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Chapter 741 - Chapter 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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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1화

게다가 송지혜 명의로 된 실험실은 소방 점검 불합격으로 인해 시정서까지 받았다.물론 지금까지 아직 시정을 통과하지 못했다.그러니 그동안 그 어떤 학술적 산출도 없었다.이 때문에 정례 회의에서, 송지혜 팀은 그 어느 때보다 조용했다.진호는 예전에 남을 비웃으며 언제든지 일어서서 사람을 물어뜯을 수 있는 들개와 같았지만, 지금은 여느 때보다 더 조용했다.서정의 안색도 좋지 않았다.실험실이 정돈되었기에 그녀가 전에 힘들게 송지혜에게서 쟁취한 과제도 물거품이 되었다.송지혜에게 다른 과제를 안배해달라고 했지만 오히려 엄청난 욕을 먹었다.“과제! 그놈의 과제! 나도 과제를 원한다고! 지금 실험실은 시정서를 받았으니 아무런 과제도 진행할 수 없잖아.”“그러니 내가 어떻게 과제를 얻어오겠어?! 게다가, 설령 나한테 과제가 있다 하더라도, 넌 그 진도를 따라갈 수 있다고 확신하니? 실질적인 성과를 낼 수 있냐고?”“그럴 능력이 없으면 과제를 넘볼 생각하지 마. 사람은 자기 주제를 잘 알아야 해! 모든 대학원생이 학술을 하기에 적합한 것도 아니고.”“모든 사람이 성과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정말 자신이 학술 천재라고 생각하는 거야? 넌 네가 소정은보다 더 잘난 거야?!”끊임없이 쏟아지는 욕설, 송지혜는 서정의 얼굴에 침까지 튀겼다.다행히 서정은 빨리 피했고,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교수님, 애초에 저에게 사비로 기계를 사라고 했을 때 이렇게 말씀하지 않으셨잖아요. 이것만 똑똑히 아셨으면 좋겠어요. 과제팀에 들어가는 이 일, 저는 교수님에게 부탁하는 것도, 상의하는 것도 아니에요. 이건 완전한 거래라고요.”“저는 돈을 내고, 교수님은 그 보답으로 저에게 과제를 주시는 거죠. 이건 우리 서로가 윈윈하는 거래잖아요. 지금 저는 돈을 냈지만 교수님은 오히려 약속을 어기셨죠. 장사를 이렇게 하시면 안 되죠.”서정은 더 이상 송지혜란 사람을 존중하지 않았다.그녀는 권세나 재물에 눈이 멀고 돈이나 탐내며 속이 좁은 학술 깡패로서, 학생들이 존경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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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2화

송지혜가 말했다. “가서 말해 봐. 내가 처분을 받으면, 너도 졸업할 수가 없을 거야!”“누가 못 갈 줄 알아요?”“강서정, 너 뭔가 잊은 것 같은데. 그때 넌 어떻게 대학원 시험에 합격했더라?”그녀는 발걸음을 멈추었다.송지혜는 가볍게 웃었다.“너 원래 시험에서 떨어졌잖아. 만약 내가 널 봐주지 않았다면, 넌 네가 오늘 여기에 서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그래, 가서 고발해. 나도 널 막지 않을게. 죽으면 같이 죽자고. 내가 학교에서 해임을 당하면, 부정한 수단과 뇌물을 주고 들어온 학생들도 같이 쫓겨나겠지.”서정은 화가 나서 온몸을 떨었다.“정말 악독한 분이시군요!”“악독해?” 송지혜는 피식 웃었다. “너도 마찬가지야.”과제 가산점이 없으니 서정의 기말 성적은 정말 비참했다.세 과목이 F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기타 전공 과목도 대부분 C를 받았다.이 성적은 남의 웃음거리로 될 게 뻔했다.‘신진호 저 앞잡이조차도 나보다 시험을 잘 봤잖아!’매번 서영숙이 기말 성적을 물어볼 때마다 서정은 우물쭈물 했고, 정말 숨길 수 없게 되자 사실대로 말했다.서영숙은 학력뿐만 아니라 성적까지 무척 중시했다.그녀의 딸은 이미 서비대학교에 합격했으니 이미 매우 우수했다. 그러니 시험 따위도 다 잘 볼 것이라 생각했다.그러나...“날 죽일 작정인 거야?!”서정은 매우 당황하여 아무 핑계를 댔다.“이번 기말 시험 정말 어려웠단 말이에요! 시험을 잘 보지 못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나만 낮은 점수를 받은 게 아니라고요.”