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팠다.심장이 따끔따끔했다.저 멀리 윤구주는 소채은을 산기슭까지 바래다주고는 그녀가 차에 타는 모습까지 지켜보았다.떠나기 전 소채은은 윤구주를 껴안고 달콤한 말을 했다.그 광경에 화진 최고의 미녀로 불리는 문아름은 심장이 저렸다.그녀는 소채은이 떠날 때까지 독사 같은 눈빛으로 그녀의 뒷모습을 죽어라 노려보았다.윤구주는 소채은을 배웅한 뒤 몸을 돌려 산을 올랐다.두 걸음 내디뎠는데 갑자기 뭔가를 느낀 듯 걸음을 멈추고 예리한 눈빛으로 문아름이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문아름은 서둘러 축기술을 써서 기운을 전부 숨긴 뒤 숨을 죽였다.윤구주는 십여 초 동안 멈춰 서 있다가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걸 확인하고서야 순식간에 용인 빌리지로 이동했다.“후!”윤구주가 떠난 뒤 문아름과 그의 뒤에서 숨을 참고 있던 임진형은 그제야 길게 숨을 내쉬며 호흡을 가다듬었다.“저하! 보셨습니까? 그 사람입니다. 그가 정말 살아있어요! 저희 화진의 구주왕이... 살아있습니다!”임진형은 귀신을 본 사람처럼 말했다.“그 입 닥쳐요!”문아름은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고 겁을 먹은 임진형은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윤구주! 네가 살아있을 줄은 몰랐어. 우리 문씨 세가의 기린화독에 당하고 수많은 신급 강자에게 공격받았음에도 살아있다니... 게다가 다른 여자까지 만나? 하하하하하!”비참한 웃음소리가 그녀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그 웃음소리는 귀신이 우는 소리보다도 더 듣기 싫고 귀에 거슬렸다.옆에 있던 임진형은 미친 것 같은 문아름의 모습에 입도 뻥긋하지 못했다.“저 여자가 누군지 알아내요. 저 여자를 죽여버려야겠어요! 그것도 내 손으로 직접! 난 윤구주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가 신경 쓰는 사람들을 전부 죽여버릴 거예요!”문아름은 분노에 차서 말했다.그 순간, 경국지색의 얼굴은 분노와 질투, 증오로 인해 심하게 일그러졌다....용인 빌리지.윤구주는 왠지 모르게 요즘 따라 불안했다.게다가 오른쪽 눈꺼풀이 자꾸만 뛰었다.윤구주는 미신 따위는 믿지 않는 사람
“저하, 소채은 씨를 걱정하시는 겁니까?”민규현의 질문에 윤구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왜 불안을 느끼는 건지 알지 못했다.그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그런 것 같아. 민규현, 이틀간 채은이 집으로 가서 채은이를 지켜. 결혼하기 전까지 절대 아무 일도 없어야 해!”윤구주가 말했다.“네!”민규현이 대답했다.10개국 간의 전쟁이 있은 뒤로 윤구주가 가장 신경 쓰는 것은 바로 자신이 사랑하는 소채은이었다.그래서 소채은만은 꼭 무사해야 했다.게다가 두 사람은 이제 곧 결혼하게 되니, 지금 이런 단계에 소채은에게 무슨 일이 생기는 걸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강성의 한 화려한 스위트룸 안, 경국지색의 여자가 방 안에 앉아있었다.싸늘한 표정을 한 그녀는 단검으로 사진을 찢고 있었다.그것은 윤구주의 옛 사진이었다.사진은 이미 찢겨 너덜너덜해졌으나 여자는 멈추지 않았다.마음속 분노가 채 가시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그녀의 뒤에는 검을 안고 목석처럼 서 있는 독고명이 있었다.그러다 한참 뒤, 초인종 소리가 들려왔다.소리를 들은 독고명이 문을 열었고, 국방부 후방지원부대 임진형이 밖에서 안으로 빠르게 들어왔다.“저하, 조사해 냈습니다!”그는 안으로 달려 들어오면서 황급히 문아름에게 보고했다.음험하게 칼로 사진을 찢고 있던 문아름은 임진형의 보고를 듣더니 즉각 반응했다.“말해요. 그날 윤구주의 팔에 팔짱을 끼고 있던 여자는 대체 누구죠?”“저하, 제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그 여자는 소채은이라고 합니다.”임진형이 말했다.“소채은이요?”그 이름을 들은 순간, 분노와 증오 때문에 문아름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그렇습니다, 저하. 소채은은 강성 현지인이고 소씨 집안은 강성의 이류 가문입니다. 현재 소채은은 소씨 집안의 작은 가족기업 SK 제약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 기업은 1년 수입이 40억 정도입니다.”임진형은 자신이 조사한 바를 전달했다.“뭐라고요? 그런 별 볼 일 없는 사람이라고요?”문아름은 그 말을
