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나의 이름으로.

다시, 나의 이름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3-09
By:  빵울이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goodnovel4goodnovel
Not enough ratings
12Chapters
50views
Read
Add to library

Share:  

Report
Overview
Catalog
SCAN CODE TO READ ON APP

6년 동안 한 남자만 바라보며 살아온 여자, 유진. 사랑을 이유로 학업도, 미래도 내려놓고 자신의 모든 일상을 그의 취향과 생활에 맞춰왔다. 하지만 그는 그녀의 헌신에 익숙해졌을 뿐, 사랑을 지킬 생각은 없었다. 이별 후에도 그는 확신했다. "어차피 돌아올 거야.”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유진은 떠났고, 그가 그토록 당연하게 여겼던 모든 것, 모든 ‘맛’이 사라졌다. 한편, 천재라 불리던 그녀의 과거, 버렸다고 믿었던 꿈과 스승의 기대가 다시 그녀를 불러 세운다. 사랑에 인생을 내주었던 여자. 이제는 사랑보다 먼저 자기 자신을 선택하려 한다. 그가 잃은 것은 여자 하나가 아니라, 그녀가 만들어주던 세상이었음을 그는 아직 모른다.

View More

Chapter 1

1화. 식어버린 모두가 아는 사랑

주변의 모든 친구들은 알고 있었다.

유진은 은호를 미친 듯이 사랑했다는 걸.

자기 삶도, 자기 공간도 없이 하루 24시간 내내 그의 곁을 맴돌고 싶어 했다.

헤어지자고 해도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늘 먼저 고개를 숙이고 돌아와 재결합을 청했다.

이 세상 누구라도 ‘이별’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었지만, 유진만은 절대 그러지 못했다.

은호가 새 여자친구를 끌어안고 룸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 공간은 기묘할 정도로 5초간 정적에 잠겼다.

유진은 귤을 까던 손을 멈췄다.

“다들 갑자기 말이 없어? 왜 나만 보고 있어?”

“유진…”

친구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은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여자를 끌어안은 채 소파로 가 앉았다.

“생일 축하해, 도현.”

너무도 노골적이고, 태연했다.

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도현의 생일이었기에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문을 닫는 순간, 안에서는 이미 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

“형, 유진 누나 있는 거 알았잖아요. 미리 말했는데 왜 사람을 데려온 거예요?”

“맞아, 은호. 이번엔 네가 너무했어.”

“상관없어.”

은호는 여자의 가느다란 허리에서 손을 떼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매캐한 흰 연기 사이로 마치 세상을 놀이처럼 사는 한량 같은 웃음을 머금은 눈매가 보였다.

그 뒤의 말들은 문이 닫히며 들리지 않았다.

유진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쳤다.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문득 입꼬리를 올렸다.

“진짜 못났네.”

사는 꼴이, 너무 못났다.

유진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속으로 결심했다.

하지만 다시 룸으로 돌아와 문을 여는 순간, 그 장면은 문손잡이를 움켜쥐고 무너질 뻔할 만큼 잔인했다.

은호는 여자의 부드러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밀착시키고 있었고, 두 사람 사이에 끼운 휴지는 침에 흠뻑 젖어 있었다.

주변에서는 웃음과 야유가 터져 나왔다.

“와, 역시 은호는 노는 법을 안다니까!”

“붙었다! 진짜 붙었어!”

“이 정도 분위기면, 한 번 제대로 보여주지 그래?”

유진의 손이 문손잡이 위에서 떨렸다.

이게 바로 그녀가 6년을 사랑한 남자였다.

지금 이 순간, 느껴지는 건 오직 씁쓸한 아이러니뿐이었다.

“야, 그만해…”

누군가 작게 말하며 문 쪽을 가리켰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아, 유… 유진… 돌아왔어? 그냥 장난이야, 오해하지 마…”

그때 은호가 말을 끊고 담담히 그녀를 바라봤다.

“유진, 오늘 마침 있으니까 우리 얘기 좀 확실히 하자.”

“응, 말해.”

“이렇게 만나고 헤어지는 것도 솔직히 재미없고, 우리 사이도 이미 진작에 식었잖아.”

유진은 손을 꽉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었지만, 아무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 6년의 감정이 결국 ‘식었다’는 한마디로 끝났다.

“수아는 좋은 애야. 난 수아에게 제대로 된 자리를 주고 싶어.”

