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옥산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정민식의 단전이 파괴된 걸로 진서준의 화가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다.강옥산은 오늘 그와 그의 아들 중 단 한 명만이 살아남을 수 있을 거란 걸 알았다.그는 이미 늙었지만 그의 아들은 젊었다. 어쩌면 앞으로 그를 위해 복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강성준은 눈물을 머금고 이를 악물며 말했다.“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앞으로 꼭 복수해 드릴게요.”“됐어. 그만 얘기하고 얼른 떠나...”강옥산은 강성준을 사람들 사이로 밀었다.강성준은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은 뒤 고개를 푹 숙이고 조용히 무관 밖으로 나갔다.진서준은 정민식에게 집중하느라 강옥산 부자의 행동을 눈치채지 못했다.“당신을 죽일 생각이었더라면 조금 전에 이미 죽였을 거야.”진서준은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난 당신을 죽이지 않을 거야. 당신은 평생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살아야 할 거야.”진서준은 아주 잔인했다. 하지만 진서준이 정민식의 상대가 되지 않았더라면 지금 바닥에 쓰러져 있는 사람은 진서준이었을 것이다.유지수의 복수로 진서준은 한 가지를 깨달았다. 적을 봐준다면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다시 돌아올 거란 걸 말이다.정민식은 그 말을 듣더니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지금 날 죽이지 않는다면 앞으로 반드시 후회하게 될 거다!”“사형과 사부님을 찾아가서 복수해달라고 하게?”진서준은 차갑게 웃었다.“그래, 난 언제든지 괜찮아. 하지만 기회는 한 번뿐이야.”정민식이 조금 전 말한 정월문을 진서준은 마음에 두지 않았다.사부님이 대종사면 뭐 어떤가?진서준은 이틀 전 우소영을 혼쭐냈고 그녀의 사부님도 반보 대종사였다.그러나 지금까지도 진서준은 전라도 쪽 소식은 전혀 듣지 못했다.“가자...”정민식은 세 제자에게 부축해 달라고 한 뒤 절뚝거리며 용행 무관을 나섰다.무관 안의 사람들은 존경스러운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일반인인 그들은 오늘 견문을 넓힌 셈이었다. 다른 세계를 보았다고 할 수 있었다.진서
강성준은 용행 무관에서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아 네 명의 사람들에 의해 가로막혔다.“비켜요!”강성준은 네 사람을 보더니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러고는 손을 뻗어 자신의 앞을 막은, 중간에 있는 짧은 머리 남자를 밀어내려 했다.그러나 아무리 힘을 써도 남자는 절대 밀려나지 않았다.“얼른 비켜요. 그렇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요.”강성준은 얼굴이 빨갛게 됐다. 그는 진서준이 자신을 봤는지 보지 못했는지 알지 못했다.만약 진서준이 그가 몰래 도망친 걸 알게 된다면 큰일이었다.“아버지 단전이 파괴됐는데 그냥 이렇게 도망친다고?”하신우는 억울한 얼굴의 강성준을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당신들은 대체 누구예요?”강성준은 서둘러 뒤로 물러나면서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하신우 등 네 명을 바라봤다.강성준은 눈앞의 네 사람과 척진 기억이 없었다.“여기서는 얘기하기가 불편하니 장소를 바꾸자고.”예준섭은 그렇게 말하더니 몸을 돌려 먼 곳으로 걸어갔다.“만약 아버지의 복수를 하고 싶다면 우리를 따라 와. 복수하고 싶지 않다면 네가 가고 싶은 데로 가고.”예준섭 등 네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강성준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들을 따라가기로 마음먹었다.조금 전에 그는 온 힘을 다해 하신우를 밀어내려 했지만 그는 마치 산처럼 꿈쩍하지 않았다.그렇다는 건 그들의 실력이 대단하다는 걸 의미했다. 심지어 정민식보다 더 강할지 몰랐다.이건 기회였다. 물론 동시에 함정일 수도 있었다.하지만 어느 것이든 한 번 도박해 볼 생각이었다.강성준은 예준섭 등 네 명을 따라서 한 호텔에 도착했다. 룸을 하나 잡은 뒤 예준섭은 강성준에게 말했다.“앉아.”“우리 정체가 궁금하지?”예준섭이 웃으며 물었다.“그래요. 당신들은 대체 누구죠? 난 당신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강성준이 긴장한 얼굴로 예준섭 등을 바라봤다.“우리 일찌감치 만났었더라면 지금쯤 네 무덤에 풀이 삼 미터까지 자랐을 거야.”변정선은 차갑게 웃더니 조롱 가득한 얼굴로 강성준을 바라봤다
