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우리의 유무죄와는 상관없이 지금 여기 들어와 있는 거지.”설은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내가 이해할 수 없는 건 용천오야. 용천오는 이미 엄마한테 무한 신뢰를 얻은 사람이거든. 그런데 왜 이런 계약을 내밀어서 일을 이렇게 만들었냐는 거야!”“내가 그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으니까 이렇게라도 해서 복수하려는 건가?”하현은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그것도 이유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지. 그렇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야. 원인을 깊이 따져봐야 아무 의미 없어.”“다른 얘기 좀 해 봐.”“아까 당신 엄마가 후수를 준비해 뒀다는데 그게 뭐야?”“있지.”설은아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엄마는 막무가내에 아무 계획도 없는 사람 같지만 이런 큰일에는 아주 세심하거든.”“지금 경찰서에 넘어간 광산 계약서는 사본에 불과해.”“진짜 원본 계약서는 아직 무성 국제공항 안 보관함에 있어.”설은아의 말을 듣고 하현은 모처럼 감탄의 미소를 터뜨렸다.최희정이라는 여자는 자신의 이익에 관련된 것이라면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의 신변을 지키려고 애쓰는 여자였다.“보관함 번호를 알려줘.”하현이 일어서며 말했다.“용천오가 이 계약서를 이용하려고 했으니 원하는 대로 한 방 먹여 줘야지!”“나도 이참에 이 계약서를 통해서 되갚아 줘야겠어. 닭 훔치려다가 손에 있던 한 줌의 쌀마저 날리게 만들어 주겠어!”“무성 황금 회사가 우리 손에 넘어왔을 때 용천오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벌써부터 궁금하군!”“뭘 어쩌려고?”설은아는 하현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어떻게 할 것인지 걱정되고 궁금했다.하현은 침착하게 말했다.“또 한 번 협상을 해서 당신 엄마가 가진 무성 황금 회사의 주식을 모두 내 명의로 넘기라고 해야지!”설은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우리 엄마가 알면 화병 나서 죽으려고 할 거야!”하현은 무덤덤하게 말했다.“그때 가서 수백억 정도 쥐어 주고 입막음하면 될 거야.”“무성 황금 회사는 당신 엄마
사람들이 모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양복을 입은 젊은 남자가 경호원 몇 명과 비서를 대동하고 침착하게 가라앉은 얼굴로 들어왔다.젊은 남자가 나타나자 자리에 있던 임원들과 주주들은 모두 일어나서 그를 맞이했다.“마 사장님 오셨습니까?”당당한 자태를 뽐내며 사람들 앞에 나선 사람은 용천오의 측근 중 한 명인 무성 마 씨 가문, 마하성.그는 용천오를 대신해 무성 황금 회사의 집행총재를 맡고 있기도 했다.“안녕하세요!”마하성은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약간 숙인 뒤 비서가 우려내 준비해 놓은 보이차를 한 모금 천천히 마신 뒤 맨 가운데 자리로 앉았다.“용문 집법당 쪽의 대표들도 오늘 오라고 알렸어요?”“오늘 오지 않으면 당초 얘기한 대로 용문 집법당의 30% 지분을 회수할 것이라고 말했습니까?”무성 황금 광산이 개발되었을 때 무성의 모든 가문과 세력은 광산을 쟁탈하려고 덤볐다.결국 용문 집법당이 나서서 황금 광산에 관한 지분 구조를 정비했다.당시 용문 집법당은 용오행이 장악하고 있었고 용오행은 용천오의 가장 크고 든든한 방어막이 되어 주었다.그래서 나중에 무성 황금 회사가 주식을 나눌 때 용문 집법당은 30%의 지분을, 용천오는 40%의 지분을,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이 30%를 나눠갖는 것으로 결정되었다.간단히 말해 용천오가 용문 집법당과 손을 잡기만 한다면 다른 주주들의 입김을 신경 쓸 필요 없이 회사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이것이 바로 용천오가 하현을 용문 집법당 당주 자리에서 완전히 물러나게 하려는 이유 중 하나였다.집법당 당주는 가지고 있는 막강한 고유 권한 외에도 이 30%의 지분이라는 어마어마한 권리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용호태가 이미 하현에게 박살이 났다.그러자 용천오 쪽에서는 발 빠르게 마하성에게 이 일을 빨리 처리하라고 맡긴 것이다.하루아침에 무성 황금 회사는 이미 아홉 차례나 주주총회를 열었다.그리고 용문 집법당 쪽에서는 아홉 차례의 주주총회에 한 번도 사람을 보내지
