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서강이 슬픔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뭐라고요? 한보영 씨가 누구한테 납치됐는데요?”허사연은 놀란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둘러 질문했다.“정월문의 장문인, 김문호한테요!”전에 고양시 전투에서 진서준에게 패배했던 문희수와 경두진 모두 정월문 사람이었다.진서준이 정월문의 두 장로를 순식간에 폐위시켜 김문호의 체면을 제대로 구겼다. 그 날의 복수를 위해 김문호는 산에서 나오자마자 고양시로 온 것이다.하지만 진서준은 이미 금운의 운대산 위로 올라가 수련 중이었다.진서준을 나오게 하려면 김문호는 어쩔 수 없이 한보영을 납치해 진서준이 제 발로 본인을 직접 찾아오게 만들어야 했다.“하지만 저는 지금 진서준 씨랑 연락이 안 되는걸요!”허사연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진 상경님께선 대체 어디서 뭘 하고 계신 거죠?”한서강의 마음이 점점 초조해져만 갔다.“너무 조급해 하지는 마세요. 진서준 씨는 분명 이틀 내로 모습을 드러낼 테니까요. 돌아오면 바로 진서준 씨에게 이 소식을 알려서 하루빨리 아가씨부터 구할게요.”허사연이 한 마디 덧붙였다.“김문호에게 금운으로 오라고 전하세요. 진서준 씨가 지금 금운에 있거든요. 지금은 산에서 수련 중이지만요. 김문호가 정말 그렇게 자신만만하다면 진서준 씨가 만든 진법도 어디 한 번 뚫어보라고 하세요!”“네, 지금 당장 김문호에게 전화해서 전하죠.”전화 통화가 끊기자 허윤진이 서둘러 물었다.“언니, 무슨 일이야? 한보영 씨가 납치됐다니?”“응, 한씨 가문의 한보영 씨가 김문호한테 납치당했대. 김문호는 정월문의 장문인인데 전에 전서준이 폐위시켰던 정월문의 두 장로 중 한 명이야.”허사연이 설명해 주었다.허윤진은 언니의 말을 듣는 순간 새어 나오는 욕을 참을 수가 없었다.“김문호 그것참 나쁜 녀석이네. 감히 여자를 납치하다니, 그런 놈도 장로라는 게 부끄럽다!”“답답하네...”어이가 없긴 허사연도 마찬가지였다.지금으로서는 진서준이 하루빨리 하산하기만을 기도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한보영도 위험해질
진서라는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자책했다.만약 어제 밖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어머니를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이다.“서라 씨 잘못이 아니에요. 서라 씨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꼭 이모를 찾을 거예요.” 한편, 허사연은 진서라를 위로하며 살이 파일 듯 주먹을 움켜쥐었다. 하얀 손바닥에는 이미 선명하게 핏줄이 튀어 올랐다.진서라 혼자 자책하는 것만이 아니었다. 허사연 역시 후회했다. 진서준은 그녀에게 진서라와 조회선을 부탁했는데 결국 조회선을 잃어버렸다.마치 전에 진서준이 보운산에 갔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다만 이번에는 진서라가 아닌 조회선을 잃어버렸다. 조회선은 진서준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어머니였기 때문이다.당시 진서라가 사라졌을 때도 진서준은 거의 미칠 지경이었다. 이제 어머니를 잃어버렸으니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감히 상상하지 못했다. 허사연은 진서라와 통화를 마치고 즉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허성태는 사돈이 실종되었다는 소식에 즉시 허씨 가문의 모든 직원을 동원해 찾아 나섰다.완전히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속이 타들어 가다 못해 재가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소파에 누운 채 손가락으로 자신의 미간을 짚었다. “언니, 너무 걱정하지 마. 반드시 찾을 거야. 그리고 한보영도 구해낼 수 있을 거고.”허윤진은 곁에서 그녀의 어깨를 주무르며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어.”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마침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열게!” 허윤진은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었다. “안녕, 아가씨.”서씨 가문의 서경재였다. 그는 전에 김연아의 생일 파티에서 진서준에게 심하게 얻어맞은 적이 있었다.그 일이 있은 후 김형섭이 이 사건을 덮는 바람에 서경재가 진서준에게 따로 복수하지 않았다. 다만 그 원한은 서경재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 있었다.최근 그는 부하들로부터 별장에 젊은 자매 둘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사람을 시켜 허윤진과 허사연