“저야 당연히 좋죠. 그런데 정말 제가 가입해도 되나요? 전 종사도 아닌데...”“혈운 조직에 가입하면 전문적으로 훈련해 주는 사람이 있어. 네 재능이라면 1, 2년쯤 뒤면 종사가 될 수 있을 거야.”강성준은 당황했다.“1, 2 년 만에 종사가 될 수 있다고요?”그의 사부님인 정민식은 40여 년 동안 수련해서 겨우 종사 경지에 다다랐다.강성준은 정민식의 곁에 6, 7년 동안 배워서야 암경을 수련했다.“종사가 되기는 몹시 어렵지만 우리 혈운 조직에는 전문적인 수련 방법이 있어. 물론 그 전제는 네가 버틸 수 있어야 한다는 거지만.”함영식은 느긋하게 말했다.“버틸게요. 아주 위험하다고 해도 꼭 버티겠습니다!”강성준이 곧바로 장담했다.강성준에게 있어 이건 둘도 없는 기회였다.만약 2년 안에 종사가 될 수 있다면 아버지를 위해 복수할 기회가 생긴다.“버틸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 실제 상황을 봐야 하니 말이야.”함영식은 계속해 말했다.“종사는 무도 길에 있어서 시작점에 불과해. 종점이 아니야. 우리 손에 죽은 종사만 해도 두 자릿수가 넘어.”강성준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압니다...”혈운 조직은 종사를 죽이는 것으로 유명했다.홀로 남겨진 종사라면 절대 혈운 조직과 마주치지 못했다.그들과 마주친다면 죽음뿐이었기 때문이다.“혈운 조직에 가입하려면 뭘 바쳐야 하나요?”강성준은 갑자기 그 문제가 떠올랐다.이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다. 당시 강옥산은 그를 정민식에게 많은 돈을 썼었다.그러니 혈운 조직이라는 거대한 조직에 들어가는 것도 당연히 공짜는 아닐 것이다.“네 평생을 바쳐야 해. 넌 평생 혈운 조직을 배신할 수 없고, 평생 우리 조직을 위해 움직여야 해.”함영식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조직의 사람으로 살고 죽어서도 조직의 귀신이 되는 거야.”“문제없습니다. 할게요!”강성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승낙했다.“하지만 조직에 도움을 청하고 싶은데...”예준섭이 웃으며 말했다.“진서준을 죽이는 거?”“
“이 선생님, 이거 200년 된 새박뿌리예요. 이 품질 좀 보세요. 이렇게 좋은 걸 어디서 사겠어요? 60억이면 절대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에요. 이 선생님이 부영권 씨 제자만 아니었어도 이 선생님에게 팔려고 하지 않았을 거예요.”한 중년 남자가 이휘산을 향해 큰 목소리로 말하고 있었다.진서준은 남자가 200년 된 새박뿌리를 판다고 하자 바로 흥미가 생겼다.유정을 위해 만들 약에 필요한 약재 중 하나가 바로 새박뿌리였기 때문이다.오래된 새박뿌리일수록 약으로 만들어 사용하면 효과가 더 좋았다.만약 200년 된 새박뿌리를 쓸 수 있다면, 진서준은 유정이 50세가 되어도 여전히 지금처럼 피부가 매끄럽고 탄력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정 사장님, 정 사장님이 가져온 새박뿌리는 확실히 품질이 좋긴 해요. 하지만 60억은 너무 비싸요. 조금만 깎아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살 수가 없어요...”이휘산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지금 그에게는 그렇게 많은 돈이 없었다. 돈만 있었으면 분명 이 새박뿌리를 샀을 것이다.“안 돼요. 반드시 60억이어야 해요. 한 푼이라도 깎아줄 수 없어요. 살 생각 없으면 전 이만 가볼게요.”정석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새박뿌리가 들어있는 상자를 들고 떠나려 했다.“정 사장님, 뭐가 그리 급하세요. 이거 제가 살게요. 이거 살 사람 많지 않을 거예요!”100년 넘는 한약재들은 전부 엄청난 가치가 있었다.200년 된 새박뿌리는 절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 돈을 구할 수가 없으니 먼저 40억 드리고 나머지 20억은 한 달 안에 드릴게요.”이휘산이 설득하며 말했다.그 말을 들은 정석호는 미간을 구기며 다소 불쾌한 듯 말했다.“전 한 번도 그렇게 팔아본 적이 없어요.”“정 사장님, 친구 사귀는 거로 생각해주세요. 앞으로 약재가 필요하다면 제가 제공해 드릴게요!”이휘산이 미안한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알겠어요. 부영권 씨 제자인 걸 봐서 그렇게 해줄게요. 다른 사람이었다면 절대 팔지 않