마하성의 말에 임원과 주주들은 모두 의분에 찬 표정으로 말했다.“마 사장님, 용문 집법당이 아무리 대단해도 정관은 정관입니다!”“규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일이 성사되지 않는 법이죠. 용문 집법당이 우리의 주식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니 이참에 절차에 따라 회수하면 됩니다!”“만약 용문 집법당 사람들이 나중에 뭐라고 하면 열 번이나 주주총회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증거를 제시하겠습니다!”“회사의 발전을 위해서라면 용문 집법당의 미움을 사는 일이 있더라도 정관대로 일을 진행해야 합니다!”“맞습니다. 그렇게 해야 합니다.”많은 사람들이 마하성을 지지하기 시작했다.사실 이 사람들은 모두 용천오와 얽히고설킨 관계에 있었다.지금 용호태가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용천오는 무성 황금 회사에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되어서 밤새 그렇게 많은 주주총회를 열었던 것이다.모든 것은 절차대로였다.목적은 용문 집법당을 회사에서 완전히 퇴출시키고 그들이 가진 지분을 모두 회수하는 것이었다.이제 용천오가 꾸민 이 판은 가장 중요한 클라이막스에 도달한 셈이다.모두들 서로 일심단결해서 벌여놓은 연극 무대 위에서 철저히 약속된 연기를 해야 한다.“음, 용문 집법당이 우리 회사를 이렇게 무시할 줄은 몰랐습니다. 위세가 대단해도 주주로서 어떻게 이런 행동을 보일 수가 있습니까?!”“됐습니다. 나중에 다른 소리를 할까 봐 내가 직접 전화도 걸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가진 30%의 지분은 정관에 따라 회사가 회수하겠습니다.”말을 마친 후 마하성은 보이차 한 모금을 마셨다.그는 이 모든 과정이 빨리 끝나고 얼른 잠잠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다.하지만 이 일은 용문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정관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일을 해야 나중에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꼬투리를 잡히지 않고 정당한 구실을 얻을 수 있다.결국 무성 황금 광산의 이익
”됐어!”“우린 회의를 진행합시다. 오늘 회의 의제는 하나뿐입니다!”손을 뻗어 황실 마크가 새겨진 시계를 보면서 마하성은 손을 흔들며 말했다.“지금부터 모든 주주와 임원들의 만장일치로 용문 집법당이 가진 회사 지분 30%에 대한 권리를 폐기하기로 합니다!”“이제부터 그들이 가진 30%의 지분은 용천오가 회수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퍽!”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목적홀 문이 벼락같이 열렸다.하현이 진주희 등을 앞세워 당당하게 들어오는 것이 보였고 그 뒤로는 변호사, 보좌관, 비서 등 십여 명이 따라 들어왔다.“늦어서 죄송합니다.”“이제부터 나 하현이 무성 황금 회사를 인수할 것입니다.”“모두 물러나십시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의자에 앉아 눈을 가늘게 뜨고 장내를 바라보았다.현장에 있던 주주와 임원들은 처음에는 경악하며 아무런 반응도 내지 못했지만 이내 정신을 다잡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누굽니까?! 당신은?”“어떻게 우리 회의실에 함부로 들어온 거냐구요?”“여기가 어딘지 알고 온 거예요?”“인수라니? 당신들이 뭐길래 그런 말을 하는 겁니까?”낯선 사람이 갑자기 쳐들어오자 임원들과 주주들은 벌떡 일어나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었다.그리고 마하성은 마뜩잖은 얼굴로 앞으로 걸어 나왔다.“어서 꺼져!”마하성은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하현이라는 두 글자는 귀에 익숙했지만 도대체 누구인지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좀체 생각이 나지 않았다.하현은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무시한 채 누군가에게 손짓을 했다.진주희는 한 걸음 앞으로 나와 품속에서 영패를 꺼내 책상 위에 툭 던지고는 당당하게 말했다.“이것은 용문 집법당의 영패입니다. 영패는 당주를 상징하는 것입니다!”“간단히 말해서, 지금 우리는 용문 집법당을 대표해서 무성 황금 회사의 지분 30%를 인수하려고 합니다.”“뭐? 이딴 영패 하나 들고 와서 지분을 인수한다고?”마하성은 살짝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냉소를 흘렸다.“세
