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훈은 덤덤하게 한고운을 안고는 웃으면서 말했다.“어린이들 눈에는 순포사도 아저씨야. 맞지 한고운?”한고운은 생각을 하더니 한지훈이 날리는 윙크를 보고 바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다.“응.”강우연은 미간을 찌푸리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반나절 후 한고운은 잠이 들었다. 강우연은 한쪽 끝에 앉아 있는 한지훈을 보더니 그한테로 다가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미안해요, 아까는 제가 너무 충동적이었어요. 당신.... 괜찮죠?”한지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강우연을 바라보더니 얼굴을 만지며 부드럽게 말했다.“난 괜찮아. 난 오히려 당신한테 매일 맞고 싶은걸.”강우연은 한지훈을 힐끗 쳐다보더니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당신은 입이 참 가벼워요.”그리고 분위기가 갑자기 다운되더니 두 사람 사이엔 대화가 없어졌다.“당신...”“당신...”한순간, 한지훈과 강우연은 같은 타이밍에 당신이라고 말했다. 그러고 한지훈은 웃으면서 강우연을 보면서 말했다.“당신 먼저 말해요.”강우연은 그제야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면서 근심 가득하면서도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연씨가문의 사건을 당신이 해결할 자신 있어요? 3일 후면 길정우가 군단장으로 취임하는 날이에요. 만약 당신이 아직도 해결 방법을 생각해 내지 못했다면 빨리 S시를 떠나요...”한지훈은 웃으면서 근심 가득한 강우연의 얼굴을 보더니 물었다.“지금 저를 걱정하는 거예요?”이 얘기를 듣자 강우연은 한지훈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다.“누가 걱정을 해요! 꿈 깨요! 전 그저... 그저 고운이가 걱정돼서 그런 거예요. 고운이가 당신을 그렇게 따르는데 만약 당신한테 일이 생겨봐요 그럼 고운이는... 엄청 속상해할 거예요. 한지훈씨, 제 말에 동의해 주세요. S시를 떠나요. 그러면 연씨가문도 당신을 대처할 방법이 없을 거예요.”한지훈은 웃더니 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한고운을 보며 말했다.“나도 알아요. 걱정 말아요. 모든 것이 다 잘 해결될 거예요.”강우연은 더 말하고 싶었지만,한지훈의
서경희는 군용 지프차가 떠나는 것을 보고 의심 가득한 얼굴로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휴, 강학주 저기 군용차를 좀 보세요, 아까 올라탄 사람이 한지훈 아니에요? 그 군용차의 번호판이 용군00001인것 같았어요!”강학주는 고개를 돌려 시야에서 멀어지는 군용차를 보고 말했다.“당신이 잘못 본 것일 거야 가자.”서경희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몇 마디 중얼중얼 거리고는 이 사건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세 사람은 병실에 도착했고 강우연이 한고운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서경희는 차갑게 물었다.“강우연 한지훈은? 왜 너 혼자만 있는 거지?”강우연은 일어서면서 말했다.“엄마, 강지훈 아까 금방 갔어. 개인 사정 때문에 이틀 동안S시를 떴어.”“뭐?! S시를 떠났어? 그것도 이틀이나?!”서경희는 이 얘기를 듣고 순간 화가 나서 다리를 치며 말했다.“강우연, 강우연! 너 바보야? 한지훈 그 상가견이 무슨 개인 사정이 있겠어? 삼일 뒤면 길정우 중장이 군당장으로 취임하는 날인데 한지훈이 이시각에 이틀 동안 S시를 뜬다고? 쟤 지금 너희 모녀 둘을 두고 도망간거야! 이틀은 무슨 이틀,다 핑계야! 내 보기에는 다시는 안 돌아 올거 같아!”서경희의 한마디에 병실 분위기는 순간 조용해졌다.강우연도 멍하니 있다 얼굴에는 의심하는 표정이 스쳤다. 그러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엄마 안 그럴 거야. 난 한지훈을 믿어. 무조건 처리 해야 할 개인 사정이 있어. 처리 다 하면 돌아올 거야. 절때로 나랑 한고운을 버리지 않을 거야.”“아이참! 너 이 고집불통아! 한지훈이 뭐라면 뭐인 거야? 한지훈이 도대체 너한테 무슨 유혹적인 행동을 했기에 이토록 감싸고 도는 거야? 강우연 넌 잊지 마. 5년 전, 한지훈만 아니면 네가 지금 이 모습 일거 같아? 걔만 아니면 일찌감치 부잣집에 들어가 부잣집 부인이 됐어!”서경희는 화가 터졌다.강학주도 얼굴색이 어두워서 물었다.“진짜 이틀 동안 S시를 뜬다고 했니?”강우연은 고개를 끄덕였다.원래 강우연은 한지훈을 믿었지만 서경희의 말
