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이 떨어지자 회사 사람들은 순식간에 술렁이기 시작했다. 특히 그중 한 사람이 참지 못하고 크게 외쳤다.“예 대표님, 임 대표님이랑 사이가 좀 안 좋으신 건 알지만... 임 대표님은 정말 훌륭하신 분이에요. 우리 회사의 희망이란 말입니다! 제발 떠나지 않게 해주실 수 없나요?”“맞아요, 예 대표님. 부탁드릴게요. 임 대표님을 보내지 말아 주세요!”“그래요! 저희에겐 임 대표님이 꼭 필요해요!”“제발요. 임 대표님을 여기 남겨주세요!”“...”누군가 앞장서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간절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들 감정이 북받쳐 올라와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반응만 봐도 임완유가 얼마나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그 모습을 본 예선홍은 물론이고 당사자인 임완유마저 역시 깜짝 놀랐다.이 회사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까지 자신을 지지해 주는 사람이 많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예선홍은 속으로 크게 흔들렸다. 이 순간 그는 임완유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유능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란 걸 비로소 깨달았다.‘회장님께서 그녀에 대해 그렇게 강하게 말한 것도 단지 며느리라서가 아니라 정말 실력이 있어서였겠지.’그래서 그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퇴직 문제는 아직 확정된 게 아닙니다. 제가 직접 임 대표님과 상의하려고 이렇게 찾아온 거예요.”그도 역시 함부로 확답을 줄 수는 없었다. 솔직히 아직 임완유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녀가 진심으로 회사를 떠나고자 한다면 이런 자리에서 강제로 붙잡는 건 오히려 그녀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었다.예선홍의 말에 사람들은 조금 안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자신들의 행동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하는 기대감이 피어올랐다.“됐어요. 다들 이제 흩어지세요.”임완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으며 사람들을 진정시켰다. 그리고 예선홍을 사무실 안으로 안내했다.사무실에 들어서자 예선홍
‘어머님께서 이렇게까지 날 도와주는 건 역시 천우 때문일 거야. 천우를 사랑하니까 나도 아껴주시는 거겠지.’그런 마음을 느끼고 있자니 임완유는 문득 자기 엄마가 떠올랐다.‘왜 나는... 그런 엄마를 갖지 못했을까. 지금 나와 천우 사이의 격차는 엄청 클 수도 있어. 어쩌면 지금의 나는 예전에 엄마가 평가했던 천우보다도 더 뒤처진 상태일지 몰라.’그런데도 남궁은서는 단 한 번도 자신을 무시하거나 깔보지 않았고 오히려 어느 하나 빠짐없이 다정하게 챙겨줬다.‘엄마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임완유는 몇 번이나 전화를 걸까 말까 고민했지만 결국 누르지 못했고 자기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유은수는 한 번도 먼저 전화를 걸어온 적이 없었다.‘됐어. 이런 생각 해봤자 뭐 해...’그래도 예천우가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를 떠올리는 순간 임완유의 입가엔 저절로 미소가 번졌다.점심 무렵, 예천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임완유는 전화를 받고 곧장 건물을 나섰다.출입구를 나서자마자 바쁘게 어디론가 향하는 낯익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경인아!”“임 대표!”주경인은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듯한 얼굴로 급히 달려와 임완유를 불렀다.“무슨 일이야? 왜 그렇게 급하게 뛰어다녀?”임완유가 의아한 듯 묻자 주경인은 숨을 고르며 급히 말했다.“다른 방법이 없어서. 완유, 우리는 동창이잖아. 제발 본사 좀 같이 가줘. 예 대표님을 꼭 만나야 해. 이미 각오는 다 했어. 정말 큰 희생도 감수할 생각이니 제발 예 대표님이 한 번만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어.”주경인은 간절한 눈빛으로 임완유를 바라보았다. 임완유가 함께 가지 않으면 자신은 본사 입구에서 쫓겨나기 십상이었다.“신재생 배터리 사업 때문에 그러는 거지?”“응.”“근데... 예 대표님은 아까 오전에 여기서 떠났어.”“뭐? 다녀가셨다고? 지금 어디 계시는 거야? 혹시... 날 데려다줄 수 있어?” 주경인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재빨리 물었다.“지금쯤이면 비행기 타셨을 거야.
