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막 출관한 마가의 셋째 대장로는 윤구주의 단칼에 목숨을 잃었다.마가의 셋째 대장로를 죽인 후에야 윤구주는 소매를 흔들어 비검을 회수했다.“이젠 마가에 가서 끝장을 볼 차례야.”차갑게 말을 뱉은 윤구주는 살기 어린 얼굴로 마가가 있는 기산 쪽을 바라보았다.마가가 서울에서 윤구주를 포위하고 살해하려고 했던 순간부터 그들은 이미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었다.더 증오스러운 것은 그들이 감히 제자백가까지 꼬드겨 노룡산에서 윤구주에게 대항하고 있다는 것이었다.윤구주는 그런 인간들을 죽이지 않으면 안 되었다.더욱이 지금 마가가 저지르는 모든 일까지 고려한다면 사라져 마땅한 가문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았다.당장 마가의 셋째 대장로만 해도 석촌을 50년간 봉인한 탓에 수많은 무고한 백성들이 죽어 나갔다.그뿐만 아니라 마가의 세자 마동한의 행실은 또 얼마나 가관이란 말인가.“확실히 빌어먹을 마가를 없애야 합니다!”“형님, 갑시다! 당장 마가로 가서 그 개자식들을 끝장냅시다!”말이 끝나자 두 사람은 기산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바로 이때, 석촌 촌민들이 집안에서 뛰쳐나왔다.아까의 결투 소리가 하도 컸던 탓에 촌민들도 똑똑히 들었다.그들은 하나둘 집에서 나와 냉큼 윤구주에게 다가갔다.“은인님, 대체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저희의 흑사병이 아직도 나을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겁니까?”석촌의 촌장이 촌민들을 이끌고 나와 불쌍한 얼굴로 윤구주에게 물었다.“시름 놓으십시오. 오늘부로 이 마을에는 더는 흑사병이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윤구주가 대답했다.“정말입니까?”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윤구주를 바라보는 촌민들의 목소리에는 흥분이 가득 섞여 있었다.그들은 자그마치 50여 년간 흑사병에 시달렸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다.지난 50여 년간 얼마나 많은 촌민이 이런 끔찍한 살기 속에서 죽어 나갔는지 감히 상상할 수 없다.“저희 형님을 믿으십시오! 여러분의 병은 평생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것입니다.”공수이는 앞으로 나와 웃으며 말했다.그
윤구주는 다시 한번 고대 우물을 향해 공손하게 절을 올렸다.석촌을 떠난 윤구주와 공수이는 기산으로 향했다....기산은 예리한 두 협곡 사이에 웅장한 궁전들이 자리 잡은 곳이었다.이곳은 마가의 오래된 보금자리이다.마궁의 가장 중앙에 있는 웅장한 대전 안에는 현재의 가주 마황이 눈썹을 잔뜩 찌푸린 채 정중앙에 앉아있었다.대전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마가의 장로급 고수들이었다.“가주님, 셋째 대장로는 대체 어디에 간 것입니까?”검은 얼굴의 장로가 참지 못하고 물었다.마황은 싸늘한 눈빛으로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셋째 대장로는 아마 석촌에 갔을 것이다!”“석촌?”“50여 년 전에 셋째 대장로에 의해 봉인된 작은 마을 말입니까?”검은 얼굴의 장로의 얼굴에는 의아함이 서려 있었다.“그래!”마황이 대답했다.“그것참 이상합니다! 대체 그 작고 낡은 마을에 뭐가 있길래 셋째 대장로가 그렇게 중시하는 것입니까?”다른 장로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50여 년 전의 석촌을 봉인한 사실을 마가 장로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단지 그 작은 마을을 왜 봉인하는 것인지를 몰랐을 뿐이다.