순간 이 광경을 보던 사람들은 모두 경악했다.큰 다목적실은 그야말로 쥐 죽은 듯 고요했다.이 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무성 상류층 거물들이었다.방금 함부로 입을 놀린 사람이 비록 상류층 문턱에 있는 사람이긴 했지만 마하성의 최측근이었고 충분한 능력도 있는 사람이었다.그런데 그런 그가 여자한테 걷어차여 한 방에 날아가다니!이것은 분명 마하성을 향한 선전포고나 다름없었다!예쁜 여비서는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놀라 자신의 입을 가리고 비명을 질렀다.눈앞의 광경을 본 마하성은 순식간에 얼굴이 일그러졌다.그는 벌떡 일어나 앞으로 나와 하현을 똑바로 응시하며 천천히 말했다.“하 씨. 여기는 당신이 함부로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당신 이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그래?”“오호!”“날 아는 모양이야.”하현이 일어서며 무덤덤한 표정으로 마하성 앞으로 걸어갔다.“날 안다고 하니 용호태를 만신창이로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겠네? 내가 그랬다는 걸 아는 거야, 그렇지?”“말 안 들으면 당신도 나한테 맞는 수가 있어.”마하성은 눈꼬리를 움찔했다가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건방지게 굴지 마!”“나까지 때린다고? 허! 당신 뒷감당 생각해 봤어? 당신...”“퍽!”마하성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현은 순식간에 마하성의 얼굴을 날려버렸다.그런 다음 하현은 마하성을 보며 말했다.“내가 무성에 와서 건드린 개와 고양이가 밟히고도 남을 지경이야.”“왜? 내가 아직도 당신을 못 건드릴 사람으로 보여?”“당신 뒤에 용천오가 있기 때문에?”“용천오가 당신 뒤에 있다고 하면 당신이 원하는 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야?”“이 자식이!”마하성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져서 하현을 잡아먹을 듯 노려보며 말했다.“이 자식한테 본때를 보여줘!”“아주 정신 차리도록 단단히 가르쳐 줘!”“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책임질 거야!”마하성은 살아오면서 지금처럼 사람들 앞에서 모욕을 당한 적이
”우리 무성 황금 회사는 당신이 아무렇게나 들어올 수 있는 데가 아니야!”“우리 마 사장님은 당신이 함부로 때리고 할 사람이 아니라고!”“이봐! 보안관! 어서 이놈을 끌어내!”임원들과 주주들은 사내대장부라면 눈앞의 벌어진 상황을 절대 피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면서 소리를 질렀다.어떤 사람은 고래고래 큰소리를 지르며 관청에 신고를 하려고 했다.“촥촥촥!”이번엔 더욱더 사정없었다.하현은 이들을 좌시하지 않고 한 대씩 모두 얼굴을 날려버렸다.그런 다음 그는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회사의 지분 30%를 인수할 수 있는 용문 집법당 영패를 가지고 있어.”“그리고 여기에는 또 다른 계약서가 있어. 용천오가 가지고 있던 회사 지분 40%의 주식을 내 명의로 이전할 수 있다고 되어 있지.”“간단히 말해서 무성 황금 회사의 절대적인 지배권은 나한테 있는 거라고.”“여기는 내가 오고 싶으면 오고 가고 싶으면 갈 수 있는 곳이야!”“내가 마하성을 때린 이유는 그가 아무런 명분 없이 내 주식을 빼앗으려 했기 때문이야.”“일이 어떻게 되었는지 전 과정에 관여한 당신들은 잘 알고 있을 거야.”“그러니 내 앞에서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가서 당신들의 배후에 있는 주인한테 일러바쳐. 10분 동안 물러가 있을 테니까 어서 하고 싶은 대로 해 봐!”“무성 황금 회사는 주인이 바뀌었어!”“앞으로는 나 하현이 모든 걸 결정할 거야!”하현의 카리스마가 너무나 강해서 사람들은 그저 쳐다만 볼 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그들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놀란 나머지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었다.용문 집법당이 가진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고?용천오가 가지고 있던 지분을 모두 그에게 넘겼다고?그러니까 이 사람이 지금 무성 황금 회사의 지분 70%를 가지고 있다는 말인가!그렇다면 확실한 절대 주주이다!동시에 무성 황금 광산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다는 의미이기도 했다.이런 일이 어떻게 발생할 수 있
