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사람이 장정범이에요.”유정은 중년 남자가 등장하자 바로 진서준에게 소개했다.진서준은 장정범을 흘낏 보고 바로 그가 내뿜는 피비린내가 섞인 살기를 느꼈다.“여러분!”장정범은 마이크를 잡고 차분한 눈빛으로 손님들의 얼굴을 훑어보았다.그러자 본래 시끄럽던 홀은 즉시 고요해졌다.모든 사람이 장정범을 묵묵히 지켜보며 그의 다음 발언을 기다렸다.“오늘 제 아들의 성인식 연회에 오셔서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물론 오늘 이 연회는 단순한 생일 파티만은 아닙니다. 이미 몇몇 분들은 소문을 들으셨을 겁니다. 저희 장씨 가문은 곧 피부를 촉촉하게 하고 노화도 늦출 수 있는 약을 출시할 예정입니다.”이 말에 현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왜냐하면 모두가 장씨 가문이 건축 자재를 취급하는 회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약재와 건축 자재는 재료라는 공통점은 있지만 천양지차였다.장씨 가문이 미치지 않고서야 이런 결정을 내릴 것 같지 않았다.유정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충격을 받았다.“혹시 장씨 가문이 회연단을 훔쳐 간 걸까요?”유정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럴 가능성이 있어.”진서준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아까 그 장우림이라는 놈이 그렇게 대담했던 이유가 바로 이거겠지.”유정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화가 치밀어 올라 주먹을 꽉 쥐었다.“장정범 씨, 건축 업체가 약재를 출시한다고요? 장난치고 있는 거 아닌가요?”누군가가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물론 장난 아닙니다. 저희가 이번에 출시할 약은 회연단이라고 불리며 그 효과가 탁월합니다. 최대 3년 이내에 공식 발표회가 열릴 예정이니 그때 각자 애인을 데리고 와서 현장에서 직접 효과를 확인해 보세요.”장정범의 목소리는 자신감이 넘쳤다.그 말을 듣자 사람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할 말을 잃었다.장씨 가문의 가주인 장정범이 이런 어이없는 농담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그런데 장씨 가문은 도대체 어디서 이 약의 처방전을 구했을까?“그럼 여러분, 음식과 와인을 마음껏 즐기세요. 저는 더
진서준은 상업적인 일에 대해서 대략적인 개념만 알고 있을 뿐, 자세한 건 잘 몰랐다.하나는 가격 경쟁을 거는 것이고 또 하나는 더 좋은 제품으로 상대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었다.장정범이 회연단의 처방을 훔쳤다면 분명 대량 생산할 것이다.왜냐하면 장정범은 회연단이 엄청난 인기몰이를 할 거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그때가 되면 장씨 가문은 돈을 억수로 긁어모으며 승승장구할 터였다.하지만 장씨 가문을 무너뜨리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회연단보다 더 강력한 단약을 만들어내면 되는 일이었다.장씨 가문이 모든 자금을 회연단에 쏟아부었을 텐데 그 회연단이 팔리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장씨 가문의 손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며 파산은 시간문제일 것이다.그렇게 되면 장씨 가문은 스스로 무너지는 길만 남을 것이다.“넌 또 뭐야? 우리 대화에 끼어들 자격이라도 있나?”장정범은 눈을 가늘게 뜨고 싸늘한 기운을 뿜어냈다.대기업 대표끼리 대화하는데 어디 듣보잡 경호원이 감히 끼어들어?상황 파악도 못 하고 주제 넘는 경호원인 것 같았다.“장정범, 네가 우리 유씨 가문과 정식으로 한판 붙어보겠다고 했으니 나중에 누가 웃을지 한번 보자고.”유정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좋아, 유씨 가문이 과연 어떤 수로 날 상대할지 두고 보지.”장정범은 비웃듯이 코웃음을 쳤다.회연단은 유씨 가문의 정예 연구진과 성약당 장로들이 합심해서 개발한 걸작이다.장정범은 이 회연단을 직접 써보고 그 효과를 확신했다.이 회연단은 기적의 명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그런데 유씨 가문이 고작 사흘 만에 이보다 더 뛰어난 단약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돌아가죠.”두 사람은 뒷말 없이 자리를 떴다.“아버지, 저 사람들 그냥 보내실 겁니까?”장우림이 씩씩거리며 말했다.유정을 탐내온 지 오래되었는데 경호원 하나만 데려온 지금이야말로 유정을 덮칠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유씨 가문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어. 네가 지금 유정을 덮치면 유기