이휘산은 오랫동안 의사로 살아왔기에 진귀한 약재들을 많이 봐왔었다.이 새박뿌리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충분히 판단할 수 있었다.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이 새박뿌리는 확실히 문제가 있어요.”오래된 약재는 확실히 다 좋은 약재였다. 백 년 이상이면 아주 진귀했고 짙은 영기를 뿜을 수 있었다.그러나 눈앞의 새박뿌리에서는 그 어떤 영기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목석처럼 말이다.“우습네요. 아무런 검증도 하지 않고 가짜라고 하는 건가요? 값을 깎고 싶은 거면 솔직히 얘기해요. 왜 이렇게 빙빙 돌려서 말하는 거예요? 우리 성약당이 그렇게 만만한 줄 알아요?”정석호가 화를 내며 소리를 질렀다.진서준은 성약당이라는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는 것 같았다.이휘산은 서둘러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정 사장님, 화내지 마세요. 진서준 씨는 장난친 거예요.”진서준은 고개를 저었다.“장난친 거 아닙니다. 이건 확실히 가짜예요. 믿기지 않는다면 검증해 보도록 하죠.”진서준의 고집스러운 모습에 정석호는 불안해졌다.이 새박뿌리는 확실히 가짜였다. 다른 곳에서 사 온 것인데 진짜와 아주 비슷했다.그러나 지금은 두려운 티를 낼 수는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휘산이 이상하다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게다가 정석호는 진서준 같은 젊은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판별할 수 없을 거로 생각했다.“그래요, 검증해 보죠. 하지만 진짜면 어떡할래요?”정석호는 당당한 척하며 따졌다.“진짜라면 제가 60억 드릴게요. 어때요?”진서준은 모든 걸 장악하고 있는 것처럼 태연하게 말했다.30억이라는 말에 정석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좋아요, 당신이 말한 거예요. 진짜면 돈을 줘야 할 거예요.”정석호는 말을 마친 뒤 진서준의 앞에 박스를 놓았다.진서준은 손을 뻗어 새박뿌리를 쥐었다.“뭐 하는 거예요?”정석호는 그 광경에 안색이 달라졌다. 그는 손을 뻗어 말릴 생각이었지만 이미 늦었다.새박뿌리는 이미 진서준의 손에 들어갔다.진서준은 새박뿌리를
정석호가 이렇게 나오는 이유는 성약당이라는 뒷배가 있기 때문이었다.성약당은 화진에서 가장 큰 한의학 조직으로 화진의 모든 한약재 거래를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정석호는 성약당의 판매 책임자 중 한 명이었다.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었다. 정석호가 200년 된 새박뿌리를 들고 이휘산을 찾아와서 60억이라는 싼 가격에 그것을 팔려고 한 건 분명 문제가 있었다.이휘산은 사실 아까 그 새박뿌리를 자세히 살펴보지는 않았다. 그가 자세히 보기도 전에 정석호가 말을 걸어서 주의력을 분산시켰기 때문이다.가장 중요한 건 정석호가 자신에게 가짜를 팔 리가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성약당 같은 곳에서 이런 비열한 수단으로 돈을 벌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런데 정석호는 감히 가짜 약을 몇십억에 팔려고 했다.만약 정석호 뒤에 성약당이 없었더라면 이휘산은 절대 그가 서울을 떠나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이거 놔요. 난 성약당 사람이라고요. 나한테 손 대면 안 돼요!”정석호는 바닥에서 일어나면서 분노와 경악으로 물든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정석호는 무인이었다. 비록 암경 수준밖에 되지 않았지만 일반인은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그런데 진서준의 주먹 한 바에 그는 정신을 잃을 뻔했다. 그건 진서준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의미했다.정석호의 말을 들은 이휘산은 비록 내키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정석호를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확실히 당신을 어떻게 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난 내가 아는 모든 사람에게 다시는 당신과 거래하지 말라고 할 거예요.”이휘산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이휘산의 말을 들은 정석호는 대수롭지 않아 했다.성약당에는 고객이 많았고 이휘산의 지인들이 사지 않는다고 해도 계속 돈을 벌 수 있었다.“마음대로 해요!”말을 마친 뒤 정석호는 떠날 준비를 했다.진서준은 그 모습을 보더니 불쾌한 얼굴로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그냥 이렇게 보내려고요?”이 가게가 진서준의 가게였다면 진서준은 절대 쉽게 정석호를 보내주지 않았을
