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석과 정은은 함께 있어도 ‘달콤하게 붙어 있는 시간’은 많지 않았다.
대부분은 각자 노트북을 펴놓고, 자료를 정리하거나 논문을 수정하는 시간이었다.
논의라도 할까 싶었지만, 한 사람은 물리학, 한 사람은 생명과학.
간혹 교차 지점이 있긴 해도,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도 정은은 이런 ‘같은 공간, 각자 집중’하는 시간을 꽤 좋아했다.
노트북 화면과 치열하게 싸우다가, 고개만 돌리면 조용히 곁에 있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꽤 괜찮은 기분이었다.
...
30분쯤 뒤, 차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두 사람은 바로 근처 마트에 들렀다.
내일은 토요일.
정은은 오랜만에 집에서 요리할 계획이었다.
“이렇게 많이 사도 돼? 우리 둘이 다 먹을 수 있을까?”
재석은 장바구니를 밀며 얌전히 그녀를 따라가고 있었다.
정은은 앞에서 이것저것 고르면서, 고른 건 전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장바구니에 쏙쏙 담았다.
‘흐름 끊김 없음. 실화냐?’
“고기야 남으면 냉동시키면 되니까요.”
“아, 재석 씨.”
정은은 멈춰서서 뒤를 돌아봤다.
“우리 냉장고, 지금 텅 비어 있는 거 몰랐어요?”
재석은 코를 만지작거리며 멋쩍게 웃었다.
“미안, 몰랐어.”
사실 두 사람이 집에서 요리한 지는 거의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럼 오늘은 우리 여자 친구 말대로 푸짐하게 사자.”
생선 코너 쪽으로 걸어간 정은은 진열된 새우를 보고 멈춰 섰다.
“저기요, 물 빠지는 바구니 하나만 주세요.”
직원이 건네준 바구니를 받자, 정은은 새우를 하나하나 신중하게 고르기 시작했다.
그때, 뒤에서 조용히 따라오던 재석이 불쑥 말을 꺼냈다.
“우리 어머니... 널 집에 한번 초대하고 싶으시대.”
손에 들고 있던 새우가 살짝 흔들렸고, 정은은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네...?”
‘분명 얼마 전까진 분위기 안 좋았잖아...’
그날 밤, 재석은 본가에 다녀온 후 평소와 달리 말이 없었다.
그리고 정은을 보자마자 안아버렸고, 이상한 말을 하기도 했다.
포기하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