“그렇게 신기해?”허윤진도 순간 흥미를 보였다.세상 어떤 여자도 더 예뻐지는 걸 거부하지 않았고 물론 허윤진도 마찬가지였다.이미 경국지색이라 해도 더 아름다워지고 싶은 게 여자 마음이었다.이 세상에 가장 예쁜 여자는 없고 더 예쁜 여자만 있을 뿐이다.“좋아, 나도 가볼래.”기대에 찬 허윤진이 신나게 뛰어갔다.이때, 진서준은 약을 빚느라 여념이 없어 발소리가 들리자 유정이 온 줄 알았다.애초에 진서준이 여기서 약을 제조하는 걸 아는 사람은 유정뿐이었다.“유정아, 먼저 가서 쉬어. 내일 아침이면 샘플이 완성될 거야.”허윤진은 살금살금 다가가더니 갑자기 손으로 진서준의 눈을 가리고는 상반신을 진서준의 등에 밀착시키며 몸을 꾹 눌렀다.허윤진의 풍만한 가슴이 완전히 눌려 변형될 정도였다.진서준은 순간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유정아, 장난치지 마. 지금 약을 만들고 있어.”진서준은 유정을 친동생처럼 생각하고 있었지만 단 한 번도 이렇게 친밀한 밀착이 있었던 적은 없었다.남녀유별인 데다 의형제 사이였으니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었다.허윤진은 대답 대신 얼굴을 가까이 대고 진서준의 귓불에 따뜻한 숨을 불었다.촉촉하고 뜨거운 숨결에 진서준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유정아, 빨리 떨어져. 장난 그만해.”“바보야, 난 네 여동생이 아니거든?”진서준이 긴장한 모습을 보이자 허윤진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윤진이었어?”진서준은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만 장난쳐, 나 약 만들고 있잖아.”“진짜 그렇게 대단한 약이야? 설마 유정을 속인 건 아니겠지?”허윤진은 의심스러운 눈으로 단약을 바라봤다.“내가 그런 걸로 장난치겠어?”진서준은 어이없다는 듯 눈을 부라렸다.“예전에 내가 너희한테 준 주안단, 기억 안 나?”그 말을 듣자 허윤진은 갑자기 기억이 떠올랐다.작년 서울시에서 진서준이 허윤진 일행에게 주안단이라는 신비한 약을 준 적이 있었다.그 약을 먹으니 피부가 아기보다 더 부드러워졌다.다들 워낙 미인이었지만 복용한 후로
단약이 입안에서 바로 녹았다.유정은 몸속에서 따뜻한 기운이 퍼지는 걸 느꼈고 몸이 극도로 편안해졌다.어젯밤 단약을 생각하느라 뒤척이다 보니 유정은 결국 새벽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그래서 아침에 일어났을 때 유정의 눈 밑에 얕은 다그서클이 생겨 있었다.하지만 지금은 다크서클이 사라졌고 피부도 훨씬 부드럽고 촉촉해졌다.“정말 신기하네요!”아기 피부처럼 부드럽고 탱탱한 모습을 보며 유정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약화한 버전의 주안단이 유씨 가문이 연구한 회연단보다 몇 배나 더 강력했다.더욱 놀라운 건 이게 단지 약화한 버전일 뿐이라는 점이다.진짜 주안단을 꺼내면 아마도 정말 영원히 젊음을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진서준은 담담하게 웃으며 말했다.“주안단에 필요한 약재가 비싸긴 하지만 이 약화한 주안단은 네가 말한 회연단보다 효과가 더 좋을 거야.”“좋은 정도가 아니라 하늘과 땅 차이인데요?”유정이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그건 좀 너무 과장한 게 아니야?”진서준이 웃으며 되물었다.“오빠, 제가 과장하는 게 아니에요. 회연단은 정말 이거랑 비교할 수 없어요.” 유정이 단호하게 말했다.“이 약에 이름을 지어봐.”진서준은 이 약의 이름을 짓고 싶었다.주안단 약화 버전은 너무 길고 이상한 이름이었다.“잠깐만 생각해 볼게요.”유정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곰곰이 생각했다.“국색천향이라고 하죠, 어때요?”유정이 제안했다.“이 이름은 홍보 효과가 좋고 부자들의 관심을 끌기에 딱 좋을 거예요.”진서준도 괜찮다고 생각했다.“네 의견을 따를게.”“그럼 이 이름으로 하죠. 아참, 장정범이 어젯밤에 발표회를 연다고 하지 않았나요? 우리도 한 번 열어보죠. 날짜는 같은 날로 잡고요.”유정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장소도 똑같은 곳에서 열죠. 장정범이 철저하게 무너지는 걸 직접 보고 싶어요.”유정의 모습을 보고 진서준은 저도 몰래 등골이 서늘해졌다.악한 사람을 건드리는 것보다 여자를 건드리는 게 더 무서운 일이라는 게 틀린 말 같지 않
