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룡의 말이 떨어지기도 바쁘게, 칠흑 같은 어둠 속 그의 뒤켠에서는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불길한 예감에 우룡은 몸을 돌리려 했지만, 그가 움직이기도 전에 상대는 손바닥으로 그의 뒤통수를 쳤다. “푸!”순간 우룡의 몸은 화살처럼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그는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입에서 어마어마한 양의 피를 토해냈다. 사실 우룡의 실력 또한 약하지 않었다. 그는 만검각 장문의 제자로서 4성 천급 천신계의 전력도 있었다. 그러나 그 알 수 없는 검은 그림자에 비하면, 그는 세 살짜리 아이처럼 일격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갑자기 웬 붉은빛이 사람들을 덮쳤다. 이내 눈 깜짝할 사이에 주위의 십여 명의 만검각 제자들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아니!”자신의 형제들이 눈앞에서 참사하는 것을 목격한 우룡은 눈알이 빨개졌다. 하지만 그의 실력이 턱도 없이 부족했다. 상대는 최소 반보 인왕계 고수인 게 느껴졌다. 아무리 밉고 화가 난다 하더라도 복수하려면 실력으로 보여줘야 했다. “누구냐! 감히 우리 만검각 문인 제자를 습격하다니!”우룡의 멘탈이 점점 무너지게 될 무렵, 중후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백의의 한 노인이 손에 삼척이나 되는 장검을 쥔 채 나타났다. “사부님! 얼른... 얼른 도망치세요!” 땅에 엎드린 우룡은 마지막 힘을 다해 노인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 이 노인은 바로 만검각 장문인 만검 전인이다. 그 또한 곧 인왕의 경지에 발을 들여놓을 반보 인왕이었다. 비록 무종에서 그의 실력은 상위 백 위안에도 들어가지 못하지만, 종문을 지키는 것은 엄연히 그의 책임이었다. “얘야!” 만검 전인은 재빨리 우룡에게로 다가갔다. 이미 박살 난 우룡의 등짝을 마주한 그의 눈에는 순간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 대체 누구길래 감히 이 밤에 우리 만검각을 침입하는 거야! 이내 만검 전인은 벌떡 일어나 칠흑 같은 숲을 싸늘하게 바라보았다. “만검각? 너희들 정말 겁도 없구
“그럼 네 말은, 우리가...”진우는 난감한 표정을 보였다. “만약 흑병대가 힘이 부친다면, 내가 직접 나설게!”한지훈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지훈, 항산은 엄연히 혈족의 지반이야. 비록 과거 천명자가 혈족을 제패하긴 했지만, 현재 우리의 조약에는 그들을 기존의 지반에서 퇴출시키는 건 포함되지 않았다고!” “만약 다시 충돌이 일어나게 되면, 소란을 일으키지 않을까?”진우는 걱정 가득한 말투로 물었다. “다시 충돌? 혈족이 과연 용국을 평화롭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힘을 축적하고 있을 뿐, 천명자도 진심으로 용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국왕의 자리를 노리고 있어!”한지훈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도 아직 마땅한 준비가 되지 않았어. 한편으로는 무종에 있는 대장로를 찾아가 교대를 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대도시의 인원들까지 대피시켜야 해!”“다시 말해서, 우리도 아직 상대와 싸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진우는 다시 눈살을 찌푸리고는 말했다. 일단 양측이 다시 맞붙게 된다면 아마도 전례 없는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때가 되면 용국의 각 대도시는 혈족의 주요 타깃이 될 것이다. 평균 수천만 명의 용국 백성들을 품고 있는 대도시에서 일단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용국에게 있어서는 감당할 수 없는 큰 손실이 된다. “그건 안심해도 돼. 지금 우리는 3개의 조직이 대립하고 있는 태세야. 그리고 혈족 사람들도 바보는 아니야. 그들이 굳이 경솔하게 전쟁을 발발하지는 않을 거야!”“하물며 내가 항산을 뒤집으려는 것도 사람을 죽이려는 게 아니라 사람을 구하려는 거야. 지금으로서 흑병대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제때에 혈족과 연락을 유지하는 동시에, 가능한 한 빨리 대도시의 민중들을 대피시키는 거야!”한지훈은 진우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어. 어떻게든 천명자가 빈 틈을 노리게 해서는 안되지. 내가 사람을 보내서 처리할게!”진우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사
