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저 또한 난감한 상황이었다.그는 그저 돈 받고 일하는 직장인일 뿐이었다. 고양시처럼 거물이 가득한 곳에서 그가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진서준도, 한보영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매니저가 진서준을 내쫓으러 온 건 아마도 누군가의 명령 때문일 것이다.그리고 명령을 내린 사람은 조금 전 한보영이 쌀쌀맞게 쫓아낸 전해찬이었다.“제가 블랙리스트에 들어갔다고요?”진서준이 물었다.“그렇습니다.”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였다.진서준은 매니저를 보더니 덤덤히 말했다.“내가 이 백화점 소유자가 된다면 블랙리스트가 될 일은 없겠죠?”아주 태연자약했다.“당... 당연하죠.”매니저는 어리둥절했다.이 백화점을 사겠다는 뜻인 걸까?백화점 매니저는 눈이 튀어나올 듯했다.신시아 백화점은 이곳의 가장 큰 백화점으로 그 가치가 6,000억에 달했다.엄청난 가격이라고 할 수 있었다.아주 대단한 재벌가 아들이라고 해도 블랙리스트가 되었다는 이유로 6,000억짜리 백화점을 사지는 않을 것이다.대체 얼마나 자신감이 넘치는 걸까?한보영 또한 놀란 듯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정신을 차리고 미소를 드러냈다.“좋아요. 제가 기억하건대 이 백화점 대표님 이름이 왕석훈이죠?”“맞습니다. 저희... 저희 회장님이세요...”매니저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비 오듯 흘렀다.그는 20년 넘게 매니저를 해오면서 이렇게 황당한 일은 처음이었다.배포가 이렇게 크다니!왕석훈이 팔지 않으려고 할 수도 있었다. 이 백화점은 항상 흑자였고 몇 년 더 지나면 가치가 더 높아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왕석훈 회장님 맞죠? 전 한보영이라고 합니다. 진서준 씨께서 신시아 백화점을 구매하고 싶어 하십니다. 진서준 씨는 지금 백화점 2층에 있습니다. 오실 때 계약서 들고 오시죠.”한보영은 빠르게 전화를 끊었다.“왕 대표님 곧 계약서 들고 오실 겁니다.”한보영은 웃는 얼굴로 매니저를 바라보았다.“전해찬을 위해 새로 온 대표님께 밉보일 생각인가요?”매니저의 동공이 잘게 떨렸다.
“저 두 사람 무슨 일이지? 왜 경호원들이 와 있지?”“설마 도둑질하다가 잡힌 건 아니겠지?”“조용히 좀 해. 저 청년이 백화점 블랙리스트에 등록됐다잖아. 그런데 조금 전에 들어보니까 두 사람 이 백화점을 살 생각인 것 같던데?”사람들은 진서준이 어떻게 될지 수군대기 시작했다.사람들이 구경하고 있을 때 전해찬은 갑자기 아버지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아버지, 무슨 일이에요?”얼른 돌아와. 너 오늘 저녁 나랑 같이 파티에 가야 해. 지각하면 안 돼!”“아직 이르잖아요.”“쓸데없는 말은 하지 말고 얼른 돌아와!”전해찬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전화를 끊었다. 그는 한보영이 좋아하는 남자가 어떻게 쫓겨나는지를 지켜보고 싶었지만 이젠 볼 수 없게 되었다.전해찬은 백화점을 떠날 때 왕석훈을 보았다.왕석훈은 신시아 백화점 회장으로 고양시에서 꽤 잘 나갔다. 전해찬도 그를 만나면 먼저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야 했다.하지만 전해찬은 그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고 빠르게 떠났다.왕석훈은 빠르게 남성 정장 매장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한보영과 매니저를 보았다.“회장님...”