정석호는 무척 화가 났다. 멀쩡히 걷고 있다가 갑자기 넘어지다니.바닥에서 일어나려는데 두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고, 몸을 지탱할 힘도 없었다.“제기랄, 당신들이 그런 거죠?”정석호는 고개를 돌려 화가 난 얼굴로 진서준과 이휘산을 바라보았다이휘산은 차갑게 웃었다.“우리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하지 말아요. 우리 가게에는 CCTV가 있어요. 분명 당신이 갑자기 바닥에 넘어진 거였어요!”“거짓말하지 말아요. 당신들 짓이 분명해요!”정석호는 이휘산의 말을 믿지 않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믿지 않아도 상관없어요.”이휘산은 차갑게 코웃음 치더니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진서준 씨, 뭐가 필요해서 우리 가게에 온 거예요? 제가 가지러 갈게요.”진서준은 미리 적어두었던 쪽지를 이휘산에게 건넸다.이휘산은 대충 훑어보았다. 처방은 신기해할 것 없었다.그러나 이휘산은 별말 하지 않고 진서준을 위해 약재를 가지러 갔다. 그는 아직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는 정석호를 무시했다.진서준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의자에 앉아 일어나지 못하는 정석호를 바라봤다.어춘당 문 앞을 지나가던 행인들은 그 광경을 보고 멈춰 서서 궁금한 얼굴로 정석호를 바라봤다.“저 사람은 누구지? 왜 어춘당 문 앞에 무릎 꿇고 있는 거지?”“모르겠어. 그런데 무릎 꿇고 있는 방향이 좀 이상하지 않아? 우리를 향해 있잖아!”“남자는 쉽게 무릎 꿇으면 안 된다는데. 저 사람 40대처럼 보이지 않아?”많은 사람이 구경하자 정석호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다들 꺼져요! 뭐 볼 게 있다고 그래요?”그가 욕을 하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그가 욕을 하자 사람들은 떠나지 않고 그가 무릎 꿇고 있는 걸 지켜봤다. 어떤 사람은 심지어 휴대전화를 꺼내 이 흥미로운 장면을 촬영했다.정석호는 분노가 들끓었다. 그는 진서준이 죽도록 미웠다.비록 진서준이 한 짓이라는 증거는 없었지만 조금 전 가게에는 그들 세 명뿐이었다. 이휘산은 평범한 사람이었지만 진서준은 달랐다. 그는 무인이었고 실력이 약하지 않았다.“이
진서준의 말을 들은 이휘산은 진심으로 진서준에게 고마웠다.그러나 정석호는 진서준의 말대로 하지 않고 오히려 큰 소리로 말했다.“사과하라고요? 절대 안 할 거예요!”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그러면 계속 무릎 꿇고 있어요.”말을 마친 뒤 진서준은 갑자기 뭔가 떠올렸다.“이 선생님, 은영과 어디서 파는지 알아요?”진서준은 고개를 돌려 이휘산에게 물었다.“은영과요?”이휘산은 미간을 구기면서 말했다.“들어본 적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기억이 안 나네요...”무릎 꿇고 있던 정석호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난 당신이 말한 은영과가 어디 있는지 알아요!”진서준은 그 말을 듣더니 곧바로 정석호를 바라보았다.“진서준 씨, 저 사람은 성약당 사람이니 은영과가 어디 있는지 정말 알지도 몰라요.”이휘산이 진서준에게 말했다.정석호는 이곳저곳 돌아다녔고, 성약당에는 또 비싸고 귀한 약재들이 가득했다.“은영과가 어디 있는지 얘기한다면 일어날 수 있게 해주죠.”진서준은 평온한 눈빛으로 말했다.정석호는 그 말을 듣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일어날 수 있게 해준다고요? 내가 얘기하지 않는다고 해도 당신은 날 평생 이곳에 무릎 꿇게 할 수 없을 텐데요.”정석호는 자신이 길어야 한 시간 정도 무릎 꿇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는 진서준이 자신을 평생 이곳에 무릎 꿇게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진서준은 은영과의 위치를 알고 싶어 했고, 정석호는 진서준도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곳에 한 시간 동안 무릎 꿇릴 생각이었다.“말하지 않는다면 장애인으로 만들어주죠. 앞으로 다시는 일어날 생각은 하지 말아요.”진서준의 눈동자에서 한기가 번뜩였다. 아주 소름 돋는 모습이었다.은영과는 허사연이 수련자가 될 수 있을지 없을지가 달린 문제였기에 반드시 진지하게 대해야 했다.진서준의 싸늘한 눈빛을 마주하게 되자 정석호는 소름이 돋았다. 진서준이 거짓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하지만 이미 조금 전에 그런 말을 했고 이제 와서