“소정은은?”서정은 말문이 막혔다.“말해!”“전부 A 받았어요.”서영숙은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지예도 요즘 일이 잘 안 풀렸다.송지혜가 너무 까다로웠던 것이다.그녀 앞에서 이미 가능한 한 조심스럽게 움직였지만, 그래도 욕을 먹어야 했다.욕을 먹어도 울지 못했다.친이모였지만 지예는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다.게다가 학술 성적까지 없어졌다.실험실이 정돈되었기에 지예도 진일의 논문을 자신의 이름으로 제출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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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3화

심지어 경혜는 기말 시험에서 C점밖에 받지 못했고, 몇 과목은 겨우 합격을 했는데도 그리 당황하지 않았다.뜻이 여기에 있지 않았으니, 자신을 그렇게 힘들게 할 필요가 있겠는가?‘여자가 그렇게 많은 책을 읽고 명문대에 붙은 것도 다 좋은 남자에게 시집가서 남은 인생 부족함 없이 보내기 위해서 그런 거 아니야?’이때 경혜는 지예와 ㄴ 사이에 앉아 표정이 평온하고 하나도 조급해하지 않았으며 마치 구경꾼처럼 침착했다.지예는 경혜가 돈 많은 남자친구를 사귀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학업에 전혀 개의치 않고 오로지 명문 집안에 시집가고 싶은 거겠지.’지예는 부자에게 빌붙어 남자에게 의지하는 이런 여자를 상대하기 싫었다.그러나 진일도 경혜처럼 침착한 것을 보자, 그녀는 정말 놀랐다.실험실이 시정 통지를 받았으니, 송지혜 외에 가장 초조해야 할 사람이 바로 진일이었다.몇 가지 중요한 과제, 그중 몇 개는 심지어 J시 중시를 받은 과제였는데, 모두 진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계속 이렇게 미루면 내년에 성과조차 낼 수 없었다.그런데 진일이 당황하지 않다니?전에 지예는 그를 떠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지만, 상대방은 전혀 말을 받지 않았다.심지어 어쩔 수 없이 학교에 남아 있는 동안, 진일은 할 일이 없어 학교 밖의 연구기관으로 달려가 아르바이트를 했고, 매일 아침 일찍 나가서 저녁 늦게 돌아왔는데, 전혀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다.지예는 진일이 밖에서 돈을 벌고 있는 일을 송지혜에게 알려주었는데, 송지혜는 그저 이 말밖에 하지 않았다.“궁상맞긴.”그리고 그냥 내버려뒀다.“네?”...“형.”재운은 진일을 잡아당겼다.“실험실은 언제 다시 갈 수 있는 거예요?”“몰라.”“그런데 조금도 서두르지 않은 것 같은데.”“서두르면 문제가 해결되는 거야?”재운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저었다.“소용없죠.”“그럼 뭘 서둘러?”재운은 잠시 침묵했다.“형, 저 질문이 하나 있어요. 전부터 물어보고 싶었어요.”“말해.”“전에 정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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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4화

전국 대학생 생명과학 경진대회는 해마다 한 차례씩 개최되었다.3년 전에 정식으로 국가 최고급 대학교 경진대회 평가와 관리체계 연구팀이 발표한 에 선정되어, 교육부가 새로 인정한 전국 대학생 학과 경진대회로 되었다.생명과학 분야에서 인지도가 가장 높은 국가급 대학생 학과 경진대회이기도 하다.과학탐구와 혁신창작 두 카테고리로 나뉘어 동시에 코너별로 진행된다.학생들의 창작 능력과 실험 연구 과정을 고찰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의심할 여지 없이 정은 이쪽은 틀림없이 참가할 것이다.이 소식을 듣자마자 민지와 서준은 이미 흥분해서 손을 비비기 시작했다.다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기말 가산점 이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필경 모든 사람들이 다 정은처럼 8개 전공 과목에서 모두 만점을 받은 것은 아니니까.