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풍친왕 부부 등장명원제가, “아바마마, 또 누가 옵니까?”주변을 둘러보니 오늘밤 올 사람들은 다 왔다. 누가 이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거지?“네 큰아버지!” 태상황이 담담하게 말했다.“……” 멀쩡한 섣달 그믐날 밤 왜 사람한테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아바마마는 갈수록 체면을 생각하지 않으신다.막 서로 안면을 익히던 참이었는데 갑자기 두려움에 떨게 만드는 호랑이의 포효가 멀리서 들려왔다. 비록 멀어도 지축을 뒤흔드는 뇌성 벼락 같이 온 연회장에 울려 퍼졌다.광명전 전체가 덜덜 떨리는 것 같다.호랑이 소리를 듣고, 앉아 있던 종친들이 서로 놀라, ‘그 사람이 왔네, 그 사람이 왔어, 그 사람이 호랑이를 데리고 돌아왔어.’ 당황했다.명원제는 입가를 실룩거리며, 망할, 진짜 큰아버지잖아!“안풍친왕이시다!” 누군가 외쳤다.안풍친왕이란 네 글자가 광명전에서 발휘하는 힘은 아까 그 호랑이의 포효와 맞먹는 것으로 황실의 연배가 있는 어른들에겐 명성이 자자했다.젊은 사람들도 당연히 이름을 들어는 봤으나 일찌감치 경성을 떠나서 북당엔 전설만 남았을 뿐 그 사람은 본 적이 없다.호랑이의 포효가 일정한 간격을 두고 점점 가까워졌다.호랑이 소리에 다들 흥분했다.원경릉은 호랑이 소리에 무협 로맨스의 주인공 같은 부부가 떠올랐다. 그분들이 돌아오셔서 설날을 맞으신다고?원경릉은 태상황이 안풍친왕비에게 꼬마 때 감정을 품고 있던 걸 기억하고 자기도 모르게 몰래 쳐다보니 태상황이 태연 작약하게 미동도 없이 앉아 있다. 늙은 여우는 역시 늙은 여우다. 감정이 표정에 하나도 드러나지 않는다.문밖에서 상선이 빠른 걸음으로 달려와 목소리 톤도 약간 변해서, “태상황 폐하, 황제 폐하께 아룁니다. 안풍친왕 부부 납시었습니다!”상선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호랑이의 포효가 들려왔다.남자는 머리에 옥관을 쓰고 눈썹은 칼로 자른 듯 차가운 표정에 위엄이 어려 있다. 나이는 적지 않아 보이는 것이 눈가에 주름이 있으나 그 주름때문에 더욱 위엄이 선다.그와 손을 잡고 들어오는
미친 존재감명원제는 이렇게 말하며 광명전 앞에 도사리고 앉아 있는 위풍당당한 황금빛 호랑이를 흘끔 쳐다봤다. 방금 안풍친왕이 걸어 들어 올 때 호랑이가 앞길을 여는 모습이 장난이 아니었다.안풍친왕이 명원제에게, “헤어진 지 수년 동안 황제 조카도 괄목상대해야 할 만큼 변했군. 이제 네가 다스리는 북당은 왕성하고 번영하는 구나. 잘하고 있어!”안풍친왕은 근엄하고 진지해서 말할 때도 엄숙한 태도로, 눈가에 온화함을 머금고 있지만 명원제 눈에는 여전히 두렵고 떨렸다.안풍친왕은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태상황을 보는데 누그러진 얼굴로, “다음 보위를 잘 물려줬 구만.”태상황이 마침내 웃으며, “그래요, 과인은 만족합니다.”한마디였으나 태상황이 황제를 최대한 칭찬하는 말이었다.안풍친왕은 다시 우문호를 보더니 그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했다.우문호는 정중하게 예를 취했다.한편, 안풍친왕비는 안왕비 곁에 앉은 것이 안풍친왕비와 안왕비는 원래 같은 출신이나 안왕비는 안풍친왕비를 본 적이 없어서 상당히 어색하게 쭈뼛쭈뼛하고 있다.태후가 안풍친왕비를 보고 한숨까지 쉬며, “생각해보니 왕비마마를 20여년을 뵙지 못했는데, 하늘이 왕비마마를 특별 대우하셔서 저와 비슷한 연배인데 저보다 한참 젊어 보이십니다.”안풍친왕비가 웃으며, “마음에 걱정거리 없이 개운한 나날이라 조금 젊어 보이나 봅니다. 태후마마는 저와 달리 궁에서 이 큰 후궁을 다스리시니 신경 쓰실 일이 많지요.”태후가 미소를 지으며, “그래요, 그래서 안풍친왕비는 복을 받았 다니까요.”연회가 시작되고 궁인들이 잘 차려진 요리를 줄줄이 받쳐들고 들어왔다. 이 훌륭한 음식은 상당히 보기에는 좋았으나 날이 추워서 수라간에서 광명전으로 가져오는 동안 식어 입에 넣어도 조금도 맛있지 않았다.그나마 시작할 때 나온 탕은 뜨끈뜨끈했다. 다른 음식은 차가웠지만 다들 익숙한 지 요리 하나를 한 입 씩 먹고 치우고 다음 요리를 내오게 했다.안풍친왕비는 안왕비에게 친절해서 탕을 별로 안 먹자, “몸이 약하니
안풍친왕비가 납신 이유다행히 노래와 춤이 시작되어 건배를 제의하는 사람 없이 모두 밖에 무희들의 아름다운 춤사위를 관람했다.관현악기 소리에 북소리가 섞여 들리며 사람의 마음을 한없이 평온하게 했다.원경릉은 마음 속으로 어서 연회가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게 할머니가 초왕부에서 섣달 그믐밤을 함께 보내고자 기다리시기 때문이다.여기 와서 2년, 작년 설엔 외로웠지만 할머니가 오신 뒤로 나날이 여기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치 인생에 근원이 생긴 기분이다.그리고 그녀가 연회가 빨리 끝났으면 하고 바라는 건 사실 속사정이 있는 게, 요 2년간 궁중에서 연회를 열 때마다 마지막엔 결국 크던 작던 일이 터져서 불쾌했다.