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소우연은 죽는 순간이 되어서야 자신이 그저 소설 속 어느 인물의 사랑도 받지 못하는 하찮은 조연에 불과함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소설 속 여자 주인공은 소우연의 쌍둥이 여동생 소우희였다. 어릴 때부터 소우희는 만인의 사랑을 한 몸에 독차지했으며 소우연이 아무리 노력하고 가족들에게 최선을 다해도 그들은 소우연에게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결국, 소우연은 쌍둥이 여동생 대신 악명이 자자하고 성격이 난폭한 회남왕 이육진에게 시집을 가게 되었고 결혼식 당일 도망치다가 잡혀서 손발이 잘린 채 소씨 가문 앞에 버려졌다. 그리고 소우연이 그토록 사랑하고 소중하게 생각했던 가족들은 대문을 굳게 닫은 채 혹여라도 소우연과 엮이게 될까 봐 그녀를 모른 척했다. 그렇게 소우연은 살을 에이는 추운 겨울날, 소씨 저택 앞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소우연은 이육진과 결혼하여 회남왕 관저로 보내지던 순간으로 되돌아갔다. 생의 기회를 다시 얻은 소우연은 이제 더 이상 누구에게도 잘 보이기 위해 힘들게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지난 생에 빼앗겼던 모든 걸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되찾겠다고 다짐하였다. 소우연은 이번 생에서 자신의 능력과 재능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고, 뛰어난 의술로 수많은 귀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결국, 십몇 년 동안 소우연을 무시하고 하찮게 여겼던 소씨 가문 사람들은 그녀 앞에 무릎을 꿇은 채 용서를 빌었지만 마음을 굳게 먹은 소우연은 그자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리고 애초부터 서로의 이익을 위해 합작을 약속했던 남자는 점점 소우연을 옥죄어 갔다. “이육진 씨, 당신 대체 이러는 이유가 뭡니까?” 화가 잔뜩 난 소우연의 물음에 이육진은 그녀의 허리를 확 감싸며 대답했다. “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갚아야지.”
더 보기사흘 뒤.이천과 이해준, 도문군 등은 각방으로 수소문한 끝에, 그 소문이 이미 민간에서 일 년 넘게 떠돌고 있었으며 그 근원지가 남쪽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런데 그 남쪽은 풍요로운 강남이 아니라, 중죄인들을 유배 보내는 험지 중의 험지, 영남이었다.그날 점심 무렵.금융궁 선청에서는 이영과 이천, 이진, 심초운, 심연희, 그리고 주익선까지 여섯 사람이 함께 식사하고 있었다.“영남이라니?”이영은 그 지명을 듣자마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곳은 독기 서린 안개가 가득하고 독충이 들끓는 땅이 아닙니까. 그런 곳에서 어찌 사람이 제대로 살아남을 수 있단 말입니까?”이천이 답했다.“내가 사람을 보내 조사해 본 결과, 과거 경장명 일행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 산에 불을 질러 독기와 수풀, 독충들을 모조리 태워버렸다는 소문이 있더구나.”“예?”이영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 말은 경장명이 아직 멀쩡히 살아있으며, 그 소문 또한 영남에서 시작되었다는 뜻인가요?”“그래. 게다가 영남에 유배된 인원 중에는 아바마마께서 재위하실 시절 보낸 자들도 섞여 있다고 하는구나. 비록 어마마마의 직계 친족은 없으나, 그곳에 뿌리를 내린 소씨 가문의 방계들이 벌써 사오백 명에 달한다고 들었다.”이천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그뿐만이 아니다. 대대로 유배된 자들이 모였으나 예전엔 그저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이었는데, 경장명이 간 이후로 그 척박한 땅의 농작물 수확이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하는구나. 지금은 진이의 봉지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 한다.”“제 봉지인 월성국보다도 상황이 좋단 말인가요?”이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이천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이진이 이영을 바라보며 외쳤다.“언니, 차라리 익선이랑 제가 군사를 몰고 가서 그놈들을 소탕해 버리면 어떨까요?”“소탕하다니? 그들이 도적이라도 되느냐?”이영의 물음에 이진은 말문이 막혔다.“……”“그건 아니지만.”“그럼 그들이 나라를 세우기라도 했느냐?”“그
