요.”나는 다시 태블릿 화면을 가리켰다.“그런데 영상 속 사람은 있잖아요.”잠시 숨을 고른 뒤 강영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저 자국은 강영서한테 있는 거예요. 영상 속에서 저인 척했던 사람은 강영서예요.”순간 주변이 술렁였다.경찰관도 곧바로 내가 지적한 부분을 알아챘다.그때 강영서가 사람들 사이를 피해 뒤로 빠지려 했다.경찰이 재빨리 앞을 막아섰다.“강 선생님, 잠시만요.”강영서가 계속 피하려 하자 경찰관이 단호하게 말했다.“목에 있는 자국만 확인하겠습니다. 협조해 주세요.”결국 강영서의 목이 드러나자 사람들 사이에서 숨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렸다.강영서의 목에는 붉은 자국이 선명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크기도, 모양도, 색깔도.영상 속 여자에게 있던 것과 정확히 같았다.조금 전까지 확신에 차 있던 강재명의 얼굴이 그대로 굳었다.핏기마저 순식간에 사라졌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목소리로 나를 지목하던 동료들도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누구 하나 입을 열지 못했다.시선만 서로 피할 뿐이었다.경찰은 다시 태블릿을 받아서 들었다.영상을 몇 번이고 확대하며 목 부분을 비교했다.결론은 분명했다.수술실 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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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나는 학창 시절부터 아무도 모르는 버릇이 하나 있었다.이름을 다 쓰고 나면 끝에 아주 작은 동그라미 하나를 덧붙이는 습관이었다.오랫동안 글씨를 쓰며 몸에 밴 버릇이라 나도 모르게 늘 그렇게 했다.평소 서명할 때 펜에 힘을 거의 주지 않는 편이라 그 동그라미도 흐릿해서 눈에 잘 띄지 않았다.굳이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도 없었다.강영서도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그것이 완벽해 보이던 위조 서명의 결정적인 허점이었다.나는 수술기록지를 가리키며 말했다.“이 서명들, 다 가짜예요.”사람들의 시선이 한꺼번에 서명으로 쏠렸다.“제 서명에는 이름 끝에 항상 작은 동그라미가 하나 들어가요. 그런데 여기엔 없잖아요.”강영서의 손끝이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당황한 기색도 더는 감추지 못했다.내게 이런 버릇이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으니까.경찰은 곧바로 확인에 나섰다.“최근 3개월 동안 소정희 선생님이 직접 서명한 진료기록 전부 가져와 주세요.”그가 이어서 말했다.“지금 여기서 직접 대조해 보겠습니다.”수간호사가 서둘러 의사실로 향했다.잠시 뒤 두툼한 진료기록 뭉치를 가져와 사람들 앞에 펼쳐 놓았다.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하나둘 가까이 다가왔다.모두의 시선이 기록마다 남아 있는 내 실제 서명에 꽂혔다.대조해 볼수록 차이는 분명했다.어느 기록을 보더라도 내 서명의 마지막에는 빠짐없이 흐릿한 작은 동그라미 하나가 그려져 있었다.반면 강재명이 내놓은 수술기록지의 서명에는 그 흔적이 없었다.현장에서 직접 대조한 경찰관도 곧바로 차이를 확인했다.강재명이 제시한 수술기록지의 서명은 위조된 것이었다.겹겹이 쌓아 올린 거짓말이 하나씩 무너지기 시작했다.치밀하게 꾸민 함정의 실체도 서서히 드러났다.환자 가족들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졌다.조금 전까지 나를 향하던 적대적인 시선이 이제는 온몸을 떨고 있는 강영서와 강재명에게로 향했다.그 순간, 조금 전까지 입을 맞춰 나를 지목하던 동료들도 흔들리기 시작했다.누구 하나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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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구급차 내부 CCTV에는 당시 상황이 고스란히 찍혀 있었다.중상을 입은 환자가 구급차에 실렸을 당시만 해도 상태는 위중했지만 활력징후는 비교적 안정적이었다.당장 사망할 정도의 상태는 아니었다.문제는 강영서였다.현장에 있던 구급대원들이 모두 말렸지만 강영서는 듣지 않았다.끝까지 자기 판단을 고집하며 환자에게 약물을 과도하게 투여했다.처치 방식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그 결과 환자의 두개내압이 급격히 상승했고, 병원으로 이송되던 도중 결국 뇌사 상태에 빠졌다.CCTV에는 그 직후 크게 당황한 강영서가 강재명에게 전화를 걸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모습까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이제 모든 증거가 하나로 이어졌다.