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손윗사람이거늘, 어찌 지환이가 나를 속일 수 있겠는가.’
“할아버지.”
은철이 다시 한번 낮은 소리로 하경철을 일깨웠다.
하도훈 역시 급히 민호일에게 물었다.
“호일아, 제수씨는 아직인가? 지환이까지 도착했는데 우리더러 기다리라는 건 아니겠지?”
민호일이 웃으며 말했다.
“농담이 심하십니다. 바로 사람을 시켜 내려오라고 전하겠습니다.”
민호일이 사람들을 불러들였다.
“빨리 가서 사모님께 내려오라고 전하게.”
사람들이 급히 위층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몇 분이 지나도록 이하영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민호일은 눈살을 찌푸린 채 다시 한번 사람을 재촉하고서야 사람들에게 말했다.
“모두 먼저 자리에 앉으시죠. 여자는 참 번거롭습니다. 화장도 하고 옷도 갈아입어야 하니, 여러분께서 이해 좀 부탁드립니다.”
사람들은 환하게 웃으며 좌석 순서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지환은 시종일관 내색하지 않았다.
소태성이 이 기회를 틈 타, 술잔을 든 채 지환에게 말했다.
“하 대표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표님께서 지엽이을 데리고 외국에서 가신 덕에 많은 재미 좀 봤을뿐더러 해외 시장도 순조롭게 넓힐 수 있었습니다.”
최근 몇 년 간 해외로 진출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 소씨 가문이었다. 하지만 요령을 알지 못해 빈번히 실패해왔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환이 술잔을 든 채 담담하게 말했다.
“지엽 씨에게 감사해야죠.”
소태성은 이해하지 못하고 옆자리의 지태를 바라보았다.
지태 역시 오리무중이었다.
“하 대표님, 무슨 말씀이세요?”
“탁월한 안목을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서에게 반하셨으니까요.’
지환은 어쩔 수 없이 지엽을 외국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소태성은 지환이 지엽의 사업 상의 안목이 탁월하다고 칭찬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과찬이십니다.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다듬어 먹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저희는…….”
지환의 표정은 담담하여 이야기를 나눌 흥취가 전혀 없어 보였다. 소태성은 소씨 가문의 가주이자, H국의 제2 명문가 집안의 권력자로서 어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