유진은 무감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우리 헤어져도 친구로 지낼 수 있잖아. 앞으로 서울에서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괜찮아.”

유진은 아주 옅게 웃었다.

“헤어질 거면 깔끔하게 끝내는 게 좋아. 그쪽 여자분한테도 공평하고.”

은호는 눈썹을 치켜올렸다.

의외라는 표정이었다.

“도현.”

유진은 오늘의 주인공을 바라봤다.

“생일 축하해. 다들 재밌게 놀아. 난 먼저 갈게. 테이블 위에 있는 귤은 내가 깐 거야. 다들 먹어, 버리지 말고.”

은호는 과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귤만 빼고.

그마저도 하얀 실 같은 귤락을 하나하나 다 떼어내야 먹었다.

그동안 유진은 비타민 보충이라도 하라고 늘 귤을 까서, 속껍질까지 깨끗이 벗겨 접시에 예쁘게 담아 그의 앞에 놓아주곤 했다.

기분이 좋을 때면 그는 그녀를 끌어안고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내 여자친구 진짜 최고다. 왜 이렇게 살뜰해?”

“나랑 결혼하고 싶어 그러는 거야?”

그는 그녀가 뭘 원하는지 항상 알고 있었다.

다만, 한 번도 주겠다고 말한 적이 없었을 뿐이었다.

“차 불러줄게.”

“됐어, 택시 불렀어.”

“유진 누나, 내가 입구까지 데려다줄게.”

“괜찮아.”

유진은 손을 들어 사양하고 그대로 돌아섰다.

그녀가 나간 뒤, 방 안은 다시 시끄러워졌다.

“은호 형, 이건 좀 심한 거 아니야? 이번엔 진짜 화난 것 같은데…”

“됐어, 그 정도는 아니야.”

“맞아. 둘이 싸운 게 한두 번이야? 어차피 며칠 지나면 또 아무 일 없던 것처럼 돌아올 걸?”

“난 이번에 5일!”

“난 6일!”

은호는 완전히 닫히지 않은 문을 힐끗 보며 차갑게 웃었다.

“난 3시간. 3시간 안에 다시 나한테 올 거야.”

“하긴, 은호 형은 무조건 이기지. 온 세상이 다 알잖아, 유진 누나가 형을 얼마나 미친 듯이 사랑하는지.”

“근데 왜 나한테는 그런 여자가 없을까?”

“너? 야! 꿈 깨!”

“하하하…”

……

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새벽이었다.

유진은 30분 만에 짐을 쌌다.

3년을 살았던 집이었지만, 들고 나갈 건 작은 캐리어 하나면 충분했다.

드레스 룸에 가득한, 한 번도 입지 않은 명품 옷들과 착용한 적 없는 보석들엔 손도 대지 않았다.

유일하게 아쉬운 건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전공 서적들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용은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 있었다. 형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화장대를 훑어보던 그녀는 서랍을 열었다.

그 안에는 수표 한 장이 있었다. 무려 100억 원.

그 아래에는 또 다른 서류가 깔려 있었다.

〈동교 72호 3-5 구역 토지 양도 계약서〉

외곽이긴 했지만, 보수적으로 잡아도 40억은 넘는 땅이었다.

두 문서 모두 은호의 서명이 있었다.

이전에 크게 다투며 헤어질 뻔했을 때 그가 던져두고 간 채로 계속 서랍에 있던 것들이었다.

그는 유진이 절대 받지 못할 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이걸 받는 순간, 관계는 완전히 끝이 나니까.

‘6년을 140억으로 바꾼 셈인가?’

유진은 문득,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여자의 청춘값으로 이 정도 받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그녀는 두 가지를 모두 가방에 넣었다.

사람은 이미 줬는데, 왜 돈을 마다해야 하지?

사랑이 사라졌다면, 적어도 돈은 남아야 했다.

그녀는 재벌 로맨스 속 돈을 종이 쪼가리로 여기는 순진한 여주인공이 아니었다.

“여보세요, 청소 업체죠? 급한 건도 되나요?”

“…네, 대청소요. 추가 요금 낼게요.”

유진은 현관에 열쇠를 두고 택시에 올라, 곧장 절친의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청소 아주머니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아가씨, 이 물건들 전부 버려도 되나요?”

“네. 알아서 처리하세요.”

전화를 끊었다.

은호가 집에 돌아왔을 때는 이미 한밤중이었다.

청소는 끝나 있었고, 집엔 아무도 없었다.