안풍친왕비는 뒤에 자리를 떠서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는데 요리는 16가지가 전부 상에 올랐음에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연회가 거의 끝날 무렵 안풍친왕비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고 얼굴은 약간 노해 있었다.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원경릉도 묻기 뭐했으나, 안풍친왕비가 자리에 앉은 뒤 두 잔을 연거푸 마시는 게 확실히 열 받은 것 같다.다들 안풍친왕비의 이런 행동을 이상하게 여긴 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가무 한 곡이 또 끝나고 안풍친왕비가 원경릉에게, “밖에 분위기가 괜찮던데 나랑 나가서 좀 걸읍시다. 배가 불러서.”원경릉도 간절히 원하며, “좋아요!”두 사람이 자리에서 나왔는데 바람이 상당히 찼다. 분위기는 꽤 있어서 정원에 온통 등이 휘황찬란하게 걸려 있고 땅에는 흰 눈 위에 폭죽 터진 껍질이 깔려서 온통 붉은 색이다.원경릉은 털옷을 입지 않아 망토를 여며도 여전히 추웠다.광명전 마당에서 나오는 길에 둘은 말 없이 어화원 위쪽 현월정으로 걸어가는데 이 안에서 안왕비 사건이 있었다.두 사람이 들어간 후 안풍친왕비가 가리개를 내려 찬바람을 막았다.자리에 앉은 뒤 안풍친왕비가 원경릉에게, “이번에 내가 온건 일이 있어서야.”원경릉도 두 분이 갑자기 돌아와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안풍친왕비가 말씀해주신 다니, “무슨
현비의 의도원경릉은 그래도 이해할 수가 없어, “어마마마는 지금 금족령으로 바깥과 연락하실 수가 없습니다. 어마마마께서 어떻게 소씨 집안 사람에게 헛소문을 퍼트리게 하겠습니까? 소씨 집안 사람들도 어떻게 태후마마의 말씀을 듣지 않고 어마마마의 말을 듣는지요? 그리고 소씨 집안 사람들이 이렇게 소문을 퍼트려 자기들에게 좋은 점이 뭐가 있습니까?”게다가 현비가 이렇게 소동을 부리는 건 득보다 실이 많은데, 현비가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럴 리 없지 않을까? 그리고 황제가 상인의 지위를 올려주겠다고 결정했는데 외부에 이렇게 거짓을 퍼트리면 조정이 민심을 수렴하는데 불리하다.“현비는 궁에서 오랜 세월을 있었네. 주변에 자신의 뜻을 전할 만한 사람 한둘이 왜 없겠나? 소씨 집안은 태후의 말을 듣지 않아. 태후는 소씨 집안은 그다지 크게 염두해두지 않지만 현비는 줄곧 소씨 집안을 위해 지략을 펴 왔지. 게다가 이제 다섯째가 태자가 되었네. 무한한 영광이 불을 보듯 훤해. 소씨 집안 사람들은 분명 꼬리를 흔들어 대겠지, 현비가 왜 반대하는지 상상이 안 되니?” 안풍친왕비가 말을 마치고 원경릉을 바라봤다.원경릉이 머뭇거리며, “어마마마께서 상인을 깔봐서 인가요?”안풍친왕비가, “그건 그 중 하나일 뿐이야, 현비는 상인을 업신여기지. 어엿한 일국의 공주가 시정의 장사치 나부랭이에게 시집을 가다니 이건 현비의 얼굴에 따귀를 날리는 셈일 거야. 지금 혼기를 맞은 공주가 우문령 하나가 아니니, 현비 생각엔 황제가 우문령이 아닌 다른 공주를 시집 보내면 된다고 생각할 거야. 하지만 제일 큰 원인은 태자가 책봉된 이래 지금까지 자신의 신분이 올라가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금족령을 당했으니 얼마나 분하고 억울하겠어? 그런데 너와 태자까지 자기를 지지하고 돕지 않으니, 알아서 부활의 전기를 마련하고자 하는데 공주의 혼사만큼은 명실상부하게 자신이 관여할 수가 있거든.”원경릉은 안풍친왕비에게 이 점을 지적 받고 순간 이해가 되면서, “그래서 어마마마의 최종 목적은 이 혼인을 막고자 하
의도된 혼사?현비가 결국 타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작해야 경여궁에서 소란을 떨 뿐으로 현비가 소씨 집안 사람을 시켜 밖에서 소동을 피우게 할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아마 이점은 황제조차 현비를 무시했을 걸?그렇다는 건 현비의 생사는 거의 정해진 거나 다름없다. 어쩐지 태후가 다급하게 안풍친왕비를 오라고 불렀더라.현비가 이토록 미쳐 날뛰는 것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권력이 침투했기 때문이다.원경릉은 심사숙고 했다. 현비가 바보야? 조금도 그렇지 않다. 만약 황제가 예전의 황제라면 현비가 이겼을 것이다. 왜냐면 황제는 태자와 공주의 생모라는 입장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후원에 큰 불은 참아낼 지언 정 조금의 불똥도 밖으로 튀어나가 서는 안된다.황제는 황실의 체면을 가장 중시한다. 수년간 부부로 있으며 현비는 황제를 잘 알고 황제의 약점을 쥐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제가 타협만 해주면 현비는 이전의 그 어질고 지혜로운 아내로 돌아갈 것이며, 황제도 여러 해 함께 한 부부의 정을 생각해 현비를 용서해 줄 것이다. 그리고 소씨 집안 쪽은 어쨌든 태후의 친정이므로 효심이 깊은 황제가 심하게 할 리는 없고 찬바람이 불고 지나가면 다시 발탁해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현비는 생각하고 있었다.