“저는 김평안 씨를 믿어요.”조슬기는 망설이지 않고 국색천향을 꿀꺽 삼켰고 약은 입안에서 바로 녹았다.조슬기가 그 맛을 음미할 틈도 없이 몸속에서 따뜻한 기운이 빠르게 퍼졌다.“너무 편안한데요?”조슬기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유정은 빙긋 웃으며 거울을 꺼내 건넸다.“조슬기 씨, 얼굴 한번 보세요.”조슬기는 거울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다.피부가 전보다 더 부드럽고 매끈해졌을 뿐만 아니라 몇 년은 젊어진 것 같았다.“이게 정말 저예요?”조슬기는 놀라움과 기쁨이 뒤섞인 표정을 지었다.옆에 있던 신수란도 입을 떡 벌리고 경악했다.처음엔 이 약이 별거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효과가 신수란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뚜렷했다.그야말로 기적이나 다름없었다.조슬기의 달라진 모습을 보자 신수란의 눈빛도 점점 뜨거워졌다.나이가 몇이든, 모든 여자는 젊고 아름다워지고 싶어 하는 법이다.올해 서른을 갓 넘긴 신수란은 한창 외모에 대한 고민이 많아질 때였다.이제 국색천향이라는 기적 같은 약이 눈앞에 있는데 신수란이 잠자코 있을 수 없었다.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약을 대놓고 무시했으니 이제 와서 달라고 하기도 참 난감했다.“김평안 씨는 의술도 뛰어난데 약을 만드는 실력까지 겸비했네요. 정말 대단한 사람이네요.”조슬기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그러나 문득 어제 아침 진서준과 허윤진이 키스하던 장면이 떠오르자 조슬기는 차분하게 정신을 가다듬었다.“신수란 씨, 정말 안 드셔 보겠어요?”유정은 신수란의 탐욕스러운 눈빛을 일찌감치 눈치채고 있었다.신수란이 자존심이 센 것도 알기에 유정은 일부러 그녀에게 손을 한 번 더 내밀었다.“음... 유정 씨가 이렇게 권하시는데 제가 계속 거절하면 너무 예의 없는 사람이 되겠죠.”신수란은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약을 받아 들고 그대로 삼켰다.십여 초 뒤, 신수란은 거울을 들여다보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슬기 후배, 뭘 그렇게 신나게 얘기하고 있어?”그때, 은청준 일행이 야외 훈련을 마치고 돌아왔다.“선배님
이건 설명하기 어렵지 않았다.“본래 우리 유씨 가문과 성약당 장로들이 함께 회연단이라는 약을 연구하고 있었어요. 근데 어제 내부 배신자가 그 약 처방을 훔쳐서 장씨 가문에 넘겼죠. 심지어 어젯밤 장씨 가문 연회에서 장정범이 직접 그 일을 언급하면서 저를 도발했어요. 그 얘기를 들은 김평안 씨가 밤새 연구해서 이 국색천향이라는 약을 만들어낸 거예요.”유정이 간단명료하게 상황을 정리했다.이를 듣자 조슬기가 버럭 화를 냈다.“장씨 가문은 대놓고 깡패 짓하는 거 아니에요? 남의 물건을 훔쳐 가 놓고도 뻔뻔하게 도발한다고요?”“진짜 한심하네요. 저렇게 뻔뻔한 인간은 저도 처음 봐요.”신수란도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어젯밤 그 오만한 꼴, 저는 제대로 머릿속에 기억해 뒀어요.”유정이 미소를 지었다.“조만간 장씨 가문이 발표회를 열 텐데 그때 가서 장정범 부자 얼굴에 웃음기 싹 지워줄 거예요.”유정의 표정은 이미 승리를 확신한 듯했다.“그때 조슬기 씨가 직접 참석해서 우릴 도와줬으면 해요.”유정이 이 기회를 빌려 부탁했다.“좋아요. 당연히 도와드려야죠.”조슬기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조슬기는 애초에 유씨 가문의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고민하던 참이었다.목숨을 구해준 은혜를 갚지 않으면 평생 마음이 걸릴 터였다.“좋아요, 그럼 조슬기 씨도 바쁠 테니 전 이만 성 신의를 찾으러 갈게요.”유정은 남은 국색천향 두 알을 들고 성동석을 찾아갔다.“성 신의님, 이 약 한번 봐주실 수 있을까요?”성동석은 약을 받아 들고 여러 번 살펴보더니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이게 대체 무슨 약이죠? 저는 이런 약을 본 적이 없는데요?”“국색천향이라고 하는데 주된 효과는 피부 개선과 미용이에요.”유정의 설명을 듣자 성동석은 더욱 놀랐다.“뭐라고요? 미용 효과까지 있는 약이라니... 처음 들어보는데요?”성동석은 다시 한번 유정을 유심히 바라봤다.“유정 씨, 혹시 이 국색천향을 이미 드신 건가요?”“네.”유정이 고개를 끄덕
