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한때 더없이 존귀했던 태자비 부청사는 변방의 진창길 위에서 숨을 거두었다. 죽음을 앞둔 그제야 그녀는 깨달았다. 시동생과 형수의 사통이라느니, 황실의 오점이라느니 했던 모든 말이 처음부터 지극히 가까운 이들이 그녀를 위해 정성껏 짜 놓은 죽음의 덫이었다는 것을. 그녀는 한때 자신과 금슬이 좋다고 믿었던 태자 부군 소경신이 그 모든 일을 묵인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저 자신이 그의 앞길을 막았고, 사촌 언니 부청월의 앞길마저 막았기 때문이었다. 전생의 부청사는 어리석기 그지없었다. 제 발로 그 판 안에 뛰어들어 스스로 첩이 되었고, 원수들의 찬란한 앞날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그녀가 얻은 것은 부모와 남동생의 참혹한 죽음, 어린 자식들의 요절, 그리고 적진에 넘겨져 온갖 짓밟힘과 모욕을 당하는 처지뿐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부청사는 회귀해 있었다. 그녀는 추문이 터진 뒤, 자신의 일생을 갈라놓을 국문이 열리던 대전으로 돌아와 있었다. 이번 생에서 그녀는 다시는 전생의 그 막다른 길을 걷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태자와 부청월의 사통을 낱낱이 밝혔고, 다섯 차례나 어명으로 이혼을 허락해 달라 청하며 제 손으로 그 악연을 끊어냈다. 그 뒤 그녀는 옥사에 숨어들어 그 추문의 또 다른 주인공인 영왕 소형연과 손을 잡았다. 부청사는 아랫배를 가만히 어루만지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평온한 목소리로 말했다. “왕야, 제 배 속 아이들은 이미 한 달이 되었사옵니다. 저를 아내로 맞으십시오. 그러면 제가 왕야를 구해 드리겠습니다. 어떠하십니까?” 그날부터 폐위된 태자비와 후사를 볼 수 없다고 알려진 영왕은 온 도성의 조롱 속에서, 세상 사람들이 모두 죽음으로 향한다고 여긴 유배길에 함께 올랐다. 그러나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 죽음의 길이 그들의 손에서 살아날 길로 바뀌게 될 줄은. 여러 해가 지난 뒤, 황량하던 변방은 풍요로운 땅이 되었다. 두 사람은 세상에 둘도 없는 공훈과 철기를 이끌고 당당히 돌아왔고, 산하는 주인을 바꾸었으며, 백관은 머리를 조아렸다. 한때 높디높은 자리에 있던 폐태자는 땅바닥에 짓눌려 무릎을 꿇은 채, 그녀를 바라보며 미친 듯 울부짖었다. 다시 한 번만 기회를 달라고, 처절하게 애원했다. 그러나 새 황제는 그저 부드럽게 부청사의 두 눈을 가려 주었다. 그리고 그녀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 “그자를 보지 말거라.” “청사야. 너의 이번 생도, 다음 생도, 그 모든 생도 이미 내 것이다.”