“이거 놓지 못해?”“좋아, 놔줄게.”분노한 성미영이 소리치자 진서준은 성미영을 정자 안의 긴 나무 의자로 던졌다.성미영은 나무 의자에 팔이 세게 부딪혔고 순간 따끔한 통증이 밀려왔다.성미영이 일어나기도 전에 진서준이 성미영의 허리 위에 올라탔다.“이 개자식아, 당장 내려와.”성미영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이렇게 가까이서 남자와 몸이 맞닿은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지금 네 상황을 잘 생각해 봐. 도마 위의 생선이 감히 이런 태도로 칼을 잡은 나한테 말해도 되는 거야?”진서준이 다시 진지하게 귀띔했다.“왜? 설마 나한테 손이라도 대겠다는 거야? 네가 감히 그럴 수 있겠어? 내가 소리치면 우리 집 경호원들이 바로 달려올 거야.”성미영이 이를 악물고 위협했다.“너 같은 잘난 척하는 여자들은 한 번쯤 제대로 손봐줘야 해.”말이 끝나기 무섭게 진서준은 손을 번쩍 들더니 그대로 성미영의 탄력 넘치는 엉덩이에 세게 내리쳤다.성미영은 오랜 세월 수련했던지라 몸매가 단단하게 단련되어 있었다.둥글고 풍만한 엉덩이는 탱탱볼처럼 탁월한 탄력을 자랑했다.진서준의 손바닥이 내려가자 엉덩이는 젤리처럼 출렁이며 튀어 올랐다.성미영은 처음엔 멍하니 있다가 이내 얼굴이 새빨개지며 분노와 수치심이 한꺼번에 치밀어 올랐다.“이 변태! 짐승! 개망나니 같은 놈아!”성미영이 욕을 하면 할수록 진서준의 손은 더욱 거침없이 내려쳤다.짝! 짝! 짝!엉덩이에 불이 날 듯한 통증이 성미영의 온몸에 퍼졌다.“잘못 인정하고 사과해.”진서준이 손을 멈추고 성미영을 내려다보았다.“웃기지 마. 죽어도 사과 안 해.”“그래?”진서준이 눈을 가늘게 뜨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넌 전신전 출신이잖아. 내가 널 죽이면 군사재판에 끌려가겠지?”성미영이 싸늘하게 대답했다.“알면 됐어.”“그런데 말이야...”진서준이 느긋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지금 이 모습을 다른 사람이 보면 어떻게 생각할까?”그 말에 성미영의 동공이 흔들렸다.성미영의 가족이 이 장면을 본다면 성미
성현도의 질문을 듣자 성지운 부부도 진서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하경범이라는 인물은 르벨 지역의 명문대가는 전부 다 알고 있었다.하경범은 재벌 2세들 사이에서 리더로 꼽히는 존재였다.하지만 여자들을 많이 농락했다는 소문이 자자했기에 평판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성씨 가문에서는 하경범과의 접촉을 삼가라고 엄격하게 규정했지만 성현도는 몰래 하경범과 친구로 지냈다.하경범이 공식적인 연회를 열면 성현도는 절대 참석하지 않았다.“개인적인 일로 하경범을 찾았어.”진서준이 무심하게 대답했다.“무슨 일인데? 말해줄 수 있어? 오늘 오후에 엄청 급하게 내 가게에 와서 하경범을 데려갔잖아.”성현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너도 알지? 네 행동 하나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곤란해졌는지?”“어라? 네 가게에서 하경범을 데려갔어?”성지운이 다소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맞아요, 셋째 삼촌.”성현도가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찻집을 하나 열었잖아요? 르벨 재벌 2세들이 자주 찾는 곳인데 하경범도 단골이었어요. 근데 오늘 오후에 진서준이 갑자기 제 찻집에 쳐들어와서 사람을 끌고 갔어요. 난리가 났다니까요. 다행히 제가 급하게 소문을 막았지, 안 그랬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그 말을 듣자 성지운은 진서준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진서준 씨, 다음부터는 이렇게 무모하게 행동하면 안 돼요. 하경범은 하씨 가문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고 게다가 인격적으로도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이에요. 되도록 엮이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알겠습니다, 아버님. 앞으로 절대 엮이지 않을게요.”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이 순순히 말을 듣고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자 성지운은 속으로 흐뭇했다.요즘 젊은이 중에서 이렇게 순순히 말을 듣는 젊은이는 극히 드물었다.“엄마, 아빠, 저 진서준이랑 잠깐 바람 좀 쐬고 올게요. 먼저 얘기 나누세요.”성미영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진서준의 손을 잡아끌었다.이대로 가다간 부모님이 바로 혼인 문제를 확정할 기세였다.마침 성미영도 진서준
