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수 터져도 참아의 모든 챕터: 챕터 1 - 챕터 10

10 챕터

제1화

“가증스럽게 밀당할 생각 마. 자정 넘길 때까지 여기서 조용히 기다려. 그럼 약속대로 병원 보내줄 테니까. 그 아이만 무사히 낳는다면 박씨 가문 안주인 자리는 확실하게 보장되는 거야.”그 말을 끝으로 박태준은 미련 없이 몸을 일으키려 했다.나는 핏기 없는 손으로 그의 바짓자락을 움켜잡으며 하얗게 질린 얼굴로 간청했다.“병원에 데려다줘. 제발 부탁이야.”하지만 박태준은 코웃음으로 내 애원을 짓밟았다. 그는 내 손을 가차 없이 걷어찼고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지하실 문을 닫아걸었다. 육중한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차디찬 목소리만이 어둠 속으로 파고들었다.“아줌마, 사모님 잘 감시해. 내 허락 없이는 절대 내보내지 마.”박태준이 내지른 발길질에 나는 차가운 바닥으로 처참하게 내팽개쳐졌다.본능적으로 배를 감싸 안았지만, 그 순간 치마 밑으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쏟아졌다.시선을 내린 곳에는 순백의 치마가 서서히 끔찍한 핏빛으로 번져가고 있었다.나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어 바닥을 기어갔다. 내 몸이 지나간 자리마다 붉은 혈흔이 비참한 궤적을 남겼다. 간신히 문 앞까지 도달한 나는 덜덜 떨리는 주먹으로 육중한 문을 두드렸다.“아줌마, 아줌마, 나 피가 나요. 너무 아파요. 아이가... 정말 나올 것 같아요. 제발 문 좀 열어줘요!”문에 귀를 밀착한 채 안의 동태를 살피던 최경애는 눈을 흘기며 조소 섞인 말투로 쏘아붙였다.“사모님, 이제 그만 연기하시죠. 대표님께서 워낙 엄하게 당부하신 일이라 사모님을 내보냈다간 당장 제 월급부터 깎일 판이에요. 저 같은 사람 밥줄을 생각하더라도 그만 좀 징징대세요. 사모님 때문에 공들여 준비한 파티도 다 망쳤잖아요. 이따 시우 도련님 돌아오시면 제가 끓인 미역국을 대접해야 하니 지금 사모님 우는소리에 맞장구칠 여유 같은 거 전혀 없어요. ”나는 쥐고 있던 옷자락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 밀려오는 진통이 뼈마디를 깎아내는 듯 점점 더 극심해졌다. 최경애가 떠나려 하자 다급해진 나는 필사적으로 비명을 지르듯 그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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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아줌마가 나를 우습게 보는 건 참을 수 있어요. 하지만 어떻게 아기의 생사까지 모른 척할 수가 있어요? 내 배 속 아이가 잘못되면 어르신께 뭐라고 설명할 건데요! 아줌마 본분이 날 돌보는 거라는 걸 잊지 말아요!”내 서슬 퍼런 위협에 최경애의 발걸음이 마침내 멈춰 섰다.잠시 적막이 흐른 뒤, 문밖에서 잔뜩 가시 돋친 목소리가 들려왔다.“대표님께 전화는 걸어볼게요. 하지만 대표님이 안 된다고 하시면 나중에 어르신이 물으셔도 제 책임은 아니라는 거 아시죠?”나는 황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문에 바짝 기대어 그녀가 전화를 걸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대표님, 사모님께서 하혈이 심하십니다. 곧 출산하실 것 같다는데... 병원으로 옮겨야 할까요?”마침 레스토랑에서 박시우를 위한 생일 음식을 주문하던 박태준은 최경애의 전화를 받자마자 귀찮다는 듯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싸늘하게 쏘아붙였다.“아줌마, 일 그만두고 싶어? 내가 분명히 집사람 감시하라고 했지 언제 쓸데없이 걔 편을 들면서 사정을 봐주라고 했어!”수화기 너머로 날아든 박태준의 호통에 최경애의 얼굴이 단번에 굳어버렸다. 그녀는 억울하고 분한 듯, 지하실 문을 향해 날 선 눈빛을 쏘아붙였다.그러나 그 분노도 잠시, 문틈 사이로 흥건하게 배어 나오는 붉은 피를 발견한 순간 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흙빛으로 질려갔다. 그녀는 사시나무 떨듯 떨며 비명을 질렀다.“피... 피예요! 대표님, 사모님 말이 사실인가 봐요, 진짜 피를 흘리고 계세요! 문틈으로 피가 멈추지 않고 흘러나오고 있어요!”최경애의 다급한 외침에 박태준의 손이 멈칫 굳어졌다. 잠시 수화기 너머로 무거운 침묵이 흐른 뒤, 그가 망설이듯 입을 열었다.