순간 군졸들이 달려들어 강학주와 서경희를 바닥에 제압했다.강우연도 그들의 마수를 피해 가지는 못했다. 그녀는 두 손이 결박된 채, 소파에서 제압당했다.그들은 병상에 있는 고운이조차 거칠게 잡아당겨 포박했다.분노한 강우연이 소리쳤다.“당신들 누구야! 내 딸 풀어줘! 그 아이는 건드리지 말란 말이야!”놀란 고운이가 울음을 터뜨렸다.“엄마, 고운이 너무 무서워! 아저씨들 우리 엄마 풀어주세요. 저희는 죄를 저지르지 않았어요. 아빠는? 엄마, 아빠는 어디 있어?”머리가 산발이 된 서경희도 새된 비명을 질렀다.“악! 당신들 누구야?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이러는 거야! 사람 살려!”짝!선두에 선 군졸이 서경희의 뺨을 때리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입 다물어! 우린 길정우 중장님의 명령을 받고 당신들을 체포하러 왔어! 이봐, 빨리 이 사람들 끌고 나가!”지시가 떨어지자,군졸들이 서경희 일가를 끌고 병실을 나갔다.정신이 아찔해진 서경희가 소리쳤다.“우연아! 이게 다 너랑 한지훈 때문이야! 이제 어떡해! 우리 이러다 죽는 거 아니야?”서경희는 눈물범벅이 되어서도 안 가겠다고 두 다리로 버텼다.강학주 역시 분노한 눈빛으로 딸을 쏘아보며 소리쳤다.“너희들 때문에 우리까지 피해를 보는구나! 한지훈 이놈은 진작에 알고 도망간 것 같아!”강우연도 혼란스러운 얼굴로 군졸들에 의해 병실에서 끌려 나갔다.그들 일가는 형이 확정된 범죄자들처럼 전부 군졸들에게 이끌려 병원을 나섰다.주변에서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저 사람 강운의 강우연 아니야? 누구한테 밉보였기에 군인들까지 출동해서 끌고 가는 거지?”“몰랐어? 저 여자 남편 한지훈이 길정우 중장 심기를 건드렸잖아. 길시아 결혼식에서도 깽판을 부리고 길시아를 폭행까지 했대! 아마 저 사람들 쉽게 빠져나가기 어려울 거야!”“불쌍하네. 저 어린애는 무슨 죄야? 애한테까지 수갑을 채웠네.”사람들은 작디작은 손에 수갑을 차고 엉엉 울음을 터뜨리는 고운이를 측은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병원을
비굴하게 애원하는 두 모자를 보자 강학주는 화가 치밀었다.“지금 뭣들 하는 거지? 당장 일어나! 창피한 줄도 모르고!”강우연 역시 실망한 표정으로 엄마와 동생을 바라보았다.길시아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풀어줘? 하! 그럴 수는 없지! 난 강운의 모든 사람들을 다 잡아들일 생각이야! 물론 강우연 네가 내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면 네 딸과 부모님은 풀어줄지 고민해 볼게. 어떻게 생각해?”그녀는 오만방자한 자태로 강우연 일가를 내려다보았다.강우연은 울고 있는 고운이를 보자 마음이 아팠다.서경희와 강신이 다급히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강우연! 뭘 고민하고 있어? 당장 무릎 꿇고 시아 씨한테 사과하지 않고! 우린 잡혀가고 싶지 않아! 이 일은 처음부터 너랑 한지훈이 잘못한 거잖아! 우리까지 피해를 보게 하지 마!”서경희와 강신의 압박에 강우연은 눈물을 머금고 긴 한숨을 토해냈다.“나만 꿇으면 내 딸과 부모님은 풀어줄 거지?”길시아가 차갑게 대답했다.“그래.”그 말이 끝나기 바쁘게 강우연은 쓰린 표정으로 무릎을 꿇었다.“네 말대로 꿇었으니까 내 딸과 내 부모님은 풀어줘. 모든 건 나 혼자 책임질게.”길시아가 광기 어린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강우연, 정말 순진하네. 너 하나 꿇는다고 내가 정말 저 사람들을 풀어줄 줄 알았어? 웃겨!”강우연은 가슴이 철렁해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길시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날 속였어?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길시아는 다가가서 그녀의 뺨을 때리며 말했다.“너한테 그런 말 할 자격 없어! 저 사람들을 전부 끌고 가!”말을 마친 길시아는 먼저 차에 올랐다.군졸들이 달려들어 강우연 일가를 끌고 뒷좌석에 태웠다.쾅!실랑이를 벌이는 와중에 강우연의 머리가 차 문에 부딪혀 피가 쏟아졌다.그녀는 고집스럽게 몸을 일으키고 고운이를 품에 안으며 군졸들에게 소리쳤다.“우릴 풀어줘! 내 남편은 한민학 군단장의 지인이야! 이한승 회장님도 너희를….”하지만 그녀의 말에 귀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운