누렁이는 몸을 날려 가볍게 피하더니 곧바로 서경재의 종아리를 물어버렸다.삐꺽-서경재의 종아리뼈는 누렁이에 의해 그대로 뚫려버렸다.“아!”찢어질 듯한 비명소리가 서경재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피는 누렁이의 입을 따라 흘러내려 순식간에 서경재의 바지를 새빨갛게 물들였다.서경재의 처참한 모습에 허사연은 속이 다 시원했다. 하지만 누렁이가 서경재를 물어 죽이는 상황은 허사연도 물론 막아야 했다. 아무래도 서씨 가문의 사람이 이곳에서 죽게 되면 큰 문제가 생길 것이 분명했다. “누렁아, 그만해. 저런 쓰레기를 먹었다가 배탈 날 거야.” 누렁이는 그제야 입을 떼고는 역겨운 듯 피를 뱉어내자 서경재의 온몸에 튀었다.서경재는 바닥에 누운 채 뒹굴며 울부짖었다.“꺼져! 아니면 누렁이가 어디를 물게 될지 나도 장담 못 하니까.” 허사연은 사늘하게 한마디를 뱉었다. 서경재는 숨을 깊게 들이쉬더니 애써 고통을 억누르며 일어섰다. 그는 증오에 가득 찬 눈으로 그들을 노려보았다. “두고 봐.”서경재는 협박에 가까운 한마디를 남기고 절뚝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가 떠난 후, 허윤진은 즉시 걸레를 가져와 바닥에 묻은 피를 닦았다. “언니, 아무래도 위험한 것 같아.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좋겠어.” 허윤진은 정리하고 나서 허사연에게 말했다. 누렁이가 서경재를 물어버렸고 게다가 여기는 서씨 가문의 영역이니 분명 위험해질지도 모른다.조회선과 한보영까지 이미 곤경에 빠졌는데 진서준에게 더 이상 문제를 일으켜선 안 되었다. “그래, 바로 떠나자.” 허사연과 허윤진은 간단하게 짐을 챙기고 떠나려 했다. 그러나 결국 한 발짝 느렸는지 서경재는 이미 서씨 가문의 대종사를 데리고 찾아왔다. 서씨 가문의 서광문은 자기 딸의 소식을 가장 먼저 듣기 위해 대종사 상림을 이곳에 배치했다.상림은 20년 전부터 이미 일급 대종사로, 강남에는 그의 상대가 없었다. 그 후 서씨 가문에서 상빈으로 모셔지며 서씨 가문의 안전을 책임졌다. 그
누렁이의 생사 확인이 불가했다.게다가 서씨 가문의 대종사가 옆에서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두 자매는 거의 죽음의 상황에 처해있었다.“너 오지 마!”허사연은 마음을 굳게 먹은 채 바닥에 있던 유리를 깨뜨리더니 날카로운 유리 조각을 목에 갖다 댔다.그녀는 차라리 죽더라도 서경재한테 더럽혀질 수는 없었다.“뭐해? 자살이라도 하려고?”서경재는 비웃으며 말했다. “상 아저씨가 여기 있는 한 죽는 것도 네 맘대로 할 수 없어.”말이 끝나기 바쁘게 상림은 손가락을 튕겨 허사연의 손에 있던 유리 조각을 산산조각 냈다.서경재의 말 대로 허사연은 자신의 목숨마저 좌지우지할 수 없었다.“너… 우리 언니 건들지 마!”허윤진은 허사연의 앞을 막아서며 서경재에게 소리쳤다.“너흰 나랑 협상할 자격조차 없어. 당장 옷 벗고 날 모셔. 혹시 알아? 만족하면 진서준의 목숨쯤이야 살려줄 수도 있지.”서경재는 냉소하며 음흉한 눈빛으로 허사연 자매를 바라보았다.그녀 같은 타입은 서경재도 경험해 보지 못했다.“꿈 깨.” 허사연은 분노 가득 찬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꿈 깨? 확실해?” 서경재는 느긋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너희가 내 손에 있는 한 진서준 그 새끼도 분명히 올 거야. 그의 생사는 이젠 나한테 달린 거지.”“진서준이 죽지 않길 원한다면 당장 옷 벗고 날 모시는 게 좋을걸?”서경재가 말한 대로 진서준은 지금 위험한 상황에 처해있다.서씨 가문이라는 거대한 세력 앞에서는 진서준이 살아남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비열하고, 치사하고, 더러운 놈.”허사연은 화가 잔뜩 난 채 온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예전에 이렇게 역겨웠던 사람은 손승호뿐이었는데 그보다 더 한 놈이 있다니.“X발, 네까짓 게 나를 욕해?”서경재는 허사연의 얼굴을 향해 뺨을 내리쳤다.철썩-허사연의 새하얀 얼굴에 선명한 손자국이 남았다.이어 서경재는 얼굴이 일그러진 채 허윤진의 턱을 잡고 말했다.“당장 바지에 묻은 피를 깨끗이 핥아, 아니면 네 동생을 죽일 거야.”허사연
“비켜!”상림은 서경재를 향해 한마디 하며 몸을 날려 그를 구하려고 했다.하지만 한 줄기 무지개 같은 광채가 상림보다 더 빨랐다. 상림이 서경재를 구하기 전에 그 광채는 번쩍이며 지나갔다. 푸슥-서경재의 팔이 하늘로 솟아오르더니 피가 샘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아!”서경재는 고통에 거의 기절할 뻔했다. 얼굴은 새하얗게 질린 채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그 광채는 산을 가르고 바위를 쪼갤 수 있는 날카로운 검이었다.검의가 뿜어져 나오며 그 기세에 상림은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검도 대종사?”상림은 한기를 뿜어내는 검을 바라보며 놀라움에 가득 찼다. 그는 지의방 76위의 사급 대종사로서 한 자루의 검때문에 물러서다니.상림은 분노에 가득 찬 채 선천의 힘을 모아 검을 향해 내리쳤다.펑-선천강기와 검신이 부딪치며 별장이 흔들릴 정도의 엄청난 소리가 났다.천문검의 검의는 사라지더니 곧바로 물러나며 누군가 별장으로 뛰어들어왔다.“감히 내 여자를 건드려? 