“내가...”그 짧은 순간, 의식이 흐릿해져 가던 내 귓가에 박시우의 앳된 목소리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그것은 나의 마지막 희망마저 잔인하게 짓밟는 파열음이었다.“아빠, 나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요.”박태준이 고개를 돌렸다.그의 곁에는 아들을 품에 안은 서예나가 애틋한 눈빛으로 그를 올려다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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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박태준이 의도적으로 숨긴 탓에 나는 그가 학부모 모임에 참석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그날 내 배에 귀를 대고 태동을 느끼며 그토록 감격해 하던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정작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는 이미 거짓말이나 늘어놓으며 어린아이에게 질투나 하는 졸렬한 여자로 낙인찍혀 있었다니...“사모님, 사모님! 정신 좀 차려보세요!”억센 손길이 나를 사정없이 흔들어댔다. 머릿속이 온통 뒤엉켜 진흙탕처럼 어지러웠지만, 나는 억지로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눈앞에 흐릿하게 비친 것은 창백하게 질린 최경애의 얼굴이었다.내가 눈을 뜬 것을 확인한 그녀는 그제야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행이라는 듯 중얼거렸다.“휴, 안 죽었네.”그러더니 이내 퉁명스럽게 불평을 늘어놓았다.“사모님, 사람 간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요.”시선을 아래로 내려 내 배를 바라본 순간, 온통 시뻘건 피가 시야를 가득 메웠다.최경애는 내 시선을 따라 내려다보더니 무언가를 발견한 듯 코를 감싸 쥐고는 혐오스럽다는 듯 내뱉었다.“사모님, 일꾼들이 문 앞에 놔둔 페인트 통은 왜 엎지르신 거예요? 냄새가 아주 진동하네. 직접 집안일을 하시는 게 아니라고, 집 귀한 줄을 정말 너무 모르시네요.”나는 멍한 정신을 가다듬고 구석을 바라보았다. 붉은 페인트 통 하나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는데, 아마 내 손에 쓸려 실수로 넘어간 모양이었다.칠흑같이 어두운 지하실 문가에서 최경애는 복도에서 쏟아지는 빛을 등진 채, 무언가 결정적인 증거라도 잡았다는 듯이 소리쳤다.“대표님 말씀이 역시 맞았네요! 일부러 페인트 통을 쓰러뜨려 저보고 피인 줄 착각하게 만들고 대표님한테 전화해서 돌아오시게 만들려던 수작이죠? 다행히 대표님께서 사모님의 그 잔꾀에 넘어가지 않으셨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시우 도련님네 세 식구의 오붓한 생일 파티가 사모님 때문에 완전히 엉망이 될 뻔했잖아요!”나는 그녀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극심한 고통 탓에 입을 열어 반박할 기운조차 없었다.최경애는 내 눈빛에 움찔하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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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정수영은 기가 막힌다는 듯 내 온몸을 훑어보더니 머뭇거리며 물었다.“정말 이게 빨간 페인트라고 확신하십니까?”박태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답했다.“네, 확신합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제 아내에게 전화를 좀 바꿔 주십시오. 몇 마디 나눌 말이 있습니다.”정수영은 바닥에 몸을 굽혀 내 귀에 휴대폰을 대주며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이윽고 수화기 너머로 박태준의 잔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진나미, 네가 벌이는 이 발칙한 쇼는 이제 지긋지긋해. 네가 오늘 진짜로 애를 낳든 말든, 지금 당장 출산할 상황이라 해도 무조건 참아! 네가 아이의 안위조차 무시하고 마음대로 약까지 먹어가며 조산을 유도한 이상, 그 아이는 영원히 시우와 같은 날에 태어날 자격이 없어. 