이튿날 뉴스를 확인한 진우는 참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이 개자식들! 사람들을 죽여 놓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다니, 정말 조금의 인간성도 없는 거야?”죽은 사람들 중 대부분은 세속의 무종과 역외 편에 선 상업계 거물들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엄연히 용국의 백성들이다. 사실 전에 그는 공 씨 가문 사람들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긴 했었지만, 이렇게 잔인할 줄은 몰랐다. 바로 이때 한지훈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진우는 바로 전화를 받아 들었다. “한지훈, 역시나 예상한 대로 어젯밤에 또 수십 명이 죽었어!”“모두 예상한 일이야. 그 놈들한테는 자업자득인 일이지! 넌 일단 흑병대 본부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 내가 곧 갈게. 너한테 부탁할 일이 있어!”매우 덤덤한 한지훈의 말투에 진우는 마침내 조금 안심하게 됐다. 적어도 현재 국면은 모두 한지훈의 손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 나 본부에서 기다릴게. 이따 봐!”말을 마치자마자 진우는 전화를 끊었다. 그렇게 30분도 안되여 한지훈은 진우의 사무실에 나타났다. “얼른 앉아!”진우는 매우 열정적으로 맞이했다. 한지훈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고는 물었다. “전에 예 선배가 세상을 떠날 때, 내가 너더러 사람을 보내 주시하라고 했던 거 기억나?”그 말을 들은 진우는 잠시 멍해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하지. 곤륜 폐허 말하는 거잖아? 나 여태 줄곧 사람을 파견해서 그곳 지키고 있었어. 근 몇 년간 한 번도 멈춘 적 없어!”곤륜 폐허는 큰 무덤일 뿐만 아니라, 상고시대로부터 가장 큰 논란이 된 제준의 묘혈이기도 하다. 영기가 돌아온 이래로, 곤륜 폐허는 줄곧 짙은 안개로 둘러싸여 낮에는 가시도가 3미터도 되지 않았다. 심지어 산에는 가끔씩 큰 먹구름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짙은 안갯속에서 끊임없이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울려 짐승은커녕 전신계 고수라도 쉽게 접근하지 못한다. “뭐라고 알아낸 거 있어?”한지훈이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물론 있지. 영기가
“세상에 그렇게 날로 먹을 수 있는 일이 어디 있어?”천명자의 말을 들은 진 씨 어르신은 그제야 문제의 심각성을 의식하였다. 공 씨 가문 배후의 세력이든, 혈족이든 세속에 있는 그들의 힘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렇기에 한지훈이야말로, 이 세속 싸움에서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제삼자라 볼 수 있었다. 이들의 실력 차이는 거의 없었다. 일단 그중 맞붙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면, 이득을 보는 건 제삼자뿐이었다. “그 말씀은...”“몇몇 고수들을 파견하여 혈족 백작들을 처단해. 그리고 그 모든 걸 한지훈한테 뒤집어 씌우는 거야. 그럼 혈족은 반드시 한지훈과 죽기 내기로 싸울 테고 때가 되면 우린 조용히 이익을 취하면 되는 거야!”천명자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말했다. “천명자 선배님, 역시 현명하십니다!”진 씨 어르신은 천명자의 계략에 진심으로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사실 한지훈은 젊은이들 사이에서 뛰어난 실력을 갖고 있긴 하지만, 필경 아직 30대도 되지 않았기에 경험이 너무 적어. 특히 이런 젊은이들은 열정과 패기만 넘쳐서 스스로가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그러니 우리가 가르쳐줘야지, 굴복하는 방법을!”천명자는 얼굴까지 들고 득의양양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는 매우 자신감이 넘쳤다. 몇몇 고수들을 파견하여 조금만 손을 쓰기만 하면 한지훈은 필연적으로 고난을 겪게 될 거라고 믿었다. 때가 되면 다시 한지훈에게 돌을 던져 일격을 가할 생각이었다. “사실 한지훈 이 놈, 꽤나 특별한 놈이긴 합니다. 그동안 한지훈보다도 더 뛰어난 사람들이 한때 명성을 떨치긴 했지만, 어느 누가 좋은 결말을 맞이했나요?”“한지훈이라고 뭐 대수일가요?”진 씨 어르신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부하였다. 한편 유소천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굳은 표정으로 아침에 받은 신문을 조용히 읽었다. 그녀는 신문에 적힌 내용 중 한 글자도 믿지 않았다. 전에 한 번 한지훈을 본 적 있었던 그녀는, 한지훈의 성격과 태도를 보았을 때 결코 뒤에서 누군가를 암살