강우연은 온몸에 극심한 통증을 느끼며 정신을 차렸다.그녀는 힘겹게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은 어두웠고 높이 달린 작은 창문에서 희미하게 햇살이 비쳐 들어오고 있었다.“고운아!”그녀는 다급히 고운이부터 찾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고운이가 피투성이가 된 채로 쓰러져 있었다.강우연은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 달려가서 차가운 바닥에서 고운이를 일으켜 품에 안았다.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아이의 얼굴에 묻은 핏자국을 닦아주었다.“고운아, 눈 좀 떠봐. 엄마야. 엄마 여기 있어, 고운아….”눈물이 속절없이 흘러 아이의 뺨에 떨어졌다.고운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그녀도 더 이상 살아갈 생각이 없었다.“큭! 엄마… 고운이 머리가 너무 아파….”엄마의 부름을 들은 고운이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힘겹게 눈을 뜨고 신음을 토해냈다. 아이의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사라질 것처럼 힘이 없었다.강우연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아이의 뺨에 볼을 가져다댔다.“고운아, 엄마 여기 있어. 겁먹지 마. 아빠가 오셔서 우릴 구해주실 거야.”“엄마, 아빠가 정말 우릴 구하러 올까?”고운이가 힘겹게 물었다.“오실 거야! 아빠라면 당연히 오실 거야!”강우연은 힘껏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아빠가 우리한테 지켜주신다고 약속했잖아. 아빠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니까 무조건 오실 거야! 고운아, 잠들지 말고 정신 차려야 해. 엄마가 노래 불러줄까?”“응. 좋아.”고운이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어두운 창고에서 강우연은 아이를 품에 안고 낮은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어두운 하늘에 반짝이는 뭇별, 반딧불이가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네….”“하늘의 별도 눈물을 흘리고 지상의 꽃들이 시들었지만 싸늘한 바람 속에 그대의 목소리가 내 마음을 위로하네….”청아한 목소리가 창문을 너머 바깥까지 전해졌다.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고 강렬한 빛이 비쳐 들어오자,강우연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그녀는 아이를 품에 안은 채, 구석진 곳으로 도망가서 겁에 질린
복부에 심한 타격을 입은 강우연은 정신이 아득해졌다.“내 딸을 풀어줘. 제발 이렇게 빌게. 고운이만 풀어줘….”강우연은 바닥에 엎드린 채 계속해서 애원했다.경호원의 품에 안긴 고운이도 솜 주먹을 마구 휘두르며 경호원의 얼굴에 생채기를 냈다.“나쁜 놈들! 우리 엄마 때리지 마! 우리 아빠가 오면 당신들 전부 죽었어! 엄마!”강우연은 아픈 복부를 움켜잡고 아이를 향해 힘겹게 손을 뻗었다.“고운이 울지 마. 엄마 괜찮아. 괜찮아….”길시아가 다가와서 아이의 뺨을 거칠게 때리며 말했다.“조그만 것이 시끄럽게 하네! 또 소리 지르면 땅에 묻어버릴 거야!”그 말을 들은 고운이가 겁에 질려 울음을 멈추었다.강우연은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길시아에게 애원했다.“시아야, 제발. 고운이만 풀어줘. 이렇게 빌게….”길시아는 싸늘한 표정으로 강우연의 얼굴 앞까지 다가가서 기고만장한 자태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풀어줘? 지금 장난해? 내가 왜 너희를 풀어줘야 하지? 살고 싶으면 한지훈 행방부터 불어!”길시아는 깊은 짜증이 몰려왔다.처자식을 버리고 혼자 도망쳐?역시 무능한 겁쟁이 녀석!강우연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예쁜 얼굴은 피와 흙으로 얼룩지고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렀다.“나도 몰라. 나도 지훈 씨 어디 있는지 정말 모른다고. 시아야, 제발… 고운이만 풀어줘. 우릴 풀어주면 당장 짐 싸서 S시를 떠날게. 평생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지 않을게.”짝!길시아가 강우연의 뺨을 때리며 소리쳤다.“몰라? 강우연, 내가 바보인 줄 알아? 처자식이라면 끔뻑 죽는 한지훈이 너희한테까지 행방을 숨겼을 리 없잖아? 그냥은 입을 안 열겠다 그거지?”말을 마친 그녀는 뒤돌아서 경호원에게 눈짓했다. 경호원이 고운이를 높게 들어 올리자 길시아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강우연에게 말했다.“강우연, 기회는 한 번뿐이야. 배 아파 낳은 딸이야, 아니면 한지훈이야? 선택해. 계속 입 다물고 있으면 네 딸은 이대로 추락할 거야!”“아아아… 안 돼! 그러지 마! 시아야!