주경인은 잠시 멈칫했다. 임완유가 누구에게 물어보려는 건지 순간 떠올랐지만 더 묻지는 못했다. 지금은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백성그룹에서 제시한 마감일이 바로 오늘이었다.예천우가 예약해 둔 식당은 근처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도보로 3분 남짓한 거리였기에 그녀들은 금방 도착했다.레스토랑은 외관부터 범상치 않았다. 가격대도 일반인이 쉽게 들어올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고 내부 분위기 역시 고급스럽고 깔끔했다.예천우가 알려준 룸 번호에 따라 안으로 들어가자 이미 그가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임완유가 들어서고 주경인도 뒤따라 들어왔다. 그녀들이 안으로 들어선 순간 테이블에 앉아 있는 청년이 눈에 들어왔다.스물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그 남자는 말끔하고 단정한 인상이었으며 단박에 시선을 끄는 외모에 균형 잡힌 체격까지 갖추고 있었다.첫눈에 봐도 여자들이 호감을 느낄 법한 인상이었다.‘저 사람이 혹시 임 대표의 남자 친구일까? 근데 진짜 잘 생겼다... 눈도 좋네. 근데 저렇게 잘생긴 사람이 과연 능력은 있을까? 아니면 그냥... 얼굴로 먹고사는 스타일인 건 아니겠지?’주경인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임완유는 당당한 회사 대표이니 그녀의 곁에 있는 남자라면 당연히 눈여겨보게 될 수밖에 없었다.예천우도 자연스럽게 주경인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는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였지만 곧 차분해졌다.임완유는 주경인을 굳이 데려온 김에 일이 잘 풀리면 협력 얘기도 해보자는 생각이었기에 자연스럽게 소개를 건넸다.“천우, 이쪽은 내가 말했던 친구야. 한통 재료 회사의 주경인 주 대표야.”그리고 이어서 잠시 머뭇거리던 임완유는 뜻밖에도 이렇게 말했다.“경인아, 이쪽은 내 남편 예천우야.”원래 임완유는 남자 친구라고 소개하려다 자신도 모르게 남편이라는 단어가 입 밖으로 나왔다.그녀 마음속에서 예천우는 언제나 단 하나뿐인 남편이었다.세상이 어떻게 바뀌든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든 그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았다.“남편이셨어?”주경인은 조금 놀란 듯했지만 이내 빠
주경인은 살짝 당황했다. ‘갑자기 협상 얘기로 들어가는 거야? 그럼 혹시... 이미 해결할 방법이 있다는 뜻?’그렇다면 결국 관건은 자신이 얼마나 매력적인 조건을 내걸 수 있느냐에 달린 셈이었다.‘그래 분명 그럴 거야!’그녀는 서둘러 말했다.“예 대표님께선 어떤 방식이 괜찮다고 생각하세요?”그러자 예천우는 의외로 담담하게 말했다.“그건... 주 대표님이 먼저 말해보시죠.”그 말에 주경인은 잠시 망설였고 아버지가 언급했던 조건이 떠올랐다. 너무 높은 욕심을 부릴 순 없었고 지금은 그저 회사를 살리는 게 우선이었다.“... 가능하다면 1,000억 원을 투자받고 지분은 60%를 드릴 수 있어요. 대신 회사의 운영과 관리는 저희가 계속 맡고 싶습니다.”지금처럼 다급한 상황에서 더 이상 바랄 수는 없었다.하지만 예천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1,000억으론 부족해요. 그 정도로는 파급 효과조차 나기 힘들죠.”그는 말을 이어갔다.“이렇게 하죠. 저희가 4조 원을 투자하고 지분 80%를 갖겠습니다. 대신 회사 운영은 완유가 맡는 걸로.”“4... 4조 원이요?”주경인은 숨이 멎는 듯했다.그 숫자는 그녀가 상상했던 선을 훨씬 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하지만 동시에 지분 80%에 회사 운영권도 임완유에게 넘어가는 조건이었다.그녀는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혹시… 아버지께 먼저 여쭤봐도 될까요?”“물론이죠.”예천우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주경인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목소리는 예상대로 조급하고 긴장감이 가득했다.백성 그룹에 회사를 넘기면 조건도 나쁘겠지만 그 뒤에 어떤 문제들이 기다릴지 알 수 없었다.예천우의 제안을 들은 주 회장은 잠시 침묵에 빠졌다.4조 원이라는 금액은 단순한 자금 지원이 아니라 회사의 연구 개발과 설비를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하지만 회사 운영권을 잃는다는 건 아버지로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그러나 그는 결국
주경인은 순간 멍해졌다. 예천우를 의심한 게 티가 났던 걸까. 그걸 눈치챈 듯 임완유의 표정엔 눈에 띄는 불쾌함이 스쳤다. 그녀는 차분한 듯 말했지만 그 안엔 단단한 신뢰가 담겨 있었다.“경인아, 겨우 수십조 가지고 그래? 천우한테 그 정도는 별것도 아니야.”“...”주경인은 할 말을 잃었다.그녀가 말한 수십조는 사실 약간의 과장이 섞인 수치였다. 물론 공장 설립이나 대규모 설비 구축에는 수십조 수천조 단위의 자금이 드는 게 맞긴 했다.하지만 그걸 가볍게 넘겨버리는 임완유의 말투에 주경인은 어쩐지 말문이 막혔다.그런 주경인의 반응을 읽은 듯 임완유는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 꺼내더니 메시지를 하나 보여주었다.“안 믿기면 이거 한번 볼래?”주경인은 고개를 갸웃하며 화면을 들여다봤고, 그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20... 