더 보기부청사의 마음속에서 팽팽히 당겨져 있던 줄이 마침내 조금 느슨해졌다.소형연의 힘을 얻어야만, 그녀는 이 두 아이를 무사히 낳을 수 있었다.그렇지 않다면 지금 그녀의 처지로 보아, 아이들은 태어나지 못하거나, 전생처럼 다시 소경신이 소형연을 협박하는 볼모가 될 터였다.“시간이 거의 다 되었습니다.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몇 걸음 내딛던 순간, 다시 걸음을 멈추었다.그녀가 고개를 돌렸다.“소형연, 왕야께서 본래 공명정대하여 음모와 술수를 하찮게 여기신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아셔야 합니다. 왕야께서 지금 몸담고 계신 곳은 사람 마음이 가장 음험하고 변화무쌍한 황실입니다.”그녀는 소형연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때로는 우는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법입니다. 적당히 폐하께 약한 모습을 보이는 편이, 길을 더 수월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부청사는 더 말하지 않았다.나무문을 밀고 밖으로 나갔다.올 때에는 마음이 팽팽히 조여 다른 것을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돌아가는 길에 이르러서야, 부청사는 비로소 이 조옥의 모습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감방마다 갇혀 있는 이들은 대부분 중죄인과 그 가솔이었다.그들 대다수는 이미 무감각해진 채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부청사가 지나가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눈빛은 텅 비어 있었다.다른 모퉁이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문득 걸음을 멈췄다.그곳에는 보통 감방보다 세 배 가까이 큰 옥방이 있었다.안에 갇힌 이들은 한 대가족처럼 보였다.조부모부터 손자까지 삼대가 함께 있는 듯했다.더욱 뜻밖인 것은, 그 감방이 유난히 정갈하다는 점이었다.갇힌 이들은 모두 수의를 입고 있었으나, 옷차림은 깨끗하고 단정했다.감방 안에는 솥과 그릇, 바가지까지 갖출 것은 다 갖추어져 있었다.한쪽 구석에는 두툼한 솜이불도 깔려 있었다.남은 흔적으로 보아, 그들은 이곳에서 이미 오래 머문 듯했다.부청사가 시선을 훑고 지나칠 때쯤, 백발의 노인 한 명이 마침 고개를 들어 그
감방 안은 뼛속까지 파고드는 듯한 추위였다.두 사람 사이에 머문 흰 입김은 잠시 떠 있다가 천천히 흩어졌다.부청사는 소형연을 바라보았다.그녀의 목소리는 얼어붙은 공기 속에서 유난히 또렷하게 울렸다.“왕야께서는 하루빨리 이곳을 벗어날 방도를 찾으셔야 합니다.”소형연은 잠시 멍해졌다가 곧 말했다.“형수님, 염려하지 마십시오. 그날 간택 연회에서 저는 누군가의 계략에 빠진 것입니다. 아바마마와 형님께서 반드시 진상을 밝혀, 우리 두 사람의 결백을 돌려주실 것입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눈빛 속의 죄책감이 더욱 짙어졌다.“이 일은 결국 제가 형수님을 연루시킨 것입니다. 제가 옥에서 나간 뒤 반드시 형님께 사정을 아뢰어, 이 일로 형수님께 노여움을 돌리지 마시라 청하겠습니다. 형수님께서 저를 어찌 처분하시든, 저는 모두…”“소형연.”부청사가 그의 말을 끊었다.목소리에는 한 줄기 서늘한 기운이 어려 있었다.그녀는 눈앞의 사람을 바라보다가 문득 깨달았다.소형연은 사실 아직 약관에도 이르지 못한 아이였다.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절로 약해질 뻔했다.그러나 전생에 그가 아버지와 형님께 철저히 이용만 당했던 기억 때문인지, 부청사의 마음은 다시 단단해졌다.아직도 자신의 아버지와 형님을 이토록 믿고 있는 그를 보며, 부청사는 입가를 끌어올렸다.차가운 웃음이 흘러나왔다.소형연은 그 웃음에 얼어붙은 듯 멈추었다.그의 기억 속에서 이 형수님은 언제나 단정하고 조용한 사람이었다.언제 이런 식으로 감정을 드러낸 적이 있었던가.“형수님께서 저를 원망하신다면, 저는…”그가 다급히 입을 열었다.“저는 왕야를 원망하지 않습니다.”부청사가 다시 그의 말을 끊었다.목소리는 평온했다.“제가 왕야를 찾아온 것도 사죄를 들으려는 것이 아닙니다.”그녀는 손을 들어 가만히 아랫배 위에 얹었다.그 움직임에 소형연의 시선이 저도 모르게 따라갔다.“이 안에.”그녀가 한 글자 한 글자 또렷하게 말했다.“아이가 둘 있습니다.”소형연의 몸이 그대로