죽고싶어 환장했네.”천문검은 다시 진서준의 손으로 돌아왔다. 진서준은 살기로 둘러싸인 채 서늘한 눈빛으로 서경재를 쳐다봤다. 그의 눈에 서경재는 이미 죽은 목숨과 마찬가지였다.“혼자 뿐인가?”상림은 자신을 물러서게 한 사람이 젊은이인 것을 보고 더욱 충격을 받았다. 그는 무도를 수련한 지 거의 70년이 되어 가는데 일생 동안 적수라고 없었다.그런데 지금 스무 살도 안 된 청년에게 밀리고 있다니 면목이 없었다.“상 아저씨, 쟤가 바로 진서준이에요! 당장 죽이세요.”서경재는 진서준을 보자마자 혼이 나갈 정도로 두려워하며 허둥지둥 외쳤다. 상림은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네가 진서준이란 말인가?”푸슥- 진서준은 대답 대신 천문검을 휘둘러 서경재의 오른손 손가락 다섯개를 잘라버렸다.그 자리에서 기절한 서경재를 보고 허사연 자매는 아연실색했다. 이렇게 살기 어린 진서준을 본적은 그녀들도 처음이었다. 다만 그녀들은 서경재가 그녀들을 건드리는 바람에
상림은 살기로 둘러싸였다.그는 겨우 스무 살 남짓한 소년이 자기와 대등하게 싸우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만약 진서준이 앞으로 더 수련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때가 되면 그를 당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지금이 바로 완전히 성장하기 전에 진서준의 싹을 잘라야 할 최적의 시기일지도 모른다.진서준이 검을 들고 있는 손은 약간 떨리고 있었다. 방금 그 한 방으로 몸 안의 모든 영기가 거의 소진되었다. 요 며칠 사이 진서준은 확실히 많이 성장했지만 지의방 76위인 괴물 상림을 상대하는 건 여전히 버거운 일이었다. 만약 계속 싸우게 된다면 진서준은 허사연 자매를 데리고 도망치는 것밖에 상책일지도 모른다.상림한테 둘러싸인 살기를 감지한 진서준은 마지막 남은 영기를 천문검에 모으는 동시에 몸 안의 혈기를 왼손에 집중시켰다.“상 아저씨, 그만 싸워요!”순간, 서지은이 달려와 크게 외쳤다. 서지은의 목소리에 상림은 즉시 살기를 감추고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상림은 원래 서광문의 명령을 받고 서지은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그는 원래 서지은이 이미 죽은 줄 알았는데 지금 이렇게 살아 돌아왔을 뿐만 아니라 몸에는 상처 하나 없었다.“아가씨, 다치진 않으셨나요?” 상림은 다급히 물었다. “전 괜찮아요. 서준 씨 덕분이에요. 저를 봐서라도 서준 씨와 싸우지 말아 주세요.”서지은은 가냘픈 몸으로 진서준의 앞을 막아섰다. 그녀의 행동에 진서준은 크게 감동했다. 서씨 가문의 사람들과 달리 서지은은 괜찮은 사람이었다.상림은 미간을 찌푸리며 땅에 누워 있는 서경재를 가리켰다. “하지만 경재를 죽였잖아.”서지은 잠시 멈칫하더니 진서준을 한 번 보고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아버지께 부탁할 테니 경재의 시체를 갖고 가세요.”상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다만 아가씨도 저와 함께 가야 해요.” “네, 서준 씨에게 인사하고 갈게요.”상림은 진서준에게 경고의 눈빛을 던지고 나서 서경재의 시체를 어깨에 메고 별장을 떠났다. “내
권해철은 난처해하며 자리를 떠났다. 비록 권해철이 진서준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둘 사이에는 정말로 아무 일도 없었다.“됐어요, 얼른 누렁이 상태를 살펴야 될 것 같아요. 아까 그 대종사에게 발로 차였단 말이에요.” 허사연이 급히 말했다. 진서준은 이내 돌무더기에 묻혀 있는 누렁이에게 달려갔다. 누렁이를 파내자 이미 숨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았다. 숨쉬기도 힘들어할 정도로 당장이라도 죽을 것만 같았다.“서준 씨, 누렁이를 살려줘요. 이대로 죽게 놔둘 수 없어요.”허윤진은 눈물을 흘렸다. “걱정 마세요, 제가 있는 한 누렁이는 괜찮을 거예요.”진서준은 손을 누렁이의 몸에 얹은 채 장청결로 누렁이의 상처를 치료했다. 누렁이는 이내 활기차게 뛰어다니며 진서준 주위를 맴돌면서 꼬리를 흔들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누렁이가 정말 개라고 생각할지도 모를 정도였다.진서준이 누렁이를 치료하고 나서 장동윤은 장씨 가문 사람들을 데리고 도착했다. 이미 엉망이 된 별장을 보며 장도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혹시 폭탄이라도 맞은 건가요?”정신을 차린 장도윤은 즉시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진 선생님, 산에서 내려오셨어요?” 진서준을 보자마자 장서윤은 단번에 상황을 파악했다. 그가 서경재와 서씨 가문의 대종사를 물리친 것이 확실했다. 장도윤으로 하여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서경재가 데려온 대종사는 사급 대종사로서 지의방 76위의 괴물인데 말이다.지의방 76위의 괴물을 물리쳤다니 진 선생님이야말로 진정한 괴물이 아닐까! “응.”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이 근처에 다른 별장 있어?”장도윤은 난처해하며 고개를 저었다. “없어요. 선생님이 산에 오르신 날, 운대산 근처의 모든 별장이 다 팔렸어요. 다행히 이 별장은 예전에 사둔 거라, 다만 지금은 다시 시공해야겠네요.”“알겠어. 그럼 일단 다른 거처를 마련해 줘.”지금 별장은 이미 엉망이 되어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었다. 진서준 일행은 다른 곳으로 옮길 수밖에
