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창용의 말에 한동석은 침묵했다.어쩔 수 없었다. 박창용의 말은 전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한동석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 3대 문벌 중 하나인 황씨 일가의 노인이 앞으로 나섰다.“박창용 사령관님, 암부가 예전에 얼마나 많은 공을 세웠든 그들도 결국엔 우리 화진의 군대 아닙니까? 군인이라면 당연히 명령에 복종해야죠. 그것은 군인의 의무니까요. 그러니까 박창용 사령관님은 정태웅 지휘사가 국방부의 조사에 협조하도록 설득해 주시죠. 만약 정말로 누명이라면 전 국방부에서 정태웅 지휘사에게 합당한 설명을 해줄 거로 생각합니다.”황씨 일가 노인의 말을 들은 박창용은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명령에 따르라고? 미안하지만 난 이번 생엔 구주왕의 명령만 들어서 말이야. 내가 다른 같잖은 것들의 명령을 따르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야!”박창용은 다짜고짜 욕했다.그가 말한 같잖은 것들이 이황왕인 건 분명했다.“건방지군요!”국방부 장군 한동석이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섰다.그는 어두워진 얼굴로 사납게 박창용에게 말했다.“박창용 사령관, 공공연히 명령을 거역하겠다는 겁니까? 반역이라도 저지를 생각입니까?”박창용은 오만한 태도로 말했다.“난 명령을 거역한 적이 없어. 반역을 저지른 적도 없고. 난 그저 내 형제들을 지키고 싶은 것뿐이야. 그렇게 내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싶다면 마음대로 해. 난 상관없으니까.”박창용이 그렇게 말하자 국방부 장군 한동석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그는 화가 난 목소리로 박창용의 뒤에 있는 수백 명의 창용부대 군인들을 향해 말했다.“너희들은? 너희들도 박창용 사령관과 함께 반역할래? 명심해. 한 번 반역죄를 저지르면 가족들까지 전부 죽는다는 걸 말이야!”한동석의 말은 사실이었다.공공연히 국방부와 척지는 것은 정말로 반역죄였다.그리고 반역하면 가족들까지 전부 죽게 된다.한동석은 자기 말에 창용부대가 흔들릴 줄 알았다. 그러나 뜻밖에도 창용부대는 일제히 외쳤다.“창용부대에는 철칙이 있습니다. 국토를 지키고
남궁서준의 출현에 단 한 번도 긴장한 적 없던 서울 3대 문벌 사람들은 전부 안색이 달라졌다.3대 문벌의 신급 강자 여선희, 황정두, 당의전도 마찬가지였다.신급 강자인 그들은 남궁서준의 몸에서 엄청난 검의를 느꼈다.남궁서준은 겨우 14, 15살처럼 보였지만 그가 내뿜는 무시무시한 검의에 세 명의 신급 강자 모두 몸을 떨었다.심지어 조금 전 그 공격은 신도 벨 수 있을 것 같았다.“젠장, 저 자식은 또 누구죠? 어디서 나타난 거죠?”빨간색 옷을 입은 여선희는 어두워진 얼굴로 남궁서준을 바라보았다.“모르겠어요. 하지만 내공이 뛰어난 것 같아요. 얕보면 안 되겠어요.”황정두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가장 거만했던 당의전은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음산한 눈빛으로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남궁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마치 현장에 있는 사람 중 소년만큼 무시무시한 사람은 없다는 듯 말이다.남궁서준은 그곳에 나타나더니 다른 사람들에게는 시선도 주지 않고 한 걸음 한 걸음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마치 다른 이들은 개미 같은 보잘것없는 사람들인 것처럼 말이다.