신분 또한 평생 시우 밑에서 기어 다녀야 할 거다. 이 정도 말했으면 네 어설픈 수작도 포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 그러니 얌전히 집으로 돌아가서 더 이상 이런 추태 부리지 마!”그의 모진 말은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내 심장을 사정없이 난도질했다. 알고 보니 나만 서예나에게 미치지 못하는 게 아니었다. 내 불쌍한 아이 역시 그녀의 자식보다 아래에 놓일 운명이었던 것이다.눈물이 붉은 핏물과 뒤섞여 뺨을 타고 흘러내려 차가운 바닥 위로 뚝뚝 떨어졌다.“마음대로 약을 먹었다고?”나는 갈라진 목소리로 간신히 입을 열었다.“박태준, 당신이 나에 대해 이렇게나 오해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어. 우리가 함께한 그 수많은 세월이 참 허망한 코미디 같네.”박태준은 초조하게 서성거리며 휴대폰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막 버럭 소리를 지르려던 찰나, 수화기 너머로 힘없이 흐려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박태준, 우리 다신 보지 말자.”정수영은 심성이 고운 사람이었다. 그는 박태준의 말대로 구급차를 취소하는 대신, 곧바로 나를 데리고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차가운 링거액이 내 핏줄을 타고 전신으로 퍼져나가자 진통은 사그라들었으나, 영혼 깊은 곳에서는 거대한 비탄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육체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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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진성민은 마침내 고개를 돌려 나를 품에 와락 안아주며 머리를 쓰다듬었다.“괜찮아, 나미야. 다 괜찮아. 이제 오빠가 여기 있잖아.”깊은 밤, 잠결에 들려온 아기 울음소리에 박태준이 번쩍 눈을 떴다. 찰나의 환청이었을까. 그는 무의식중에 옆을 돌아보았지만, 곁에는 박시우가 얌전히 새근거리며 잠들어 있을 뿐이었다.그는 박시우에게 이불을 정성스레 덮어주었지만,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솟구치는 기분 나쁜 불안감 때문에 더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담배 한 대를 물어 불을 붙인 뒤 휴대폰을 켰지만, 아무런 메시지도 와 있지 않았다.낮에 매정하게 거절해 버린 낯선 번호의 전화들이 뇌리를 스쳤다. 불안감은 걷잡을 수 없는 불길처럼 번져갔고 문득 진나미의 얼굴이 떠오른 그는 서둘러 개인 주치의 주도윤의 번호를 눌렀다.“주 선생님, 저희 집사람 상태는 좀 어떻습니까?”“사모님 말씀이십니까? 박 대표님, 아까 사모님은 출산이 임박해 이미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떠났잖아요? 제가 별장에 도착했을 때 마침 구급차가 출발하던 참이라, 저는 대표님이 직접 신고하신 줄만 알았습니다. 제가 도착이 늦어 뒷수습이나 하러 온 줄로만 생각했고요!”박태준은 멈칫하더니 벌떡 의자에서 일어나 기쁨에 가득 찬 목소리로 외쳤다.“그럼 아기를 낳았다는 말씀이십니까! 어쩐지 잠결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린다 했습니다! 방금 태어난 게 분명하군요. 이 녀석이 아빠랑 핏줄이 통한다고 저한테 기쁜 소식을 미리 알려준 모양입니다!”박태준의 들뜬 목소리를 듣던 주도윤은 어이가 없어 말문이 막혔다. 현장에서 직접 확인했던 그 아비규환의 상황은 결코 이런 평온한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속으로 혀를 차며 한참을 망설이다 무겁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아무래도 지금 당장 제한병원으로 가셔서 사모님을 직접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박태준은 설레는 마음으로 서둘러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가 차 키를 들고 막 나서려 할 때, 서예나가 박시우의 손을 잡고 문가에 나타났다. 