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6년간의 연애 끝에, 강도겸은 새로운 연인과 함께하며 소정은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소정은은 싸우지도,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다. 오히려 짐가방을 차분히 정리하고, 도겸이 마련해준 천문학적인 이별 수당을 받아든 채 과감히 떠났다. 도겸의 친구들은 익숙한 내기를 걸었다. 과연 이번에는 소정은이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J시에서 소정은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녀가 강도겸을 미친 듯이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자존심도, 분노도 없는 사랑, 그들이 알고 있는 소정은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모두가 생각했다. 사흘 안에 돌아와 사과할 거라고. 하지만 사흘이 지나고, 또다시 사흘이 지나도 그녀에게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결국 도겸이 먼저 참지 못하고 전화를 걸었다. 그가 처음으로 누그러진 태도로 말했다. “넌 이제 그만 장난칠 때가 되지 않았어? 그만하면 돌아와...” 그러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것은 뜻밖의 낮은 남자의 웃음소리였다. “대표님,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습니다. 이별을 후회해도 어쩔 수 없죠.” “정은을 바꿔줘, 걔랑 이야기하고 싶으니까!” “죄송하지만, 제 여자친구는 지쳐서 방금 잠들었어요.”
View More“퉤, 퉤!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나 지방 흡입하러 온 거야!”이추애는 이런 말을 극도로 꺼렸다.말을 마치고도 찝찝했는지, 연달아 몇 번이나 침을 뱉는 시늉을 했다.그때, 병원 방송이 울려 퍼졌다.“이추애 님, 2층 수술실로 와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이추애 님...”“나 오늘 일정 바빠서 너희랑 더 엮일 시간 없어! 특히 이 아가씨, 눈 크게 뜨고 숨도 쉬지 말고 앞좀 잘 보고 다녀!”말을 끝내자마자, 이추애는 돌아서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사라졌다.슬아는 강서원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모님. 사모님 안 계셨으면... 저 진짜 뺨 맞았을 거예요.”강서원이 담담하게 말했다.“별말을 다 하네. 봤으니까 말린 거지. 이추애는 원래 그래. 입도 거칠고, 성질도 급하고, 손부터 올리는 사람이라.”예전의 강서원이라면, 이런 부류와 얽히는 것 자체를 귀찮아했다.이추애가 참석한다는 얘기만 들려도, 그 자리는 아예 가지 않았다.어쩔 수 없이 마주치게 되더라도, 최대한 멀리 피했다.두려워서가 아니었다.애초에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싸움이 나면 이기든 지든, 그 순간 이미 자신의 격이 떨어진다고 여겼다.그런데... 오늘처럼 정면으로 부딪혀, 속 시원하게 한 판 붙고 나니 의외로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사람이라는 게, 너무 오래 점잖게만 굴면 가끔은 이렇게 거칠어져야 속이 풀리는 법이었다.슬아는 눈앞의 강서원을 바라봤다.혈색이 좋고, 눈꼬리에 웃음이 걸려 있었다.묘하게 익숙했다.‘어디서 본 적이 있는 얼굴 같은데...’곰곰이 생각해 봐도 딱 떠오르지는 않았다.강서원의 시선이 슬아가 들고 있는 보온병으로 내려갔다.“아가씨, 병문안 온 거야?”“네. 남자친구 어머니가 입원해 계셔서요. 방 찾느라 정신없다가, 아까는 피할 틈도 없이 부딪쳤어요.”“몇 호실인데? 내가 같이 찾아줄게.”강서원은 이 병원 VIP 병동의 ‘터줏대감’이었다.원래 입원 환자도 소수여서, 누가 어디에
지훈은 갈비탕을 용기에 담아 포장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슬아에게 물었다.“같이 갈래?”“어?”“병원. 너 아직 우리 어머니 못 봤잖아.”슬아의 눈이 살짝 돌아갔다.“조 변, 이거 혹시 나 데리고 부모님 뵈러 가는 거야?”지훈이 말했다.“안 돼? 방금 내 정체성 인정했잖아. 그럼 나도 권리 좀 행사하면 안 되나?”십 분 뒤, 슬아는 조수석에 앉아 있었고, 무릎에는 강서원을 가져다줄 갈비탕을 올려놓았다.“조 변 어머니는... 어떤 분이셔?”지훈은 잠시 생각했다.“좀 무서워. 성격도 썩 좋은 편은 아니고, 사람 보는 기준도 되게 까다로워. 근데 요즘은 꽤 많이 부드러워지셨어.”슬아는 앞부분만 귀에 들어왔다.뒷말은 들리긴 했지만, 마음에는 안 남았다.‘설마... 드라마에 나오는 그 악명 높은 시어머니 타입?’“저기... 나 지금이라도 차에서 내려도 될까?”지훈이 단호하게 말했다.“꿈도 꾸지 마.”...병원, VIP 병동.지훈이 엘리베이터에서 막 내리자마자, 담당 의사가 다가와 그를 붙잡았다.“조 변호사님, 마침 잘 오셨어요. 강 여사님 최근 상태에 대해 잠깐 상의드릴 게 있습니다.”슬아가 물었다.“어? 그럼 나는?”지훈이 말했다.“502호실이야. 너 먼저 가 있을래? 