장도윤이 떠나자마자 허윤진은 진서준을 소파에 앉히고 마치 범죄자를 심문하듯이 진서준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자백하고 정상참작 받으시죠?”진서준은 허윤진의 장난에 웃음을 터뜨렸다.“아까 말했잖아요. 나랑 지은 씨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우릴 눈먼 사람으로 보는 거에요? 그녀가… 그녀가 형부 볼에 입 맞췄잖아요. 그것도 우리 앞에서, 이건 우리에 대한 도발이에요.”허윤진은 화가 난 채 소파를 내리치며 말했다.진서준은 멈칫하며 무의식적으로 “너도 나한테 뽀뽀했잖아.”라고 말하려다 이내 삼켜버렸다.“내가 뽀뽀한 것도 아니고, 그녀가 나한테 한 거잖아요. 내가 그녀를 통제할 수도 없고.”진서준은 억울한 마음이 가득 차서 말했다.이건 마치 자신의 지갑이 도난당했는데 오히려 자신이 꾸중을 듣는 기분이었다.“형부가 꼬시지 않았다면 그녀가 키스했겠어요? 결국 형부 문제에요.”허윤진은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진서준은 답답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꼬신 적 없어요. 오는 길에 지은 씨를 구해줬고 운대산에서도 그녀의 목숨을 구해줬을 뿐이에요.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모른 척할 순 없잖아요.”허윤진은 그만 할 말을 잃고 진서준을 멍하니 쳐다봤다.그러나 허윤진은 이내 반박할 말을 찾아냈다.“그럼 산에서 형부랑 그녀가 단둘이서 십여 일 동안 있었는데,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렇게 예쁜 여자를 두고 나조차도 설렜겠어요.”“단둘이 있었던 게 아니에요. 권 마스터님도 같이 있었어요.”진서준은 눈을 굴리며 말했다. “그럼 맹세할게요. 만약 제가 사연 씨에게 부끄러운 일을 했다면...”말이 끝나기도 전에 허윤진은 그의 입을 손으로 막으며 말을 가로챘다.“맹세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에요!”허윤진은 화난 듯 말했다.비록 지금은 허사연에게 부끄러운 일을 한 적 없을지 몰라도 나중엔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었다.허윤진은 조금의 사심이 있었다.“사연 씨에 대한 충성을 표하는 거예요.”진서준은 한숨을 내쉬며 조금 지친다고 느꼈다.“됐어
성미영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매년 혼자서만 집에 가다 보니 성미영에게 이성 친구가 있을 리 만무했다.성미영도 이제 3년만 지나면 서른이었기에 집에서는 성미영의 결혼 문제가 가장 뜨거운 감자였다.그런데 오늘 갑자기 이성 친구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리자 가족들이 당연히 남자친구라고 착각한 것이다.그래서 기어코 성미영에게 진서준을 집으로 데려오라고 난리였다.“그냥 사실대로 말하면 되잖아?”진서준이 태연하게 말했다.무슨 대단한 일이라도 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런 사소한 일이었다.“그게 통했으면 내가 지금 너한테 전화했겠어?”성미영이 짜증 난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뭘 어쩌라는 거야? 설마 내가 직접 가서 해명하라는 건 아니겠지?”진서준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되물었다.“꼭 와야 해. 안 그러면 부모님이 날 가만히 안 둘 거라고.”성미영이 명령조로 말했다.“이봐, 지금 부탁하는 입장인데 말투가 그게 뭐야? 장난해?”진서준이 한마디 귀띔했다.“야, 진서준. 너 적당히 해. 지금 무슨 상황인지 이해가 안 돼?”성미영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소리쳤다.“오후에 내가 너 안 도와줬어? 지금은 네가 나 도울 차례라고. 아니야?”진서준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정정하자면 너 없어도 난 하경범을 충분히 잡아 올 수 있었어. 오히려 너 배려해서 너희 성씨 가문 구역에서 난리 안 친 거라고.”“헛소리 작작 해!”성미영이 분노에 이를 갈았다.진서준의 말이 사실 틀린 말은 아닌데 왜 이렇게 재수 없게 들리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럼 끊는다?”진서준이 전화를 끊으려 했다.“끊지 마. 내가 지금 데리러 갈 거야. 오늘 밤에 확실히 설명하고 가. 안 그러면 부모님이 나 귀찮게 해 미칠 것 같다고.”성미영이 다급하게 말했다.“그럼 부탁해야지. 부탁할 땐 부탁하는 태도가 있는 법이거든.”진서준이 태연하게 말했다.사실 일부러 성미영을 약 올리는 건 아니었다.그냥 이 여자가 맨날 윗사람처럼 굴었고 매번 자기가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양, 가르