20조원?”액정에 떠 있는 수치는 너무나도 선명했다. 그녀는 숨을 삼켰다. 지금껏 이런 숫자를 직접 본 적은 없었다.“이걸... 천우 씨가 준 거야?”“그렇다기보다... 그때 내가 배터리 산업에 관심 있다고 하니까 그냥 아무렇지 않게 20조 원쯤은 용돈처럼 보내더라고. 모자라면 또 말하래.” 임완유는 마치 대수롭지 않다는 듯 덤덤하게 말했다.이쯤 되자 주경인은 머릿속이 하얘졌다.임완유를 오래 알고 있었기에 그녀가 거짓말을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저렇게 말할 정도라면 그건 정말로 사실일 가능성이 컸다.‘20조? 그게... 용돈이라고? 이 남자는 대체 정체가 뭐지.’주경인은 눈앞의 예천우가 점점 현실감 없는 인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너무 압도적이어서 오히려 믿기 힘든 감각이었다.그때 예천우도 그 대화를 듣고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내가 언제 20조를 용돈이라고 했어?”속으로 생각하며 어이없는 표정이 떠올랐다.자신도 돈이 많긴 하지만 20조를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용돈이라 말하진 않았다. 하지만 임완유는 지금 일부러 저렇게 말하고 있었고 예천우는 그제야 눈치를
“됐어요. 완유를 봐서라도 그냥 넘어가 줄게요.”예천우는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막 전화를 걸려던 찰나 갑자기 주경인의 핸드폰이 울렸다. 그녀는 화면을 확인하더니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마... 두석이예요.”주경인은 조심스럽게 말했다.“오, 잘됐네요. 전화비 아꼈네요.”예천우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며 미소 지었다.“...” 주경인은 난감한 얼굴로 전화를 받았고 예천우가 옆에서 듣기 쉽도록 바로 스피커폰을 켰다.“마 대표님, 안녕하세요.” 정중하게 인사를 건넸지만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싸늘했다.“주 대표님, 우리 쪽 제안은 어떻게 생각했습니까?”목소리엔 일말의 여유도 없었고 거들먹거리는 기색마저 느껴졌다.주경인은 슬쩍 예천우를 쳐다봤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그 침묵이 오히려 더 불안하게 다가왔다.“마 대표님, 그 조건은 솔직히 너무 과합니다. 저희로선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그래요? 그 말은 곧 거절하겠다는 뜻이군요?”마두석의 말투가 점점 거칠어졌다.주경인은 다시 한번 예천우를 바라봤지만 여전히 반응은 없었다. 그래서 주경인은 망설이다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죄송합니다. 저희로선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좋아요. 그 말씀... 기억하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저도 봐주지 않겠습니다.”목소리에는 노골적인 협박이 실려 있었고 주경인의 손끝이 떨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결국 예천우를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냈고 그제야 예천우가 입을 열었다.“마 대표님, 제법 위세 등등하시네요?”“누구야?”전화기 너머에서 마두석의 목소리가 잠시 멈췄다. 그 목소리엔 분명 낯선 듯한 불쾌감이 나타났지만 곧바로 확신에 가까운 두려움이 드러났다.“설마... 예 대표님이신가요?”“나야.”예천우의 말투는 여전히 담담했다.“근데 예 대표님이라 부르지 마. 괜히 불편하게 그러지 마시고 그냥 계속하던 대로 반말해. 마 대표님께서 화나시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아, 아뇨! 절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예 대표
주경인의 마음속은 한마디로 폭풍 그 자체였다.처음 마두석이 전화를 받자마자 보인 그 절박한 공포감부터가 그녀를 놀라게 했지만 그다음 마두석의 반응은 거의 죽기 직전 사람처럼 살려달라 애원하는 수준이었다. 단지 전화로 목소리를 들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무너지는 걸 보니 마두석이 예천우를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뼈저리게 느껴졌다.‘어떻게... 한 사람이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까지 벌벌 떨 수가 있지?’그건 단순한 겁이 아니었다. 그건 권위, 신분, 영향력 그런 것들이 합쳐졌을 때 나오는 압도적인 위압감이었다.이제야 주경인은 아까 예천우가 한 말이 떠올랐다.전화 한 통이면 해결된다고 했을 때 그녀는 속으로 의심했다. 정말 전화 한 통으로 해결될 수 있을지 믿음이 가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보니 전화까지도 필요 없었다. 그냥 한마디 기침만 해도 마두석은 바로 바닥에 무릎 꿇고 빌었을 것이다.그 모습을 보며 임완유도 잠시 말을 잃었다. 물론 그녀는 예천우가 대단한 인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주경인이 말한 것처럼 상대는 동성 4대 가문 중 하나인 백씨 가문이었다. 그리고 백씨 가문의 핵심 기업인 백성 그룹조차 예천우 앞에선 꼼짝 못 한다니...“예 대표님, 정말 죄송해요. 제가... 제가 너무 무지했어요. 감히 대표님의 능력을 의심하다니요...”