매니저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고양시 최고 백화점을 소유한 왕석훈은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겨우 50세인 왕석훈은 얼굴이 초췌했고, 마른 몸은 덜덜 떨리고 있었으면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진 마스터님을 뵙습니다! 제 부하가 진 마스터님의 심기를 거슬렀다고 들었는데 부디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그 순간 다들 넋이 나가서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왕석훈을 바라보았다.왕석훈을 알아본 사람들은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몸값이 엄청난 왕석훈이 젊은이를 향해 무릎을 꿇다니,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그건 왕석훈만이 알았다.눈앞의 진서준은 그가 감히 건드릴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서울의 진 마스터, 이 일곱 글자가 모든 걸 의미했다.어제 진서준이 인의방에 이름을 올린 두 명의 2품 선천 대종사를 죽였을 때, 왕석훈은 바로 그 현장에 있었다.그는 진서
양도 계약이지 거래 계약이 아니었다.왕석훈은 6,000억 가치의 백화점을 진서준에게 그냥 주려고 했고 그 박력에 한보영은 깜짝 놀랐다.왕석훈은 아주 똑똑했다. 그는 진서준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진서준에게 왕석훈을 죽이고 그의 재산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였고, 정말로 그런다고 해도 국안부에서는 그의 일에 간섭하지 않을 것이다.그렇다면 차라리 먼저 굽히고 들어가서 백화점을 그냥 줘버리는 것이 나았다. 적어도 자기 목숨과 다른 사업들은 지킬 수 있으니 말이다.옆에 있던 매니저는 완전히 얼이 빠졌다.그는 어떻게 진서준과 왕석훈을 대해야 할지 몰랐다.게다가 왕석훈은 이제 더는 그의 상사가 아니었다.매니저는 진서준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 숙여 사죄했다.“죄송합니다. 모든 건 전해찬 씨께서 시킨 일입니다.”전해찬이 시킨 일이라는 말에 진서준과 한보영 모두 놀라지 않았다.“그냥 날 블랙리스트에 넣으라고 한 건가요?”진서준이 물었다.“아... 아뇨. 진서준 씨를 백화점에서 내쫓은 뒤 경호원들을 시켜 흠씬 두들겨 패라고 했습니다.”매니저는 덜덜 떨면서 말했다.경호원을 시켜 진서준을 패라고 했다는 말을 듣자 왕석훈은 전해찬이 죽도록 미웠다.선천 2품 대종사마저 진서준의 상대가 되지 않는데, 일개 경호원들이라면 진서준이 손가락 하나 움직이면 전부 목숨을 잃을 것이다.“세상에는 똑똑한 사람도, 멍청한 사람도 있는 법이죠.”진서준은 피식 웃었다.“일어나요. 이 백화점은 이제부터 제 겁니다. 계속 매니저 하세요. 하지만 기회는 한 번뿐입니다.”매니저는 그 말을 듣더니 연신 고개를 조아리면서 진서준에게 고마워했다.먼저 매를 든 뒤 당근을 준다면 상대방은 더욱 고마워할 것이다.진서준은 이제 더 이상 무턱대고 앞으로 돌진하던 단순한 청년이 아니었다.왕석훈은 자리에서 일어난 뒤 진서준을 향해 정중히 말했다.“제 딸은 진 마스터님을 오랫동안 좋아했습니다. 진 마스터님을 한 번 뵙고 싶어 하는데 혹시...”“전 여자 친구가 있으니 그
게다가 진 마스터는 최근에 고양시의 가장 강한 대종사를 죽였다.하지만 전해찬은 진 마스터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아버지, 진 마스터에게 돈을 줘서 절 제자로 받아달라고 하면 안 돼요?”전해찬이 흥분해서 물었다.“겨우 그까짓 돈을 진 마스터님께서 원하겠어?”전홍석이 차갑게 말했다.진서준에게 소멸당한 세 가문의 자산을 더해도 전시 일가와 비슷할 것이다.진서준에게 부족한 건 돈 따위가 아니었다.“그렇다면 뭘 줘야 할까요? 미녀? 아니면 골동품?”전해찬은 떠오르는 걸 다 얘기했다.“너는 머리 좀 쓰면 안 되겠니?”전홍석은 본인은 똑똑한데 아들이 너무 멍청해서 무척 화가 났다.