차 안.도지아는 직접 복수를 마친 뒤, 속이 어느 때보다 한결 더 시원했다.하지만 곧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진서준에게 물었다.“나중에 하경범이 복수하면 어떻게 하지?”“그럼 그냥 지옥에 보내버리면 돼. 너무 걱정되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서 죽여버릴까?”진서준이 태연하게 말했다.어차피 그런 쓰레기는 살아 있을 가치도 없었다.진서준이 하경범을 바로 죽이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바로 금단 현상이 올라올 때의 고통을 직접 맛보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죽여버리는 것보다 살아서 끔찍한 경험을 하게 하는 게 더 잔인한 법이었다.“아니야, 죽이는 게 오히려 그 녀석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이야.”도지아가 고개를 저었다.그 한마디로 도지아가 하경범을 얼마나 증오하는지 알 수 있었다.하경범은 도지아의 미래를 망가뜨렸고 행복했던 가족을 박살 내버렸다.이제 도지아는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도지아는 막막하기만 했다.호텔로 돌아오자 진서준이 물었다.“여기서 계속 있을 순 없잖아. 앞으로 어디로 갈 생각이야?”도지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대답했다.“예은에게 가볼까 해. 걔 집 넓잖아.”“그것도 괜찮네. 황예은은 돈이 넘치니까 황예은한테 붙어 있으면 먹고사는 걱정은 없겠네.”진서준이 장난스럽게 말했다.한편, 성현도가 빠르게 정보를 통제한 덕분에 하경범이 진서준에게 끌려갔다는 사실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하씨 가문 쪽에서도 하경범이 강제로 마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집으로 돌아간 하경범은 곧장 본인이 키운 삼생파의 두목 이시언에게 연락했다.“하 도련님, 무슨 일입니까?”전화를 받은 이시언은 조금 의아해했다.하경범이 직접 연락해 오는 경우는 드물었는데 마지막으로 연락했을 때도 사람을 납치하라고 시켰을 때였다.“당장 나한테 와.”하경범의 목소리가 얼음처럼 차가웠다.“네, 바로 가겠습니다.”이시언은 하경범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즉시 출발했다.30분 후, 이시언은 부하들을 데리고 하경범의 저택에 도착
“그럼 이제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잖아. 왜 굳이 날 물고 자빠지는 건데?”하경범은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너 아니었으면 우리 가족이 납치당할 일도 없었겠지. 그럼 내 동생도 마약과 접촉할 일도 없었을 거잖아. 네 더러운 욕망만 아니었어도 우리 가족이 이렇게 풍비박산 날 일이 있었겠어?”도지아의 분노는 점점 극에 달했다.“내가 겪은 이 모든 고통은 전부 다 네 탐욕과 욕망 때문이야. 오늘 넌 반드시 그 대가를 치러야 해.”하경범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이제야 도지아가 진짜 죽을 각오로 덤비고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내가 방금 조상규 삼촌에게 연락했어. 곧 도착할 거야. 삼촌이 오기 전까지는 너희가 아직 살아남을 기회가 남아 있어.”하경범은 이런 상황에서도 협박하기 시작했다.“그러니 함부로 날 건드리지 마. 날 손대는 순간, 너희 셋 다 살아서는 못 나갈 줄 알아.”“그 사람은 올 수 없어.”진서준이 느닷없이 말했다.“무슨 뜻이야?”하경범이 움찔하며 눈꺼풀을 떨었다.“이미 죽었거든. 이해했어?”진서준이 담담하게 대꾸했다.“뭐, 뭐라고?”하경범은 흠칫 떨더니 곧바로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헛소리하지 마. 그럴 리 없어! 조상규 삼촌은 대종사야. 네놈 따위가 무슨 수로 대종사를 죽일 수 있어?”하경범은 조상규의 무도 실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예전에 습격당했을 때도 조상규가 나서서 하경범을 구해줬다.당당한 대종사인 조상규가 진서준 같은 애송이에게 당했을 리가 없었다.“못 믿겠으면 직접 전화해 봐. 전화 받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해 보지 그래?”진서준이 시큰둥하게 말하자 하경범은 급히 전화를 걸었다.그러나 들려오는 건 통화 연결음뿐이었다.하경범은 이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또다시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결과는 똑같았다.“젠장, 전화 받아! 전화를 받으란 말이야!”하경범은 이제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졌다.“통화가 안 되지?”진서준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대체 왜 조상규 삼촌이 너 따위한테 당했는데?
