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그녀는 후사 없는 남자의 아이를 품었다

회귀한 그녀는 후사 없는 남자의 아이를 품었다

작가:  소당서서연재 중
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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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더없이 존귀했던 태자비 부청사는 변방의 진창길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 죽음을 앞둔 그제야 그녀는 깨달았다. 시동생과 형수의 사통이라느니, 황실의 오점이라느니 했던 모든 말이 처음부터 지극히 가까운 이들이 그녀를 위해 정성껏 짜 놓은 죽음의 덫이었다는 것을. 그녀는 한때 자신과 금슬이 좋다고 믿었던 태자 부군 소경신이 그 모든 일을 묵인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저 자신이 그의 앞길을 막았고, 사촌 언니 부청월의 앞길마저 막았기 때문이었다. 전생의 부청사는 어리석기 그지없었다. 제 발로 그 판 안에 뛰어들어 스스로 첩이 되었고, 원수들의 찬란한 앞날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그녀가 얻은 것은 부모와 남동생의 참혹한 죽음, 어린 자식들의 요절, 그리고 적진에 넘겨져 온갖 짓밟힘과 모욕을 당하는 처지뿐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부청사는 회귀해 있었다. 그녀는 추문이 터진 뒤, 자신의 일생을 갈라놓을 국문이 열리던 대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번 생에서 그녀는 다시는 전생의 그 막다른 길을 걷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태자와 부청월의 사통을 낱낱이 밝혔고, 다섯 차례나 어명으로 이혼을 허락해 달라 청하며 제 손으로 그 악연을 끊어냈다. 그 뒤 그녀는 옥사에 숨어들어 그 추문의 또 다른 주인공인 영왕 소형연과 손을 잡았다. 부청사는 아랫배를 가만히 어루만지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왕야, 제 배 속 아이들은 이미 한 달이 되었사옵니다. 저를 아내로 맞으십시오. 그러면 제가 왕야를 구해 드리겠습니다. 어떠하십니까?” 그날부터 폐위된 태자비와 후사를 볼 수 없다고 알려진 영왕은 온 도성의 조롱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죽음으로 향한다고 여긴 유배길에 함께 올랐다. 그러나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죽음의 길이 그들의 손에서 살아날 길로 바뀌게 될 줄은. 여러 해가 지난 뒤, 황량하던 변방은 풍요로운 땅이 되었다. 두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는 공훈과 철기를 이끌고 당당히 돌아왔고, 산하는 주인을 바꾸었으며, 백관은 머리를 조아렸다. 한때 높디높은 자리에 있던 폐태자는 땅바닥에 짓눌려 무릎을 꿇은 채, 그녀를 바라보며 미친 듯 울부짖었다. 다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처절하게 애원했다. 그러나 새 황제는 그저 부드럽게 부청사의 두 눈을 가려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그자를 보지 말거라.” “청사야. 너의 이번 생도, 다음 생도, 그 모든 생도 이미 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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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제1화

폭우가 쏟아지고, 천지에는 서늘한 살기가 내려앉았다.

“소형연… 소형연… 눈 떠요! 죽으면 안 돼요!”

부청사는 피와 진흙이 뒤섞인 웅덩이 속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으로 소형연의 끔찍한 상처를 필사적으로 눌렀다.

따뜻한 피가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와 그녀의 옷깃을 선홍빛으로 물들였다.

“형수님, 죄송합니다. 제가 형수님을 이 지경까지 몰고 왔습니다…”

소형연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한때 밝고 거침없던 그 두 눈은 이제 초점 없이 흐려져 있었다.

그는 손을 들어 올리려 했다.

손끝이 희미하게 움찔했으나, 끝내 닿은 것은 그녀의 차갑게 식은 손등뿐이었다.

“여기는 서초국 땅입니다. 제 형님께서 곧 오실 겁니다… 앞으로는 그분이 형수님의 앞일을…”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피로 얼룩진 손이 진흙탕 속으로 힘없이 떨어졌다.

한때 비단옷을 입고 준마를 달리며 전장을 누비던 소년 장군.

북방을 평정하고 이름을 떨쳤던 대정국의 마지막 변방 철벽.

그는 그렇게 아무 소리 없이, 타국의 차가운 진흙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아니야! 나를 해친 건 네가 아니야!”

부청사는 이미 식어가는 그의 몸을 세게 끌어안고 처절한 울음을 토해냈다.

십 년 전, 영왕 소형연의 간택 연회에서 태자비 부청사가 그와 사통했다는 추문이 조정을 뒤흔들었다.

그날 이후 부청사는 동궁의 시첩으로 강등되었고, 소형연은 변방 전장으로 떠나 남으로 북으로 싸우다 끝내 전사했다.

그러나 적국이 성을 포위하고, 부청사가 적진에 보내져 온갖 치욕을 당하던 때.

다시 나타난 사람은 소형연이었다.