”하현!”마하성의 안색이 울그락불그락 일그러졌다.그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머리를 숙이는 비굴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이를 부득부득 갈 뿐이었다.갑작스러운 하현의 등장에 더 갑작스러운 전개였다.마하성은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지금 이 순간 하현과 정면충돌해 봤자 결코 좋은 꼴을 보지는 못할 거라는 걸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일이 이렇게 돌아가도록 풀이 죽어서는 안 된다.이대로 물러나면 돌아가서 용천오에게 뺨을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찰나의 순간 생각을 가다듬은 마하성은 심호흡을 하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 씨. 당신 정말 간도 커!”“용천오한테 미움을 사고도 몸을 사리지 않다니!”“감히 무성 황금 회사에까지 와서 소란을 피워?!”“당신이 70%의 지분을 가졌다고 해도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여기가 대구야? 남원이야?”“여기는 무성이야!”“고원 지대 무성!”“여기가 물이 얼마나 깊은지 알아? 당신이 놀던 물과는 달라! 당신이 함부로 놀 수 있는 곳이 아니라구!”“한마디 충고할 테니 똑똑히 들어. 순순히 주식을 내놔. 당신이 깔고 앉은 그 자리도 내놔.”“그렇지 않으면 좋은 꼴 못 볼 거야. 죽어도 누울 자리도 못 찾고 구천을 떠돌게 될 거라고!”“퍽!”하현은 손바닥으로 마하성의 얼굴을 후려갈겼고 마하성은 손도 써 보지 못하고 비틀거렸다.그러자 하현은 담담한 눈빛으로 마하성을 노려보며 말했다.“가서 용천오한테 내 말을 전해야 하니까 목숨은 살려 두겠어. 그러니 잠자코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을 거야.”“하지만 당신이 물러나지 않고 계속 이런 식으로 군다면 나도 봐주지 않을 거야! 당신 목숨 따위 안중에 두지 않을 거라고, 알겠어?”하현은 임원들과 주주들에게 눈길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지금부터 마하성 사장은 파면입니다.”“진주희가 무성 황금 회사의 집행총재로서 회사의 모든 일에 대해 전권을 가지고 임할 겁니다!”“고개를 끄덕이지 않고는 당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것 같은 마하성이 말을 마치며 손을 흔들자 많은 임원들과 주주들이 다 함께 일어섰다.그때 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거기 서!”마하성은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하 씨, 뭐? 더 하고 싶은 말이 남았어?”“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 사과해.”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거절할 수도 있어. 그렇지만 만약 거절한다면 내가 당신 사지를 부러뜨려 들개들의 먹이로 만들 수 있어.”마하성은 잠시 멈춰 섰다.으르렁거리는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매서운 말로 하현을 쏘아붙이지 않으면 끓어오르는 이 화를 어떻게 잠재워야 할지 알 길이 없었다.마하성은 순간적으로 화가 치솟았지만 결국 하현을 필사적으로 노려볼 뿐 이를 악물며 분노를 참을 수밖에 없었다.잠시 후 억지 미소를 떠올린 마하성은 ‘퍽'하고 하현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려 사과했다.“하현, 미안해. 내가 헛소리를 했어!”“당신 앞에서 오만방자하게 군 거 사과할게!”그러면서 마하성은 마음을 독하게 먹고 자신의 뺨을 수차례 찰싹찰싹 때리고는 일어서서 고개를 돌렸다.순간 그의 마음속에는 어떻게 하현에게 되갚아 줄지 그 생각만으로 가득 찼다.그는 하현을 죽여야만 이 분노가 가라앉을 것 같았다!죽어도 묻힐 곳 없이 이승을 떠도는 신세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릴 듯했다!건물을 빠져나온 마하성은 벤틀리 뒷좌석에 앉았다.그리고는 핸드폰을 거칠게 꺼냈다.“계획했던 거 실행해. 지금 당장!”“하 씨 저놈 평생 감옥에서 썩게 만들어야겠어!”...마하성 일행이 물러난 뒤 진주희는 곧바로 측근의 변호사와 보좌관, 비서 등을 데리고 업무에 투입시켰다.하현은 계약서를 가지고 와서 용천오에게 속했던 주식을 모두 빼앗았다.하지만 이렇게 큰 회사를 제대로 장악하는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그래서 임무를 맡은 진주희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마하성에 붙어 권력을 쪽쪽 빨아먹던 하수인들을 먼저 제거하여 그들이 몰래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