“뭐가 두려워?”하경범은 자신만만했다.여긴 하씨 가문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르벨이었다.하경범은 진서준이 이곳에서 자기를 건드릴 용기가 있을 수 없다고 확신했다.“그럼 따라와 봐.”진서준이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다.“경범아, 저 녀석 꽤 강해. 조심하는 게 좋아.”성현도가 목소리를 낮춰 경고했다.“걱정 마. 아무 일도 없을 테니까.”하경범은 가볍게 웃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진서준이 도대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지 두고 보자는 심정이었다.차에 올라타자 하경범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의외네, 넌 여자들한테도 제법 인기가 많은 모양이구나. 황예은과 도지아만 있는 게 아니라 이번엔 또 새로운 여자가 곁에 있네.”하경범은 옆자리의 허사연을 힐끔 쳐다보며 능글맞게 웃었다.“아가씨, 저 녀석 따라다녀 봤자 아무런 미래도 없어. 나랑 함께하는 게 어때? 내 여자가 되면 평생 호화롭게 살게 해줄게. 명품, 스포츠카, 대저택, 뭐든 원하는 만큼 줄 수 있어.”허사연은 그 말에 쌀쌀하게 웃으며 대꾸했다.“그럼 네 목숨을 원한다면 줄 수 있어?”하경범 같은 부잣집 도령이 얼마나 많은 가정을 파탄 냈을지 모른다.진서준의 얘기를 들은 후, 허사연도 이 쓰레기를 당장 없애버리고 싶었다.“내 목숨을 달라고?”하경범은 어이없다는 듯 멍하니 있다가 곧 박장대소를 터뜨렸다.“날 죽이겠다고? 그래, 해봐. 근데 네 가족이 우리 하씨 가문의 분노를 감당할 수 있을까?”하경범의 목소리엔 살기가 서려 있었다.“거참 쉬지도 않고 조잘대네.”진서준은 쉴 새 없는 하경범의 멘트에 슬슬 짜증 나기 시작했다.“흥, 얼마 안 가 네가 내 앞에 무릎 꿇고 날 다시 보내게 될 거야. 내가 장담하지.”하경범은 눈을 가늘게 뜨며 진서준을 비웃었다.“오히려 네가 나한테 무릎 꿇고 목숨을 구걸하게 될걸?”진서준은 태연하게 받아쳤다.곧이어 진서준은 차를 한 폐기된 공장 앞에 세웠다.차에서 내리자 하경범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한곳에 걸터앉아 휴대폰
“뭐라고? 불법적인 일이 우리 가게에서 일어난다고? 말도 안 돼.”성현도가 헛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넌 전신전 소속이잖아. 그런데 네 오빠인 내가 어떻게 법률을 어기는 일을 하겠어?”“그럼 이 사람들은 왜 부른 거야? 집단 폭력도 불법이거든.”성미영은 차가운 시선을 보이며 성현도와 따졌다.“미영아, 이건 내가 싸우려던 게 아니야. 저 녀석이 일부러 시비 걸러 온 거라고.”성현도는 진서준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이놈이 일부러 우리 찻집에 난입해 행패를 부리고 상철을 두들겨 패서 머리에 혹이 다 나버렸어. 난 단순히 정당방위를 위해 부른 거라고.”성미영이 등장하자 성현도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솔직히 실력만 놓고 보면 성현도는 성미영보다 한참 부족했다.게다가 성미영은 전신전 소속인지라 저 남녀가 군부 조직인 전신전을 적으로 돌릴 리 없었다.군대를 건드리는 순간, 무조건 좋은 결과는 있을 수 없었다.“진서준, 도대체 무슨 일이야?”성미영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어라? 너희 둘이 아는 사이야?”성현도가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방금 내려놨던 마음이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난 사람을 찾으러 왔어. 하씨 가문 하경범이 이 위층에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어.”진서준이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켰다.“그리고 또 하나, 저 위에서 불법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도 하더군.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이 말에 성현도의 표정이 단숨에 험악해졌고 즉시 반박에 나섰다.“헛소리 마. 우리 가게는 단순한 찻집이야. 불법적인 일 따윈 없어. 근거없는 소문을 왜 털어놓고 난리야?”“미영아, 저 녀석한테 속지 마. 난 네 사촌 오빠야. 내가 그런 불법적인 짓을 할 사람이겠어?”성미영이 곧바로 진서준에게 물었다.“진서준, 너 증거 있어?”“직접 올라가 보면 다 알게 될 거잖아?”진서준이 가볍게 말했다.“오빠, 위층으로 가자.”성미영이 단호하게 말했다.“그, 그건 좀 곤란해. 위층엔 귀
