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07화. 백성들의 자각루미엘이 인장을 매개로 신성을 쏟아부었다.부드러운 진실의 파동.수도 전역에 비올렛이 흑마법사와 결탁해 국왕을 중독시키고, 아이를 죽여 제물로 바쳤으며, 이제는 백성들 생명까지 갈취하고 있다는 사실이 환영과 함께 소리로 울려 퍼졌다.“뭐라고? 왕비님이 우리를 제물로…?”“그렇다면 우리가 속은 거야?”도심 곳곳.비올렛을 향한 공포가 분노로 바뀌기 시작했다.백성들 의지가 비올렛 흑마법에 저항하자, 견고하던 흑마법 넝쿨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흑마법은 백성의 의지가 아니면 지탱할 힘을 잃기 때문이었다.왕의 침소를 나오자, 수십 마리의 그림자 기사단을 베어 넘긴 카일이 합류했다.그의 갑옷은 검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결계를 풀 인장을 확보했습니다.”“고생하셨습니다.”“카일, 지금 즉시 바르 공작 저택으로 가세요. 그는 비올렛의 가장 큰 후원자지만, 동시에 자신의 안위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기회주의자죠. 왕의 인장과 루미엘 신성을 보았으니, 그가 어느 줄에 서야 할지 잘 알 겁니다.”“네!”“아…. 아닙니다. 저와 함께 갑시다.”복도 끝.비올렛의 광기 어린 웃음소리가 다시 들려왔다.왕국의 모든 생명력을 제물로 바쳐 신이 되려는 마지막 발악의 소리였다.비올렛.넌 성벽을 높이 쌓았다고 믿겠지만.이제 네가 믿는 귀족들이 너의 숨통을 조여올 거다.루미엘 손을 꼭 잡았다.눈물로 가득했던 도망길이 이제는 당당한 진군으로 바뀌었다.“루미엘. 네가 진정한 왕임을 세상에 알릴 시간이 다가오는구나. 왕좌에 앉아 백성들을 보호하자.”수도 서쪽, 화려하기로 소문난 바르 공작의 저택.폭풍 전야처럼 고요했다.공작은 비올렛 왕비의 가장 강력한 금줄이자, 나를 단두대로 보내는 판결문에 가장 먼저 서명했던 인물이었다.하지만 지금.그는 겁에 질려 있었다.조금 전 하늘에 울려 퍼진 루미엘 목소리와 신성을 보았기 때문이다.“공작님, 손님이 오셨습니다.”“오랜만입니다, 바르 공작.”내가 후드를 벗자, 공작은 들고 있던 와인잔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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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6화. 여우의 목줄아라의 새벽이 어두운 복도를 대낮처럼 밝히며 그림자 기사단 진영을 흩어놓았다.흑마력과 성검이 부딪히며 거대한 충격파를 만들어 냈다.카일이 시간을 버는 사이.왕궁 중심부로 올라갔다.기이할 정도의 고요한 그곳으로.화려해야 할 대리석 기둥들은 검은 마력 덩굴에 침식되어 금이 가 있었고, 시녀들과 근위병들이 분주히 움직이던 복도에는 오직 차가운 냉기만이 감돌았다.가슴을 짓누르는 압박감.손목 흉터를 만지며 생각했다.피눈물을 흘리며 이 복도를 지나 도망쳤던 그날을.미로 같은 복도를 지나 국왕의 침실 문 앞에 섰다.문을 열자, 지독한 악취.죽음의 냄새였다.한때 위엄 있던 왕, 앙리는 이제 뼈만 남은 채 침대에 누워 초점 없는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다.“...누구냐. 비올렛 이냐? 내 생명을 얼마나 더 가져가야 만족하겠느냐….”앙리의 목소리.천천히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왕의 눈동자에 내 모습이 맺히자, 그는 발작하듯 몸을 떨었다.“마…. 리안? 네가 어찌…. 너는 분명 처형당했을 텐데…. 망령인가? 나를 데리러 온 망령인가!”“망령이 아닙니다, 폐하.”내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손목에 남은 단두대 흉터를 보여주며 앙리를 내려다보았다.“당신이 외면했던 진실이 돌아온 것입니다. 당신이 죽이려 했던 당신 아들과 함께.”루미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신성한 광채가 방 안 어두운 기운을 몰아내기 시작했다.앙리 왕은 눈이 멀 것 같은 빛 속에서.인간 아이와는 차원이 다른 고결함을 보았다.“이 아이가…. 내 아들이라고?”“신께서 증명하고 계십니다. 당신이 비올렛 감언이설에 속아 아들을 돌바닥에 내팽개쳤을 때도, 신께서는 이 아이를 지키셨습니다.”루미엘이 앙리 손을 잡았다.몸 안을 떠돌던 흑마법 기운이 신성에 닿아 증발하며 비명을 질렀다.맑은 정신을 되찾으며 눈물을 흘리는 앙리.“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가. 이 왕국을, 내 여자를, 내 아이를…. 내 손으로 죽였었구나.”정신을 차린 앙리가 내 소매를 잡으며 피 섞인 기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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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5화. 무너진 왕좌말을 마친 엘레나.분노보다 깊은 절망이 담겨 있었다.수많은 백성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동료들을 잃어야 했던 아픔.