게다가 그 마을의 어떤 보물이 그렇게나 셋째 대장로의 마음을 동하게 했는지는 더더욱 알지 못했다.“에이!”“나도 모른단 말이다!”“내가 유일하게 아는 거라곤 셋째 대장로가 석촌의 보물을 지극히 아낀다는 것뿐이다. 이번에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원인의 9할도 그 석촌의 보물 때문이니 말이다!”마황은 천천히 대답했다.“가주님의 말씀대로라면, 셋째 대장로가 속세로 돌아온 이유가 결코 그 윤 씨 사내를 상대하기 위한 것이 아니란 뜻입니까?”검은 얼굴의 장로가 재빨리 되물었다.마황은 쓴웃음을 지었다.“대장로는 50여 년을 속세와 연을 끊고 살았는데 윤씨 성의 그 사람을 알 리가 만무하지 않겠느냐? 아마 들어보지도 못했을 것인데 단순히 그를 상대하기 위해 세상에 다시 나올 리는 없지 않겠느냐?” 그 말을 들은 대전 안의 모든 마가 장로들은 일제히 침묵하였다.그들은 마
윤구주가 나타남과 함께 그 자리에 있던 마가 사람들은 모두 선 자리에서 얼어버리고 말았다.“젠장, 저 사람은 누구야? 감히 우리 마가의 영역을 제멋대로 침범하다니!”아래의 마가 제자들은 하나같이 놀라며 고개를 들어 하늘에 떠 있는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몰라!”“멋대로 우리 마가의 영역을 침범한 것도 모자라 미친 소리까지 하다니! 정말 괘씸해!”“맞아!”“일단 저 사람을 제압하자.”마가의 제자들은 예전부터 오만했다.윤구주가 갑자기 상공에 나타난 것도 모자라 마가를 무시하는 발언을 한 것에 대해 마가의 제자들은 다들 화가 났다.눈 깜짝할 사이에 십여 개의 그림자가 윤구주를 향해 날아갔다.“도둑놈 같으니라고, 멋대로 우리 마가의 영역을 침범한 것도 모자라 미친 소리까지 해대다니! 목숨값을 치러야겠구나!”십여 명의 마가의 제자들은 일제히 날아가 윤구주를 향해 돌진했다.윤구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옆에 서 있던 공수이가 한 발짝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형님, 이 개미들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윤구주는 딱히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 대답했다.“그래.”“하하! 이 개자식들아, 감히 우리 형님한테 덤벼? 오늘 이 스님이 어떻게 너희들을 혼내주는지 잘 봐라!”공수이는 말이 끝나기 바쁘게 유성같이 주먹을 휘둘렀다.이 주먹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절정의 기혈로 가득 찬 주먹이다.혈기 넘치는 주먹은 맷돌 크기에 불과했지만 한번 내리꽂은 순간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진다.“아아아!”일련의 비명 속에서 십여 명의 마가 제자들은 어떠한 방어를 취하기도 전에 공수이의 주먹 한 방에 처참한 살덩어리로 되어버렸다.공수이의 엄청난 기세를 봐버린 마가의 제자들은 순간 겁이 나기 시작했다.아무래도 공수이는 절정의 강자이니 말이다.“와 봐! 계속하러 와 보라니까?”“왜 다들 거북이처럼 움츠러든 거야?”“소문에 의하면 마가들은 다 오만하기 짝이 없던데? 사실은 그냥 다 겁쟁이들인 거야?”공수이는 주먹 한 방으로 그렇게 많은 마가의 제자들을 처리해버리고는