박시우는 졸린 눈을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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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그러니까 지금 진나미가 내 아이를 데리고 다른 놈 차에 타버렸단 말이야? 나한테는 말 한마디 없이?”박태준이 기가 막힌다는 듯 김현민에게 되물었다.김현민은 고개를 깊이 조아렸다. 비 오듯 흘러내린 땀방울이 눈가로 흘러 들어갔지만 감히 손을 대어 닦아낼 엄두조차 내지 못한 채, 조심스러운 어조로 대답했다.“예, 웬 남자가 제 앞길을 가로막는 바람에 미처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사모님께서는 한마디 대꾸도 없이, 어떤 작은 상자 하나만을 품에 소중히 안으신 채 차에 타셨습니다.”박태준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들고 있던 튤립 꽃다발을 거칠게 바닥에 내팽개치며 낮게 읊조렸다.“CCTV 다 뒤져서 차 번호판 추적해! 하루 안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여자 찾아내란 말이야!”집에 도착한 나는 소파 위에 덩그러니 놓인 작은 유골함을 멍하니 응시했다. 가슴이 먹먹하게 죄어와 한동안 어떤 말도 입 밖으로 낼 수 없었다.온갖 불길한 생각과 자책이 꼬리를 물자, 나는 곁에 있던 큰 오빠 진윤수에게 물었다.“오빠, 우리 아기 혼자 저승길 가는데 많이 무서워하진 않을까? 자기를 지켜주지 못한 못난 엄마라고 나를 원망하진 않을까?”내 말에 가슴이 무너져 내린 진윤수는 나를 품에 꼭 안아주었다. 그리고 내 초췌해진 안색을 조심스레 살피며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나미야, 우리 아기를 엄마 아빠 묘지 옆에 묻어주자. 부모님이 아이를 참 귀해하셨잖아. 할아버지 할머니 품에 머물면 아기도 절대 외롭거나 무섭지 않을 거야.”또다시 맞닥뜨린 생사의 이별 앞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비통함이 해일처럼 몰려왔다. 나는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고 손바닥 틈새로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넘쳤다.“오빠, 아기 장례식은 내일 치르자.”진윤수가 고개를 끄덕이던 그 순간,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진성민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형, 박태준이 사람을 풀어서 형네 위치를 알아냈어. 지금 그쪽으로 차 몰고 가고 있어.”진윤수의 눈빛이 음산하게 가라앉으며 차갑게 실소를 흘렸다.“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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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내일 아침 아홉 시, 청산 공원묘지. 그곳이 당신이 아기를 볼 수 있는 마지막 기회야.” 말을 마치고 내가 돌아서려 하자, 박태준은 나를 붙잡고 확실히 따져 물으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사방에서 예닐곱 명의 경호원들이 들이닥쳐 그를 제자리에 가로막았다.세찬 빗속에서 밀려나며 꼴사납게 차량으로 밀려 들어가는 그를 지켜보면서도, 진윤수는 여전히 울화가 치미는 듯 툴툴거렸다.“나미야, 정말 저 자식을 이렇게 그냥 곱게 보내줄 거야? 아기의 마지막 얼굴을 볼 기회까지 줘가면서?”나는 쓸쓸한 눈빛으로 창밖의 칠흑 같은 어둠을 응시하며 주먹을 꽉 쥐었다.“어쨌든 아기의 아빠니까, 진실을 알 권리가 있어. 저자를 이렇게 보내줄 거냐고? 천만에. 저런 인간은 평생 가슴에 대못을 박고 속죄하며 살아야 해. 밤마다 아이 생각에 잠 한숨 못 자고, 평생을 지옥 같은 죄책감 속에서 허우적대야 한다고! 내가 저 인간을 그렇게 쉽게 놔줄 성싶어!”청산 공원묘지.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했고 빗줄기는 약해질 기미 없이 갈수록 굵어졌다.나는 검은 상복을 입은 채 묘지 입구에서 박태준을 기다렸다.아홉 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 박태준이 서둘러 당도했다. 나를 발견한 그는 다급히 뛰어오더니 내 손에 들린 우산을 대신 받쳐주려 하며 투덜거렸다.“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애 낳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산후조리도 안 끝난 사람이 왜 비를 맞으며 서 있어? 