그는 수만 군사 속에서 그녀를 구해냈다.

부청사의 얼굴 위로 피눈물이 빗물과 뒤섞여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다음 생이 있다면…

다음 생이 있다면, 나는 반드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모든 거짓 가면을 찢어발기리라.

다시는 너와 내가 오명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리게 두지 않으리라.

*

“태자비, 궁중을 음란하게 어지럽힌 죄를 네가 정녕 모르느냐!”

위엄 있고 싸늘한 노성이 벼락처럼 귓가에 내리꽂혔다.

부청사는 내리깔고 있던 눈을 들어 올렸다.

눈앞에 펼쳐진 것은 하늘을 뒤덮은 비바람이 아니었다.

장엄하고 엄숙한 선정전이었다.

사방에는 저마다 다른 낯빛을 한 종실과 황친들이 빼곡히 서 있었다.

걷잡을 수 없는 환희가 밀려들어 그녀의 온몸이 가늘게 떨렸다.

정녕 꿈이 아니었다.

어제 의식이 또렷이 돌아온 뒤부터 지금까지 불안하게 흔들리던 마음이, 마침내 제자리를 찾았다.

이날이었다.

그녀와 소형연의 추문이 터진 지 한 달 뒤, 종실이 궁으로 들이닥쳐 그녀를 심문하던 바로 그날.

손끝이 손바닥 안쪽을 깊숙이 파고들었다.

날카로운 통증이 치밀어 오르던 감정을 조금이나마 가라앉혀 주었다.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가슴속에서 거세게 일렁이는 모든 감정을 억지로 눌러 삼켰다.

한 달 전, 영왕 소형연의 간택 연회에서.

부청사는 맏형수의 신분으로 연회를 주관하던 중, 조모와 사촌 언니 부청월에게 약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수많은 눈앞에서 옷매무새가 흐트러진 채 소형연과 한방에 있는 모습이 발각되었다.

황제는 크게 노하여 그녀와 소형연의 죄를 물으려 했다.

그때 그녀의 지아비인 태자 소경신이 폭우 속에서 밤새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그 덕분에 황제는 겨우 노여움을 거두고, 그녀를 잠시 동궁에 가두는 것으로 물러섰다.

전생의 부청사는 소경신의 그 행동 때문에 그에게 더욱 깊이 마음을 바쳤다.

부모의 공훈까지 이용해 끊임없이 그의 황태자 자리를 굳혀 주었다.

그러나 그가 뒤에서는 이미 부청월과 은밀히 정을 통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청사야, 두려워하지 말거라.”

온화하면서도 굳건한 목소리가 위쪽에서 내려왔다.

부청사는 눈을 들어 위에 단정히 앉아 있는 황후를 바라보았다.

황후는 자애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 눈빛은 너무도 익숙했고, 또 너무도 아득했다.

전생, 사람을 잡아먹는 듯한 황궁 안에서 오직 황후만이 진심으로 그녀를 지켜 주었다.

그러나 그 비호는 끝내 황후가 황제와 태자에게서 마음이 멀어지게 만들었고, 황후는 울분 속에 생을 마감했다.

시큰한 감정이 순식간에 코끝으로 치밀었다.

부청사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 눈가에 맺힌 눈물을 감추었다.

“본궁이 있는 한, 누구도 너를 건드리지 못한다.”

황후의 말은 낮고도 또렷하게 대전 안에 울렸다.

이어 트집을 잡고 나선 종친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 눈빛은 횃불처럼 매서웠다.

“십사 년 전 행궁의 변이 일어났을 때, 청사의 부모가 목숨을 걸고 전 왕조의 잔당을 막아내지 않았다면, 오늘 이 대전에 선 그대들 중 몇이나 온전히 살아 돌아올 수 있었겠는가?”

“이제 공신의 딸이 모함을 당했거늘, 그대들은 진상을 밝히기는커녕 이 자리에서 몰아세우기만 하는구나. 대체 무슨 속셈이냐!”

조금 전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던 종정시경 소승정의 얼굴이 순식간에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의 처자식 또한 그해 부청사의 부모 덕분에 목숨을 건진 바 있었다.

무슨 속셈이냐고?

부청사의 입가에 희미한 냉소가 스쳤다.

그저 그녀의 태자비 자리 때문일 뿐이었다.

“황후마마, 노여움을 거두십시오.”

느릿하고 여유로운 목소리가 울렸다.

옥안 대장공주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

얼굴에는 은은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청사 부모의 은혜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다만…”

그녀는 말을 돌리며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청사가 정절을 잃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이는 황실의 체면이 걸린 일이 아니겠습니까.”

왔구나.

부청사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렸다.

옥안 대장공주는 마치 황실만을 위하는 사람처럼 태연히 말을 이었다.

“폐하, 황후마마. 제게 양쪽 모두를 살릴 방도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의 청사가 더는 태자비 자리에 머무르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니, 가문이 깨끗하고 덕성과 재주를 두루 갖춘 귀녀를 새 태자비로 세우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청사는…”

그녀는 자애로운 얼굴로 부청사를 바라보았다.