그리고 이때, 입구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나타났다.“그만!”길정우는 싸늘한 표정으로 다가와서 강우연과 길시아를 번갈아 보았다.길시아가 인상을 찌푸리며 불만스럽게 말했다.“오빠, 저들의 응징은 나한테 맡긴다고 하지 않았어?”길정우가 말했다.“약속을 어길 생각은 없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야. 아직 군단장으로 승진하기 전이라고. 이 일로 한민학에게 꼬투리를 잡힐 수는 없잖아!”길시아는 불만스러게 눈을 부릅뜨고 강우연을 쏘아보며 말했다.“운 좋은 줄 알아!”말을 마친 그녀는 찬바람을 쌩쌩 날리며 창고를 나갔다.길정우는 긴장한 기색으로 고운이를 품에 끌어안은 강우연을 보며 말했다.“고민할 시간을 이틀 더 주지. 한지훈의 행방을 불어. 안 그러면 내가 군단장으로 승진하는 날 저녁에 너와 네 딸은 경매품이 되어 해외로 팔려 갈 거야. 무슨 상황인지 이해됐지?”강우연은 입술을 피나게 깨물며 증오에 찬 눈빛으로 길정우를 바라보았다.“길 중장님, 백 번을 물어도 내 대답은 같아요. 난 한지훈 씨의 행방을 모른다고요!”길정후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아주 좋아. 이틀 뒤에도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는지 보자고.”말을 마친 그는 고개를 돌려 창고를 빠져나갔다.“고운아, 이제 괜찮아. 엄마 좀 봐봐. 응?”강우연은 긴장한 얼굴로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운이의 몸은 이미 불덩이가 되어가고 있었다.아이는 힘겹게 눈을 뜨며 그녀에게 말했다.“엄마, 고운이 머리가 너무 아파. 그리고 피곤해. 아빠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강우연은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품에 껴안았다.“오실 거야! 아빠가 우릴 지켜준다고 약속했잖아.”그 시각.강우연 일가가 잡혀간 뒤에도 길정우의 행보는 멈추지 않았다.길정우의 친위대가 군용 트럭을 끌고 정도현이 있는 태산그룹으로 쳐들어갔다.무장 군인들이 차에서 뛰어내려 회사의 모든 출입구를 봉쇄했다.지휘자는 소령 출신의 군인이었다. 그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태산그룹의 로비에 들어섰다.“당장 정도현을 이리로
소령은 싸늘한 눈빛으로 정도현에게 다가서더니 다리를 들어 그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정도현이 중심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로비를 지키던 직원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태산같이 굳건하던 정도현을 맨발로 쓰러뜨리다니!“난 길정우 중장의 명을 받들어 너희들을 체포하러 왔다! 한 명도 내보내지 말고 전부 잡아!”소장이 싸늘하게 지시를 내렸다.무장 전투 인원들이 달려 들어와 건물 전체를 통제했다.정도현이 몸을 일으키려고 했으나 한 군졸이 총구를 그의 머리에 겨누었다.정도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다가오는 소령에게 말했다.“장관,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난 길정우 중장과 충돌을 빚은 적 없습니다. 내 어떤 행동이 길 중장의 심기를 건드렸다면 터놓고 말씀해 주시지요. 제가 친히 선물을 준비해 찾아 뵙고 사죄드리겠습니다.”소령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군화발로 정도현의 머리를 힘껏 짓밟았다.순간 바닥에 흩어졌던 유리 조각이 정도현의 피부에 박혔고 쓰린 통증에 정도현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정도현은 끝까지 신음소리 한번 내지 않았다.소령이 비웃음을 가득 머금고 그에게 말했다.“패기는 봐줄 만하네! 난 당신 같은 사람이 좋아! 정도현 회장, 당신이 지하 세력의 통치자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내 앞에서는 그냥 벌레보다 못한 쓰레기일 뿐이지! 난 언제든 내 기분에 따라 당신을 죽일 수 있는 위치에 있으니까!”“장관, 내가 뭘 잘못했는지부터 말씀해 주셔야 하는 게 아닙니까.”정도현은 피투성이가 되어 바닥에 엎드린 채, 여전히 태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소령은 발을 거두고 옷매무시를 정리하고는 싸늘하게 말했다.“당신은 중장님의 심기를 거스른 적 없어. 하지만 우리 중장님께서는 승진 파티가 열리는 밤에 뭔가 특별한 선물을 원하셔. 참, 한지훈이랑 꽤 친분이 있다고 들었어. 그게 잘못이라면 잘못이지. 길 중장님은 한지훈을 죽여버리고 싶어하니까. 그와 친분이 있는 자들도 마찬가지야. 탓할 거면 당신의 어리석은 선택을 탓해. 하필이면 그 무능한 자식과 친구가