“아들이 명심하겠나이다.”“착하구나.”이천은 이현을 품에 안고 본채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으로 들어서니 심연희가 이윤을 달래어 막 잠재운 참이었다. 이천이 혹여 아이들이 깰까 조용히 하라는 눈짓을 보내려는데, 고개를 숙여 품을 보니 그새 이현도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어처구니없으면서도 정겨운 상황에 이천은 그만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조심스러운 손길로 침상에 다가가 아이를 부드럽게 내려놓았다.“연희야?”이천이 나직이 불렀으나 침상 위 여인은 아무런 기척이 없었다. 하지만 이천은 속지 않는다는 듯 미소 짓더니, 그녀의 귓가에 묘한 열기가 담긴 숨결을 불어넣으며 달콤하게 속삭였다.“잠들지 않은 것 다 안다. 숨소리가 이리도 흐트러져 있지 않느냐.”“……”심연희는 결국 눈을 뜨더니 이천을 흘겨보았다. 잠들지 않았으면 또 어떠란 말인가. 이천은 그녀의 손을 꼭 맞잡고 촉촉이 젖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동안 정무가 너무 바빠 너와 아이들을 홀대했구나. 앞으론 절대 그러지 않으마.”그 진심 어린 사과에 심연희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눈시울이 순식간에 뜨거워지며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침상에서 일어나 조용히 속삭였다.“편전으로 가서 이야기하시지요.”“어마마마…”깜짝 놀란 심연희가 다시 누우려던 찰나, 뒤를 돌아보니 이윤이 잠결에 입술을 달싹이다가 이내 다시 잠들고 있었다. 그녀는 두 아이에게 이불을 꼼꼼히 덮어주었다. 이천이 촛불 몇 개를 입으로 불어 끄자 침전이 어스름해졌고, 두 사람은 살금살금 편전으로 향했다.“누가 그런 말을 하라 하였습니까? 지난 세월 궁 안팎의 일이며 집안일, 나라 일까지 당신이 홀로 짊어지고 온 것을 제가 어찌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어찌 제게 미안하다는 말씀을 하시는지요?”심연희는 평소 이천을 안쓰럽게 여겼던 마음이 울컥 쏟아지는 듯 그를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이천은 능청스럽게 다가가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 심연희도 밀어내지 않은 채 그를 가만히 응시했다.“이제부터는 우리 부부와 아이들, 우리 가족이 늘
이윤은 고개를 들어 이천을 올려다보았다.이천은 딸의 눈빛을 가만히 살폈다. 고작 네 살밖에 안 된 어린아이였으나, 그 기색은 십 대 소년처럼 침착하고 묵직했다. 이 아이의 마음속에는 이미 황위라는 존재가 깊이 각인되어 있으며, 그것이 당연히 자신의 몫이라 여기고 있음이 엿보였다.잠시 침묵하던 이천이 물었다.“만약 네 고모님께서 정말로 황자나 황녀를 낳으시고, 그 아이에게 자리를 물려줄 뜻이 있다면 우리 윤이는 어찌하겠느냐?”이윤의 통통하고 앳된 얼굴에 고민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아이가 대답했다.“정말 그리된다면, 저는 다른 황가 사람들처럼 그저 한가로운 전하의 신분으로 살겠습니다.”네 살배기 딸의 입에서 나온 대답치고는 이천을 꽤 놀라게 할 만한 것이었다. 또래 아이들에게서 흔히 듣는 말더듬조차 없이, 한 자 한 자에 달관한 기운이 서려 있었다.이천은 몸을 낮추어 털썩 주저앉더니 두 손으로 이윤의 보드라운 뺨을 감싸 쥐었다.“우리 윤이는 참으로 훌륭하구나.”“다만 전하라는 자리는 곧 다음 대의 황제라는 뜻이다. 황제가 된다는 것은 몹시 고단한 일이지. 네가 전하가 된다면 동생들이 너의 노고를 가엽게 여길 것이고, 너 또한 큰 짐을 짊어진 만큼 동생들을 보살피고 잘 가르쳐야 한단다.”“명심하겠나이다.”“착하구나.”두 손을 모아 공손히 예를 갖추는 아이의 모습이 기특하면서도, 이천은 한편으로 마음이 짠했다. 황실의 아이들은 영민함이 일찍 깨어 학습 과정이 고달프기 마련이다. 겨우 네 살인 아이가 매일 두 시진씩 공부에 매달려야 하니 말이다.이천이 이윤을 안아 올리자마자, 옆에서 한 어린 소년의 심술궂은 콧방귀 소리가 들려왔다.“흥! 아바마마는 또 누님만 안아주시고. 저는 아무도 안 사랑하나 봅니다.”심연희가 웃으며 다가가 소년을 휙 낚아채 품에 안았다.“자, 이제 되었느냐?”“부족합니다, 부족해요! 전 아바마마가 좋단 말이에요!”심연희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농담조로 말했다. “그럼 어서 아바마마한테 가보렴.”그