“결혼이요? 윤구주가 일반여성과 결혼하려고 한다고요? 그럴 리가요. 그럴 리가 없어요!”바닥에 꿇어앉은 임진형이 말했다.“확실합니다. 제가 어찌 감히 저하를 속이겠습니까?”문아름은 윤구주과 소채은의 결혼 소식을 전해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끝없는 분노와 질투 때문에 그녀는 이성을 잃을 것만 같았다.그녀는 부들거리면서 주먹을 꽉 쥐었고 아름다운 두 눈동자도 벌게졌다.“그 여자를 죽여야겠어요! 임형진 씨, 당신은 당장 그 여자의 주소를 알아내요. 내가 직접 그 여자를 죽여야겠어요. 그 여자를 죽여서 윤구주가 후회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게 할 거예요!”문아름은 미친 사람처럼 악다구니를 썼다....밤이 찾아왔다.소씨 저택.소채은은 저녁을 먹은 뒤 홀로 방으로 돌아가서 요가를 하기 시작했다.트레이닝복을 입은 소채은은 아름다운 몸 선을 그대로 드러내며 운동했고, 소채은의 부모님은 청첩장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밤이 깊어졌다.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소채은이 방 안에서 요가를 하고 있을 때 지붕 위에 귀신 같은 세 사람이 나타났다.방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 요가하는 소채은은 이 상황을 전혀 몰랐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요가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저하! 바로 저 여자입니다!”지붕 위, 임진형의 목소리가 문아름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문아름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아래 있는 소채은을 뚫어져라 바라보았고, 소채은의 아름다운 얼굴과 완벽한 미모를 보았을 때 질투가 더 활활 불타올랐다.“저 여자가 바로 소채은인가요?”“그렇습니다, 저하!”“저하가 한 마디만 하신다면 저 여자를 죽여서 저하의 한을 풀어드리겠습니다.”임진형이 말했다.“한? 무엇 때문에 내가 저 여자에게 한을 품었다고 생각하는 거죠?”문아름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녀에게서 살기가 느껴졌다.임진형은 몸을 흠칫 떨면서 서둘러 말했다.“죄송합니다. 제가 말실수를 했습니다...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문아름의 입가에 음험한 미소가 걸렸다.“명심해요. 내가 저
민규현의 뒤에는 네 명의 암부 구성원이 있었다.민규현이 모습을 드러내자 임진형은 깜짝 놀라서 말했다.“저 사람은 암부의 호존 민규현 씨가 아닌가요? 그가 왜 여기 있는 걸까요?”문아름도 민규현이 차에서 내리자마자 독사 같은 눈빛으로 먼 곳에 있는 민규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알겠네요. 윤구주가 뭔가를 눈치챈 게 틀림없어요.”화진의 이황왕이라고 불리는 문아름은 똑똑했다.민규현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자 그녀는 곧바로 윤구주의 의도를 눈치챘다.“저하, 저하 말씀은 구주왕이 일부러 민규현 씨를 보냈다는 건가요?”임진형이 의아해하며 말했다.“당연하죠. 이 세상에 본능적으로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사람은 구주왕뿐일 거예요.”문아름이 중얼댔다.“저하, 그러면 어쩌죠? 소채은이라는 여자를 죽여야 할까요?”임진형이 물었다.문아름은 덤덤한 눈길로 먼 곳에 있는 민규현을 힐끗 보았다.“이틀은 더 살려두죠. 민규현이 나타났으니 곧 윤구주도 나타날 테니 말이에요.”“호존 혼자라면 제가 상대할 수 있습니다.”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던 칼을 안은 남자 독고명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그의 목소리는 마치 그의 성격처럼 무감정했다.그 말을 내뱉자마자 엄청난 전의가 그에게서 뿜어졌다.“됐어요. 일단 물러나기로 해요.”문아름은 독고명의 성격을 알고 있었다.그는 싸움을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강한 상대일수록 그는 더욱 흥분했다.바위 같던 독고명은 문아름이 떠나자 싸늘한 시선으로 먼 곳의 민규현을 힐끗 본 뒤 자리를 떴다.명령을 받고 소채은의 집으로 온 민규현은 엄청난 살기를 느끼고 저도 모르게 바짝 경계했다.그러나 잠시 뒤, 그 살기는 감쪽같이 사라졌다.이러한 상황에 민규현은 미간을 찡그리고 밤하늘을 바라보았다.“설마 내가 조금 전에 착각한 걸까?”중얼대던 민규현은 다시금 주위를 살폈고, 아무런 위험도 없다는 걸 인지하고 나서야 안도했다.그날 밤, 민규현은 네 명의 암부 구성원들과 함께 밤새 소채은의 집 문 앞을 지켰다.다음 날
소채은은 비록 민규현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지만 민규현의 인상이 좋다고 생각했다.민규현이 자신을 형수님이라고 부르자 소채은은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여긴 어쩐 일이세요?”“형님이 형수님을 지키라고 보내셨습니다.”민규현은 윤구주의 진짜 신분을 밝힐 수는 없어서 그를 형님이라고 불렀다.“구주가요?”소채은은 당황했다.“그렇습니다, 형수님.”소채은은 마음이 따뜻해졌다.“어머나, 구주도 참 걱정을 사서 하네요. 강성은 치안이 훌륭한데 왜 제 걱정을 그렇게 한대요?”“형님께서는 곧 형수님과 결혼하시지 않습니까? 조금이라도 더 안전하면 좋은 거죠.”민규현이 웃으며 말했다.“그래요. 계속 밖에 서 있지 말고 안으로 들어와서 물 좀 마셔요.”소채은이 예의 있게 말했다.