“아!”째지는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먼저 공격을 했던 이중천 절정의 마가 장로는 공수이의 한 방에 의해 땅으로 추락해버렸다.땅은 본래의 형체를 잃었고 비운의 절정 장로는 온 얼굴에 피를 뒤집어쓴 채 피바다에 떨어져 죽었다.“삼장로님!”이중천 절정의 마가 안문 장로가 그렇게 공수이에게 맞아 죽은 것을 본 마가의 사람들은 모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그 누구도 공수이의 주먹 한 방이 그렇게 강력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공수이는 주먹 한 방으로 상대방을 단숨에 처리하고 나서야 주먹을 흔들며 웃었다.“들어와! 계속 덤벼! 절대로 멈추지 말란 말이야!”그 순간, 마가의 제자들은 물론이고 절정의 장로들까지 겁에 질려버렸다.주먹 단 한 방으로 이중천의 절정을 가뿐히 보내버릴 정도면 이 스님의 내공이 상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너, 너 대체 누구냐? 어째서 우리 마가와 맞서는 것이지?”검은 얼굴의 절정의 장로가 나서서 언성을 높이며 물었다.“쳇! 소승의 법명을 너희들 같은 잡것들이 감히 알려고 들다니! 정말로 알고 싶으면 너희들의 가주 마황 더러 나오라고 해!”공수이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마가의 가주의 이름이 저렇게나 가볍게 입에 오르내리는 걸 본 마황의 얼굴은 아까보다도 더 딱딱하게 굳었다.“내가 바로 마가의 가주요!”마황은 그 순간에 드디어 나섰다.마황이 진짜로 나선 것을 본 공수이는 두 눈을 두어 번 깜빡이고는 마황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네가 바로 그 자기만 옳다고 여기는 마가의 가주더냐? 쯧쯧, 내공이 겨우 오악 절정이냐? 보아하니 우리 할아버지께서 너희 마가를 과대평가한 것 같구나!”공수이가 조롱했다.마황은 가슴속에 끓어오르는 분노를 눅잦히며 공수이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선생은 대체 정체가 무엇인지요? 어찌하여 아무 이유 없이 우리 마가에 찾아와 잔인한 살인을 저지르는 것입니까?”이름을 묻자 공수이도 사양하지 않고 허리에 두 손을 올리고는 거들먹거리며 말했다.“잘 들어둬. 나는 공수
공수이 입에서 나온 자신의 형님을 건드렸다는 소리를 들은 마황은 순식간에 얼굴이 굳어버렸다.“방금 뭐라고 한 것이냐, 우리 마가가 누구를 건드렸다고?”공수이는 윤구주를 가리키며 말했다.“당연히 우리 형님을 건드린 것이지!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런 괴상한 곳에 올 일이 뭐가 있겠어?”마황은 눈동자를 굴려 허공에 떠 있는 윤구주를 바라보았다.그는 윤구주의 잘생긴 얼굴과 패기 넘치는 모습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몸을 떨어대기 시작했다.“너... 너... 넌 구주왕? 그 윤 인왕?”제자백가 중 마가의 가주 마황은 당시 곤륜에서 왕을 봉할 때 마침 곤륜산에 있었다.그래서 마황은 윤구주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고 윤구주임을 확인한 뒤에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윤 인왕?”“세상에, 저 사람이 바로 화진 제일의 구주왕이야?”이때 마가의 모든 장로를 하나같이 눈이 휘둥그레져서 믿기 힘들다는 얼굴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비록 그들은 모두 구주왕의 명성을 잘 알고 있었지만 윤구주의 실물을 본 사람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그리고 마황이 윤구주의 이름을 뱉은 지금,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은 놀라서 얼어붙어 버렸다.“윤구주!”“구주왕!”윤구주는 이름이 불리는 것을 듣고 나서야 천천히 몸을 돌렸다.“본왕을 알고 있다니!”그 순간 마황은 물고기 가시가 목에 걸린 사람처럼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는데 그 모습은 봐주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었다.