갑자기 전홍석은 호흡이 가빠지더니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안색이 창백해졌다.“약... 약...”전해찬은 서둘러 전홍석의 약을 가지러 갔다.약을 먹은 뒤 전홍석은 숨 쉬는 게 한결 쉬워졌다.그는 잠깐 숨을 돌린 뒤 말했다.“그 정도 수준의 사람이라면 부족한 게 없을 거야. 부족한 게 있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이 앞다투어 선물로 주겠지. 우리는 다른 사람이 찾지 못하는 걸 줘야 해.”전홍석이 말했다.“다른 사람이 찾지 못하는 거라면 어떤 거예요?”전해찬은 서둘러 물었다.“바로 이거야!”전홍석은 자신이 공들여 준비한 선물을 꺼냈다.예쁘게 꾸며진 박스를 본 전해찬은 궁금한 듯 물었다.“아버지, 안에 뭐가 들어있는 거죠?”“영약!”전홍석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영약이요? 그게 뭔데요? 영성이 있는 약은 아니겠죠?”“맞아.”“설마 다리가 달려서 도망치는 건 아니에요?”전홍석의 안색이 어두워졌다.“멍청한 것, 그런 영약이 어디 있어? 내가 말한 영약이란 풍수 좋은 곳에서 수백 년간 자라서 대량의 영기를 띤 약이야. 수련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귀중한 거라고!”전홍석의 말을 들은 전해찬은 무척 흥분했다.“아버지, 이 약이 있다면 진 마스터님께서 절 제자로 받아주시겠죠?”“몰라. 제자로 받아주지는 않더라도 몇 수 가르쳐주기는 할 거야.”전홍석은 미소
파티에 참석한 사람들은 전부 거물이었다.세 도시의 모든 거물이 오늘 저녁 레이 호텔에 모였다.그들 중에 진서준을 본 적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지만 다들 진 마스터는 익히 알고 있었다.호텔 입구에는 아름다운 외모에 뛰어난 몸매를 소유한 여자가 서 있었다.그 여자는 분위기만 봐도 신분이 남다르다는 걸 알 수 있었다.호텔 안으로 들어가던 거물들도 여자를 향해 인사를 건넸다.초조해 보이던 여자는 진서준과 한보영을 보자 미소 띤 얼굴로 그들을 맞이했다.“저 두 사람은 누구지? 허씨 집안의 아가씨가 직접 마중 나가다니!”“저 여자... 한씨 일가의 딸 같은데. 그 옆에 있는 남자는 나도 모르겠어.”“설마 소문으로만 들었던 진 마스터님은 아니겠지?”“그럴 리가! 진 마스터님이 저렇게 젊을 리가 없잖아.”다들 진서준의 정체를 궁금해하면서 쑥덕댔다.“진 마스터님!”허수아는 진서준의 앞으로 걸어가 정중하게 예를 갖추면서 고개를 숙였다.“아버지께서 여기서 진 마스터님을 맞이하라고 하셨어요.”허수아는 허준희의 딸로 아직 미혼이었다.어제 진서준이 이씨 일가를 처단한 뒤 허준희는 곧바로 허수아에게 연락해 고양시로 오라고 했다.진 마스터를 극진히 보살피기 위해서 말이다.“고마워요.”진서준은 허수아를 보면서 덤덤히 말했다.“이쪽으로 오세요!”허수아는 한쪽 손을 내밀면서 제스처를 취했고 곧 두 사람의 앞에 서서 직접 그들을 안내했다.허수아의 깍듯한 모습에 구경하던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저 젊은이는 대체 누구길래 동성 최고 가문 허씨 일가의 딸까지 그를 깍듯이 대하는 걸까?“저 사람은 진 마스터님이 맞아. 어제 나도 현장에 있었거든.”한 재벌이 흥분해서 말했다.그는 어제 진서준이 홀로 두 사람과 싸우던 모습을 평생 잊을 수 없었다.“세상에, 진 마스터님 너무 젊은 거 아냐?”“저렇게 젊은 나이에 선천 대종사를 이기다니, 정말 앞날이 창창하네!”“하지만 진 마스터님은 두 대종사가 한참 싸운 뒤에 나선 걸로 알고 있는데. 기회를 잘 잡아