순간, 장내는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조용해졌다.모든 시선이 진서준에게 쏠렸고 사람들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다들 진서준을 그냥 얼굴만 반반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진짜 고수였다.성현도의 부하 중 최고 실력자조차 상대가 되지 않았다.성현도의 얼굴은 시퍼렇게 질렸고 상철을 향해서 욕설을 날렸다.“쓰레기 자식, 이런 애송이 하나도 못 이겨?”부하가 지면 망신당하는 건 결국 성현도 자신이었다.이대로 체면을 구긴 채 끝낼 수는 없었다.이대로 넘어가면 앞으로 르벨 재벌 2세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될 게 뻔했다.“이봐, 네 실력이 괜찮은 건 인정할게.”성현도가 싸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근데 너 혼자서 백 명을 상대할 수 있어? 천 명은? 잘 들어. 내 부하는 수도 없이 많아. 너 같은 놈 하나 처리하는 데 전화 한 통이면 충분해.”진서준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다시 말하지만 난 그냥 하경범을 찾으러 온 거야. 그 녀석만 넘기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해주지.”“없던 걸로 한다고?”성현도가 그 말에 어이없어 헛웃음이 나왔다.“너 지금 누굴 상대로 협상하려 드는 거야? 난 성씨 가문의 직계야. 날 건드리면 상대해야 할 건 나 하나가 아니라 우리 가문 전체라고.”그때, 밖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곧이어 검은색 전투복을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이 남자들은 전부 성씨 가문의 경호원이었고 실력도 만만하지 않았다.그것도 한둘이 아니라 무려 50명 이상이었다.한순간에 텅 비어 있던 로비가 사람들로 꽉 찼다.“저 자식 끝났네. 이 정도 성씨 가문 인원이라면 아무리 강해도 버틸 수가 없지.”“그러게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없잖아.”“왜 쓸데없이 성현도를 건드린 거지? 스스로 무덤을 판 거잖아.”구경꾼들은 이 광경에 각자 다른 감정을 보였다.누군가는 동정을, 누군가는 아쉬움을, 또 누군가는 짙은 흥미를 보였다.“사연아, 넌 좀 쉬어. 이놈들은 내가 처리할게.”진서준이 앞으로 나섰다.
얼마 지나지 않아 키가 거의 2미터에 달하는 거구의 사내가 찻집 안으로 들어왔다.남자는 그냥 서 있기만 해도 엄청난 위압감이 느껴졌다.“상철아, 저놈 다리 하나 부러뜨려서 내던져.”성현도가 진서준을 가리키며 명령했다.“알겠습니다.”상철은 간단하게 대답하고는 진서준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서준아, 내가 할게.”허사연의 눈에는 불꽃 같은 전투욕이 타올랐다.“조심해. 저 녀석은 횡련 종사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가 아니야.”진서준이 조용히 귀띔했다.“알았어. 설령 못 이긴다고 해도 어차피 네가 있잖아?”허사연이 장난스럽게 웃었다.진서준이 곁에 있는 한, 허사연은 아무것도 두렵지 않았다.“이봐, 사내자식이 여자 뒤에 숨는 게 말이 돼?”상철이 눈썹을 추켜세우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이봐, 껑충이. 여자를 얕보지 마. 일단 이기고 나서 말해.”허사연이 상철을 도발했다.“아가씨, 그런 기생오라비 말고 날 따르지 그래? 밤마다 널 천국으로 보내줄 수 있는데?”상철이 음흉하게 웃었다.“죽고 싶어 환장했구나.”얼굴이 싸늘해진 허사연이 주먹을 날렸다.강렬한 펀치가 공기를 가르며 폭발음을 일으켰고 그 위력은 철판도 뚫을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상철은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가만히 서 있어도 넌 날 어쩔 수 없어.”“닥쳐!”허사연이 분노에 차 주먹을 그대로 상철의 얼굴로 내리꽂았다.상철은 일부러 머리를 숙이며 대머리 정수리로 받아냈다.쿵!둔탁한 충돌음이 울려 퍼졌다.주먹이 상철의 머리를 강타했으나 대머리는 꿈쩍도 하지 않았고 오히려 허사연이 몇 걸음 물러섰다.순간 손에 뜨거운 통증이 밀려왔고 뼈가 부서질 것 같았다.손을 확인하자 하얀 피부였던 손등이 새빨갛게 부어올랐다.상철은 자기 머리를 한번 쓸어내리더니 빙그레 웃었다.“아가씨, 이제 내 실력을 알겠지?”그 모습에 허사연의 승부욕이 다시 불타올랐고 콧방귀를 뀌며 다시 달려들었다.이번에는 다리를 높이 들어 올려 상철의 머리를 내려찍었다.‘머리가 단단하다고 자랑하