산후풍이라도 들면 평생을 고생할 텐데, 어떻게 제 몸 하나 아낄 줄 몰라. 아기는 산 위에 있어? 애를 데리고 묘지에는 왜 온 거야?”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묵묵히 몸을 돌려 산을 향해 걸어 올라갔다.수많은 의문이 꼬리를 무는 가운데 내 뒤를 쫓는 박태준의 가슴속으로 묵직한 불안이 엄습했다. 마치 오늘 하늘처럼, 아침부터 그의 감정은 한없이 가라앉아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었다.별안간 그가 내 팔뚝을 거칠게 쥐어 잡아 세웠다.“진나미, 머리에는 왜 하얀 꽃을 꽂고 검은 옷을 입고 있는 건데?”그의 안색이 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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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진나미! 너 방금 한 말... 다 거짓말이지? 그렇지? 나 골탕 먹이려고 또 장난치는 거잖아! 맞잖아! 제발 말 좀 해봐!”발광하듯 울부짖는 박태준을 보며 나는 손을 치켜들어 그의 뺨을 매섭게 갈겼다. 그리고 가슴속 분노를 모두 터트리며 고함을 질렀다.“박태준! 네 눈으로 저 안을 똑똑히 봐! 저 안에 누워 있는 게 누구인지! 그저께 밤에 네가 매몰차게 버렸던 네 진짜 자식이야! 네가 태어나지 못하게 짓밟았던 네 핏줄이라고! 내 배 속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려고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을 치던 가엾은 아기였어! 그런데 넌 병원에 보내주기는커녕 날 지하실에 잔인하게 가둬놨잖아!”박태준이 기계처럼 천천히 고개를 왼쪽으로 돌렸다.그곳에 놓인 작은 관 속에는 형체마저 흐릿해진 핏덩이 아기가 차갑게 굳은 채 누워 있었다.힘을 완전히 잃은 그의 다리가 맥없이 흙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너무나 거대한 충격 앞에 그는 완전히 넋을 잃었고 가슴을 갈기갈기 헤집는 극심한 슬픔에 감정이 완전히 붕괴하기 시작했다.“나한테 거짓말하는 거지? 네가 날 속이는 게 분명해... 거짓말이야, 다 거짓말이라고...”박태준은 일어나려 했지만 다리에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아 무릎으로 기어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아이에게 거의 손을 뻗으려 한 바로 그 순간, 나는 그의 손을 세차게 쳐냈다.나는 타오르는 분노의 눈길로 그를 쏘아보았다. 뼛속 깊이 사무치도록 그가 증오스러웠다.“박태준! 네까짓 게 감히 누굴 만지려고 들어! 저 아이가 얼마나 예쁜지, 우리를 얼마나 쏙 빼닮았는지 알아? 그런데 네가 죽였어! 그런 네가 무슨 자격으로 손을 대! 넌 아빠라고 불릴 자격조차 없는 인간쓰레기야!”박태준의 얼굴에 절망의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고 이 순간 마침내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가슴을 짓누르는 후회와 뼈를 깎는 고통이 뒤엉켜 그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대기하고 있던 경호원들이 관 위로 흙을 덮기 시작했다.박태준은 울부짖으며 온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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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페인트는 이미 오래전에 다 쓰고 말라붙어 있었기에 통 내부에는 아주 얇은 흔적만 남아 있을 뿐이었고 지하실에는 오직 피비린내만이 진동하고 있었다.그 지옥 같은 밤에 진나미가 홀로 얼마나 참담한 고통을 견뎌냈을지, 그러나 정작 자신은 그녀의 애원을 가차 없이 짓밟았고 결국 제 손으로 자식을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자책감이 엄습했다.방안에 굴러다니던 정체불명의 약병을 떠올린 박태준은, 마지막 실낱같은 진실을 규명하려는 듯 다급히 주도윤을 찾았다.“이 안에 든 약이 뭡니까? 조산을 유도하는 약이 맞나요?”주도윤은 박태준을 망설이듯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답했다.“박 대표님, 이건 엽산입니다. 