“옛 사람의 자격으로 동궁에 남아 새 태자비를 곁에서 보필하게 하면 됩니다. 그리하면 첫째로는 폐하와 마마의 자비로운 마음을 온전히 지킬 수 있고, 둘째로는 태자를 향한 청사의 정 또한 저버리지 않게 되지요. 청사야, 너는 이 방도가 어떠하냐?”

장내에서는 곧장 맞장구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일었다.

적지 않은 종친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옳다고 했다.

부청사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창백한 얼굴로, 그녀는 나직이 입을 열었다.

“대장공주께서는 참으로 두루 살피셨습니다. 이리 안배하자 하셨으니, 마음속에 이미 태자비 자리를 맡을 만한 사람이 있으신 모양입니다.”

옥안 대장공주의 얼굴에 걸려 있던 웃음이 그대로 굳었다.

그녀는 부청사가 질문을 자신에게 되돌릴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그녀가 말을 고르고 있을 때, 황제가 입을 열었다.

“오, 고모님께 마땅한 사람이 있으시다면 한번 말해 보시지요.”

옥안 대장공주는 낮게 웃었다.

“폐하께서 농을 하시는군요. 이 늙은 몸은 오래전부터 바깥 연회에 나가지 않았으니, 무슨 좋은 처자를 알겠습니까.”

부청사는 속으로 냉소했으나, 겉으로는 온화한 얼굴을 유지했다.

“대장공주께서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대장공주 댁의 명주 군주는 태자와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사이이지요. 제 생각에는 더없이 알맞아 보입니다. 대장공주께서는 어찌 생각하십니까.”

그 말이 떨어지자, 장내의 사람들은 모두 떠올렸다.

명주 군주는 어린 시절부터 태자 외에는 시집가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말하곤 했다.

그해 부청사가 부모의 공훈으로 태자와 혼인하라는 명을 받은 뒤에도, 명주 군주는 끊임없이 부청사에게 적잖은 말썽을 일으켰다.

끝내 황제와 황후의 노여움을 사서야 겨우 잠잠해졌었다.

이제 그 명주 군주는 이미 혼기가 훌쩍 지난 처자가 되었으나, 여전히 혼처를 정하지 못한 채 규방에 머무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옥안 대장공주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깊은 뜻이 어려 있었다.

부청사는 순식간에 굳어버린 대장공주의 표정을 바라보다가, 다시 황제와 황후를 향해 몸을 돌렸다.

옅은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그녀는 장내의 정적을 깨고 낮고 또렷하게 말했다.

“아바마마, 어마마마께 청하옵니다. 이 며느리가 스스로 태자비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청하오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그래.

회귀한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소경신과의 악연을 끊어내는 것이다.

계속 동궁에 남아 있다가는 손발이 묶일 뿐이었다.

소경신의 시야에서 벗어나야만 제 세력을 키우고, 그를 상대하며, 가족을 지킬 수 있었다.

대전 안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만큼 고요해졌다.

“허튼소리다. 너는 짐이 친히 봉한 태자비인데, 어찌 함부로 물러나겠다고 하느냐.”

황제는 대전 한가운데 선 부청사의 창백한 얼굴을 바라보다가, 치밀어 오르던 노여움이 조금은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불만이 있다면 곧장 말하면 될 일이다. 네 부모의 공훈을 보아서라도 짐은 너를 박대하지 않을 것이다.”

부청사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느끼며 말했다.

“며느리에게 불만은 없습니다. 다만 어제 조모께서 심복 어멈을 궁으로 보내 며느리를 타이르셨는데, 그때도 대장공주께서 하신 말씀과 같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황제가 입을 열기도 전에, 그녀는 계속 말했다.

“지금 이 청을 올리는 것 역시 며느리의 사사로운 마음에서 비롯된 일입니다. 황실의 체면을 지키고 싶고, 조모의 뜻을 이루어 드리고 싶으며, 가문에도 보답하고 싶습니다.”

말을 마친 그녀는 땅에 깊이 엎드려 절했다.

“아바마마께 청하옵니다. 며느리의 사촌 언니 부청월을 새 태자비로 세워 주십시오.”

부청월.

이번 생에는 내가 네 디딤돌이 되어 주지 않을 것이다.

네가 그 자리를 어찌 받아낼 수 있을지 두고 보겠다.

황제의 얼굴빛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이미 몰락한 부씨 가문에서 그해 태자비가 한 명 나온 것은 오로지 부청사 부모가 목숨을 바쳐 황실을 구한 공로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 또 한 명의 태자비를 내겠다고 하다니.