그러나 진서준은 그녀를 보고도 표정 변호가 전혀 없었다.마치 허수아의 외모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말이다.“알겠습니다, 진 마스터님. 제가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올게요.”허수아는 감히 진서준의 명령을 거역하지 못하고 씩씩대며 떠났다.허준희는 허수아에게 진서준을 빈틈없이 섬겨야 하며 절대 그의 명령을 어겨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었다.진서준이 오늘 밤 그녀와 관계를 가지려고 해도 허수아는 승낙해야 했다.하지만 진서준은 그럴 생각 따위 전혀 없었다.허수아가 떠난 뒤 한보영은 장난스레 말했다.“진서준 씨, 허수아 씨는 엄청난 미인인데 설레지 않아요? 허수아 씨를 보니 진서준 씨가 손가락 하나만 까딱해도 바로 진서준 씨 침대에 오를 것 같던데요. 그리고 진서준 씨를 귀찮게 하지도 않을 것 같네요. 전 진서준 씨가 다른 여자랑 잤다고 사연 씨에게 고자질할 생각이 없어요.”진서준은 눈을 흘겼다.“제겐 여자 친구가 있어요. 허수아 씨가 아무리 예뻐도 저랑은 상관없어요.”진서준은 허사연에게 미안할 짓을 할 생각이 없었다.일부일처제는 진서준의 머릿속에 깊게 박혀 있었다.“전 아직 바람 피지 않는 남자는 본 적이 없는걸요. 저희 아버지도 다른 여자랑 잔 적이 있어요.”한보영은 계속해 말했다.“다른 사람은 다른 사람이고 나는 나예요.”진서준의 말을 들은 한보영의 눈빛이 살짝 변했다.그러나 한보영은 그것을 아주 잘 감췄다. 그녀의 눈빛은 이내 원래대로 돌아왔다.먼 곳, 전해찬은 구석에 앉아 있는 진서준과 한보영을 보았다.두 사람이 화기애애하게 얘기를 나누자 전해찬은 무척 화가 났다.“저 자식 무슨 낯짝으로 이곳에 온 거야? 아침에 백화점에서 쫓겨났으면서 수치심 따위는 전혀 없는 건가?”전해찬은 차갑게 웃었다.“반성할 줄 모르네. 그렇다면 내가 여기 사람들 앞에서 망신시켜주겠어!”말을 마친 뒤 전해찬은 레이 호텔의 매니저를 찾았다.매니저는 당연히 전해찬을 알아보았다. 전해찬의 분부를 들은 매니저는 곧바로 진서준과 한보영에게 다가갔다.“고객님
“진 마스터님, 전 고양시의 전홍석이라고 합니다. 뒤에는 제 아들 전해찬입니다.”전홍석은 진서준의 앞으로 걸어가서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진서준의 앞에서 고양시 갑부인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반드시 진서준에게 깍듯해야 했다.진서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미소를 지은 채로 전홍석을 바라보았다.진서준의 시선에 전홍석은 심장이 철렁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해찬아, 뭘 넋 놓고 있는 거야? 얼른 진 마스터님께 인사해야지!”아들이 가만히 있자 전홍석은 조금 화가 나서 아들을 향해 호통을 쳤다.전해찬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그제야 놀라움 속에서 정신을 차렸다.그는 자신이 시비를 걸었던 사람이 진 마스터일 줄은 몰랐다.그래서 진서준이 무사히 이 파티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침에도 태연자약했던 이유가 있었다.전해찬은 겁을 먹어서 두 다리가 덜덜 떨렸다.그는 자신이 어떤 일을 겪게 될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호텔 매니저 또한 넋이 나갔다.사장님은 오늘 대단한 분을 위해서 파티를 주최하는 거라고 했었다.그리고 그 대단한 분이 바로 진 마스터였다.털썩...매니저는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덜덜 떨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 근육까지 경련했다.전홍석은 호텔 매니저의 반응에 깜짝 놀랐다.“조 매니저, 뭐 하는 거야?”전홍석은 당황해서 서둘러 물었다.“진 마스터님, 이 사람이 시킨 겁니다. 이 사람이 지시한 거예요...”조 매니저는 진서준을 향해 미친 듯이 고개를 조아렸다.잠시 뒤 조 매니저의 이마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곧 전해찬도 다리에 힘이 풀려 바닥에 털 무릎을 꿇었다.그는 너무 겁을 먹은 나머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의 눈동자에 두려움이 가득했다.전홍석은 그 광경을 보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졌다.“너 이 자식, 무슨 짓을 한 거야!”전홍석은 전해찬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저... 저는...”전해찬이 겁을 먹어서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자 전홍석은 곧바로 진서준을 바라봤다.“진 마스터님,
