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훈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안동 김씨 가문 수장님도?”김청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버지는 분명히 동의하지 않으실 거야. 결국 시집보낸 딸은 남과도 같으니 이재승 도련님과의 혼사를 동의하는 순간 나는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의 사람이 아닌 거지. 하지만 이 혼사를 취소하는 대가가 너무 커서 큰 어르신께서는 반드시 동의하지 않을 거야. 아버지는 또 효심이 깊은 분이라...”이런 이야기까지 나오자 김청미는 갈등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처리하기 어려운 일로 보였다.“그래서 거의 결혼이 확정된 셈이지. 부잣집은 정이 없다고 하잖아. 더군다나 나는 원래 양녀에 불과할 뿐이야.”김예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더니 담담하게 말했다.“지금 상황을 보면 그 사람의 목적이 네가 아니라 수장님일 수도 있어. 수장님은 너를 이용해서 김현민을 견제하고 있잖아. 그래서 김현민도 너를 아웃시키려고 이재승을 불러들인 거지. 정말 기가 막힌 방법이야.”김청미는 멈칫하더니 이를 꽉 깨물면서 욕설을 퍼부었다.“김현민, 이런 제기랄. 그러면 이제 어떡해야 하는 거지? 김현민이 성공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거야?”김현민은 이형돈의 맑고 부드러운 미소를 떠올리면서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 이재승이 알아서 혼사를 취소하면 되잖아.”“맞네!”김청미는 눈이 번쩍 띄어졌다.“처음 약속한 대로 혼사를 취소하는 사람이 그에 따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잖아. 이재승이 알아서 취소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거야. 문제는 이재승이 정말 혼인을 취소할까?”김예훈이 무심한 표정으로 말했다.“이재승의 등장은 솔직히 말해 우리와 김현민 사이의 또 다른 대결이기도 해. 이재승이 돌아오든 말든 아무런 상관도 없어. 우리가 이번 판에서 물러나면 그동안의 모든 것이 아무 의미가 없게 되는 거야.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이 일은 내가 해결할게.”김청미는 멈칫하다가 잠시 후 복잡한 심경으로 말했다.“고마워.”“고마워할 필요도 없어.”김예
“거절한다고 했잖아. 당장 나가!”이 순간 김청미는 아직 분노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고,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본능적으로 날카롭게 소리쳤다.“대표이사 자리에 앉혀준 사람한테 이런 태도야?”김예훈이 웃으며 말하자 김청미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차분해지기 시작했다.“미안해. 착각했어...”김예훈이 웃으며 말했다.“사과할 필요 없어. 아까 나도 마침 밖에 있었어. 왜? 대표이사 된 지 며칠도 안 지났는데 벌써 누군가 시비를 걸어?”김예훈은 김청미에게 사적인 공간을 남겨두려고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언급하지 않았다.하지만 김청미는 전혀 숨길 생각이 없는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아까 밖에 있었으면 무슨 일인지 짐작하겠네. 이형돈이라는 사람은 이재승 도련님이 신임하는 부하야. 이재승이라고 알아?”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들어본 적은 있는데 잘 알지는 못해.”김청미가 미간을 찌푸린 채 말했다.“진주·밀양에서 가장 전설적인 인물 중 한 명이지. 간신히 진주 4대 가문 중의 하나인 진주 이씨 가문의 직계가족이기도 하고. 영국 라온시에서 쭉 자라다가 6년 전에 진주에 몇 년간 머문 적 있어. 진주에 있는 동안 강력한 수단으로 진주 이씨 가문의 분열된 자원을 통합하며 진주 이씨 가문을 4대 가문 중의 으뜸으로 끌어올렸고, 자기도 한때 진주 4대 도련님의 우두머리가 되기도 했어. 그 사람이 권력을 잡던 시기에는 진주 이씨 가문은 거의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과 견줄 만했어. 그런데 나중에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에서 그 사람의 야망을 감지하고 진주 이씨 가문 내부에서 이장우를 내세워서 그 사람을 다시 라온시로 쫓아냈어. 내가 듣기로는 영국으로 돌아간 뒤로 완전히 무너졌다고 했어. 그대로 말할 거로 생각하고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어. 그런데 6년 뒤에 위풍당당하게 돌아올 줄이야. 이형돈 말을 들어보면 이재승도 조만간 진주에 발을 들일 거야.”“위풍당당하게 돌아왔다고?”김예훈이 웃으면서 물었다.“이재승이랑은 무슨 사이인데?”“6년 전에 혼인