몸에 밴 진한 향수 냄새에 머리가 지끈거렸다. 넥타이를 풀고 소파에 앉았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주방에서 익숙한 그릇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담요를 걷고 일어나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물컵을 찾았다.

하지만 손에 잡힌 건 공기뿐이었다. 손이 테이블 위 허공에서 멈췄다.

사람은 돌아와 있으면서, 담요까지 덮어주고도 숙취 해소 음료 하나 안 챙겨?

이런 ‘반쪽짜리 반항’을 이제 와서 또 하는 건가.

‘웃기네…’

은호는 코웃음을 치며 몸을 일으켰다.

“너 오늘은 정말…”

“도련님, 일어나셨어요?”

“아주머니…?”

“세수부터 하시고요, 2분 정도만 기다리면 아침 됩니다.”

“아, 자는 동안 혹시 추우실까 봐 난방 켜두고, 불안해서 담요도 하나 더 덮어드렸어요.”

“…네.”

그는 주방을 바라봤다. 하지만 그곳에 있어야 할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그제야, 은호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이상함이 스치기 시작했다.

Expand
Next Chapter
Download

Latest chapter

More Chapters

To Readers

굿노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굿노벨에 등록하시면 우수한 웹소설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한 세상을 모색하는 작가도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맨스, 도시와 현실, 판타지, 현판 등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읽거나 창작할 수 있습니다. 독자로서 질이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고 작가로서 색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어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성한 작품들은 굿노벨에서 더욱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No Comments
12 Chapters
1화. 식어버린 모두가 아는 사랑
주변의 모든 친구들은 알고 있었다.유진은 은호를 미친 듯이 사랑했다는 걸.자기 삶도, 자기 공간도 없이 하루 24시간 내내 그의 곁을 맴돌고 싶어 했다.헤어지자고 해도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늘 먼저 고개를 숙이고 돌아와 재결합을 청했다.이 세상 누구라도 ‘이별’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수 있었지만, 유진만은 절대 그러지 못했다.은호가 새 여자친구를 끌어안고 룸으로 들어오는 순간, 그 공간은 기묘할 정도로 5초간 정적에 잠겼다.유진은 귤을 까던 손을 멈췄다.“다들 갑자기 말이 없어? 왜 나만 보고 있어?”“유진…”친구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은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여자를 끌어안은 채 소파로 가 앉았다.“생일 축하해, 도현.”너무도 노골적이고, 태연했다.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오늘은 도현의 생일이었기에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화장실 좀 다녀올게.”문을 닫는 순간, 안에서는 이미 대화가 시작되고 있었다.“형, 유진 누나 있는 거 알았잖아요. 미리 말했는데 왜 사람을 데려온 거예요?”“맞아, 은호. 이번엔 네가 너무했어.”“상관없어.”은호는 여자의 가느다란 허리에서 손을 떼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매캐한 흰 연기 사이로 마치 세상을 놀이처럼 사는 한량 같은 웃음을 머금은 눈매가 보였다.그 뒤의 말들은 문이 닫히며 들리지 않았다.유진은 아무 일 없다는 듯 화장실에서 화장을 고쳤다. 거울 속의 자신을 보며, 문득 입꼬리를 올렸다.“진짜 못났네.”사는 꼴이, 너무 못났다.유진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속으로 결심했다.하지만 다시 룸으로 돌아와 문을 여는 순간, 그 장면은 문손잡이를 움켜쥐고 무너질 뻔할 만큼 잔인했다.은호는 여자의 부드러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밀착시키고 있었고, 두 사람 사이에 끼운 휴지는 침에 흠뻑 젖어 있었다.주변에서는 웃음과 야유가 터져 나왔다.“와, 역시 은호는 노는 법을 안다니까!”“붙었다! 진짜 붙었어!”“이 정도 분위기면, 한 번 제대로 보여주지 그래?”유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1-18