화진의 첫 번째 소년후인 남궁서준이 나타난 순간 정태웅은 흥분해서 외쳤다.“미친, 꼬맹아. 넌 여기 웬일로 왔어? 날 도와주러 온 거야?”남궁서준은 정태웅을 무시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왜 귀찮게 당신을 도와요? 전 그냥 사람을 죽이고 싶었던 것뿐이에요!”“하하하, 아닌 척하긴, 꼬맹아, 형을 도와주고 싶으면 그냥 솔직하게 말해. 뭘 그렇게 부끄러워해?”정태웅은 뻔뻔하게 말했다.남궁서준은 코웃음 치더니 정태웅을 무시했다.“어쨌든 네가 와서 정말 다행이야!”남궁서준은 고개를 들었다.아직 앳돼 보이는 얼굴을 보니 어린아이가 영락없었다.그러나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무시무시한 검의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어쩔 수 없었다.그는 화진의 소년후이자 남궁 가문의 검도 귀재였기 때문이다.“죽이고 싶은 사람 있으면 나한테 말해요!”남궁서준이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로 현장에 있
남궁서준은 육체를 횡련한 무도 대가를 손쉽게 죽였다.말도 안 되었다.다들 겁을 먹고 넋이 나가 있을 때 남궁서준은 계속해 말했다.“계속하죠. 이번에는 누가 먼저 죽을래요?”이 순간 국방부든, 영문이든, 서울의 3대 문벌이든, 더는 거만을 떠는 사람이 없었다.다들 경계 어린 표정으로 마치 마귀를 바라보듯 화진의 첫 번째 소년후를 바라보았다.아무도 앞으로 나서지 못하자 정태웅은 조롱하기 시작했다.“이봐! 계속 건방 떨어보라고! 아까는 날 죽이고 싶어 했잖아? 그런데 왜 다들 겁을 먹었어? 거기 군복을 입은 장군, 아까는 엄청 기고만장했잖아. 그렇게 잘났으면 우리 동생이랑 싸워보지 그래? 우리 동생 손에 죽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그리고 여씨, 황씨, 당씨, 3대 문벌. 당신들도 마찬가지야. 특히 여선희 당신 아까는 거만했잖아? 말 좀 해 봐. 뭐 똥이라도 씹었어?”정태웅의 조롱과 비아냥에 한동석과 서울 3대 문벌 사람들은 단단히 화가 났다.“적당히 해!”“다들 같이 덤비는 게 좋겠어. 같이 덤비면 저놈을 죽일 수 있을 거야!”한동석의 등 뒤에 있던 사람들, 그리고 3대 문벌의 대가들이 분노에 찬 고함을 질렀다.곧이어 10여 명의 대가들이 함께 남궁서준을 향해 달려들었다.그들은 꽤 이름을 떨친 대가들이었는데 이렇게 모욕당하는 걸 참고 있을 수 없었다.수많은 대가들이 날아들자 정태웅은 서둘러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꼬맹아, 부탁할게!”남궁서준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꿈쩍하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엄청난 검의를 내뿜고 있었고 10여 명의 대가들이 날아드는 순간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그러고는 다시 오른손을 움직였다.현기가 응집되어 만들어진 기검이 그의 주변에서 나타났다.기검이 나타난 순간, 남궁서준은 팔을 움직였고 쿵쾅대는 소리와 함께 10여 명의 대가급 강자들은 전부 바닥에 꽂혔다.다들 심장이 꿰뚫렸고 그 광경은 아주 섬뜩했다.한동석뿐만 아니라 서울 3대 문벌, 심지어 천하회, 백화궁, 박창용마저 전부 충격을 받았다.이 어린아
