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
정씨 가문은 여전히 북적였다. 정보영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외로우실까 봐 정윤아와 함께 일찌감치 돌아와 설을 같이 보내고 있었다.
박민정 일가가 도착하자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반겼다. 네 명의 작은 증외손자는 돌아가며 차례차례 인사했고 두 분은 곧장 세뱃돈 봉투와 선물을 한가득 안겨 주었다.
박민정은 아이들 품에 선물이 한껏 쌓인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이렇게까지 많이 준비하시면 어떡해요?”
“애들이 온다니 얼마나 기쁘겠니. 너희들이 돌아오기 전부터 예쁘고 재미있어 보이는 건 전부 사서 모아 둔 거란다.”
박민정은 더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이들은 두 분 곁에 남겨 두고, 유남준과 함께 서주 시내를 잠깐 돌아다니다가 오후에 에리를 만나기로 했다.
...
에리의 집.
하정철과 조미연이 여자 사진이 잔뜩 든 파일을 내밀었다.
“자, 이거 봐.”
에리는 힐끗 한 번 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아빠, 엄마, 저 소개팅 안 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소개팅도 안 하면 연애는 어떻게 하고 결혼은 어떻게 하니?”
하정철이 툴툴댔다.
에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저 꼭 결혼해야 해요?”
“무슨 소리야! 결혼 안 하고 어쩌려고?”
조미연이 바로 받아쳤다.
“너 혹시 남자 좋아하는 건 아니지?”
그 한마디에 에리와 하정철의 얼굴이 동시에 굳었다.
하정철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설마 그런 거 아니겠지? 남자끼리는 말도 안 돼.”
에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에요. 저는 그냥 결혼이 싫어요.”
사실 박민정 말고는 그 어떤 여자에게도 마음이 가지 않았다. 가장 힘들었을 때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 그녀였기에,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었다.
박민정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자신도, 자신을 사랑해 주는 팬들도 없었을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
조미연은 고개를 갸웃했다.
“엄마랑 아빠도 잘살고 있는데 왜 결혼이 싫은데?”
두 사람의 집요한 질문에 에리는 더는 대꾸하고 싶지 않았다. 손목시계를 본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