“아버지, 그만 때리세요. 잘못했어요...”전해찬은 피를 철철 흘리고 있어서 그 모습이 아주 섬뜩했다.이때 허씨 일가의 사람들이 다가왔다.“무슨 일이죠?”허준희는 그 광경을 보고 굳은 표정으로 물었다.‘진 마스터를 위해 주최한 파티인데 이런 자리에서 진 마스터가 피를 보게 하다니, 간덩이가 부은 건가?’“허준희 씨, 사실은 이렇습니다...”전홍석이 앞으로 나서서 허준희에게 설명했다.전해찬이 진서준의 심기를 건드린 사실을 알게 된 허준희는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는 당장이라도 전홍석을 죽이고 싶었다. 하지만 진서준이 그 자리에 있어서 멋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진 마스터님, 어떻게 하실 건가요?”허준희는 진서준의 앞으로 걸어가서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전해찬은 덜덜 떨면서 애원하는 눈빛으로 진서준을 바라보았다.“진 마스터님, 제가 영약을 준비했습니다!”이때 전홍석이 서둘러 준비한 선물을 꺼냈다.진서준의 눈빛이 살짝 달라졌다. 전홍석이 들고 있는 박스에서 아주 짙은 영기가 느껴졌기 때문이다.“열어봐요.”전홍석은 박스를 열었다.안에 들어있는 영약을 본 진서준은 흥분했다.“은영과!”이것이 있다면 허사연도 수련을 할 수 있었다.“이걸 어디서 찾은 거죠?”진서준은 서둘러 물었다.“다른 사람에게서 사들인 겁니다.”전홍석은 정중하게 대답했다.“그 사람과 연락이 닿나요? 이걸 어디서 구했는지 알아봐 줄래요?”진서준은 매우 흥분했다.“네, 지금 당장 알아보겠습니다!”전홍석은 안도했다.진서준의 표정을 보니 적어도 아들의 목숨을 걱정하지는 않아도 될 것 같았다.“진서준 씨, 제 아들놈은 어떻게 처리하실 겁니까?”전홍석이 물었다.그래도 받은 게 있기 때문에 진서준은 전해찬을 힐끗 본 뒤 말했다.“반성하라는 의미로 팔을 부러뜨리죠.”팔을 부러뜨리겠다는 말에 전해찬은 당황했다.전해찬은 아버지가 아주 귀중한 선물을 줬으니 자신을 봐줘야 한다고 생각했다.전홍석은 전해찬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곧바로 그의 어깨를 누르며 진서준에게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
진서준과 허사연은 차를 타고 조호의 회사로 향했다.이 회사는 그냥 겉치레일 뿐, 진짜 돈이 들어오는 곳은 유흥업소들이었다.유흥업소를 얕잡아보면 안 된다.운 좋게 돈 많은 도련님들이라도 걸리면 하룻밤에 수억 원이 순식간에 손에 들어오게 될 것이다.“진서준 씨!”진서준이 들어서자 조호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조호는 진서준 옆에 있는 허사연을 힐끗 쳐다본 뒤 고개를 숙이고 감히 더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잡담은 그만하고 하경범을 잡아가는 제일 좋은 타이밍만 말해.”진서준이 직설적으로 물었다.이 말에 조호는 속으로 크게 놀랐다.“매일 오후마다 하경범은 천국찻집이라는 곳에 갑니다.”조호는 재빨리 대답했다.“보통은 경호원 몇 명만 데리고 가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얼씨구? 저런 인간이 매일 차나 마시러 간다고?”진서준은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그게... 진서준 씨, 사실 그곳은 이름만 찻집이지 실제로는...”