“재수 없어.”성미영이 입을 비쭉였다.진서준은 못 들은 척하며 창밖 풍경을 감상했다.잠시 후, 차는 한 채의 별장 앞에 멈췄다.“내려.”성미영이 앞장서 걸어가고 두 사람은 저택 거실로 들어섰다.거실에는 이미 세 사람이 앉아 있었다.그중 한 명은 진서준이 오후에 만난 적 있는 성현도였다.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은 남자와 여자였는데 성미영과 상당히 닮아 있었고 온몸에서 은은한 부유의 기운이 흘러넘쳤다.누가 봐도 두 사람은 성미영의 부모님이었다.“엄마, 아빠. 원하는 사람 데려왔어요.”성미영은 아무렇게나 소파에 털썩 앉았는데 딱 봐도 교양이 없는 모습이었다.“미영아, 얼른 소개부터 해야지?”중년 여자가 성미영을 재촉하면서 진서준을 위아래로 훑어봤다.부부는 물끄러미 진서준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생긴 건 괜찮네. 근데 인성은 어떨지 모르겠군.”그 말에 성미영의 입술이 씰룩거렸다.성미영이 변명하려던 찰나, 진서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안녕하세요, 어머님, 아버님. 갑자기 찾아뵙게 되어 작은 선물도 준비 못 했네요. 대신 이건 제가 직접 만든 단약인데 괜찮으시면 받아주셨으면 합니다.”말을 마친 진서준은 주머니에서 정교한 상자 두 개를 꺼냈다.“뭐야?”성미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진서준을 불러 성미영과의 관계를 설명하라고 했지, 선물을 챙기라고 한 적은 없었다.“그래요? 참 예의 바르네요.”성미영의 어머니 이현숙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아니, 단약을 만들 줄 안다고요?”성지운이 흥미롭다는 듯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요즘 세상에 제대로 된 단약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였다.성약당 같은 거대 조직에서도 일부 원로들만 가능할 정도였다.“아버님, 직접 열어보셔도 됩니다. 이 단약은 감림단이라고 합니다. 복용하면 내공이 급속히 상승하며 단비가 내리는 듯한 효과를 발휘하죠.”진서준이 미소를 지으며 설명했다.그 말을 듣자 성지운의 눈빛이 더욱 빛났다.뚜껑을 여는 순간, 은은한 약 향이 퍼지며 거실을 가득 채웠다.
진서준은 성미영이 일부러 그런 거라고 확신했다.진서준의 반사신경이 뛰어나서 다행이지, 일반 사람이었으면 저 악셀 한 방에 앞 유리에 머리를 박았을 것이다.“좀 살살 밟으면 안 돼? 비행기라도 띄우려고 그래?”진서준이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며 눈을 흘겼다.“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이따가 집에 가면 부모님께 확실히 설명해. 안 그러면 넌 오늘 내 손에 죽는 거야.”성미영이 사나운 기세로 진서준에게 명령했다.“이런 태도로 부탁하는 사람도 있어?”진서준이 눈썹을 살짝 꿈틀거리며 물었다.“대감마님, 부디 이 하찮은 여인의 부탁을 들어주시옵소서. 제가 실례했네요.”성미영이 억지웃음을 지으며 능청을 떨었다.진서준은 그 말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이런 느끼한 부탁은 또 처음 들어보는 것 같았다.“제발 좀 정상적으로 하면 안 돼?”진서준이 입꼬리를 씰룩였다.“네가 고맙다고 하라고 했잖아? 난 이렇게밖에 못 해.”성미영이 뻔뻔하게 웃었다.진짜 이 여자는 날 잡고 한번 톡톡히 혼내줘야 할 것 같았다.진서준은 순간 기발한 아이디어가 하나 떠올랐다.그동안 계속 참고 넘어갔던 것도 남자가 여자랑 싸워봤자 손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그런데 이 여자는 진짜 끝까지 진서준을 기막히게 했다.착한 사람도 한계가 있는 법이었다.게다가 지금은 성미영이 부탁하는 입장이었기에 진서준은 이번 기회에 제대로 좀 교육 해야겠다고 결심했다.진서준이 눈을 감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성미영이 인상을 찌푸렸다.“이봐, 너 설마 삐쳤어? 남자가 좀 쿨하게 굴면 안 돼?”“안 삐쳤어.”진서준이 눈을 감은 채 대답했다.“진짜야?”성미영이 곁눈질로 진서준을 힐끗 보았다.“남자는 대범해야 해. 그렇게 쪼잔하게 굴면 안 된다고.”“누구한테 대범하냐가 문제겠지.”진서준이 즉시 반박했다.“여자가 적당히 선을 지켜야 하는데 계속 선을 넘으면 나도 빡친다고.”그 말을 듣자 성미영은 진서준이 자기를 겨냥하고 있다는 걸 바로 눈치챘다.하지만 성미영은 대수롭지 않은 듯 콧방귀를 뀌었