“아닙니다, 형수님. 저희는 밖에 있으면 됩니다.”민규현이 말했다.민규현 일행이 절대 들어가지 않으려 하자 소채은도 별수 없었다.“알겠어요. 혹시라도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든 날 불러요.”“네, 네! 감사합니다, 형수님.”그러고 나서야 소채은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암부 호존이 직접 소채은을 보호했기에 윤구주도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다음 날, 소채은은 웨딩드레스를 고를 생각이라 엄마와 함께 외출할 생각이었다.집에서 나오자마자 민규현이 나타났다.“형수님, 외출하시려고요?”소채은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네! 샵에 가서 웨딩드레스 몇 벌 좀 골라보려고요!”“그러면 저희가 경호해 드리겠습니다.”민규현이 말했다.“그쪽도 가려고요?”천희수는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다.“엄마, 괜찮아요. 구주가 절 지키라고 보낸 사람들이니까 그냥 같이 가요.”“그래.”천희수는 비록 불만스러웠지만 결국 동의했다.소채은은 자기 차를 타고 직접 운전 해서 갔다.그리고 민규현과 네 명의 부하들은 다른 차를 타고 그들의 뒤를 바짝 따랐다.소채은은 엄마와 함께 곧 웨딩드레스샵에 도착했다.민규현과 네 명의 부하들은 나이 많은 남자였기에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소채은은 엄마와
갑자기 나타난 검을 안은 남자를 본 순간, 민규현은 위험을 감지했다.민규현은 계속해 걸어가다가 독고명과 5미터 정도 되는 거리에서 멈춰 선 뒤 시선을 들어 짙은 살기를 내뿜는 독고명을 바라보았다.“날 기다린 건가?”민규현이 입을 열었다.검을 안은 독고명은 천천히 무감정한 두 눈을 떴다.“그래. 민도살이라는 별명을 가진 암부 3대 지휘사 호존 민규현. 오늘 내 검으로 당신과 한번 겨뤄보고 싶군!”독고명은 말을 마친 뒤 천천히 손에 든 검을 뽑았다.검은 아주 길었고, 검을 뽑는 순간 서늘한 한기가 사방을 뒤덮었다.민규현은 그의 검을 바라보면서 냉소했다.“겨뤄보고 싶다고? 좋아. 내가 상대해 주지!”힘찬 외침과 함께 민규현은 빠르게 독고명을 향해 달려들었다.독고명이 검을 휘두르자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검기가 날아들었다.많은 사람을 베었던 검날과 민규현의 주먹이 부딪히는 순간, 엄청난 굉음이 울려 퍼졌다.민규현과 독고명이 싸우고 있을 때 민규현의 네 부하들은 샵 문 앞에서 소채은을 지키고 있었다.이때 거센 바람이 불어왔다.민규현의 부하들도 그렇게 만만한 사람들은 아니었기에 거센 바람이 느껴지자 그중 한 명이 바로 외쳤다.“조심!”그는 빠르게 몸을 피했고 쿵 소리와 함께 엄지손가락만 한 돌멩이가 날아왔다.본인들을 습격한 것이 돌멩이인 걸 확인한 민규현의 부하들은 안색이 달라졌다.“저기야! 쫓아가!”네 사람은 동시에 쫓아갔다.그런데 골목길 쪽에 도착하자마자 미모의 여성이 그들을 공격했다.민규현의 부하들은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도 전에 눈앞이 까매지면서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곧이어 경국지색의 여성이 걸어 나왔다.그녀는 화진의 새로운 왕, 매우 아름답고 화려하게 빛나는 여자 문아름이었다.문아름은 아름다운 눈을 들어 눈앞의 웨딩드레스샵을 보더니 안으로 들어갔다.웨딩드레스샵 안의 직원은 대단한 미인이 안으로 들어오자, 저도 모르게 부러워하며 말했다.“저기 저 미인 좀 봐요! 엄청 아름답고 분위기 있어요!”천
문아름은 소채은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눈빛 속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차가운 단검이 그녀의 소매에서 나왔다.그 단검의 이름은 혈자로 그녀가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었다.그 검으로 사람을 찌르면 1분도 채 되지 않아 사람의 몸에 있는 모든 혈액을 빼낸다.“죽여! 죽여!”문아름은 소채은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문아름이 손을 쓰려던 그때, 웨딩드레스샵 문이 열리며 헝클어진 머리카락에 지저분한 차림의 어린아이가 안으로 들어왔다.“저, 혹시 저한테 먹을 것 좀 주실 수 있나요?”어린아이는 7, 8살쯤 돼 보였는데 손에는 낡은 그릇을 들고 있었다. 아이는 맨발로 들어온 뒤 웨딩드레스샵 직원들에게 구걸하기 시작했다.아이가 들고 있는 이 빠진 그릇 안에는 꼬깃꼬깃한 잔돈이 들어 있었다.어린아이가 안으로 들어오자 웨딩드레스샵 직원들은 곧바로 싫은 내색을 했다.“나가, 나가! 왜 자꾸 우리 샵에 와서 구걸하는 거야? 얼른 나가! 우리 영업하는 데 방해하지 말고!”한 뚱뚱한 직원이 매섭게 말했다.맨발의 어린아이는 그 기세에 겁을 먹고 몸을 뒤로 물렸지만 그럼에도 계속해 말했다.“제발 부탁드려요. 아주 조금만 주셔도 좋아요!”“주긴 뭘 줘? 당장 나가. 지금 나가지 않면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뚱뚱한 직원이 손을 올리자 겁을 먹은 아이는 얼른 밖으로 뛰쳐나갔다.“잠깐만요!”이때 웨딩드레스를 입은 소채은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소채은이 입을 열자 문아름을 포함한 모든 이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소채은은 아이의 곁으로 걸어가더니 안타까운 얼굴로 아이를 바라보며 허리를 숙이고 말했다.“꼬마야, 너 어려 보이는데 학교 안 다녀? 왜 여기서 구걸하는 거야?”맨발의 아이는 소채은의 질문을 듣더니 지저분한 얼굴을 들면서 말했다.“부모님 다 돌아가셔서 이젠 저 혼자예요. 그래서...”“휴, 알겠어. 그러면 누나한테 네가 원하는 게 뭔지 말해 봐.”소채은이 말했다.“먹을 걸 사 먹을 수 있게 돈을 주셨으면 좋겠어요!”아이가 말