Read more
2화. 벼락 부자
식탁 위.“왜 좁쌀죽이 없어요?”“그 위에 좋은 죽 말씀하시는 거죠?”“위에 좋은 죽?”“네. 유진 아가씨가 자주 끓이던 거요. 좁쌀에 백합, 율무, 대추 넣어서 같이 끓이던 거요. 아이고, 그건 전 시간이 없어서 못 해요. 백합이랑 율무, 대추만 해도 전날 밤부터 불려야 하고, 다음 날 또 새벽에 일어나서 푹 끓여야 하거든요.”“게다가 불 조절이 정말 중요해서요. 유진 아가씨처럼 인내심 있게 계속 지켜보질 못하겠더라고요. 그렇게 만들어도 그 맛이 안 나고, 또…”“소고기 장조림 좀 주세요.”“네, 도련님.”“…맛이 다른데?”은호는 병을 힐끗 봤다.“포장도 다르고.”“그 병은 이미 다 비어서요. 지금은 이거밖에 없어요.”“나중에 마트 가서 두 병 사다 놔요.”“그건 못 사요.”“?”가정부는 조금 민망한 듯 웃었다.“그건 유진 아가씨가 직접 만든 거예요. 저는 만들 줄을 몰라서…”쾅!“어? 도련님, 안 드세요?”“네.”가정부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갑자기 왜 화를 내는 거지?……“이 게으른 돼지야! 일어나!”유진은 눈도 뜨지 않은 채 몸을 뒤척였다.“시끄러워… 조금만 더 잘래…”태리는 화장을 끝내고 가방을 고르며 말했다.“벌써 8시야. 너네 집 장 도련님 아침 안 해줘도 돼?”예전에도 유진은 가끔 외박을 했지만, 해가 뜨기 전에 꼭 집으로 돌아갔다. 위장이 약한 은호를 위해 보양 죽을 끓이기 위해서였다.태리는 그게 늘 이해되지 않았다.‘장은호는 손이 없나 발이 없나. 폰으로 배달 하나 시키는 게 그렇게 어렵나? 사람을 괴롭히는 것도 정도가 있지.’결국 다 버릇 잘못 들여놓은 거였다.유진은 졸린 목소리로 손을 휘저었다.“안 가. 헤어졌어.”“오! 그래서? 이번엔 며칠짜리야?”“…”“그럼 천천히 자. 아침은 식탁에 있어. 난 출근할게. 오늘 밤 데이트 있어서 저녁은 안 해도 되고… 아, 아니다. 너 어차피 금방 돌아갈 거니까, 나갈 때 베란다 창문만 닫아줘.”유진은 배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1-18
Read more
3화. 차단
“자리 찾기 힘든가? 내가 나가서 좀 도와…”‘어?’남자의 표정이 썩 좋지 않은 걸 보고서야, 도현은 뒤늦게 상황을 깨달았다.“아… 은호 형, 설마 유진 누나 아직… 안 돌아온 거예요?”이미 세 시간은 훌쩍 넘긴 뒤였다.은호는 두 손을 벌리며 어깨를 으쓱했다.“뭘 돌아와? 이별을 장난으로 하는 줄 알아?”말을 마치고는 도현을 지나쳐 소파에 앉았다.도현은 머리를 긁적였다.‘설마… 이번엔 진짜인가?’하지만 곧 고개를 흔들었다. 자기가 괜히 오버하는 것 같았다.은호가 말하면 바로 헤어질 수 있는 남자라는 건 믿었다. 하지만 유진은 아니었다.세상 모든 여자가 이별에 동의할 수는 있어도, 그녀만큼은 아니었다.이건 이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이었다.“은호, 왜 혼자야?”승우가 팔짱을 낀 채, 구경 난 걸 즐기듯 웃었다.“네가 건 세 시간, 지금은 하루가 다 지났는데?”은호는 입꼬리를 올렸다.“내기엔 승복해야지. 벌칙 뭐야?”“오늘은 술 말고 다른 걸로.”“?”“유진한테 전화해서, 세상에서 제일 다정한 목소리로 말해.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사랑해.’”“하하하하…”주변에서 순식간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도현은 아예 은호의 휴대폰을 낚아채 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연결음 뒤로 들려온 건 차가운 안내 멘트였다.“죄송합니다. 지금은 연결이 되지 않아…”‘이건… 차단?’은호는 잠시 멍해졌다.웃음소리는 서서히 잦아들었고,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봤다.도현은 황급히 전화를 끊으며 휴대폰을 돌려줬다.“아, 그게… 진짜 연결 안 된 걸 수도 있잖아요. 유진 누나가 형을 차단할 리가 없지. 하늘에서 비가 빨갛게 내리지 않는 이상… 하하…”말을 하다 보니, 본인도 민망해졌다.승우는 곰곰이 생각하다 말했다.“…이번엔… 유진이 진심일 수도 있겠는데.”은호는 가볍게 비웃었다.“헤어지면 헤어진 거지, 진짜니 가짜니, 그런 게 어딨어?”“이런 게임, 이젠 안 해. 앞으로 누가 유진 얘기 꺼내면, 친구고 뭐고 없다.”승우는 눈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1-18