“미안하지만, 정말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한지훈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건 의도적으로 체면을 구기려는 것도 아니었고, 정말로 진천국이라는 인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한지훈이 귀담아들을 만한 사람이라면, 최소한 오대명산의 각 원장 정도는 되어야 했다.그 외의 사람들에 대해서는 이름조차 들을 필요가 없었다.국제적으로 유명한 인물이라 해도, 한지훈 앞에 오면 누구 하나 예를 갖추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심지어 국가 원수들조차도 한지훈은 이름을 외울지 말지 고민할 정도였다.전 세계에 백여 개국이 있는데, 한지훈이 언제 그들 이름을 다 외우겠는가?한지훈의 경지에 이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덧없게 느껴지며, 신분이나 지위 따위는 그저 덧없는 한때일 뿐이었다.“당신이 지금 누구와 얘기하는 줄 아는 거요?!”옆에 있던 소 씨 노인은 즉시 분노에 차서 책상을 치며 차갑게 소리쳤다.진천국은 산성에서 손꼽히는 인물인데, 한지훈이 그런 인물을 모른다고 하다니?이건 노골적으로 진천국의 체면을 짓밟는 행위였다!하지만 소 씨 노인이 말끝을 맺기도 전에, 진천국이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젊은이, 나도 젊었을 땐 거만하긴 마찬가지였지. 하지만 세상을 우습게 보면 안 돼.”진천국은 상위자의 태도로 차갑게 훈계했다.“용건이 뭡니까?”한지훈은 진천국을 전혀 상대하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한지훈이 이렇게 직설적으로 나오자, 진천국은 속으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한지훈이 거만하긴 했지만, 그만큼 기개가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그럼 나도 본론부터 말하지. 처음엔 당신이 그냥 작은 가게 주인인 줄만 알았는데, 아까 당신의 태도에서 뭔가 좀 특별함을 느꼈소.”“하지만 나씨 가문에서 어떤 이득을 줬든 간에, 당신 따위가 우리 진씨 가문의 일을 망칠 순 없소. 내 딸도 당신 같은 사람이 넘볼 수 있는 존재가 아니오!”“그러니 우리 서로 체면 구기지 않으려면, 하나의 제안을 제시하지. 지금 당장 가능한 한 멀리 떠나시오, 그리고 다시는
온갖 옥기들이 진열된 이 옥기 상점은, 얼핏 보기엔 평범한 옥들뿐이었고 그 흔한 최상급 옥도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이렇게 별 볼 일 없는 가게를 지키며 겨우 연명하고 있는 사람이 대체 무슨 대단한 배경이 있겠는가?한눈에 보기에도 이 가게의 주인은 겨우 입에 풀칠하며 살아가는 밑바닥 인생일 터였다!어차피 영기가 되돌아온 이후, 조금이라도 배경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각 대종문에 의탁했고, 일부는 오대 명산의 외부 제자가 되기도 했다.장사를 한다 해도 영기 회복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됐다.그런데 지금까지도 이런 이름 없는 작은 가게를 지키고 있다는 건, 딱 하나를 의미했다. 이 가게 주인은 아무런 배경도 의지도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한지훈이 뒷마당에서 현관으로 나왔다.한지훈이 소박한 옷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진천국의 미간은 더 깊이 찌푸려졌다.한지훈의 옷차림만 보고도, 진천국은 그에 대한 인상이 한두 단계 더 추락했다.“휴, 저 사람은 너무 평범해 보이지 않소! 요즘엔 병왕계에 오른 사람도 널렸는데, 저런 사람은 정말 보기 드문 케이스지요!”진천국은 한숨을 쉬며 소 씨 노인에게 말했고, 소 씨 노인도 비웃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물론 영기 회복 이후에도 세계 각국에는 여전히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이 존재하긴 했지만, 용국은 유독 달랐다. 용국은 기운을 품은 나라였기에, 용국 대지 전체가 거대한 변화를 겪은 것이다!심지어 일반 백성이라도 체력이 조금만 받쳐주면, 저절로 병왕계로 돌파하는 것이 가능해졌다.즉, 용국의 거리에서 젊은이 하나를 아무나 붙잡는다 해도, 무종에 입문했든 아니든 최소한 병왕계의 실력은 가지고 있었다!그런데 한지훈은 어쩐지, 완전한 일반인인 것 아닌가?그때, 한 젊은 여자 직원이 조심스레 진천국 쪽을 흘끗 바라보았다.진천국이 처음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왔을 때부터 그녀는 이 두 사람이 결코 선량한 손님이 아니라고 느꼈다.이 사람들이 한지훈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끼치려 한다면, 그녀는 분
진천국은 바로 이러한 고려 끝에, 갑작스럽게 이 일에 진지하게 대응하게 된 것이었다.“음, 진 씨 형님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진씨 가문이 부흥한다면 손해를 보는 건 나씨 가문일 테니까요. 하지만 제 생각엔 그 옥기점 사장은 나계홍 손에 놀아나는 한낱 졸개에 불과할 겁니다!”“만약 진 씨 형님께서 부적절하다고 느끼시면, 저는 형님과 함께 그놈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소 씨 노인이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가 보기엔, 그 작은 옥기점 사장은 분명 나씨 가문 쪽에서 무언가를 받아먹고, 나씨 가문 사람들과 짜고 이 한바탕 연극을 벌이고 있는 것뿐이었다. 단지, 진씨 가문과 장씨 가문의 혼인을 방해하기 위해서 말이다!“좋습니다. 장씨 가문 쪽에서도 이미 사람을 보내 소식을 전해왔고, 장 도련님이 선이를 꽤 마음에 들어 한다더군요. 지금 모든 준비는 끝났고, 이제 바람만 불어주면 됩니다. 이 중요한 시점에 절대로 어떤 변수도 생기게 해선 안 돼요!”진천국은 창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지만 나계홍이란 자는, 워낙 생각이 치밀해서 아무나 선택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설령 위장이라 해도, 나계홍이 그렇게 쉽게 누군가에게 예를 갖추는 성격은 아니잖습니까.”