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사회에서 개인 기업 중 사장이 직원을 사람처럼 대우해 주는 곳은 드물었다.화진에서는 90% 이상이 개인 기업인데 대부분이 일주일에 겨우 하루 쉬었다. 그리고 4대 보험도 없고 야근해도 야근 수당이 없었다.유정과 고한영 두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었기에 그들도 착취당해 본 적이 있었다.그래서 유정은 회사 총괄 매니저가 된 뒤로 곧바로 회사 규칙을 노동법에 부합되게 수정하고 그것을 그대로 실시했다.이로 인해 회사 직원들의 업무 열정이 치솟았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직장을 옮기기를 원했다.회사 업무 성적도 전보다 훨씬 더 좋았다.“그쪽은 어느 학교 졸업했어요? 얼마나 자신감이 넘치길래 이력서도 가지고 오지 않은 거예요?”진서준의 앞에 있던 청년이 물었다.“저요? 그냥 평범한 대학 나왔는데요.”진서준이 대답했다.“그러면 가망이 없겠네요.”그 청년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저기 앞에 치마 입은 여자 보이죠? 그리고 저 앞에 안경 낀 남자 봤어요? 둘 다 명문대 졸업생이래요!”두 사람이 명문대 출신이라고 말할 때 청년의 얼굴에는 부러운 기색이 역력했다.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들은 학교로 한 사람의 능력을 판단한다.진서준은 옅은 미소를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때 정장을 입은 여자가 걸어와서 면접을 보러 온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이력서는 저한테 주시면 돼요. 잠시 뒤에 제가 순서에 따라 호명하면 안으로 들어가서 면접 보시면 됩니다.”사람들은 그 말을 듣자 곧바로 자기 이력서를 순서대로 바쳤다.“안녕하세요, 이력서를 준비하지 않으신 건가요?”진서준이 가만히 있자 여자가 물었다.“전 이력서 없습니다. 잠시 뒤에 그냥 제 이름 불러주시면 돼요. 전 진서준이라고 합니다.”진서준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여자는 면접 보러 오는데 이력서를 챙기지 않은 사람은 처음 봤다.그녀는 잠깐 의아해하더니 이내 몸을 돌려 떠났다.“시간 낭비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이력서도 가져오지 않았는데 어떤 회사가 뽑겠어요?”진서준은
“알겠어요. 돌려줄게요.”진서준은 껌을 청년에게 돌려준 뒤 곧장 회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줄 서서 면접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의아한 얼굴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회사에 들어서자마자 안내데스크 직원이 진서준을 알아봤다.“대표님, 오셨어요?”“유정 씨는 어디 있어요?”진서준이 물었다.“사무실에 계세요. 제가 안내해 드릴게요!”안내데스크 직원이 앞에서 진서준을 안내하여 그를 유정의 사무실로 이끌었다.“유 매니저님, 진 대표님께서 오셨어요!”진서준이 왔다는 말에 유정은 기쁜 얼굴로 곧바로 그를 맞이했다.“서준 씨, 여긴 어쩐 일이세요?”“회사 어떤지 보러 왔어요.”진서준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저랑 고한영 씨는 아직 연구 계단에 있긴 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 둘 꼭 회사를 망칠게요!”유정이 장담하며 말했다.“두 사람 회사를 망친 게 아니라 오히려 회사를 아주 잘 관리했어요.“진서준이 칭찬했다.좋은 회사인지 나쁜 회사인지는 채용할 때 사람이 얼마나 왔는지를 보면 알 수 있었다.쓰레기 같은 회사에 가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좋은 회사는 사람이 차 넘치는 법이다.“별일 없으면 난 먼저 가볼게요. 앞으로 업무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언제든 나한테 연락해요.”진서준은 유정에게 당부했다.“특히 저번 같은 일은 절대 다시 발생해서는 안 돼요!”저번에 있었던 일을 떠올린 유정은 두려움이 들었다.만약 진서준이 제때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그녀와 고한영은 틀림없이 짐승 같은 그 자식에게 능욕당했을 것이다.“내가 배웅할게요!”유정은 진서준의 곁을 따르며 그를 회사 밖까지 배웅했다.회사 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면접 예정자들은 의아했다.“참, 유정 씨. 우리 회사는 인재를 채용할 때 과하게 능력 있는 사람은 채용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인성만 바르면 돼요. 바람에 따라 돛을 다는 사람은 절대 채용하지 말아요!”진서준이 갑자기 말했다.진서준은 유정과 고한영 두 사람이 회사를 이렇게 크게 키우게 할 생각이 없었다. 회사가 그저