현비는 이번은 공주의 혼사를 가족 문제라고 생각했다.황제 입장에선 정치를 펼치는 중대한 일이자, 국가와 민생에 관한 대사다. 황제는 너무 오래 가난해서 북당을 위해 뭔가 출구를 찾아야만 했다. 위에서는 황제가 결단성 있게 치고 나가라고 압박했다. 막는 사람은 죽여라.“황제가 어쩌면 소씨 집안을 한 번 봐줄 수 있지만, 현비라는 악의 축은 아마 다시는 제멋대로 하게 놔두지 않을 것이다. 지켜 보려 무나, 설을 쇠고 나면 대외적으로 현비의 병세가 악화되었다고 선포할 거야.” 안풍친왕비가 말했다.원경릉은 안풍친왕비에게, “절 불러 내셔서 분석을 들려주셨는데 제가 뭘 하길 원하십니까?”안풍친왕비가 고개를 끄덕이며, “맞아, 만약 황제가 마지막에 현비에게 손을 쓰면 자네
섣달 그믐밤안풍친왕비가, “현비가 소란만 안 떨면 혼사는 순리대로 거행될 거야, 모두 기뻐하며 말이지. 하지만 만약 현비가 소동을 일으키면…… 딸이 시집가는데 모친이 저주를 퍼부으면 밖에선 혼란이 일거야. 이게 무슨 짓인가? 공주가 출가하기 전에 현비를 죽일 수도 없는 것이, 아무튼 황제는 딸을 사랑해서 그런 재수없는 경우를 당하게 하고 싶지 않은 거야. 그리고 예법을 어지럽히고 싶지도 않은 게 만약 현비가 죽으면 공주는 어미의 삼년상을 지키느라 혼례를 연기할 수밖에 없지.”원경릉이, “어떻게 연기할 수가 있어요? 지금 황제 폐하는 이리 나리가 사위가 되는 걸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상황인데, 만약 이리 나리가 혼인 할 의사가 없으면 조금도 서두를 필요가 없지만 어쩌다가 혼인을 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냉정언이 중매 명단까지 줬다고 하더군요. 냉정언과 혼담이 오갈 정도면 전부 신분이 높은 분이겠지요.”황제가 초조하지 않을 수 있나? 이리 나리와 경성의 고위급 집안이 혼인으로 맺어진 뒤 세력을 키워간다면?우문호가 말할 것처럼 이리 나리에게 붙어 이득을 취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차치하더라도 반드시 손에 꽉 쥐고 있어야 만의 하나라도 실수가 없을 것이다.그래서 혼사는 미룰 수 없다. 현비는 아마도 이 점을 알고 황제가 공주의 혼사 전에는 자신을 죽일 리 없다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고 대담하게 황귀비 자리와 소씨 집안의 세력을 키우는 도박을 생각해 냈음이 분명하다.원경릉은 마음 속으로 한숨만 계속 나는 게, 이 높은 사람들은 피한방울 흘리지 않고 전쟁을 하는데 자기는 마침 좋은 혼담이라고 생각했었다.“네가 수락하지 않으면 그때, 황제가 다섯째를 밖으로 출장을 보내겠지. 하지만 그렇게 되면 부자 관계는 망가져.” 안풍친왕비가 말했다.원경릉이 심사숙고했으나, “정말 다른 방법이 없으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네요. 태후 마마께서 현비마마를 설득해 보셨고, 태자도 설득해 봤고, 오늘밤 왕비마마까지 설득해 보셨는데 안되니 사실 다른 방법이 없는 거죠.”안풍친왕비가
악몽즐거웠던 어린 시절이여,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게 안타깝구나.“얼른, 소원 빌어야지!” 할머니가 재촉했다.원경릉은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은 채 마음 속으로 기도했다. 살아있을 동안 아빠, 엄마, 오빠를 만날 수 있기를.눈을 뜨니 할머니가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무슨 소원을 빌었니?”원경릉이 웃으며, “엄청 큰 소원을 빌었죠.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할머니가 만든 떡국을 먹게 해 주세요.”할머니가 웃으며, “그것은 반드시 이뤄질 거다.”할머니와 손녀가 밥을 먹는데 원경릉은 집에 와서 할머니와 먹으려고 일부러 궁에서 배불리 먹지 않기도 했고 안풍친왕비의 말을 듣고 나니 식욕이 뚝 떨어져서 먹기 싫었는데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할머니의 요리를 보니 순간 배가 꼬르륵거렸다.밥을 먹고 나란히 앉아 전에 즐거웠던 일을 얘기하는데 특별한 날이고 분위기다 보니 더욱 집이 그리웠다.원경릉이 잠을 자며 꿈을 꿨다. 꿈 속에 어린 시절로 돌아가 설날을 맞는데 엄마가 원경릉에게 새 다운 자켓을 선물해 주셨다. 선홍색 새 다운 자켓을 입자 옷에서 계속 피가 떨어지고, 바늘로 찌르듯이 아팠다. 원경릉이 울부짖으며 엄마에게 자켓을 벗겨 달라고 하는데 엄마가 와서 아무리 벗기려고 해도 자켓이 원경릉을 꽁꽁 싸맨 채, 안에 수많은 예리한 바늘이 돋아서 원경릉의 피부를 뚫고 엄마는 원경릉을 안고 같이 울었다.“여보, 일어나!” 누군가 귓가에서 작게 부르고 있다. 초조한 목소리다. 원경릉은 두 손으로 자신을 끌어안고 촉촉한 입술이 덮여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바늘이 찌르는 고통이 점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우문호다.원경릉은 천천히 눈을 뜨는데 눈꺼풀이 어찌나 무거운지 실눈같이 벌어진 틈으로 사람그림자가 퍼뜩 보였다가 다시 눈을 감았다.원경릉은 여전히 꿈 속이다. 하지만 선혈이 흐르는 다운 자켓이 아니라 큰 강의 피안에 서 있는 꿈이다. 우문호는 멀리서 원경릉을 보고 있고, 원경릉은 가고 싶지만 다리도, 배도 없어서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우문호가 수영해서 건너겠다