“그러니 저희가 만일을 대비해서 준비를 또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소 씨 노인이 의미심장한 목소리로 말했고, 이에 진천국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저는 줄곧 그 사람을 몰래 감시하게 해왔고, 지금까지의 결과를 보면 적어도 그가 오대명산과는 전혀 연관이 없다는 건 확실합니다.”“설령 자잘한 종문들과 조금 교류가 있다 해도, 우리 진씨 가문은 그런 것쯤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요.”“더군다나, 장씨 가문을 감히 거스를 수 있는 종문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리고 장령풍은 단순히 장씨 가문의 재능 있는 젊은이일 뿐만 아니라, 믿을 만한 정보에 따르면 장령풍은 반보 인왕계 강자의 자손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장도령이 사망한 뒤, 장씨 가문이 장령풍을 온 힘을 다해 양성하고
진선은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리자, 들어선 이가 소 씨 노인임을 확인했다. 그녀는 이어질 상황을 짐작하며 아버지와 소 씨 노인이 또다시 자신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끝없는 잔소리를 늘어놓을 것을 예감했다.그래서 그녀는 황급히 말을 꺼냈다. “아빠, 옥기점에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많아요. 전 먼저 갈게요!”진선은 말을 마치고는 바로 뒤돌아 나가 버렸고, 진천국은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사실, 지난 반년 동안 그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진선과 장령풍의 혼인을 성사시키려 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진선은 장씨 가문의 이 절세 천재에게 전혀 호감을 보이지 않았다.진천국이 아무리 입에 침이 마르도록 설득해도, 진선은 전혀 꿈쩍하지 않았다.사실 진씨 가문 역시 무도 세가였다.수십 년 전, 용국의 무종이 조정의 억압을 받으면서 진씨 가문은 무도를 버리고 상업으로 전환한 것이다.그러나 영기가 부활하고, 역외의 강자들이 속속 돌아오면서 세상은 다시 수백 년 전 무종이 독주하던 시대로 회귀하는 듯한 기세였다.이에 진천국은 다시 무종 문파에 의지해보려는 생각을 품었다.하지만 오대 명산이나 장씨 가문 외의 다른 무종 문파들은 그에 비해 전혀 쓸모가 없었다.게다가 진씨 가문 조상 대에 이미 장씨 가문과 인연이 있었기에, 장씨 가문에 기대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선택이었다!진선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해도, 진씨 가문은 장씨 가문의 위세를 빌어 재기할 수 있다.그때가 되면 진씨 가문은 틀림없이 비상하여, 더는 이 산성 같은 촌구석에서 연명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소 씨 어르신, 사실 지난 1년 동안 선이는 한 옥기점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제가 알기로는 그 옥기점의 주인에게 약간의 감정이 있는 듯합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습니까!”진천국은 평소 소 씨 노인과 허물없이 대화하곤 했기에, 이 일 역시 숨김없이 털어놓았다.사실 이 일이 장씨 가문과 관련이 없더라도, 그는 체면이 깎여 몹시 불쾌했다.무엇보다 그 옥기점의 사장은 이미 아내와
이 둘과 비교하면, 기자인 그녀는 마치 한 줌 모래처럼 미미한 존재였다.임설의 얼굴에 두려움이 떠오르자, 유 씨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설아, 사실 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지금의 용국은 이미 몇 년 전의 용국이 아니야. 너도 알겠지만, 내 뒤에는 오대 명산이 있단 말이지.”“우리 오대 명산이 널 지지하는데, 뭐가 두려운 것이냐? 설령 용국 조정이라도 감히 우리를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그날의 대화는 줄곧 내가 한 말이었으니 잡으려면 나를 잡는 거지, 널 잡을 일은 없다.”임설은 그 말을 듣고 다소 안심한 듯 보였으나, 여전히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렇지만…… 유 씨 어르신, 그건 전부 어르신의 추측일 뿐이에요. 우리 손엔 아무 증거도 없잖아요!”“증거? 증거가 그렇게 중요해?”유 씨 노인은 냉소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무종 전체가 내 말에 동의한다면, 그게 바로 증거지!”비록 천릉자가 대량산에서 비참하게 죽임을 당했지만, 한지훈의 명예를 실추시키기만 한다면 국왕은 가장 중요한 의지를 잃게 된다.바로 이때, 국왕의 자리를 노린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이때, 산성시.산중에 위치한 호화로운 별장에서, 검은색 양복을 입은 중년 남자가 마주 앉아 있는 젊은 여인에게 말했다.“선아, 며칠 전 장 도령께서 놀란 일이 있었단다.”“우리 천산 장씨 가문과는 대대로 교류가 깊었지. 어떤 의미에서든, 넌 가서 한 번은 그를 봐야 하지 않겠니?”“그리고 네 신분도 좀 자각해야 해. 진씨 가문의 큰 아가씨가 어찌 그리 속된 백성들처럼 옥기점 같은 데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냐!”이 중년 남자의 이름은 진천국, 산성 진씨 가문의 가주였다!진천국이라는 이름은 산성 전체에서 거의 군왕이나 다름없는 존재다.특히 영기가 되돌아온 이후, 진천국의 사문은 현재 산성 최대의 종문인 천앙종이었다!게다가 진씨 가문은 지금 천산 장씨 가문과 우호 관계를 다져가며, 혼인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만일 혼인이 성사된다면, 진씨 가문은