빵빵!이때 차 한 대가 먼 곳에서 달려왔다.돈을 훔치고 도망친 아이는 달리기가 무척 빨라서 달려오는 차를 미처 보지 못했다. 차를 보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겁을 먹은 아이는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아이가 차에 치일 것 같은 순간, 한 사람이 빠르게 달려와서 목숨 걸고 아이를 안았다.“조심해!”그 사람은 당연하게도 소채은이었다.“채은아!”“손님!”웨딩드레스샵의 직원과 천희수는 소채은이 목숨 걸고 아이를 지키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끼익!타이어와 지면이 심하게 마찰하며 내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모든 이들이 소채은과 아이가 차에 치일 거로 생각했을 때, 그 차는 소채은을 가까스로 비껴가며 어렵게 멈춰 섰다.운전자는 곧바로 차에서 내리며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채은아, 괜찮니?”천희수는 차가 멈춰선 걸 보고 겁을 먹어서 울먹거리며 달려가 소채은을 살펴봤다.웨딩드레스샵 직원도 황급히 달려가 소채은을 걱정했다.아이를 품에 꼭 안은 소채은은 아이가 원망스럽지도 않은지 오히려 겁을 먹고 울음을 터뜨린 아이를 위로했다.“괜찮아, 이제 괜찮아.”“손님, 너무 착하신 거 아니에요? 왜 이런 아이를 목숨 바쳐 구하신 거예요? 게다가 이 아이는 손님 돈까지 빼앗았잖아요!”웨딩드레스샵 직원은 전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말했다.“그래, 채은아. 왜 이렇게 바보 같니?”천희수마저 참지 못하고 소채은을 나무랐다.소채은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저 괜찮잖아요? 그리고 얘는 아직 아이일 뿐이잖아요.”말을 마친 뒤 소채은은 덜덜 떨고 있는 아이의 손을 잡고 말했다.“꼬마야,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이제 괜찮아!”아이는 순박한 눈빛으로 소채은을 바라보았다.“누나, 왜 절 구해준 거예요?”소채은은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널 구하는 데 무슨 이유가 필요해?”“하지만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저한테 이렇게 잘해준 사람은 없는걸요!”아이는 입을 쭉 내밀었다.소채은은 그 말을 듣더니 꼬질꼬질한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졌다.“걱정하지 마. 앞으
“저하,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그를 죽여야 합니까? 저자의 기운이 이토록 흉악한데 성수의 혈기로 진압할 순 없습니까?” 백호는 이미 싸우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안 된다. 너희 네 명이 함께라면 잠시나마 억누를 수는 있겠지만, 너희는 그저 성수의 정혈을 가졌을 뿐이니 마인을 완전히 없애려면 성수가 직접 나타나야 한다. 지금 이 세상에 성수가 존재하는지조차 의문스럽다.”윤구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말을 마친 윤구주는 곧장 진요탑 쪽으로 향했다.백호와 임정설, 청해가 함께 가서 돕고자 했으나 장인 대진인이 그들을 가로막았다.“이 마인은 오직 구주만이 상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중요한 임무가 있습니다. 국주님, 곧 전투가 시작될 터인데 서요산의 진법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이 호법의 중임을 몇 분께 맡기겠습니다.”장인 대진인이 임정설에게 경건하게 예를 갖추며 말했다.“좋다. 오늘 이 자리에서 목숨을 바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저 마인을 죽이고야 말겠다.” 임정설은 단호한 표정을 지으며 황자의 위엄을 한껏 드높였다.화진의 존망이 걸린 일이라면 임정설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하지만 마기가 몰려와 서요산 전체를 뒤덮고 세상이 오직 흑백 두 가지 색깔만으로 변해버리며 그 끔찍한 살기가 강림했을 때 임정설마저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이 마인의 기운이 이렇게까지 무서울 줄이야.” 임정설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마기로 가득 찼고 윤구주마저 그 기세에 눌리고 있었다.진요탑에서 흘러나온 마기는 실체가 되어 넘쳐흘렀다. 마기가 나타나자 서요산을 지키는 모든 검종 제자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어떤 제자는 순간적으로 십여 년을 늙어버렸다.수련이 부족하면 수명으로라도 채워야 하는 참혹한 상황이었다.웅웅.하늘에는 먹구름이 밀집했고 그 안에서 요괴의 번개가 끊임없이 터졌다.“이젠 영기조차 요기로 변하고 있다. 풍수 비술로 보건대 머지않아 이곳에서 요마가 출현하겠구나.” 임정설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요산 외부에서 짙은 요기