실로 허황된 망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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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쏭자
쏭자
언제 업데이트 되나요? 연중인가요?
2026-07-16 20:02:32
3
0
키티키티
키티키티
뒷얘기 넘 궁금해요 빠른 연재. 부탁드려요♡♡
2026-07-14 21:57:43
2
0
hsj
hsj
빠른 연재 부탁드려요 기다리고 있습니다!
2026-07-14 03:45:58
3
0
찌이인
찌이인
뒷얘기가 궁금하네요 빠른 연재 부탁합니다
2026-07-01 20:47:00
4
0
30 챕터
제1화
폭우가 쏟아지고, 천지에는 서늘한 살기가 내려앉았다.“소형연… 소형연… 눈 떠요! 죽으면 안 돼요!”부청사는 피와 진흙이 뒤섞인 웅덩이 속에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으로 소형연의 끔찍한 상처를 필사적으로 눌렀다.따뜻한 피가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와 그녀의 옷깃을 선홍빛으로 물들였다.“형수님, 죄송합니다. 제가 형수님을 이 지경까지 몰고 왔습니다…”소형연은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한때 밝고 거침없던 그 두 눈은 이제 초점 없이 흐려져 있었다.그는 손을 들어 올리려 했다.손끝이 희미하게 움찔했으나, 끝내 닿은 것은 그녀의 차갑게 식은 손등뿐이었다.“여기는 서초국 땅입니다. 제 형님께서 곧 오실 겁니다… 앞으로는 그분이 형수님의 앞일을…”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피로 얼룩진 손이 진흙탕 속으로 힘없이 떨어졌다.한때 비단옷을 입고 준마를 달리며 전장을 누비던 소년 장군.북방을 평정하고 이름을 떨쳤던 대정국의 마지막 변방 철벽.그는 그렇게 아무 소리 없이, 타국의 차가운 진흙 속에서 숨을 거두었다.“아니야! 나를 해친 건 네가 아니야!”부청사는 이미 식어가는 그의 몸을 세게 끌어안고 처절한 울음을 토해냈다.십 년 전, 영왕 소형연의 간택 연회에서 태자비 부청사가 그와 사통했다는 추문이 조정을 뒤흔들었다.그날 이후 부청사는 동궁의 시첩으로 강등되었고, 소형연은 변방 전장으로 떠나 남으로 북으로 싸우다 끝내 전사했다.그러나 적국이 성을 포위하고, 부청사가 적진에 보내져 온갖 치욕을 당하던 때.다시 나타난 사람은 소형연이었다.그는 수만 군사 속에서 그녀를 구해냈다.부청사의 얼굴 위로 피눈물이 빗물과 뒤섞여 끊임없이 흘러내렸다.다음 생이 있다면…다음 생이 있다면, 나는 반드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모든 거짓 가면을 찢어발기리라.다시는 너와 내가 오명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리게 두지 않으리라.*“태자비, 궁중을 음란하게 어지럽힌 죄를 네가 정녕 모르느냐!”위엄 있고 싸늘한 노성이 벼락처럼 귓가에 내리꽂혔다.부청사는 내리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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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황제는 살피듯 장내를 훑어보다가 황후에게 시선을 돌렸다.“태자는 어디 있소? 이토록 중대한 일을 아무도 알리지 않았단 말이오?”황후가 미간을 찌푸렸다.“이른 아침 사람을 보내 알렸습니다. 아마 정무에 발이 묶인 듯합니다.”황제는 단호하게 말했다.“즉시 태자를 불러오라!”위쪽에 앉은 황제와 황후를 바라보며, 부청사는 아무 표정도 짓지 않았다.다만 마음속으로 낮게 중얼거렸다.‘그는 오지 못할 것이다.’어제 그녀는 조모의 말을 전하러 온 어멈을 돌려보낸 뒤,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부청월이 간택 연회 전에 자신에게 주었던 향낭을 사람을 시켜 몰래 소경신에게 전하게 했다.역시 부청월과 관련된 일이라면, 그는 황제의 부름조차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전생에 소경신은 그녀가 부청월에게 자리를 내어 주겠다고 말한 뒤, 비통한 얼굴로 그녀를 품에 안았다.입으로는 줄곧 청사 네가 남아 있기만을 바란다, 네 뜻대로 하겠다고 말하며 끝까지 정이 깊은 사람인 양 연기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또 궁인이 그녀 아버지의 상소를 들고 왔다.부모의 공로를 내세워 부청월을 태자비로 삼아 달라는 상소였다.그리하여 부청월은 새 태자비가 되었다.모두 계략이었다.허나 이번 생에는 그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옥안 대장공주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으나, 곧 소매로 입가를 가리고 웃었다.“폐하께서는 소경신을 모르십니까? 그 아이는 본래 정을 중히 여깁니다. 분명 청사가 억울해하는 모습을 차마 보지 못해 피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굳이 그 아이를 난처하게 하실 필요가 있겠습니까. 차라리…”“태자비 자리는 나라의 중대사다. 태자가 어찌 그 자리에 없을 수 있단 말이냐?”황제는 싸늘하게 말을 끊었다.대장공주의 체면은 조금도 세워 주지 않았다.