이번 기말고사에서 민지는 B를 받았지만, 학술 성과와 발표한 논문이 있었기에 가산점을 신청했는데, 최종적으로 A를 받았다.서준도 가산점을 포함해서 A를 받았다.두 사람은 가산점의 덕을 봤으니, 지금 이렇게 좋은 기회를 또 어떻게 놓칠 수 있겠는가?하지만 정은은 달랐다.그녀는 도전하고 싶었고, 가산점에 별다른 욕심이 없었다.민지와 서준은 눈을 마주쳤다.‘정말 큰 타격이야.’‘내가 천박한 생각을 한 건가?’그들은 해보고 싶었고, 송지혜 팀도 마찬가지로 흥분했다.서정은 두 눈에서 빛이 났다. 그리고 지예도 한숨 돌렸다.비록 잠시 논문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만약 전국적인 대회에서 상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도 그녀가 천재란 것을 증명하기에 충분했다.정례 회의가 끝난 후, 사람들이 잇달아 퇴장했다.삼삼오오 짝을 지어 가면서 토론하는 화제 역시 기본적으로 이번 경기와 관련이 있었다.이튿날, 정은, 민지와 서준은 3인조로 정식으로 신청서를 제출했다.등록할 때, 송지혜 팀의 자료를 무심코 보았다.정은은 진일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하지만 프로젝트 책임자는 서지예라고 적혀 있었다.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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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5화

“전 논문을 발표한 적도, 무슨 특별한 성과를 낸 적도 없지만, 서지예 명의로 된 그 성과들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교수님 정말 모르시는 거예요?”송지혜는 서정의 눈빛을 피했다.“그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아, 설마 잊으신 거예요? 강씨 가문의 아가씨로서, 전 돈과 인맥이 아주 든든하거든요. 푼돈을 들여 서지예를 조사하는 것은 정말 식은 죽 먹기죠. 그리고 제가 무엇을 알아냈는지 아세요?”송지혜는 흠칫 놀랐다.“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공교로운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교수님 성이 송 씨이고, 서지예 어머니의 성도 송 씨라니. 두 사람 설마 친척 관계인 것은 아니겠죠?”“그게 뭐가 어때서?!”보기에는 태도가 강경한 것 같지만, 사실 송지혜는 잔뜩 겁에 질렸다.서정은 웃으며 말했다.“글쎄요? 서지예는 중학교때 성적이 형편없었는데,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갑자기 천재로 돌변했죠. 각종 경기에 참가하여 상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여가 시간에 권위 잡지에 논문을 발표했잖아요. 제가 이 일을 한 번 똑똑히 조사할까요?”“너...” 송지혜는 화가 나서 온몸을 떨었다.그녀는 문득 서정을 자신의 학생으로 받아들인 것을 후회했다.원래 생각이 없고 쉽게 넘어오는 어리석은 재벌 아가씨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쩨쩨하고 악독하고 성질까지 더러운 사람이었다니.“저를 경기의 부책임자로 만들어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교수님과 교수님의 조카딸을 전부 망칠 테니까. 알아들었어요?!”말을 마치고 서정은 돌아서더니 송지혜에게 욕설을 퍼부을 기회를 전혀 주지 않았다.이렇게 ‘프로젝트 책임자’에 서정의 이름이 더해졌다.재운은 이런 일에 다시 한번 놀라 멍하니 고개를 돌려 진일을 바라보았다.“형, 왜요?”“뭐가? 이 세상은 원래 불공평해.”진일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고, 마치 이런 일에 대해 이미 익숙해진 것 같았다.재운은 더 큰 의혹속에 빠졌다....경기 규칙은 스스로 연구 과제를 정한 다음, 규정된 시간내에 심사에 바치고, 다시 심사위원회에서 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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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6화