천명자가 이미 임담과 공천구 두 개의 바둑돌을 버린 상황에, 과연 여기서 그만두려 할까? 그날 밤, 그동안 강우연과 한지훈에게 도발을 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암살을 당하게 됐고 심지어 일부 종문들은 알 수 없는 발신인으로부터 혈세까지 받았다. 이튿날 아침, 전국의 각 매체는 이 소식을 알렸다. 이 뉴스는 단번에 한지훈의 이미지에 먹칠을 하였다. 면전에서 공천구를 참살한 건 이해한다 쳐도, 무모한 사람들을 쫓아가서 죽이려 한건 절대 용서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화산의 꼭대기에서 펼쳐진 그 전투에서도, 한지훈은 심지어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오히려 일반인인 임담을 느닷없이 죽였다. 그렇게 전국 백성들 마음속 한지훈의 이미지는 순식간에 무너지게 됐다. 전에 줄곧 한지훈을 지지해 온 적지 않은 네티즌들조차도 이번 일에 있어서는 한지훈에게 극히 실망하였다. 그 대단한 북양 왕의 그릇이 이렇게 작을 줄은 몰랐다. 하물며 암살당한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일반인들이었다. 일반인 비례가 많은 네티즌들은 이 상황에 큰 충격에 받게 됐다. 전에 한지훈이 용국에서 명성이 높았던 이유는 바로, 한지훈이 그들과 같은 최하 층의 일반인들과 함께 섰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한지훈은 줄곧 일반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함성을 질렀으면, 그들을 위한 공평한 생존 권리까지 쟁취했었다. 그러나 지금 한지훈의 소행은 일반인과 대척점에 서있었다. 한편 그 시각, 용경 북쪽 교외의 한 장원에서는 천명자가 여유로이 뒷짐을 진 채 천대에 서서 먼 곳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무수한 휘광이 용국의 사방팔방에서 그에게로 모이는 것을 보아냈다. 그것은 바로 용국 백성들의 원력이자, 예로부터 민의라고 불렸던 것이었다. 일반인들은 당연히 이것을 볼 수 없지만, 인왕계 이상의 고수들은 똑똑히 감지할 수 있었다. 자고로 백성의 원력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원망의 힘이고, 다른 하나는 경배의 힘이다. 과거 많은 왕조들의 멸망도 모두 백성들의 원력과 관련이 있었다. 심지어 상
한지훈의 차가운 목소리에, 공천구는 순간 표정이 굳어지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한지훈을 바라보았다. “너... 뭐 하려는 거야? 설마 감히 무도 선배한테....”그가 말을 끝내기도 전에, 한지훈은 저벅저벅 앞으로 나아가 바로 손을 뻗어 공천구의 목을 졸랐다. “우윽...”한지훈의 큰 손은 마치 강철 집게처럼 공천구를 힘껏 제압하고는 숨도 못 쉬게 만들었다. 강천구는 살려달라는 말 한마디는커녕, 으윽하는 신음 소리로만 냈다. 그제야 공천구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한지훈은 민간인을 죽인 것에 대해서도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는데, 무자 하나 죽이는 것에 대해서는 더욱 개의치 않을게 뻔했다. 그 생각에 공천구는 깜짝 놀라 급히 천명자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길을 보냈다. 지금 그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천명자 한 사람뿐이었다. “천명자가 널 구해줄 거라 생각해? 저 사람이 지금 가장 보고 싶은 것도 네가 이 자리에서 죽는 거야!”한지훈은 비꼬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이 상황은, 말 그대로 공천구가 돌을 들어 자신의 발을 찧은 격이었다. 공천구는 이 모든 상황을 직접 설계했지만, 그 자신조차도 이 판에 얽히게 될 줄은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임담의 죽음은 일반인들에게 있어서만 큰 충격일 뿐이지만, 역외 세가에게 있어서는, 땅강아지의 죽음과 별다른 차이가 없었다. 그러나 공천구는 달랐다. 비록 그의 신분은 세자 공선보다도 훨씬 못하지만, 세속 속에서는 그는 엄연히 공 씨 가문의 얼굴이다. 일단 공천구가 죽게 되면 공 씨 가문은 무조건 박차고 일어날 것이다. 그리하여 점점 갈등이 격해지는 이 상황에, 천명자는 진작에 공천구를 포기한 것이다. “아니, 안돼... 한지훈, 나... 난 공 씨 가문...”“철컥!” 공천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지훈은 손에 힘을 꽈악 주어 공천구의 목을 비틀어 부러뜨렸다. 곧이어 번쩍이는 빛과 함께, 공천구의 몸은 순식간에 가루로 흩어지게 됐다. “다시 한번 말할게. 오늘의 장부는 공 씨 가문이 결산하도록