악몽에서 깨어나원경릉은 아직도 꿈 속인 듯 중얼거리며, “무슨 일이야?”우문호는 원경릉을 안고 그녀의 머리를 가슴에 파묻은 채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궁에서 돌아왔더니 당신이 계속 울고 있었어, 아프다면서, 반시진이나 아무리 불러도 깨지 않았다고. 꿈에서 뭘 본 거야? 놀라 죽을 뻔 했잖아.”“꿈에서 뭘 봤지?” 원경릉이 갑자기 몸서리를 치며 꿈속의 절망이 마음을 다시 휩쓸고 지나가는지, “꿈에 피 묻은 겉옷을 봤어. 겉옷 안에 엄청 예리한 바늘이 수도 없이 박혀 있어서, 그리고 꿈 속에 자기랑 내가 강에……”“말하지 마, 그냥 악몽일 뿐이야. 됐어 그만해.” 우문호가 손으로 원경릉의 입을 막는데 가슴이 쿵쿵 뛰었다.원경릉은 너무 피곤해서 도저히 안 되겠기에 서서히 눈을 감았다. 그녀는 오랫동안 이런 끔찍한 꿈을 꾼 적이 없다.“최근 너무 피곤했건 거 아냐? 영이 혼례 치르고 나면 우리 좀 나가자.” 우문호가 원경릉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원경릉이 번쩍 눈을 뜨고, “나……나간다고?”“응, 당신 데리고 바람 쐬게. 일년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있어서 당신 계속 그런 환경속에 갇혀 있었잖아. 정신적으로 무너질 만도 하지. 우리 나가서 바람 쐬자. 원용의 결혼 즈음에 다시 돌아 오지 뭐.”원경릉이 주저하며, “자기……갈 수 있겠어?”“너보다 중요한 건 없어.” 우문호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방금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영이 혼례 마치면 우리 나가자, 가고 싶은 데 없어?”원경릉이 가만있다가 공허한 목소리로, “어디 가고 싶은 지 모르겠어, 그래도 어디든 가면 좋을 거 같아.”우문호가 원경릉에게 키스하며, “그래, 내가 계획을 세우지.”원경릉은 휘장에 늘어뜨린 술이 천천히 나부끼는 것을 보며, 눈앞에서 팔랑팔랑 하는 사이로 외부의 빛줄기가 비춰 들기 시작했다. 날이 이미 밝았다.“넌 더 자.” 우문호가 안타까워하며, “눈이 다 부었네.”“아냐, 나 일어나야 돼, 할머니가 떡국 끓여 주실 거야.” 원경릉의 신년 소원
안왕은 깜짝 놀랐다.“그가 꿈을 꿨다고? 셋째 형님이 사고를 당하는 꿈을?”“예!”“언제 꾼 꿈이더냐?”원경릉은 많이 지친탓에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말했다.“아마 저녁 해시쯤 인 것 같습니다.”안왕이 물었다.“저녁 해시? 강북부에 있던 것이냐? 해시에 꿈을 꿨는데, 어떻게 자시가 되어 도착한 것이냐?”원경릉은 멈칫하다가, 그제야 무심코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이제 와서 며칠 전에 꾼 꿈이라고 수습하려 해도 방법이 없었다. 다섯째와 함께 온 것이 아니라, 홀로 왔기 때문이다.안왕은 여전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사실 그는 황후에게 무슨 능력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황후에 관한 일은 늘 완전히 드러나지 않아, 무슨 상황인지 제대로 알 수 없었다.안왕은 셋째 형님의 일로 마음이 무거운 터라, 더 캐묻지도 않았다. 사실, 더 캐묻는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황후가 대단하다 해도, 그를 해치지 않기 때문이다. 정말 그를 해칠 사람이었다면, 진작 그를 죽였을 것이다.그는 다만 셋째가 위험에 빠진 것을 다섯째가 꿈에서 알았다는 것이 놀라왔다. 게다가 그 꿈 하나로 황후를 먼저 급히 보내왔다는 것도 놀라웠다.꿈을 꾸는 건 어쩌면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형제끼리는 어느 정도 교감을 하니 말이다. 하지만 꿈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황후를 심야에 먼저 보낸다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그는 예전에도 다섯째를 대단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번에는 단순한 존경을 넘어, 그들의 형제애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원경릉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그리고 수술이 끝나자마자, 그에게 산소를 공급하고 주사를 놓았다.큰 상처들은 처리했지만, 얼굴과 손에 있는 작은 상처들은 아직 손도 못 댄 상태였다. 원경릉은 생리식염수를 꺼내 천천히 상처를 닦아주었다.얼굴에는 작은 상처들이 여러 군데 있었고, 손에 특히 많았다. 그녀는 예전에 그가 강북부에서 병사들과 함께 산을 오르고 밭을 일구며 텃