사실, 한지훈이 산에 들어서는 길목에서 이미 유 씨 노인의 말을 다 듣고 있었다.오대명산과 무종 사람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는지 어찌 한지훈이 모를 수 있을까!최근 이 시기 동안 천릉자의 기세가 드높다는 건, 곧 오대명산이 천릉자를 내세워 한지훈이 용국에 세운 공적을 지우려는 의도임을 뜻한다.게다가 이 기회에 국왕의 지위마저 위협하려는 것이었다.개인의 영예나 치욕 따위는 한지훈에게는 이미 중요하지 않았지만, 누구든 국왕의 권위를 흔드는 일만큼은 결코 용납할 수 없었다.오대명산의 계략을 깰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천릉자의 기세가 가장 드높을 때 정면으로 한방 먹이는 것이었다!그리고, 천릉자가 살해당한 사건은 과연 큰 파장을 일으켰다!그 전에 오대명산은 이 일을 공개적으로 보도하게 하려고 수많은 언론 기자들을 초청했다.하지만 정작 결과는, 제 발등을 찍는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현장에 와 있던 언론사 수가 너무 많았고, 모두가 생중계로 현장을 전국의 시청자들에게 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게다가 수많은 인플루언서들까지 합류하며 정보를 봉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이 사건은 마치 다리가 달린 듯, 하룻밤 사이에 전국으로 퍼져나갔다!“흥! 정말 웃기는군. 그 따위가 어찌 한지훈과 견줄 수 있단 말인가? 한지훈보다 깨달음이 뛰어나다고? 타고난 자질이 낫다고? 결국 누가 죽였는지도 모른 채 죽어버렸잖아!”“흥, 내 보기엔 그냥 날뛰는 광대였을 뿐이지!”“날뛰는 광대? 그래도 광대는 멀쩡한 머리를 잃진 않겠지! 하하하…”온라인에서는 조롱이 난무했고, 항산의 사람들은 아예 모습을 드러낼 엄두도 내지 못했다.한순간에 오대명산의 기세는 급격히 꺾이고 말았다.그 뒤 한 달 동안, 모든 이들의 화제는 이 사건에 쏠렸다.오직 한지훈만이 조용히 천생서문에 기록된 내용을 따라 진지하게 약제를 조합하는 데 몰두하고 있었다.그에게는 강우연이 천신계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 이런 화제들보다 훨씬 더 중요했다.게다가 천하 정세는 이미 크게 변하고 있었고,
그들은 누군가가 도중에 강탈할 거라는 걱정은 전혀 하지 않았고, 오히려 장령풍이 자소화의 유혹을 견디지 못하고는 약속대로 천릉자에게 져주지 않을 가봐 걱정됐다. “여러분, 드디어 가장 관건적인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과연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됐을지 함께 알아봅시다!”한 인터넷 BJ는 생방송을 켜고는 팬들을 향해 말했다. 그렇게 시간은 1분 1초가 흘렀고, 모두들 손꼽아 승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약 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산 길에서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걸어 나왔다. 다만, 천릉자와 장령풍 두 사람의 종적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사고라도 난 건 아니겠죠? 장 사부님이랑 천릉자 사부님은 왜 여태까지도 나오지 않는 거죠?”임설은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사실 또 다른 가능성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두 사람이 너무 격렬하게 싸운 나머지 모두 중상을 입어 전혀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지는 않을 거야. 필경 모두 동문 사람이기에 두 사람이 한판 붙게 된다 하더라도 반드시 어느 정도 여지를 남겨둘 거야!”유 씨 어르신은 확신에 가득 찬 말투로 말했다. 알다시피 이번 대결은 5대 명산이 함께 손을 잡고 벌인 판이다. 게다가 천산 장 씨 집안도 이 계획에 얽혀있었기에, 절대 어떠한 실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주위에는 또 수많은 고수들이 지켜보고 있을 텐데, 의외의 사고란 발생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유 씨 어르신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산길에서는 어두운 안색의 항산 제자 4명이 단대 하나를 들고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내려오고 있었다. 이내 카메라들은 일제히 그 단대에 초점을 뒀고, 모든 기자들은 순간 숨을 죽였다. 단대 위에는 머리 없는 시체 한 구가 누워 있었고 옆에는 웬 동그란 물건이 놓여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서야,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바로 천릉자의 머리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다른 한편, 몇 명의 장 씨 집안 자제들 역시 단대 하나를 들고는 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장령풍