대전 한가운데에 무릎을 꿇은 채 더없이 낮은 자세를 취하고 있는 부청사와,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태자를 보자 황제의 가슴속에서 다시 노여움이 치밀어 올랐다.“가자! 동궁으로 갈 것이다. 짐이 직접 보아야겠다. 태자가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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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이 따귀에 부청사는 온몸의 힘을 다 실었다.전생과 이번 생에 쌓인 모든 원한과 굴욕까지 함께 담겨 있었다.부청월은 미처 피하지 못했다.그녀는 그대로 얼굴을 맞고 옆으로 쓰러졌고, 공들여 틀어 올린 머리도 완전히 흐트러졌다.머리에 꽂혀 있던 비녀와 구슬 장식이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그녀는 초라한 꼴로 바닥에 엎어졌고, 한쪽 뺨은 순식간에 붉게 부어올랐다.죽은 듯한 정적이 내려앉았다.모두가 넋을 잃었다.늘 온화하고 현숙하며, 단정하고 예를 아는 여인으로 이름 높던 태자비가 황제와 황후, 종친들 앞에서 이토록 체통을 잃은 행동을 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부청사! 네가 감히!”소경신은 충격이 가신 뒤 곧장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그는 아픈 듯 부청월을 다시 품에 끌어안고, 부청사를 잡아먹을 듯한 눈으로 노려보았다.“원망이 있으면 내게 풀어라! 월이를 괴롭히는 것이 무슨 잘난 짓이냐! 월이가 이 지경에 이른 것도 모두 너 때문이다!”부청월은 얼굴을 감싼 채 그대로 힘없이 소경신의 품에 쓰러졌다.눈물은 끊어진 구슬처럼 줄줄 흘러내렸고, 그 모습은 비에 젖은 배꽃처럼 가련했다.“저하… 동생을 탓하지 마십시오. 모두 제 잘못입니다. 동생이 저를 때려서라도 화가 풀린다면, 얼마든지 때리게 두십시오… 제가 동생에게 죄를 지었습니다…”말을 끝맺기도 전에 그녀는 가느다란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꼈다.가늘고 애처로운 울음소리에 소경신은 더욱 마음이 아팠다.그의 분노와 연민은 한층 더 거세졌고, 눈빛은 어둡게 가라앉았다.“월이를 보아라. 저 아이는 억울한 일을 당하고도 너를 위해 말하고 있다. 그런데 너는 어떠하냐? 꼭 저잣거리의 악다구니 쓰는 여인 같구나!”그 말에 부청사는 웃었다.이토록 원칙 없는 비호를 전생에 어디 한두 번 들었던가.사람들 앞에서는 온화하고 점잖으며, 신중하고 예를 지키던 태자였다.그러나 부청월과 관련된 일만 생기면 모든 예법과 규범, 군자의 품격 따위는 한순간에 헛소리가 되었다.한때 그녀는 소경신이 자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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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부청사는 눈을 내리깔았다.“며느리는 복이 박하여 이 같은 은전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더는 동궁의 안살림을 맡을 힘도 없습니다. 이제 바라는 것은 오직 본가로 돌아가 남은 생을 부모님 곁에서 모시는 것뿐이오니, 아바마마께서 부디 이루어 주십시오.”장내에 가벼운 술렁임이 일었다.종친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모두 그녀가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여겼다.폐하께서 이미 친히 입을 여시어 그녀의 권세와 영화가 변하지 않도록 해 주겠다고 하셨거늘, 무엇 하러 스스로 뒷길을 끊는단 말인가.태자에게 버림받은 여인이라는 이름을 안고 본가로 돌아간다면, 앞으로 누가 감히 그녀를 아내로 맞으려 하겠는가.소경신은 담담히 그녀를 한 번 흘겨보았다.그 말투에는 늘 그렇듯 거역을 허락하지 않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청사야, 아바마마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말거라. 이 일은 내가 네게 빚을 진 것이니, 앞으로 네가 얌전히만 지낸다면 나도 너를 박대하지 않을 것이다.”부청사가 눈을 들었다.그녀의 얼굴은 창백했고, 가느다란 몸은 희미하게 떨리고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조용히 소경신의 시선을 마주했다.전생에도 부청월이 그 자리에 오른 뒤, 그녀는 소경신의 이런 차가운 말에 억울해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다.그와 다투고, 울며 매달리기도 했다.이제 와 생각하니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 어찌 마음이 약해지겠는가.이제 두 사람 사이에 남은 것은 오직 증오뿐이었다.그가 무슨 말을 하든, 그녀에게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저마다 다른 속내를 품은 시선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부청사의 몸이 문득 휘청였다.가느다란 대나무처럼 그녀는 차가운 바닥 위로 힘없이 쓰러졌다.“청사야!”“어서! 태의를 불러라!”*태의는 허리를 굽혀 예를 올린 뒤, 급히 연상 앞으로 다가가 부청사의 맥을 짚었다.잠시 뒤 태의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아뢰었다.