수술실은 즉시 가장 빠른 속도로 준비되었고, 원경릉은 직접 소독했다. 소독이 끝난 후에는 아무도 들어올 수 없었다.그 후 위왕을 이송했는데, 이송하는 사람들도 전부 소독을 마쳤다.문이 닫히는 순간, 본격적인 대수술이 시작되었다.원경릉은 마음이 몹시 아팠다.과거 사생활은 그렇다 해도, 그는 정말 훌륭한 신하였고, 뛰어난 장군이자 좋은 형제였다.수년간 그가 얼마나 고생했는지도 모두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다들 그가 속죄를 위해 스스로 고통을 택했다고 말하지만, 원경릉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양심의 가책이 없는 사람은 속죄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도 속죄의 방법은 다양하다. 1년, 2년 정도 고생하면 본인과 타인에게도 속죄한 것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하지만 그는 십여 년 동안 매일 이 춥고 황량한 변경에서 모진 세월을 견디며 고통 속에서 살아왔다. 속죄하려는 마음도 있긴 하겠지만, 원경릉은 북당의 변방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가장 컸다. 비록 예전엔 그에게 화가 난 적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오로지 존경과 가족으로서의 따뜻한 감정만이 남아 있었다.그래서 수술 중 그의 옛 상처와 새로운 상처를 볼 때마다 그녀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팠다.조금만 늦었더라도 그는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이 모든 것은 안왕의 도움도 컸다. 변경의 바람과 모래가 그들 형제가 진정한 화해를 할 수 있게 이끌었다.그때 태상황이 그를 변경으로 보낸 것은 그에게 새로운 삶을 주는 기회였고, 북당에도 십 수년의 안정을 가져다 준 일이었다.위왕의 복부 상처는 너무 깊었고, 어깨와 등에도 칼에 찔린 자국이 있었다. 부상 당시 출혈도 심각해 생명이 위태로웠다.수술이 끝났을 땐,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원경릉은 혼자 수술을 집도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이미 익숙해지긴 했지만, 이번 수술은 유난히 위험했다. 그녀는 행여나 너무 늦게 도착한 것은 아닌지, 마음이 조마조마했다.위왕은 언제나 강한 사람이었기에, 그녀는 그가 이번에도 버텨내길 바
위왕의 병사들이 저택 문 앞에 모여 무릎을 꿇고 있었다.위왕은 오랜 세월 병사를 이끈 뛰어난 장군이었기에, 병사들의 모든 선망을 받고 있었다. 그가 사고를 당한 일만으로도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의원들이 하나둘 고개를 저으며 떠나는 모습과 안왕비가 하늘에 기도를 올리려 무릎을 꿇은 것을 보고 병사들도 애타는 마음에 함께 무릎을 꿇었다.주변의 백성들 역시 사정을 듣고 자발적으로 찾아와, 저택 밖에 몰려들었다. 위왕은 평소 허세를 부리지 않았으며, 이웃들과도 농담을 주고받는 친근하며, 모두에게 사랑받는 왕이었다. 사실은 뛰어난 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일부러 몰락한 왕인 척했고, 그런 모습 덕에 백성들과 가까워질 수 있었다.한편, 저택 안에서는 안왕이 위왕에게 내공을 주입하며 심맥을 지키고 있었는데, 곧바로 의술이 뛰어난 의원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모두 함께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원경릉은 도착하자마자 이 광경을 목격했고, 다섯째의 꿈이 사실인 것에 깜짝 놀랐다. 누군가가 큰일을 당한 것이 분명했다.그녀는 곧 사람들의 기도 속에서 위왕의 이름을 들었고, 사고를 당한 이가 정말 셋째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그리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함께 기도하는 모습에 감격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위왕이 북당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바쳤는지도 절실히 느꼈다.그녀는 워낙 빠르게 달려온 터라, 출발해서 도착까지 한 시진도 걸리지 않았다. 그녀는 길가에 말을 세우고, 서둘러 가려고 했지만 가득 찬 인파에 가로막힌 탓에, 어쩔 수 없이 큰 소리로 외쳤다.“의원입니다, 비켜주세요!”그 외침에 사람들은 바로 길을 내주었고, 원경릉은 재빨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문 앞에 서 있던 집사는 안왕과 함께 경성에서 온 사람이라 원경릉을 알아보았다. 집사는 기쁨에 복받쳐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황후마마께서 오셨다니…! 위왕은 무탈할 것입니다.”병사들과 백성들은 그 말을 듣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황후가 직접 뛰어오셨다니? 그리고 다들 그제야 마음을