성미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매년 혼자서만 집에 가다 보니 성미영에게 이성 친구가 있을 리 만무했다.성미영도 이제 3년만 지나면 서른이었기에 집에서는 성미영의 결혼 문제가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그런데 오늘 갑자기 이성 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리자 가족들이 당연히 남자친구라고 착각한 것이다.그래서 기어코 성미영에게 진서준을 집으로 데려오라고 난리였다.“그냥 사실대로 말하면 되잖아?”진서준이 태연하게 말했다.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런 사소한 일이었다.“그게 통했으면 내가 지금 너한테 전화했겠어?”성미영이 짜증 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뭘 어쩌라는 거야? 설마 내가 직접 가서 해명하라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꼭 와야 해. 안 그러면 부모님이 날 가만히 안 둘 거라고.”성미영이 명령조로 말했다.“이봐, 지금 부탁하는 입장인데 말투가 그게 뭐야? 장난해?”진서준이 한마디 귀띔했다.“야, 진서준. 너 적당히 해.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돼?”성미영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소리쳤다.“오후에 내가 너 안 도와줬어? 지금은 네가 나 도울 차례라고. 아니야?”진서준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정정하자면 너 없어도 난 하경범을 충분히 잡아 올 수 있었어. 오히려 너 배려해서 너희 성씨 가문 구역에서 난리 안 친 거라고.”“헛소리 작작 해!”성미영이 분노에 이를 갈았다.진서준의 말이 사실 틀린 말은 아닌데 왜 이렇게 재수 없게 들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럼 끊는다?”진서준이 전화를 끊으려 했다.“끊지 마. 내가 지금 데리러 갈 거야. 오늘 밤에 확실히 설명하고 가. 안 그러면 부모님이 나 귀찮게 해 미칠 것 같다고.”성미영이 다급하게 말했다.“그럼 부탁해야지. 부탁할 땐 부탁하는 태도가 있는 법이거든.”진서준이 태연하게 말했다.사실 일부러 성미영을 약 올리는 건 아니었다.그냥 이 여자가 맨날 윗사람처럼 굴었고 매번 자기가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양, 가르
차 안.도지아는 직접 복수를 마친 뒤, 속이 어느 때보다 한결 더 시원했다.하지만 곧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진서준에게 물었다.“나중에 하경범이 복수하면 어떻게 하지?”“그럼 그냥 지옥에 보내버리면 돼. 너무 걱정되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죽여버릴까?”진서준이 태연하게 말했다.어차피 그런 쓰레기는 살아 있을 가치도 없었다.진서준이 하경범을 바로 죽이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금단 현상이 올라올 때의 고통을 직접 맛보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죽여버리는 것보다 살아서 끔찍한 경험을 하게 하는 게 더 잔인한 법이었다.“아니야, 죽이는 게 오히려 그 녀석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이야.”도지아가 고개를 저었다.그 한마디로 도지아가 하경범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알 수 있었다.하경범은 도지아의 미래를 망가뜨렸고 행복했던 가족을 박살 내버렸다.이제 도지아는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지아는 막막하기만 했다.호텔로 돌아오자 진서준이 물었다.“여기서 계속 있을 순 없잖아. 앞으로 어디로 갈 생각이야?”도지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예은에게 가볼까 해. 걔 집 넓잖아.”“그것도 괜찮네. 황예은은 돈이 넘치니까 황예은한테 붙어 있으면 먹고사는 걱정은 없겠네.”진서준이 장난스럽게 말했다.한편, 성현도가 빠르게 정보를 통제한 덕분에 하경범이 진서준에게 끌려갔다는 사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하씨 가문 쪽에서도 하경범이 강제로 마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집으로 돌아간 하경범은 곧장 본인이 키운 삼생파의 두목 이시언에게 연락했다.“하 도련님, 무슨 일입니까?”전화를 받은 이시언은 조금 의아해했다.하경범이 직접 연락해 오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도 사람을 납치하라고 시켰을 때였다.“당장 나한테 와.”하경범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가웠다.“네, 바로 가겠습니다.”이시언은 하경범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즉시 출발했다.30분 후, 이시언은 부하들을 데리고 하경범의 저택에 도착