Read more
4화. 버릇
전날 밤 술을 조금 많이 마셨고, 새벽 무렵엔 도현 그 녀석이 또 2차를 가자며 난리를 쳤다.은호가 기사에게 집까지 데려다 달라고 했을 때는 이미 하늘이 희끗희끗 밝아오고 있었다.침대에 쓰러지자마자 잠이 쏟아졌지만, 그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욕실로 가 샤워를 했다.‘이 정도면, 유진이 뭐라 하지 않겠지?’몽롱한 의식 속에서 은호는 그렇게 생각했다.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통증에 잠에서 깼다.“쓰읍…”그는 한 손으로 배를 누르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배 아파… 유진…”이름이 입 밖으로 나오려던 순간, 그는 갑자기 멈췄다.은호는 미간을 찌푸렸다.‘정말 대단한데… 지난번보다 더 오래 버티네…’‘그래, 어디까지 고집을 부릴 수 있는지 보자.’‘그런데… 약은… 어디 있지?’은호는 거실로 나가 수납장이라는 수납장은 전부 샅샅이 뒤졌다. 하지만 집에 늘 있던 상비약 상자는 보이지 않았다.그는 가정부에게 전화를 걸었다.“위장약 말씀하시는 거죠? 약 상자에 다 들어 있어요.”관자놀이가 욱신거렸다. 은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그래서 약 상자가 어디 있는데요?”“침실 드레스 룸 서랍이요. 몇 상자나 준비해 두셨어요. 유진 아가씨가 말씀하시길, 도련님은 술 많이 드시고 다음 날 아침이면 위가 꼭 아프다고 해서, 바로 꺼내 드시기 편하게 침실에 두신 거예요…”“뚜.”“여보세요? 도련님? 끊으셨나?”그는 드레스 룸으로 가 서랍을 열었다. 과연 약 상자가 있었다.그 아래에는 그가 늘 먹던 위장약이 무려 다섯 상자나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약을 먹고 나니 통증은 한결 가라앉았고, 잔뜩 곤두서 있던 신경도 서서히 풀렸다.무심코 서랍을 밀어 넣던 순간, 그의 손이 멈췄다.보석, 명품 가방, 고가의 소지품은 모두 그대로였다.그런데 그 안에 있어야 할 유진의 모든 증명서, 신분증, 여권, 학위증, 졸업증명서가 모두 사라져 있었다.구석에 쌓여 있던 캐리어를 보자 역시 하나가 비어 있었다.은호는 그 자리에 서서 이유 모를 분노가 치밀어 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1-18
Read more
5화. 그 맛이 아니야
“은호 형 무슨 일 있대요?”도현은 혼자 술을 들이켜는 남자를 힐끗 보며, 슬그머니 승우 쪽으로 엉덩이를 옮겼다.아까 들어올 때부터 은호의 얼굴은 이미 잔뜩 굳어 있었다.시끌벅적하던 분위기도 자연스레 가라앉았다.“누군가한테 차단당했다네.”사정을 아는 승우가 불난 집에 기름을 붓듯, 구경 나선 티를 숨기지도 않았다.그 말이 들리자 은호의 표정은 더 어두워졌다.쾅!술잔이 유리 테이블에 세게 부딪혔다.그는 신경질적인 표정으로 셔츠 단추를 풀며 말했다.눈빛에는 폭발 직전의 날카로움이 서려 있었다.“다신 그 여자 얘기 꺼내지 말라 했지. 이 말이 그렇게 어려워?”승우는 어깨를 으쓱하곤 입을 다물었다.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자 노래를 부르던 사람도 입을 닫았고, 주변 역시 조용해졌다.도현은 술을 마시다 사레가 들렸다.‘유진 누나… 이번엔 진짜인 거야?’효성은 살짝 취한 얼굴로 도현에게 소곤거렸다.“유진, 돌아갔대?”도현은 고개를 저었다. 차마 뭐라 말도 못 하고 모른다고만 했다.효성은 속으로 짐작했다. 아직 안 돌아갔구나.그때 바텐더가 맥주 다섯 박스를 들고 들어왔다.누군가 용기를 내 외쳤다.“진실 게임, 어때?”이 바닥 사람들답게 모두 눈빛만으로 뜻을 주고받았다. 분위기를 살리려는 속셈이었다.“벌칙 좋지. 난 대담한 거 제일 좋아해.”마침 그 순간, 여자가 한 명 들어왔다.“어, 혜영 왔네. 딱 좋다. 마침 은호 형 옆에 자리 하나 비었거든…”여자는 떠밀리듯 은호 옆에 앉았다.이곳의 에이스. 그리고 은호와도 처음은 아니었다.“은호…”은호는 벌떡 일어섰다. 흥미가 완전히 사라진 얼굴이었다.“너희끼리 놀아. 난 간다.”그는 그대로 나가버렸다.벙찐 사람들만 남았고, 오늘 밤 출연료를 날린 혜영도 멍하니 있었다.……술집을 나와 기사가 어디로 갈지 묻자, 브랜디를 두 잔이나 마신 그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텅 빈 별장이 떠올랐다.“회사로.”밤 10시.퇴근 준비를 하던 비서가 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은호를 보고 놀랐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1-18