“김청미 씨한테는 아마 이 도련님의 선의를 거절한 것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이 도련님 입장에서는 김청미 씨의 거절을 도전이자 선전포고로 받아들일 수도 있어요. 김청미 씨 똑똑한 사람이라 세계 금융 중심지가 리카 제국의 그린시가 아니라 영국의 라온시임을 잘 알고 있을 거예요... 라온시 휘어잡을 수 있을 정도의 이 도련님에게 모욕을 준 셈이죠. 과연 진주 재단이나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에 어떤 후폭풍이 휘몰아칠까요? 김청미 씨, 신중하게 생각해보시기 바랄게요.”이형돈은 웃으면서 김청미에게 경고를 날렸다.“게다가 김청미 씨는 진주 재단의 대표이사일 뿐이잖아요. 개인적으로 이 도련님을 거절할 수 있어도 진주 재단과 진주·밀양 안동 김씨 가문을 대표해서 이 도련님을 거절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잘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단칼에 거절하지 말고요. 이렇게 하면 서로 어느 정도 양보할 여지가 있지 않겠어요?”이형돈의 미소는 위협적인 말을 하면서도 마치 상대를 배려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김예훈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비록 이형돈이 말한 ‘이 도련님’이라는 사람이 김청미와 어떤 관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한때 진주 4대 도련님의 우두머리였던 이재승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이형돈은 겉으로는 충고하는 듯하지만 사실 협박에 가까웠다.이 순간 김예훈은 서둘러 다가가지 않고 복도 구석에 서서 무심한 표정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이형돈 씨 진심은 잘 알겠는데요.”이형돈의 협박에도 김청미는 태연하기만 했다.“이건 제 개인적인 일이라 그 누구의 충고도 듣고 싶지 않네요. 그리고 다시 한번 말씀드릴게요. 거절하겠다고요. 이재승 도련님한테 전하세요. 저 김청미는 아무한테나 시집가도 이재승 도련님이랑은 결혼할 일이 없으니 헛된 꿈 꾸지 말라고요.”“김청미 씨는 역시 소문대로 고집불통인 여 강자시네요.”이형돈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저도 똑같은 말을 할게요. 돌아가서 잘 생각해보길 바랄게요. 저희 도련님과 결혼
이어서 김예훈의 계획에 따라 허순재가 직접 나섰다.그는 바로 이형돈 만나러 가지 않고 소셜 플랫폼을 통해 부산 팰리스는 이형돈의 도전을 환영한다고 발표했다.동시에 허씨 가문도 진정한 고수가 대결에 맞설 예정이었다.이 소식이 전해지자 밀양 전체가 떠들썩거렸다.도박왕 같은 거물이 수년간 언론 앞에 모습을 드러낸 적 없기 때문이다.지금 허순재가 이 소식을 발표했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했다.첫째, 허씨 가문이 이전에 이 일에 공식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체면을 다시 돌린 셈이었다.둘째, 허씨 가문이 정식으로 맞서 싸우겠다는 것이었다.간단히 말해서 앞으로 있을 도박에서 허씨 가문이 이긴다면 이전에 제기된 허씨 가문에 대한 의혹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었다.그리고 마찬가지로 만약 허씨 가문이 진다면 그때부터 밀양 허씨 가문 및 도박왕 가문의 체면은 완전히 나락으로 갈 수도 있었다.김예훈한테는 보잘것없는 대결이었지만 밀양 허씨 가문에게는 모든 운명을 건 대결이었다.밀양이 떠들썩하든 말든 김예훈은 진주 가든 별장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조깅을 하는데 바닷가의 공기가 매우 상쾌했고, 습한 바닷바람이 더해져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비록 오늘 저녁 진주에 가서 이형돈이라는 사람을 해결해야 했지만 아직은 한낮이라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가든 별장으로 돌아갔더니 김청미는 이미 외출한 상태였다. 김예훈은 잠깐 고민하다가 택시를 타고 진주 재단으로 향했다.비록 진주 재단은 지금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김청미한테는 아직 중요한 시기라 직접 가서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대표이사 사무실에 막 도착했을 때, 사무실 문밖에 언제부터인지 모를 사람이 네 명 서 있는 것을 보았다.이 네 사람은 모두 외국인으로 키가 크고 건장해 보였으며 체취를 가리기 위해 진한 향수를 뿌린 상태였다.이런 냄새 때문에 이 네 사람에 대한 인상이 매우 강렬했다.김예훈은 이 네 사람이 조금 낯익다고 생각했지만 당장 어디서 본 건지는 떠오르지 않았다.생각