마황은 그 누구보다 윤구주의 실력을 잘 알고 있었다.특히나 그해 곤륜산에서의 결전은 마황에 있어서 잊기 힘든 무서운 기억이었다.그리고 지금 이 순간, 이 신왕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이 늙은이... 감히 윤 왕을 만나 뵙게 되어...”마황은 그 순간 하는 수 없이 윤구주를 향해 굽실거리며 절을 했다.마황이 윤구주에게 절을 올리는 것을 본 마효순은 제일 처음으로 튀어나와 말했다.“아버지! 저 사람이 바로 우리 동한이를 죽인 사람인데 왜 원수에게 절을 하시는 겁니까?”“입 다물 거라!”아들이 그렇게 말하
공수이가 말을 마치자마자 등에 멘 가방에서 피범벅이 된 머리를 휙 던졌다.데굴데굴! 그 머리가 땅에 떨어지자 마가의 모든 사람이 멍해졌다.머리라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그 머리를 보고 순간 모두가 얼어붙었다가, 이내 자세히 살폈다. 마가의 주인 마황은 그만 혼이 쏙 빠져나갔다. “어르신님...”그의 입에서 처절한 울음이 터져 나왔다. “말도 안 돼!”“어르신님???” 마효순이가 황급히 달려가 보더니, 피투성이 머리가 마가의 3대 어르신님이란 걸 알아보고는 그만 “으악!” 하고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나머지 마가 장로들도 모두 할 말을 잃고 얼빠진 표정이었다. “설마 이게 3대 어르신의 머리라고요?” “저자가 저자가...감히 3대 어르신님을 죽이다니?” 장로들이 벌벌 떨며 소리쳤다! 공수이가 조롱하듯 말했다.“아이고 이제야 좀 알아보시네! 그래! 너희들이 떠받들던 그 늙은이를 우리 형님이 싹둑 잘라버렸어! 이제 보이냐?”이 말을 듣자마자 그 자리의 마가 제자들과 최고위 장로들 모두가 완전히 붕괴되고 말았다! 윤구주와 맞설 희망이었던 3대 선조님이...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3대 어르신님의 목이 이렇게 던져지다니?“네 네놈이... 감히 우리 마가의 3대 어르신님을...” 마효순이가 치 떨리는 손가락으로 윤구주를 가리키며 울분을 터뜨렸다. “나쁜 짓이나 일삼던 늙은이 하나 처리했을 뿐인데, 뭐가 문제지?” 윤구주의 이 말에 마효순의 이성이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네 이 살인마! 내 자식 목숨 내놔라!” 그가 미친 듯이 윤구주에게 달려들려 했다! “효순아... 제발 안 돼!” 마황은 자살 행위나 다름없는 아들의 행동에 절규하며 말렸다.하지만 윤구주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윤구주의 손가락이 허공을 가르자, 평온하던 공기를 찢고 무형의 칼날이 마효순을 덮쳤다.슉! 하늘의 심판처럼 내려온 검기가 마효순을 관통했다! 그 순간! 마효순의 몸이 공중에서 두 동강이 났다! 핏물이 공중에 흩날리며, 시신이 두 조각으로
마가의 우두머리는 미쳐버린 듯 소름 끼치는 웃음을 터뜨렸다.그러다 갑자기 핏발 선 눈으로 야수처럼 윤구주를 노려보며 내뱉었다. “윤구주, 네가 아무리 천하를 쥐고 있다고 해도 네가 아무리 무적이라 해도 넌 결국 인간일 뿐이다. 잘 기억해 둬라. 오늘 네가 우리 마가에 저지른 짓 언젠가는 네 차례가 올 것이다. 오늘 우리 마가가 망한다 해도, 반드시 너를 지옥으로 끌고 가겠다.”처절한 외침을 마치고 마황이 광기어린 목소리로 외쳤다. “마가의 모든 제자들아, 윤구주를 죽여라! 오늘 우리가 전멸할지라도 그자를 반드시 함께 끌고 가리라.” 마지막 순간에, 마가의 우두머리는 결사 항전을 결심했다.그는 깨달았다, 윤구주가 결코 마가를 살려두지 않으리란 것을. 아마도. 죽음을 건 싸움만이 그들의 마지막 희망일 것이다.마황의 명령에 모든 마가 제자들이 일제히 무기를 뽑아 들었다. 마황 곁의 십여 명 최강 장로들도 전신의 기운을 모으며 결사항전을 준비했다. 