Read more
6화. 미처 하지 못한 사과
“적어도 그 시절의 충동과 미숙함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는 해야겠어. 그건 내가 교수님께 진 빚이니까.”태리는 술을 한 모금 들이키다 거의 사레가 들릴 뻔했다. 그녀는 두어 번 기침을 하며 얼굴 가득 거부의 기색을 드러냈다.“제발 나 좀 살려줘, 유진.”“내가 대학 시절 딱 한 번 재시험까지 갔던 과목이 누구 수업이었는지 알잖아. 바로 심 교수님 선택과목이야. 난 그분 얼굴만 봐도 긴장돼. 게다가 난 그냥 존재감 없는 학생이었잖아. 교수님은 내가 누군지도 이미 잊었을 걸? 솔직히 말해서, 난 정말로 아무런 도움이 안 돼.”유진은 그녀가 극구 피하는 모습을 보고 더는 강요하지 않았다.“그런데 말이야.”태리의 눈빛이 교활하게 반짝이며 화제가 바뀌었다.“내가 보기에 딱 맞는 사람이 하나 있긴 해.”“응?”“내 사촌 오빠, 서민준 기억나?”유진은 미지근한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고개를 끄덕였다.“물론 기억하지.”서민준.국내 최연소 물리학 분야 차세대 리더로, 지난해 《네이처》가 선정한 ‘세계를 바꾸는 10대 청년 과학자’ 1위에 오른 인물이었다.학부 시절부터 심 교수의 문하에서 응용생명과학을 전공했고, 2년 만에 SCI 논문 5편을 발표해 생물학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으며 ‘천재’라 불렸다.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전공을 바꾸겠다는 기행 같은 선택을 하고는 물리학으로 방향을 틀었고, 당시 학계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하지만 결과는 분명했다.잘하는 사람이라면, 어느 분야를 가도 결국 해낸다는 것이었다.이제 서민준은 국제 물리학계에서 손꼽히는 거물이 되어 있었다.유진은 그와 같은 학교 출신이지만 입학 시기가 달라 학부로 따지면 후배 격이었다.입학하자마자 그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을 들었고, 이후 태리를 알게 되어서야 그가 그녀의 사촌오빠라는 사실을 알았다.그는 오랫동안 해외 물리연구소에서 근무하다가, 세 달 전 귀국했다.“며칠 전에 오빠도 교수님 병세를 물어보더라고. 바빠서 직접 찾아 뵙진 못한 것 같던데, 네가 같이 가면 딱 좋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1-18
Read more
7화. 장난이라 생각하는 걸까
은호는 가까이 다가가서야 알아차렸다.여자의 아름답던 웨이브 머리는 말끔하게 펴져 있었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색으로 염색했던 머리도 다시 순수한 검은색으로 돌아가 있었다.화장도 하지 않았고, 하이힐도 신지 않았다.하얀 티셔츠 한 장과 청바지. 지나칠 정도로 수수한 차림이었다.다만… 그 눈빛만은 예전보다 한층 더 또렷해 보였다. 실연의 그늘이나 침체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만약 이게 연기라면, 은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유진은 연기를 아주 잘하고 있었다.너무 잘해서, 그의 신경을 완벽히 건드려 버릴 정도로.유진은 미간을 찌푸렸다.그녀는 그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저 표정은 분노가 터지기 직전의 신호였다.“후.”남자가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근데 안목이 진짜 별로네. 내 옆에 그렇게 오래 붙어 있었으면, 그래도 기준이라는 게 좀 있어야 하지 않아? 개나 소나 다 괜찮다는 식이면, 나 같은 전 남친 체면은 어디다 두라는 거지?”“체면?”유진은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그 웃음 속엔, 희미한 비애가 스며 있었지만, 아쉽게도 은호는 그걸 보지 못했다.지금 그의 머릿속은 온통, 유진이 다른 남자에게 옅게 웃어 보이던 장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분노가 치밀었다.