서울 3대 문벌 사람들이 모두 놀라워하고 있을 때, 천하회의 원성일은 열정과 동경이 넘치는 눈빛으로 남궁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저 아이가 바로 전설 속 화진의 첫 번째 소년후였군요!”“회장님, 소년후가 뭡니까?”치마를 입은 노정연이 참지 못하고 물었다.원성일은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말했다.“소년후는 우리 화진의 국주가 직접 책봉한 거야. 소년후는 우리 저하 다음으로 큰 영광을 누릴 수 있지. 그리고 소문에 따르면 소년후는 국운을 타고나서 구주왕의 후계자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해.”구주왕의 후계자라는 말에 노정연은 아름다운 눈을 크게 뜨고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정말요? 그렇게 강하다고요?”“당연하지!”“하하하하, 자네 말이 맞네. 하지만 한 가지 동생이 모르는 점이 있다네.”말을 한 사람은 탱크 위에 서 있는 박창용이었다.박창용의 말을 들은 원성일은 서둘러 말했다.“그렇다면 사령관님께서 알려주시죠!”박창용은 흐뭇한 얼굴로 남궁서준을 바라보며 말했다.“사람들은 저 아이가 남궁 가문의 검도 귀재이며 화진의 첫 번째 소년후라는 것만 알지. 저 아이가 9살 때부터 내 뒤를 따라서 나와 함께 생사를 같이 했다는 걸 아는 사람은 없다네.”원성일은 그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9살이요?”“그래.”박창용은 시선을 들어 남궁서준을 바라보았다.“저 아이는 당시 정말 어린 아이였네. 하지만 우리 저하 덕분에 남궁 가문 최고의 검도 귀재가 될 수 있었네. 그리고 소년후로 책봉되기도 했었고. 우리 저하께서 직접 화진의 국주에게 추천했었거든. 그래서 우리 화진의 국주가 저 아이를 화진의 첫 번째 소년후로 임명했던 거라네.”남궁 세가의 귀재 남궁세준은 13살에 책봉되었고 14살에 소년후가 되었다.“설마 저 소년후가 우리 저하를 안다는 말입니까?”원성일은 놀라워하며 말했다.박창용은 크게 웃었다.“그냥 아는 사이가 아니라네. 저 아이는 우리 저하의 친동생일세!”친동생이라는 말에 원성일은 그대로 넋이 나갔다. 그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엄
여선희뿐만 아니라 황씨, 당씨 일가의 두 신급 강자 또한 일제히 현기로 자신을 감쌌다. 그들은 남궁서준의 이어질 공격을 맞받아칠 생각이었다.심지어 국방부 장군인 한동석도 검은색 장총을 뽑아 들었다.철로 만들어진 장총은 한동석의 유명한 무기였다.장총을 꺼내자마자 아주 살벌한 기운이 느껴졌다.파멸적인 검기가 남궁서준의 몸에서 뿜어졌다. 남궁서준이 손을 쓰려는 순간, 윈워터힐스 중 가장 높은 건물 위에 책상다리하고 앉아 있던 윤구주는 작게 중얼거렸다.“다 온 건가? 다 왔다면 이젠 나서야겠군!”그렇게 말한 뒤 윤구주는 두 눈을 떴다. 순간 두 줄기 금빛이 쏘아졌고 윤구주는 훌쩍 뛰어올랐다.윤구주가 줄곧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이유는 암부에 어려움이 있을 때 형제들이 찾아올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그가 기다리던 사람들이 모두 도착했으니 이젠 그가 모습을 드러내야 할 차례였다.“꼬맹아, 그사이에 검도 실력이 또 늘었구나.”담담한 목소리가 어둠을 뚫고 남궁서준의 귀속을 파고들었다.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 목소리를 들었다.비록 아주 덤덤한 어조였지만 그들은 마치 우레와도 같은 엄청나게 큰 소리를 들은 것처럼 기혈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심지어 서울 3대 문벌의 신급 강자는 난생처음 엄청난 압박감을 느꼈다. 심지어 남궁서준을 봤을 때보다 더욱 무시무시했다.“젠장, 또 강자가 있다고?”여선희는 얼굴이 한없이 일그러졌다.황씨, 당씨 일가의 신급 강자 두 명도 흔들리는 눈빛으로 어둠 속의 윈워터힐스를 바라보았다.뒤이어 모두의 놀란 눈빛 속에서 잘생긴 남자 한 명이 어둠 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그는 평지를 걷듯이 아주 평온하게 허공에서 내려왔다.뒷짐을 진 그는 신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그가 나타나자마자 줄곧 무표정을 고수하던 화진 최고의 소년후 남궁서준이 갑자기 아이처럼 들뜬 얼굴로 크게 외쳤다.“형님!”그러고는 윤구주의 곁으로 달려갔다.“대단하네. 한 달 안 본 사이 또 검도 실력이 늘었어.”윤구주는 흐뭇한 얼굴로 자신보다 머리