임산부들이 보편적으로 복용하는 보조제예요.”언제나 꼿꼿하던 박태준의 등줄기가 마침내 처참히 무너져 내렸다. 그는 제 머리칼을 거칠게 쥐어뜯으며 완전히 붕괴했다.‘내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 내 손으로 직접 내 소중한 아기를 죽인 꼴이잖아!’주도윤은 미쳐버린 듯 실성한 그의 모습에 겁을 먹고 서둘러 저택을 빠져나갔다.박태준은 곧장 최경애를 찾아내 저택 지하실에 포박해 두었다. 그리고 진나미가 몰래 조산 약을 사고 약을 바꾼 것을 언제 보았는지 사실대로 대라며 윽박질렀다.공포에 질린 최경애는 전부 서예나가 사주한 짓이라고 자백했다. 서예나가 그렇게 말하라고 시켰을 뿐, 자신은 실제로 아무것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분노로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박태준은 서예나를 저택으로 불러냈다.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서예나는 진나미가 떠났으니 이제 드디어 자신이 이 저택의 안주인이 될 것이라 굳게 믿고 기쁜 마음으로 약속 장소에 나갔다. 그곳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것이 끝없는 지옥일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작은 오빠, 무슨 일 있어?”그때 나는 학교 캠퍼스를 걷고 있었다.출국한 후, 나는 평소 하고 싶었던 디자인 공부를 막 시작한 참이었다.“나미야, 박태준이 지명수배자가 되었어.”내 움직임이 순간 뚝 멈췄다.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한 벼락같은 소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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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그 말을 들은 박태준의 얼굴에 상처받은 기색이 가득하더니, 나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나미야, 내가 널 왜 죽여. 난 널 너무 사랑해서, 네가 아주 작은 생채기 하나 나는 것도 죽기보다 싫은 사람이야.”나는 온 힘을 다해 그를 밀쳐내며 고함을 질렀다.“그럼 날 왜 찾아온 건데! 당신 지금 수배 중인 범죄자 신세라는 거 몰라?”박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안다는 듯 답하더니, 이내 광기 어린 집착이 가득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조용히 속삭였다.“나미야, 너 서예나 싫어했잖아. 걔 이제 죽었어. 박시우도 내가 호적에서 완전히 파내서 보육원에 처넣어 버렸고. 이제 우리 사이를 방해할 사람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어. 오직 너 하나만 보고 여기까지 온 거야. 내가 한 모든 일은 다 너를 위해서였어. 우리 아기의 복수를 하려고! 서예나 그 나쁜 년만 없었어도 내가 널 오해하는 일도 없었을 테고, 우리 소중한 아기도 죽지 않았을 거야! 그랬다면 우린 지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가족이었겠지!”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소름이 돋아, 나는 겁에 질린 채 서서히 뒤로 물러섰다.박태준은 도망치려는 내 팔을 거칠게 움켜잡으며 말을 이었다.“걱정하지 마. 내가 회사 자산을 싹 다 처분하고 신분도 완전히 세탁해 뒀어. 이 낯선 타국에서는 우리를 아는 사람 아무도 없으니, 예전처럼 행복하게 살 수 있어.”뱃속 깊은 곳에서 구역질과 혐오감이 울컥 치밀어 올랐다. 나는 가까스로 극심한 두려움을 억누르며 단호하게 말했다.“돌아가기엔 너무 늦었어, 박태준. 당신이 내 눈을 속이고 서예나를 집안에 기어들이고 시우를 양자로 입적했던 그 순간부터 우리 사이는 끝난 거야! 당신은 오로지 서예나만 탓하는 거야? 정작 당신 자신에겐 아무런 문제도 없고? 나를 믿지 못하고 지하실에 가둔 건 바로 당신이야! 도대체 무슨 염치로 내가 당신과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데!”박태준은 내 매서운 다그침에 눈가가 붉게 물들더니, 무너지듯 바닥에 무릎을 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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