마차가 쌓인 눈을 밟으며 지나갈 때마다 고요한 거리에는 낮고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부청사는 마차 안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한기가 끊임없이 스며들었다.그녀는 옷깃을 여미고, 품 안의 손난로를 손끝으로 가만히 문질렀다.곧 만나게 될 그 사람을 떠올리자, 이유 없이 가슴이 한 번 조여 왔다.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따뜻해진 손을 조심스레 아랫배에 가져다 댔다.그녀의 아이들.그녀는 알고 있었다.그 아이들이 태어나면 수많은 사람의 차가운 눈길과 비난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그러나 전생에 모든 치욕의 나날을 버티게 해 준 것은 바로 그 두 아이였다.또한 그녀의 어리석음과 나약함 때문에, 끝내 처참히 죽고 말았다.이번 생에도 그녀는 여전히 그 아이들이 이 세상에 오기를 바라고 있었다.이번에는 반드시 지켜 줄 것이다.그 아이들이 평안하고 즐겁게 한 생을 살아가도록.“똑, 똑.”마차 벽에서 가벼운 소리가 났다.명미가 밖에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태자비 마마, 조옥에 도착했습니다.”조옥의 뒷문은 깊은 골목 끝에 숨어 있었다.옥졸은 이미 어둠 속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마차가 멈추자, 그는 황급히 앞으로 다가와 말없이 조옥의 대문을 밀어 열었다.피비린내와 곰팡내, 썩은 냄새가 뒤섞인 기운이 정면으로 밀려왔다.부청사는 망토의 두건을 낮게 끌어내렸다.그리고 명미의 뒤를 따라 어두운 통로를 빠르게 지나갔다.양쪽 감방에서는 억눌린 신음소리와 쇠사슬이 끌리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끝까지 걸어간 뒤, 더 은밀한 좁은 길로 꺾어 들어갔다.옥졸은 나무문 하나 앞에서 멈추었다.“귀인, 영왕 전하께서는 안에 계십니다.”옥졸이 조심스레 말했다.“시간이 늦었습니다. 어서 들어가십시오. 오래 지체하시면 안 됩니다. 날이 밝기 전에는 반드시 나오셔야 합니다.”명미가 은자 주머니 하나를 그의 손에 쥐여 주었다.그녀는 손짓으로 그를 물러가게 한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태자비 마마께서는 들어가십시오. 소인이 이곳을 지키겠습니다.”부청사는 고개를
소경신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그는 두려움에 떨며 말했다.“아바마마, 노여움을 거두어 주십시오.”“월이는 그해 행궁에서 소자의 목숨을 구한 은혜가 있습니다. 그 뒤 오군에서 여러 해를 보내는 동안에도 끝까지 소자 곁을 지켰습니다. 소자는 차마 그녀를 억울하게 할 수 없습니다. 부디 아바마마께서 은혜를 베푸시어 월이를 용서해 주십시오.”황제는 자신이 큰 기대를 걸었던 적장자가 이 지경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부청월을 위해 간청하는 모습에 실망했다.그 눈에는 실망과 피로가 가득했다.“또 하나. 그해 네가 행궁에서 변을 당한 일을 부청월도 모두 알고 있었단 말이냐? 그 일을 어찌하여 짐에게 말하지 않았느냐?”황제의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소경신, 네가 스스로 얼마나 큰 화근을 남겼는지 알고는 있느냐?”소경신의 등이 굳어졌다.빛 한 줄기 들지 않던 감금.차갑던 형구.끔찍한 기억이 순식간에 가슴속으로 밀려들었다.소경신의 얼굴에 한순간 굴욕의 빛이 스쳤다.그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마음속 고통과 악의를 억지로 눌러 삼킨 뒤 어렵게 입을 열었다.“아바마마, 그해 월이는 우연히 소자가 갇혀 있던 동굴을 발견했고, 뜻하지 않게 소자를 구했습니다. 아바마마께서 그녀가 그해 일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아셨다면, 월이는 분명 목숨을 보전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소자는 차마 그리할 수 없었습니다.”“또한 이 여러 해 동안 월이가 곁에 있지 않았다면, 소자는 아마 오래전에 무너졌을 것이고, 살아 돌아와 아바마마를 뵐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그는 고개를 들었다.눈빛에는 애원이 어려 있었다.“부디 아바마마께서 그녀를 해치지 말아 주십시오.”황제는 오랫동안 말없이 있었다.그해 소경신이 구출되었을 때의 참혹한 몰골을 떠올리자, 가슴 한구석이 아파 왔다.끝내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되었다. 네가 기어이 그녀를 동궁에 두겠다 하니, 그렇다면 앞으로 청사는 어찌할 생각이냐.”소경신이 급히 말했다.“아바마마께 아룁니다. 청사와 아홉째 아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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