그 순간 다들 더는 숨기지 않았다.구주왕이 돌아왔다.한 무리의 사람들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저하라고 부를 때 국방부 소속 한동석의 얼굴이 심하게 경련했다.서울 3대 문벌인 여씨 일가 황씨 일가, 당씨 일가도 마찬가지였다.“저하?”“저자들은 왜 저 사람을 저하라고 부르는 거죠?”“대체 어떻게 된 거죠?”국방부 사람들과 영문, 3대 문벌 모두 의문이 들었다.윤구주는 모습을 드러낸 뒤 미소 띤 얼굴로 그곳에 있는 자들을 바라보았다.“좋아. 다들 왔네.”원성일은 흥분해서 말했다.“저하를 위해서라면 천하회는 불구덩이에도 뛰어들 수 있습니다.”백화궁의 연규비도 아름다운 눈으로 윤구주를 그윽하게 바라보며 말했다.“구주야, 내가 그랬지. 널 위해서라면 난 가시밭길도, 불바다도 마다하지 않을 거야. 난 항상 너의 곁을 지킬 거야!”탱크를 타고 온 창용 부대 총사령관 박창용은 윤구주를 보자 탱크에서 훌쩍 뛰어내리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저하, 죄송합니다. 제가 암부를 제대로 지키지 못했습니다. 전부 제 탓입니다!”윤구주는 손을 저었다.“암부에 문제가 생긴 건 자네 탓이 아니야. 탓하려면 세상 사람들이 나 윤구주가 죽었다고 생각한 걸 탓해야지.”그렇게 말한 뒤 윤구주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정태웅을 바라보았다.“정태웅, 이리 와!”“네!”정태웅은 부랴부랴 달려가 윤구주의 앞에 섰다.“내가 왜 여태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줄 알아? 난 기다리고 있었어. 모두가 나타나기를 말이야! 오늘부터 난 그 빌어먹을 것들에게 나 윤구주가 돌아왔다는 걸 알려주겠어!”카리스마 넘치게 말한 뒤 윤구주는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려 한동석과 3대 문벌 사람들을 바라보았다.“국방부, 세가, 종문, 화진의 문벌들. 당시 나는 무력으로 그들을 모두 통합했지. 그런데 이 쥐새끼 같은 것들이 겨우 몇 년 지났다고 우리 화진 무도의 통합을 망쳤어.”윤구주의 말은 날카로운 칼처럼 한동석과 3대 문벌 사람들의 귀에 꽂혔다.아무도 찍소리하지 못했다.윤구주가 온몸으로 내뿜는
구주왕이 살아있었다니.이 놀라운 소식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 국방부, 영문, 3대 문벌 모두 넋이 나갔다.당시 혼자서 군대를 이끌고 10개국을 학살하여 패배하게 만든 그가, 10개국이 토지를 할양하고 배상하게 만든 무적의 남자가 살아있으리라고는 아무도 생각지 못했다.구주왕은 세계적으로 구주 군신이라고 불렸다.10개국마저 두려워하는 신화 같은 인물이, 지금 그들의 앞에 서 있었다.어쩐지 윤구주를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목숨을 눈앞의 그가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그가 바로 화진의 첫 번째 왕 구주왕이었다니.“세상에... 구주왕이 살아있었다고?”문벌 사람들은 겁을 먹고 덜덜 떨면서 말했다.문벌에서 가장 강한 신급 강자 세 명도 겁을 먹고 서둘러 물러났다.다들 윤구주가 죽음의 바다에서 죽은 줄 알았다.그런데 그 신화가 지금 그들의 앞에 서 있을 줄이야.“이제 내가 왜 널 죽이지 않은지 알겠지?”윤구주는 고개를 돌려 덤덤한 시선으로 팔 하나가 망가진 국방부 장군 한동석을 바라보았다.한동석은 눈꺼풀이 뛰었다.