조호는 옆에 여성이 있다는 걸 의식해서 말을 흐렸지만 진서준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차를 마시는 곳이 아니라 그냥 인기 많은 인터넷 셀럽이 가득한 고급 유흥업소일 것이다.“진서준 씨, 듣자 하니 그 찻집의 주인은 성씨 가문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진짜로 움직이실 거라면 하경범이 이동 중일 때를 노리는 게 좋을 겁니다.”조호가 조심스럽게 조언했다.“응? 성씨 가문이 이런 사업도 해?”진서준은 흥미롭다는 듯 눈썹을 꿈틀거렸다.진서준은 오영수에게서 성미영에 대한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다.정의로운 성격의 성미영이 자기 가문에서 이런 유흥업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터였다.“네, 듣기로는 성씨 가문의 한 직계 후손이 운영한다고 합니다. 여자에 미쳐 있는 놈이라 르벨의 돈 많은 도련님들과 꽤 친분이 깊다고 하더군요.”조호는 본인이 아는 정보를 전부 쏟아냈다.“좋아, 대충 알겠어.”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조호의 회사를 나온
진서준이 허사연의 캐리어를 들어주며 옆방으로 걸어갔다.그 뒷모습을 보며 도지아는 부러움이 가득한 눈빛을 보냈다.인간은 원래 모여서 사는 걸 선호하는 동물이다.사회를 벗어나서 혼자 살아가는 건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가족도 친구도 없이 너무 오래 지내다 보면 결국 감정 없는 시체나 다름없는 존재가 되어버린다.그렇게 되면 사람과 짐승의 차이가 없어질 것이다.“어제 전화할 때 그랬었지? 이번에 너 자기 출신을 찾으러 온 거라고.”호텔 방으로 돌아온 후, 허사연이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너 원래 경성 진씨 가문 사람이잖아?”“나도 그렇게 알고 있었어. 그런데 할아버지가 예전에 말해주셨어. 사실 우리 아버지는 어릴 때 길에서 주워 온 아이였다고.”진서준은 허사연에게 숨길 생각이 없었다.허사연은 진서준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허사연이라면 이 비밀을 절대 밖으로 흘리지 않으리란 확신이 있었다.“뭐라고? 아버님이 주워 온 아이라고?”허사연이 깜짝 놀랐다.“그래. 하지만 이 사실을 아는 건 나뿐이야. 가족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나한테만 알려주셨지.”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얼마 전, 오영수가 내 등에 있는 용을 보고는 내가 용맥의 일족이라고 했어. 그래서 오영수를 따라 여기 와서 오영수 셋째 삼촌에게 내 출신에 관해 알아보려 했던 거야.”“네 등에 용이 있다고? 난 한 번도 본 적 없는데?”허사연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그동안 둘이 알몸으로 함께한 시간도 적지 않은데 허사연은 한 번도 본 기억이 없었다.“내가 체내 혈기를 모을 때만 그 용이 나타나거든.”진서준이 설명을 이어갔다.“그런데 오영수 삼촌이 아직 돌아오질 않아서 일단은 여기서 며칠 기다려야 해.”“아니, 그럼 오씨 가문에서 널 안 재워줬어?”허사연이 의아해했다.명문대가인 오씨 가문에 빈방이 없을 리가 없었다.“그날 오영수를 찾아갔는데 마침 오영수 할아버지가 위중했어. 그리고 그 집안엔 그 어르신을 그냥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지.”진서준이 담담하게