“황후마마, 태자비께서는 근심과 놀람이 지나쳐 오장이 막히고 기혈이 모두 쇠하였습니다.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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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두 사람이 서로 기대듯 나란히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부청사의 마음에는 더 이상 한 조각의 파문도 일지 않았다.전생에 처음 이런 광경을 보았을 때, 그녀의 마음은 쓰라림과 열등감으로 가득했다.소경신과 점점 멀어지는 것이 쓰라렸고, 스스로 정절을 잃었다 여겨 그에게 어울리지 못한다고 자책했다.그러면서도 눈물을 흘리며 매달렸다.조금이라도 남은 정을 붙잡아 보려 했다.훗날에야 알았다.그녀를 끝없는 나락으로 밀어 넣은 망나니들이 바로 저들이었다는 것을.그러나 그때는 이미 모든 것이 너무 늦었다.이제 다시 이 장면을 보니, 마음속에는 또렷한 냉정함과 뼈에 새겨진 원한만이 남았다.부청사는 패란의 부축을 받아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그리고 법도에 따라 소경신을 향해 무릎을 굽혀 예를 올렸다.“태자 저하를 뵙습니다.”“동생, 어찌 그리 예를 차리느냐.”부청월은 소경신 곁에 선 채 아주 자연스럽게 부청사의 예를 받아냈다.그러고는 그제야 빠르게 앞으로 다가왔다.“어서 일어나거라. 아직 몸도 허한데.”부청사는 아무 기색도 드러내지 않고 그녀의 손을 피했다.목소리는 담담했다.“예는 폐할 수 없습니다.”부청월은 부청사의 행동에 어찌할 바를 모르는 듯 가련한 얼굴로 소경신을 바라보았다.소경신이 미간을 찌푸렸다.“청월은 네 언니다. 그 아이가 말했으면 그대로 따르면 될 일이다.”부청사는 천천히 몸을 바로 세웠다.소경신의 차가운 시선을 마주하면서도 말투는 여전히 고요했다.“당연히 압니다. 제 사촌 언니이지요.”소경신은 무언가를 떠올린 듯 얼굴이 순간 굳었다.그 눈빛에 난처한 기색이 스쳤다.그러나 부청사는 이미 그를 보지 않았다.그녀는 부청월을 향해 시선을 돌리고 담담히 입을 열었다.“사촌 언니 역시 궁중 어멈에게 가르침을 받은 사람입니다. 무엇이 존귀하고 비천한 것인지, 무엇이 제 본분인지 당연히 아실 터입니다. 그렇지요?”부청월의 웃음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오히려 더없이 부드럽고 온순한 빛을 더했다.그녀는 다시 앞으로 다가와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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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부청월은 부청사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서둘러 입을 열었다.“동생, 언짢게 여기지 말거라. 한 달 전 네게 일이 생긴 뒤, 저하께서 마음을 놓지 못하셔서 나를 동궁에 머물게 하셨고, 이 두 시녀도 내게 보내 시중을 들게 하셨다.”“이제 언니가 네게 돌려보내는 것이다.”줄곧 속으로 분을 삭이고 걱정하던 패란은 멀쩡한 모습의 두 사람을 보자마자 이미 모든 것을 알아차렸다.화가 치밀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부청사의 눈빛은 차가웠다.그녀는 부청월의 온몸을 감싼 화려한 차림을 한 번 훑고 입을 열었다.“괜찮습니다. 사촌 언니께서 곁에 두고 싶으시다면 그대로 두셔도 됩니다.”부청월은 얼굴 가득 순진한 표정을 지었다.“동생, 또 화가 난 것이냐?”소경신은 부청월이 동궁에 오래 머무르는 것이 법도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부청사가 계속 총애를 믿고 투정을 부린다고 여기자, 마음속 짜증이 다시 치밀어 올랐다.그는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청사야, 더는 억지를 부리지 말거라.”부청사는 담담히 부청월을 바라보았다.“화난 것이 아닙니다. 사촌 언니께서는 괜한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태기가 흔들리면 저하께서 또 마음을 졸이실 테니까요.”“저하께서는 어서 사촌 언니를 데려다주십시오. 저는 배웅하지 않겠습니다.”부청사의 말을 듣자, 소경신의 답답하던 마음은 다시 조금 누그러졌다.방금 그녀가 또 화를 낸 것도 아마 아이 때문일 것이다.아이를 낳지 못하게 한 것은, 확실히 그녀에게 억울한 일이었다.비록 그녀가 정절을 잃은 것이 사실이라 해도, 낮에 외숙부가 찾아와 그를 꾸짖기도 했다.청사는 그의 아내인데, 일이 생긴 뒤 그는 달래고 보살피기는커녕 부청월과 얽혀 지냈고, 사생아까지 두었다.남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었다.게다가 외숙부가 조사해 온 증거를 보면, 청사가 일을 당한 데에는 그의 황태자 자리를 노리는 아우들이 손을 쓴 것이 분명했다.결국 그녀도 그에게 휘말린 셈이었다.거기에 오늘 아바마마께서 넌지시 드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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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부청월은 창백한 작은 얼굴을 들었다.눈물은 끊어진 진주처럼 흘러내렸다.“저하… 월이는 이만 본가로 돌아가겠습니다. 