진실은 명확했다.환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사람은 강영서였고, 강재명은 딸의 잘못을 덮기 위해 나를 희생양으로 삼으려 했다.모든 사실을 확인한 환자 가족들의 얼굴에는 온갖 감정이 뒤섞였다.그제야 자신들이 누군가의 거짓말에 휘둘려 아무 죄 없는 의사를 살인으로 몰아세울 뻔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환자의 아내가 애써 태연한 척하는 강재명을 노려봤다.이를 악문 채 낮게 말했다.“이 일, 절대 그냥 안 넘어갑니다.”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책임지게 될 겁니다.”그 말을 들은 강재명의 얼굴이 크게 일그러졌다.얼굴이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가슴이 거칠게 들썩이기 시작했다.그는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쥔 채 제대로 숨조차 쉬지 못했다.목에서는 거친 숨소리만 새어 나왔다.이내 눈이 뒤집히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급성 심장 이상으로 쓰러진 강재명은 결국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평생 존경받는 병원장으로 살아온 사람이 이런 식으로 생을 마감할 줄은 몰랐다.모든 일의 시작이었던 강영서는 강재명이 쓰러지는 모습을 보자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대로 주저앉았다.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그토록 치밀하게 짜 놓은 계획은 이제 모두의 눈앞에서 완전히 무너져 있었다.경찰은 곧바로 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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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응급의학과 동료들은 내가 나서서 선처를 부탁한 걸 무척 고마워했다.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점심 무렵이었다.천천히 현관문을 여는 순간, 따뜻한 음식 냄새가 훅 풍겨 왔다.그제야 온몸의 긴장이 조금 풀리는 기분이었다.부모님은 식탁에 앉아 초조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문이 열리자 두 분 모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시선은 먼저 내 머리에 감긴 붕대로 향했다가, 이내 깁스를 한 오른쪽 다리에 멈췄다.엄마가 놀라 달려왔다.“정희야! 이게 다 뭐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곧 울먹이는 목소리가 이어졌다.“아빠랑 내가 너한테 전화를 열 통도 넘게 했는데 왜 한 번도 안 받아!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안 그래도 지금 병원으로 가서 너 찾으려던 참이었어!”붉게 충혈된 부모님의 눈을 보는 순간, 내내 억누르고 있던 서러움이 한꺼번에 터졌다.코끝이 찡해지더니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나는 부모님을 꽉 끌어안고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울었다.울먹이며 오늘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더듬더듬 털어놓았다.이야기를 다 들은 부모님은 분노에 온몸을 떨었다.아빠는 그대로 현관을 향해 몸을 돌렸다.당장이라도 강영서와 병원에 따지러 갈 기세였다.“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악독할 수가 있어!”아빠가 이를 악물었다.“우리 딸이 환자 살리겠다고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사람을 죽인 의사로 몰아? 이걸 어떻게 그냥 넘어가!”나는 황급히 손을 뻗어 아빠를 붙잡았다.“아빠, 가지 마. 강영서는 이미 경찰서에서 조사받고 있어. 이제 빠져나갈 수 없을 거야.”그제야 부모님의 흥분도 조금씩 가라앉았다.부모님은 다시 나를 끌어안고 한참 동안 등을 토닥여 줬다.바로 그때 응급의학과 과장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병원에서 3개월간 유급 병가를 승인했으니, 몸을 충분히 회복한 뒤 복귀하라는 내용이었다.메시지를 확인한 순간, 그제야 마음을 짓누르던 긴장이 완전히 풀렸다.나도 모르게 길게 숨을 내쉬었다.이후 수사와 재판 절차가 이어졌다.얼마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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