그는 이 감정을 수컷의 ‘영역 본능’ 탓으로 돌렸다.유진이라는 이 영역은, 한때 자신이 점령했던 곳이었다. 이제 필요 없어진 땅일지라도, 하찮은 개나 소 따위가 와서 표시를 남기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나 바빠. 먼저 갈게.”유진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듣고 싶지 않았다.“가긴 어딜 가? 태리 집 말고는 갈 데도 없잖아. 그래도 이번엔 제법 독해졌네? 수표랑 서류까지 다 챙겨서 나가고. 뭐야, 이제 장난 좀 쳐보겠다는 거야?”유진의 가슴이 찔끔 아려왔다.그의 성질이 고약하다는 건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비뚤어지고 난폭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이렇게 직접적인 말을 들으니, 아무래도 상처가 되지 않을 수는 없었다.그는, 그녀가 그저 장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1-18
Read more
8화. 새로운 이웃
유진은 이렇게 직접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해보는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은호와 함께했던 지난 몇 년 동안, 손만 뻗으면 다 해결되는 삶을 살았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이런 육체적인 일과는 확실히 거리가 멀었다.심지어 몇 년 전, 그가 막 창업을 시작해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을 때조차도 집안의 주기적인 청소는 늘 시간제 도우미를 불러 맡겼다.페인트 한 통을 다 쓰고 나자, 유진은 뻐근해진 허리를 짚었다.편하게만 지내온 세월이 길어서인지, 몸이 금세 투덜거렸다.그녀는 복도로 나가 남은 페인트를 들여놓으려 했다.그런데 발이 조금 빨랐던 탓에, 그만 페인트 통을 걷어차고 말았다.재빨리 붙잡긴 했지만, 결국 옆집 현관 앞에 페인트가 조금 쏟아졌다.급히 걸레를 가져와 닦고 있는데, 굳게 닫혀 있던 문이 갑자기 열렸다.고개를 들며 사과하려던 순간, 익숙한 얼굴과 마주쳤다.“여기 사세요?”“왜 그쪽이 여기에…?”두 사람은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민준은 바닥을 한 번 보고, 이내 그녀의 뒤쪽으로 시선을 옮겼다.“그럼 오늘 이사 온 사람이 당신이었군요?”유진도 이렇게까지 우연일 줄은 몰랐다.“보시는 대로예요. 오늘부터 이웃이 됐네요.”민준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그가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했다. 연구실과 학교가 모두 가까워 학생들 수업과 실험을 오가기에 편리했기 때문이다.하지만 유진은 왜 이곳일까?누가 봐도 이 환경은 젊은 여성이 살기엔 썩 적합하지 않았다. 다른 걸 떠나, 엘리베이터조차 없는 건물은 보통 선택지에서 제외되기 마련이었다.유진은 그가 가만히 있는 걸 보고, 복도를 더럽힌 걸 신경 쓰는 줄 알았다.“죄송해요. 페인트가 좀 쏟아졌는데, 금방 다 치울게요.”그녀는 서둘러 마무리했고, 금세 바닥은 깨끗해졌다.아래층으로 내려가며, 그녀는 그의 옆에 놓인 쓰레기를 가리켰다.“마침 내려가는 길인데, 이것도 같이 버려드릴까요?”민준은 사양하지 않았다. 대신 집 안으로 들어가 접이식 사다리를 하나 꺼내왔다.“벽 칠할 거면 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1-18
Read more
9화. 키우기 쉬운 사람
유진이 먼저 걸음을 옮겼고, 남자는 반 걸음 뒤따랐다.어젯밤의 불안함에 비하면, 그녀는 눈에 띄게 평정을 되찾은 모습이었다.민준이 차를 몰고 왔고, 유진은 조수석에 앉았다.가는 길에 과일 가게를 하나 지나치자, 유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잠깐만 세워주실 수 있을까요? 3분이면 돼요. 과일 좀 사려고요.”“과일?”“네. 교수님 드릴 거예요.”민준은 핸들을 잡은 채, 조금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굳이 그렇게 번거로울 필요가 있나요?”“…?”유진은 괜히 웃음이 나왔다.“설마 늘 빈손으로 남의 집에 가시는 건 아니죠?”민준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유진은 말없이 엄지를 치켜세웠다.‘대단하네, 정말.’