이렇게 예쁘고 섹시한 여자가 싸움 실력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완전 여성판 이소룡이었다.“너, 너희들 정말 너무 대담한 거 아니야? 여기가 어디인지 알기나 해? 어디서 대놓고 싸움질이야?”종업원은 순간 놀란 뒤 분노에 찬 얼굴로 진서준와 허사연을 가리켰다.찻집이 문을 연 이후로 이렇게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진서준과 허사연이 첫 사례였다.주변의 구경꾼들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싸움 좀 하면 뭐해? 여긴 성씨 가문의 구역이야. 성씨 가문에서 한마디만 하면 저 남녀는 오늘 밤중으로 사라지겠지.”“어휴, 저 여자 너무 아까워. 저렇게 예쁜데 왜 죽지 못해서 안달이지?”“여자는 살 수도 있겠지만 남자는 무조건 죽을걸.”사람들은 저마다 수군거리며 이미 진서준과 허사연의 결말을 예상하는 듯했다.“그럼 네 말대로라면 내가 널 때린다 해도 얌전히 맞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허사연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종업원에게 다가갔다.“오지 마!”종업원은 겁에 질려 연신 뒷걸음질 쳤다.“어떤 미친놈이 내 구역에서 소란을 피우는 거야?”그 순간, 2층에서 한 사람이 내려왔다.모두가 일제히 시선을 돌려 그 사람을 확인하자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성현도가 오늘 여기 있었네?”누군가 그 청년을 알아보았다.“저 둘 끝장났네. 성현도는 악명 높은 냉혈한이야.”그 청년은 바로 찻집의 사장인 성현도였다.성현도는 르벨 재벌 2세 사이에서 유명한 인물이었다.친구에게는 무조건 의리를 지키지만 적에게는 무자비했다.성현도의 고문 방법은 수도 없이 많았고 게다가 무인으로서 무공 실력도 상당했다.“사장님, 저 남녀가 와서 난동을 부렸어요.”종업원은 성현도를 보자마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장이 나온 걸 확인한 허사연은 주먹 한 방에 종업원을 기절시켜 버렸다.“뭐야?”성현도의 눈이 가늘어졌고 표정이 험악해졌다.자기 앞에서 대놓고 부하를 때리다니, 이건 너무나도 명백한 도발이었다.“아가씨, 우리 처음 보는 사이 맞지? 우리
그리고 오후 2시가 되자 진서준은 허사연을 데리고 조호가 말한 천국찻집으로 향했다.겉모습만 보면 이 찻집은 진짜 전통찻집 같았고 규모도 꽤 컸다.하지만 막상 안에 들어가 보니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1층과 2층까지는 정말 평범한 찻집처럼 꾸며져 있었고 누가 봐도 이상한 점을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하지만 3층으로 올라가려면 회원권이 있어야 하거나 사장이 직접 허락한 사람만 출입할 수 있었다.“손님, 아가씨, 이쪽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진서준과 허사연이 차를 마시러 온 줄 안 종업원이 빠르게 달려와 안내하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난 하경범을 찾으러 왔거든.”진서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네?”종업원이 순간 얼어붙었다.“혹시 하씨 가문의 하 도련님을 말씀하시는 겁니까?”“맞아.”진서준이 고개를 끄덕였다.“손님은 누구신지...”종업원이 신중하게 물었다.진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냥 복수하러 왔다고 전해.”그놈 아버지라고 하는 건 자기를 모욕하는 것과 같았고 친구라고 하기도 기분이 더러웠다.그 말에 종업원의 얼굴색이 확 변했다.“손님, 여기서 장난치지 마세요.”하경범은 르벨에서 유명한 재벌 2세였다.이 찻집의 사장과도 막역한 사이였고 여기서 일하는 직원이라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왜? 못 믿겠어?”진서준이 피식 웃으며 되물었다.“손님, 하 도련님에게 복수하려던 사람은 단 하루도 살아남지 못했습니다.”종업원이 경고하듯 말했다.“그런 농담은 함부로 하는 게 아닙니다.”그 말을 듣자 진서준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럼 이렇게 전해. 그 하경범이 두들겨 맞고 나자빠지게 했던 진서준이 왔으니 당장 기어 나오라고 말이야.”진서준의 뻔뻔한 태도에 종업원은 어이가 없었다.“좋습니다. 손님이 그렇게 죽고 싶다면 제가 기꺼이 도와드리죠.”종업원은 바로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문제 발생했습니다. 난동자가 있습니다.”쿵! 쿵!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건장한 남자 스무 명이 들이닥쳤다.전부 검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