그러나 그녀는 무너지지 않았다.누군가는 끝까지 희망을 붙잡아야 했기 때문이다.앙리 왕.비겁하게 나를 버리고 아들을 죽게 내버려 두었던 사내.세 번째 회귀인 지금도 비올렛 손아귀에서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우리가 온 것을 그들이 눈치채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그전에 저항 세력을 하나로 묶어야 해요.”그때.지하 은신처의 상처 입은 기사 중 한 명이 루미엘 앞에 쓰러졌다.흑마법 저주에 걸려 온몸이 검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엘레나조차 손쓰지 못하고 독주로 통증을 견디고 있던 그였다.엘레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수없이 치료를 시도했지만 끝내 살리지 못했던 이들이 그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혹시라도 또다시 실패를 보게 될까 두려워하는 눈치였다.루미엘이 조용히 그에게 다가갔다.“두려워하지 마세요.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으니까요.”루미엘이 기사 가슴에 손을 얹자, 지하 전체가 부드러운 은빛으로 차올랐다.저주받은 검은 핏줄이 순식간에 정화되었고, 숨을 헐떡이던 기사는 기적처럼 살아났다.은빛은 사람들 얼굴을 하나둘 비추며 따뜻하게 번져 나갔다.저항군들 눈에 희망의 불꽃이 강렬히 타올랐다.엘레나는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었다.“신은….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군요.”두 손을 모은 그녀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이 아이가…. 정말 비올렛이 죽이려 했던 그 왕자님이란 말인가?”“살아있는 신성이다. 우리가 기다리던 진정한 왕이 돌아오셨다.”카일은 루미엘 등을 바라보며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처음 만났을 때 지켜야 할 갓난아이였지만.이제는 자신조차 등을 맡길 수 있는 진정한 빛으로 성장하고 있었다.엘레나가 건넨 왕궁 비밀 지도를 펼쳤다.시녀 시절.왕의 아이를 품고 도망칠 때 이용했던 지하 수로와 연결된 길이었다.엘레나는 지도 위에 손가락을 올리며 여러 번 수정한 흔적을 보여주었다.수년 동안 왕궁을 감시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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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4화. 귀환, 침묵하는 수도의 눈물다시 과거로 회귀한 우리.루마레스 숲을 떠나 왕궁으로 향하는 길목.변장한 채 수도 성문을 통과했다.회귀해 돌아온 수도.거리마다 비올렛 왕비 상징인 흑장미 깃발이 걸려 있었고, 백성들 눈빛은 굶주림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한때 웃음이 끊이지 않던 시장에는 적막만 흘렀고, 문을 연 상점보다 굳게 닫힌 곳이 더 많았다.사람들은 서로 얼굴조차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발걸음을 재촉했다.누군가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죄가 된 도시.수도는 살아 있었지만 이미 영혼을 빼앗긴 것처럼 숨죽이고 있었다.“비올렛 흑마법이 도시 생기를 빨아먹고 있군요.”카일이 후드를 깊게 눌러쓰며 읊조렸다.그의 손은 무심한 듯 망토 속 검 자루를 꽉 움켜쥐고 있었다.적과 싸우기도 전에 백성들의 삶 자체가 무너진 풍경은 처음이었다.분노가 목 끝까지 치밀었지만, 그는 끝내 삼켜냈다.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이 아니라 승리를 위한 인내였다.루미엘은 아이들 마른 손을 보며 가슴 아픈 듯 손을 뻗으려 했으나, 조용히 그의 손을 잡고 고개를 저었다.지금은 정체를 드러낼 때가 아니었다.손끝에는 이미 치유의 빛이 맺혀 있었지만 끝내 거두었다.단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모습을 드러낸다면, 수천 명을 구할 기회를 잃게 된다.그 사실을 알기에 아이 눈동자에는 슬픔이 고였다.수도 외곽 무너져 가는 빈민가 지하 제단으로 향했다.그곳은 나의 조력자 카란이 은신 중인 곳이었다.육중한 비밀 문이 열리고, 백발이 성성한 여인이 등불을 든 채 나타났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신이시여…. 정말 살아계셨군요. 마리안, 그리고…. 예언의 아이여!”“엘레나 대사제님…? 사제님이 여기 어떻게?”분명 이곳은 카란의 은신처.승천한 대사제 엘레나가 왜 여기에 있는 걸까?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첫 번째 회귀에서 누구보다 따뜻했던 사제.