주경인은 자신이 조금 전 보였던 태도를 떠올리며 고개를 숙였다.이 정도의 인물이라면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이미 다 꿰뚫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그녀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이 사람은 절대 건드려선 안 되는 존재였다.“괜찮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사이도 아닌데요.”예천우는 담담히 말하며 시선을 돌렸다.“이제 특별한 일 없으면, 주 대표님은 가보셔도 돼요. 완유가 시간 날 때 연락드릴 겁니다.”“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주경인은 얼른 일어나 자리에서 물러났다. 사실 더 있고 싶었지만 방금 전의 일을 떠올리자 그럴
‘예웅남이 자기 친아버지인 예 어르신을 해치려 한다고?’예천우의 눈빛이 서서히 차가워졌다.하지만 지금의 예씨 가문은 이미 사방에서 흔들리는 위태로운 상태였다. 언제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균열은 깊고 넓게 퍼져 있었다.‘좋아. 그럼 며칠만 더 기다려보자.’‘그 틈에 기어 나올 자들이 더 있을 거야. 한 놈도 빠짐없이 죄다 한꺼번에 쓸어버리고 예씨 가문에 맑은 하늘을 되찾아주자. 그리고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건 사부님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그것도 지켜봐야 해.’ 지금 이 시점에서조차 가벼운 의심이 예천우의 마음 한구석에서 싹트고 있었기 때문이다.시간이 좀 남자 예천우는 문득 마두석이 떠올랐다. 이번 사건을 통해 보니 마두석도 보통 놈이 아니었다. 왠지 꺼림칙한 느낌이 들어 바로 조사 지시를 내렸다.‘참, 이신향이랑 유사라가 백성 그룹에 다니고 있었지. 차라리 둘을 불러내어 백성그룹의 내부 사정을 좀 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예천우는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원래는 유사라에게 전화를 걸까 했지만... 그녀의 마음을 생각해서 괜히 오해 살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예천우는 이신향에게 전화를 걸었다.한편 이신향과 유사라는 최근 회사 내부 인사에 변화가 생길 거라 기대하며 계속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무언가 달라질 줄 알았던 그녀들이었지만 여전히 마 대표는 건재했고 나머지 간부들도 전혀 변함이 없었다.그래서 그녀들은 실망감이 컸다. 다만 오늘은 유난히 시비를 걸어오던 도성욱이 나타나지 않았다. 회사 분위기가 바뀌는 와중에 움직이기 조심스러운 걸지도 모른다.오후가 되자 이신향의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을 확인한 그녀는 반가운 마음에 곧장 전화를 받았다.“천우 씨!”“네. 지금 회사에 있어요?”“네. 근데 통화는 괜찮아요.”“다름이 아니라 오늘 저녁 시간 괜찮으면 신향 씨랑 사라 씨 좀 봐요. 제가 저녁 살게요.”“좋아요. 꼭 시간 낼게요.”“몇 시에 퇴근해요?”“6시요.”“좋아요. 그
조신우는 이제 더 이상 버티기 힘들 정도로 처참한 상태였고 예천우가 한 번만 더 손을 쓰면 그가 어떻게 될지는 뻔했다.그런 상황에서도 조신우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들며 이를 갈듯 외쳤다.“죽어도... 너한테는 절대 안 빌어!”그러자 예천우는 차분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좋아. 그럼 이번엔 네 팔 하나쯤 부숴줘야겠네.”말이 끝나자마자 예천우는 주저 없이 발을 옮겨 조신우의 팔 쪽으로 중심을 이동했다.그러고는 단 한 순간 아무 망설임 없이 발을 내리찍었다.“으악!”이번엔 조신우의 비명이 더욱 뼈를 깎는 듯했고 방 안에 울려 퍼지는 그 소리에 모두가 혼비백산했다.“안 돼. 그만둬!”이재동이 다급히 외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옆에 있던 이신향을 향해 소리쳤다.“신향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얼른 가서 말려. 지금 당장 멈추라고 해!”하지만 이신향은 아무런 반응 없이 차갑게 말했다.“왜요? 자기가 그렇게 잘난 척하다가 스스로 자초한 거잖아요. 내가 왜 말려요? 천우 씨는 지금 정당하게 싸우고 있는 거예요.”“너... 너 정말 미친 거 아니냐. 내 딸이 이렇게 멍청했던 거야?”이재동은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며 발을 동동 굴렀다.“이번엔 정말 끝이야... 이번엔 진짜 우리 가족 다 죽게 생겼어!”한지연 역시 표정이 창백했지만 그 와중에 오히려 이선우가 벌떡 일어나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죽으면 죽죠! 난 더는 저딴 조신우한테 굽히고 살기 싫어요. 누나, 미안해요. 다 나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긴 거예요. 엄마, 아빠, 걱정하지 마세요. 만약 진짜 일이 터지면 저 혼자 감당할게요.”“감당은 무슨 감당이야.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조씨 가문이 얼마나 무서운지 똑똑히 봤잖아. 넌 그런 걸 감당할 수 있는 놈이 아니야!”이재동은 거의 울부짖다시피 외쳤고 그 시선은 다시 이신향에게 향했다.“신향아, 이게 다 네가 자초한 일이야. 네가 이 사태를 만든 거라고.”그러고는 예천우를 향해 이를 악물고 외쳤다.“그리고 너, 예천우!