진서준은 경비원과 함께 주차장에 도착했고 경비원은 진서준의 마이바흐가 갇혀 있는 걸 발견했다.진서준의 차를 막은 차도 비싼 차인 걸 발견한 경비원은 난처해했다.“혹시 조금만 기다리시겠어요? 어쩌면 금방 나올지도 모르잖아요.”진서준은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제 시간은 귀합니다. 당장 이 차 차주 불러오세요.”경비원은 자신이 진서준처럼 돈 많은 사람의 심기를 거스를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잠시만요, 지금 당장 가서 조회해 보겠습니다.”곧 경비원은 마세라티 차주를 알아냈다.“선생님, 이건 차주분 전화번호입니다. 직접 연락해 보시겠어요?”진서준은 휴대전화를 꺼내 상대에게 연락했다.“여보세요, 누구세요?”전화 건너편 여자의 말투는 굉장히 거칠었다. 마치 진서준이 그녀의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진서준은 참을성 있게 설명했다.“차 번호 021 차주 맞죠?”“네, 전데요. 왜요?”“그쪽 차가 제 차를 막고 있어요. 내려와서 차 좀 빼주세요.”“기다려요!”상대방은 그렇게 말한 뒤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진서준은 조금 화가 났다. 차를 막은 건 그녀인데 전혀 미안하지 않은 듯했다.그러나 진서준은 그 여자와 쓸데없이 다투고 싶지 않았다.약 5분을 기다린 진서준은 조금 짜증 났다.사람들이 붐비는 출퇴근 시간도 아니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 3분이면 충분했다.진서준은 곧 여자에게 또 전화를 걸었고 여자는 한참이 지나서야 전화를 받았다.“내려왔어요?”진서준의 말투가 조금 거칠어졌다.“뭐가 그렇게 급해요? 난 일을 아직 못 끝냈어요. 기다리지 못하겠으면 그냥 택시 타고 가요!”여자는 아주 당당하게 말했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자 성질이 나서 전화를 끊어버렸다.전화를 끊은 뒤 진서준은 바로 조성우에게 연락했다.“진서준 씨, 무슨 일이세요?”조성우는 거의 1초 만에 전화를 받았다.“견인차 한 대 여기로 보내요. 그리고 허머 몇 대를 내가 보내준 위치로 보내요.”조성우는 원인조차 묻지 않고 곧장 동의했다.조성우의
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냉소했다.“조금 전에 내 차를 막았을 때 지금 같은 상황은 생각해 본 적 없죠? 그리고 전 기회를 준 적이 있어요. 기회를 아끼지 않은 건 그쪽이에요.”진서준은 조해영처럼 막무가내인 사람을 절대 봐주지 않았다.조해영은 그에게 알아서 하라고 했으니 그녀 또한 알아서 차를 빼야 했다.허머 세 대라서 견인차로도 차를 빼내기는 힘들었다.“빌어먹을, 딱 기다려요!”조해영은 화를 내며 욕하더니 전화를 끊고 곧바로 큰아버지에게 연락했다.“큰아버지, 누가 제 차를 나오지 못하게 막아놨어요. 지금 견인차 두 대 보내주세요!”조성우은 그 말을 듣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는 곧 견인차 두 대를 보냈다.견인차 두 대가 겨우겨우 허머 세 대를 빼내고 조해영의 마세라티를 위해 길을 내줬다.“더는 내 눈에 띄지 마. 그렇지 않으면 당신 차 완전히 박살 내버릴 테니까.”조해영은 스포츠카 안에서 이를 악물며 욕했다.이때 조해영의 전화가 울렸다.황은비에게서 걸려 온 전화인 걸 확인한 그녀는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나 곧 플라잉 호텔에 도착해!”오늘은 하민규의 생일이었고 하민규는 전처럼 과하게 준비하고 싶지는 않아서 플라잉 호텔에서 생일 파티를 열기로 했다.사실 하민규는 진서준을 초대하고 싶었으나 혹시라도 그가 오지 않을까 걱정되어 그에게 얘기하지 않았다.한가하던 진서준은 플라잉 호텔에 도착하여 주차를 해놓은 뒤 로비에서 자리를 찾아 앉았다.“진서준 씨!”누군가 자신을 부르자 진서준은 고개를 들어 그곳을 보았다. 황은비가 미소 띤 얼굴로 빠르게 그를 향해 오고 있었다.“황은비 씨.”진서준이 일어나서 인사를 건넸다.“하민규 씨 생일 파티에 참석하러 온 건가요?”황은비는 기쁜 얼굴로 물었다.진서준이 설명했다.“아뇨. 다른 분이랑 이곳에서 같이 식사하기로 했어요.”진서준의 설명을 들은 황은비는 눈알을 굴렸다.“저랑 먼저 같이 올라가실래요? 하민규 씨 진서준 씨가 자기 생일 파티에 온 걸 알면 틀림없이 기뻐할 거예요!”“