도가는 인연이라는 두 글자를 대단히 중히 여긴다.그의 한 번의 인연, 한 번의 생각은 곧 만백성의 생사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윤구주가 정상에 오르자 앞서 온 다른 이들과는 달리 서요산 검종의 모든 이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여 깊은 존경을 표했다. 그들이 경배한 대상은 단순한 한 인간이 아니라 구주의 저하, 화진의 인황, 오방 천지의 주재자였다.“모두 일어나십시오. 제가 오늘 서요산에 온 이유는 오직 진요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입니다. 진요탑 안의 마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문 씨 세가의 역심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마인을 죽여야만 문 씨 세가의 야심도 함께 근절할 수 있습니다.”윤구주는 서요산 검종의 모든 제자를 향해 엄숙하게 말했다.이번 서요산 행차의 목적은 바로 문 씨 세가의 역심을 뿌리째 뽑는 것이었다.검종 제자들이 앞장서 일행을 이끌었고 모두가 금정을 지나 뒷산으로 향했다.뒷산에 막 들어서자마자 음산한 기운이 얼굴을 스쳤다.후산 중앙에는 높이 오백 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산이 서 있었는데 그 산은 무려 구백구십구 개의 쇠사슬로 단단히 봉인되어 있었다.이 쇠사슬은 그저 평범한 사슬이 아니었다. 절반은 땅속의 지맥과 연결되어 있었고 나머지 절반은 하늘 높이 떠올라 천지의 영기를 끌어모으고 있었다.이런 수준의 봉인이라면 설령 윤구주 자신이 여기에 갇혀 있다고 해도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처럼 견고한 고진마저 지금은 마인의 사기로 조금씩 부식되어 가고 있었다. 본래는 영기가 흘러넘치는 명산이었으나 지금은 온 서요산이 마인의 기운에 물들어 음침하고 괴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이 강렬한 악기운을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렸다.솟구치는 사기를 바라보며 서요산 검종의 검객들은 하나같이 얼굴을 찌푸렸다.최근 몇 대에 걸쳐 입종한 서요산의 제자들은 이런 마인의 사기와 요마의 위협 속에서 수련해야 했다.천지의 영기조차 마인의 기운에 오염되어 수련에 큰 지장을 주었지만 그럼에도 끝까지 남은 현
이 말을 듣자 모든 이들은 천 년 전 마지막으로 나타난 그 성인이 바로 서요산 검종에서 나왔음을 깨달았다.“짐은 서요산 검종의 선대 종주께서 우화등선하셨다고만 들었는데 그저 떠도는 신화 속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더니 은 성인의 경지에 이르신 것이었군.” 임정설이 깊은 감탄과 함께 말했다.구백 계단 윤구주는 이미 전설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전설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구백삼십 계단 사십 계단을 오르면서 윤구주의 발걸음은 오히려 더욱 가벼워졌고 그가 세우는 기록은 사람들의 상식을 계속해서 뒤흔들었다.구백팔십 계단을 지나 정상까지 겨우 십여 계단만 남은 그 순간 윤구주의 발걸음이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구백구십구 계단에 이르러 결국 완전히 멈추었다.드디어 한계에 도달한 것인가?모두가 숨을 죽이고 윤구주를 지켜봤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분명 지금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힘든 시험일 터였다.윤구주는 미간을 찌푸린 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십여 분을 견뎌냈다. 사람들은 그가 언제 다시 계단을 오를지 초조하게 기다렸다.마침내 윤구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됐습니다. 이 마지막 한 걸음은 넘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시험을 포기하지요.”말을 마치고 계단에서 내려서는 순간 청석 계단 아래에서 강력한 영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고 곧바로 서요산을 감싸던 어둠의 기운을 깨끗이 몰아냈다.오랫동안 음울했던 서요산 상공은 순식간에 환해졌고 수백 킬로미터에 걸쳐 맑은 하늘이 펼쳐졌다.서요산의 모든 이들은 충격에 빠져 넋을 잃었다.그제야 그들은 윤구주가 왜 그토록 여유롭게 올라올 수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는 처음부터 서요산의 청석 계단이 가진 진법의 힘을 계속해서 억누르고 있었다.“참으로 대단하신 신위군요! 우리 서요산의 청석 진법마저 제압하셨다니! 마지막 한 걸음을 분명 넘으실 수 있었을 텐데 혹시 강제로 넘었다가 진법이 견디지 못해 영기가 새 나가고 진법이 무너져 진요탑까지 영향을 미칠지 걱정하신 건 아닌가요?” 장인 대진인이