“웃기고 있네.”조신우는 코웃음을 치며 예천우를 비웃었다.“너 같은 쓰레기가 뭘 할 수 있겠어? 믿을 수 없으면 한번 해보든가.”예천우는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이 멍청이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줄을 모르네. 이젠 말로 안 통하겠군.’ 그는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좋아. 네가 원한 거니까 제대로 맛 좀 보여줄게.”조신우는 속으로 살짝 기뻤다. ‘드디어 이 찌질이가 덤벼오네. 이놈 입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망신당했는데... 지금부터 그 수모를 전부 갚아줄 거야.’조신우는 예전에 자기 돈으로 무술 사부님을 몇 명을 고용해 몇 가지 동작을 배운 적이 있었다. 물론 제대로 된 수련은 아니었고 훈련도 게을리해 실전 경험이라곤 없었지만 일반인 두셋쯤은 충분히 제압할 수 있을 수준이었다.“일대일이야. 그러니 누구도 우리를 말려서는 안 돼. 무릎 꿇고 빌기 전까진 끝이 아니야.”조신우는 허세 가득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래.”예천우는 망설임 없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이재동과 주변 사람들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어차피 저 녀석이 알아서 죽겠다는 건데 우리가 말려봤자 괜히 조 도련님만 더 화나게 하겠지...’조신우는 예천우가 정말로 나서는 걸 보고 미소를 지었다.‘그래. 이걸로 다시 내 체면을 회복하면 되겠지.’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짝!”예천우가 한 발 앞으로 다가서자마자 그대로 그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너 이 자식... 비겁하게 기습하는 거야.”조신우는 얼굴을 싸쥐며 소리쳤지만 다음 순간 또 한 번의 따귀가 날아들었다.“짝!”이번엔 정면이었다.예천우는 담담하게 말했다.“이번엔 기습 아니니까 할 말 없겠지?”조신우는 충격으로 말을 잃었다. 조금 전 따귀는 정말 피할 수도 막을 수도 없었다. ‘어떻게 된 거야... 분명히 내가 더 빠르고 강한데... 저 자식은 그저 공부나 하던 놈 아니었어?’그러나 예천우는 멈추지 않았고 이번엔 조신우의 다리를 향해 그대로 발을 뻗었
방 안은 분노로 가득 차 있었고 조혁진 또한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지만 그는 도민현이 강흥시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지금 도민현이 진심으로 칼을 빼들면... 우리 조씨 가문은 정말 끝장이겠지.’하지만 그는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이해할 수 없었다.‘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지? 우리가 용왕이라는 사람을 건드릴 일이 있었나? 조씨 가문이 아무리 무례하다 해도 눈치 없이 그런 인물한테 손댈 리 없잖아...’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전태민 시장의 휴대폰이 울렸다.화면을 확인한 그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왕 총독님, 저한테 직접 전화를 주신다니... 정말 영광입니다.”왕 총독은 이미 도민현의 힘과 그 뒤에 있는 용문이라는 조직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인물이었다.그는 도민현이 강흥시에 대규모 투자를 하려 한다는 걸 알고 있었고 이 기회를 꼭 살리고자 했다.강흥시가 발전하면 자신의 정치 커리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지금 협상은 잘 되고 있나?”왕 총독이 물었다.전태민은 순간 식은땀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그게... 조금 문제가 생겼습니다.”그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최대한 빠르게 요약해서 설명했다.그리고 목소리에 힘을 주며 말했다.“도민현이란 그 자식은 뒤에 용왕이 있단 걸 핑계로 아예 우리를 무시했습니다. 너무 오만하고 제멋대로라 제가 직접 그 자리에서 따끔하게 경고했습니다. 용왕이 뭐 대단하다고 우리 정부 사람을 흔들려고 하는 거죠? 저희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필요하다면 그 용왕이라는 자식도 좀 혼내려고요.”전태민은 평소 왕 총독이 단호하고 강경한 스타일이라는 걸 알기에 일부러 자신을 강하게 포장하려고 했다.‘이런 모습 보여주면 총독님도 날 인정해 주시겠지.’하지만 다음 순간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왕 총독은 큰소리로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뭐라고? 용왕님을 혼내겠다고? 전태민, 너 지금 제정신이야?”왕 총독의 고함이 너무 커서 주변에 있던 사람들까지