신전을 지키던 그녀 머리카락은 어느새 눈처럼 희어져 있었고, 얼굴에는 수많은 세월과 고난이 깊은 주름으로 새겨져 있었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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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3화. 세 번째 회귀“물론 또다시 피를 볼 수도 있겠죠. 지금껏 승리했던 발자취도 지워지고 모든 게 처음으로 돌아가겠지요.”우리만을 위해 대로를 선택한다면 고생은 여기서 끝이다.더 이상 도망칠 필요도.피 흘릴 이유도 없었다.루미엘도 살아 있다.카일도 살아 있다.우리 셋만이라면 이제 행복해질 수도 있었다.하지만.이 행복은 많은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이다.나는 그런 미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내 사람들.숲의 백성들을 저들 손에 둘 순 없었다.천천히 바라본 손목.처형당하던 날 남은 쇠사슬 흉터.아직도 선명했다.처음에는 그것이 내 고통의 흔적이라 생각했다.그러나 아니었다.다시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말라는 선언이었다.첫 번째 회귀.나는 아들을 지키기 위해 싸웠다.두 번째 회귀.나는 악을 무너뜨리기 위해 싸웠다.하지만 이제 깨달았다.두 번 모두 내가 사랑하는 사람만 바라보고 있었다.이번에는 달라야 한다.한 사람도 버리지 않겠다.누구도 희생시키지 않겠다.설령….내가 마지막에 사라진다 해도.두려움이 없다면 거짓이다.다시 처형당할 수도 있다.다시 루미엘을 잃을 수도 있다.카일과 이별할 수도….어쩌면 이번엔 회귀의 기회조차 없을지 모른다.하지만.구하지 못한 사람들 얼굴을 또다시 기억하게 되는 것이 더 두려웠다.그것만은 견딜 수 없었다.“돌아가서 다시 바로 잡는 것부터 시작합시다.”루미엘과 카일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둘이 반대한다면…. 여기서 멈출 수밖에요. 숲 사람들을….”“마리안, 지금 그렇게 얘기하는 건 다시 돌아가자는 소리보다 더 무서운데요?”“...티 났어요?”“네. 너무 티가 많이 났습니다.”카일의 미소는 긴장으로 굳어 있던 내 마음에 위안을 주었다.“그럼…. 앙리 왕 서거 전 이겠군요.”카일 얼굴에 알 수 없는 걱정이 서려 있었다.“네…? 그럼, 앙리 폐하를 다시 뵐 수 있겠네요.”루미엘을 바라봤다.아들의 진심은 무엇일까?한참을 살핀 끝에야 루미엘 눈빛을 읽을 수 있었다.그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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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02화. 쇠사슬에 묶인 숲 사람들끝이 아니었다.무너진 어둠 너머로,멀리 실제 왕국의 수도가 보이기 시작했다.우뚝 솟은 흑마법 제단.하늘로 검은 기둥을 쏘아 올리고 있었다.흑마왕은 사라졌는데,오히려 왕궁의 흑마력은 더욱 거세지고 있었다.마치 모든 악이 한곳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무언가 이상하다.분명 내가 저 흑마법 제단을 부수고 궁의 담도 모두 헐었건만.저곳은 두 번째 회귀 때 보았던 바로 그 궁의 모습…?순간.공간 어디선가 낡은 시계 태엽 감는 소리가 들려왔다.째깍.째깍.째깍.공간 전체를 뒤덮은 소리.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었다.환영은 사라졌지만.그 빈자리를 대신하듯 거대한 시계탑이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수없이 맞물린 톱니가 거꾸로 회전하기 시작했고,세상은 조금씩 과거를 향해 되감기고 있었다.“어머니, 흑마왕 죽음이 시계탑을 뒤집어 놨어요.”“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구나.”“흑마법은 이제 저곳에만 남아있습니다.”루미엘 손끝이 멀리 왕궁을 가리켰다.흑마왕 소멸과 함께 인간계 많은 것이 변해 갔다.모든 악이 왕궁에 집중됐고 그 충격으로 시간이 뒤로 흘렀다.나는 멍하니 왕궁을 바라보았다.흑마왕은 사라졌다.그러나 악은 사라지지 않았다…?오히려 한곳으로 응축되고 있었다.마치 누군가가 처음부터 이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설마….머릿속에서 흑마왕의 마지막 말이 되살아났다.‘모든 악은 탈리온이라는 이름 아래 숨었다.’그렇다면.지금 저 왕궁에는 흑마왕보다 더 오래전부터 악을 움직여 온 존재가 남아있다는 뜻이었다.탈리온을 타락시킨 자.왕비를 타락시킨 자.모르가나를 이용한 자.인간의 탐욕을 먹으며 시대마다 얼굴만 바꾸어 살아남은 존재.이번 회귀는 단순히 과거를 고치는 일이 아니었다.그 뿌리를 끊어내야 하는 마지막 싸움이었다.멀리 누군가의 절규가 흘러나왔다.우리 숲 사람들.숲을 나와 왕궁으로 향할 때.선발대로 궁 안에 잠입했던 그들.분명 그들의 비명이었다.크게 확대된 궁의 모습을 보며 나의 씻을 수 없는 잘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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