팔이 부러진 곳에서 전해지는 극심한 통증도 마음속의 두려움을 이길 수가 없었다.그는 뒤로 물러나면서 절망에 빠진 얼굴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내가 살아있다는 걸 넌 알고 있었을 거야. 그래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내 형제들을 찾아온 거겠지. 맞지?”윤구주가 계속해 물었다.질문을 받은 한동석은 입을 뻐끔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윤구주의 말대로 문아름이 직접 발탁한 집법의 지휘관인 한동석은 구주왕이 살아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러나 윤구주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낼 줄은 꿈에도 몰랐다.문아름은 윤구주가 부성국에 있다고 했었다.3대 문벌 사람들도 윤구주의 말을 들었다. 여선희는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한동석 장군, 구주왕의 말씀이 사실인가요? 구주왕이 살아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한동석은 물러날 곳이 없자 어쩔 수 없이 대답했다.“네. 전 알고 있었어요.”“젠장, 한동석 장군. 당신 때문에 우
한동석은 말하면서 악랄하게 웃었다.“국방부, 세가, 종문, 문벌, 4대 서열, 그중 반 이상이 우리 문씨 일가의 손에 들어왔어요. 당신이 아무리 무적이라고 해도 변하는 건 없어요.”윤구주는 차갑게 웃었다.“그래?”“물론이죠. 믿기지 않는다면 서울 3대 문벌에 물어봐요!”한동석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들어 여씨, 황씨, 당씨 일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윤구주는 서울 3대 문벌에 묻지 않고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말이 맞아. 구주왕은 이미 과거가 되었어. 하지만 한 가지는 틀렸어.”말을 마친 뒤 윤구주는 시선을 들어 한동석을 바라보았다.팔이 부러진 한동석은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물렸다.“제가 뭘 잘못 말했나요?”“5년 전 난 무력으로 국방부, 세가, 종문, 문벌, 4대 서열을 정복했어. 5년 뒤인 지금도 난 여전히 그들을 죽여서 다시 한번 정복할 수 있어.”죽여서 정복한다는 말이 우레와도 같이 쩌렁쩌렁하게 한동석 및 3대 문벌 사람들의 귀에 들어갔다.윤구주는 호기롭게 말한 뒤 고개를 들어 한동석을 바라보았다.“이젠 죽어!”윤구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한동석을 향해 손을 휘둘렀다.팔 한쪽이 부러진 국방부 장군은 곧바로 위험한 기운이 몰려오는 걸 느끼고 본능적으로 벌떡 뛰어오르면서 도망치려고 했다.그러나 아쉽게도 천하무적의 구주왕 손에서 벗어날 수 있을 리가 없었다.지현이 한동석의 가슴팍 위로 떨어졌고, 펑 소리와 함께 반보 신급 강자였던 국방부 장군은 그렇게 몸이 터져서 허공에서 추락했다.결국 시체조차 남지 않았다.윤구주가 손 한 번 움직였다고 국방부 장군이 죽었다. 다들 순간 심장이 철렁했다.가장 두려운 건 당연하게도 3대 문벌의 강자들이었다.당시 모든 문벌이 윤구주에게 죽임당해서 항복한 걸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곤륜에서 왕이 된 윤구주는 서울 3대 문벌의 선조마저 무릎 꿇리고 용서를 빌게 했다.겨우 5년 전 일이었는데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는가?신화였던 그가 돌아오자 여선희는 가장 처음 윤구주의 발치에 무릎을 꿇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