대격돌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오늘의 싸움은 마가의 존망을 결정할 싸움.그들은 반드시 피를 흘려야만 했다. 그런데!그들은 마지막까지 윤구주의 힘을 너무나 모르고 있었다. 윤구주가 현장의 모든 마가인들을 차갑게 둘러보자, 그의 몸에서 무형의 살기가 뿜어져 나와 모든 마가 제자들을 뒤덮었다. “오늘 이후로 마가란 이름은 영원히 사라질 것이다.” 천하를 호령하는 듯한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가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 발걸음이 내려앉는 순간 온 천지가 울리며 흔들렸다.무서운 걸음의 위력이 떨어지자 하늘을 놀라게 할 위압의 힘이 순간적으로 밀려왔다.이 위압감은 산맥의 힘을 넘어섰다. 절정의 힘마저 넘어섰다.한 걸음으로 모든 게 끝났다.쾅! 윤구주의 발길 한 번에 마가의 건물이 순식간에 날아갔다. 어마무시한 기운에 마가의 약한 제자들이 그 자리에서 즉사해버렸다. “죽여!”윤구주의 살기가 폭발하자, 마황이 제일 먼저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온몸의 힘을 끌어올리자, 그의 배후로
윤구주는 마가의 우두머리가 비참하게 외치는 소리를 전혀 개의치 않고 큰 손바닥으로 진역 결계를 눌렀다.“속박.” 쾅! 셀 수 없는 금색 빛줄기가 긴 뱀처럼 진역 결계 안에서 터져 나와 감금된 마가의 제자들과 장로들을 덮쳤다. 대학살의 현장. 지금 마가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서 그저 도살될 운명의 어린 양들이었다. 오늘 윤구주의 선언대로, 마가를 멸족시키겠다면 단 한 생명도 남기지 않을 것이다. 살육은 끝없이 이어졌다. 절망적인 비명이 마가 제자들의 입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마가는 문가와 손잡고 화진을 위험에 빠뜨렸으니 죽어도 아까울 것 없는 자들이었다. 그래서 윤구주는 어떤 자비도 베풀 생각이 없었다. 마황은 마가 제자들이 차례로 비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보며 눈에서는 피눈물이 흘렀고 두 다리로 땅을 꿇은 채였다. 인제야 그는 윤구주를 적으로 만든 것을 처절히 후회했다.더욱 가슴이 찢어졌다. 자신이 부하들을 보내 윤구주를 암살하려 했던 것이. 그리고 지금 그 대가를 치를 시간이 왔다. 윤구주가 마가의 제자들을 차례로 처형하고 있을 때, 뒷산의 어느 절벽에서 쾅, 하는 진동이 불현듯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하늘을 흔들었다.곧이어, 절벽 가운데에서 공중에 떠 있는 두 개의 오래된 관이 보였고 그중 하나에서 거친 포효가 울려 퍼졌다. “어떤 자가 감히 우리 마가의 영역에서 이런 대학살을 저지르느냐?” 이 말이 끝나는 순간, 쾅 하는 폭발음과 함께 한 관이 산산조각났다. 그리고 허연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온몸이 진한 마기로 둘러싸인 노마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이 노인의 사악한 기운이 하늘까지 치솟았다. 그가 나타나자마자, 하늘의 정기가 물줄기처럼 그의 몸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의 눈동자에서는 섬뜩한 광채가 번쩍였고 , 특히 왼쪽 눈에는 신비로운 안개가 맴돌았다. 수천 년의 전통을 지닌 마가에는 세 명의 강력한 시조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등장한 이가 바로 마가의 제2대 시조였다.이 제2대 시조가 모습을 드러낼 때,‘아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