우문호 일행은 강북부로 향하는 내내 북방의 풍경과 풍속을 경험했다. 그로 인해 속도는 매우 느리긴 했지만 말이다.그날 밤, 우문호는 갑자기 악몽에서 깨어나 온몸에 땀을 흘리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가 가득했다.그러자 원경릉이 벌떡 일어나 그를 껴안으며 물었다.“무슨 일이오? 악몽을 꾼 것이오?”우문호는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아직 날씨가 덥지 않은 데다가 북방에 있어 오히려 날씨까지 쌀쌀했기에, 그는 아직도 악몽이 생각나는 듯, 창백한 표정을 지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꿈에서 셋째 형님이 피투성이인 채 죽어가고 있었소…”원경릉은 그저 꿈이라 생각하고 위로해 주려 했지만, 이내 우문호의 강한 감응 능력을 떠올렸다. 갑자기 나타난 이 꿈이 형제간의 영적 감응일지도 몰랐기 때문이다.우문호도 점점 불안한 생각에 빠졌다.“강북부가 비록 평온해 보여도 사실 북당에서 가장 복잡한 곳이오. 온갖 사람들이 섞여 있고, 북막도 호시탐탐 노리고 있네. 게다가 셋째 형님도 무모한 사람이니, 진짜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닐지 걱정되오. 원 선생, 어서 빨리 가야겠소.”원경릉이 서둘러 옷을 입으며 말했다.“아니, 내가 먼저 가겠소. 정말 상처를 입었다면, 내가 가야지 도움이 되지 않겠소? 게다가 난 빨리 갈 수 있잖소.”“좋소. 그럼 먼저 가시오. 우리도 곧 출발하겠소.”우문호는 너무 생생한 꿈 탓에, 더 이상 천천히 갈 수 없었다.“사람을 불러야겠소.”원경릉은 재빨리 옷을 입은 후, 우문호에게 포옹하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먼저 가겠소.”“조심하시오.”우문호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 원경릉은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원경릉이 사라지자마자 우문호는 방 문을 두드리며, 출발하자고 소리쳤다.우문호의 소리에 모두가 깜짝 놀랐다. 이 밤중에 출발이라니, 무슨 큰 일이 생긴 걸까?이때 수보가 겉옷을 걸치고 나오며, 우문호의 팔을 잡고 물었다.“무슨 일입니까?”우문호가 답했다.“나도 모르네. 하지만 셋째 형님에게 무슨 일
스무 명이 넘는 자 중 단 한 명만 생포하고 나머지는 전부 섬멸되었다.안왕은 재빨리 위왕의 혈을 눌러 지혈한 후, 중상을 입은 위왕을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왔다. 먼저 의원을 찾으러 간 사람이 있었기에, 의원은 이미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이때 안왕이 피투성이가 된 채, 의원의 옷깃을 움켜잡았다.“살리시게, 살려야 하네. 꼭 살아야 하네.”의원이 바로 약상자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진정하십시오.”의원이 위왕의 옷을 가위로 자르자마자, 상처가 바로 드러났다. 다행히도 먼저 지혈한 덕분에 저택까지 돌아올 수 있었다.하지만 심각한 부상 상태와, 깊은 복부의 자상 때문에 장기를 다친 것으로 판단한 의원은 간단한 처리를 마친 후, 안왕에게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소인의 의술이 부족한 탓에, 치료를 감당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경성에서 다치셨다면, 희망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만.”강북부는 의료가 낙후된 지역이다. 비록 혜민서를 설립한 이후 의사를 집중적으로 양성하긴 했지만, 경성에 비하면 여전히 많이 부족했다.안왕이 숨을 헐떡이며 눈에 핏줄을 세우고 소리쳤다.“중상을 입었는데 어찌 도성으로 돌아가란 말인가? 긴 여정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은가?”의원이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그것도 참 문제입니다. 황실 친왕이 자금단을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는데, 혹시 저택에 있습니까?”“없네!”안왕은 위왕의 호흡이 점점 미약해지는 모습을 보며 절망감에 휩싸여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갖고 있던 자금단은 이미 먹은 지 오래된 것이네.”“경성… 경성으로…”의식을 잃은 위왕은 그저 경성이라는 말만 중얼거렸다.안왕은 눈물을 닦으며 무릎을 꿇었다.“형님, 조금만 더 버티십시오. 의원이 약을 썼으니, 황후가 오실 때까지 며칠만 버티십시오.”심각한 상황이니, 경성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돌아가려면 최소 일주일 이상은 걸리지만, 황후는 아마 사흘 안에 도착할 수 있었다. “경성으로……”위왕은 의식을 잃기 전까지 계속해서 경성을 찾았다. 그곳은 그가 너무