정은은 전화를 받으며 약간 멍해졌다.저쪽에서는 조용히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왜 그래? 나를 ‘오빠’라고 불렀으면서, 이제 와서 만나기 망설여지는 거야? 아니면...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된 걸 받아들이기 싫은 거야? 그때 했던 말들은 전부 거짓이었어?]“알았어요, 잠깐만 기다려요. 지금 내려갈게요.” 정은은 단번에 대답했다.현빈의 말이 맞았다. 두 사람의 관계가 이렇게 됐으니 더 이상 거리낄 게 없었다.그녀의 단호한 대답에 저쪽에서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에야 현빈은 다시 입을 열었다.[할아버지랑 할머니가 L시에서 돌아오셨어. 네가 최근에 프로젝트를 끝냈으니 시간 있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 너 데리고 본가에 가서 같이 식사하자고 하셨어.]이춘재와 봉수진은 L시에 머물면서 점점 그곳에 정이 들었고,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매일 딸을 볼 수 있는 데다 소진헌과 같은 자상하고 든든한 사위가 곁에서 돌봐주니 하루하루가 평온하고 만족스러웠다.그러다 이미숙은 출판사의 초청을 받아 G시에서 사인회를 열게 되었고, 이어서 S시로 날아가 독자와의 사인회에 참가해야 했다.물론 소진헌도 함께 가기로 했다. 출판사에서는 이미 이미숙 가족의 숙박, 식사, 항공권까지 전부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야말로 최상의 경험을 보장해 이미숙이 앞으로 더 많은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하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출판사는 이미숙을 행사에 초대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정작 두 어르신은 가고 싶어 하면서도 긴 여행에 노쇠한 몸이 무리일까 걱정했다. 결국 이민이 가장 먼저 반대했다.원래 이미숙은 혼자 G시로 가고 소진헌은 집에 남아 이춘재와 봉수진을 모시기로 했었다.소진헌은 상관없다고 했지만, 두 어르신은 그가 함께 가서 이미숙을 돌봐주길 원했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엿보였다.소진헌은 꽤 흐뭇했다. 평생 강단에 서는 것 외에는 자신이 이렇게 중요하게 여겨진 적이 없었기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결국 이미숙도 두 어르신의 뜻을 꺾지 못했고, 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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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7화

정은은 멍해졌다.남자는 잘 재단된 검은색 코트를 입고 있었고, 몸에 꼭 맞는 핏이 넓은 어깨, 잘록한 허리와 탄탄한 체형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하지만...얼굴 살이 좀 빠진 것 같았다. 살짝 움푹 패여 두 눈은 더욱 깊고 가늠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자아냈다.현빈은 살짝 웃으며 찻잔을 들었다. 뜨거운 온기가 잔을 타고 손바닥에 전해졌다.“난 차 가리지 않아. 고마워.”“먼저 좀 앉아 있어요. 안에 가서 물건 좀 챙겨야 해서야. 그리고 바로 출발해요.”“알았어.”현빈은 정은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여 투명한 유리잔에 담긴 맑은 차를 응시했다.예전에 현빈은 농담으로 정은에게 몇 번이나 위층에서 차 한 잔을 대접해 줄 수 있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예외 없이 거절당했다.그런데 지금은 버젓이 집 안에 들어와 정은이 직접 끓인 차를 받아들고 있다니. 손 닿을 거리에서 건네받은 이 상황은 왠지 모르게 낯설었다.현빈이 수없이 바라왔던 장면이 현실이 되었지만, 그 이유는 두 사람의 관계가 연인이 아니라... 남매처럼 변했기 때문이었다.‘참 아이러니하네.’혀끝에 감도는 씁쓸함을 삼키며 현빈은 시선을 돌렸다.오늘은 영하 3도. 