도법의 깊이는 워낙 심오해서 임정설조차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다.“쉽게 말씀드리자면 구주는 천지의 운기를 완전히 장악한 데다가 하늘이 직접 영광을 내리신 거죠.” 장인 대진인이 말했다.임정설은 이 말을 듣고 비로소 이해한 듯 말했다.“대진인의 말은 윤구주가 바로 하늘이 점지한 사람이라는 뜻인가?”“맞습니다. 우리 화진 사람들은 운명의 갈림길에 서면 본심에 따라 도법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깁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사는 다하고 하늘의 뜻을 따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윤구주는 분명 큰 복을 타고났지만 그 엄청난 복을 감당할 힘도 필요합니다.”대진인이 설명했다.말이 끝날 무렵 윤구주는 이미 육백삼십 계단을 거뜬히 올라와 있었다.한 걸음도 멈추지 않고 더욱 확고한 걸음으로 계속 전진했다.그의 발걸음마다 천지의 기운이 응축되었다.어느 순간 서요산의 계단조차 윤구주의 기세를 가두지 못했다. 그는 마치 천지를 밟으며 오르는 듯했다.곧이어 그는 칠백 계단마저 돌파했다.칠백 계단이란 천 년 전 서요산의 전성기에도 극소수만이 도달할 수 있었던 경지였다. 지금 만약 윤구주가 구주왕이 아니라 일반 수련자였다면 이 기록만으로 서요산 전체가 들썩였을 것이다. 만일 윤구주가 서요산에 입문을 원했다면 서요산은 모든 자원을 쏟아부어 그를 키웠을 것이며 서요산 검종의 다음 종주 자리는 당연히 그에게 돌아갔을 것이다.그러나 이미 칠백 계단에 이르렀음에도 윤구주의 발걸음은 멈추지 않았다.칠백오십 계단 팔백 계단 팔백오십 계단!그는 끊임없이 정상의 기록을 깨며 전설을 써 내려갔다.서요산 검종의 제자들은 윤구주 앞에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을 것 같았다. 이쯤 되자 장인 대진인조차 감히 그를 함부로 평가할 수 없었다.왜냐하면 자신도 과거에 겨우 칠백 계단에 그쳤으니 팔백 계단을 오른 사람을 감히 평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윤구주는 멈추지 않고 계속 올라갔다. 마치 천지를 흔들어 이 강산을 뒤엎어버리겠다는 기세였다.그리고 마침내 구백 계단에 이르렀다.“구백
하지만 한 계단씩 갈수록 더욱 어려워지는 난관들도 이 평범한 사람에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만약 윤구주와 맞서야 하는 적의 입장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차분히 계단을 오르는 윤구주는 마치 깊은 심연 그 자체였을 것이다.그의 강력함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고 오히려 그가 올라올수록 위에 있는 사람들은 엄청난 압박감에 휩싸였다.검종의 검객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윤구주는 이미 사백 계단까지 올라와 있었다.하지만 사백 계단쯤으로는 아무도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화진의 또 다른 황자 구주왕의 후계자였으니까.윤구주가 오백 계단을 밟는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을 죽이고 그를 응시했다.눈길을 떼지 못한 채 그의 오름을 지켜보았다.오백일…… 오백이십! 오백오십! 오백구십구!“마침내 구구관에 도달했다.”“칠구는 수겁이요 구구는 극히 넘기기 어려운데.”진정한 고수들은 눈을 크게 뜨며 말했다.과연 윤구주가 이 한 걸음을 쉽게 넘을 수 있을지 모두가 궁금해했다.윤구주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그가 본 것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마치 화진의 온 세상 같았다.한눈에 화진의 대지와 산천이 모두 담겼다.눈앞에 펼쳐진 화진의 아름다운 대지는 숨 막히는 광경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이 끝없는 강산 곳곳에 묻혀 있는 수많은 해골도 함께 보였고 그의 마음은 순식간에 비장함과 슬픔으로 가득 찼다.윤구주의 내면을 감지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이 곧바로 그의 곁에 나타났다.“구주야 화진의 산천을 잘 살펴봐! 천하의 용맥은 모두 화진에서 비롯되었고 이 한 획 한 획은 백성의 척추와 같다! 눈에 비치는 물의 맑고 흐림은 중요하지 않아. 지나치게 눈 부신 빛은 우리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고 너무 어두운 밤은 희망을 앗아가기 마련이지. 하지만 어떤 변화가 있더라도 화진의 이 산천은 영원히 굳건히 서 있을 거야. 왜냐하면 푸른 산마다 묻혀 있는 충신의 뼈와 넋들이 이 나라를 지켜주고 있으니까.”서요산 검종 종주는 윤구주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그 온