위왕은 마음속에 또 하나의 걱정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다섯째가 곧 강북부에 오는 것이었다. 비록 이 일은 소문내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순행했으니, 소문이 새어나가게 마련이다.설령 그가 강북부에 온다고 밝히지 않다고 하더라도 그의 최종 목적지가 강북부라는 것은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북막인들이 다섯째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은 아닐지 걱정되었다.아무래도 단 한 순간도 북막인의 야심은 멈춘 적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그는 방심하지 않고, 허점을 찾아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이들을 감시했다. 확실한 증거가 없는 어디까지나 본인의 추측일 뿐이기에, 그는 이 일을 아직 넷째에게 말하지 않았다. 섣불리 말을 꺼냈다가, 그들이 진짜 금나라 상인이라는 것이 밝혀지기라도 한다면, 두 나라의 사이만 영향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무장이지만, 외교적인 문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아주 작은 불씨라도, 마음먹은 자가 부추기면 걷잡을 수 없는 큰불이 될 수 있는 법이기에, 섣불리 행동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감시 끝에 마침내 이상한 점을 포착했다. 처음엔 열댓 명 정도였던 이들 무리는 이틀 사이 스무 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새로 온 자들은 앞선 사람들과는 다르게, 군인이라기보다는 강호 인사의 분위기를 풍겼으며, 무공 또한 약하지 않아 보였다.위왕은 경계심을 품고, 밤새 직접 사람들을 이끌어 조사에 나섰다.앞서 만났던 금나라 사람들은 여전히 질문에 순순히 응했지만, 새로 온 강호인들은 거만한 태도를 보였다. 위왕의 질문에도 그저 시큰둥한 태도만 보이며 북당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위왕은 건방진 그들의 태도에, 몇 마디 호통을 쳤고, 그 모습에 강호인들은 참지 못하고 바로 위왕에게 손을 쓰려고 했다.위왕은 조사하기 위해 온 터라, 데리고 온 부하도 단 몇 명 뿐이었기에, 상대가 일반적인 조사에도 이렇게 쉽게 공격하려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앞서 온 금나라인들이 말리려 했지만, 그들이 손을 쓰자, 사태가 수습되지 않을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남강에 며칠 머무는 동안, 아홉째와 함께 남강의 풍경을 둘러보고, 북강에도 다녀왔다.지금 북강 백성들은 조정에 대한 소속감이 아주 강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남강을 다스린 정책이 정말 훌륭했기에, 백성들 모두 좋은 날을 보낼 수 있었기에, 자연스레 황제에 대한 존경심도 깊어진 것이었다.황제와 황후가 지나가는 곳마다 백성들은 길가에 모여서 열렬히 환영했다.그들은 이번 순행 내내 오계부에서 신분을 밝힌 것 외에는 항상 미복으로 다녔다. 하지만 남강에서 우문호는 황제의 신분을 드러냈다.우문호는 백성들의 신뢰와 경외심에서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매우 기뻤다. 그는 줄곧 원경릉의 손을 잡고 얼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과거 북강은 방어를 위해 무술 함정이 많았지만, 이제는 모두 제거되었다. 그리고 많은 백성이 산 아래 평원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마을을 이루었다. 정화를 구하러 왔을 때와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기쁜 마음과 함께 우문호는 감사함도 느꼈다. 이것은 결코 그 혼자만의 공로가 아니기 때문이었다.남강을 떠나야 하는 날이 다가오자, 원경릉은 만아와 여덟째를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곧 변성으로 가야 했기에, 아쉬움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잠시였다. 남강을 벗어나자마자, 그녀는 아이들과 만날 생각에 들뜨기 시작했다."원 선생, 그들에게 말했소?"길에서 우문호가 물었다."아니, 몰래 가는 것이오."원경릉은 웃으며 말했다."교활하구먼. 그래도 만두가 이미 알려줬을 수도 있을 텐데."지금은 경단과 찰떡, 그리고 계란이 셋만 그곳에 있었다."셋이 다섯 개 성을 다스린다니, 분명히 힘들 것이오."원경릉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소.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네. 이제는 태평해 보이니."우문호도 아이들이 안쓰러웠다."이번에 가서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며 충분히 쉬게 해줘야 하오."사실 성하나를 다스리는 것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른 점 없이, 매우 힘든 일이었다.한편, 강북부에서는 최근 강북부 무구산 주변에 신비한 상단