조해영은 좌우를 둘러보더니 손바닥만 한 바위를 찾아 줍고 그것으로 마이바흐를 내리쳤다.바위로 내리치자 새것이던 마이바흐 위에 흰색 스크래치가 났다.몇 번 반복하다 보니 마이바흐의 보닛에 흠집이 났다. 조해영은 매우 힘들었다.“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플라잉 호텔의 경비원이 마침 그곳에 도착해서 조해영이 차를 바위로 내리치는 걸 막으려고 했다.“때마침 잘 왔어요. 이 차를 아주 엉망으로 만들어주면 내가 200만 원 줄게요!”조해영은 경비원을 보자 두려워하기는커녕 오히려 더 흥분했다.그곳에 도착한 경비원들은 조해영의 말을 듣고 어안이 벙벙해졌다.그들은 마이바흐 브랜드 로고를 알고 있었다. 심지어 방금 뽑은 지 얼마 안 되는 새 차 같았다.그들이 이 차를 망가뜨린다면 분명 차주가 그들을 찾으러 올 것이다.마이바흐 같은 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은 절대 그들 같은 평범한 경비원이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내가 하라고 하잖아요? 못 들었어요?”경비원들이 우두커니 서 있는 걸 본 조해영은 정신 나간 사자처럼 막 소리를 질러댔다.“이 차는 마이바흐예요. 비싼 건 4억쯤 돼요.”경비원이 설득했다.“겨우 4억이잖아요. 내 차는 8억이에요. 이 차 두 배라고요!”조해영은 옆에 있는 마세라티를 가리키며 말했다.조해영도 있는 집 자식인 걸 본 경비원은 난감했다.마이바흐를 망가뜨린다면 마이바흐 차주가 화를 낼 것이다.하지만 마이바흐를 가만히 놔둔다면 눈앞의 호랑이처럼 사나운 여자가 그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망가뜨려도 당신들 보고 배상하라고 하지는 않을게요!“조해영이 사납게 말했다.”우리 큰아버지는 서울시 자동차 대리점 사장이에요. 겨우 마이바흐 한 대는 내게 아무것도 아니라고요!”조해영의 신분이 대단하다는 걸 알게 된 경비원들은 망설이지 않고 배트를 들어 진서준의 마이바흐를 부수기 시작했다.쨍그랑…마이바흐의 차창 유리가 전부 박살 났고 차 문도 너덜너덜해졌다. 조해영은 심지어 자신의 샤넬 립스틱을 꺼내 마이바흐 보닛 위에
“흥!”조해영은 차갑게 코웃음치더니 플라잉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팀장님, 이제 어떡해요!”“일단 이 일을 사장님께 알려야 해.”경비팀장이 어쩔 수 없다는 어조로 말했다.조해영이 룸에 도착했을 때 다른 사람들은 이미 다 도착한 상태였다.비록 조해영은 진서준의 차를 박살 냈지만 진서준이 어떻게 생겼는지는 알지 못했다.“조해영, 왜 이렇게 늦은 거야?”“말도 마. 주차장에서 어떤 멍청한 놈이 내 차를 막아놨지 뭐야?”조해영은 자신의 명품 백을 소파 위로 던지며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뭐? 어떤 사람이 감히 네 차를 막은 거야?”“요즘엔 진짜 별별 사람이 다 있다니까.”조해영은 물을 마시면서 투덜댔다.진서준도 차가 막힌 적이 있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죠. 주차장에서 남의 차를 가로막는 사람은 확실히 머리에 문제가 있죠.”낯선 남자 한 명이 자신의 말에 동의하자 조해영은 조금 어리둥절했다.“저 사람 누구야? 난 본 적 없는데?”조해영의 예의 없는 태도에 하민규와 황은비의 안색이 달라졌다.“조해영, 이분은 진서준 선생님이야. 말조심해.”“진서준 선생님?”조해영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우리랑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데?”조해영은 왜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사람을 저렇게 존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진서준은 덤덤히 웃었다.“그냥 편하게 불러요. 선생님이라고 부를 필요 없어요. 그렇게 부르면 오히려 제가 나이 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황보식과 명문가 가주들과 자주 만나다 보니 진서준은 자신에게 활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진서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인데.”조해영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조성우는 진서준의 용서를 얻은 뒤 곧바로 가족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는 절대 진서준이라는 젊은이를 건드리지 말라고 했었다.만약 진서준의 심기를 건드린다면 가족이라고 해도 어림없다고 했다.조해영은 당시 이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저 힐끗 보기만 해서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 뿐이었다.“우선 민규 형님