그 모습을 본 전태민 시장과 간부들은 도민현의 반응이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들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불쾌했던 감정을 누그러뜨릴 수 있었던 건 도민현의 얼굴에 드러난 그 진중하고 긴장된 태도 때문이었다.‘도대체 어떤 존재길래 강흥시에서 잘나가는 이 도민현조차 저리도 조심스러워하는 걸까?’그러던 중 도민현의 입에서 낮고 묵직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용왕님, 말씀하십시오.”‘용왕?’방 안에 있던 이들의 눈빛이 동시에 흔들렸다. ‘용왕이라니... 설마 그 용문? 전설적인 비밀 조직이라는 그 집단의 실질적인 우두머리?’그간 소문처럼 떠돌던 이름은 들어본 적 있었지만 실체는 아무도 본 적 없었다. 그런데 지금 도민현의 입에서 직접 그 이름이 나온 것이다.전화기 너머에서 예천우의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도 대표, 하나 묻자. 장산군 사정 좀 알고 있어? 거기서 제법 영향력 있는 가문이 하나 있다더라. 조씨 가문이라고... 들어봤어?”그 말에 조신우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봐봐. 끝까지 쇼하네. 이 전화는... 그냥 자기 친구랑 짜고 치는 거겠지. 곧 들통날 거야.’도민현은 잠시 멈칫했지만 곧 조심스럽게 답했다. “예. 그 가문의 가주는 조태영이라 하고 지역에선 꽤 이름이 있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전화기를 들고 있던 전태민 시장은 조용히 그 이름을 되새겼다.‘조태영이라하면... 조신우의 아버지 아닌가?’옆에 서 있던 조혁진은 순간 얼굴이 굳었다.‘설마... 아냐... 이건 아닐 거야. 아닐 거야...’그 순간, 예천우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그래. 조씨 가문, 그 집안을 내가 완전히 무너뜨리고 싶다면... 할 수 있겠어?”그 말에 도민현은 더는 망설이지 않고 깊은숨을 들이쉬고는 단호하게 말했다. “물론입니다. 그깟 조씨 가문 정도야 하루 안에 끝장낼 수 있습니다.”“좋아. 그럼 바로 실행해.”예천우는 감정 하나 실리지 않은 목소리로 차분히 말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었다.도민현은 조
조신우는 여전히 뻔뻔한 얼굴로 사람들을 내려다보며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특히 이신향이 당혹감과 분노가 뒤섞인 얼굴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며 그는 더없는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봐라. 이게 바로 힘이란 거야.’그 순간 이선우가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말도 안 돼. 내가 분명히 빌린 돈은 24억이었어요. 갑자기 50억이라니!”그는 눈이 충혈된 채로 씩씩거렸고 뭔가 이상하단 걸 뒤늦게 깨달았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조신우는 냉소를 머금고 대꾸했다.“흥, 돈을 빌려놓고 이자가 없을 줄 알았어? 내가 대신 갚은 돈이 40억이 넘는데 이 정도 이자도 못 붙여? 솔직히 말해서 내가 딴 데다 굴렸으면 지금쯤 2배는 됐을 거다.”예천우는 조용히 한마디를 던졌다.“네가 운영하는 도박장이면 열 배도 가능하겠지.”“그래. 그게 뭐?”조신우는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우리 조씨 가문에서 굴리는 도박장이야. 돈 버는 건 시간 문제지.”“합법적이야?”예천우가 다시 묻자 순간 조신우의 얼굴에 미세한 경련이 일었고 그는 곧 다시 웃으며 코웃음을 쳤다.“합법 아니면 어쩔 건데? 우리 집이 장산현에선 곧 법이야. 누가 감히 우리를 건드리겠어?”그러고는 고개를 빳빳이 들며 예천우를 노려봤다.“좋아. 네 말들 들으니 시름 놓고 너희 가문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어.”“됐고. 아까 큰소리쳤지? 날 죽이겠다고? 해 봐. 당장 여기서 네가 할 수 있는 게 뭔데?”조신우의 말투엔 조롱이 가득했고 지금 그는 예천우를 단지 입만 산 놈으로 여기고 있었다.이재동을 비롯한 가족들은 다시 한번 고개를 저었다.‘예천우... 이젠 정말 끝났어.’그들은 신고 같은 건 아무 소용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집안은 다 뒷배가 탄탄하고 누구도 감히 섣불리 손대지 못했다.하지만 그때 예천우가 무심한 표정으로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그리고 이신향을 향해 물었다.“신향 씨, 장산군은 강흥시에 속하죠?”이신향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아요.”이 대화를 들은 조신우