“총 다섯 알 만들었어요.”유정이 한마디 덧붙였다.성동석은 이미 벼락에 맞은 듯 충격을 받아 말문이 턱 막혔다.“성 신의님, 이틀 후에 저희 유씨 가문에서 기자회견을 열 겁니다. 그때 꼭 참석해서 자리 빛내 주십시오.”유정이 본론을 꺼냈다.“좋아요, 문제없습니다.”성동석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회연단이 도난당한 건 우리 유씨 가문 책임이에요. 그러니 국색천향으로 얻을 이익의 절반을 성약당에 드릴게요.”이건 애초에 정해진 약속이었다.회연단이 시장에 출시되면 유씨 가문과 성약당이 수익을 반반씩 나누기로 했었다.이제 진서준이 만든 국색천향이 있으니 유정도 기존 약속대로 성약당에 절반을 배분할 생각이었다.“아, 아뇨. 절반은 너무 많아요. 성약당을 대표해서 말하는데, 30%만 받아도 충분해요.”성동석은 단호하게 말했다.회연단과 국색천향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였다.성동석은 국색천향이 일단 출시되면 단숨에 시장을 뒤흔들 거라고 확신했다.30%만 가져도 천문학적인 수익일 것이다.“제 생각엔 이익의 50%를 김평안 씨에게 드리는 게 맞는 것 같아요.”성동석이 조심스럽게 제안했다.“성 신의님 말씀이 맞아요. 저도 같은 생각이었어요.”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성 신의님 뜻을 존중해서 지금 바로 새 계약서를 작성할게요.”곧바로 새 계약서가 작성되어 왔고 성동석은 한 글자도 읽지 않고 바로 성약당 명의로 사인했다.“고마워요, 성 신의님.”유정이 다시 한번 감사를 표했다.“아니요. 감사해야 할 사람은 오히려 저죠.”성동석은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했다.“유씨 가문에서 저를 초대하지 않았다면 저도 김평안 씨 같은 대단한 인물을 만날 수 없었을 거예요.”유정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흐뭇했다.그 후, 유정은 계약서를 들고 바로 진서준을 찾아갔다.“오빠, 이 계약서에 사인해 주세요.”진서준은 대충 훑어보고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국색천향 계약서? 유정아, 내가 널 도운 건 돈 때문이 아니야. 이건 사인할 수 없어.”유정은 진
이틀 연속, 유씨 가문과 장씨 가문은 유난히 조용했다.진서준은 묘강의 독충 의술에 관한 기록을 마친 후, 유정과 함께 출퇴근하며 유정의 신변을 보호했다.한편, 조슬기 일행은 이 기회를 틈타 금도 곳곳을 둘러보며 시간을 보냈다.그리고 사흘째 아침, 천궁 호텔.장씨 가문의 신제품인 회연단 발표회가 정식으로 개최됐다.지난번 연회장에서의 홍보 효과와 며칠간의 입소문이 더해져 회연단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누구나 젊고 아름답고 멋있어지고 싶어 하는 법이다.게다가 이 회연단은 수명 연장의 효과까지 있다고 하니 금도의 수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덕분에 오늘 발표회 현장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귀빈들로 가득 찼다.아직 정오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천 명에 가까운 인파가 몰려들었다.심지어 평소 장씨 가문과 사이가 그리 좋지 않았던 가문들까지도 발표회에 참석할 정도였다.정오 무렵.고급 차량 몇 대가 호텔 정문 앞에 천천히 멈춰 섰다.차 문이 열리자 진서준이 먼저 차에서 내렸다.진서준은 주변을 빠르게 살펴 안전을 확인한 후에야 유정이 차에서 내리도록 했다.그 뒤를 이어 조슬기와 신수란도 차에서 내렸다.세 여자가 등장하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으로 집중됐다.서로 다른 매력을 뽐내며 등장한 세 미녀는 사람들의 시선을 안 끌려야 안 끌 수가 없었다.진서준은 여전히 예전처럼 인피면구를 쓴 채였다.조슬기 일행이 떠나기 전까지는 이 가면을 벗을 일이 없었다.“이거 유정 씨 아니에요? 장씨 가문 발표회에 참석하러 온 겁니까?”박진용이 반갑게 다가왔다.“아니요.”유정이 무심하게 답했다.“네? 그럼 여긴 무슨 일로 오셨죠?”박진용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시선은 조슬기와 신수란에게서 떠날 줄 몰랐다.이 두 여자는 분명 금도에서 본 적이 없는 오늘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발표회에 참석하러 왔죠.”유정이 태연하게 대답하자 박진용이 순간 당황했다.“방금 전엔 아니...”박진용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정이 말을 끊었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