‘아마도, 진짜 대단한 사람들은 다 이렇게… 사소한 건 신경을 안 쓰는 걸까?’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결국 길가에 차를 세웠다.……심수희 교수의 집은 대학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한국식과 양식이 조화를 이룬 단독 주택들이 줄지어 있었고, 소박하지만 깊이가 느껴지는 곳이었다.단풍나무 숲을 지나면서 아담한 저택이 모습을 드러냈다.‘6년…’유진은 안전벨트를 꽉 움켜쥐었다. 발치에 놓인 과일 바구니를 내려다보니, 갑자기 마음이 약해졌다.민준은 그녀의 변화를 느꼈다.“안 내려요?”유진은 입술을 깨물었다.“잠깐만요. 조금만 있다가요.”남자는 그녀를 몇 초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제가 먼저 들어갈게요.”‘…’아무것도 묻지 않는 배려에, 유진은 마음속으로 감사했다.그가 먼저 들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녀는 몇 번 심호흡을 한 뒤에야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서 내렸다.계절은 온갖 꽃이 한창 피어나는 때였다.마당에 들어서자, 옅은 꽃향기가 바람을 타고 퍼져왔다.울타리 옆에는 푸릇푸릇한 채소들이 심어져 있었지만, 주인이 아파서 돌보지 못했는지 기운 없이 축 늘어져 있었다.문에 다다르기도 전에 교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진의 심장이 살짝 떨렸고, 그녀는 서둘러 민준을 따라 들어갔다.“교수님.”심 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1-18
Read more
10화. 결국, 개처럼 기어와 빌게될 거다
민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에게 음식이란 그저 에너지를 보충하는 수단일 뿐, 맛이 좋고 나쁨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다 씻었어요.”유진이 고개를 돌려 보니, 씻어 둔 붉은 피망과 청경채가 가지런히 정렬돼 있었다.누가 봐도 강박에 가까운 정리 습관의 소유자였다.“왜 웃어요?”민준은 이유를 몰라 물었다.유진은 가볍게 헛기침을 한 번 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 이제 나가 계세요.”“네.”그는 물기를 닦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유진은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렸다.전체적으로 담백한 맛, 대부분이 심 교수가 좋아하고 또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이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구나…”심 교수는 감회에 젖어 중얼거렸다.식사가 끝나자, 유진은 먼저 그릇을 정리했다.민준도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들어와 도왔다.따뜻한 노란 조명 아래, 남자의 뒷모습이 길게 늘어졌다.유진의 시선에서 보이는 그의 옆얼굴은, 마치 고대 그리스 조각상처럼 선이 또렷하고 날카로웠다.심 교수가 문틀에 기대서서 물었다.“유진, 네 선배랑은 어떻게 알게 된 거니?”민준은 그녀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제자였고, 유진은 가장 아끼는 학생이었다.아주 오래전부터, 두 사람을 소개해 주고 싶다고 생각해 왔었다.그런데 뜻밖에도, 인연은 먼저 그들 스스로 이어져 있었다.그때, 현관 쪽에서 소리가 들려왔다.“심 교수님, 손님이 찾아오셨어요!”심 교수는 거실로 나왔고, 소파에서 한 여자가 웃으며 일어섰다.“교수님 안녕하세요. 저는 장은아예요. 전에 병원에 문병 갔었고, 올해 대학원 모집에 대해서도 여쭤봤었죠.”심 교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기억하고 있어요. 앉아요.”은아의 미소는 한층 더 밝아졌다.“요즘 집에서 요양 중이라고 들었어요. 그래서 몸에 좋은 것들 좀 가져왔어요…”심 교수는 탁자 위에 놓인 선물 상자를 무심히 훑어보았다.인삼, 제비집, 동충하초…그녀의 미소는 자연스레 옅어졌다.“전에 말씀드린 대학원 정원 말인데요…”은아가 다시 말을 꺼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1-18
Read more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