예천우의 말이 떨어지자 방 안은 순간 얼어붙었다.사람들은 모두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았고 이재동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속으로 절망했다.‘얘 지금 미쳤나? 이 상황에서 조신우한테 그런 말을? 아무리 무모해도 그렇지... 저건 그냥 자살 선언이나 다름없잖아! 조신우가 어떤 신분인데 감히 저런 말을 하는 거아. 조씨 가문은 돈도 있고 권력도 엄청난데... 정말 건드릴 수 없을 존재인데... 휴... 나도 할 만큼 했으니 예천우도 날 탓하지 않겠지. 무식한 자식...’조신우는 한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박장대소를 터뜨렸다.“하하! 야, 너 진짜 웃긴다... 나보고 죽을 준비를 해라고? 너 대체 뭔데 그런 말을 해? 무식하고 건방진 자식. 설마 그 이성진 회장한테 명함 한 장 받았다고 자기가 무슨 대단한 인맥 가진 줄 아는 거냐? 그 사람은 그냥 네 술 맛있어서 인사한 거다. 넌 그냥 술 한 병 준 들러리일 뿐이야. 네가 한 말 똑같게 돌려줄게. 지금 당장 여기서 꺼져. 아니면 줄은 준비나 하든지. 나 조신우가 한 말이야. 누구도 널 구할 수 없어!”물론이죠. 아래는 요청하신 다음 화의 자연스럽고 몰입감 있는 한국어 번역입니다:조금 전 무릎 꿇고 수모를 당했던 기억이 그 순간 싹 씻겨 내려가는 듯했다.‘그래. 봤지? 이성진조차 우리 삼촌 눈치 본 거야. 이제 모든 체면이 돌아왔네.’조신우의 머릿속은 자만과 승리감으로 가득 찼고 이재동을 비롯한 가족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예천우, 이번엔 진짜 끝장이구나...’하지만 정작 이신향의 얼굴은 의외로 차분했다.그녀는 여전히 시선을 예천우에게 두고 있었고 속내를 알 수 없는 미묘한 냉정함이 깃들어 있었다.‘조신우 따위가 어떻게 천우 씨를 이겨...’그 순간 예천우가 고개를 가볍게 저으며 입을 열었다.“네가 그렇게 죽고 싶다니... 내가 도와줘야지.”“뭐?”조신우는 코웃음을 치며 맞받았다.“하하! 내가 지금 죽고 싶다고?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야, 네가 나한테 뭘 할 수 있는데?”
“그리고 너... 이신향, 네가 뭐 대단한 여자가되는 줄 알아? 내가 기회를 줬는데도 걷어찼으니... 이제부터는 나도 봐주는 거 없어.”조신우는 눈빛을 서늘하게 바꾸며 이어 말했다.“이선우, 이건 네 누나 탓이니까 괜히 날 원망하진 마. 선택은 둘 중 하나야. 40억을 준비하든가... 아니면 감방 갈 준비나 해.”이쯤 되자 그는 완전히 본색을 드러냈고 말 그대로 막 나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자기 분노 때문에 정작 예천우가 어떤 사람인지 왜 그런 여유 있는 태도를 보였는지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조신우의 말이 끝나자 방 안 분위기는 싸늘하게 가라앉았고 이재동을 비롯한 가족들 얼굴에는 먹구름이 드리워졌다.특히 이재동은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애원하듯 말했다.“조 도련님... 말씀이 좀 심하십니다. 이건 우리 잘못이 아니잖아요. 저희는 줄곧 도련님 편이었는데요.”“그래?”조신우는 입꼬리를 비틀며 차갑게 대꾸했다.“그럼 간단하지. 당장 저놈 끌어내. 저 예천우란 놈 지금 당장 꺼져주면 내가 조금은 봐주지.”그 말에 이재동은 주춤거리며 예천우를 바라봤지만 그보다 먼저 이신향이 목소리를 높였다.“아빠, 지금 무슨 말씀이세요? 그게 무슨 말이냐고요!”이재동은 딸의 질문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결국 고개를 돌려 예천우를 바라보며 힘없이 말했다.“천우야, 그만 돌아가. 난 널 사위로 생각한 적 없어. 우리 신향이한텐 조 도련님이 훨씬 더 어울리는 짝이야.”그 말에 조신우는 입꼬리를 올리며 비웃었다.“이제 좀 상황 파악되냐? 누가 진짜 실력 있는 사람인지... 누가 진짜 남자인지. 어디서 싸구려 가짜 술이나 들고 와선 뭔가 될 줄 알았나 본데... 그런다고 네가 찌질이란 사실이 달라질 것 같아?”그는 속으로 확신하고 있었다.‘저 술을 어디서 주워왔든 아니면 맛이 그럴듯해서 속은 거든... 저 새끼는 결국 그냥 찌질한 놈이야.’그는 원래 몇 천만 원짜리 술이라도 꺼내서 겁줄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조차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하지만 그때