더는 동생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소매는 바닥을 스치고, 뒷모습은 바람 속의 가는 버들가지 같았다.소경신은 단번에 그녀를 다시 품 안으로 끌어당겼다.손바닥으로 가늘게 떨리는 그녀의 등을 감싸고, 낮고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월아, 내 동궁은 곧 네 집이기도 하다. 네가 어찌 억울하게 떠나야 한단 말이냐.”그는 눈을 들어 숨죽인 내관들을 차갑게 훑어보았다.“귀가 먹었느냐. 태자비의 분부를 듣지 못했느냐?”내관들은 온몸을 떨었다.더는 감히 머뭇거리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 힘없이 주저앉은 지설과 아운을 끌어냈다.부청월 곁을 지나칠 때, 지설이 갑자기 몸부림치며 그녀의 옷자락을 붙잡았다.목이 찢어질 듯 애원했다.“큰아씨, 살려 주십시오. 제발 저를 살려 주십시오.”부청월은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떴다.그녀는 그대로 소경신의 가슴팍에 얼굴을 파묻고, 발을 동동 굴렀다.“저리 가거라! 너를 죽이려는 것은 동생이니, 살려 달라 빌려면 그 아이에게 빌어야지!”소경신의 얼굴은 차분했다.아운과 지설이 부청월의 사람이라는 것쯤은 그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지난 몇 해 동안 그녀들은 그와 월이 사이에서 몰래 소식을 전하고, 행적을 감추는 일을 적지 않게 해 왔다.허나 그래서 어쨌단 말인가.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면 버려지는 것도 당연했다.그는 내관들을 노려보며 꾸짖었다.“아직도 끌고 나가지 않고 무엇 하느냐.”“안 됩니다! 큰아씨, 저는 모두 큰아씨 말씀을 듣고…”지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내관이 재빨리 그녀의 입을 틀어막고 밖으로 끌고 나갔다.“저하, 월이는 그런 적 없습니다…”부청월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가련하고 애처로운 모습은 어느 쪽에서 보아도 사람의 마음을 흔들었다.소경신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고개를 숙여 손끝으로 그녀의 눈가에 맺힌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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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다음 날 새벽.“태자비 마마, 마차가 준비되었습니다.”부청사는 동경 앞에 서 있었다.목덜미를 타고 이어진 상처가 유난히 선명했다.한 달 전 간택 연회에서 깨어난 뒤, 절망 속에서 소경신이 준 금비녀로 스스로 찔러 낸 흔적이었다.상처를 바라보던 부청사는 잠시 눈을 감았다.다시 눈을 떴을 때, 그 안에는 고요함만이 남아 있었다.다시 한 번 삶을 얻은 지금, 그녀는 이미 깨달았다.정절이란 그녀에게 허울뿐인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제대로 살아남아 가족 곁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했다.그녀는 살구빛 치마저고리를 집어 들어 몸에 걸쳤다.옷깃이 마침 목의 상처를 가려 주었다.다시 동경을 바라보았다.검은 머리는 단정히 틀어 올렸고, 머리에는 온윤한 흰 옥비녀 하나만 꽂혀 있었다.그 때문에 그녀의 맑고 고운 자태는 한층 더 담백하고 먼지 한 점 묻지 않은 듯 보였다.문득 동경 속의 사람은 여전히 법도를 따르고, 현숙한 이름으로 알려져 있던 그 태자비처럼 보였다.그러나 그녀 자신만은 알고 있었다.규율과 예법을 뼛속까지 새기고, 정절을 잃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먼지보다 낮게 낮추었던 부청사는 이미 전생의 차가운 진흙탕 속에서 죽었다.*초겨울이 이미 깊어졌다.찬바람이 살을 스치고, 허공에는 가는 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부청사는 몸에 걸친 자색 담비 털 망토를 여미고, 명미를 데리고 황후가 머무는 영안궁으로 향했다.길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치맛자락이 눈송이를 스치자, 흩어진 눈발이 따라 날렸다.매원을 지날 때, 어디선가 궁녀들의 말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들었어? 오늘 새벽도 되기 전에 태자 저하께서 직접 그 여인을 부중까지 데려다주셨대.”“쯧, 요망한 여우 같은 것. 이 한 달 동안 밤마다 태자 저하를 붙들고 있었다지 뭐야. 태자 저하께서 입단속을 명하지 않으셨다면 벌써 폐하의 귀에 들어갔을걸.”“쉿. 탓하려면 태자비를 탓해야지. 그렇게 좋은 지아비 하나 붙잡지도 못하고, 감히 영왕 전하까지 유혹하다니.”“퉤. 내가 보기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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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황후는 부청사의 등을 가만히 토닥이며 부드럽게 달랬다.“착한 아이야, 네가 그동안 얼마나 억울했는지 내가 다 안다.”“태자가 어리석어 너를 저버렸다. 앞으로는 내가 있으니 반드시 너를 지켜 주마.”