진인들은 말했다. 임정설이 만약 집념을 내려놓는다면 육백 계단까지도 오를 수 있을 거라고.장인 대진인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집념을 놓는다면 더 이상 화진의 국주가 아니지. 바로 이런 끈질긴 의지가 있기에 그분이 화진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다른 진인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운명이란 그런 법이다. 아마도 집념을 놓았다면 임정설은 오백 계단조차 오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이때 임정설은 아직 남아 있는 절반의 계단을 바라보며 씁쓸히 미소 지었다. “어쩌면 여기서 멈춰야겠구나.”임정설은 다시 뒤를 돌아 윤구주를 바라보았다. 그가 자기 자식이자 동료처럼 여기는 윤구주가 과연 몇 계단을 오를지 궁금했다.깊은 생각에 잠긴 임정설이 곧바로 말을 꺼냈다.“구주야 이제 네가 올라서 봐! 화진의 구주왕다운 실력을 보여줘! 적어도 나보다는 못하면 안 되지 않겠냐?”아래에 서 있던 윤구주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원래 그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국주의 바람이라면 흔쾌히 도전할 마음이었다.“명 받들겠습니다!” 윤구주는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계단을 밟아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가기 시작했다.구주왕이 등천로에 도전했다는 소식에 서요산 검종 전체가 술렁였다.검객은 물론이고 잡일을 돕는 제자들까지 모두 금정에 모여들어 그의 모습을 보고자 했다.심지어 하늘 위 어둑한 구름 사이에서도 한 쌍의 법안이 열렸다. 바로 서요산 검종 종주의 법신 환영이었다.임정설이 먼저 정상에 올랐고 장인 대진인을 포함한 일곱 진인과 서요산의 모든 제자들은 화진의 황자를 향해 몸을 숙여 예를 갖추었다.“모두 일어나시오. 그대들이 없었다면 화진은 이미 혼란 속에 빠졌을 것이오. 진정 국가와 화진을 위해 헌신한 것은 바로 그대들입니다.” 임정설은 화진의 모든 백성을 대표할 순 없지만 왕실을 대표하여 임 씨 일족의 지도자로서 서요산 검종의 노고에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표했다.“국주께서 과찬입니다. 우리는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묵묵히 힘썼을 뿐입니다. 화진의 백
일곱 진인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들은 국주가 이미 등황의 경지에 이르렀으니 사백 계단은 쉽게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과연 그들의 예상대로 임정설은 멈추지 않고 계속 오르며 오백 계단을 가볍게 밟아 올랐다. “오백 계단을 밟으면 등황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다. 우리 일곱 진인 중에서도 오직 장인 대진인께서만 과거에 오백 계단에 오르셨고, 현재 서요산에 살아계신 유일한 오백 계단 수련자이십니다. ” 한 진인이 감탄하며 말했다.이 말을 듣자 옆에 있던 백호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선임 도사님 그러면 그 도사님도 황자란 말씀입니까? ”“하하! 우리 서요산에서는 외부의 그런 칭호를 쓰지 않아요. 우리 사이에서는 그를 반신이라고 부릅니다.” 진인들이 웃으며 말했다.청해가 옆에서 덧붙였다. “서요산 검종에서 말하는 반선이 황자를 뜻하는 거야. 근데 그 서요산 반선 진짜 어마어마하게 강한 인물이거든. 예전에 곤륜 구역에서 귀한 영약 찾으러 들어왔다가 우리 빙신전 전주랑 빙황 두 명이 같이 상대했는데도 둘 다 거의 죽을 뻔했어. 결국 아사 신전한테까지 도움 요청해서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지.”“뭐라고?”백호는 놀라서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 그렇게 강한지 의문이 들었다.일곱 진인 중 가장 나이 많은 그 진인은 백호의 단순한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사실 그가 바로 그 반선이었다. 다만 백호가 워낙 세상 물정에 둔감하여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저 놀라기만 하고 있었다.그사이 임정설은 이미 오백오십 계단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 단계에 이르자 임정설도 거의 극한에 도달했다.“역시 직접 올라와 봐야 이 압력을 제대로 실감하는구나! 오백사십 계단까진 무리 없었는데 오백오십 계단에서 도저히 버틸 수가 없구나.”지금 임정설을 압박하는 것은 단순한 술도의 압력만이 아니었다.과거의 온갖 기억들이 마장이 되어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일곱 진인은 모두 임정설의 기운이 혼란스러워진 것을 느꼈다.“장인 사형, 국주님께서 심마에 걸리셨군