정은은 추위를 많이 타는 편이라 핑크색 패딩에 카키색 캐시미어 니트와 울 스커트를 매치했다. 스커트 길이와 패딩 길이가 비슷해 전체적인 실루엣이 단정하면서도 발랄했다.거기에 롱부츠까지 신으니 젊고 생기 넘치는 분위기가 한층 더해졌다.작은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 어제 충분히 쉰 덕분인지 혈색도 좋아 보였다.“다 됐어요, 오빠. 가요.”정은의 목소리는 부드럽게 현빈의 심장을 파고들어갔다.간지럽고 짜릿했다.“오빠?”현빈은 정신이 번쩍 들더니 다소 급하게 소파에서 일어섰다.“응, 가자.”말을 끝내자마자 그는 먼저 현관으로 향했다.몸을 돌리는 순간, 목이 타들어가는 느낌이 들었고, 옆에 늘어진 손은 서서히 주먹으로 쥐어졌다.현빈은 감정을 억누르고, 또 억눌렀다.정은은 그 뒤를 따르다가 식탁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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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8화

재석은 계속 입을 열었다. “이거... 옥수수 같은데요?”현빈은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몇 번 먹어 봐서 딱 보면 알죠.”‘내가 언제 물어봤다고? 그냥 설명해 버리네. 정말 자기 자랑은 알아줘야 한다니까.’재석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정은이는 정말 세심하고 자상하죠. 모든 사람을 배려할 줄 아니까요.”현빈은 피식 웃음을 지었다. “다들 조 교수님이 과묵하다고 하던데, 말이 꽤 많으시네요?”“말 많고 적음은 상대에 따라 다르죠. 심 대표님도 평소에는 말수가 적은 편 아닌가요? 그런데 오늘은 꽤 말을 많이 하네요. 오고 가는 말이 있어야 예의 아니겠어요?”현빈은 대답하지 않고 그저 미소만 지었다.“자, 이제 가요.” 정은은 남은 샌드위치를 냉장고에 넣고 찻잔까지 깨끗이 씻은 후 나왔다.고개를 들자 마침 재석이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밝게 웃으며 인사했다. “선배님, 오늘도 집에 있었어요?”“응.” 정은을 바라보는 재석의 눈빛이 한층 부드러워졌다.“심 대표님과 함께 외출하려고?”“네, 우리...”“얼른 가자.” 현빈은 자연스럽게 정은의 가방을 받아들었다. “골목에 차를 오랫동안 세우면 또 누가 뭐라고 할지도 모르잖아.”“아, 네! 선배님, 그럼 이만 가볼게요. 나중에 봐요.”재석은 ‘우리'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귀에 거슬렸다.그는 속으로 피어오르는 의심을 애써 누르며 대답했다. “그래.”가는 길에 정은이 물었다.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언제 돌아오셨어요?”현빈은 앞을 똑바로 보며 짧게 대답했다. “저번 주 금요일.”“잠깐 마트에 들러서 과일 좀 살게요.”“누구에게 줄 건데?”“당연히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께 드리는 거죠.”“그럴 필요 없어. 남도 아닌 가족인데, 뭘 사? 빈손으로 가도 괜찮아.”“그래도 처음 찾아뵙는 건데 그냥 가면 좀 실례인 것 같아서요.”“그게 두 분께 더 거리감을 줄 수도 있어. 내 말 들어.”“알겠어요.”이씨 가문 본가는 유서 깊은 곳으로 호수 근처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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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9화

“골치 아픈 아이라고요? 왜요?” 이미숙을 이렇게 평가하는 것을 처음 들은 정은은 호기심이 자자했다.“네 엄마는 지금 얌전하고 책 보기 좋아하지만, 어렸을 때 나무에 올라가 새를 잡거나 강에 들어가 물고기를 잡았어.”정은은 깜짝 놀랐다.“정말이에요?”“이곳의 복도에 총 68 세트의 가드레일이 있어. 원래는 없었는데, 나중에야 추가한 거야.”“저희 엄마 때문에요?”이춘재는 작은 소리로 말했다.“네 엄마가 연못에 뛰어들어 물고기를 잡지 못하게.”정은은 말을 잇지 못했다“어때? 상상 안 가지?”정은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상상할 수가 없네요.”“하하... 이따가 네 엄마 어렸을 때 사진 보여줄게. 