말이 끝나자 황후의 눈밑으로 깊은 후회가 스쳤다.십사 년 전 행궁의 변 이후, 소경신은 크게 놀라 밤낮으로 불안과 악몽에 시달렸다.그녀는 아이가 가여워 폐하께서 소경신을 외조부에게 맡겨 가르치게 하자는 뜻을 받아들였다.어찌 알았겠는가.그 아이가 자랄수록 첩을 총애하고 정실을 홀대한, 박정하고 냉정한 외조부를 닮아 갈 줄을.부청사는 황후의 품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비단 수건으로 눈물 자국을 닦아 냈다.눈가는 여전히 붉었으나, 눈빛은 이미 맑고 차분해져 있었다.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쉬어 있었다.“어마마마, 앞으로는 제가 제 몸을 잘 지키겠습니다. 부디 저 때문에 폐하와 마음이 멀어지지 마십시오. 괜히 슬픔만 더하시고 옥체를 상하게 하셔서는 아니 됩니다.”전생에 황후가 울분 속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 그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아픔을 그녀는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이번 생에는 결코 그 일이 되풀이되게 두지 않을 것이다.황후는 오래도록 부청사를 바라보았다.그 눈에는 차마 어찌하지 못하는 연민이 가득했다.끝내 그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청사야, 내게 말해 보거라. 앞으로 어찌할 생각이냐?”“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 나는 언제나 네 편이다.”“십사 년 전 행궁의 변으로 네 부모는 온몸에 병을 안게 되었다. 내가 너를 궁으로 데려온 뒤, 이 세월 동안 너는 내 친딸이나 다름없었다.”부청사는 황후의 너그럽고도 굳건한 눈빛을 바라보았다.코끝이 다시 시큰해졌다.그러나 자신의 진짜 계획을 황후에게 말할 수 없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에는 깊은 미안함이 일었다.그녀는 그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어마마마의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다만 앞으로의 일은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우선 본가로 돌아가 부모님을 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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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부청사는 천천히 눈을 들었다.그녀의 눈동자에는 설광이 비쳐, 마치 얼어붙은 물결처럼 차갑게 일렁이고 있었다.가느다란 눈발이 그녀의 어깨 위로 내려앉았고, 자색 담비 털 망토에는 희고 맑은 빛이 점점이 스며 있었다.그녀의 목소리는 서늘했다.“태자 저하, 그 말씀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소경신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졌다.“어제 네가 그토록 몰아붙인 탓에 청월이 상심하여 태기가 흔들렸다. 게다가 한밤중에 어마마마까지 놀라게 하여 월이를 궁 밖으로 내보내라 하시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네 탓이 아니란 말이냐?”말을 마친 뒤, 그의 어조는 조금 누그러졌다.“허나 네가 이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이미 뉘우칠 줄은 아는 모양이다. 월이에게 가서 사과하여라. 그러면 이 일은 덮어 두겠다.”부청사는 조용히 그를 바라보았다.문득 아주 옅게 웃었다.그러나 그 웃음은 눈밑까지 닿지 않았다.오히려 차가운 조롱만이 배어 있었다.부청사가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말했다.“부청월은 염치를 모르고 제부와 사통했으며, 제 혼수를 훔쳤습니다. 그 일마다 사람의 증언과 물증이 모두 있습니다. 감히 묻겠습니다, 저하.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소경신은 그녀의 말에 찔린 듯 얼굴빛이 파랗게 굳었다.이내 그는 비웃듯 말했다.“잘못이 없다면, 지금 이곳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부청사는 더는 그를 보지 않았다.그녀는 곁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궁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목소리는 평온했다.“번거롭겠지만 안 어멈께 전해 주게. 내가 오래 기다리기 어려워 먼저 떠난다고.”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려 곧장 걸어갔다.“부청사!”소경신이 날카롭게 소리쳐 그녀를 멈춰 세웠다.통제할 수 없다는 느낌과 함께 마음속 짜증이 거세게 치밀어 올랐다.“규방 여인들이 질투나 부릴 때 쓰는 잔꾀도 정도껏 해야 한다! 네가 계속 이리 분수를 모르고 나선다면, 내가 무정하다 탓하지 말거라!”부청사의 발걸음이 멎었다.그러나 그녀는 돌아보지 않았다.오직 차갑고 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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