그러자 홍엽이 그를 바라보며 멈칫했다."자네가 중매를 서겠다고?""안 되오?""말도 안 되는 소리 말게. 자기 혼사도 해결 못 하는데 중매는 무슨. 난 못 믿네!"냉정언이 어깨를 으쓱였다."못 믿으면 말고. 이래 봬도 내가 명문가 아가씨나 협녀를 많이 알고 있소."홍엽은 손으로 그의 목을 움켜잡으며 소리쳤다."알고 있는 아가씨가 있으면 진작 말했어야지! 경성으로 돌아가자마자, 당장 소개해 주시게!"냉정언은 웃으며 그의 손목을 옆으로 밀어냈다."중매 값이 워낙 비싸서. 십만 냥 아니면 쉽게 안 나서오.""돈이 대수요?"홍엽이 교활하게 웃으며 말했다."우린 지금 한집에 살고 있소. 그러니 자네가 돈을 어디에 숨겼는지, 다 알고 있네. 그동안 꽤 많이 챙겼으니, 돌아가서 돈은 두둑이 주겠네."그 말에 냉정언이 깜짝 놀랐다."내 돈을 노리고 있었소? 진짜 도둑을 집에 들였군! 늙어서 쓸 돈이네, 그 돈을 혼사에 쓸 생각은 하지 마시오!""명여가 우리를 챙길 테니, 그렇게 쩨쩨하게 굴지 마시오."홍엽이 새침하게 말했다."나도 돈이 많소. 다만 남의 돈을 쓰는 게 훨씬 재밌을 뿐이네."냉정언이 숨을 들이쉬었다."안 되겠네. 경성에 돌아가자마자 자네를 쫓아내야겠소."홍엽이 말했다."쫓아낼 수 있으면 쫓아내 보시게. 게다가 자네가 나를 청할 때, 뭐라고 했는가? 얼마든지 살아도 된다고 했잖소. 이제 와서 후회하는 것이오?""이야, 홍엽, 어찌 이리 뻔뻔스러워진 것이오?""뻔뻔하지 않으면, 어찌 당신 집에서 이렇게 공으로 먹고살 수 있겠나?"홍엽은 크게 웃으며 그의 어깨에 팔을 얹었다."수보, 신을 모시는 건 쉬워도 보내는 건 어렵다고 하잖소. 이미 집안에 들어갔으니, 쫓아내기는 힘드네. 후회해도 소용없소. 수보의 등골 빼먹다 죽을 것이오. 관에 수의까지 얻어 쓸 생각이라, 죽으면 자네가 장례식까지 마련해줘야 하네."수보는 그를 한참 바라보다가, 애써 이를 악물며 말했다."진짜 뻔뻔하오!"홍엽은 박장대소했다.멀리 복도 끝에
“예, 그립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놀고 싶기도 합니다.”그는 말하다가, 갑자기 신이 난듯 몸을 들썩이며 말을 이어갔다.“여긴 정말 재미있습니다. 아홉째와 나가면 큰 산도 있고, 꽃도, 나무도 많습니다. 물고기도 많고, 사람도 많고, 뭐든지 엄청 많았습니다.”우문호는 웃으며, 못내 안쓰러움을 느꼈다. 예전에 그를 궁 안에 가두고, 거의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사람이 그를 데리고 나가는 것도 신경 쓰였다.“이곳이 마음에 들면, 좀 더 오래 있어도 된다.”우문호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예, 정말 좋습니다. 다만, 형님과 형수님이 그리웠습니다. 이렇게 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여덟째는 흥이 오른 상태로 그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어서 들어가시지요! 아홉째가 형님이 내일 오신다고 맛있는 음식을 많이 준비했습니다.” 그는 뒤돌아 원경릉에게 외쳤다.“형수님, 빨리 따라오십시오. 맛있는 거 많습니다.”미색은 웃으며 꾸짖었다.“이 무심한 녀석, 다섯째 형수님만 챙기고, 여섯 형수가 배고픈지는 묻지도 않는 것이냐?” 여덟째는 그제야 미색을 본 듯,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여섯째 형수님도 오셨습니까? 여섯째 형님도 오신 것입니까? 와, 너무 좋습니다!”“질투하다니?”원경릉은 미색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미소를 지었다.“여덟째는 너보다 나를 더 좋아하는 것이다.”“아유, 참!”미색은 일부러 그렇게 말했다.여덟째는 바로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항상 그림과 책자를 선물하는 여섯째 형수님도 좋아했기 때문이다.그는 말을 더듬으며 말했다.“그... 그럼 같이 드시지요. 음식 많습니다.”“장난이다. 난 질투 안 해.”미색은 기쁘게 말했다.여덟째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고, 다들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원경릉이 만아에게 말했다.“정말 이곳에서 즐겁게 지내고 있구나. 예전보다 훨씬 활발해졌고, 말도 많이 하네. 이 모든 게 아홉째 덕분이다.”만아는 웃으며 말했다.“예, 둘이 시간이 날 때마다 밖으로 나가, 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