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잔을 단숨에 비운 뒤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았다."첩으로는 다른 이를 들이시지요, 장원 나리.""저는 첩으로 살지 않습니다."말을 마친 나는 돌아서서 걸음을 옮겼다.연회장을 가득 채운 경악과 조롱은 모조리 등 뒤로 내던졌다.등 뒤에서는 비웃음이 끊이지 않았다."겨우 상인의 딸 주제에 뭘 믿고 저리 뻐기는 거야?""그러게. 장원 나리의 첩이 되는 게 그리 억울하대?"나는 그들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저택으로 돌아온 나는 집사에게 말했다."황태자 전하께 전해 주세요. 제가 혼인하겠다고요."삼 년 전, 문씨 가문의 별원 뒤편 산에서 죽어 가던 한 소년을 구했다.그저 몰락한 유생인 줄 알고 사람을 시켜 저택으로 데려와 치료하게 했다.그런데 상처가 낫자, 자신이 이 나라의 황태자라며 나를 아내로 맞겠다고 했다.그때는 열이 심해 정신이 흐려졌다고만 여겼다.그를 데리러 금위군이 찾아오고 나서야 그 말이 사실임을 알았다.그 뒤 삼 년 동안, 이찬은 매달 사람을 보내 서신을 전했다.글자마다 진심 어린 구혼의 뜻이 가득했다.하지만 마음속에 고재헌을 품고 있던 나는 줄곧 답을 주지 않았다.이제 와 돌이켜보니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다음 날, 도성을 뒤흔든 소식이 퍼졌다.당대 황태자 이찬이 곧 황태자비를 맞이한다는 것이었다.혼례는 사흘 뒤로 정해졌다.온 도성은 어느 집안의 귀한 규수가 그 엄청난 복을 누리게 되었는지 궁금해했다.바깥의 온갖 소문은 아랑곳하지 않고, 혼례복을 고르러 도성에서 가장 큰 비단 가게 자수각으로 향했다.참으로 공교로웠다.문턱을 넘자마자 고재헌과 서정란을 마주쳤다.두 사람은 다정히 붙어 서서 비녀 하나를 고르고 있었다.눈이 밝은 서정란이 단박에 나를 발견했다.그녀는 곧바로 고재헌의 팔을 끌어안고 간드러진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자수각 안의 손님 모두에게 정확히 들릴 만큼의 크기였다."어머, 정화 아가씨 아니세요?"서정란은 놀란 척 입을 가렸다."정화 아가씨, 어제 장원 잔치에서 '저는 첩으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