갈비탕 식겠다.”“알겠어.”슬아는 혼자 남친 엄마를 먼저 만난다고 해서 딱히 부담되지는 않았다.아까 지훈이 직접 말하지 않았나?자기 엄마, 엄청 까다롭다고.‘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여기까지 왔는데. 얼마나 까다로운지 한 번 보자.’“502...”슬아는 병실 번호를 확인하며 복도를 걷고 있었다.그때, 중년 여성이 비틀거리며 슬아 쪽으로 들이닥쳤다.퍽!“으윽!”슬아의 허리에 충격이 와, 숨이 확 멎었다.“아니, 이 사람은 대체...”말이 끝나기도 전에 부딪친 중년 여성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신음하기 시작했다.“아이고, 아이고! 요즘 젊은 것들은 눈이 장식이야? 내가 오는 게 안 보였어? 먼저 내 쪽으로 와서 들이받아 놓고! 너 내가
“얼마 전에 배웠어. 재석이가 가르쳐 줬거든. 재석이가 요즘 너무 바빠서 도시락을 병원에 못 가져가니까, 이 중대한 임무를 나한테 맡겼지.”민슬아는 공기 속에 퍼진 갈비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그럼 우리 조 변, 꽤 재능 있는 거네.”“그럼! 내가 뭐든 못하는 게 없지. 이제 ‘은리’랑 ‘화리’ 먹이는 것도 내가 한다고!”이 이야기가 나오자, 슬아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조금만 쥐 집을 때 손 덜덜 떨고, 파리만 봐도 속 울렁거리는 게 가능하다는 기준이면... 그래, 인정해 줄게. 간신히 먹이기는 하더라.”“근데 다음엔 좀 조심해. 쥐를 덜덜 떨면서 들고 있다가 벽에 던져버려서 ‘은리’가 너를 공격할 뻔했잖아. 그리고 메스꺼울 때 ‘화리’ 앞에서 토하지 마. 한 번 겪고 나더니, 이제 너만 보면 스트레스 반응 오잖아.”지훈은 할 말을 잃었다.‘이 정도면... 이 장비는 꼭 분해해야 하는 거 아니야?’“몇 번만 더 하면 나아질 거야!”슬아가 말했다.“아니, 그냥 안 하는 게 낫지 않을까? 언젠가 걔들이 참다참다 너한테 동시에 달려들까 봐 무서워.”한 시간 뒤, 갈비탕이 완성됐다.지훈은 주방으로 들어가 불을 껐다.그때 슬아의 핸드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슬아가 막 핸드폰을 집어 들었을 때 지훈은 마치 생선 비린내를 맡은 고양이처럼 주방에서 휙 튀어나왔다.“흥! 또 누가 메시지 보냈어? 10번의 그 순수한 남학생이야, 아니면 12번의 그 투자은행 엘리트야?”슬아가 물었다.“조 변, 냄새 안 나?”“무슨 냄새?”“푹 삭은 질투 냄새.”지훈이 할 말을 잃었다.슬아는 그대로 핸드폰 화면을 지훈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봐. 한설 선배가 보낸 거야.”지훈은 무심코 화면을 눌렀고, 다음 순간 얼굴색이 확 달라졌다.슬아는 영문을 몰라 속으로 생각했다.‘뭐야? 한설 선배가 방금 보낸 메시지, 나도 아직 안 읽어 봤는데...’지훈이 이를 갈았다.“좋아, 좋아. 열여섯 명 쫓아냈더니 이번엔 스무 명이야? 끝이 없네, 진짜?”슬아
다음 날.서준은 아내와 딸, 장인과 장모, 그리고 베이비 시터 장영순과 함께 자신의 집으로 돌아왔다.임정식과 장인화는 아무런 이견도 내지 않았다.두 사람 모두 아직 은퇴하지 않아 매일 출근해야 했고, 때로는 외부 출장이나 현장 방문도 잦았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적으니, 현실적으로 아이를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게다가 이미 자식을 키워 본 입장에서 임정식과 장인화는 그 안에 따르는 불편함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고, 서준과 민지의 선택을 존중했다.다만, 말랑말랑하고 귀여운 손녀를 당분간 자주 보지 못하게 된다는 점이 못내 아쉬울 뿐이었다.“서린아, 엄마아빠 말 잘 듣고 있어야 해. 할아버지, 할머니 시간 나면 보러 갈게. 알겠지?”장인화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서린을 바라보다가, 이내 임수인의 손을 잡았다.“사부인, 저랑 서준 아버지가 워낙 바빠서요. 앞으로는 사돈어른과 사부인께 많이 신세를 져야겠어요.”“한 집안인데 그런 말씀 마세요. 걱정 마시고 맡기세요.”“그럼요. 당연히 믿죠. 사부인께서 민지를 이렇게 잘 키우셨는데, 서린이도 얼마나 잘 돌보시겠어요.”그 한마디에 임수인은 얼굴에 꽃이 피었다.‘아이고, 역시 윗자리까지 올라가 본 분이라 그런지 말이 다르다니까.’‘말 한마디로 사람을 이렇게 띄워 주네.’원래는 사흘 뒤에 고향으로 돌아갈 비행기 표를 이미 끊어 두었던 하정남 부부는, 그날 바로 표를 취소하고 서준이 마련해 둔 집으로 이사했다.언제 돌아갈지는, 두 사람 모두 굳이 입에 올리지 않았다.서준은 휴가가 끝나자, 딸이 눈에 밟혔지만 다시 실험실로 돌아갔다.평소처럼 묵묵히 일상으로 복귀했다.민지가 말했다.“나도 이제 일하고 싶어.”“딸이랑 매일 같이 있는 게 좋지 않아?”“좋지. 근데 그거랑 일하는 거랑은 안 겹치잖아.”낮에는 일하고, 퇴근하면 여전히 딸과 함께할 수 있었다.민지의 다이어트 계획도 제법 성과를 냈다.산후 회복 프로그램에 매일 운동까지 병행하자, 보름도 안 돼서 6 킬로가 빠졌고 체중은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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