갑작스럽게 방해를 받게 되자 하민규는 불쾌한 어조로 물었다.“누구예요?”“호텔 매니접니다. 안에 있는 한 고객님께서 나와주셔야 할 것 같아서요.”플라잉 호텔 매니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그는 안에 있는 사람이 전부 돈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이름을 예약한 사람은 그가 건드릴 수 없는 재벌가 자제였다.조금 전 자기 부하가 마이바흐를 망가뜨린 걸 알게 된 호텔 매니저는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룸 문이 열리자 호텔 매니저는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안녕하세요, 하민규 고객님.”“누구를 찾아온 거예요?”하민규가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매니저는 고개를 들어 쓱 훑어보더니 진서준을 보고 다급히 말했다.“저분을 찾아왔습니다.”진서준은 권해철 등 사람들이 도착해 매니저를 시켜 자신을 데리러 온 줄 알아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먼저 드세요. 제가 나가볼게요.”진서준이 매니저를 따라 룸에서 나왔을 때 매니저는 진서준을 데리고 자신의 사무실로 향했다.그가 자신을 룸이 아니라 사무실로 데려가자 진서준은 조금 의아했다.“왜 여기로 온 거죠?”“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고객님 차가 박살 났어요.”호텔 매니저는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으며 말했다.“네? 무슨 뜻이에요?”진서준은 눈빛이 달라지더니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그의 차는 주차장에 있는데 왜 갑자기 박살 났단 말인가?“저희 호텔 경비원이 고객님 차를 망가뜨렸습니다.”호텔 매니저가 대답했다.그 순간 진서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여기 호텔 경비원은 고객의 차를 부수나요? 호텔이 좀 크다고 이렇게 사람을 괴롭혀도 돼요?”진서준이 화를 내며 호통을 쳤다.꽤 오래 살았지만 진서준은 이렇게 이상한 호텔은 처음이었다.“아닙니다, 고객님. 한 여자 고객님께서 시킨 일이라고 합니다. 차를 부수면 두당 200만 원을 주겠다면서요.”진서준의 엄청난 기세에 호텔 매니저는 겁을 먹고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진서준은 매니저의 말에 화가 나다 못해 헛웃음이 났다. 겨우
진서준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오늘은 하민규의 생일이고 이렇게 중도에 자리를 뜬다면 불만스러운 티를 내지는 않겠지만 분명 마음이 좋지 않을 것이다.“자, 그러면 두 분 잠깐만 기다려주세요.”진서준은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하민규가 있는 룸으로 돌아왔다.“서준 형님, 괜찮은 거예요?”하민규는 진서준이 돌아오자 한 마디 물었다.“별거 아니에요. 그냥 누군가 내 차를 부쉈더라고요.”진서준은 손을 저었다.사람들은 그 말을 듣더니 마치 큰 적이라도 만난 듯 순식간에 벌떡 일어났다.“젠장, 죽고 싶은가 보네요. 감히 서준 형님의 차를 때려 부수다뇨!”하민규는 식탁을 내리치면서 화를 냈다.자기가 사랑하는 남자가 화를 내자 조해영도 따라서 욕했다.“그런 사람은 두 손을 부러뜨려야 해요.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못하게 말이죠!”다른 사람들도 진서준의 차를 부순 사람을 욕했다.“됐어요. 이런 사소한 일로 우리의 기분을 망쳐서는 안 되죠. 계속 술 마시자고요.”진서준은 웃으면서 앉으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이내 룸 안의 분위기는 다시 좋아졌다.다른 한편, 권해철과 넋이 나간 우소영은 다른 룸으로 들어갔다.우소영은 한참을 넋 놓고 있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권해철, 날 속이는 건 아니지? 저 젊은이가 정말로 진 마스터라고?”우소영의 말에 권해철의 안색이 달라졌다.“말조심해. 진서준 씨가 그 말을 들었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으니까!”권해철이 낮은 목소리로 그녀를 나무랐다.권해철의 진지한 모습에 우소영은 서둘러 자신의 입을 막았다.“권해철, 나한테 솔직히 얘기해 봐. 저 청년 대체 나이가 몇이야?”권해철은 손가락 두 개를 내밀더니 또 손가락 다섯 개를 내밀었다.“52?”우소영이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25!”“뭐라고?”우소영은 다시 한번 얼이 빠졌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듯했다.25살에 선천 대종사급의 실력을 갖추다니, 인간이 맞을까?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이렇게 무시무시한 속도로 수련할 수는 없을 것이다.우소영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