예천우의 말이 끝나자 그제야 방 안 사람들 모두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기 시작했다.결국 술은 이성진 회장의 손에 들어갔지만 문제는 이 술은 조신우가 내놓은 것도 그가 사죄의 의미로 바친 것도 아니라는 점이었다.말하자면 조신우는 아무런 대가도 치르지 않았고 단지 무릎만 꿇고 멋쩍은 사과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이 장면을 바라보던 조혁진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이 자식이... 감히 신우한테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치냐. 대체 무슨 심보일까.’그는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따지고 들 상황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조신우가 이번 사고만 무사히 넘기면 그땐 따로 시간을 내서 따끔하게 손을 봐줄 생각이었다.이성진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상황을 파악하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재밌는 친구구먼. 이름이 뭐지?”예천우는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예천우입니다.”“그래. 이름 기억해 두지. 오늘 자네 덕 좀 봤네.” 이성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사실 이 술을 돈 주고 못 마시는 것도 아니지만 워낙 희귀한 술이다 보니 아무리 부자라도 마실 기회가 흔치 않았다.82년산 라피노 같은 와인은 평생 마셔도 마실 수 있는 술이겠지만 이런 국보급 백주는 한 병 마실 때마다 하나가 사라지는 셈이다.“회장님, 별말씀을요.”예천우는 여전히 담담한 어조였다.이성진은 더 말하지 않고 시선을 돌리다 테이블 위에 놓인 마오타이를 보고는 다시 한번 눈썹을 치켜세웠다.“오성 마오타이 58년산이라니... 자네 보통 친구는 아닌데?”“지인이 준 겁니다.”예천우가 가볍게 대답했다.“지인도 대단한 사람이구먼. 자네란 사람... 점점 더 궁금해지는군.”이성진은 감탄한 듯 웃으며 지갑에서 명함 하나를 꺼냈다.“이건 내 명함이네. 기회 되면 같이 한잔하지.”조혁진은 속으로 진저리를 쳤다.‘세상에... 술 한 병 때문에 회장님이 저 녀석한테 이렇게 친절하게 대하시다니. 대체 저놈 주변에 어떤 인맥이 있는 거야?’그는 그 순간 조신우보고 예천우를 조심하라
“됐어. 난 사과받을 자격 없어.”이성진 회장이 싸늘하게 말하자 조신우는 완전히 얼어붙었다.그는 그저 백주 협회 회장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도 몰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막말을 퍼부은 그 사람이 그렇게까지 대단한 인물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게다가 자기 삼촌인 조혁진조차 식은땀을 흘리며 머리를 조아릴 정도였다.하지만 조신우가 몰랐던 건 애초에 조혁진이 이번 술자리의 자리에 함께하게 된 것도 운이 좋았을 뿐 그조차도 이 자리에 참여할 자격이 애매한 사람이었다.왜냐하면 오늘 자리는 강흥시의 유명 인사인 도 대표님이 이 지역 투자 건으로 방문하면서 직접 시장이 배석해 마련한 자리였기 때문이다.“뭘 멍하니 서 있어. 당장 무릎 꿇어!”조혁진의 얼굴은 이미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고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조신우를 꾸짖었다.조신우는 더는 버틸 수 없었다.그 누구보다 조혁진에게는 함부로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았고 그의 얼굴만 봐도 지금 자신이 얼마나 큰일을 벌였는지 직감할 수 있었다.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특히 이신향 앞에서 무릎을 꿇는 건 자존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았다.조혁진은 이미 분노의 극에 달해 주먹이라도 날릴 기세였다.그제야 조신우는 이를 악물고 한 걸음 앞으로 나서더니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회장님...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어두워 뵙지를 못했습니다. 제 무례를 용서해 주십시오.”그에 맞춰 조혁진도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이 회장님, 신우가 정말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제가 따로 시간을 내서 제대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조만간 반드시 직접 찾아뵙겠습니다.”“됐어.”이성진은 냉정하게 잘라 말했다.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 사과하러 온다는 건 결국 선물이나 뇌물 같은 걸 들고 오겠다는 뜻이었다.하지만 그는 그런 건 관심도 없었다.“오늘처럼 기분 상하게 하는 일도 드물었지만 그래도 이 술을 만난 덕분에 기분이 조금 풀렸어. 그 공으로 이번만은 눈 감고 넘어갈게.”그러고는 술병을 가볍게 들어 보이며 물었다.“이 술은 네 것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