“그럼 이제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잖아. 왜 굳이 날 물고 자빠지는 건데?”하경범은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너 아니었으면 우리 가족이 납치당할 일도 없었겠지. 그럼 내 동생도 마약과 접촉할 일도 없었을 거잖아. 네 더러운 욕망만 아니었어도 우리 가족이 이렇게 풍비박산 날 일이 있었겠어?”도지아의 분노는 점점 극에 달했다.“내가 겪은 이 모든 고통은 전부 다 네 탐욕과 욕망 때문이야. 오늘 넌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해.”하경범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이제야 도지아가 진짜 죽을 각오로 덤비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내가 방금 조상규 삼촌에게 연락했어. 곧 도착할 거야. 삼촌이 오기 전까지는 너희가 아직 살아남을 기회가 남아 있어.”하경범은 이런 상황에서도 협박하기 시작했다.“그러니 함부로 날 건드리지 마. 날 손대는 순간, 너희 셋 다 살아서는 못 나갈 줄 알아.”“그 사람은 올 수 없어.”진서준이 느닷없이 말했다.“무슨 뜻이야?”하경범이 움찔하며 눈꺼풀을 떨었다.“이미 죽었거든. 이해했어?”진서준이 담담하게 대꾸했다.“뭐, 뭐라고?”하경범은 흠칫 떨더니 곧바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헛소리하지 마. 그럴 리 없어! 조상규 삼촌은 대종사야. 네놈 따위가 무슨 수로 대종사를 죽일 수 있어?”하경범은 조상규의 무도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예전에 습격당했을 때도 조상규가 나서서 하경범을 구해줬다.당당한 대종사인 조상규가 진서준 같은 애송이에게 당했을 리가 없었다.“못 믿겠으면 직접 전화해 봐. 전화 받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보지 그래?”진서준이 시큰둥하게 말하자 하경범은 급히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들려오는 건 통화 연결음뿐이었다.하경범은 이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다시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젠장, 전화 받아! 전화를 받으란 말이야!”하경범은 이제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졌다.“통화가 안 되지?”진서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대체 왜 조상규 삼촌이 너 따위한테 당했는데?
“뭐가 두려워?”하경범은 자신만만했다.여긴 하씨 가문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르벨이었다.하경범은 진서준이 이곳에서 자기를 건드릴 용기가 있을 수 없다고 확신했다.“그럼 따라와 봐.”진서준이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다.“경범아, 저 녀석 꽤 강해. 조심하는 게 좋아.”성현도가 목소리를 낮춰 경고했다.“걱정 마.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하경범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진서준이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두고 보자는 심정이었다.차에 올라타자 하경범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의외네, 넌 여자들한테도 제법 인기가 많은 모양이구나. 황예은과 도지아만 있는 게 아니라 이번엔 또 새로운 여자가 곁에 있네.”하경범은 옆자리의 허사연을 힐끔 쳐다보며 능글맞게 웃었다.“아가씨, 저 녀석 따라다녀 봤자 아무런 미래도 없어. 나랑 함께하는 게 어때? 내 여자가 되면 평생 호화롭게 살게 해줄게. 명품, 스포츠카, 대저택, 뭐든 원하는 만큼 줄 수 있어.”허사연은 그 말에 쌀쌀하게 웃으며 대꾸했다.“그럼 네 목숨을 원한다면 줄 수 있어?”하경범 같은 부잣집 도령이 얼마나 많은 가정을 파탄 냈을지 모른다.진서준의 얘기를 들은 후, 허사연도 이 쓰레기를 당장 없애버리고 싶었다.“내 목숨을 달라고?”하경범은 어이없다는 듯 멍하니 있다가 곧 박장대소를 터뜨렸다.“날 죽이겠다고? 그래, 해봐. 근데 네 가족이 우리 하씨 가문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을까?”하경범의 목소리엔 살기가 서려 있었다.“거참 쉬지도 않고 조잘대네.”진서준은 쉴 새 없는 하경범의 멘트에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흥, 얼마 안 가 네가 내 앞에 무릎 꿇고 날 다시 보내게 될 거야. 내가 장담하지.”하경범은 눈을 가늘게 뜨며 진서준을 비웃었다.“오히려 네가 나한테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하게 될걸?”진서준은 태연하게 받아쳤다.곧이어 진서준은 차를 한 폐기된 공장 앞에 세웠다.차에서 내리자 하경범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곳에 걸터앉아 휴대폰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