청해의 눈길이 자주색 도포를 입은 진인에게로 향했다.서요산검종에서 종주를 제외한 나머지 일곱 명의 진인이 가장 높은 수련을 가지고 있으며 평소 종문 내의 모든 일은 이들 일곱 명이 책임지고 있다.기세는 마치 대강의 파도가 넘실대듯 깊고 끝이 보이지 않는 산과 숲처럼 무한히 이어져 있었다. 그의 수련은 깊이가 가늠할 수 없을 정도였다.“서요산 7대 진인의 수련이 극 신급 절정이라고 들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들리네요. 귀하의 수련은 적어도 극 신급 절정 후반에 다다랐군요.”청해는 세 명의 진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몸을 굽혔다.“서요산의 전통은 천 년을 자랑하며 그 깊이는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반면 곤륜 구역은 스스로 신을 자처한 이후로 계속해서 내분을 일으켰습니다. 수련을 통해 세상을 떠난 후 도를 깨닫는다는 말처럼 곤륜 구역은 천하의 영기와 천물을 흡수했지만 제 생각에는 도를 얻지 못한 곳입니다. 지금 당신이 화진에게 올바른 수를 두는 것은 맞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극 신급 절정 후반도 절대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한 진인이 답례하며 말했다.그때 몇몇 사람들은 서요산 검객들의 함성에 이끌려 사방을 살폈다. 백호가 사백 계단을 올라갔다는 소식이었다.“대단한데요. 서요산이 전성기였을 때도 사백 계단을 오른 이는 드물었어요. 우리 몇몇 진인들도 입문 시에 사백 계단을 넘은 적은 없었죠.”몇몇 진인들이 칭찬했다.이는 백호가 미래에 매우 큰 가능성을 지녔음을 의미했고 적어도 극 진경 후반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극 진경 후반은 곤륜 구역에서 신전의 전주가 될 수 있는 실력이다.지금 사백 계단에 오른 백호는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완전히 의지로 버티며 강력한 정신력으로 계속해서 오르고 있었다.그러나 아무리 강한 운명을 지녔다 해도 천지의 이치를 막을 수는 없다.사백오십 계단에 도달했을 때 백호는 결국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의식을 잃은 것은 시험이 끝났다는 신호였고 백호는 곧 깨어났다.“겨우 사백오십 계단이라니
서요산 검객들이 모두 그 무인의 정체를 궁금해하자 진인도 더 이상 뜸 들이지 않고 말했다.“저분은 구주왕 휘하의 화진 군신이자 국방부 대장 백호 장군이시다.”검객들은 모두 입이 벌어진 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군신의 명성은 당연히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보호하는 영웅이었으니까.“정말 구주왕 휘하의 군신이라니!”“역시 저런 굳센 의지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어! 수많은 전장을 누빈 명장다운 모습이다!” 서요산 검객들은 백호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현재 백호는 이미 삼백이십 계단을 돌파한 상태였다. 백호가 혼자 주목을 독차지하는 걸 본 청해도 더 이상 가만히 있지 않고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처음 백 계단은 청해도 육신의 힘으로 버텼다. 하지만 백 계단을 넘자 육체만으로는 견디기 어려워졌다. 그는 술법으로 대응하려 했지만 평소 쓰던 빙신전의 신술이 계단 위 술법에는 통하지 않았다.“역시 화진의 서요산 검종은 보통이 아니구나. 이 등천로에선 일반 술법이 먹히지 않으니 천지 영기에 대한 깨달음으로 맞설 수밖에 없겠어.” 청해는 몸을 감싸고 있던 현빙을 거두고 오로지 자신의 속성 영기로만 버티며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막상 올라 보니 이 등천로가 얼마나 어려운지 제대로 실감했다. 이백 계단쯤 오르자 벌써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계단마다 한계를 시험하는 느낌이었다. 올려다보니 백호는 여전히 계단 위로 나아가고 있었다. 청해도 질 수 없다는 마음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다.서요산 검객들도 청해의 수준을 알아보고 속삭였다. “저 이역인은 정말 대단한 내력의 소유자다! 기운이 이미 진인 급에 가까워! 극 신급 절정의 수련자임이 분명해!”이에 대해 진인은 신비롭게 꾸미지 않고 솔직히 말했다. “저자는 곤륜 구역 빙신전의 부 전주 청해다. 경지가 매우 높지. 지금 빙신전은 우리 화진에 귀속되었고 청해 역시 구주왕 휘하의 부하가 되었다. 얼마 전 서울 방어전에서 청현과 목숨까지 걸고 사투를 벌인 끝에 죽을 고비를 넘겼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