“부군, 무슨 일이십니까?”심연희는 이천의 미간이 깊게 패인 것을 보고 덩달아 걱정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이육진과 소우연, 그리고 용강한까지 모두 자신들의 장례를 치러달라 당부하지 않았던가. 혹시 그분들은 누군가 자신들의 명예를 더럽힐 것을 미리 예견하시고,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황궁을 떠나 가짜 죽음을 선택한 것은 아닐까.이천은 심연희를 바라보았다. 눈빛엔 다정함이 서려 있었으나 근심은 여전했다.“단정 지어 말하기가 어렵구나.”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용강한과 같은 신통한 재주까지는 없었다.“이 대인과 도 대인이 알아온 소식에 따르면, 이 소문은 이미 일 년 전부터 퍼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지금쯤이면 온 나라가 이 일을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음.”“사실 폐하와 태후마마, 그리고 용 대인의 요청대로 발인을 하면 이 소문을 막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네 분 모두 4년 전에 이미 붕어하셨다고 공표하는 것이지요!”이천은 고개를 저었다.“이런 일이 없었다면 아바마마와 어마마마, 외삼촌의 뜻대로 가짜 장례를 치러드렸을 것이나, 지금은 그럴 수가 없구나. 만약 누군가 이 일을 지켜보며 세 분을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려 한다면 어쩌겠느냐? 멀쩡히 살아계신 분들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 오히려 어마마마와 외삼촌 사이의 추문을 덮으려는 수작이라 공격받지 않겠느냐?”“……”심연희는 입술을 깨물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이럴 때일수록 섣불리 장례를 치러서는 안 됐다. 누군가 태상황 일행을 주시하며 상황을 파국으로 몰아넣으려 한다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었다.“그럼 어찌해야 합니까?”“계속 조사해야지. 이자들이 대체 무엇을 노리는지 알아내야 한다! 아바마마와 어마마마, 외삼촌께서는 이 일을 아신다 해도 우리가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만 보실 뿐, 더 이상 속세의 일에 관여하지 않으실 게다.”심연희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참으로 별스러운 일을 다 겪습니다.”“세상엔 생각지도 못한 일이 더 많단다.”심연희는 숨을
이영은 소열이 무어라 중얼거리는지 듣지 않았다. 그저 그의 입술을 빤히 바라보며 마음속의 한 가지 가설을 확인하려 했다. 예고도 없이 그녀는 허리를 숙여 한 손으로는 소열의 눈을 가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의 턱을 들어 올려 입을 맞추었다.입술이 맞닿는 순간, 이영은 믿기 힘들었다. 그의 입술에서 은은한 박하 향이 났기 때문이다. 감기에 걸려 반복되는 발열과 전신 무력감은 차치하더라도, 온몸을 짓누르는 욱신거리는 통증 탓에 침상에서 일어나기조차 힘들었었다.그런데 지금, 소열의 입술을 머금자 그 지독했던 통증이 씻은 듯이 가라
목숨을 보전해준다고?이육진이 바라본 은리흔은 이미 마성에 완전히 잠식되어 영락없이 사악한 마물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붉게 타오르는 두 눈은 마치 갓 떠오른 태양처럼 번뜩였고, 사람을 꿰뚫어 보는 그 눈빛은 이성이 없는 짐승의 그것과 다를 바 없었다.심초운이 다급히 말했다.“폐하, 일단 후퇴하시지요.”후퇴하자고?이육진이 보기에 은리흔은 이미 이성을 잃기 직전이었다.만약 오늘 이곳에서 물러난다면, 훗날 은리흔 부녀가 그가 머무는 용암전까지 들이닥칠 것이 분명했다. 그리되면 마족의 백성들은 또 어찌 된단 말인가?고민에 잠긴
“초운아, 너와 나는 모두 마족이다. 설마 너까지 저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선문의 놈들을 본받아, 나더러 저들에게 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하려는 것이냐?”“어머니!”심초운은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눈빛으로 은자유를 바라보았다.“지, 지금 뭐라 하셨습니까? 사람을… 천 명이나 죽였다고 하셨습니까?”“당연하지. 인간의 피와 살을 취해 수련하지 않는다면, 그 귀한 재료를 썩히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심초운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은자유의 냉혈한 모습을 응시했다. 그제야 그는 깨달았다. 자신과 이육진은 비록 마족의 몸을
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버니께 들었어요. 그때 폐하께서 떠난 뒤에 다시 추격당하는 바람에 얼굴이 망가지고, 끝내 다리도 고치지 못했다고 하더군요.”“그래. 경성으로 돌아온 뒤 태의원은 물론 천하의 명의라는 자들은 죄다 불러 보았으나 소용이 없었지. 그리고 너 또한 마치 증발이라도 한 듯, 그 어디에서도 소식을 찾을 수 없었다.”소우연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그땐 외조부님 댁에 머물고 있었어요. 집안에 큰일이 터져 식솔들이 모두 옥에 갇히는 바람에 손을 쓸 수가 없었죠. 제가 감옥에서 나왔을 때 폐하는 이미 그 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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