팰리스 전체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밀양 허씨 가문이 다시 한번 도박패의 10% 지분을 잃는 것을 목격하게 되었다.이형돈이 앞으로 사흘 동안 계속 이기기만 하면 부산 팰리스의 주인이 바뀔 수도 있었다.이 순간 허순재의 얼굴은 매우 험악했다.김예훈은 이미 모든 세부 사항을 파악한 상태였다.이형돈은 손가락을 튕기는 것으로 상대에게 반드시 질 것이라는 심리적 암시를 해주었고, 이를 통해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이로써 밀양 허씨 가문은 며칠 동안 점점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참 대단하군.”허순재는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섰다.“김 회장님, 고마워요. 저희 밀양의 규칙에 따르면 도박판에서 부정행위를 하면 손가락을 잘라야 해요. 이형돈 씨가 연속으로 5일이나 부정행위를 했으니 한쪽 손을 다 잘라버리라고 해야겠어요.”허순재는 차가운 표정으로 살기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그가 바로 진정한 밀양의 왕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제 생각엔 경솔하게 움직이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김예훈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첫째, 저희는 이른바 경도 최면과 심리적 암시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전혀 없어요. CCTV를 통해서는 이형돈 씨가 손가락을 튕기는 것만 보이잖아요. 이건 많은 사람이 가진 습관일 뿐인데 저희가 뭐라고 할 수 있겠어요. 둘째, 이형돈 씨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 부잣집 따님들을 보세요.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실력과 배경이 만만치 않을 거예요. 어떠한 실질적인 증거도 없이 저들의 롤모델의 손을 잘라버린다면 이 일이 완벽하게 마무리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셋째, 이 시점에 나가서 따지더라도 이형돈 씨 손에 밀양 팰리스 60% 지분이 있다는 것을 잊으시면 안 돼요. 저 사람이 홧김에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부산 팰리스 주인이 바뀔지도 몰라요. 도박왕님께서는 이번 판을 짐으로써 열세에 처하게 된 거예요.”김예훈이 허순재의 어깨를 토닥이면서 말했다.“앞으로 상대방의 리듬에 맞춰 움직일 수밖에 없어요. 저 사람이
김예훈이 담담하게 말했다.“그래서 제가 경도 최면이라고 한 거예요. 이런 최면술은 과거에 영국 신전 기사들이 자기 몸에 사용했던 성스러운 수법이거든요. 목적은 아주 간단해요. 바로 자기한테 자기가 전투에서 반드시 승리하는 천하무적의 신전 기사임을 알리는 거예요. 이렇게 하면 어느 정도 자기 전투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거든요. 한 사람의 감정은 그의 행동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죠. 자기가 천하무적이라고 굳게 믿는 기사는 일반 기사보다 더 두려움이 없어서 더 무서운 존재거든요. 그리고 제 예상이 맞다면 이 신전기사단 출신의 기사 대장도 경도 최면술에 대해 알고 있을 거예요. 상대의 행동을 완벽히 통제할 필요는 없이 계속 상대에게 이번 내기에서 질 거라는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해요. 게다가 어느 정도의 도박 기술까지 갖추고 있다면 이미 자신감을 잃은 사람을 상대로 승리를 거둘 수밖에 없어요. 허순재도 이런 말을 처음 들었지만 곧 이해할 수 있었다.심리적 암시는 사람에게 정말 큰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예를 들어 의학에서의 심리 위로 방식이 바로 심리적 암시가 가장 성공적으로 적용된 사례이다.다만 이런 심리 암시는 보통 조건이 필요하다.환자로서는 의사 선생님을 믿기 시작할 때부터 심리적 임시가 시작되기도 했다. 이는 마치 스스로 최면에 걸린 것과 같았다.‘하지만 이런 도박장에서는 그런 기회가 있을까?’허순재는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다.김예훈이 계속해서 말했다.“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면 손가락을 튕기는 것으로 모든 사람의 시선을 손끝에 집중시켜 그때 심리적 암시를 펼치는 것 같아요. 다만 이런 경도 최면술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할 수밖에 없어요. 심지어 상대에게 최면을 걸기 위해서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로 알고 있어요. 이것이 바로 이형돈 씨가 매번 3판 2선승제를 선택하는 이유일 거예요. 이게 바로 그가 할 수 있는 경도 최면의 한계인 거죠. 3판을 넘기면 더 이상 최면을 계속할 수 없어요.”“정말 그렇게 신기해요?”허순재는 살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