다 증거로 남아 있어.”“지금 갈까요?”정은은 두 눈에 빛이 났다.이춘재는 뜻밖에도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심지어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렇게 두 사람은 2층으로 올라갔다.전화를 받고 돌아온 현빈은 거실에 사람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그는 1층을 낱낱이 뒤졌지만 아무런 수확이 없었고, 주방으로 걸어갔다.“할머니, 할아버지와 정은이는요?”“방금까지 거실에 있었는데?”“지금은 거기에 아무도 없어요.”봉수진이 말했다.“그럼 분명히 다른 데에 놀러 갔을 거야. 그냥 내버려둬. 참, 너도 오늘 야근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얼른 회사로 돌아가.”“저 안 가요. 하나도 안 바쁘단 말이에요.”‘아니, 방금 집사가 그러던데. 회사 전화가 집에까지 걸려왔다고.’현빈이 다시 찾기도 전에 이춘재는 이미 사진첩을 든 채로 정은과 함께 위층에서 내려왔다.마침 봉수진도 요리를 마치고 주방에서 나왔다.온 가족이 소파에 앉아 사진첩을 뒤적였다.“이건 네 엄마가 금방 태어났을 때야. 3kg넘는 하얗고 뚱뚱한 아기였지... 이것은 세 살 때 네 고모 할머니가 네 엄마에게 사준 생애 첫 하이힐이고... 이건...”두 노인은 딸을 아주 귀여워했는데, 이미숙이 태어날 때부터 실종될 때까지 수많은 사진을 남긴 뒤, 사진첩으로 만들어 기록했다.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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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0화

“좋아요. 방금 들어왔을 때 힐끗 보았을 뿐, 아직 자세히 보지 못했거든요.”봉수진은 허리가 좋지 않아 오래 앉아 있으면 몸이 불편했기에, 정은은 원래 그녀를 모시고 정원을 둘러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잘됐다 생각하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하늘은 흐렸고, 햇빛은 구름 뒤에 숨어 있다가 가끔 가느다란 빛을 비추었지만 금세 사라졌다. 겨울의 J시에서 푸른 식물을 보기 어렵고, 대개 앙상한 가지들뿐이었다. 그러나 이원의 화원은 예외였다.거대한 유리 온실에는 다양한 꽃과 식물들이 계절과 상관없이 만발했고, 겨울에 가장 선명한 색채를 이루고 있었다. 봉수진은 특별한 취미가 없어 그저 꽃과 식물을 가꾸는 것을 좋아했다. 원래 이런 일에도 흥미가 없었지만, 이춘재가 봉수진이 점차 침울해진 모습을 보고는 주의를 좀 돌리라고 권한 것이었다. 처음엔 탐탁지 않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흥미를 가지게 되었다.봉수진은 장갑을 끼고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개의치 않은 채 작은 화원의 잡초를 뽑기 시작했다. 정은도 꽃가지를 다듬고 새 흙으로 덮어주는 것을 도왔다. 봉수진은 힐끗 바라보았는데, 그녀의 능숙한 손놀림에 감탄했다. 식물의 습성을 잘 알고 있어, 어떤 식물은 물을 많이 주고, 어떤 식물은 적게 주어야 하는지, 어떤 식물은 아예 물을 주면 안 되는지도 잘 알고 있었다. 딱 봐도 평소에 화초를 다듬는 사람인 게 분명했다“우리 정은이는 공부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화초 가꾸는 솜씨도 대단하구나.” 봉수진은 웃으며 말했다.요즘 젊은이들은 인내심을 가지고 화초를 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할머니께서 너무 잘 가꾸셔서 저는 그저 거들었을 뿐이에요.”정은은 발밑에 자란 말리꽃을 바라보았다. 작은 떨기로 자라난 모습이 보기 좋았는데, 시간이 지나면 더 무성하게 자랄 것이었다.봉수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넌 듣기 좋은 말로 나를 달래는구나.”“아니에요, 진짜예요. 이 장미도 정말 예쁘잖아요. 그런데 모양이 조금 이상한데, 마치 배추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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