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 돌계단 위, 수많은 사람이 둘러선 가운데 서종대군 무용경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둑한 등불 아래, 용지안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그는 달빛에 가까운 은백색 비단 도포를 입고 허리에는 금옥으로 장식된 띠를 둘렀다. 특히 띠 한가운데 박힌 푸른 비취는 메추리알만큼이나 커서 은은한 빛을 품고 있었다.
이제 겨우 세 번째로 마주하는 무용경천이었지만 볼 때마다 늘 새로운 기운과 위압감이 느껴졌다. 얼굴 윤곽은 판조대군 무용한천과 닮은 점이 많았으나 그 품새와 기운은 사뭇 달랐다.
판조대군이 온화하고 고요한 옥돌 같은 사람이라면 무용경천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연스러운 위엄과 강인함이 흐르는 사내였다. 그 힘은 억지로 내뿜는 것이 아니라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아도 주변에 자연스레 압도감을 주는 그런 천성에서 우러나는 카리스마였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사람 마음을 흔드는 치명적인 매력이 스며 있었다. 소설에서 흔히 쓰는 '사악하지만 매혹적인 영웅'이라는 말, 바로 그에게 딱 어울렸다.
그저 존재만으로도 주위에 긴장감이 감돌게 하는 사내.
멀리서부터 용지안을 바라보는 그 눈빛은 마치 어둠 속에 깜빡이는 푸른 불빛 같았다. 눈을 살짝 가늘게 뜨는 순간 그 빛이 날카롭고 뜨거운 불꽃처럼 변했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감히 그 눈빛을 마주할 수 없을 것이다.
무용경천이 다가와 용지안 앞에 서서 키 큰 그림자로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늦었습니다. 마마께서 불쾌해하시지는 않으시겠지요?”
이렇게 당당하고 담담한 인사에도 용지안은 미소로 받아넘기며 답했다.
“대군께서 이렇게 저희 집까지 왕림하신 것만으로도 영광스럽기 그지없으니 무슨 불쾌할 일이 있겠습니까? 오히려 대군 덕에 용씨 집안이 빛이 납니다.”
겉으론 모두 용지안이 서종대군의 사람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정작 용지안 본인은 서종대군과 진심 어린 인연을 맺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서로 나눈 말도 손가락으로 셀 만큼밖에 되지 않는다.
용우천이 재빨리 무용경천을 용지안 옆에 앉게 했고 그 옆에는 곧바로 판조대군이 자리를 잡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