“진짜 예쁜 새색시 숨겨놓고 있었네?”허사연이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누구라도 자기 남자 방에 예쁘고 몸매가 완벽한 여자 하나가 같이 있는 걸 보면 의심 안 할 수가 없었다.게다가 지금은 아침이었다.설마 이 여자가 아침에 막 찾아온 건 아니겠지?“사연아, 오해야. 내가 제대로 설명할게.”진서준은 머리가 띵해졌고 뇌가 지진이라도 난 것 같았다.“아가씨, 오해하지 마세요. 어제 저랑 진서준이 같은 방에서 잔 건 맞지만 진짜 아무 일도 없었어요. 저 밤새 한숨도 못 잤다니까요?”도지아가 황급히 해명에 나섰다.“네? 밤새 안 자고도 아무 일 없었다고요?”허사연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설마 밤새 불태우느라 못 잔 건 아니겠죠?”허사연의 농담과 진담이 뒤섞인 말에 진서준은 헛웃음만 나왔다.“사연아, 이쪽은 도지아야. 우리 진짜 그냥 친구야. 일단 들어와. 천천히 설명할게.”허사연이 방에 들어오자 진서준은 서로에게 소개했다.그러고는 이 방에서 일어난 상황을 설명했다.“도지아는 황예은이 소개해 준 환자야. 다리 치료를 부탁받았거든. 종아리를 봐봐. 이틀 전에 내가 직접 발라준 연고가 있어.”허사연이 내려다보자 확실히 연고가 발라져 있었다.“그리고 도지아가 밤새 안 잔 건 원기를 수련하느라 그랬던 거야. 너도 예전에 수련한다고 며칠씩 안 잔 적 있잖아?”허사연은 오해가 풀리자 그제야 빙그레 웃었다.“내가 뭐 어쨌다고 그렇게 호들갑이야?”“혹시라도 오해할까 봐 그러는 거잖아.”진서준이 빠르게 대답했다.“뭐야? 내가 그렇게 의심 많고 질투 많은 여자로 보여?”허사연이 눈을 가늘게 떴다.“아, 아니지. 우리 사연은 누구보다 속이 넓은 부드러운 여자지.”진서준이 급히 정정했다.“됐어, 너 겁먹은 거 너무 귀엽다.”허사연이 피식 웃었다.“넌 여기 좀 쉬고 있어. 내가 방 하나 잡고 올게.”진서준은 더 머뭇거릴 틈도 없이 벌떡 일어나 나가 버렸다.진서준의 뒷모습을 보며 허사연은 그제야 웃음을 터뜨렸다.“도지아 씨, 진서준이
“내가 가면 안 돼?”사실 진서준은 거절하려 했었다.르벨은 안개가 짙게 깔린 늪지대 같은 곳이라 진서준조차도 어디에 함정이 있을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그러니 허사연이 온다면 다칠 가능성이 컸다.하지만 거절하면 허사연이 상처받을 게 뻔했다.“당연히 되지. 지금 위치 보낼게.”진서준은 단호하게 말하며 위치를 보냈다.자기 여자를 지킬 자신도 없으면서 강자들을 상대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자기야, 잘 자.”허사연이 애정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너도 일찍 자.”진서준이 다정하게 답했다.전화를 끊고 나니 진서준의 졸음이 싹 가셨다.진서준은 창가로 다가가 이 화려한 도시를 내려다봤다.“오씨 가문, 안씨 가문, 하씨 가문... 너희가 무슨 꿍꿍이를 꾸미든 난 전부 박살 낼 거야. 이번엔 반드시 나와 아버지의 정체를 밝혀내고 말겠어.”진서준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그렇게 별다른 사건 없이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아침.진서준이 막 눈을 뜨자마자 도지아의 흥분한 외침이 들려왔다.“진서준, 됐어. 나 생겼어!”도지아는 눈 밑이 시커멓게 변해 있었는데 밤새 잠을 자지 않은 게 분명했다.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물었다.“너 아직 처녀 아니었어? 대체 어떻게 임신한 거야?”“미친놈아, 임신은 개뿔, 무슨 헛소리야?”도지아는 얼굴이 빨개지며 진서준을 노려봤다.“그럼 왜 아침부터 난리야?”진서준이 되물었다.보통 사람이라면 이렇게 아침부터 흥분해 날뛰지 않을 것이다.“어제 네가 준 수련법 기억나지? 나 벌써 원기를 형성할 수 있게 됐어.”자기가 대단하다고 여긴 도지아는 자랑스럽게 선언했다.고작 하룻밤 만에 원기를 형성한 건 확실히 대단한 일이었다.“뭐? 그렇게 빠르다고? 너 타고난 천재 맞네?”진서준이 다소 의아한 표정을 보였다.보통 무인은 원기를 익히는 데만 최소 1년이 걸리는데 그것도 매일 꾸준히 수련할 경우에만 발생하는 일이었다.심지어 재능 있는 자들도 한두 달은 족히 걸린다.그런데 도지아는 단 하룻밤에 이 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