그러나 한지훈은 장령풍을 투명 인간 취급한 체 눈 깜짝할 사이에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여전히 깊은 공포 속에 빠져 있었다. 사실 천릉자는 실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방금 그와의 정면승부에서, 그는 천릉자의 털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두 사람의 실력은 그야말로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다.천릉자의 촘촘한 검망을 깨뜨려 그의 머리를 아작 낸다는 건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자신은 최선을 다해봤자 기껏해야 천릉자에게 상처만 입힐 거라 확신했다. 천릉자를 죽이는 건 하늘의 별 따기보다도 더욱 어려웠다. 모두들 알다시피 검망 아래에서는, 수천 갈래의 검의 습격을 마주해야 했다. 그 검망을 피해 사람을 죽이는 건 말할 것도 없고, 그 검방을 피하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설사 2성 천신계 강자라 하더라도 밀집된 검망을 마주하게 되면,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게 되고 더욱이는 천릉자를 사지로 몰아넣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지훈은? 오직 나뭇잎 하나만으로, 마치 어린애 장난처럼 닥치는 대로 나뭇잎을 던져 천릉자의 머리를 아작 냈다. 지금 이 순간, 산 전체는 비할 데 없이 조용했다. 한지훈이 멀어질 때까지 장령풍은 줄곧 조용히 땅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박고 있었다. 그는 심지어 감히 고개 한번 들어 앞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그렇게 30분이 흐르고 나서야 장령풍은 고개를 살짝 들었다. 한지훈의 자취가 더 이상 보이지 않자, 그는 비로소 이마의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런데 바로 이때, 익숙한 목소리가 갑자기 들려왔다. “장령풍, 오늘 벌어진 일을 소문내면 장 씨 집안은 멸망하게 되는 줄 알아!”“네... 저는... 아무것도 못 본겁니다!”크게 놀란 장령풍은 벌벌 떨었다. 한지훈의 경고는 그에게 있어서 성지였다. 한지훈은 뱉은 말은 무조건 지키는 사람이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유럽은 용경과는 80리 정도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오직 용국을 위해 복수
게다가 사방에서 한지훈을 헐뜯고 있는 발언들에 대해, 장령풍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한지훈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고, 몇몇 명산 모두가 그의 적이었다. 그렇기에 한지훈이 남의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 자체는 말도 안 되는 것이었다. 역외 강자조차도 흔들 수 없는 거물을, 누가 감히 건드리려 하겠는가? 그러나 옆에 있던 천릉자는, 장령풍의 표정 변화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그는 한지훈의 정체가 뭐든, 자신이 쟁취해야 할 성과를 이대로 빼앗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이내 그는 장령풍과 상의도 하지 않고 바로 손을 들었다. 곧이어 그물처럼 촘촘한 검망이 한지훈의 정수리 위에 펼쳐졌다. 그는 단 한 방에 한지훈을 산산조각 내어,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자신을 건드리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똑똑히 보여줄 작정이었다. 온 하늘을 덮은 검망에도, 한지훈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닥치는 대로 나뭇가지에서 잎사귀 하나를 따냈다. 그러고 나서는 천릉자가 서있는 쪽으로 잎사귀를 가볍게 던졌다, 곧장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잎사귀에, 제대로 화가 난 천릉자는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 잎사귀로 사람을 다치게 하는 건, 무종 모든 종사들의 장기였다. 그러나 종사계의 실력은, 그저 전신계와 같을 뿐이었다. 그런데 일성 천신계 고수인 자신이 뜻밖에도 전신계 같은 땅강아지한테 무시당하게 될 줄이야? 생각할수록 더욱 화가 치밀어 오른 천릉자는 곧바로 또 하나의 검망을 휘두르며 사악한 웃음을 보였다. “네 이 녀석, 천신계 강자를 상대로 도전장을 내밀면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되는지 오늘 내가 제대로 보여주마!”“죽어!”지금 이 순간, 천릉자는 이미 한지훈을 죽은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눈 깜짝할 사이에 한지훈은 산산조각 나게 될 것이다. 예상치 못한 눈앞의 상황에 장령풍은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전에 이미 한지훈의 전력을 직접 목격했었다. 모든 전투에서, 한지훈은 오릉군 가시를 던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